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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교회의 성화 임무
1999년 3월호 (제 242호)
제 7 장 혼인성사7. 조사 결과의 통보제1070조:혼인을 주례할 본당 사목구 주임 이 외의 다른 이가 조사...

주일의 말씀
1999년 3월호 (제 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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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사회 복지사
1999년 3월호 (제 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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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편을 중심으로
1999년 3월호 (제 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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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활과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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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는 회개를 사회 생활과 관계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다. 서로 의지하며...

창조 신앙과 자연 이해
1999년 3월호 (제 242호)
생태학과 신학적 연관성이 가장 잘 연결되는 주제가 창조론이다. 왜냐하면 이 두 주제는 공통적으로 땅과...

교회의 혼인 교육을 위한 서론
1999년 3월호 (제 242호)
오늘날 ‘혼인’이란 그리 명확한 것이 아니다. 화려한 시장의 논리와 급격한 사회 변동에 따른 가치관의 ...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1999년 3월호 (제 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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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
1999년 3월호 (제 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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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성지와 사적지
1999년 3월호 (제 242호)
성지1)나 사적지 순례는 전통을 되찾는 일, 곧 ‘고유한 전통의 회복’ 또는 ‘우리 것의 자리 매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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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만이 저를 평안히 살도록 하시나이다<2> 1999년 3월호 (제 242호)

시편 4편을 중심으로

정학근(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수·신부·성서학)



2. 본문의 문학적 이해

1) 유형

시편을 해석하기 위하여 그 시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시의 유형과 그 내용이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하나의 시편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목록으로 분류하기 위한 작업이 시도되어 왔다. 19세기 초반 궁켈(H. Gunkel)이 분류한 시편의 유형은1) 결정적이고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 유형 분류는 넓은 의미에서 지금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각 시편들의 세부적인 면에서는 의견이 다양하며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어떤 시편이 어느 유형에 속한다고 정확하게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많은 시편들이 여러 가지 유형으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시편 4편도 예외는 아니다. 이 시는 전통적으로는 ‘개인 탄원시’형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시의 내용 면에서 판단한다면 신뢰시에 더욱 가깝다. 이는 그 주제가 탄원이 아니라 무죄한 어느 경건자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항상 돌보고 계시는 하느님께 대한 확고하고도 강한 신뢰이기 때문이다. 경건자는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탄원하는 동기를 아뢰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시편 4편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지금까지 연구되어 왔던 여러 주석가들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이저(W. Weizer)는 시편 4편을 ‘신뢰시’로 규정한다.2) 그가 이 시를 이렇게 규정하게 된 이유는 이 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용어 ‘바타’(jfb, 의지하다, 신뢰하다, 평안하다)가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데 있다. 시편 작가는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돌보아 주신 하느님의 자애를 실제로 체험하였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할 수 있었다. 바이저는 바로 이 점(시편 작가가 겪은 종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시편 4편을 신뢰시로 규정한 다음 해석하고 이해한다. 크라우스(H. J. Kraus)는 슈미트(H. Schmidt)가 제안한 해석에 따라 시편 4편을 부당하게 고발당한 한 인간의 간구로 본다.3) 여기서 간구자는 사회의 권력층 사람들에게 불의하게 고발당한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의 동료들도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천대와 괴롭힘을 받는 사람들로서 심한 유혹과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이들이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간구자가 자신과 동료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구하고 있다는 것이 크라우스의 견해이다. 카스텔리노(G. Castellino)는4) 시편 4편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이 시는 지혜 문학적 요소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감사 행위를 위한 노래이다.” 다후드는5) 7절에 나오는 ‘토브’(bwf)를 ‘비’로 옮겨 이해함으로써 이 시 유형을 비를 몹시 기다리며 그 비를 내려 달라고 간청하는 ‘간구’ 형으로 규정한다. 델리취는6) 이 시를 유형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역사적이고 전형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였다. 그는 시의 머릿글(표제)에서 제시된 것을 근거하여 다윗이 경험했던 역사적인 실제 상황과 연결시켜 시를 이해하도록 권한다. 실제로 다윗은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모멸과 박해를 당하면서 피해 다니는 생의 위기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2사무 15장). 다윗과 함께했던 모든 동료들도 이러한 위기 가운데 절망하기에까지 이른다. 이런 역사적 상황이 이 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 설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델리취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시편 4편에 대한 성서 주석가들의 유형 구분은 다양하다. 이 모두가 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 시를 어느 한 유형에 한정시켜서 굳이 양식이라는 엄격한 틀에 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시편의 작가들이 어떤 양식을 선택해 시를 지은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시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시의 지은 내용으로 판단하면, 이 시는 고난 속에서 하느님의 자애를 깊이 체험한 어느 한 신앙인이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확신 가운데 자신의 체험을 시로 노래한 마음의 기도이다. 우리가 굳이 시편 4편의 유형을 규정할 경우, 이 시는 확신과 함께하는 신뢰시로 봄이 타당하리라 본다. 여기에 관한 더 자세한 고찰은 시편의 구조와 주석 부분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2) 구조

