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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콜베』
2006년 8월호 (제 331호)
『막시밀리안 콜베』 “훌륭한 강론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만, 모범적인 표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라...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 외
2006년 8월호 (제 331호)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 지은이 | 안셀름 그륀 옮긴이 | 모명숙 출판사 | 바오로딸 발행일 | 2006년 ...

연중 제18주일~제21주일
2006년 8월호 (제 331호)
8월 6일 ● 연중 제18주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

『올바른 성모 신심』
2006년 8월호 (제 331호)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금년 5월 『올바른 성모 신심』을 펴냈다. 선교 3세기를 맞고 있는 우리 교회...

오늘날의 사막 교부
2006년 8월호 (제 331호)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사막 교부들처럼 삶의 진리를 새롭게 발견하고 오늘날 세상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잉카의 후예인 페루 교회
2006년 8월호 (제 331호)
페루 교회 개관 잉카 제국의 중심지였던 페루는 한반도의 6배 크기의 국토 면적에 약 2,800만 명의 인구가...

안동교구 ‘각·중·애’
2006년 8월호 (제 331호)
할렐루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시편 149,1). 20...

군종 신부의 단상
2006년 8월호 (제 331호)
2009년이면 군종교구 설정 20주년을 맞는다. 또 2011년은 군 선교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그래서 군종...

교회는 ‘구원의 성사’
2006년 8월호 (제 331호)
한국 사회의 성장과 그늘 저는 35년 전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속한 수도 단체는 평신도인 수도자...

새터민 홈스테이
2006년 8월호 (제 331호)
새터민 홈스테이의 시작과 경과 지난 2005년 통일부 산하 북한 이탈 주민 정착 지원 기관인 하나원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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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복음 해설 2006년 8월호 (제 331호)

연중 제18주일~제21주일

편집부

8월 6일 ● 연중 제18주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 마르 9,2-10에서

예수님과 빛의 자녀
예수님의 모습이 변했을 때 예수님의 얼굴도 태양처럼 빛나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은 빛의 자녀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요한 12,36; 로마 13,12; 에페 5,8 참조). 이 빛의 자녀들은 어둠이나 밤의 사람들이 아니고 낮에 정직하게 걸어 다니는 이들입니다(로마 13,13; 1테살 5,5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되 단순한 태양이 아니라 의로움의 태양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말라 3,20; 지혜 5,6 참조).
오리게네스, 「마태오 복음 강해」 12,37

빛나는 하느님 모습의 관상
우리가 가장 거룩한 관상을 하면 제자들 앞에서 거룩한 변모를 하셨을 때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영광스럽게 빛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눈앞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마태 17,1-8; 마르 9,2-8 참조).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고난과 세속을 벗어나게 되고 하느님에게서 마음속으로 빛의 은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고 우리의 오성(悟性)은 사라지며 천상의 기쁨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불꽃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은 신비하게도 하늘에 있는 것같이 될 것입니다.
위 디오니시우스, 「하느님의 이름들」 I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영광스러우신 예수님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어도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 곧 율법과 예언자의 말을 따랐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에는 제자들이 당신 아드님의 말을 듣는 것이 선례를 따르는 것이라는 암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17 참조). 하느님의 목소리는 복음의 진리의 빛이 구약의 모든 유형과 애매한 표징에 앞서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다가오자 하느님께서 자비롭게 마련하신 계획으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도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그들을 격려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인성이 부활을 통하여 하늘의 빛으로 들어 올려지시게 되는지를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는 성자께서 신성함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하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난의 때가 다가와도 제자들이 주님의 죽으심을 덜 슬퍼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바로 인간으로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신성으로는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 곁에서 영광스러우신 분이셨습니다.
베다, 「복음 강해」 1,2,4

하느님의 의로우심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말씀하시자 유다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 이들은 마음의 열정 없이 말만 늘어놓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빵을 먹으려면 내적인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 5,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 빵에 주린 사람은 의로움에 주린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셨다고 하였습니다(1코린 1,30 참조). 그런데 하늘에서 오는 이 의로움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6,1

