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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영광』
2006년 4월호 (제 327호)
‘내가 과연 사제 생활을 충실히 그리고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일어나고 자신이 없어질 ...

『새 명상의 씨』 외
2006년 4월호 (제 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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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부활 제3주일
2006년 4월호 (제 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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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의 밭고랑을 더욱 깊이 파라!”
2006년 4월호 (제 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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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의 위기
2006년 4월호 (제 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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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으로 쇄신을 준비하는 베트남 교회
2006년 4월호 (제 327호)
베트남 교회의 모습과 역사 베트남 호치민 시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에 동나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포콜라레 사제 모임
2006년 4월호 (제 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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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신당동 본당 ‘디딤돌’ 장애아부 주일학교
2006년 4월호 (제 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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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호 (제 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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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지닌 은총의 선물이 열매 맺기를 바라며
2006년 4월호 (제 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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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한 권 2006년 4월호 (제 327호)

『권력과 영광』

이성길 (안동교구 신부)


‘내가 과연 사제 생활을 충실히 그리고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일어나고 자신이 없어질 때, 위스키 신부를 생각하며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권력과 영광』
지은이 | 그레이엄 그린
옮긴이 | 황찬호
출판사 | 을유문화사
발행일 | 1998년 11월 10일
면 수 | 296면
정 가 | 4,500원


구교우 집안에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았으니 본의 아니게 신자가 된 셈입니다. 비록 내 원의로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은총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또한 멍에이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결코 벗어 버릴 수 없는 멍에였습니다.
“내가 탯줄에서 떨어지자 맺어져, 나의 삶의 바탕이 되고, 길이 되고, 때로는 멀리하고 싶고, 귀찮게 여겨지고, 때로는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생판 낯설어 보이는 당신”이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어느 시인의 경우와 같이 한순간도 하느님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신앙은 그래서 은총이면서 멍에였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엔 신앙이 멍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은총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멍에이기는 하지만 편한 멍에요 가벼운 짐임을 깨닫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 바로 그레이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이었습니다.
말을 배우기 전부터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기도하는 것을 배웠지만 정작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운 것은 성당에서였습니다. 철이 들면서 성당에서 배우게 된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에 대한 기대보다는 벌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천사의 손에 매달려 천국으로 오르다 천사의 손을 놓쳐 사정없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꿈을 꾼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놀라 깨어나 꿈이라는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지옥 벌을 면할 수 있는데 그게 도무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주변 어른들로부터 착하다는 말과 함께 신부가 되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들었지만 정작 나 자신을 살펴보면 도무지 착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상본에 그려진, 그리고 성인전에 나타난 성인 성녀들은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고 『요리강령』의 지옥은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그때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께서 책을 좋아하셔서 책장에는 아버지의 책들이 늘 꽂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없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자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만져 보다가 조금은 읽기 쉬워 보이는 소설을 골라 읽었는데, 그것이 G. 그린의 『권력과 영광』이었습니다. 길이도 길지 않고 줄거리도 간단해서 많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물론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줄거리는 대충 이런 것으로 기억합니다.
멕시코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나 신부들은 대부분 안전한 주(州)로 피신하였습니다. 미처 피신하지 못한 신부들 몇은 총살되었고, 처형을 면하려면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와 관계를 가져 사생아를 낳고 위스키 신부라는 별명까지 붙은 한 신부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남아서 결혼을 거부하며 숨어 지냅니다. 그는 나약하고 비굴하였습니다. 순교를 할 만큼 용감하지도 않고 결혼을 해서 사제직을 포기할 자신도 없기 때문에 피해 다닐 뿐이었습니다. 경찰은 마지막 남은 신부인 그에게 현상금을 걸고, 그를 밀고하지 않는다고 마을 주민을 인질로 잡아 처형합니다. 결국 그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로 결심하고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국경선을 넘습니다. 그러나 현상금을 노리고 그를 잡으러 따라다니는 혼혈아로부터 자신이 도망쳐 온 곳에서 살인자로 쫓기던 미국인이 죽어 가며 신부를 찾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을 체포하기 위한 간계임을 알면서도 미국인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체포되어 처형됩니다.
위스키 신부는 성인전에 등장하는 성인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죽음을 택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멋졌습니다. 물론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를 이끈 힘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반드시 성인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하느님을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소에 응답하는 데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소신학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다시 그 책을 읽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온전히 착하거나 온전히 악한 사람은 없다는 것, 인간의 잘못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더욱 크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위스키 신부와 같이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서도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 아마 이런 것들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때 자주 읽던 『준주성범』이 빛을 향한 여정을 가르쳐 주었다면, 『권력과 영광』은 음지에도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이 미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대신학교(대학교)에 입학하여 그린의 다른 소설들과 여러 가톨릭 작가들의 작품도 읽게 되었는데, 이것들 역시 대부분 아버지의 책장에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읽은 『권력과 영광』이 오래 기억에 남고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성소에 회의가 들 때, 그러면서도 걷고 있는 길을 단호하게 포기하지 못할 때 하느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위스키 신부같이 하느님께서 나를 꼭 붙들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가 과연 사제 생활을 충실히 그리고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일어나고 자신이 없어질 때, 위스키 신부를 생각하며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권력과 영광』을 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그 줄거리만큼은 늘 머리에 남아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어서 무슨 일을 하든 힘겹게 하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하고 중요하긴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별것 아니며 완전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잊지 않으려고, 또 불완전한 것을 사랑하려고 애썼습니다.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완벽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위스키 신부처럼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완전한 인간은 세상에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지만 집에는 여전히 아버지께서 읽으시던 『권력과 영광』을 비롯한 그린의 책들과 그 밖에 모리아크, 베르나노스 등의 책들이 그대로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이젠 누렇게 바래고 글씨가 작아 읽기가 힘들겠지만 아버지의 체취가, 그리고 어린 시절 내 손때가 묻어 있는 그 책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이성길 | 안동교구 신부. 1980년에 사제품을 받았으며, 교구 사목국장을 지냈다. 문경 본당과 옥산 본당, 남성동 본당 주임을 거쳐 현재 영주 휴천동 본당 주임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