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막시밀리안 콜베』
2006년 8월호 (제 331호)
『막시밀리안 콜베』 “훌륭한 강론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만, 모범적인 표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라...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 외
2006년 8월호 (제 331호)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 지은이 | 안셀름 그륀 옮긴이 | 모명숙 출판사 | 바오로딸 발행일 | 2006년 ...

연중 제18주일~제21주일
2006년 8월호 (제 331호)
8월 6일 ● 연중 제18주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

『올바른 성모 신심』
2006년 8월호 (제 331호)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금년 5월 『올바른 성모 신심』을 펴냈다. 선교 3세기를 맞고 있는 우리 교회...

오늘날의 사막 교부
2006년 8월호 (제 331호)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사막 교부들처럼 삶의 진리를 새롭게 발견하고 오늘날 세상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잉카의 후예인 페루 교회
2006년 8월호 (제 331호)
페루 교회 개관 잉카 제국의 중심지였던 페루는 한반도의 6배 크기의 국토 면적에 약 2,800만 명의 인구가...

안동교구 ‘각·중·애’
2006년 8월호 (제 331호)
할렐루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시편 149,1). 20...

군종 신부의 단상
2006년 8월호 (제 331호)
2009년이면 군종교구 설정 20주년을 맞는다. 또 2011년은 군 선교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그래서 군종...

교회는 ‘구원의 성사’
2006년 8월호 (제 331호)
한국 사회의 성장과 그늘 저는 35년 전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속한 수도 단체는 평신도인 수도자...

새터민 홈스테이
2006년 8월호 (제 331호)
새터민 홈스테이의 시작과 경과 지난 2005년 통일부 산하 북한 이탈 주민 정착 지원 기관인 하나원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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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신학 동향 2006년 8월호 (제 331호)

오늘날의 사막 교부

기스베르트 그레사케 신부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사막 교부들처럼 삶의 진리를 새롭게 발견하고 오늘날 세상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사막은 이 도시, 또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소비주의와 탐욕, 스트레스, 분주한 삶이라는 악마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 세상일 것이다.
사막 교부들의 삶의 자리는 3세기 이집트 수도원들이었다. 그들이 사막으로 들어가서 은수자가 된 두 가지 주된 종교적 이유는 고행의 삶을 살고, 악마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였다.
고행의 삶. 일상의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고요하며 삶의 조건이 혹독한 사막은 하느님 앞에 고행하는 삶을 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육체의 욕구와 충동을 억누르고 통제함으로써 자유를 얻는 고행의 이상이 당시에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예를 들면, 스토아학파와 키니코스학파),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고행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우선, 고행은 ‘자기 부정’을 통하여 독신으로 가난하게,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삶을 사셨으며 당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요구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로 여겨졌다. 둘째, 고행은 참되고 영원한 삶에 대한 추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고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온 세상을 다 얻겠다.’는 욕망을 버렸다. 고행자는 하느님 앞에서 살고자 노력했고,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멀리하며 하느님에게서만 치유와 구원을 얻고자 했다. 셋째, 고행자는 앞으로 올 세상의 끝과 완성에 비추어 자신을 바라보았다. 세상을 단념하고 당시에 ‘천사의 삶’이라고 생각되던 삶을 통하여 온전히 미래만을 지향했던 것이다. 요한 콜로보스 아빠스는 “근심이 없고 수고하지도 않으며 영원히 하느님만을 섬기는 천사들처럼 나 또한 ‘편안한 마음’으로 근심 없이 지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수도승들의 삶은 “앞으로 올 것을 희망하는 기쁨”(『안토니오의 생애』(Vita Antonii))을 의미했다.
악마와의 투쟁. 고행의 이상은 또한 악마에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생각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교도 사원들이 파괴되었던 3~4세기에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사원의 토대나 잔해 위에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세워졌으며, 그 이전의 이교 의식들은 폐지되거나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악마로 분류한 이교의 신들이나 악령들을 무찔렀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악이 여전히 남아 있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사막이었다. 이미 성경에서 생명이 깃들지 못하는 메마른 죽음의 땅, 유혹과 악한 세력의 공격을 받는 땅으로 그려진 사막은 악마가 활동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궁지에 몰린 이 세력들이 ‘자기 자리’, 곧 사막으로 물러가서 거기서 얼마간의 힘을 휘두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은수자들은 이러한 악마들과 악한 세력들이 마지막으로 ‘숨어드는 곳’에서 그들과 ‘최후의 투쟁’을 하고자 사막으로 들어갔다. 사막의 수도승들은 악마와 싸움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악을 근본적으로 정복하셨으며, 그리스도의 승리가 현실 세계의 맨 끝 ‘구석’까지 뻗어 나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아타나시오는 『안토니오의 생애』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적은 누군가 자기 영토를 차지하는 것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 악마들이 안토니오에게 소리쳤다. “우리 땅에서 썩 꺼져라! 네가 사막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냐?” 그리고 사탄이 무기력하게 외쳤다. “이제 더 이상 설 곳도, 무기도, 도시도 없다. 사방에 그리스도인들이 퍼져 있고 사막에도 수도승들이 가득하구나.”

