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무상을 넘어서』
2006년 7월호 (제 330호)
나는 김홍섭 법관이 누린 가톨릭의 환희는 감상적인 환희가 아니라 환희의 생활의 계속이었음을 매일 확인...

『간디, 그리스도교를 말하다』
2006년 7월호 (제 330호)
『간디, 그리스도교를 말하다』 엮은이 | 로버트 엘스버그 옮긴이 | 조세종 출판사 | 생활성서사 발행일...

연중 제13주일~제17주일
2006년 7월호 (제 330호)
7월 2일 ● 연중 제13주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

「2005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를 발표하며
2006년 7월호 (제 330호)
최근 우리는 한국의 종교들과 한국 천주교회에 관한 두 개의 의미 있는 통계 결과를 접하고 있습니다. 통계...

『새로운 탈출』
2006년 7월호 (제 330호)
세계화를 일컫는 요즘의 지구촌은 더없이 빨라지는 인간의 이동 속도 때문에 더욱더 좁아지고 있다. 우리...

요한 복음의 여인들
2006년 7월호 (제 330호)
요한 복음에는 중요한 다섯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라는...

세계 교회는 지금 ― 방글라데시 교회
2006년 7월호 (제 330호)
방글라데시 교회를 소개합니다 제가 방글라데시 교황 대사로 임명을 받고 임지에 도착한 것은 2003년 2월...

제2회 전국가톨릭대학교신학생협의회
2006년 7월호 (제 330호)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1코린 1,10). 1960년대 이후 한국 교회는 여러 교구로 분...

결혼 이민자와 가정을 위한 본당의 사목 활동
2006년 7월호 (제 330호)
2005년 현재 한국 사회의 국제결혼 비율은 중소 도시나 농어촌 지역으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더 높아져서 어...

쓰레기통 영성
2006년 7월호 (제 330호)
가끔 신부로 사는 제게 무엇이 가장 힘드냐는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럴 때마다 그럴싸한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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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복음 해설 2006년 7월호 (제 330호)

연중 제13주일~제17주일

편집부


7월 2일 ● 연중 제13주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 마르 5,21-43에서

하혈하는 여인의 겸손
수년 동안 인간의 지혜로는 치유받지 못한 하혈하는 여인이, 믿음과 겸손으로 치유를 받았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 사실 주님께서는 빨리 스쳐 지나가셨습니다. 조용히 있거나 자신의 고통을 숨기는 이에게 [치유의 은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 여인에게 무엇을 할지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 여인은 유일한 구원의 방법을 본 것입니다. 이 여인은 몰래 치유를 받으려 했습니다. 주님께 대한 존경과 겸손을 감추고, 감히 여쭙지 못하고 침묵한 것입니다. 스스로 육신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여인이 마음으로 치유하시는 분께 다가간 것입니다. 이 여인은 믿음으로 하느님께 손을 대었습니다. 이 여인은 겸손하게 바란 것이기에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이러한 비밀스런 책략을 하느님께서 용서하실 것을 알기에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베드로 크리솔로고, 「회당장의 딸과 하혈하는 여인」 1
보이지 않는 믿음
주님의 치유 능력이 병든 여인의 숨겨진 고통을 통하여 드러났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 여인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성에 대한 증언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성자의 치유 능력을 통하여 성자의 신성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병든 여인이 치유되어 이 여인의 신앙심은 더욱 강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에게] 주님을 선포하였고, 주님과 더불어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그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선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주님의 신성을 증언한 것이라면 주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증언하신 것입니다. (…)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보시고 눈에 보이는 치유를 해 주신 것입니다.
시리아의 에프렘, 「타티아누스의 디아테사론(네 복음서 발췌집) 해설」

진리를 통한 치유
이 여인은 하혈병이 있는 동안에는 주님 앞에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믿음으로 치유가 되자 비로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감히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지는 못했습니다. 이 여인은 치유되었기에 주님의 발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이 여인은 “사실대로 다 아뢰었습니다”(마르 5, 33). 그리스도께서 바로 진리이십니다. 이 여인은 그 진리를 찬미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진리를 통해 치유받은 것입니다.
예로니모, 「설교」 77

