1992년 11월 166호

나의 고백

유 현 석(변호사)

“나의 고백”란을 설정한 이유
? 사회의 다양한 삶을 통하여 확인된 체험을 모으려 합니다.
? 여러 사람의 다양한 시각을 서로 교환하려고 합니다.
?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좋은 생각을 얻고자 합니다.
? 이웃의 의견을 거울삼아 자신을 반성하고자 합니다.
? 모아진 체험들을 이 시대의 반영 자료로 남기고 싶습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45 년 경기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대학 예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법원서기관시험과 제1회 판사 및 검사 특별 임용 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하여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 민사, 형사지방법원 판사,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강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현재의 ‘제일합동법률사무소’ 를 개설하고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원이기도 하다. 또한 교회 내에서도 많은 일을 하시고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회장직도 지내셨다.

1.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 당신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주는 사건이 있었다면?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자반병이라는 병에 걸린 일이 있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데 피를 엄청 많이 토해서 깜짝 놀랐다. 어린 생각에 나는 죽는구나 싶어 6살밖에 안된 아우를 불러 놓고 유언하기를 ‘내 대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그 후로 내 뇌리에서 떠난 일이 없다.
2. 당신의 성장 과정에서 가정으로부터 얻은 것 중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 은? 또 아쉬웠던 점은?
가장 소중한 것은 아버지의 인품에서 나오는 무언의 교훈이었고, 아쉬운 것 은 어머니가 한글이라도 아셨더라면 하는 점이다.
3. 당신의 생애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혹은 책이나 사상은?
내가 다닌 경기중학교 교장이셨던 이와무라 도시오(岩村俊雄) 선생이다. 그는 일본 사람이지만 감옥에서 나온 민족 교육 운동가 김교신 선생을 강사로 위촉하여 우리가 그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4. 당신 생애에서 가장 뼈아픈 실패감이나 좌절을 느낀 적이 있다면?
6?25 때 공산군에게 학살당한 황욱주(黃旭周) 검사의 시체를 찾았을 때, 왜 우리가 동족 상잔을 해야 하는지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었다.
5.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어떻게 얻는지?
주여 내가 무엇 하기를 원하시나이까?(Dominne quid vis me facere) 하고 기도한다.
6. 당신의 삶에 전환점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나는 내 경험과 반대되는 주장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술이 취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법정에서의 피고인의 주장을, 내가 술이 취해 전혀 기억이 안나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긍정하게 되었다. 술이 취해 정신을 잃어 본 경험이 내 사고의 전환점이 되었다.
7. 지금까지 해 온 일에 대한 자신의 평가는?
한마디로 미흡하다.
8. 당신의 결점 중에서 가장 고치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되지……하고 미루는 버릇이다.
9. 당신의 생애에서 가장 감사하게 느끼는 일은?
감사할 일, 감사할 사람이 매우 많지만, 특히 죽은 내 아내가 나 같은 남편 만난 것을 운명으로 여기고 헌신적으로 도와준 일에 감사한다.
10. 당신 생애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죽은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새 집으로 이사할 때 돈이 모자라 천만 원을 꾸어 집값을 치르고 아내에게는 먼저 살던 집을 빨리 팔아 천만원만 나를 주고 나머지는 가지라고 했었다. 아내는 비싸게 팔아야 자신의 돈이 많아지니까 좀처럼 팔지를 못했다. 나는 미룰 수가 없어서 빚을 갚았지만 그 사실을 말했다가는 언제 집을 팔지 몰라서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 집을 팔지 못한 조바심을 안은 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를 못했다.
11. 원수나 미운 사람과 어떻게 화해할 수 있으며 참 용서가 가능한지?
나는 마음속의 감정이 금사 얼굴에 나타난다. 능청스럽게 미운 사람과 다정 한 몸짓을 못한다. 마음속으로만 ‘용서해야지 용서해야지’ 해 볼 뿐 용서가 잘 안된다. 하느님께서 그만하면 됐다고 너그럽게 봐 주시면 몰라도, 내게는 참 용서의 능력이 없는 것 같다.
12. 당신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우선 순위로 열거하면?
①공동선 ②정의 ③화목 ④품위 ⑤근면
13. 어떤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생각하고 나서 행동하는 사람.
14. 우리 나라 가정에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것(생활,교육,접대,혼수 등에서 볼 수 있다).
15. 오늘의 도덕성 회복을 위한 근본 방향을 열거한다면?