그래서 악마들은 ‘사막에서 안토니오를 쫓아내기 위하여’ 온갖 짓을 다했다.
사막에서 유례없는 고독에 직면한 은수자들은 생각과 사고와 충동과 열정에서 악마와 유혹을 경험했다. 환각에서 유혹들이 생겨났다. 전능함에 대한 유혹,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확인하려는 유혹, 하느님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유혹 때문에 절망에 이르게 되었다. 기도하고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도 유혹이 생겼다. 은수자들은 하느님 앞의 침묵을 감당할 수 없게 되거나, 기도를 짧게 마치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기도는 짧아졌으며 침묵에서 도망가기를 바라게 되었고, 대신 삶에 ‘더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기도 시간에 일부러 딴 일들에 정신을 쏟는다든지 의도적으로 자기 방종에 빠진다든지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유혹을 겪은 결과 수도승들은 인간이 악마에게 굴복하지 않거나 자신의 가난과 무력함을 깨닫고 신뢰와 인내와 희망 안에서 하느님께 의탁하여 의식적이고 결정적으로 투쟁할 때에만 악을 무찌르고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 형제가 부정(不貞)에 관하여 조언을 구하자, 아가톤은 ‘그대의 정결하지 못함을 하느님 앞에 내어 놓으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것이오.’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조언 이면에는 인간이 겸손과 인내, 신뢰로 하느님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악을 정복할 때에만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다는(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있다.
수도승들이 이러한 투쟁을 한 것은 자신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그리고 사실상 온 세상을 대신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생각이 수도 생활에 깊게 뿌리박혀 있었다. 사람들은 악마와 투쟁하고자 사막에 들어갔지만, 사실 악마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문명 세계에 확산됨으로써 이미 (근본적으로는) 정복되었다. 그러나 이제 수도승들은 악의 세력의 마지막 보루를 무너뜨림으로써 온 세상을 악에서 해방시키고자 가장 구석진 곳으로 싸우러 들어갔다. 또한 많은 사막 교부들이 타락한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의식적으로 참회하였다. 한 마디로, 그들은 세상을 대신하여 하느님 앞에 섰던 것이다. 4세기 말에 쓰인 『수도 생활의 역사』(Historia rausiaca)의 서문에는 “세상은 여전히 [수도 생활을] 통해서만 존재하고, 이 때문에 인류도 여전히 존재하며 하느님 보시기에 소중한 것이 된다.”라고 적혀 있다.
사막 교부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 덕분에 자연스럽게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동반자요 본보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몇몇 사막 교부는 철저하게 침묵하였다.), 그들의 삶의 방식과 증언을 통해서도 조언과 지도를 얻고자 모여들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삶은 메마른 사막에서도 교회와 세상을 위한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새로운 ‘사막’으로 가는 길
그러한 고행자들의 사막은 본래 지질학적 의미에서 ‘실제의’ 사막으로 이해되었지만, 그 풍경은 그 자체로나 성경에서 지니고 있는 구원 역사적 기능 때문에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한편으로 사막은 그 광활함과 침묵 때문에 자유를 얻는 곳, 하느님께 특별히 가까워지는 곳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메마름 때문에 가혹하고 고립된 곳, 죽음과 파괴와 악한 세력이 머무는 곳이었다. 