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피에르 신부의 유언』
2006년 6월호 (제 329호)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이유와 방향을 아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알고 생각하는 ...

『사람이여, 당신은 - 생명 공학과 가톨릭 윤리』 외
2006년 6월호 (제 329호)
『사람이여, 당신은 - 생명 공학과 가톨릭 윤리』 지은이 | 이용훈 출판사 | 가톨릭출판사 발행일 | 2...

성령 강림 대축일~연중 제12주일
2006년 6월호 (제 329호)
6월 4일 ●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해설
2006년 6월호 (제 329호)
현대인은 통신 및 교통의 발달에 힘입어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며 더불어 살게 되었다. ...

이슬람교, 역사상의 근본적인 변화와 현대의 도전
2006년 6월호 (제 329호)
서론 이제는 유다인이 아닌 무슬림에 대한 의혹이 널리 도사리고 있다. 이슬람교의 선동 때문에 무슬림은 ...

일본 교회의 새로운 사목적 시도
2006년 6월호 (제 329호)
- 성소 부족과 고령화, 외국인 신자의 증가에 초점을 두고 들어가는 말 일본 가톨릭 교회는 1549년 ...

수원교구 성사모
2006년 6월호 (제 329호)
… 성령의 능력으로 저희의 얼을 새롭게 하시어 성서를 가까이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이웃을 더욱 잘 알게 ...

마산교구 창원 여성의 집 ‘무지개 빌라’
2006년 6월호 (제 329호)
2005년 말 현재 전체 가출자의 26.8%인 16,894명이 청소년인 것으로 드러났는데(‘청소년 통계’, 통계청),...

좀 더 열린 교회가 되었으면…
2006년 6월호 (제 329호)
『사목』 잡지 독자 여러분께 따뜻한 인사를 보내 드립니다. 본인에게는 『사목』과 닮은 점이 한 가지가 ...

본당 연계 가정 간호
2006년 6월호 (제 329호)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 사회라고 하지만, 고령 인구의 증가와 각종 사고와 재해, 환경오염 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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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의 초상 2006년 6월호 (제 329호)

좀 더 열린 교회가 되었으면…

소선도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 신부)