소수의 믿는 이
주님 주변에 모여드는 군중은 많지만, 믿음으로 주님의 옷에 손대는 사람은 적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설교」 62,4

진실된 마음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마태 13,13)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박한 마음이 아니라 의심이나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님의 옷을 만지는 사람은 사실 만지는 것이 아닙니다.
베다, 「복음 강해」

믿음의 힘
믿음을 좀 더 가까이해야 합니다. 믿음의 힘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에녹을] 하늘로 들어 올리고(창세 5,24; 히브 11,5 참조) [노아가] 홍수를 피하게 하였습니다(창세 7,1─`8,22; 히브 11,7 참조). 믿음이 불임인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창세 21,1-3; 히브 11,11-12 참조). 믿음이 [이사악을] 죽음에서 구했습니다(창세 22,1-19; 히브 11,17 참조). 믿음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구해 냈습니다(창세 37,28 참조). 믿음이 가난한 [과부를] 부요하게 만들었습니다(마르 12,42-44 참조). 믿음은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켰습니다(히브 11,27-29 참조). 믿음은 불길도 내려오게 합니다(1열왕 18,38 참조). 믿음은 바다를 가릅니다(탈출 14,21 참조). 믿음은 바위를 갈라 목마른 이에게 물을 줍니다(탈출 17,6 참조). 믿음은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탈출 16,15 참조). 믿음은 죽은 이를 부활시켜 저승에서 이끌어 냅니다(히브 11,35 참조). 믿음은 풍랑을 잠재웁니다(마태 8,26 참조). 믿음은 병을 치유합니다(마태 9,2.22; 마르 2,5 참조). 믿음은 외국 군대를 물리칩니다(히브 11,34 참조). 믿음은 성벽을 무너뜨립니다(히브 11,30 참조). 믿음은 사자의 입을 막습니다(히브 11,33 참조). 믿음은 맹렬한 불을 끕니다(히브 11,34 참조). 믿음은 교만을 부끄럽게 만들고 겸손한 이를 명예롭게 합니다(히브 11,26 참조; 이사 4,6 참조). (…) 이 믿음은 모든 것의 주님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죽은 이의 부활을 믿으며 세례의 효과를 믿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교회의 믿음입니다.
아파레테스, 「논증」 4,17-19

손을 얹으시는 분
아픈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치유되는지에 대하여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낫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회당장이었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시되 인간만은 당신 손으로 창조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하느님을 믿고 자신의 딸을 창조하신 분의 손을 통하여 자신의 딸이 다시 태어나고 건강해지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 그 딸을 무에서 창조하려고 손을 얹으신 분께서, 그 딸의 손상된 부위를 낫게 하시려고 다시 한 번 손을 얹으신 것입니다.
베드로 크리솔로고, 「회당장의 딸과 하혈하는 여인」 1
7월 9일 ● 연중 제14주일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 마르 6,1-6에서
기적과 믿음
그리스도께서 나자렛에서 아무런 표징도 보여 주지 않으신 것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치유되려면 양쪽이 [각자] 가져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환자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치유하는 이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상대방 없이 혼자서는 치유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학적인 경우를 도덕적 변화에도 적용시켜 볼 수 있습니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설교」 30

