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신부는 신부라서 소중하다
2006년 1월호 (제 324호)
“신부님, 공소에서 퀵 서비스로 뭣이 잔뜩 왔네유.” / “뭘 이래 잔뜩 보냈다냐?” “된장에 고추장에, ...

“여러분과 함께!”
2006년 1월호 (제 324호)
여러분을 위하여 저는 주교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Vobis enim sum episcopus, vobi...

세상 안에 살아가는 사목자의 영성
2006년 1월호 (제 324호)
새해가 밝았다. 새롭게 시작하기를 염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은 한국 교회의 현실...

미리내와 고성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2006년 1월호 (제 324호)
미리내와 고성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미리내와 고성의 골프장 건설 논란을 보면서 드는 생각들 한순...

골프장은 어떤 점에서 반생태적인가?
2006년 1월호 (제 324호)
골프장 입지 조건 보통 골프장 하나의 단위는 18홀로 구성되며, 각 홀은 티그라운드, 페어웨이, 그린으로 ...

골프장 경제학
2006년 1월호 (제 324호)
1. 한동안 스포츠 사회학이라는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이 ‘스포츠’, 특히 스펙터클이라는 현상이 불...

현장의 소리
2006년 1월호 (제 324호)
미리내 성지 입구 골프장 건설 반대 운동 현황 미리내 성지 입구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게 된 ...

미리내와 고성, 무엇이 문제인가?
2006년 1월호 (제 324호)
미리내와 고성, 무엇이 문제인가? 두개의 풍경, 익숙하거나 낯설거나 대체 사태가 얼마나 급박하기에 단식...

본당 호스피스의 설립과 운영은 이렇게
2006년 1월호 (제 324호)
본당 호스피스의 설립과 운영은 이렇게 화곡본동ㆍ화곡6동ㆍ신월1동 공동 사목 본당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

과테말라 교회
2006년 1월호 (제 324호)
흔히 중미를 가리켜 자본의 뒤뜰이란 표현을 씁니다. 자본의 주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아래에 자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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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좌담 2006년 1월호 (제 324호)