사회 지도층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이 욕심을 버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오늘의 난국은 정치인들의 타락으로부터 그 병마가 각계 각층으로 전염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 교회 안에서 남-여성의 역할을 신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성 스스로의 의식이 계발되어야 한다.“나는 여자니까!"한다든가,“여자가 무슨!” 하는 식의 자기 비하를 고치는데에 힘써야 한다. 교회내의 여러 활동에 여성을 골고루 참여시켜야 한다.
17. 한국인의 장점과 단점은?
머리가 좋고 부지런하나 달기 쉽고 식기 쉬우며, 남이 볼 때와 안 볼 때가 다르다.
18.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일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정치할 줄 모르면 정계에서 떠나고, 가르칠 줄 모르면 교단에서 떠나고, 군인은 군대로,학생은 학교로, 노동자는 일터로 돌아가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밀어야 한다.
19. 남북 통일의 첫걸음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 계속해야 할 과제는?
서신의 교환과 교류이다.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된 표준 말을 제정하는 일은 당장에라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는 통일에 지장이 되는 모든 법률과 장치의 시급한 폐지이다.
20. 우리 나라에서 가장 소중히 보존해야 할 전통이나 문화가 무엇인지?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어 왔다. 이것을 보존하도록 힘써야 한다.
21. 종교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지?
부정과 불의를 배격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여의도 광장에 경쟁적으로 많은 사람을 모아 들이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교회 스스로가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22.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좋은 점, 비판, 바라는 점 등)
주교회의의 활성화가 요망된다. 매년 춘추의 주교회의 결의 사항을 보면 이렇게 무기력할 수가 없다. 1976년 명동 사건으로 함세웅 신부 등이 잡혀 갔을 때는 유신 헌법에 대한 견해가, 부산 미문화원 사건으로 최기식 신부가 잡혀 갔을 때는 양심법에 대한 가르침이 의당 있어야 했다. 예비자 교리 또는 주일학교의 정의 교육 교재가 있어야 한다. 정의평화위원회와 평협의 활동이 더 활발해져야 한다. 한국 교우들은 열심하고 착하며 순종한다. 그런데 실상 세상의 참 빛과 참 소금이 되지는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또한 생명 존중, 낙태 입법 반대 등의 주교회의의 가르침은 옳았지만, 서명 운동 등은 주교회의가 직접 주관할 일이 아니라 정평위와 평협이 주관해서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3. 당신의 삶에서 이론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로운 체험이 있다면?
6?25 때 용케 피난한 것, 38교에서 지프를 탄 채 떨어졌는데도 안 죽은 것, 의사가 의심하고 몇 번씩 XㅡRay를 찍을 정도로 위궤양이 심했는데도 수술 않고 고친 것,임신 중독4기라 임신중절 수술을 하지 않으면 모자가 다 죽는다고 의사가 결심을 독촉하는데도 버티고 아이를 낳게 해서 모자 모두 건진 것, 이런 것들이 남들은 뭐 신비롭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하나하나가 신비롭다.
24. 사후 세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우선 먼저 간 착한 사람들이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겁난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느님이 나를 연옥에라도 보내 주신다면 언젠가 그들과 특히 먼저 간 사랑하는 내 아내와 만나지 않겠는가? 희망을 갖고 있다.
25. 다음 세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희들에게도 또 다음 세대가 있다. 지금은 몇 십년의 나이의 차를 가지고 선배연하지만 아마도 하느님 앞에 가 보면 그 차는 10초도 안될 것이다. 자칫하면 추월당할 것이다. 명심하라. 열심히 살라.
26. 그리스도교가 한국 사회를 위해 지니는 소명은? 또 2천년대를 위해 무엇을?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시다. 구세주이기 전에 구아(救我)주이시고 구가(救家)주이시고 구국(救國)주이시고 구족(救族)주이시다. 불교는 외래 종교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교는 외래 종교라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2000년대를 앞두고 그리스도교의 토착화가 주장된다. 그러나 국악 마사가 토착화의 전부가 아니고,밤?대추 올려 놓고 사기 그릇으로 미사드린다고 해서 토착화가 아니며, 알렐루야를 릴리리야로 바꿔 부르는 것만으로는 토착화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생각과 그리스도의 뜻과 그리스도의 행위가 우리의 것이 되어야 그것이 토착화이다.
27. 이외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국순교성인의 축일을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오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 대축일’이라 이름지었다. 그 순교 성인 103위 중에는 77년의 나이 차가 있는가 하면 부자간, 모녀간, 사제간이 있으며 순교 시기에도 30년의 차이가 있어서 한 분이 순교한 지 10년 후에 비로소 태어난 분도 있는데 이런 경우 우리는 동료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것도 토착화가 아직 안된 증거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