은총과 믿음
쇠를 끌어들이는 자석이나 불을 일으키는 석유처럼 어떤 물질에는 다른 것을 끌어들이는 자연적인 힘이 들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권능에 이끌리는 믿음도 있습니다. (…) 마태오 복음사가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권능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미치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 복음사가는 믿는 이들에게 은총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보시고 (…) 당신의 권능으로 하시는 일을 전혀 안 하신 것이 아니라 조금만 베푸셨다고 한 것은 정확한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권능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미치는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마태오 복음 강해」 19
놀라운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1코린 1,23)이셨습니다. (…)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하셨지만 “약속의 계약과 무관한”(에페 2,12) 이들, 곧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복음 사가들은 예수님께서 회당 안에서 무엇을 가르치시고 말씀하셨는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다만 그 말씀이 너무 놀랍고 그 내용이 엄청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말씀하신 내용이 너무 고상하여 차마 적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회당을 가까이하지 않으시거나 무시하지 않으시고, 그 안에서 가르치셨다는 것은 기억하기 바랍니다.
오리게네스, 「마태오 복음 강해」 10,16

하느님의 권능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하고 말한 이는 하느님을 모릅니다. 하느님에게서 지혜와 놀라운 일이 나오게 됩니다. 솔로몬도 이러한 지혜의 원천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솔로몬은 아직 젊은 시절에, 오만이 아닌 덕으로, 자만이 아니라 지혜로,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나라에서 가장 높은 영광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하느님께 지혜를 구하려고 간절히 빌어 마침내 얻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사람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죽은 이를 다시 살리는 권능은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다만 구원을 질시하여 이것을 거부하는 이에게는 이 권능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베드로 크리솔로고, 「설교」 48,2
동족의 존경
주님께서는 동족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지혜와 베푸신 기적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들은 부족한 믿음으로 참다운 분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이런 기적을 베푸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주님의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자매를 언급하며 주님을 공격하였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철을 불에 달구는 목수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한 판결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권력을 녹여 버리시고, 물질 덩어리를 인간에게 유익한 모든 도구로 변형시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지체의 형체가 없는 재료에서, 영원한 생명을 위한 여러 직무와 일을 맡는 구성원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회당에 모인 이들은 이러한 일에 화를 낸 것입니다. (…) 하느님의 권능은 믿는 이들에게 작용하는 것이기에, 주님께서는 그곳에 머무시는 동안 그들의 믿음이 부족함을 보시고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신 것입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오, 「마태오 복음 강해」 14,2

예언자의 존경
엘리야가 길앗의 티스베에서 존경받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엘리사가 아벨 므홀라에서, 사무엘이 라마타임에서, 예레미야가 아나톳에서 존경받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은유적으로 해석해 볼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유다 왕국을 그들의 나라라고 여기며 (…) 이스라엘인들을 그들의 혈족으로, 그리고 그들의 몸을 집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예언자는 그들이 살아 있을 때에 육신이 속한 바에 따라 유다 왕국에서 이스라엘인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사도 7,52)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마태오 복음 강해」 10,18

몇 가지 기적을 베푸신 이유
[여전히] 주님께서 몇 가지 기적을 베푸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루카 4,23)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그는 우리의 적이며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는 말을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기적을 베풀었다면 우리도 믿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 기적을 베푸신 이유는 주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하시기 위한 것이고, 기적을 더 이상 베풀지 않으신 것은 그들을 더 이상 꾸짖지 않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권능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유다인들은 주님을 질투하면서도 여전히 존경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에 어떤 잘못도 발견하지 못하고서도, “베엘제불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마귀들을 쫓아내지 못한다.”(마태 12,24)라고 말하며 근거 없이 조작한 것입니다. (…)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해」 48,1


고향에 오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고향에 오셨습니다. 성경에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고향 사람들 사이에 영향을 끼치기가 힘든 상황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 사이에서 잘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한 이웃이 다른 이웃에게 존경을 나타내는 것을 굴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스도의] 권능은 받을 자격이 없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효용이 없습니다.
베드로 크리솔로고, 「설교」 48,6

7월 16일 ● 연중 제15주일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예수님께서는 (…)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 마르 6,7-13에서
청빈과 신앙의 성숙
[주님께서] 모든 이가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고,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고, 지팡이만 손에 들고 신발 [한 켤레]만 신어야 한다고 명령하십니까? [주님께서] 모든 이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명령하십니까? 물론 아닙니다. 이 명령은 [주님의] 은총에 온전히 응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이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 복음서에서 주님께서는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자만하는 젊은이에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신앙 안에서 온전히 성숙해지려는 이가 바라지않는 짐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로니모, 「요비니아누스 반박」 2