하나의 ‘실제 상징’으로서, 사막은 단지 은수자들이 살던 지질학적 장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발전되었다(성 파코미오와 공주[共住] 생활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동방 교회의 크고 작은 도시에 있는 봉쇄 수도원들에서는 사막을 침묵과 기도, 금욕과 영적 투쟁의 은유적 표현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막이 없었던 서방에서는 이러한 은유가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1) 이탈리아와 로마 촌락들에서 ‘사막의 삶’은 고대 로마인들이 생각했던 시골 생활(vita rusticana), 곧 도시 생활에 반대되는 시골 생활로 이해되었으며, 따라서 ‘사막의 은수 생활’은 번잡한 도시를 떠나 쾌적한 시골로 향하는 것을 의미했다.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은 안정과 고독을 찾고 금욕을 실천하는 단순한 삶을 살았다. 사막이 없는 곳에서 수도승들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섬들에 정착하기도 하였다.
(2) 베네딕도 수도회 수도 생활이 확산됨에 따라 은수 생활 대신 공주(共住) 생활이 점차 자리 잡게 되었으며, 따라서 ‘사막’은 개인이 영적으로 ‘마음의 고독’을 경험하는 자신의 방을 의미하게 되었다. 분명히 베네딕도 수도회 수도자들도 ‘사막의(in eremo)’ 수도원 설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막’은 어떠한 은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수도원들이 사목과 교육 활동에 뛰어들고 황량한 땅을 다채롭게 꾸미는 데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사막’은 꽃이 만발하고 열매를 풍성히 맺는 정원이 되었다.
(3) 11세기와 12세기의 은수 운동은 ‘사막의’ 은수 생활을 쇄신하여, 질서 있게 경작된 땅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숲, 뚫고 지나가기 힘든 거칠고 깊은 숲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 ‘사막으로 떠남’으로써 세상에서 분리된 삶, 세속의 요구에서 자유로운 삶을 사는 일이 다시 한 번 가능해질 것이었다. 이는 큰 수도원들에서도 더 이상 온전히 얻을 수 없던 것이었다(K.S. Frank).
사막에 대한 이해가 이렇듯 문화적으로 다르고 영적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음에도, 기본적으로 사막을 ‘장소’로 여기는 개념은 20세기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사막은,
(1) 하느님 앞에서 예수님을 따라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삶을 사는 곳,
(2)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세상사와 세상의 걱정 근심에서 벗어남으로써 하느님을 향하여 더욱 자유로워지고 치유와 내적 평화를 찾는 곳,
(3) ‘종말론적 삶’을 사는 곳, 말하자면 전체 교회를 대신하여 “하느님의 파수꾼이 되어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다가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시면 곧바로 문을 열어 주는” 곳이었다.
다른 한편, 악마와 맞서 싸운다는 (노골적인) 개념은 덜 부각되거나, 파수꾼이 되려는 결심 안에 흡수되었다. 요약하자면, 사막의 고행자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 갈림 없는 삶을 사는 것, 모두를 대신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에 유의하며 그 ‘자리’를 마련해 놓음으로써 복음 전체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했다.
사막의 새로운 측면이 발견된 것은 샤를르 드 푸코(1858~1916년)의 영성 생활에서였다. 그의 본래 의도는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 ‘나자렛에서 예수의 드러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의 여정 초기에 쓰인 글들은 첫 사막 교부들과 그들의 서방 제자들을 연상시킨다. 기도 중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 오로지 너와 나만이 있을 사막을 여기에 만들어라. … 내 안으로 들어와 내 안에 너를 던져라. 사람은 하느님 은총을 받기 위해서 … 황야를 헤매고 거기 머물러야 한다. … 거기서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을 몰아낼 수 있다. … 하느님이 네 안에 그 나라를 세울 수 있게 하려면 네 영혼은 이렇듯 고요하고 이렇듯 평온하며 이렇듯 모든 세상일을 잊어야 한다.

