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이 책을 통하여, 아니 소화 데레사 성녀를 통하여 영성의 길이 육신을 억누르고 무거운 고신 극기를 하며 ...

『현대 복음화 - 교회의 선교학 총론』 외
2006년 10월호 (제 333호)
『현대 복음화 - 교회의 선교학 총론』 서평·심상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

연중 제26주일~제30주일
2006년 10월호 (제 333호)
10월 1일 ● 연중 제26주일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비정규 성체 분배자를 위한 교육 자료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성체성사, 나눔의 신비』 들어가는 말 - 성체성사의 중요성과 의미 옛말에 “음식 끝에 마음 상하면 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역사
2006년 10월호 (제 333호)
1. 공의회의 경험 1959년 교황 요한 23세는 가톨릭 주교단이 보편 교회 차원에서 장차 공의회 준비에 능동...

영국 교회와 한인 공동체를 소개합니다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영국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씻기도 전에 영국 차(English tea - 홍차에 우유를 듬뿍 부은 차)를 한 잔...

중국 주교 서품의 파장과 전망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서 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황청과 중국 정부 사이의 관계 개선이 목전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20...

의정부교구 민족 화해 사제 모임
2006년 10월호 (제 333호)
한 민족이 남북으로 나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남북한은 매우 이질적인 사회가 되었고, 우리는 통일과 ...

고해소의 비밀
2006년 10월호 (제 333호)
8월 늦장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두어 시간가량 자동차로 달려 작은 성당에 늦은 오후에...

가르침이 아니라 사귐이다
2006년 10월호 (제 333호)
헨리 나웬(Henri Nouwen)은 “감사하는 것이 선교사의 대표적 덕행이다.”라고 했다. 쉽게 동감할 수 있는 ...

   1      


교부들의 복음 해설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연중 제26주일~제30주일

편집부

10월 1일 ● 연중 제26주일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 마태 18,1-5에서

겸손에서 시작하는 성장
나무를 주의해 보기 바랍니다. 나무가 높이 자라려면 먼저 아래를 향해 자랍니다. 나무는 뿌리를 땅속 깊이 굳게 내려서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자랄 수 있도록 합니다. 나무는 겸손에서 시작하여 자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겸손 없이는 높은 것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잠언 18,12 참조). 여러분은 뿌리도 없이 하늘을 향해 자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성장이 아니라 파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38

낮은 자의 영광
그리스도께서는 낮은 것으로 만족하고 겸손해서 자신을 높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을 [스스로] 낮추는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 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거룩한 영혼은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만의 병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이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한 마음으로 장식합시다. 성인에게 걸맞은 소박한 마음을 가지면 소박함을 높이 보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54

명예욕이라는 병
명예에 대한 열정과 욕망이 제자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누가 가장 큰사람인가에 관한 논쟁은 다른 사람들 위에 서고 싶어 하는 욕망이 넘치는 이가 있다는 징표입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쓴 열매를 맺는 뿌리와 같은(히브 12,15 참조) 제자들의 이러한 마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못된 이가 씨를 뿌려 놓은 가라지를 보셨습니다. 그것이 더 크게 자라고 뿌리를 깊이 내리고 제자들의 마음을 빼앗기 전에 그 악을 뿌리째 뽑아 버리셨습니다. … 영혼의 의사이신 분께서 어떻게 제자들의 명예욕을 잘라 버리셨습니까? …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셨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을 제자들과 그들의 후계자인 우리를 위한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원칙적으로 이 명예욕이라는 병은 어떤 면에서든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이들이 잘 걸립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54

주님을 따르는 어린이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불러내신 어린이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어린이를 순수하고 겸손한 삶의 전형으로 보여 주고 계십니다. 어린이에게는 사기 치는 마음이 없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진실합니다. 어린이의 생각은 단순합니다. 어린이는 지위를 탐내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아지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이를 소박함과 순수함의 유형으로 보여 주시고 당신 곁에 앉히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어린이와 같은 사람을 받아들이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어린이를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과 마음이 같고 주님의 길을 따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님 곁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54

어린이의 소박함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린이의 본성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곧 우리는 어린이의 소박함을 기억하고 육신과 마음의 결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믿음을 통해, 믿는 모든 어린이를 부르셨습니다. 어린이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따르고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이웃에 대하여 나쁜 마음을 품을 줄도 모릅니다. 재물에 관심도 없습니다. 교만하지도 않고 미워할 줄도 모르며 거짓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들은 것을 믿고 그것을 참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이런 습관을 가지고 모든 감정에 적용하면 하늘로 향한 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이의 소박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소박함으로 주님의 겸손의 아름다움을 포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오, 「마태오 복음 강해」 18,1

