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1월호 (제 3호)

결혼생활에 대한 현대 사목

J. M러이쓰 / 편집실 옮김

필자 J.M 러이쓰(J.M. Reuaa) 주교는 서독 Maintz 교구 보좌 주교로서 사목 신학의 권위자이며 교황청 산아제한 문제 연구위원회 위원이다. 다음 글은 Zur derzeitgen Ehepastorai in Diakonia, 1권 (1966) pp. 234-236의 번역이다 〈편집실〉

말할 것도 없이 결혼생활을 위한 사목의 촛점을 임신조절이나 가족계획에 두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사목의 기반이 되는 것은 아니 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이 문제에 대해 신부들은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 해결을 위해 조직된 교황의 특별 위원회에서도 아무런 결정이나 단안을 내려 주지 않았고 그런데다가 그 위원들에게는 여하한 발설도 하지 말도록 교황께서 친히 엄중한 침묵을 요구하시어 이에 대한 해답을 들어 보기란 아주 힘들어졌다. 그러므로 본인은 아래에 1966년 7월 13일 Bamberg에서 있었던 가톨릭 총회에서 시사하려던 개인적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I. 이 문제에 대한 현황

1.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이익만을 돌보지 않는’’(꼬린도 전 13,5) 부부간의 진정한 사랑과 이 사랑의 성장이니 이는 결혼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부부 상호간에,또 부모와 자녀 간에 이 사랑이 육성 되도록 각자는 계속 노력을 해야 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이것이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이고 부부된 자는 이 임무를 가장 신성시해야 한다. 여기서 배우자들의 하느님께 대한 근본적 태도가 서게 된다.



2. 결혼한 배우자들은 자기들이 부모가 되기 위해 하느님께 불리운 자기임을 인식하고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결혼의 공동생활을 통해 이룩하도록 맡기신 임무임을 인정해야 한다 (창세기 1,28참조). 그러므로 이 신성한 임무를 자기들의 어떤 이기적 이유 때문에 포기해서는 결코 안된다.

3. 따라서. 임신조절은 허락된 것뿐 아니라 배우자를 위해서 또는 결혼 생활이나 자녀교육을 위해서 어떤 때는 요구되기도 한다.

4. 그렇기 때문에 결혼부부는 하느님 대전에 자기들이 몇 명의 자녀를 가질 수 있는지 양심적으로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책임성 있는 반성을 임의적이거나 방종에서 오는 것과 혼동해서는 결코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책임 있는 행동으로 하느님께,또 그 분의 성의에 대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5. 어떤 것이 타당한 임신조절법인지는 아직도 교회 내에서 여러 모로 논의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점은 주기법을 사용하는데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순전히 임신이 가능하지 않은 시기에만 부부관계를 하는 것까지도 일반적으로 가한 방법이라고(Pius 12세 이후) 인정하고 있으며 이미 수태된 애기를 유산시킨다는 것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불가하다는데에도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논란의 대상이 안되는 것은 성질상 유산이 피임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 내에 있어 논쟁의 촛점은 피임이 그 자체가 악이며 따라서 어떤 경우에라도 이를 인정할 수 없는가,아니면 그 자체는 악이 아닌 가에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긍정하고 어떤 이는 부정하여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6. 여기서 누구나 다 같이 인정하는 것은 이기적이거나 임의로 피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견해다.

7. 여하한 피임방법도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은 객관적 이유를 들고 나온다. 결혼생활에 있어 만일 자녀를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부모로서 중대한 이유가 있다 치더라도 그들의 피임이 이기적이거나 임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따라서 이것이 용인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8. 임신조절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교회 내의 학자들 간에만 논쟁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교황께서도 친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특별 위원회를 만드셨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특별 위원회의 연구와 결정에 앞서 조급한 단안 내리지는 않겠다고 재삼 천명하였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의회는 현재 불법적 임신조절 방법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Cf. Gaudium et Spes. Nr. 47)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제시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상동 Nr. 51과 주 14번 참고). 다시 말해서 이것은 공의회가,어떤 것이 정당한 방법이고 무엇이 부당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공의회는 이와 같은 태도로 지금까지 내려오던 전통적 해결 방법만이 즉, 부부관계를 절제하거나 주기법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설을 두드러지게 옹호하지도 않았고 정당하다고 긍정하지도 않았으며 따라서 새로운 해결방법,그러니까 상당한 이유가 있어 피임을 하게 되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설을 단죄하지도 않았다.

