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이 책을 통하여, 아니 소화 데레사 성녀를 통하여 영성의 길이 육신을 억누르고 무거운 고신 극기를 하며 ...

『현대 복음화 - 교회의 선교학 총론』 외
2006년 10월호 (제 333호)
『현대 복음화 - 교회의 선교학 총론』 서평·심상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

연중 제26주일~제30주일
2006년 10월호 (제 333호)
10월 1일 ● 연중 제26주일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비정규 성체 분배자를 위한 교육 자료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성체성사, 나눔의 신비』 들어가는 말 - 성체성사의 중요성과 의미 옛말에 “음식 끝에 마음 상하면 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역사
2006년 10월호 (제 333호)
1. 공의회의 경험 1959년 교황 요한 23세는 가톨릭 주교단이 보편 교회 차원에서 장차 공의회 준비에 능동...

영국 교회와 한인 공동체를 소개합니다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영국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씻기도 전에 영국 차(English tea - 홍차에 우유를 듬뿍 부은 차)를 한 잔...

중국 주교 서품의 파장과 전망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서 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황청과 중국 정부 사이의 관계 개선이 목전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20...

의정부교구 민족 화해 사제 모임
2006년 10월호 (제 333호)
한 민족이 남북으로 나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남북한은 매우 이질적인 사회가 되었고, 우리는 통일과 ...

고해소의 비밀
2006년 10월호 (제 333호)
8월 늦장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두어 시간가량 자동차로 달려 작은 성당에 늦은 오후에...

가르침이 아니라 사귐이다
2006년 10월호 (제 333호)
헨리 나웬(Henri Nouwen)은 “감사하는 것이 선교사의 대표적 덕행이다.”라고 했다. 쉽게 동감할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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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수첩 2006년 10월호 (제 333호)

고해소의 비밀

윤인규

8월 늦장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두어 시간가량 자동차로 달려 작은 성당에 늦은 오후에 도착하였다. 대여섯 명쯤 되는 교우들이 새로 부임하는 나를 반갑게 맞았다. 도착하자마자 성당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성당 바닥이 온통 물바다가 되다 못하여 밖으로 줄줄 흘러나왔다. 제대 벽에 걸린 십자가와 감실의 모양과 크기가 어울리지 않아 제대 전체가 무겁게 느껴졌다. 성체께 인사를 드리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는데 거실 마루를 디딜 수가 없었다. 거실 마룻바닥이 푹 주저앉아 있었다. 그래도 몇몇 교우들은 열심히 도배를 하고 있었다. 자장면을 함께 먹고 날이 어두워지자 교우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만 홀로 남게 되었다. 현관문과 거실문은 잠금장치가 고장 나서 잠글 수가 없었다. 화장실은 계단 밑 공간에 있어서 고개를 들 수가 없고 그나마 배수도 되질 않았다. 부엌은 연탄을 사용하던 부뚜막이 있는 재래식이었는데, 빗물이 아궁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 창문을 열려고 하였더니 나무 문틀이 썩어 유리가 분리되었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첫날밤을 지냈다.
다음날은 맑은 하늘로 시작하였다. 성당 주변을 이곳저곳 살피고 마당으로 갔다. 쪽을 찐 키 작은 할머니가 성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잠시 뒤 다시 성당 밖으로 나와서 나에게 물었다.
“신분님 지시대유?”
“어떤 신부님요?”
“신분님이 또 지시간디유?”
“아, 예. 제가 어제 새로 온 본당 신부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윤 신부라고 합니다.”
“승사나 주슈.”
내 인사에는 관심도 없이 고해성사를 청하는 할머니를 따라 합판으로 만든 고해소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서 고해를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되묻자니 할머니 성미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 묻기도 어려웠다. 하느님께서 알아들으신 죄를 사해 주십사 청하며 보속을 드리고 사죄경을 외웠다. 고해소를 나오자 할머니는 나를 본 척도 않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부임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오후, 고해성사를 본 할머니가 또 성당에 왔다. 나를 보고 말하였다.
“승사나 주슈.”
신학생 때 들은 “사제에게 고해성사는 ‘인내(patientia)’이다.”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인내는 이유가 없는 애덕이며 겸손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은근히 화가 나려고 하였다. 판잣집 같은 성당과 사제관 때문에 머릿속이 어수선한데 쪽 찐 할머니가 연일 성사를 청하니 첫 본당 신부 자세도 못 잡아 보고 수세에 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날 오전 고해성사도 고해소 잡음 때문에 고해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부임 뒤 처음 맞는 주일이었다. 70여 명이 되는 교우가 구역과 공소에서 미사를 참례하러 왔다. 미사 전에 그 할머니는 또 고해성사를 청했다. 그날은 고해소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교우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때문에 그 할머니의 고해 내용을 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부임 뒤 첫 주일을 지내고 저녁에 뒷산을 오르며 생각하였다. 이 본당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구나. 내일은 고해소부터 고쳐 놓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산을 내려왔다. 교우들을 잘 알려면 고해성사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다음날 고해소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교우석과 사제석을 나누는 칸막이 구멍을 크게 뚫고 천을 붙여서 나름대로 고해소를 개량하였다. 고해소 개량이 막 끝나 가는데 그 할머니께서 또 오셨다.
“승사나 주슈.”
그날 고해는 아주 잘 들렸다. 그런데 나는 그날 고해성사를 마치고 얼마 동안 고해소를 나가질 못했다. 나는 쪽을 찐 구닥다리 헤어스타일에 키 작은 할머니, 퉁명스럽게 “승사나 주슈.”라고 말하는 할머니라서 흔한 고해가 아니겠나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고해는 세련된 화술이나 변명이나 둘러댐이나 늘어놓음이 아니었다. 아주 직선적이었고 간명하였다. 마치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과 행위가 간략했던 것처럼 할머니의 고해는 자기 성찰과 이해, 그리고 하느님의 너그러우신 은총에 대한 미안함이 잘 익은 옥수수 알처럼 또렷또렷하게 잘 박혀 있었다. 할머니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자신을 새로 창조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할머니가 갖는 하느님께 대한 미안한 마음은 마치도 돌아가실 때까지 부모님을 모시고도 효도를 못했다며 가슴 아파하는 효자의 마음과 같았고, 약 한번 제대로 못 해 주고 아내를 떠나보냈다며 눈물을 흘리는 남편의 마음과 같았다.
나는 그 본당을 떠날 때까지 고해소에서 그 할머니와 만나는 것이 즐거웠고 성당이 아름답고 사제관은 포근하게 느껴졌다. 내가 못 느끼는 하느님께 대한 미안한 마음을 늘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