각 시편들은 그 구조를 알아볼 수 있는 표지를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규범적인 법칙을 각 시편에 일반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가 어느 한 시편에 대한 구조를 알아보고자 할 경우에, 그 시의 구조적 요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시편 4편은 한 신앙인이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확신 가운데 자신의 체험을 시로 노래한 마음의 기도이기에, 이 시에 나타난 신뢰와 확신의 표현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기도자의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더욱이 다른 시편과 비교할 때, 시의 구조가 독특하게 보여진다. 우선 이 시의 특징을 살펴보면, 히브리 시의 이해에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는 운율적 균형이나 병행구가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시편 4편에서 우리는 같은 단어들이 자주 반복되고 있으며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낱말들이 중복되고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도식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7)

㉠ 2절 1행:부르짖을 때(yarqb, 버카르이)

긿긿 `4절 2행:부르짖으면(yarqb, 버카르이)

㉡ 2절 1행:정의(yqdx, 치드키)

긿긿 `6절 1행:의로운(qdx, 체테크)

㉢ 2절 3행:들어주소서([mv, 셔마)

긿긿 `4절 2행:들어주시는도다([mvy, 이셔마)

㉣ 5절 2행:마음(bbl, 러바브)

긿긿 `8절 2행:마음(bl, 레브)

㉤ 5절 2행:잠자리에서도 (bkvm, 미셔카브)

긿긿 `9절 1행:자리에 누워 잠들다(bk뛞, 에셔크바)

㉥ 6절 2행:신뢰하여(wjfb, 비트후)

긿긿 `9절 2행:평안히(jfbl, 라베타)

㉦ 7절 1행:많은 이(탙br, 라빔)

긿긿 `8절 2행:푸짐하게(wbr, 라부)

위에 제시된 도식이 보여 주듯이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동일한 단어의 중복과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들의 사용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 시의 구조 요인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시편 작가는 이러한 단어의 중복 사용을 통해 반복 구문(Inclusio)의 형식을 취하면서 (㉠과 ㉢과 ㉦은 반복 구문을 형성하고 있다) 자신의 체험적 사실이나 사상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또한,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 선인과 악인, 유력자와 비천한 자를 대조시키면서(본문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과 ㉤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극적인 효과를 산출하기도 한다. 이 밖에 2절(부르짖을 때`…… 곤경에서 끌어내셨다)과 4절(부르짖으면`…… 들어 주시는도다)에서 간청 그리고 확신과 함께 그 응답이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간청에 대한 응답의 확신은 8절과 9절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곧 “큰 기쁨을`…… 베푸셨다”(8절 2행). “……` 평안히 살도록 하셨다”(9절 2행). 여기 간청에 대한 응답의 확신을 굳게 해 주는 근본 요인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이다. 이 사실은 시편 4편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6절과 9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주님을 신뢰하여라”(whfb, 6절 2행). “주님, 당신만이 저를 평안히(jfbl) 살도록 하시니”(9절 2행).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확신과 함께 강한 ‘신뢰’가 시편 4편의 축을 이루고 있고 다른 요인들은 이 축을 떠바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곧 이 시의 축은 신뢰이며 시편 4편은 확신과 함께 강한 신뢰심을 보이는 시라 하겠다.