미리내와 고성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맹제영 외

미리내와 고성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미리내와 고성의 골프장 건설 논란을 보면서 드는 생각들
한순희 _ 이 사건을 계기로 자본주의의 논리와 환경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생명 존중에 대한 의식, 창조물에 대한 존중, 창조물에 대한 정의를 심각한 수준까지 훼손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골프장을 일컬어 녹색 사막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미래 세계에서는 물이 더욱 더 중요해지는데 골프장 농약으로 오염된 물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죽음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최악의 경우 암을 유발시킬 수 있는 살인 무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돈 버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한면희 _ 교회는 현대 산업 사회의 문명 아래서 그 혜택은 누리면서 기꺼이 동참해 왔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부담과 사회적 약자의 고통, 이를테면 환경적 고통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의 일로 충분히 껴안지 못했던 측면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제 미리내와 고성의 골프장 문제로 이것이 바로 우리 일이 되니까 교회가 지방 자치 단체와, 그리고 골프장 업체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교회는 이제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눈을 뜨려는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맹제영 _ 지금 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일종의 님비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님비를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님비는 환경이나 생명에 대한 인식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곧 환경 의식을 ‘우리 지역만은 안 된다.’에서 ‘너의 지역’까지, 나아가 지구 공동체까지 확장시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면, 님비라는 것은 환경 운동의 초기 동력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에서는 환경 인식을 촉발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면희 _ 예를 들어 부자들이 사는 지역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들어선다고 할 때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적 지위에 따른 도덕적 책임)에 따라 이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이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님비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 환경 위해 시설, 예를 들어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 쓰레기 소각로와 소각장 등은 누구에게나 인근에 있으면 자신은 물론 미래 세대의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설들은 어떤 곳에 있든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내 집 마당에는 안 된다는 것이, 현세대를 위해서든 미래 세대를 위해서든 그것이 더 이상 건설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골프장 건설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상의 국책 사업인 골프장 건설
맹제영 _ 골프장 문제를 좁게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나 미리내 성지의 문제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개발 정책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골프장 건설이란 것이 그런 거시적인 정책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현재 동북아 물류 기지의 관점에서 국가적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산과 광양을 동북아 물류 기점으로 해서 경의선, 경원선으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유럽에 이르겠다는 거대한 구상입니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효과 창출을 기대하고 있는데, 부산에서 유럽 노트르담 항까지 가는 데 40일 걸리는 물류비의 약 3분의 1이 절약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수도권 집중 현상에 따른 여타 지역의 낙후 현상, 영호남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현 정부의 국가 균형 개발 계획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기업 도시법이라든가 국토 개발 계획안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남해안 관광 벨트, 지역 특성화 개발, 관광 도시와 레저 도시 등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골프장을 통한 경기 부양책도 바로 그 일환입니다. 그러니까 중앙 정부의 장기적인 개발 계획 목표, 지방 자치 단체의 개발 사업 유치 노력, 기업들의 자본 등이 협력하는 총체적 상황에서 현재 여러 가지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국가 차원의 여러 환경 문제는 종국적으로 국가 경영에 대한 총체적인 조정이나 전환 없이는 어떤 지역적 차원의, 단일한 골프장 건설 반대 주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면희 _ 현 정부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현재 대한민국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국가의 핵심 권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권력이 있을 수 있지만, 가능하다면 이것조차 최소화하거나 분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역 분권화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법적 차원으로 들어가면 자칫 이것이 부동산 광풍을 비롯해서 신개발주의로 치달을 위험이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스스로를 동북아 물류 기지로 설정해 놓고 보니 지역 분권화가 기업 도시, 경제 특구, 수도권 규제 완화로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칫 전국을 개발 열풍에 휩싸이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정부가 환경이나 생태에 대한 바람직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기에 더욱 부정적입니다. 분명히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골프장 건설을 통해서 돌파하려는 생각이 일단의 개발주의자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골프장은 2005년 초 현재 전국적으로 196개가 운영 중에 있고, 향후 250개 정도가 더 건설되어서 약 450개에 육박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골프장이 가져오는 해악
맹제영 _ 제가 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몇 차례 다녀오면서 직접 체험한 것은 이 골프장 건설 문제 때문에 가장 먼저 농촌 공동체의 화해가 깨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지역 목표는 원래 친환경 농법, 곧 유기농법을 하는 것이었고 이는 고성 군수의 행정 계획 청사진으로 발표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골프장 건설 예정 부지인 수도원 옆 장박재와 관련해서 영현면과 대가면이 있는데, 특히 영현면에서는 유기농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성군이 세수와 고용 증대를 내세워 대가면 주민을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대가면 주민들은 골프장이 들어서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인근 지역의 동일한 골프장 운영과 비교해 볼 때 거짓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정작 더 문제는 영천강 유역에서 친환경 농법을 경작하는 영현면 주민들입니다. 골프장 부지인 장박재는 영천강의 수원지입니다. 영천강이 오염되면 유기농이 어렵기에 영현면 주민들은 골프장을 처음부터 반대했습니다. 결국 골프장 문제를 둘러싸고, 대가면과 영현면에서 함께 오랜 세월 오순도순 살아오던 주민들은 분열되고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장박재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독수리 서식지라는 것입니다. 겨울에 보통 140마리 정도가 날아온다고 합니다. 수도원에 있을 때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이 서식지를 보호하고자 지역의 시민 단체에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골프장 부지로 매각되면서 골프장 측에서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고 심지어 연기를 피우고, 농약을 치고 하면서 2004년 겨울에는 독수리들이 거의 날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고성군이 장박재에 설치했던 ‘독수리 서식지’라는 팻말 자체도 없어졌다는 것인데, 고성군청이 골프장 건설과 유치를 위해 스스로 없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독수리 서식지 가운데 한 곳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생태계 파괴의 대표적 예입니다.