생명의 빵으로 다시 태어남
은총의 도움이 없으면, 다시 말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의 도움 없이는 누구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 13,10)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돈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땅과 하늘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께 대한 사랑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관하여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을 부어 주실 때 우리가 당신을 믿으라고 권유하시며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생명을 주는 빵을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는 빵을 먹는 것입니다. 믿는 이는 보이지 않게 배가 부르게 됩니다. 이 사람은 보이지 않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적인 유아, 내면적인 새 인간이 됩니다. 새로운 인간이 되면 그는 [생명의] 양식으로 배를 채우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6,1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심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께 나아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이끌린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다르게 믿는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권능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 사람이 내키지 않지만 교회에 올 수 있고, 내키지 않지만 제단 앞에 나아갈 수 있고, 내키지 않지만 성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의 의지에 어긋나게 이끌린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사실 마음은 사랑에 이끌리게도 됩니다. (…) 의지로 이끌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이끌리기도 합니다. 기쁨으로 이끌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에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시편 37,4)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음이 기쁘면 하늘의 빵이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더 나아가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이끌린다.”(베르길리우스, 『단편 시집』(eclogae), 2)라고 바르게 말한 것처럼 [사람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열망으로,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이끌리게 됩니다]. 제가 얼마나 더 우리가 진리의 기쁨, 축복의 기쁨, 의로움의 기쁨, 영원한 생명의 기쁨으로 그리스도께 이끌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6,2.4

세상의 영과 하느님의 영
이 세상의 영은 사람들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의 영은 [사람들을] 잘난 척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이 영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나 되는 듯이 생각하게 합니다(갈라 6,3 참조).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이 세상의 영에 대하여 뭐라고 말을 합니까?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자화자찬하고, 자만하고, 교만하고 부풀리고, 견실하지 못한 영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뭐라고 말합니까? 그는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1코린 2,12). 이에 관하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요한 3,2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44). (…) 그리고 사도 야고보도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야고 1,17)라고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설교」 333,6
8월 13일 ● 연중 제19주일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 요한 6,41 - 51에서

예수님과 빛의 자녀
예수님의 모습이 변했을 때 예수님의 얼굴도 태양처럼 빛나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은 빛의 자녀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요한 12,36; 로마 13,12; 에페 5,8 참조). 이 빛의 자녀들은 어둠이나 밤의 사람들이 아니고 낮에 정직하게 걸어 다니는 이들입니다(로마 13,13; 1테살 5,5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되 단순한 태양이 아니라 의로움의 태양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말라 3,20; 지혜 5,6 참조).
오리게네스, 「마태오 복음 강해」 12,37

빛나는 하느님 모습의 관상
우리가 가장 거룩한 관상을 하면 제자들 앞에서 거룩한 변모를 하셨을 때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영광스럽게 빛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눈앞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마태 17,1-8; 마르 9,2-8 참조).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고난과 세속을 벗어나게 되고 하느님에게서 마음속으로 빛의 은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고 우리의 오성(悟性)은 사라지며 천상의 기쁨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불꽃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은 신비하게도 하늘에 있는 것같이 될 것입니다.
위 디오니시우스, 「하느님의 이름들」 I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영광스러우신 예수님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어도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 곧 율법과 예언자의 말을 따랐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에는 제자들이 당신 아드님의 말을 듣는 것이 선례를 따르는 것이라는 암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17 참조). 하느님의 목소리는 복음의 진리의 빛이 구약의 모든 유형과 애매한 표징에 앞서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다가오자 하느님께서 자비롭게 마련하신 계획으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도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그들을 격려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인성이 부활을 통하여 하늘의 빛으로 들어 올려지시게 되는지를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는 성자께서 신성함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하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난의 때가 다가와도 제자들이 주님의 죽으심을 덜 슬퍼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바로 인간으로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신성으로는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 곁에서 영광스러우신 분이셨습니다.
베다, 「복음 강해」 1,2,4

하느님의 의로우심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말씀하시자 유다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 이들은 마음의 열정 없이 말만 늘어놓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빵을 먹으려면 내적인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 5,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 빵에 주린 사람은 의로움에 주린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셨다고 하였습니다(1코린 1,30 참조). 그런데 하늘에서 오는 이 의로움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6,1