우리는 여기서 시편의 구조를 더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이 시의 드라마적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8)

우리가 시편 4편을 한편의 드라마로 볼 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함축된 여러 등장 인물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와 등장 인물들의 숙고와 결단 그리고 어떤 해결점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적 긴장들이다. 그런데 이 시편에서는 등장 인물들 사이의 대화는 없고 한 사람(주인공)만이 말을 건넨다. 다른 사람의 말은 주인공이 연기하는 가운데 끌어 온 인용구(“누가 우리에게 좋을 일을 보여 주리오?”) 안에서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등장 인물, 그들의 관계, 상황, 해결점을 찾는 방법은 극적이다. 그러나 간청은 극의 형식이 아니고 서정적인 단문이다.

이 시의 드라마적 특징은 주인공이 다른 등장 인물과 마주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가운데 문학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에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느님(주님), 저명하고 유력한 사람들, 동요하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계속해서 이 시의 구성 문제를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시편 4편에서 주인공(시편 작가)은 하느님께 2인칭으로 말씀드린다. 이는 시편 작가와 하느님의 밀접한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해 준다. 시인은 하느님을 직접 부르면서 과거에 베푸셨던 그분의 은혜를 회상하며 미래에 대한 새로운 보장을 간청하는 가운데 자신의 체험(확신과 신뢰)을 진솔하게 피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이들에게는 하느님에 대해 3인칭으로 말한다. 시인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서 질문과 명령법의 형식으로 그들에게 충고와 경고를 던진다. 시인은 적대자들이 자신들의 가면을 벗고 하느님을 받아들여 참 회개에 이르기를 바란다. 시인은 적대자들의 마음의 변화를 위해서 내적인 자극만 줄 뿐 그들이 어떤 말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체험과 적대자들이 묵시적으로 말하는 것을 독자들이 들을 수 있게 한다. 시인은 이 같은 수사학적 기법으로 익명의 많은 사람들을 3인칭으로 말하면서 시편 안에 등장시키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느낌과 체험은 단순한 서정적 반성을 통해서 표현된 것이 아니라 묵시적(감춰진) 대화 속에 섞여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시편 4편은 이처럼 숨겨진 대화 속에 이루어지는 한 편의 아름다운 드라마이다.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겠다. 곧 이러한 드라마적 유희 안에서 시편 작가의 마음속에 늘 자리잡고 있는 요인은 ‘신뢰’(hfb)라는 점이다. 또한 신뢰가 시의 중심과 끝에서 두 번 반복됨으로써 그것이 시편의 주요한 관심사임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시인의 체험에서 솟아 나오는 신뢰의 힘은 드라마 중에 나타나는 모든 긴장을 해소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시편 4편의 축을 이루고 있는 이러한 신뢰는 이 시에 나오는 다른 중요한 용어들을 지배하고 있다.9) 결국 이 시의 구조는 확신과 함께 신뢰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요인들은 그것을 떠받치고 있다 하겠다.

이상으로 우리는 시편 4편의 구조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시편 4편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자 한다.10)

첫째 부분(2절)은 하느님께 향한 간청 또는 탄원의 형식을 띤 서두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강조는 간청(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느님과 기도자의 신뢰이다.

둘째 부분(3-6절)은 사람들(vya ynb, 버네 이쉬)과의 대화 편으로서 수사학적 질문과 명령법을 사용하여 적대자(불신자)들에게 권고나 호소를 하는 부분이다. 권고나 호소의 내용은 ‘하느님을 신뢰하여라.’이다. 이 둘째 부분에서도 ‘신뢰’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셋째 부분(7-9절)에서는 기도 형식을 띤 시편 작가의 증언과 많은 이들(탙br, 라빔)의 태도가 말해진다. 여기서 시편의 주제가 총괄적으로 잘 요약되고 있으며 시편 작가의 기도 형식을 띤 감격,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선명하게 표출되고 있다. 여기서 시편 작가는 확신과 함께 신뢰에 근거하여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평안 가운데서 안식을 노래한다.