또한, 요즘엔 친환경 골프장이라고, 농약을 치지 않고 골프장을 운영하겠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가장 알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가 골프장에서 치는 농약의 양을 알 수 없다는 것이고 이에 관한 통계 자료도 없습니다. 물론 골프장 내 잔디 잔류량 기준 등이 정해져 있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형 등의 처벌을 받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단속 효과가 거의 없고 실태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수년 동안 골프장에서 농약 뿌리는 일을 했다는 한 골프장 직원은 “단 하루도 농약을 치지 않고는 잔디 관리가 힘들고”, “골프장 잔디는 한마디로 농약 범벅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한면희 _ 골프장 건설을 위해서 주민을 분열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지형이 골프장을 건설하기에 적합한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건설 뒤에 운영하면서도 인위적 요소가 많이 개입해야 합니다. 대량의 비료와 농약 살포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맹제영 _ 경주 감포라는 곳이 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 최우수 어촌으로 불렸던 곳인데, 이곳에 18홀 골프장이 들어섰고 현재 운영 중입니다. 예전에는 주민 70%가 바다에 의지했을 정도로 모범 어촌이었는데 골프장이 들어선 지금 이 어촌은 완전히 황폐했습니다. 골프장 농약의 폐해가 얼마나 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환경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는 국가 정책 필요성
맹제영 _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매기는 ‘환경 지속성 지수(ESI)’라는 것이 있는데, 올해 우리나라가 세계 122위라고 합니다. 환경 지속성 지수라는 것은 한 국가가 환경 파괴를 유발하지 않고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능력을 지표화한 것으로 환경 오염 정도뿐 아니라 과학 기술·보건 상태·토론 능력 등 ‘삶의 질’을 종합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환경에 대한 의식이나 정책에서 최하위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거의 꼴찌입니다.
한순희 _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환경 영향 평가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철저하고 정확하고 책임 있는 평가를 하지도 않고, 주민 의견도 제대로 묻지 않고 있습니다.
맹제영 _ 수녀님께서 지적을 잘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개발 정책과 환경 정책이 함께 녹아 있지 않고, 각자 따로 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속 철도를 건설한다고 하면 먼저 개발 계획을 모두 수립한 뒤에 개발을 추진하다가 어떤 지역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 지역에 가서 환경 영향 평가라는 것을 실시하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현 정부에서는 향후 ‘사전 환경 영향 평가제’라는 것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500억 이상이 소요되는 국가 개발 사업은 전체적인 개발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환경 영향 평가를 하고 개발 계획을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발과 환경이 서로 맞물리는 사례로서 아주 바람직한 제도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환경 문제를 보면, 사안마다 정부의 주관 부처가 달라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새만금의 경우는 주관 부처가 농림부입니다. 천성산 문제는 담당이 건설교통부이고, 핵 폐기장은 행정자치부입니다. 이러한 여러 개발 사업들이 모두 환경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임에도 주관 부서가 다르기에, 처음부터 환경부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고,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 사회와 각 주관 부서 양자 간의 문제가 되어 버리는 실정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국가 정책 차원에서 개발과 환경이 따로 놀고 있는, 난맥상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한면희 _ 선진국에서는 환경 단체들이 환경 문제를 갖고 정부를 압박하자 정부 차원에서 환경 보호 정책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서 후진국 입장에서는 여전히 일정하게 경제 발전을 토대로 해서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국제 사회가 채택한 개념이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것인데, 1992년 ‘리우 선언’이 권고한 대로 우리나라에서도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기관으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출범하였습니다.
그런데 맹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주관 부처들의 사안으로 환경 사안이 갈라질 때 환경부의 입장에서는 사후 뒤처리에 초점이 있지 사전 해결을 위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사전 환경성을 도입하는 단계에서도 정부 부처 간의 갈등에서 환경부가 힘이 없습니다. 오히려 힘이 있는 개발 부처 중심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바로 이것을 중재해 주는 것이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인데,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대통령 자문 기관이기 때문에 제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행정적 구조적으로도 국제 사회 흐름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상태가 방치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맹제영 _ 현재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GDP)의 약 20% 정도를 건설 매출이 담당한다고 합니다. 잘 알다시피 개발 정책과 가장 맞물려 있는 사업이 바로 건설 유관 사업입니다. 건설 매출이 20%를 차지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가 엄청난 개발 붐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국가를 주도하는 개발론자들의 개발 논리와 자본의 논리, 이러한 것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개발 사업들이 계속해서 부풀려 제시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환경부의 예산 비율은 건교부의 1/12 수준에 불과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러한 몇 가지 자료를 보더라도 아직도 우리나라는 개발과 환경 사이에서 개발을 훨씬 더 중시하고 있습니다. 향후 개발과 환경, 그리고 분배의 세 측면에서 국가 전체적인 정책과 구조, 그리고 재정 등이 균형 있게 재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안 되면 계속해서 환경은 개발에 밀리게 될 것이고 도처에서 환경 문제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한면희 _ 현재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원칙을 가다듬으려는 국제 환경학계의 노력이 있습니다. 