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공의회와 오늘』
2006년 3월호 (제 326호)
상대가 누구든 형제적 사랑으로 인내롭게 들어 주고 품어 주거나 또 내 생각을 진솔하게 전하지 못하고 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외
2006년 3월호 (제 326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지은이 | 이영헌 출판사 | 바오로딸 발행일 | 2004년 4월 15일 면 수 | 52...

사순 제1주일~제4주일
2006년 3월호 (제 326호)
3월 5일 ● 사순 제1주일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그 뒤에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006년 3월호 (제 326호)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약 전 세계 그리스도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

신학 논쟁의 문제인가?
2006년 3월호 (제 326호)
원문 | Christoph B쉞tigheimer, “Eucharistie als Opfer - Eine kontroverstheologische Frage?”, Stimm...

교육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자 노력하는 중국 교회
2006년 3월호 (제 326호)
너무 큰 중국 손님들이 북경에 오게 되면 주로 만리장성과 고궁 정도는 꼭 보고 싶어 합니다. 만리장성과 ...

대구대교구 3대리구 4지역 복음 나누기 금요 모임
2006년 3월호 (제 326호)
사제 소공동체 - 복음 나누기 금요 모임 대구대교구 3대리구 4지역의 ‘복음 나누기 금요 모임’은 8개 본...

대전교구 문창동 본당 무료 급식소
2006년 3월호 (제 326호)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마태 25,35). “가장 작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

시골 본당 신부의 단상
2006년 3월호 (제 326호)
신학교에서 다시 본당 신부로 2004년 7월에 다시 교구로 돌아왔다. 지난 5년 반 동안 대구에서 학생들을 가...

빈곤, 발전, 청빈 그리고 선교 본당
2006년 3월호 (제 326호)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살고 가난한 사람 가운데 활동하신 것이 분명하여도, 현재 우리 한국 천주교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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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수첩 2006년 3월호 (제 326호)

시골 본당 신부의 단상

정일 (안동교구 신부)

신학교에서 다시 본당 신부로
2004년 7월에 다시 교구로 돌아왔다. 지난 5년 반 동안 대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았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해서 살았기 때문일까, 세월이 너무도 빠르게 지난 느낌이다. 본당 신부에서 신학교로 발령을 받았을 때의 무게와 다시 본당 신부로 돌아왔을 때의 무게는 다르게 느껴진다.
그때는 정말 걱정이 많았다. 40대 중반이 지나 새롭게 연구하고 가르치고 지도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발령을 받기 전 소식을 접하고 다시 신학 서적을 꺼내 전반적인 신학의 흐름을 파악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나름대로 노심초사하며 걱정을 달래기는 하였지만, 학기가 다가올수록 어깨는 무거워만 갔다. 그러나 개학 첫날 첫 미사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150여 명의 피 끓는 주님의 군사들이 검은 수단을 걸치고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고 있지 않은가! 세계의 시간이 몇 시인데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주님을 따르려 대령하다니 놀랍기만 하였다.
지금 사목하고 있는 상주 본당은 보좌 신부로 사제의 길을 처음으로 시작한 곳이다. 새신랑처럼 교우들과 함께 살았던 23년 전의 추억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20여 년 동안 세상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한 마음이 자리했고, 사제로서 인격적으로나 영성적으로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주일 미사를 드리며 신자들에게 내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였다. 좀 더 성숙하고 발전해서 돌아왔어야 하는데 초라한 모습으로 와서 미안하다고 고백하였다. 그 다음 어느 주일 미사 보편 지향 기도 때에 어느 신자가 겸손한 마음으로 오신 본당 신부가 고맙다며 본당 신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장기 사목 계획과 단기 사목 계획
본당에 후반기에 부임했으니 따로 사목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전임 본당 신부가 신자들과 더불어 세워 놓은 사목 계획을 잘 실천하면 될 일이었다. 10년간의 장기 계획과 3년간의 단기 계획, 그리고 연간 계획을 꼼꼼히 세워 놓았다. 신학자 카를 라너가 말하기를, 사목은 실존적 교회론, 곧 ‘오늘날의 교회의 자기실현’이라 했던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교회 공동체를 육성하고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실천하라는 뜻일 게다.
안동교구의 사명 선언문은 이렇다.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이 선언문에 따라 10년 동안 이 지역에서 표지로 드러날 만큼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낸다는 목표로, 3년 동안 이 지역에서 하느님 나라를 일구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록 노력하며, 1년 동안 이 지역에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희망을 일구어 낸다는 장·단기 계획이었다. 이를 위하여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농민들과 함께하며, 작은 생명 운동을 실천하고 작은 일에 감사하고 서로 칭찬하며 나누고 섬기는 공동체를 가꾼다는 계획이었다. 사목 회의와 반장 모임을 통하여 계획하고 실천하고 평가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다.
3년째를 맞는 지금 교구, 사명 선언문과 ‘지역 선교와 복음화’라는 교구 사목 지침에 따르기는 하였으나,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는 취지의 사목 계획을 세우고 말았다. 여느 본당의 단기 사목 계획과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다. 용두사미로 싱겁게 끝난 꼴이지만 그런 계획을 세워 봤다는 데에 만족해야만 할 것인가? 거대한 세계화의 바람에 위축되고 왜소해져 가는 농촌의 실상이 드러난 것일까? 하느님 나라는 은총인 동시에 과업이라는데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복음화는 하느님 나라 운동이라 종말론적인 완성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걸까?