3) 삶의 자리와 역사적 배경

시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대부분의 시편들에서 그 작성 시기나 저자 또는 처음 사용된 상황을 거의 알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시편을 그 고유한 역사의 시기나 생활 환경 속에서 다룬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많은 학자들의 연구 덕분에 시편을 이해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학자들의 연구에서 얻게 된 결론은 대략 이러하다. 곧 시편은 본디 다른 사람에게 읽어 주거나 한 개인이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기 위해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시편이 산출된 근원지와 그 무대는 고대 이스라엘의 공적 예배 자리였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이들 시가 기록되고 수집되고 마지막에 책의 형태로 편집되어 사적으로 이용하게 된 것은 후대의 일이었음도 밝혀지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에 크게 공헌한 대표적인 학자는 분명 궁켈이다. “그는 「시편 주석」과 「시편 입문서」라는 두 권의 책에서 시편에 나타난 시들을 유형에 따라서 나누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시들의 원래 삶의 자리를 밝혀 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바로 이런 종류의 연구를 우리는 양식 비평이라고 부른다.”11) 궁켈은 이 방법론을 이용하여 많은 분량의 시편 본문들을 관찰하는 동안 일정한 형식이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선 확인할 수 있었다. 곧, 한 집단에 해당하는 텍스트들이 반복되는 요소들을 포함하는 일정한 틀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어서 시편에서 찾아낸 다양한 형식과 반복 발언들, 문장, 용어 등에 관하여 치밀하게 분석 연구한 결과, 시 자체와 관련되어 있는 삶의 자리를 비교적 분명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이런 시의 형식들이나 반복 발언 형태의 생활 무대와 그 산지가 대부분 개인 예배라기보다 이스라엘의 공적 예배였다는 점이다. 궁켈의 이러한 연구 결과는 그 후에 나타난 많은 시편 연구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가운데 특히 모빙켈(S. Mowinkel)은 궁켈의 연구를 기초로 하여 시편에 관한 전문 연구서를 출간하였다.12) 그는 그의 책에서 시편 양식들의 생활 무대가 이스라엘의 예배였을 뿐 아니라, 현재의 우리 시편에 나오는 대부분의 시는 본래 공적 예배를 위해 작성되어 활용되었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해 주었다. 그는 예배와 시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예배가 없는 곳에서 시가 나올 수 없다고까지 주장하였다.13) 이러한 견해는 금세기의 위대한 성서학자인 베스터만(C. Westermann)에 의해서 더욱 확실하게 증언되었다. 그에 따르면 예배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모든 삶의 구심점이며 삶 전체가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예배 정신으로 충만해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예배는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말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이 그 속에 담겨 있고 또 그것을 통해서 박동하게 하는 심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체로서의 공동체의 삶에, 또는 어떤 특수한 개인들의 삶 속에 발생하게 된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예배의 맥락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예배와 접촉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14)

실제로 폰 라드(G. von Rad)도 분명하게 지적했듯이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제의)와 삶은 둘이 아니고 하나였다.15) 그들에게 예배의 자리는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삶에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신 그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응답을 드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은 국가적 위기나 기근, 전쟁의 위협, 패배 또는 재앙이 있을 때는 탄원과 탄식 가운데 하느님 앞에 나아갔고, 전쟁에서의 승리나 해방 또는 풍작의 경우에는 찬양과 감사 가운데 하느님 앞에 나아갔던 것이다. 개인 생활에서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비록 시편이 말하고 있는 사건들 자체가 예배의 맥락이 아니고 국가나 개인들의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나타난 경우, 곧 추수하는 들판에서, 전쟁터에서, 광야에서, 가정에서, 병상에서, 방황하던 거리에서 나타난 것일지라도 이스라엘 예배는 시편들을 탄생시킨 장이었던 것이다.16) 결론적으로 시편들의 삶의 자리는 예배였다고 단정할 수 있겠다.

시편들은 각기 깊고도 넓은 과거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시편들은 처음에 기도문이나 노래로 사용되어 오다가 예배라는 맥락 안에서 한데 묶여져 하나의 형태로 고착됨으로써 부모들에게서 후손들에게까지 내려가는 동안 예배의 중심으로 자리잡히게 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 예배가 시편들을 탄생시킨 장이었다고 할 때, 우리는 시편 이해에 중요한 또 하나의 다른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곧 시편과 성소나 성전 사이의 밀접한 관계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예배의 자리였기 때문에 이곳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것이다.17)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조 탄생과 더불어 생겨난 예루살렘 성전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시편은 처음에 성소나 성전 및 종교 의식과 밀접한 관계 아래 생성되었고 전례(예배) 중에 많이 불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하느님의 현존이 성소나 성전에만 국한될 수 없었던 것처럼 이들 시편 역시 어느 장소나 계층(성직자들이나 레위인)에게만 국한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 시편들은 사람들의 전체 삶의 가장 본질적 부분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이 본질적 부분으로부터 이 시편들이 성장했던 것이다.”18)

지금까지 우리는 시편에 대한 삶의 자리를 전체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시편 4편에 대한 삶의 자리와 그것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시편의 역사적 배경 곧 저술 시기와 저자 문제를 함께 다루기로 하겠다.