무소유의 영광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의 모든 근심에서 해방되고 세상일이 요구하는 모든 고역에서 벗어나서, 필수 불가결한 음식에 대한 걱정조차도 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도 금욕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재물욕과 탐욕을 완전히 끊어 버리셨습니다. 제자들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제자들의 왕관은 바로 무소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육신에 관한 무의미한 혼란과 근심을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편에 나온,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시편 55,23)는 말씀을 되풀이하시면서, 제자들이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47

교회의 신앙
교회에서는 신앙이 가장 으뜸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집은 틀림없이 선택된 곳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이들이나 이단교 교사가 집을 그럴듯하게 꾸미지 못하도록, 교회는 [신자들이] 이단교를 추종하지 않고 [유다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지 말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불신의 메마름이 여러분의 마음의 흙을 부수어 버리지 않도록 여러분의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이는 신자들의 육체적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이는 일어나 마치 먼지를 털듯, 무익한 행동을 털어 버려야 합니다. (…) 신앙을 거부하고 사도들이 선포한 것의 기초가 없는 교회는 불신으로 다른 이들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멀리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분파를 일으키는 사람에게는 한 번 또 두 번 경고한 다음에 관계를 끊으십시오.”(티토 3,10)라고 분명히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암브로시오, 「루카 복음 강해」 6,68

제자들의 세상 근심
세상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주님의 말씀을 모든 곳에서 전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전대도 보따리도 신발도 들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서둘러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상적인 생활 용품을 사용하지 말도록 하신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 이러한 명령으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일상생활에 관한 근심을 다 주님께 맡기고 실천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시편 55,23)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삶에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62

평화의 유익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 10,12-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가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한 집도 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모든 집이 구원받기를 바라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지 않아 평화를 잃어버릴까 봐 근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평화는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들에게가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평화가 그들에게 내린다면, 이는 그들과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꾸짖음과 은총」 15,46
제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이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당신에 관하여 전한 것이 반드시 어떤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지고, 진리의 말씀으로 장식될 것이라는 확신을, [당신의] 가르침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십니다. 사도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이는 곧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여러분이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2코린 13,3).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에게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본질적으로 동등한 성령을 통하여 이들을 도구로 하여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들이 실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거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그리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63


7월 23일 ● 연중 제16주일

목자 없는 양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 마르 6,30-34에서

생명의 양식의 가치
게으른 이들이나 세상의 명예에 둘러싸여 복잡한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생명의 양식의 가치를 제대로 모릅니다. 그리스도를 “외딴 곳”(마태 14,13; 마르 6,31-35; 루카 4,42; 9,10; 히브 13,13-14 참조)에서 찾는 이들이 생명의 양식의 소중함을 가장 잘 압니다.
암브로시오, 「아가 강해」 3,1-2

외딴 곳에 계신 주님
외딴 곳이라 해도 그곳에는 세상을 먹여 살리시는 분께서 함께 계십니다. 늦은 시간이라 해도,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께서 여러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십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해」 58

제자들에게 부여된 권능의 의미
제자들이 더러운 영을 물리치고 사탄을 이길 권능을 부여받은 것은, 이들이 영광을 받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이러한 권능을 받은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르침을 전한 이들은 주님께서 본질적으로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죽은 이를 살리고, 나병 환자를 고치고, 병자를 치유하고, 원하는 이에게는 누구에게나 머리에 손을 얹어 하늘의 성령께서 오시도록 하는 권능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이 사람들의 죄를 매고 풀 수 있는 권능까지 주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64.67