그러나 샤를르 수사는 다른 길을 걸었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 그는 투아레그족 사이에 정착하였다. 식민주의 때문에 경제 사회 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메뚜기들이 밭을 휩쓸었고 가뭄과 기아가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가난하고 비참한 삶이 만연하였다. 현대의 발전(예를 들면, 의학)이 아프리카까지 미치지 못하여,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치료할 수 있는 병들로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러한 수많은 요구들을 생각할 때 샤를르 드 푸코 수사에게 이제 사막은 ‘선행을 하는’ 곳이었으며, 이 소박한 표현이 그의 여행 일지와 짧은 글, 편지에 수없이 여러 번 나타나고 있다. ‘선행’은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 오아시스나 야영지나 객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뜻했다. 그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음식과 약, 얼마간의 기부금, 선물(바늘이나 가위 등)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이러한 ‘선행’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은수 생활에 대한 열망을 미루고 프랑스 군대나 투아레그 대상들과 함께 사막을 건너는 힘든 여행을 하였다. 그는 자신의 노력을 신중한 준비 작업으로 보았다.

나는 씨를 뿌리는 단계에까지 가지 않았다. 그저 다른 이들이 수확할 수 있도록 땅을 일구고 있을 뿐이다. … 지금의 나는 투아레그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를 얻으려고 애쓰며 이 야영지에서 저 야영지로 향하는 유목민이다. … 이런 유목 생활을 통해서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그가 한 ‘선행’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선행을 사랑과 후원의 표시, 복음화를 위한 첫 준비로 이해했으며, 또한 훗날 ‘사막의 삶’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형제들을 위한 주춧돌을 놓았다. 그는 작은 형제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의 작은 형제회 수사들은 환대를 보이고 물질적 도움을 주며 병든 이에게 약을 주고 도움을 청하는 모든 이를 보살펴야 한다. 이 형제회가 하느님의 집으로서 모든 가난한 사람과 이방인과 병자를 기쁘고 감사하게 초대하여 맞아들이는 곳임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어야 한다. 형제들은 그들의 집에 사람들을 맞아들이는 일을 값비싼 보화를 얻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사실 이들은 보화 중의 보화, 바로 예수님이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오늘날 사막의 그리스도인들
샤를르 드 푸코는 사막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였다. 이전에 그에게 ‘나자렛’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드러나지 않은 생애를 관상하는 것을 의미했으나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 ‘함께 있으면서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제 ‘사막’은 새로운 강조점을 지니게 되었다. 샤를르 수사에게 ‘사막의 악마’는 더 이상 ‘육적인 악마’가 아니었으며, 가난과 질병, 인간의 비극, 식민지 제도 아래 권리와 존엄의 상실을 의미하였다. 요즘의 표현으로 옮기면, 물질적, 지적, 종교적 문제에서의 ‘저개발’이었다. 사막은 더 이상 침묵의 신뢰 안에 하느님을 모시면서 하느님을 만나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궁핍한 형제들과 두려워하는 자매들 사이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곳, 대신하여 기도를 바침으로써 영적인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역동적인 노력으로 물질적 도움도 주는 곳을 의미한다. 샤를르 수사가 마태오 복음 25장 40절을 가장 즐겨 인용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장 프랑소와 식스는 사막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드님과 마찬가지로 푸코도 우리에게 인간 실존의 극단인 사막으로 들어가 모든 사람의 노고와 희망, 죽음과 부활을 함께하라고 초대하고 있다.