우선 이 시에 붙여진 머리글을 볼 때, 시편 4편는 다윗이 쓴 시이거나 다윗에 대한 시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시가 바로 앞에 나오는 시편 3편과 더불어 한 쌍을 이루는 것으로 규정하고 이 시가 쓰인 시기를 압살롬의 반역 기간으로 추정한다. 곧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하나의 가정일 뿐 확실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시편 표제나 제목들은 기원 당시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 시편이 수집되고 편집될 때 후대의 수집가들이나 편집가들이 붙였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기 때문이다.19) 시편집에 나오는 많은 시편들이 다윗을 저자로 적고 있는 것은 전승에 기초한 것일 뿐이다. 마치 율법을 모세에게, 지혜를 솔로몬에게 귀속시켰듯이 이스라엘 왕조의 창건자요, 통일 국가를 이룩한 위대한 왕, 시인이며 음악인이었던 다윗에게 시편을 돌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편에 붙여진 표제들이 문자 그대로 저자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러면 시편 4편은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그 역사적 배경은 어떠한가? 우리는 대부분의 시편들에서 이러한 문제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편 4편에 대해서도 확실한 것을 알 수 없다. 본문의 어휘라든가 문체가 정확한 단서를 제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저작 시기에 대해서도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외스털리(W. Oesterley)는 이 시의 저작 시기를 유배 이후로 본다.20) 그는 이 시가 예레미야의 작품을 연상시키며(예레 5,13; 14,13; 20,18) 신명기계의 사료(신명23,19.28)를 회고하고 있음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포드샤르(E. Podechard)는 이 시의 저작 시기를 유배 시기 동안으로 보며21) 뒤르(L. Du촵r) 같은 학자는 유배 말기로 잡는다.22) 그런가 하면 오토 뵐(Otto Wahl)은 성전 전례와 연관시켜 그 저작 시기를 유배 이후로 잡는다.23) 이렇게 학자들의 의견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시편의 저작 시기를 구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실 시편들의 연대 규정은 거의 모두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우리들의 시편집은 기나긴 역사의 열매이며 그 역사는 매우 풍부하면서도 복잡하게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24) 이제 우리는 여기서 시편의 역사성뿐 아니라 시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인 시편 작가의 세계를25)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다.

시편 4편은 너무나 순수하고 맑은 한 인간의 양심 선언처럼 여겨진다. 본문에 나오는 용어나 문체, 신학적 내용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 시가 처음엔 탄원(간구)의 형식이었으나 곧 확신과 더불어 신뢰로 바뀌고 이것에 근거하여 내적인 충만한 기쁨과 평안을 노래하는 찬미의 형식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편 4편의 주인공인 시인은 확실히 고난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어떠한 종류의 고난 가운데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하느님께 충만한 신뢰를 두고 있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능력과 자애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곧 그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어 도움을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을 내면 깊숙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둡고 불안한 밤의 적막 속에서도 정다운 대화를 나누시는 하느님 현존의 표징, 곧 그분 얼굴의 빛을 경험하면서 더욱 확고한 신앙적 기반 위에 서게 된다. 곤경 가운데 슬픔과 분노를 나타내는 다른 시인과는 달리, 이 시인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내적인 자유를 경험하면서 큰 기쁨과 좋은 것을 주시고 밤의 어둠 속에서 평안히(안심하게) 잠들게 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한다. 이렇게 독특하고도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신앙적 기반을 구축한 시인은 동요하고 있는 그의 친구들뿐 아니라 적대자들에게까지도 참된 회개를 통하여 하느님의 평화와 기쁨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시인이 경험한 세계, 곧 그가 자기의 시에서 그려 내는 세계에 근거하여 이 시를 작성한 시편 작가가 어떠한 사람인지, 또한 이 시는 어느 시기에 어떤 용도로 불렸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편을 저술한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반 사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탄원 시편을 지어 성전에서 기도하고, 곤경에서 벗어났을 때 감사 시편을 지어 하느님을 찬미하며 이 시편들을 성전에 바칠 수 있다. 둘째,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곧 사제, 전례 예언자, 또는 합창단 음악인들이다. 이들이 직접 저작했거나 또는 기존의 시편들을 관장하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도서’로 빌려 주었을 수도 있다. 셋째, 임금이다. 성전이 본디 왕립 성전이었기 때문에 모든 전례가 임금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그래서 시편들이 임금에 의해서, 임금을 위해서 불리다가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일반인들에게 사용되었던 것이다.”26)