10월 8일 ● 연중 제27주일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마르 10,2-16에서


부부의 의미
하나의 희망, 하나의 소망, 하나의 원칙, 하나의 섬김을 함께하는 두 신앙인들이 짊어진 것은 무엇이겠습니까?(에페 4,4 참조) 이들은 영혼과 육신에서 친밀합니다. 이들은 이해의 충돌 없이 서로에게 봉사합니다. 이들은 참으로 “둘이 한 몸이”(창세 2,24; 마태 19,5; 에페 5,31) 되었습니다. 몸이 하나가 되면 마음도 하나가 됩니다. 이들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절하고, 함께 단식하며, 서로 가르치고, 서로 간청하고, 서로 의지가 되어 줍니다. 하느님의 교회에서 이들은 동등한 지위에 있습니다(로마 12,15;15,6; 1코린 12,12; 갈라 3,28 참조). 이들은 하느님의 성찬에 같이 참석하고, 탄압을 같이 견디며, 위기에도 같이 맞서고, 원기 회복도 같이 합니다. 이들은 서로 아무것도 숨기지 않습니다. 이들은 서로 존중하며,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 「자신의 아내에게」 2,8

신랑이신 주님과 신부인 교회
아버지께서는 신비한 계획으로 당신의 유일하신 아드님을 위하여 신부를 마련해 놓으시고는 아드님께 그 신부를 예언적 표징을 통하여 소개해 주셨습니다. … 모세는 성경에서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참으로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언자인 모세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미리 나타내려고 이런 식으로 남자와 여자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모세는 예언자적 통찰을 통해 세례의 신비로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을 관상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의 태중에서 이미 교회를 당신께 이끄시고 교회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신랑과 신부는 신비한 방법으로 온전한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모세는 둘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 하느님의 아드님과 교회가 결합된 정도로 남편과 아내가 가까이 결합되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주님 이외에 어떤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수 있습니까? 어떤 신부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남편으로 맞이합니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당신의 상처로 혼인 유대를 봉인하신 분 이외에 어떤 남편이 자신의 피를 아내에게 선물합니까? 그 누가 피로연에서 슬픔을 달래려 남편을 끌어안는 아내 곁에서 주검이 되어 눕습니까? 그 어떤 축제, 그 어떤 잔치에서 빵의 형상을 한 신랑의 몸을 손님들에게 나누어 줍니까? [원래] 죽음은 남편과 아내를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죽음이 남편과 아내를 결합시킵니다.
사룩의 야고보, 「강론」

모세의 옹호
주님께서는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마태 19,8) 율법을 만드셨다고 하시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지혜로 이를 옹호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기에 모세가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비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언제나 그러신 것처럼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그들의 생각에 돌리셨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들이 이삭을 모으는 것을 보고 비난하자 주님께서는 비난하는 사람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마태 12,1-7 참조).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들이 손을 닦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야말로 율법을 어기는 이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 이와 같은 일이 여기에서도 일어난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해」 62,2
어린이들의 본성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막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린이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많은 사람들 때문에 피곤해하시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은 사악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은 쾌락, 간통, 도둑질을 모릅니다. 어린이들은 들은 대로 믿습니다. 어린이는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 주님께서는 본성의 선물에 따른 어린이들의 본질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자라나야 합니다. 이것이 삶의 거룩한 길이고 하늘나라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린이들처럼 모든 죄에서 멀어지지 않으면 주님께 다가갈 수 없습니다.
라틴의 에피파니우스, 「복음 해설」 25

10월 15일 ● 연중 제28주일

하느님 나라와 부자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 마르 10,17-30에서

영원한 생명의 의미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생명을 얻고 싶으면”이 아니라 “생명에 들어가려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선 이 생명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생명이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 생명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얼마나 힘든 것이든, 얼마나 비참한 것이든 사람들은 생명을 끝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는 끝이 날 비참한 생명도 때로는 그토록 사랑받는다면, 영원한 생명은 얼마나 사랑을 받을지 생각해 보고 알아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 생명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사랑을 받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상의 삶(생명)을 사랑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열심히 일하고, 달리고, 바쁘게 다니고, 헐떡거립니다. 이렇게 바쁜 삶의 의무를 소홀히 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옷을 꿰매고, 밭을 갈고, 새 땅을 간척하고, 항해하고, 곡식을 빻고, 요리하고, 옷감을 짭니다. 결국 이 모든 노고 끝에 여러분은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사랑하는 이 척박한 삶에서 여러분은 어떤 고생을 하는지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영원히 살고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성전, 바위, 자갈, 쇠와 납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모든 것도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이러한 것들을 견디지 못하여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다스리기를 바란다면 영원한 생명을 찾도록 힘쓰십시오.
아우구스티노, 「설교」 84,1