『사목』 잡지 독자 여러분께 따뜻한 인사를 보내 드립니다. 본인에게는 『사목』과 닮은 점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이 잡지가 창간된 1967년에 한국에 왔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이 나라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문화가 저를 매혹시켰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자 연구와 노력을 많이 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갈수록 이 나라를 진정으로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떤 분들은 저를 보고 전생에 한국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전생을 믿지는 않지만 그 말을 큰 칭찬으로 여깁니다.
저는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선교 사업은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선교사가 하는 일은 다른 나라에 가서 신앙을 전하고, 그 나라의 복음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좋은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친 대로 세계의 문화 속에는 ‘Semina Verbi’, 곧 ‘말씀의 씨앗’이 있습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만민에게」, 15항 참조). 한국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기 몇 백 년, 아니 몇 천 년 전에, 불교, 유교, 도교, 그리고 여러 전통적인 사상을 통해서 성령께서 한국 백성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셨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가꾸어 주시고 준비해 주셨습니다. 선교사로서 한국에 와서 이 문화를 만나면서 우리 자신이 풍요롭게 되는 것입니다. 풍요롭게 된 것은 영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여러 가지 좋은 것을 한국 교회에서, 곧 한국 성직자들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본당에서의 시간 엄수, 질서, 깨끗함 등이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여러 나라 교회들은 한국 교회에게서 교포 사목을 본받아야 합니다. 2005년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 보면 58개 나라, 213개의 한인 본당에 한국인 사제가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만 해도 한인 본당이 17개나 됩니다. 이렇게 외국에 가 있는 동포 신자들에게 조직적으로 사목적인 돌봄을 베푸는 교회는 한국 가톨릭 교회밖에 없다고 봅니다.
옛날에는 신학교에 입교하던 젊은이들 대부분이 가난한 가정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아주 좁은 방에서 형제들과 다 같이 공부하고 숙제를 했습니다. 집에서 공부하지 못하는 이들은 도서관에 다녔습니다. 그들이 신부가 되고 본당을 맡으면서 사제관을 헐고, 지나치게 넓은 침실, 사무실 등 여러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시골에서 같은 동네에 있는 서민들과 비교해서 볼 때 사제는 왕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외국 선교사들은 한국 신부들이 복음적인 가난을 실천하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한민국이 잘사는 나라가 되었으며, 많은 한국 사제들이 가난을 높이 평가하고, 가난한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가난한 생활을 그리워하고, 자발적으로 검소하게 살며,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나누려고 갖가지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안식년 동안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청소부로 일을 한다든가 택시 기사로 일을 하는 등, 서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당에서 명령을 내리기만 하고 순종을 받으며,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고, 일시적으로라도 밑에서 낮은 사람처럼 사는 것은 매우 경탄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신부들은 앞으로 본당에 돌아가서 맡은 신자들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새로운 태도로 대할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 교회가 가난한 사람, 소외된 시민, 장애인, 고아, 노인, 환우 등, 제일 어려운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전국적으로 수백 개 복지 시설, 복지 기관들을 지었습니다. 거기에서 많은 성직자, 수도자, 일반 신자들이 어려운 이들의 생활에 함께하면서 그들에게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제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 가운데서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빈민 사목, 시장 본당, 선교 본당, 일반 병원 원목실 등, 여러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과 가까운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어느 일반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서울대교구만 해도 일반 병원 사목부에서 병원 24군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 앞에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이제 가난을 실천하기 시작하고, 가난한 이들을 포용하고 있지만, 많은 성직자들은 아직까지 부자들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사례 하나가 골프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골프는 부자들의 스포츠이며, 가톨릭 신자들은 “우리 신부님이 골프한다.”라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선교 정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30년 전까지는 나라가 가난해서 선교사들이 교회 건물을 지으려고 외국에서 원조를 받아 왔습니다. 본당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자립되면 한국 사제들에게 이양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는 또 다른 곳에 가서 성당을 짓고 새로운 본당을 시작했습니다.
선교 사업을 하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인적 자원이고, 둘째는 경제적 자원입니다. 그 당시 한국 교회에는 이 두 가지가 부족했으므로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는 힘이 모자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 성소가 많이 생기고, 경제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선교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75년에 한국외방선교회가 설립되었는데, 그동안 선교 정신이 커지면서 이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인 남녀 선교사들이 600∼700명이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톨릭 교회로 인도하고자, 사목자들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새 예비신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신자 배가 운동이라든가, 외짝 교우의 배우자를 초대하는 운동 등 열성적인 선교 정신을 통해서 가톨릭 교회가 복음화에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제 성당들이 크고 화려하게 건설되고 있으니, 서민들은 부자들을 위한 교회라고 생각되어 입교할 용기가 안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민들 가운데 위에 언급한 새로운 환경들에서 우리 교회가 서민들에게 가난한 교회의 얼굴을 보여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자 그 새로운 사목을 전국적으로 가장 먼 지역에까지 폭넓게 흩뿌렸으면 좋겠습니다.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에 한국 교회에서는 아랫사람들이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서 아직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당에서 신부들이 교우들을 독재적으로 대하고, 가끔 사목회 임원들이 무슨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임 신부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게 됩니다. 본당에서 주임 신부가 보좌 신부를 무시하고, 수도회에서 아랫사람들이 탄압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여성들도 교회 안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다른 나라에 가면 여성 평신도들이 성체를 분배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안 됩니다.
한편, 요즈음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라는 말을 자주 되풀이해서 듣게 됩니다. 이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한국 교회는 세계 여러 나라에 선교사들을 파견하고, 관대하게 가난한 나라들에 물질적인 지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받은 것을 더 어렵게 지내는 이들과 나누는 것은 아름답고 복음적인 행위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으니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라는 말을 절대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온 세계에 있는 교회마다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받는 교회도 되고 나누는 교회도 되어야 합니다. 여러 나라 교회들이 서로 받고 줌으로써 서로 풍요롭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 곧 보편된 교회라는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교회가 자급자족한다고 하면서 다른 교회들한테서 도움을 받지 않으면 그 교회는 ‘가톨릭’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국 신부들은 “이제는 외국 선교사가 필요 없다.”고 합니다. 성소가 넉넉하니 그들이 한국에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외국 신부들이 여기에 와서 한국 문화를 짓밟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선입견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한국 문화가 다양하고 훌륭하며 풍요롭기에, 이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노력하면서 이 문화를 흡수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말경에 조선이 세계로 문을 열었습니다. 또 현대에 와서는 대한민국이 세계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마는 한국 교회가 갈수록 문을 닫고 있고, 자기중심적이 되고, 차츰 고립될 경향이 있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필리핀에 국제 사목 센터가 있는데, 거기에 여러 나라에서 평생 교육을 받으려고 온 학생,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서로서로에게서 배우고자 몇 번이나 모여서 돌아가며 각자가 자기 나라에서 하고 있는 사목 방식에 대해 발표를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한국 학생들은 그 모임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사목을 잘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서 배울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지나친 자급자족 정신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한국 백성은 매우 영리하고 똑똑한 민족인데, 한편, 한국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이 지성이 모자라서 무엇을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다음 사례를 통해 아실 것입니다. 어느 날 제가 한국 수녀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옛날에 교회에서 쓰던 용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제가 예전에는 ‘분도’라고 했는데, 이제는 ‘베네딕토’라고 하고, ‘요왕’은 ‘요한’으로 바뀌고, ‘방지거’는 ‘프란치스코’로, ‘안당’은 ‘안토니오’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수녀님이 “아닙니다. 안당은 이제 안드레아라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둘이 얼마 동안 그것에 대해 토론한 끝에, 수녀님이 저를 보고 “신부님은 외국 사람이라서 잘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 뒤에 저는 할 말이 없었답니다. 이런 “외국 사람이라서”라는 말을 39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들한테서 몇 백 번이나 들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마는 지면 문제 때문에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교회가 좀 더 열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소선도(Jose′ Sandoval)|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 신부. 멕시코 출신으로 1955년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에 입회하였으며, 1967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1967년 한국에 파견되어 광주대교구와 서울대교구에서 본당 사목을 하였으며, 이후 로마 카밀리아눔 대학에서 원목 신학을 공부한 뒤, 성 가롤로 병원 원목 실장을 지냈고, 국립의료원 원목실을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병원 원목실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