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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이 책을 통하여, 아니 소화 데레사 성녀를 통하여 영성의 길이 육신을 억누르고 무거운 고신 극기를 하며 ...

『현대 복음화 - 교회의 선교학 총론』 외
2006년 10월호 (제 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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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일~제30주일
2006년 10월호 (제 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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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성체 분배자를 위한 교육 자료
2006년 10월호 (제 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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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역사
2006년 10월호 (제 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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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교회와 한인 공동체를 소개합니다
2006년 10월호 (제 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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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교 서품의 파장과 전망
2006년 10월호 (제 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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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민족 화해 사제 모임
2006년 10월호 (제 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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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소의 비밀
2006년 10월호 (제 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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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이 아니라 사귐이다
2006년 10월호 (제 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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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한 권 2006년 10월호 (제 333호)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이경우

이 책을 통하여, 아니 소화 데레사 성녀를 통하여 영성의 길이 육신을 억누르고 무거운 고신 극기를 하며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즐거워하지도 말아야 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을 즐겁게 또 이웃을 즐겁게 하면서 일상의 사소한 일을 겸손과 사랑으로 하면 되는 길이라는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

필자가 덕원 소신학교에 입학할 무렵의 영성은 이른바 삼구 전쟁을 근간으로 하는 고신 극기를 통한 위대한 사업이나 그 무슨 업적을 목표로 한 고된 길이었다. ‘영성’이라고 하면 행복한 일, 인생의 즐거움이란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었다. 예컨대 배부르게 먹는 일, 호의호식하며 아름다운 것을 즐기는 일 등은 영성 생활에 동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영성에 전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본질적인 어떤 부분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마음껏 행복하게 되는 것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은수자, 수도자들이 모두 이러한 사상으로 일생을 바치신 분들이다.
수 세기를 거쳐서 ‘영성적’ 저자들은 ‘영성’을 신체적인 것의 부정과 연결시켜 왔다. 그리고 신체적인 것을 ‘수성(獸性, bestialitas)’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영성은 신체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을 경시하는 데서 나왔으며, 그 안에 휩싸여 있었다. 이 같은 사상에 따르면,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사이에 상반점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영성은 신적인 것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인간적인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 생활의 즐거움 같은 것은 영성과 대립적 입장에 있든가 또는 치지도외시되든가 하는 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영성과는 무관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기에 영성에 깊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기에게 본질적인 그 무엇을, 곧 포기 불가능한 그 무엇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란 행복하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될 권리도 있다. 이 대단히 깊은 인간의 원의와 상반되는 영성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필자가 신학교에 들어갈 시기에는 바로 위와 같은 영성의 사조로 일관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그때 당시에 사제가 되는 일은`-`좀 쑥스러운 표현이지만`-`성인이 되는 길, 성인이 되어야만 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필자 역시 위와 같은 실현하기 어려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부담을 가슴에 품고 신학교 문을 두드린 것이다.
그런데 신학교에 입학하자 손에 잡힌 영적 독서용 책이 바로 이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우리말로 된 지금의 그 자서전이 있을 리 없었고, 일본어로 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이 있었는데, 책 제목은 “작은 꽃”이라고 되어 있었다. 필자는 이 책을 탐독했다. 그리고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때 신학교 사감 신부님이 이 책에 너무 빠져 들지 말라고 권고했던 기억이 있다.
하여간 이 책을 통하여, 아니 데레사 성녀를 통하여 영성의 길이 육신을 억누르고 무거운 고신 극기를 하며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즐거워하지도 말아야 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을 즐겁게 또 이웃을 즐겁게 하면서 일상의 사소한 일을 겸손과 사랑으로 하면 되는 길이라는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
데레사 성녀는 우선 자기 자신을 작게 보았다. 세상은 하느님의 정원인 바, 그 안에는 장미, 백합 등 화려한 큰 꽃도 많지만 자기는 한구석에 피어난 패랭이꽃, 곧 작은 꽃이라고 했다. 바로 이렇게 겸손의 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성녀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아갔다.
예를 하나 들라면, 성녀가 교황님 알현을 위하여 로마로 갈 때, 기차로 스위스를 통과했던 모양이다. 그때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스위스 산 경치는 절경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성녀는 그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서 하느님을 찬양했다. 그 순간 성녀 옆에 자리한 남자들은 아름다운 산 경치는 아랑곳도 없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성녀는 이상하게 여겼다는`-`왜 이다지 아름다운 경치를 외면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는가?`-`글을 그 자서전에서 읽을 수 있다.
성녀는 남을 위한 봉사를 하되 사랑과 정성을 쏟아 부으면서 했다. 어떤 까다로운 환자 수녀는 남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는데, 그 수녀는 꼭 데레사 수녀가 와서 봉사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아마도 지극 정성을 다한 봉사였으리라.
겸손하면서도 이웃에게 봉사하고 매사를 사랑과 겸손으로 하는 자세, 이것이 성녀의 영성이었다. 성녀의 언니가 같은 수녀원의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을 때, 성녀는 그 원장 수녀 방을 지날 때는 뛰어서 지나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언니를 만나고 싶은 심정, 말 몇 마디 하고 싶은 심정을 억제했다는 말이다.
성녀가 마지막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옆방에서 어떤 수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데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나면 원장 수녀님은 데레사 수녀에 대하여 할 말이 없어서 곤란하겠다.” 이 말소리를 듣고 성녀는 매우 기뻐했다는 이야기다.
끝으로 성녀는 봉쇄 수도원 안에서 일생을 살았으나 전교 지방 선교사들을 도와주는 데 남다른 열정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오늘에 와서는 세계적 선교 수호성인으로서 추앙되고 있다.
일상의 일을 겸손과 사랑으로, 평범한 일을 비범한 지향으로 해 나가는 데 영성의 명쾌한 해답이 있음을 일생의 생활을 밝혀 가면서 알려 주는 책,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필자는 신학생, 사제, 나아가서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