율법의 효용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생명에 관하여 여쭈어 본] 어떤 사람에게 단순히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갈라 3,11)고 한 대로 율법이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사는 삶이 사람들을 천상의 것에 익숙하도록 잠시 훈련시키는, 곧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일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갈라 3,24) 하였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사회 정의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는 완성이신 분입니다. 선이 정의로운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운 행위는 율법으로 드러나지만 선함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레위 24,20)고 하여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보복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39`-`40)라고 말씀하셔서 앙갚음하는 복수 대신에 더 큰 선으로 나아가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양탄자」 218

큰 계명과 작은 계명
그 젊은이가 들은 말을 우리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앉아 계시지만 지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외치시는 것을 듣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호령하신다고 해서 죽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더 큰 계명을 지키고 싶지 않다면 작은 것이라도 실행하십시오. 더 큰 계명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작은 것을 지키는 것이 더 나은 일입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서둘러 하십시오. 둘 다 거부하지 마십시오. 더 큰 계명은 주님께서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작은 계명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19,18-19)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계율을 실천하십시오.
아우구스티노, 「설교」 85,1

구세주를 따르는 법
완전해지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처럼 전부를 팔아 치워야 합니다(사도 5,1-2 참조). 하나니아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재산을 전부 팔아서 하늘나라에 보물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부유함을 무시한 다음에 구세주를 따르지 않았다면 곧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지 않았다면 완전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작은 돈을 경시하는 것이 자신의 의지를 다루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버리고도 구세주를 따르지 않습니다. 구세주를 따른다는 것은 구세주를 닮고, 그분께서 가신 길을 따라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께서 가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
예로니모, 「마태오 복음 강해」 3,19.21

낙타와 바늘구멍
건방졌던 젊은이는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을 보상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였습니다. 이 젊은이는 이와 유사한 사람들의 대표격입니다. 십자가와 수난이 그에게는 걸림돌이었던 것입니다. … 이 젊은이는 율법을 뽐내고, 이방인을 경멸하고, 복음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오랫동안 율법으로 단련되어 온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겸손을 가르치는 복음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운 일인 것입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오, 「마태오 복음 강해」 18,1


주님의 제자 됨의 의미
모든 민족에게 파견된 제자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보십시오. 다른 이들은 부름을 받아도 변명거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일의 완성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장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좋은 것도 볼 수 있도록 앞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 주님께서는 앞으로 올 날에 대한 생각으로 제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선행을 하면서 사는 이들은 그날을 학수고대할 것입니다. … 그러니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십시오. 죄에서 벗어나십시오. 우리가 바라면 은총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해」 90,2

높은 데에서 오는 힘
제자들은 분명히 주님을 보고 만져 보고 느껴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만져 보아 굳은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는 것을 보며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는 주님을 둘러싼 천사들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제자들을 위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눈으로 보고 주님의 옆구리를 만져 보았어도, 자신들이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릇된 것에 맞서 싸우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진리를 선포하고자 모든 것을 용감하게 견디리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누가 제자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부여하였습니까?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49). … 베드로 사도가 있었지만 아직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기”(요한 3,27)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설교」 265D, 6

주님의 놀라운 권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얼마나 멋진 결론입니까? 주님께서는 먼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세례성사를 통해 세례를 준 다음, 주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명령이 큰 효과가 없거나 몇 가지에 제한되지 않도록 주님께서는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이들은 누구든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로니모, 「마태오 복음 강해」 4,28,18-20