여기서 거론되는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가 자연의 혜택만을 누리는 집단과, 그들이 자연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적 비용을 생활 속에서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불평등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도시 사람들이 전력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데 비해 이것을 뒷받침하는 원자력 발전소나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는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에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전북 부안이 안 되니까 이제 엄청난 돈을 투입하면서 경주에 이것을 건설하려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돈으로 표를 산 경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카트리나 허리케인에 의한 피해는 분명히 자연재해지만, 인간이 이 환경 재해를 증폭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난한 저소득층과 흑인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원칙 가운데 하나가 형평성의 원칙입니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혜택과 부담이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정책 속에 구현되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주민들의 의식이 중요한데, 이것은 현재 돈에 의해 왜곡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주민들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듣고, 전문가들의 검증 아래서 모든 일이 공정하게 판단되어야 합니다. 신부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는 정책의 통합성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국민들의 경제적인 삶의 질이 유지되거나 향상되면서 경제가 순환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경제를 어떻게 계획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됩니다. 경제를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따라 환경 파괴적이 될 수도 있고, 환경 친화적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굴뚝 산업이 자연 친화적인 산업으로 구조 조정되려면 국가가 이것을 유인해야 하는데 현재 이것이 부족합니다. 그런 선상에서 맹 신부님이 누차 지적하신 건설을 이용한 경기 부양, 골프장 건설 등은 어이없게도 좁은 국토를 황폐화시키는 정책입니다. 따라서 이런 산업 구조의 개편이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지면서 안정적인 삶의 질도 이루고 환경도 지키는 정책 대안이 필요합니다.
자연을 이용하면서도 효율화된 이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골프장은 효율적인 이용과 아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소수의 부자들이 그 많은 땅을 그렇게 독점한다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자연을 이용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예를 들어서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와 같이 자연공원화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향후 교회의 환경 운동 방향은?
맹제영 _ 지역 환경 운동 차원에서 크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우리 신앙인들이 힘을 모아 정치적으로는 국가의 정책을 바꾸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며, 이는 환경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표를 주지 않는 방법 등으로 전개가 가능합니다. 또 하나는, 환경 오염을 유발시키는 기업 제품에 대해 불매 운동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골프장의 경우 이러한 운동 방식이 굉장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선거 때 힘을 모아야 하는데 많은 신부들과 지도층 신자들이 골프를 좋아하니까 지역 주민들이 골프장 건설에서 분열되듯이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골프장 가지 않기 운동’을 전개해야 하는데 이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의 사회복음화 환경·생명 분야에서 ‘향후 우리나라에서의 골프장 건설에 반대한다.’라는 결의안을 작성하여 이를 논의한 적이 있지만 최종 공식 결의안에서는 결국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골프장과 관련한 서로 다른 견해와 주장이 있기 때문에 이를 환경 운동 차원으로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 미리내와 고성 지역 골프장 문제로 ‘천주교 환경 연대’ 등의 단체에서 그 대책을 논의할 때, 교회 내 많은 환경 활동가들이 ‘성직자 골프장 안 가기 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시했는데, 이러한 요구를 교회는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주목했으면 합니다.
한면희 _ 우리 스스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면 왜 성지 근처, 수도원 근처에는 안 되는가 하는 질문에 근본적으로 답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미리내와 고성 사건이 교회 차원에서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었다고 한다면 대응 방안을 검토해야 하는데, 현 법체계가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합법적인 선 안에서도 여러 가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사회 여론을 환기시키는 방법도 필요합니다. 간디는 영국의 모든 법을 다 지키면서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폭력 정신에 기반한 시민 불복종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차원에서는 역시 단기적인 대응 방식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방향에서 환경과 관련해서 갈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교육과 실천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의식 구조를 변화시키는, 나아가 잘못된 사회 제도를 바꾸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한순희 _ 일반 평신도들의 차원에서 위로 올라가는 운동도 있겠지만, 각 주교님들 선에서, 그리고 주교회의 선상에서 ‘하느님의 창조물에 대한 우리의 역할’과 관련해서 사목 교서들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수도원들도 자기들 문제를 거시적 차원에서 확대하는 비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초록 교회를 만들기 위한 비전과 실천이 구체적인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 주교님 차원에서, 그리고 주교회의 차원에서 환경과 관련한 공식적인 사목 문서가 발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1990년 1월 세계 평화의 날 담화로 「생태적 위기: 공동의 책임-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를 발표하여 초록 교회를 향해 각국 주교회의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사항들을 지적하였습니다. 교황님은 인간의 정의만이 아니라 생태계의 정의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외에 각국 주교회의에서 발표한 환경 문서들로는 미국 주교회의 사목 교서 「땅을 새롭게 하며」(1991년), 오스트레일리아 주교회의 산하 ‘정의, 발전, 평화 촉진을 위한 위원회’ 「자연을 향한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의 의무」(1987년), 도미니카 공화국 주교회의 「자연을 향한 인간의 관계에 관한 사목 교서」(1987년), 과테말라 주교회의 「땅의 울부짖음」(1988년), 북이탈리아 주교회의 「생태학: 공동체에 보내는 롬바르디아 지역 주교들의 교서」(1988년), 필리핀 주교회의 「우리들의 아름다운 땅에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1988년) 등이 있습니다.