그러면 이 세 부류 가운데 시편 4편을 저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본문 6절에 전례적 의식 내용이 언급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시편의 저자는 사제 또는 전례 예언자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2절에서 하느님께 대한 특별한 호칭(저의 정의의 하느님) 사용과 6절에서 성전의 공적 전례 의식인 희생 제물에다 ‘체덱’(qdx, 의로운)의 개념을 첨가시킨 것은 이 사실을 더욱 신빙성 있게 해 주고 있다. 비록 우리가 시편 4편을 저술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확실하게 단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것은 곧 우리 시편의 저자가 예루살렘 성전의 공적 예배에 사용하는 용어나 관심사에 밀접히 관계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편이 처음엔 개인의 구체적 상황(삶의 자리)에서 탄생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삶 속에 발생하게 된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예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27) 그 삶의 자리를 예배로 추정함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베스터만(C. Westermann)에28) 따르면 시편은 먼저 작성된 다음 노래로 불려지고, 오랫동안 기도문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상당히 후대에 와서야 글로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시편들을 글로 고착시킨 사람들은 그 시를 처음 지은 사람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시편들을 수집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유배 이후 귀향과 더불어 제2성전에서 시편의 수집이나 편집이 전례 복구와 함께 이루어진 사실을 감안할 때, 시편 4편 역시 유배 이후에 글로 고착되어 성전 예배 때에 공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아마도 시편 4편은 처음 단계에서 시편 모음집에 삽입될 때 다윗의 이름으로 나타난 시편들(3-41편)에 귀속되어 공적인 전례 때에 기도문으로 사용되거나 노래로 불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편 본문의 머리글에 나오는 성전 음악과 관련된 용어들, 곧 지휘자(jxnml)와 현악기에 관한 언급과 ‘셀라’(hls)의 반복 사용은 시편 4편이 제의 또는 전례 의식(회중들의 모임)에서 이용되었음을 더욱 확실하게 해 준다.

이제 우리는 시편 4편의 삶의 자리와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결론을 내릴 단계에 이르렀다. 웨스터만이 잘 지적한 대로 이 시편이 대부분의 다른 시편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기원되었고 그것을 삶의 자리로 규정하더라도 장소적(성전), 시대적(예배라는 정규적 형태가 확립된 후대) 영역이나 어느 계층(성직자와 레위인)에 국한시킬 수 없다. 시편들이 사람들의 전체 삶의 가장 본질적 부분을 드러내고 있듯이 바로 이 본질적 부분으로부터 이 시편도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겠다.29)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이 시편의 위치다. 시편 4편이 전통적으로 아침 기도로 사용된 시편 3편 다음에 위치한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볼 때, 이 시가 저녁 기도로 사용되었음이 확실하다. 비록 우리의 시가 정규적인 저녁 기도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가정하더라도 전통 관습에 따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이 시편을 마감하는 9절(“저는 평화로이 자리에 누워 잠드나이다.”)의 내용 때문이다. 지금도 하느님의 은혜로 하루의 일과를 무사히 끝낸 온 세계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시편 4편을 끝기도 때 노래한 뒤에,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평화 가운데 안심하고 자리에 누워 잠 속에 빠져 들어간다. “주님 당신만이 저를 평안히 살도록 하신다.”는 확고한 신뢰 속에서 충만한 기쁨으로 잠을 맞이한다.