10월 15일 ● 연중 제28주일

하느님 나라와 부자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 마르 10,17-30에서

영원한 생명의 의미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생명을 얻고 싶으면”이 아니라 “생명에 들어가려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선 이 생명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생명이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 생명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얼마나 힘든 것이든, 얼마나 비참한 것이든 사람들은 생명을 끝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는 끝이 날 비참한 생명도 때로는 그토록 사랑받는다면, 영원한 생명은 얼마나 사랑을 받을지 생각해 보고 알아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 생명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사랑을 받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상의 삶(생명)을 사랑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열심히 일하고, 달리고, 바쁘게 다니고, 헐떡거립니다. 이렇게 바쁜 삶의 의무를 소홀히 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옷을 꿰매고, 밭을 갈고, 새 땅을 간척하고, 항해하고, 곡식을 빻고, 요리하고, 옷감을 짭니다. 결국 이 모든 노고 끝에 여러분은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사랑하는 이 척박한 삶에서 여러분은 어떤 고생을 하는지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영원히 살고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성전, 바위, 자갈, 쇠와 납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모든 것도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이러한 것들을 견디지 못하여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다스리기를 바란다면 영원한 생명을 찾도록 힘쓰십시오.
아우구스티노, 「설교」 84,1

율법의 효용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생명에 관하여 여쭈어 본] 어떤 사람에게 단순히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갈라 3,11)고 한 대로 율법이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사는 삶이 사람들을 천상의 것에 익숙하도록 잠시 훈련시키는, 곧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일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갈라 3,24) 하였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사회 정의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는 완성이신 분입니다. 선이 정의로운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운 행위는 율법으로 드러나지만 선함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레위 24,20)고 하여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보복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39`-`40)라고 말씀하셔서 앙갚음하는 복수 대신에 더 큰 선으로 나아가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양탄자」 218

큰 계명과 작은 계명
그 젊은이가 들은 말을 우리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앉아 계시지만 지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외치시는 것을 듣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호령하신다고 해서 죽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더 큰 계명을 지키고 싶지 않다면 작은 것이라도 실행하십시오. 더 큰 계명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작은 것을 지키는 것이 더 나은 일입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서둘러 하십시오. 둘 다 거부하지 마십시오. 더 큰 계명은 주님께서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작은 계명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19,18-19)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계율을 실천하십시오.
아우구스티노, 「설교」 85,1

구세주를 따르는 법
완전해지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처럼 전부를 팔아 치워야 합니다(사도 5,1-2 참조). 하나니아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재산을 전부 팔아서 하늘나라에 보물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부유함을 무시한 다음에 구세주를 따르지 않았다면 곧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지 않았다면 완전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작은 돈을 경시하는 것이 자신의 의지를 다루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버리고도 구세주를 따르지 않습니다. 구세주를 따른다는 것은 구세주를 닮고, 그분께서 가신 길을 따라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께서 가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
예로니모, 「마태오 복음 강해」 3,19.21

낙타와 바늘구멍
건방졌던 젊은이는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을 보상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였습니다. 이 젊은이는 이와 유사한 사람들의 대표격입니다. 십자가와 수난이 그에게는 걸림돌이었던 것입니다. … 이 젊은이는 율법을 뽐내고, 이방인을 경멸하고, 복음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오랫동안 율법으로 단련되어 온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겸손을 가르치는 복음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운 일인 것입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오, 「마태오 복음 강해」 18,1


10월 22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제자들의 사명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 마태 28,16-20에서

주님의 제자 됨의 의미
모든 민족에게 파견된 제자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보십시오. 다른 이들은 부름을 받아도 변명거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일의 완성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장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좋은 것도 볼 수 있도록 앞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 주님께서는 앞으로 올 날에 대한 생각으로 제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선행을 하면서 사는 이들은 그날을 학수고대할 것입니다. … 그러니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십시오. 죄에서 벗어나십시오. 우리가 바라면 은총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해」 90,2

높은 데에서 오는 힘
제자들은 분명히 주님을 보고 만져 보고 느껴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만져 보아 굳은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는 것을 보며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는 주님을 둘러싼 천사들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제자들을 위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눈으로 보고 주님의 옆구리를 만져 보았어도, 자신들이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릇된 것에 맞서 싸우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진리를 선포하고자 모든 것을 용감하게 견디리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누가 제자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부여하였습니까?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49). … 베드로 사도가 있었지만 아직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기”(요한 3,27)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설교」 265D, 6

주님의 놀라운 권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얼마나 멋진 결론입니까? 주님께서는 먼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세례성사를 통해 세례를 준 다음, 주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명령이 큰 효과가 없거나 몇 가지에 제한되지 않도록 주님께서는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이들은 누구든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로니모, 「마태오 복음 강해」 4,28,18-20