사막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발견은 푸코의 영성으로 명시적으로 부름 받은 공동체들, 특히 예수의 작은 형제회와 예수의 작은 자매회에서 다양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들을 세운 르네 부아욤(예수의 작은 형제회의 공동 창립자 - 역자 주) 신부가 말하듯이,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 한가운데” 살아간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회의 모든 구조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삶을 애써 걸어 나가지만 참된 인생관을 갖지 못하는 곳, 생존 자체와 일과 빵과 쉴 곳을 위하여 날마다 싸워야 하는 외로운 사람들, 병자와 노인들, 환멸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곳이다. 그러나 또한 이 사회는 사람들이 ‘영원한 평등’ 안에서 삶의 작은 기쁨들과 희망들을 갖고 서로 힘을 모아 살아가려는 바람과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수의 작은 형제들과 예수의 작은 자매들은 이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사막’으로 여긴다. 그들은 이 사막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형제자매들을 도우며 그들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기도드림으로써 그들을 위하여 전구한다. 샤를르 드 푸코의 영적 가족은 이를 다음과 같은 말로 명확하게 표현한다. “그대의 사막은 그대의 도시 안에 있다”(이 말은 예수의 작은 형제회 카를로 카레토 수사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명제가 현대의 영성의 기본 특징을 이루어야 하는 동시에, 다양한 영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어로 ‘사막’을 뜻하는 푸스티니아(poustinia) 운동의 설립자인 캐서린 드 휴엑 도허티(남녀 평신도와 사제들로 구성된 새로운 형태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마돈나 하우스의 설립자 - 역자 주)는, “사막, 고요, 고독은 반드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대도시 한가운데에서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 안에서 ‘사막’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푸코의 수도 가족인 예수의 작은 형제들과 예수의 작은 자매들, 그리고 푸스티니아 운동가들은 여기 이 세상의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되도록 부름 받는다. 그 오아시스에서 세상 사람들은 심호흡을 하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작은 형제들과 예수의 작은 자매들은 또한 환대와 소통, 경청과 신뢰, 지원과 연대의 장소가 되고, 하느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며 그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전구 기도의 자리가 되도록 부름 받는다. 샤를르 수사의 기본적인 생각은 이러한 영적인 ‘슬로건’과 함께 더욱 발전되어 이제 사막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여 ‘선행을 하는’ 곳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피에르 마리 델피외 신부가 설립한 예루살렘 형제회(1974년)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이 영적 운동의 ‘핵심 집단’은 은수 생활에 전념하며 도시를 ‘사막’으로 본다. 푸코의 수도 가족이 명시적이고 절박한 형태의 사막의 삶을 산다면, 예루살렘 형제회는 그 생활을 독특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오늘날 새로운 세계가 발전되고 있다. 과거 세계가 농촌 중심이었다면, 오늘날 세계는 도시 중심이다. 여러분(예루살렘 수도자들)의 삶은 세계와 교회와 하느님의 실제적이고 절박한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오늘날, 사막 교부들의 은수의 소명은 도시에 대한 소명 안에서 실현된다.

그대의 사막은 이제 도시에 있다. …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람들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기도와 회개와 참회를 통하여 오아시스를 만들고 있다. 은총의 생명수가 솟아오르면 그 물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막의 거룩한 율법의 이름으로, 거룩한 환대의 책임에 대한 이름으로, 목마른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물을 가져다주어라. 이렇게 ‘다른 이들을 위한 오아시스가 되는 것’이 은수의 소명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참으로, ‘거룩한 은수자는 자기 안에 자신의 사막을 지니고 있으며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사막에 있는 사람이다.’