창조 질서 보전의 패러다임으로
맹제영 _ 한 수녀님께서 지금 거론하신 교황님의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는 교황님의 기존 생각과 교회 내의 환경에 대한 의식을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담화를 계기로 해서 사회 사목의 기본 틀은 ‘정의 평화’(JP: Justice-Peace) 패러다임에서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JPIC: Justice, Peace, Integrity of Creation)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고 봅니다. 이 담화 발표 이후 리우환경회의와 유엔식량회의에 소다노 추기경이 참석하고, 1992년에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 세계 회의’가 개최되면서 가톨릭 교회의 환경 의식이 많이 변화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현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에 환경소위원회가 있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패러다임 변화가 반영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 이전의 ‘정의 평화’ 패러다임에서는 정의를 구현함으로써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정의’의 문제는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 질서’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창조 질서 보전’ 패러다임입니다. 이제 정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 질서’를 복원해야만, 평화라는 하느님의 선물이 인류 공동체에 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현재의 정의평화위원회를 ‘정의평화 창조질서 보전위원회’로 바꾸든지 아니면 ‘정의평화위원회’와 별도로 ‘창조질서 보전위원회’를 구성하든지 해서 환경 문제의 비중 내지 관심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교회의 차원에서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 패러다임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 문제도 이 위원회 안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 북미와 유럽 사상계의 핵심에는 창조 질서 보전에 대한 논의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결국 ‘평화’라는 새는 ‘정의’라는 날개와 ‘창조 질서 보전’이라는 양 날개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전 신학의 핵심 과제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현재 이런 관점이 상대적으로 약한 실정입니다.
한면희 _ 저는 말씀하신 환경소위원회의 위원인데, 현재 교회가 이 요동치는 환경 사안에 대해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저럴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교회가 너무 환경 문제를 좁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생명 사안과 관련해서도 인간 복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만 명료하게 냈지, 생명의 관계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맹제영 _ 교수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생명의 문제에서 현대인들은 근본적으로 늙지 않고, 고통받지 않고, 영원히 살려는 욕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잡지들에서도 웰빙 문제를 많이 다루지만, 잘 사는 것(well-living)에 한정하지 말고 잘 죽는 것(well-dying)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고통과 죽음, 노인 문제 등에 대한 더욱 거시적이고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삶을 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잘 죽는 것, 곧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웰빙의 삶이라는 것을 가르칠 때 좀 더 근본적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한면희 _ 교회가 환경 문제에 직면해서 아주 근원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곧 영성 지도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이 생명 친화적인 것으로 가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 문헌도 전진적인 변화를 하였습니다. 이미 교황 바오로 6세의 교서 『팔십주년』(1971년)에는 “불의한 환경 때문에 희생당하는 사람들 중에는 ?불행히도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종족, 국적, 피부색, 문화, 성별, 종교 등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실제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모든 사람도 포함된다.”(16항)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2차 총회 문헌인 『세계 정의』(1971년)는 “그 대량 소비의 결과로 끔찍한 폐기물이 대기와 해양을 더럽히고 있으므로 지상 생명 유지에 필수 요소인 공기와 물이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파괴되고 있다. 이와 같은 오염 현상을 그대로 증대되게 방치한다면 공해는 전 인류에 미치게 될 것이다.”(11항)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좀 더 구체화되면서 우리의 가치관이 전환되는 쪽으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자연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기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구축하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지금 농산물이 완전 개방될 때 농민들의 삶의 질이 유지되면서 안정적으로도 시민들이 쌀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교회가 책임 있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도 필요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는 세상에서 교회가 빛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순희 _ 그리스도인은 성경과 자연 안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파괴적인 과학 기술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연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창조의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맹제영 _ 정보 통신과 생명 공학의 최첨단 기술은 오늘날 석 달을 주기로 해서 변화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자연 과학을 이용한 도구 이성들이 지구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과거 1970년대, 1980년대의 정의 평화 패러다임 시절에 우리 교회는 한국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고 시대의 빛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봅니다. 이제는 교회가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 패러다임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핵 산업이나 유전자 조작은 오늘날의 바벨탑입니다. 교회는 인간 스스로 바벨탑을 쌓는 것에 맞서야 할 것이고,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의 오만은 결국 인류 공동체를 공멸로 이끈다는 바벨탑의 교훈을 예언자적 가르침으로 이 시대에 제시해야 합니다.
현재는 그야말로 새로운 사태(res novae)이고 그에 따른 새로운 교회적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오늘날 자본의 논리만이 횡행하는 시대에, 물신 숭배에 빠져 있는 현대 세상에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 공동체나 대안적 실천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시대는 교회가 대안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곧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교회가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또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을 예언자적 상상력을 통해 제시하고 아울러 공동체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