10월 29일 ● 연중 제30주일

눈먼 이를 고치시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 마르 10,46-52에서

영혼의 빛을 담는 눈
주님의 명령은 뚜렷하게 빛나고 눈이 번쩍 뜨이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십시오. 볼 수 있는 힘을 받으십시오. 하느님과 인간을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여러분의 빛을 받으십시오. 금과 보석보다 더 기쁘고 꿀과 밀랍보다 더 바람직한 것이 우리를 깨치는 말씀입니다(시편 19, 11). 어둠에 잠긴 마음을 밝히시고 뚜렷이 볼 수 있는 영혼의 “빛을 담는 눈”을 주시는 분이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 그러니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하느님이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알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저를 구하고 주님의 노래가 저를 깨우칠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아 방황하였지만 이제 주님께서 저의 길을 밝혀 주십니다. 주님을 통해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통해 하느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주님의 형제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으셨기에 저는 주님과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진리에 대한 망각을 떨쳐 버립시다.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한 무지와 어둠의 안개를 걷어 냅시다. 그리고는 먼저 “모두 찬양하라! 오! 빛이여!”를 외치며 참된 하느님을 관상합시다. 어둠에 묻히고 죽음의 그림자에 갇힌 우리 위로 하늘의 빛이 비춥니다. 태양보다 더 빛나고 지상의 그 어떤 삶보다 더 달콤한 빛이 우리를 비춥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그리스인을 향한 권고」 2

진지한 믿음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이들이 눈먼 사람을 꾸짖는 것을 가만히 듣고 계셨습니다. 그의 갈급함을 더욱 드러내어 우리가 치유를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눈먼 사람에게]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하셨듯이 “너는 믿느냐?” 하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소리 지르고 주님께 다가오려고 애쓰는 모습만으로도 그 믿음이 충분히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천하고 버림받았다 해도 우리가 참으로 진지하게 하느님께 다가가면 우리가 바라는 것에 가까이 가게 됩니다. 눈먼 사람을 대신하여 호소해 주는 사도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잠자코 있으라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눈먼 사람은 이 모든 장애를 이기고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복음사가들은 눈먼 사람의 믿음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그의 끈기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눈먼 사람의 진지함이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고도 남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해」 66,1

은총에 합당한 이들
왜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말씀하셨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치유하시려는 사람에게서 우선 최상의 도덕성을 찾아내신 다음에야 치유해 주신 경우가 보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선성을 본받아 합당한 방식으로 치유의 은사를 받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를 들어 가나안 여자나(마태 15,21-28 참조) 백인대장(마태 8,5 이하 참조), 그리고 하혈하는 여인의 경우에도 이와 같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특히 이 놀라운 [하혈하는] 여인이 주님께서 무슨 질문을 하실지 알고 있었음을(마태 9,18-26; 마르 5,21-43; 루카 8,40`-`56 참조) 기억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여인을 그냥 지나쳐 가시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여인이 이미 치유가 되고 나서도 주님께서는 누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는지 찾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여러 경우에 [사람들을] 진지하게 보살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께 다가온 사람들의 선성을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더욱 훌륭하게 보이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여기에서도 그리하신 것입니다. 눈먼 사람들이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소리치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눈에 손을 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목적은 자비와 은총이 넘치는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도 찾으십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해」 66,1

이중으로 눈먼 사람
눈먼 사람이 눈을 뜨고 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의무를 소홀히 하였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성경에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는 이중으로 눈이 먼 상태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는 육신의 눈이 먼 상태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이 눈먼 상태에서도 벗어난 것입니다. 그 눈 멀었던 사람이 영적 직관이 없었다면 주님을 하느님으로 찬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눈이 멀었던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드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군중들도 그것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루카 복음 강해」 126

눈먼 사람의 의미
눈먼 사람은 인류를 상징합니다. 우리 모두의 조상인 첫 인간이 죄를 지었기에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 불신이 눈을 멀게 하고 믿음이 눈을 뜨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어떤 신자를 보시게 되겠습니까? … 악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사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볼 수 있으면 안내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안내하고 깨우쳐 줄 분이 필요 없다면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먼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44,1

보지 못하는 이들과 보는 이들의 심판
주님께서는 “…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주님의 이런 말씀에 바리사이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 주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요한 9,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바리사이들은 “우리는 잘 본다.”(요한 9,41)라고 말하면서 의사를 찾지 않기에 눈이 먼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 그러나 자신이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을 뜨려고 의사를 찾아 나섭니다. …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지금 심판을 하지는 않으십니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요한 3,17)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44,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