예루살렘 형제회와 푸코 영성의 관계는 ‘사막인 도시’를 특별히 강조한다. 오늘날 ‘사막’과 ‘도시’는 한데 묶여 있다.
사회 문화적 발전을 고려하여, ‘사막’은 세계화된 우리 세상에 빗댈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의 압력에 억눌려 위험을 감수하고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떠밀려 다니는 ‘희생자’가 되고 있다. 한편에는 지역적 전 세계적 차원에서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차별(빈부, 상하)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다양한 민족과 인종, 종족 집단들의 문화적 구분의 동질화 때문에 사람들이 고유한 영적 고향을 잃어버릴 위험에 있다. 또한 자유 시장 경제의 헛된 환상은 막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와 함께 이윤과 경제적 이익, 모든 것의 ‘상품’화를 통하여 소비주의와 여가, 쾌락, 안락한 삶의 추구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구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여가 사회’의 이상)도 커져간다.
수도회나 몇몇 영적 공동체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새로운 사막에서 살아야 한다. 그들은 ‘그럭저럭 살아간다’거나 ‘세상과 타협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막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현존’하여야 한다. 시토회 수도자인 리볼스의 엘레드는 이를 이렇게 이해하였다. “사막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 현실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사막으로 보고, 본향을 갈망하면서 그 고향에 이르는 길을 완성하는 수단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사막 가운데에서 우리는 ‘사막 교부’가 되도록 부름 받는다.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신앙의 증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느님 앞에 서고 복음에 따라 살아가며 다가올 하느님 세상의 증인으로서 연대와 형제애를 실천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한다.
- 세상의 소음과 혼란에 맞서 고요를 찾고 하느님께 귀 기울인다.
- 무관심과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열린 눈과 귀를 갖는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요구와 근심을 돌보는 데에 시간을 아끼지 않고 문을 열며 그들에게 제집 같은 ‘오아시스’를 제공한다.
- 소유욕, 소비주의, 성의 탐닉,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나 소박한 삶을 산다.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이 맡은 임무를 수행한다.
이렇게 살아가거나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초기의 사막 교부들이 ‘악마’에 맞서 싸울 때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무절제한 소비주의, 무관심, 무분별한 자기도취, 개인주의, 결단력 부족, 혼란, 분주한 삶, 스트레스라는 악마에 맞서 싸운다. 우리 사회의 그러한 방식과 기준에 저항하는 사람은 ‘훼방꾼’으로 손가락질 받고 순응을 강요받는다. 미래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이 ‘사막 같은’ 세상에서 ‘순례자이며 이방인’으로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세상에 반대하고 흔히는 저항하면서, 하느님께서 사막 여정을 시작하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 하고 약속하신 것을 믿으며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으로 우리는 오늘날 ‘사막’의 걱정거리들에 맞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다. 초기의 사막 교부들도 고난과 유혹, 도전에 부딪쳤으며 그 안에서 삶의 진리를 찾았다. 말하자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가난과 무력함을 깨닫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사막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파수꾼으로’ 우뚝 서도록 부름 받는다. 실리아 발터 수녀(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이렇게 노래한다.

주님, 당신께서 오실 때
누군가는 집에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밤낮으로
당신을 고대해야 하고
당신을 기다려야 합니다.
당신께서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 누군가는 도망가지 않고
당신을 떠받치고 당신을 지탱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당신께서 오실 것을 의심하지 않고
당신의 빈자리를 견뎌야 합니다.
누군가는 당신의 침묵을 참으면서 노래하고
당신의 고통과 죽음을 견디어 내고
살아가야 합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또 그들을 위하여
언제나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이렇게 사는 것임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사막에서’ 사는 사람이며 ‘사막’의 교부이다. 그런 이들에게, 알프레드 델프(나치스에 저항하여 처형된 예수회 신부 - 역자 주)가 처형되기 직전에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아직도 사막의 시간에 있습니다. … 그러나 이 사막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커다란 자유를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사막은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저는 사막 위에는 별이 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막은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외로움과 막연함, 우울함과 무의미함, 자포자기의 사막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막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사막을 비옥한 땅으로 바꿀 수 있는 샘도 열어 놓으셨습니다.

기스베르트 그레사케 | 신부.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교의 신학을 전공하였으며, 독일 튀빙겐 대학, 오스트리아 빈 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독일 프라이브루크 대학에서 교의 신학과 교회 일치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사자들의 부활』(1969), 『구체적 자유로서의 은총』(1972), 『은총 - 선사된 자유』(1977, 1986), 『사랑의 보상』(1978, 1985), 『사제의 길』(1982, 1986), 『하느님의 구원 - 인간의 행복』(1983),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1984) 등이 있다.

원문 | Gisbert Greshake, ?ustenvater Heute? Internationale Katholische Zeitschrift : Communio 33(2004), 435-446면[?he Desert Fathers Today? Theology Digest 52/2(2005), 132-138면], 최문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