생명의 빵으로 다시 태어남
은총의 도움이 없으면, 다시 말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의 도움 없이는 누구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 13,10)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돈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땅과 하늘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께 대한 사랑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관하여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을 부어 주실 때 우리가 당신을 믿으라고 권유하시며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생명을 주는 빵을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는 빵을 먹는 것입니다. 믿는 이는 보이지 않게 배가 부르게 됩니다. 이 사람은 보이지 않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적인 유아, 내면적인 새 인간이 됩니다. 새로운 인간이 되면 그는 [생명의] 양식으로 배를 채우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6,1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심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께 나아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이끌린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다르게 믿는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권능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 사람이 내키지 않지만 교회에 올 수 있고, 내키지 않지만 제단 앞에 나아갈 수 있고, 내키지 않지만 성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의 의지에 어긋나게 이끌린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사실 마음은 사랑에 이끌리게도 됩니다. (…) 의지로 이끌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이끌리기도 합니다. 기쁨으로 이끌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에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시편 37,4)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음이 기쁘면 하늘의 빵이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더 나아가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이끌린다.”(베르길리우스, 『단편 시집』(eclogae), 2)라고 바르게 말한 것처럼 [사람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열망으로,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이끌리게 됩니다]. 제가 얼마나 더 우리가 진리의 기쁨, 축복의 기쁨, 의로움의 기쁨, 영원한 생명의 기쁨으로 그리스도께 이끌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6,2.4

세상의 영과 하느님의 영
이 세상의 영은 사람들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의 영은 [사람들을] 잘난 척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이 영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나 되는 듯이 생각하게 합니다(갈라 6,3 참조).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이 세상의 영에 대하여 뭐라고 말을 합니까?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자화자찬하고, 자만하고, 교만하고 부풀리고, 견실하지 못한 영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뭐라고 말합니까? 그는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1코린 2,12). 이에 관하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요한 3,2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44). (…) 그리고 사도 야고보도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야고 1,17)라고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설교」 333,6



8월 20일 ● 연중 제20주일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 요한 6,52 - 58에서

빵과 그리스도의 몸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의 제단이 이 빵을 상징합니다. (…) 상징은 다양하지만 그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1코린 10,3)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똑같은 영적 양식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다릅니다. 조상들은 만나를 먹었고 우리는 다른 것을 먹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같습니다. (…) [주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셨기에 생명의 빵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만나도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지만 그림자에 불과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빵은 진리입니다. 언제 육신을 가진 존재가 주님께서 빵이라고 부르신 주님의 살을 이해하였습니까? (…)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살고 싶다면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 여러분은 보이는 몸과 보이지 않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몸은 영혼으로 살아갑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바랍니다. (…)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성령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1코린 10,17)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6,12-13

주님의 몸과 피의 일치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생명을, 그것도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음식과 피가 당신의 몸과 그 지체와의 친교를 의미하는 것임을 이해하기를 바라셨다고 생각됩니다. 이 지체는 바로 예정되고, 부름 받고, 의롭게 되고, 영광스럽게 된 성인과 신자로 이루어진 거룩한 교회입니다. (…)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일치의 성사는 어떤 곳에서는 매일, 다른 곳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님의 식탁 위에 마련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이 몸과 피를 통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 현세의 육신에도 해당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시고자 (…) 주님께서는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성령에 따라 [한 사람의] 영혼은 성인들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지만 (…) 육신은 최후의 심판 때 육신의 부활이 있고서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6,15-16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
이 세상은 시간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영원하지 못합니다. (…) 우리의 육신도 마찬가지로 영원하지 못하고 시간의 제약을 받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2코린 5,1) 것입니다. 이 집에서는 부활을 통한 변화로 우리의 몸도 하늘에 오르고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지는(1코린 13,12 참조) 못하지만 현재에도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 안에 머물고 계십니다. 우리는 선행을 통하여 우리의 몸을 하느님께서 그렇게 머무시는 곳으로 만듭니다. 이것이 영원한 선행은 아니지만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게 됩니다. (…)
[이 세상에 머무는 것이] 잠시 동안이라 하여도 지상에서 선행을 하여 영원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십시오. 잠시 동안이라 해도 모든 선행을 통하여 믿음과 희망과 영적인 사랑의 집을 지으십시오. 그러면 더 이상 가난과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빈 방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예언자와 사도들의 가르침이 여러분 마음 안에 기초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그 누구도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겸손의 마루를 놓으십시오. 기도와 설교를 통해 여러분 마음 안에 튼튼한 벽과 같은 건전하고 유익한 가르침을 간직하십시오. 집 안에 하느님의 계시를 등불 삼아 빛을 비추십시오. 기둥이 되어 미약한 이를 세워 주고, 지붕이 되어 가난한 이를 돌보아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지상에서의 선행에 대하여 영원한 상급을 마련하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영원히 여러분을 당신께 온전히 봉헌된 집으로 삼도록 하십시오.
아우구스티노, 「설교」 337,5
8월 27일 ● 연중 제21주일