9. 우리는 현재 교회 내에서 논의되고 있고 이에 대한 교회의 유권적 해석이나 확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즉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피임법을 써도 되는지 또 임의적이 아닌 피임도 죄가 되는지 안되는지에 대해 이렇다 할 단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경우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으로는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슨 대답을 해 주어야 하겠느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고 어떤 확실한 답변을 아직 모른다는 이유를 내세워 공의회가 이 문제를 교황께서 구성하신 특별위원회에 위촉하였으며 이 위원회가 연구하여 결정을 내릴 것이고 교황께서 그것을 공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처지에서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과도기에 있어 가장 확실한 해결방법은 지금까지 교회에서 해온 전통적 방법 뿐이라고. 그러나 이와같은 주장은 근거 없는 말이고 따라서 수긍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공의회가 교회 내에 새로 제시된 해결방법에 대해 단죄하지 않을뿐 아니라 Placet juxta modum 표를 살펴 본 결과도 어떤 일정한 전통적 해결 방법을 우대하고 옹호하려는 표현을 많이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공의회는 전통적 해결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라는 지적은 아니하면서도 새로운 방법보다 더 낫다는 점은 부정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이를 통해 보면 현재에 있어 교회 내에서 단지 학자들의 견해만 일치를 못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가르침 자체도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부동상태에 놓여 있어서 피임방법은 모두 죄가 되는지, 아니면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새로운 피임법은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확답이 없다. 이와 같은 객관적 부동상태에 있어서는 불확실한 대답밖에 있을 수 없으므로 자연 어떤 정당한 의문점이 대두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부동적이며 불확실한 과도기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결혼생활과 자녀문제에 대해 사목학적 해답은 내려 주어야 한다. 이런 절박한 사정에 놓여 있으므로 모든 사제들은 이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실제로 어떻게 해답을 주어야 할 지가 큰 문제로 나타나게 된다.

II. 사목의 방향

1. 이상과 같이 객관적 근거를 둔 불확실한 상태에 있어서는,그러니까 피임방법은 어떤 것이건 간에 그 자체가 죄악이어서 승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정당한 주장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고해신부들은 고해자에게 그가 상당한 이유가 있어서 즉 방종하거나 임의적이 아닌 피임을 하고 있는 경우, 무조건 그것을 중지하기 전에는 사죄경을 못주겠다고 강경하게 나와서는 안된다.

2. 신부들은 결혼부부들에게 이기심 없는 상호간의 깊은 사랑으로 자녀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가장 숭고한 임무임을 항상 강조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느님 대전에 책임질 수 있는 한 많은 자녀를 갖겠다는 큰 아량을 갖도록 권고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3. 사제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문제점을 확실히 세밀하게 알기 전에는 어떤 강연이나 공개석상에서 피임법에 대한 구체적 윤리성 문제나 그의 합법성 여부를 논해서는 안된다. 이와는 반대로 누가 만일 이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조언과 협조를 청할 때에는 확실한 답을 해 주어야 한다.

4. 신부는 고해소에서나 혹은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묻는 이들에게 그들이 참으로 얼마동안이나, 또는 앞으로 그 이상 더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지는 하느님 대전에 신중히 또 양심적으로 반성해 봐야 한다고 일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정적 단안도 부부들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양심적으로 심사숙고해 본 다음 내려야 한다고. 만일 그들이 이 단안을 내릴 수 있도록 협조와 조언을 청한다면 그들의 환경과 구체적 조건들을 잘 살펴본 후 어떤 일정한 방도를 책임성 있게 말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신부가 직접 결정해 준다는 감은 없도록 해야한다.

5. 그러나 이 때에도 어떠한 이기적이거나 임의적 이유로 피임을 해서는 안되며 따라서 이는 죄악임을 말해 주어야 한다.

6. 만일 하느님 대전에 양심적으로 반성해 본 후 지금 당장에는 또 앞으로 더 이상 자녀를 가질 수 없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지금까지 교회에서 허락한 방법으로 즉 부부관계를 절제한다든지 주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다. 만일 그가 이런 방법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 가능성 여부는 신부가 아니고 부부들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며 성실하고 양심적인 의사와 상의하여 결정지을 문제라고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이 다 사실이고 피임을 안 할 수 없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면 이런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답해 줄수 있다. "만일 당신이 진실로 이러한 사정에 놓여 있다면 피임법을 사용하셔도 죄가 안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이란 정당한 부부관계의 존엄성을 손상하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는 내가 하느님 대전에 책임지고 당신에게만 주는 개인적 판단이니 당신이 현재 처해 있는 특별한 환경에 한해서만 타당한 것이고 절대로 보편화하거나 일반화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7. 이와 같은 또는 이와 유사한 대답으로 제시한 방법은,교회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방법은 아니지만 현재와 같이 과도기에 놓여있는 신부로서 하느님 대전에 책임진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아직 교회 내에서 토의되고 있으며 교회에서도 아직 이렇다 할 확실한 방도를 제시해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피임법에 대해 죄라고 또는 죄가 아니라고 하느님의 뜻을 전해 주어야 할 일선에 있는 사제로서는 양심적으로 책임진 대답을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8. 그리고 신부는 각자 자기들의 역량이 미치는 한 자기들에게 맡겨진 신자들에게 지도와 충고로써 그들 자신이 하느님 대전에 양심적으로 반성하고 책임 있는 단안을 내릴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단지 부부 생활 면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 전반에 걸쳐, 즉 그들의 모든 생활 면에 있어 이와 같이 하느님 앞에 스스로 반성 하여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