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권력과 영광』
2006년 4월호 (제 327호)
‘내가 과연 사제 생활을 충실히 그리고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일어나고 자신이 없어질 ...

『새 명상의 씨』 외
2006년 4월호 (제 327호)
『새 명상의 씨』 지은이 | 토머스 머튼 옮긴이 | 오지영 출판사 | 가톨릭출판사 발행일 | 1996년 3월 ...

사순 제5주일~부활 제3주일
2006년 4월호 (제 327호)
사람의 아들은 들어 올려져야 한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

“공의회의 밭고랑을 더욱 깊이 파라!”
2006년 4월호 (제 327호)
저는 처음으로 본당 신부를 시작하면서 혼자서 피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홀로 피정을 하게 된 동기는 ...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의 위기
2006년 4월호 (제 327호)
원문 | Adolfo Nicol뇋, ?hristianity in Crisis: Asia. Which Asia? Which Christianity? Which Crisis??...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으로 쇄신을 준비하는 베트남 교회
2006년 4월호 (제 327호)
베트남 교회의 모습과 역사 베트남 호치민 시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에 동나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포콜라레 사제 모임
2006년 4월호 (제 327호)
사랑으로 일치를 꿈꾸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어느 시인은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

서울대교구 신당동 본당 ‘디딤돌’ 장애아부 주일학교
2006년 4월호 (제 327호)
2006년 3월 4일 토요일 오후 4시 서울대교구 신당동 본당(주임 박준영 몬시뇰, 부주임 김영춘 신부) 초등부...

내 삶의 중심에 늘 하느님과 신자들이 있기를!
2006년 4월호 (제 327호)
1984년에 사제품을 받았으니 꽤 되었다면 되었다. 그런데 지켜야 할 초심은 잃어버리고 여전히 초보의 수준...

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지닌 은총의 선물이 열매 맺기를 바라며
2006년 4월호 (제 327호)
밥상 내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69년도였다. 그 당시 나는 사제가 아니었고 평화 봉사단 소속으로 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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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회는 지금 2006년 4월호 (제 327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으로 쇄신을 준비하는 베트남 교회

이창신 (부산교구 신부)

베트남 교회의 모습과 역사
베트남 호치민 시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에 동나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은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나뉠 당시 북쪽의 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월남하여 정착한 곳입니다. 이곳엔 도로를 따라 수많은 성당이 수백 미터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데 주일 미사 때에는 모든 성당에 자리가 부족해 성당 밖에서 미사 참례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동나이 지역뿐 아니라 베트남의 여느 성당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고, 이는 활기 넘치는 베트남 교회의 한 모습입니다.
베트남에서 천주교는 16세기부터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고, 우리 교회와 마찬가지로 여러 왕조의 박해 속에서 뿌리를 내려 갔습니다. 박해의 이유는, 천주교를 제사와 같은 전통 의식을 저버리고 왕조에 대한 충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17세기 초부터 19세기까지 약 13만 명의 순교자가 죽음으로 신앙을 증언하였습니다. 그 뒤 1867년부터 1954년까지는 프랑스 식민지 지배 아래 천주교는 오히려 종교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과거 박해에 대한 기억 때문에 외부 세력으로부터 신앙을 지키고자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형성하며 살았습니다. 프랑스의 식민 시기가 끝난 뒤에도 남베트남은 정권의 비호 아래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였고, 각종 교회 사업과 사회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한 예로 1953년엔 3개에 불과하던 교회 산하 중고등학교가 1963년에는 145개로 늘어났으며, 1000여 개의 초등학교를 증설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베트남 교회는 남베트남에서의 가톨릭의 성장과 발전을 과거 수백 년 동안 그들이 겪었던 박해와 역경의 보상이라고 생각하였고,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학교와 기관, 은행, 국영 방송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고 공산 국가가 된 뒤로 베트남 교회는 베트남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서 자유로운 종교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의 재산은 압수되었고, 헌법으로는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보장했음에도,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는 천주교 고유의 운영 체계를 배제하는 정책을 고수하면서 사제 서품과 교회 여러 직책의 임명에 여러 가지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교회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어 가고 있는 분위기에서 베트남 천주교회는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교회의 당면 문제들
베트남 교회에는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 117위의 순교 성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팜민만(Pham Minh Man) 현 호치민 대교구장이 베트남에서는 다섯 번째로 추기경으로 서임되었습니다. 26개의 교구에 3,126명의 사제가 있으며, 6개의 대신학교에 1,249명의 신학생이 있고, 14,413명의 수도자가 있습니다. 또한 8,2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570만 명이 신자(전체 인구의 7.4%)입니다.
현재 베트남 교회가 당면한 문제가 여러 가지 있는데, 아무래도 정부의 통제를 극복하는 것이 첫째일 것입니다. 공산 정권을 지켜 가고자 하는 이 나라의 통치자들은 천주교를 가장 큰 견제 세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제재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는 베트남 교회의 성장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신자 수에 비해 정부가 허락하는 사제 수품자의 수가 부족해서 베트남 사제 연령층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은퇴 사제의 수도 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작년에 처음으로 하노이 신학교에서 매년 신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지만 그전까지는 2년에 한 번 정부가 인정한 신학생을 받아들이게 했고, 새 신학교 설립 허가를 지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소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사제의 수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베트남 교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다른 문제는 신자들의 의식 문제입니다. 정부의 제약도 원인이겠지만 베트남 교회는 개인 신심 위주의 신앙이 많은 편입니다. 나만 열심히 성당 나가서 죽은 뒤에 천당에 가자는 식입니다. 종교의 자유는 있되 선교의 자유가 없다는 말을 하는데, 베트남 신자들은 선교가 제약을 받다 보니 자연히 선교에 소극적입니다. 교회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 세상과 단절된 모습이 보입니다. 공부하는 신앙,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쉽습니다. 교회가 참신한 삶을 보여 주지 못하니 성장률도 저조합니다. 베트남 교회는 1949년 1%였던 한국의 신자율이 현재 8.8%로 성장한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1960년 7.17%였던 신자율이 현재 7.4%에 그치는 등 인구 성장률에 비해 저조한 성장이 교회 쇄신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늘고 있는 새 영세자들도 냉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신자인 배우자와 혼인하려는 목적으로 세례를 받는 경우도 많은 편입니다.
이러다 보니 베트남 교회는 사회봉사 활동이나 자선 활동이 활발하지 못합니다. 베트남 교회나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서 논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1975년 전후’입니다. 전쟁 뒤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말합니다. 1975년 이전에는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도 많았고, 봉사자나 전문가가 많았지만 지금은 학교도 적고 전문가는 더 부족합니다. 현재 수도자가 운영하는 유치원이 698개가 있고, 초등학교가 94개, 문화 센터가 9개가 있는데, 수도자가 운영하는 유치원을 빼고 학교를 운영할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입니다. 베트남에는 수많은 여성이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 장애인, 26여만 명의 에이즈 환자, 16여만 명의 마약 중독자가 있습니다. 정부의 능력으로는 이들을 돌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외국의 도움을 받아 이들을 위한 여러 시설을 확충하고 운영하고 있지만 신자들은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합니다.