(다음 호에 계속)

1) H. Gunkel, Einleitung in die Psalmen, Go촷tingen, 1985⁴:궁켈은 이 책에서 시편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찬양시, 즉위식시, 민족 탄원시, 군왕시, 개인 탄원시, 개인 감사시. 그는 다시 소 유형으로 나누는데 그것은 축복과 저주시, 순례시, 승리시, 민족 감사시, 전설, 율법이다. 이 밖에 예언적인 것과 지혜 문학적인 것 그리고 여러 종류가 종합된 혼합시(Mischungen) 등으로 분류한다.

2) A.Weiser, 「시편」 I, 김이곤 옮김, 한국 신학 연구소, 1992, 157면 참조.

3) H-J. Kraus, Psalmen(BKAT, 151),Neu Kirchen, 19785 , 168-169면 참조.

4) G. Castellino, Libro dei Samli, La Sacra Bibbia,ed. S.GAROFALO, Torino, 1955, 360면 참조.

5) M. Dahood, Psalms I(Coll., The Anchor Bible, 17a), New York, 19816, 25면 참조.

6) F. Delitzsch, Biblischer Kommentar u촢er die Psalmen, Biblischer Kommentar u촢er das Alte Testament Ⅳ/1, Leipzig, 1894, 83-84면 참조.

7) Peter C. Craigie, Psalms 1-50(WBC 19), Word, 1983, 79-80면 참조.

8) L. Alonso Scho촮el, Trenta Salmi:Poesia e preghiera, Bologna, 1982, 36-37면 참조.

19) 신뢰가 축을 이루는 가운데 그와 관련된 용어들은 다음과 같다:신뢰(hfb, 바타), 좋은 것(bwf, 토브), 기쁨(hjmc, 쉼하), 평안(mwl]c, 샬롬). 그리고 이 용어들과 대립적인 말은 곤경(rx, 챠르)과 무서워 떨다(wzgr,리그주)이다.

10) H-J. Kraus, 앞의 책, 167면; L. Alonso Scho촮el, 앞의 책, 37면 참조.

11) J. Day, 「시편 개론」, 노희원 옮김, 은성 1996, 20면

12) S. Mowinckel, Psalmenstudien Ⅰ-Ⅵ, Kristiania(Oslo), Dywad, 1921-1924; The Psalms in Israel’s Worship Ⅰ-Ⅱ, Oxford, 1962 참조.

13) S. Mowinckel, Psalmenstudiun VI, 27-28면; Religion und Kultus, Gottingen, 1953, 117-118면 참조.

14) C. Westermann, 「시편 해설」, 노희원 옮김, 은성, 1996, 22면 참조.

15) G. Von Rad, Das GoHesvolk in Deuteronomium, 1929, 57면 참조.

16) C. Westermann, 앞의 책, 22-23면 참조.

17) 고대 이스라엘의 중요한 성소로 알려진 세켐, 베델, 길갈 같은 곳은 각 지파의 삶과 예배의 중심지였다. 여기에 대하여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 책을 참조하라:M. Noth, 「이스라엘 역사」,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88, 125-145면 참조.

18) C. Westermann, 앞의 책, 27면.

19) J. Day, 앞의 책, 177면 참조.

20) W.O.E. Oesterley, The Psalms translated with text-critical and exegetical Notes I, London, 1939 참조.

21) E. Podechard, Le Psautier, 1, Pss. 1-75. Notes Critiques. Traduction litte쳑ale et explication historique, Lyon, 1949 참조.

22) L. Du촵r, Zur Datierung von Ps. 4, Bib 16(1935), 330-338면 참조.

23) O. Wahl, Die frohe Botschaft von Ps, 4,`Ernst Haag/ Frank-Lothar Hossfeld(Hrg.); Freude an der Weisung des Herrn. Beitra촩e zur Theologie der Psalmen, Festgabe zum 70, Geburstag von Heinrich Groβ, KBW Stuttgart, 1986, 459면 참조.

24) J-P. Pre쳑ost, 「시편의 작은 사전」, 이기락 옮김, 가톨릭 출판사, 1997, 43면 참조.

25) 임승필, 「당신 말씀 나의 등불」, 29면:“시편 작가의 세계는 시편 작가의 외적인, 역사적인 세계가 아니라 내적인 세계, 그가 자기의 시를 통해서 그려 내는 세계다.”

26) 임승필, 위의 책, 25면.

27) C. Westermann, 앞의 책, 22면 참조.

28) 위의 책, 21면 참조.

29) 위의 책, 27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