제자들의 교만을 물리치심
제자들이 기적을 베풀고 악마의 머리를 부수어 버릴 수 있었다는 사실만 기뻐하면, 이들은 오만해지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열정에 가까운 것은 언제나 교만입니다. 모든 이의 구세주께서는 앞서는 교만을 물리치시고, 제자들의 마음에서 자라나는, 영광을 바라는 옳지 못한 갈망의 뿌리를 잘라 버리셨습니다(루카 10,17-20 참조). 주님께서는, 정원에 가시덤불이 자라나면 그 뿌리가 깊어지기 전에 곡괭이로 즉시 잘라내 버리는 선한 농부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64

주님의 기쁨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도적 권위를 부여하시고, 성령의 은총의 활동을 통하여 돋보이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을 몰아낼 권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많은 기적을 베풀고 돌아와,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루카 10,17)라고 말하였습니다. (…)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파견하신 제자들이 많은 사람들을 도와서 그 사람들이 체험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즐거워하시고, 나아가 기뻐하셨습니다(루카 10,21 참조). 선하시고 인류를 사랑하시며 인류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주님께서는 잘못한 이들이 회개하고, 어둠 속에 있던 이들이 빛을 찾고, 지식도 가르침 받음도 없던 이들이 주님의 영광을 알게 되어서 기뻐하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65

불러 모으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당신 몸에 포함시키셨습니다. 교회는 찾아 나서고, 아버지께서는 받아들이시고, 목자께서는 짊어지십니다. 어머니[이신 교회]는 찾아 나서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옷을 입혀 주십니다(루카 15,22 참조). [주님께서는] 자비심을 앞세우시고, 중개를 하시고, 마지막으로 화해로 이끄십니다. 이 세 가지는 상호 보완적입니다. 하느님의 활동의 자비는 동일하지만, 은총은 우리의 공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목자께서는 지친 양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 [멀리 나간] 아들도 아버지를 찾아 다시 돌아옵니다.
암브로시오, 「루카 복음 강해」 7,207-208

모든 이를 맞아 주시는 주님
선한 목자께서는 여러분을 찾아 나서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돌아오려는 여러분을 막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친절하게 맞이하여 주십니다. (…)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방황을 끝내고 돌아오기를 서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멀리 있어도 주님께서는 달려와 여러분을 끌어안으실 것입니다.
대 바실리오, 「편지」 46

주님께 모여들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쉴 수 있는 물가로 이끄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는 양입니다. 푸른 풀밭을 찾아갑시다. 우리는 [잃어버린] 동전입니다(루카 15,8-10 참조). 제값을 찾도록 합시다. 우리는 [집을 나간] 아들입니다. 어서 아버지께 달려갑시다(루카 15,11-32 참조). (…) 아버지께서 아드님께 당신의 보물을 전해 주셨으니, 믿음의 넉넉한 효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로마 4,14 참조). 주님께서는 모두를 위하여 [은총을] 베푸셔도 당신께서 받으신 것을 하나도 잃지 않고 간직하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지 않으실까 두려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지혜 1,13 참조).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주님께 오는] 도중에 이미 여러분의 목을 감싸 [맞아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넘어지[는] 이는 누구나 붙드시고 꺾인 이 누구나 일으켜 세우시는”(시편 145,14)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시오, 「루카 복음 강해」 7,211-212
7월 30일 ● 연중 제17주일
오천 명을 먹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
사람들이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 요한 6,1-15에서
감사하는 법
주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기 전에 감사를 드리셨다는 점을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에서 받은 은혜에 늘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려고 감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 양식을 주시는 일을 당신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고 감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베다, 「복음 강해」 2,2