상주 참사
오곡이 영글고 감 익어 가는 소리가 요란하던 작년 10월 3일, 자전거의 고장 상주에 어처구니없는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다. 11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여 명이 다쳤으며, 지금도 몇 명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축제 기분에 들떠 있던 평화롭던 서민의 고장 상주는 삽시간에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이 놀랍고 안타까운 소식은 전국에 속보로 전해졌으며, 국민들은 혀를 찼다. 신자들이 다쳤다는 소식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혁신 도시 유치 경쟁이 치열하던 때라, 지역의 몇몇 인사들이 되도록 빨리 사태 수습을 하려고 나섰다. 시골의 순박한 유가족들과 부상자들은 당국을 믿고 일찍 장례를 치르고 사태의 수습에 협조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정치인들과 언론 그리고 당국은 호들갑을 떨어 놓고는 누구 하나 공정하게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혁신 도시 유치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로 빈소의 빠른 철거를 요구하며 유가족들을 궁지로 몰았다. 시민 단체들은 대책 위원회를 꾸리고 나에게 공동 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다. 시골의 중소 도시에서 당국에 맞서서 일해야 하는 자리는 명예로운 자리가 아니기 십상이다. 서로가 빤히 아는 사이라 잘못하면 욕먹기 십상이고, 신자들 사이에서 깊이 개입하지 말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전임 신부 가운데서 지역의 문제에 개입하다가 다쳤다는 경고의 소리도 잊지 않고 해 주었다. 그러나 교회의 사제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일까?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본분을 뿌리쳐야 하는 것일까? 사태의 수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기록되어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짐으로써 유가족들과 부상자들의 슬픔과 아픔을 달래고 시민들의 자존심도 살리는 아름다운 상주의 발전을 바라 마지않는다.

수녀님의 철수
한국 사회의 화두는 양극화다. 신자유주의 경제, 이른바 시장의 세계화 바람 탓일까, 농촌과 시골 경제의 앞날이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교회 내의 양극화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재작년을 마무리하면서 본당 살림살이를 결산하니 본당의 재정이 일천만 원가량 비었다. 첫 부임 뒤 멋모르고 마구 써서 그런가 싶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지출 결의서를 꼼꼼히 챙기고 아껴 쓰려고 허리띠를 졸랐다. 그러나 한 해를 다 살고 결산하니 역시 오백여 만 원이나 비었다. 신자들을 재촉하여 더 많은 교무금과 주일 헌금을 내라고 요구하기엔 무리였다. 이미 성당 내부 수리를 위한 헌금으로 세대당 3개월여 분을 모금하였고, 추수 감사 헌금도 모금하였다. 시내에서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제4 성당 모금을 2년여에 걸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란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는 법. 수녀님 한 분을 철수시키는 길밖에 없다고 작심하고 몇몇 교우들과 상의를 하였다. 경제적인 문제라 어느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나 본당이 이 일로 시끄러워지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들뿐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수녀님 한 분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수녀님을 모셔 오는 분위기와 철수시키는 분위기는 다르다. 신자들도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 없다. 본당 신부가 시름에 잠긴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눈빛들이 역력하다. 다행히 ‘나눔의 집’에서 일하시는 수녀님이 계시기에 두 분의 수녀님이 생활하시기에 별 무리가 없다. 21세기 교회는 평신도들의 시대라는 말이 있듯이, 평신도들이 자기들의 몫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 기대하는 바가 크다.
정 일 | 안동교구 신부. 1982년에 사제품을 받았으며, 서문동 본당 보좌, 안계 본당 주임, 가톨릭상지대학 교수를 지냈다. 이후 동부동, 모전동 본당 주임을 거쳐, 영국 런던 대학에서 사목 신학을 전공하였으며, 이후 울진 본당 주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계림동 본당 주임으로 있다. 『산다는 것이란 되어 간다는 것-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읽기』 를 옮겨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