영원한 생명의 말씀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요한 6,60 - 69에서

주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신비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머리이신 주님의 몸의 지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몸을 먹으며 주님과 일치를 포기하지 말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거북해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들 자신인 육에 관해서만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올바르게 말한 것처럼 “육에 갇혀 있는 것은 (…) 죽음에 이르게”(로마 7,5-6 참조) 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몸을 우리가 먹도록 주셨지만 이것을 육에 따라 이해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몸을 육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7,1

주님의 몸의 의미
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요한 6,6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씀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의문을 풀어 주셨습니까? 주님께서 이 사람들이 거북해하는 것의 원인을 밝혀내셨습니까? 비록 그들이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의 몸을 그들에게 내어 주신다고 생각했지만 주님께서는 온전한 몸을 가지고 하늘에 오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실] 그때에 여러분은 주님께서 여러분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실 것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주님의 은총이 어떤 것을 먹는 일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7,3

영혼과 육신의 관계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1코린 8,13)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식을 꺼려야 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이 교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1코린 8,13)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식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그러면 지식이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으로 쓸모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육신만 있을 때 그 육신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식에 사랑을 더하듯이 육신에 영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육신이 쓸모가 있게 될 것입니다. 만약 육신이 아무 쓸모가 없다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말씀이 강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통하여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을 가져다 주셨는데 육신이 쓸모가 없을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는 육신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육신은 도구입니다. 육신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주님의 제자들이 파견되었을 때 그들의 육신이 우리들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까? 육신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말씀의 소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습니까? [육신이 아니라면] [교회] 문서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육신의 작용입니다. 다만 영혼이 그 육신을 기관처럼 움직일 때에만 그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해하는 육신의 차원에서 “영은 생명을 주지만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는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7,5

되돌아간 제자들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갔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탄에게 돌아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라고 꾸짖으신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영원히 살도록 하시고자 죽으러 오신 주님께서 죽으시면 안 된다고 앞질러 주님께 충고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탄에게 되돌아가라고 베드로 사도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온 사람들은 바오로 사도가 어떤 젊은 과부들에 관하여 “이미 돌아서서 사탄을 따르고 있습니다.”(1티모 5,15)라고 말한 것처럼 되돌아갔습니다. (…) 이들은 비록 제자라고 불렸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몇몇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돌아갔습니다. 이는 차라리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이 진리를 선언해도 사람들이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거북해 하며 돌아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잘 보십시오.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주님 곁에 몇 명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근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누가 믿음이 있고 누가 믿음이 없는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면 우리는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보고 위로를 삼으십시오. 그러나 사람들에게 말을 할 때에는 현명하게 하기 바랍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7,8

베드로 사도의 신앙 고백
주님께서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고 물으시자 유다조차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유다가 왜 머물러 있었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 베드로 사도가 모두를 대표하여 대답하였습니다. (…)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이 주님을 떠난다면 갈 곳이 어디 있는지 여쭌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의 은사와 성령으로 새로 태어남을 통하여 주님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베드로 사도가 믿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베드로 사도는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먼저 알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믿고 나서 알게 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먼저 알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게 됩니다. 우리가 믿고 알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께서 (…)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요한 11,27)을 믿고 알게 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