사도들의 직분
주님께서는 성령께서 베푸시는 여러 가지 은총을 통하여 하찮고 가치 없어 보이는 물건이 얼마나 풍요로운 것이 될 수 있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이 물건을 모든 민족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넘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사가들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신 일과 제자들이 그것을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일을 연관시켜 보는 것은 합당한 것입니다(마태 14,19; 마르 6,41; 루카 9,16 참조). 비록 주님께서 선포하심으로 해서 인류 구원의 신비가 시작된 것이지만, 그 말씀을 [주님에게서] 들은 이들을 통해 우리가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 그리고 시편에 쓰인 주님께 관한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시면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베다, 「복음 강해」 2,2
생명의 빵이신 주님
주님께서는 인간으로서 시험을 받으셨지만 하느님으로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요한 6,35.51 참조) 우리의 찬미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굶주리셨지만 수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참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요한 6,51)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목마르셨지만,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요한 7,37)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강물이 될 것이라고(요한 7,38 참조) 약속하셨습니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설교」

점점 늘어나는 말씀의 양식
예수님께서 쪼개신 빵은 참으로 하느님의 신비한 말씀이시며, 또한 나누어 줄수록 커지는 그리스도에 관한 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가지 설교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넉넉히 먹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입을 통해 나아가면 마치 빵처럼 늘어나는 설교를 우리에게 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한 이 빵은 쪼개어 나누어 질수록 (…) 눈에 보이게 커져 갑니다. (…) 참으로 그리스도의 은사는 매우 작아 보여도 엄청난 것입니다. 그 은사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이 [말씀의] 양식을 먹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 양식이 점점 더 늘어 가기 때문입니다. 이 양식은 육신에 양분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원한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암브로시오, 「루카 복음 강해」 6,86
베푸는 은총과 거두는 은총
[빵이] 열두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친절을 베풀면 하느님께서 크게 보상하신다는 평범한 확신입니다. 사도들은 다섯 개의 빵을 [예수님께] 드렸을 뿐입니다. 모인 군중이 다 배부르게 먹고도 광주리가 가득 차게 남았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사람들의 뜻과 준비하는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다 하여도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누구도 “내게는 [나그네를 대접할] 적당한 수단이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보잘것없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부족해!”라고 말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나그네를 받아들이십시오. 아무런 보상도 없는 주저하는 마음을 극복하십시오. 구세주께서는 여러분이 가진 보잘것없는 것을 상상 이상으로 크게 늘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보잘것없는 것을 내놓아도 크게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은총을 심는 이는 은총을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2코린 9,6 참조).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48

보는 기적과 믿는 기적
사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다섯 개의 빵으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일보다 더 큰 기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 다스리는 일에는 놀라지 않고, 다섯 개의 빵으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일은 드물게 일어나는 것이기에 놀랍니다. 사실 몇 개의 밀알로 커다란 밀밭을 일구어 내시는 분 말고 누가 온 세상을 먹여 살리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처럼 [빵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밀알 몇 개에서 밀밭을 일구어 내신 것처럼 다섯 개의 빵을 더 많이 늘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권능은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섯 개의 빵은 땅에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을 창조하신 분이 늘어나게 하시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기적에서 인간의 감각과 연관되는 부분이 있지만, 마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오성(悟性)을 동원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신, 보이는 일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믿음으로 성장하고 믿음으로 정화되었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주님을 바라보려고 갈망합니다. 우리는 보지 않고도 주님께서 하신 일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 그 당시에 이 기적을 본 사람들은 다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기만 한 우리는 놀라지 않습니다. 이 일은 원래 [사람들이] 보도록 [주님께서] 하신 일인데 우리가 알아듣도록 쓰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눈이 한 역할을 우리의 경우에는 신앙이 대신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4,1.6

하느님 나라의 통치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하자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사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언제나 통치해 오셨고, 영원히 통치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이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 그리스도의 피로 준비되고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최후의 심판이 내려진 뒤 주님의 성인들의 영광이 드러날 때 현실화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께서] (…)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1코린 15,24)라고 말한 나라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 그런데 당시 제자들과 군중은 주님께서 그 당시에 [세상을] 지배하려고 오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그들은 주님께서 세상의 종말이 다가와 적절한 시기에 알려 주시려 한 그때를 앞당겨 보려 한 것입니다. (…) 그들은 하느님 나라가 그 당시에 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억지로 임금으로 모시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사도 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