쇄신을 준비하는 베트남 교회
베트남 교회가 이러한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제시하는 해법은 교육과 공의회 정신으로 새롭게 쇄신하는 것입니다. 1965년 이후 남베트남에는 전쟁 중이지만 그리고 다른 나라에 비해 늦기는 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75년 전쟁이 종식되면서 공의회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이 새로운 바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공의회 문헌을 대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공의회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일반 신자들은 더욱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일반 신자들은 옛날처럼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서 공부가 부족하고, 자신의 신앙을 사회 안에서 실제적으로 살아 내지 못했습니다. 사회의 변화만큼 교회가 발전하지 못하니 교회를 떠난 이들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베트남 교회는 공의회 문헌을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교회 쇄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와 수도회에서 공의회 문헌을 공부하고, 사제들도 공의회 문헌을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교황청의 여러 문헌들은 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계시 헌장과 사목 헌장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공의회 문헌을 제대로 번역할 것과 이를 체계적으로 교육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젊고 활기차고 잠재력 넘치는 베트남 교회
올해로 제가 베트남에 온 지 5년째입니다. 베트남에 오면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물결에 모두들 놀랍니다. 그리고 성당을 가득 메운 신자들의 모습을 보고 또 놀랍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일찍 일과가 시작되는 베트남은 새벽 4시 반이면 아침 미사가 시작되는데, 많은 신자들이 이 미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나라엔 전쟁 뒤에 출생한 젊은 세대가 많다 보니 교회 안에서도 젊은이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 교회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교회입니다. 사제성소와 수도 성소자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의 여러 수도회에서 이 나라 성소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베트남 교회의 힘은 베트남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전쟁 직후 자유를 찾아 외국으로 나간 이들은 그들 나름의 사회를 형성하고, 지금은 고국의 주요한 경제 협력자가 되고 있습니다. 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신자들도 고국의 교회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사제품을 받고 활동하는 베트남 사제의 수가 700여 명이라고 합니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교회에 대한 감시와 제재는 여전합니다. 베트남 신부님들은 정부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발언을 아끼십니다. 그러나 베트남 교회는 정부의 제재뿐 아니라 교회 안의 문제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처럼 교회도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세상을 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젊고 활기차고 잠재력 넘치는 베트남 교회가 교육과 성서 공부와 공의회 문헌의 연구 등으로 앞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을 희망합니다.
외적인 조건이 열악한 것은 하느님 사업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닙니다. 교회가 참된 교회의 모습을 지켜 가는 그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강생 신비를 베트남 교회는 새롭게 묵상하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순수한 교우들의 신앙과 헌신적인 사목자들의 희생, 주님의 부르심에 희망을 안고 사는 베트남 교회는 분명 새로운 모습으로 이 시대의 소금과 빛이 될 것입니다.

이창신 | 부산교구 신부. 2000년 사제품을 받았고, 온천 본당 보좌 신부를 지냈으며, 현재 베트남 호치민에서 교포 사목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