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2006년 12월호 (제 335호)
“내가 만든 것을 더럽다 하지 말라.”는 말씀을 외치며 성과 속의 이원론을 타파하고자 하는 나의 삶은, ...

『활기찬 청소년 사목을 위하여』외
2006년 12월호 (제 335호)
『활기찬 청소년 사목을 위하여』 서평·심상태 서평자는 청소년 사목 활성화가 한국 교회의 미래 존폐가 ...

대림 제1주일~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2006년 12월호 (제 335호)
그동안 교부들의 복음 해설을 게재하도록 허락하여 준 한국교부학연구화와 분도출판사 그리고 번역을 담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2006년 12월호 (제 335호)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세계는 하나’(We are the world)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되었다. 88올림픽과 함께 해...

국제 카리타스 대북 사업 위임과 관련한 한국 카리타스의 입장
2006년 12월호 (제 335호)
친애하는 형제·자매님들! 사랑이신 하느님의 은총이 칠천 칠백만 우리 민족 모두에게 풍성히 내리시기를 ...

나자렛의 영성
2006년 12월호 (제 335호)
이 글은 나자렛의 ‘특정한’ 영성이 아니라 ‘나자렛’이라는 핵심 단어를 중심으로 전개된 다양한 영성의...

“에따 라씨야!”(여긴 러시아입니다!)
2006년 12월호 (제 335호)
“에따 라씨야!”라는 말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상식이 통하지 않는) 러시아의 사회적 ...

마산교구 사제 모임 ‘오름’
2006년 12월호 (제 335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과 친교의 공동체를 위하여! 2006년 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은 마산교구의 중...

제 배우자인 신자들을 사랑합니다
2006년 12월호 (제 335호)
저희 인덕 본당은 2004년 9월에 신설되어 제가 첫 본당 신부로서 현재 살고 있습니다. 저희 본당의 위치는,...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
2006년 12월호 (제 335호)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1      


내 인생의 책 한 권 2006년 12월호 (제 335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임문철 (제주교구 신부)

“내가 만든 것을 더럽다 하지 말라.”는 말씀을 외치며 성과 속의 이원론을 타파하고자 하는 나의 삶은, 공의회 문헌인 사목 헌장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너는 멋진 신부가 되거나 아니면 문제 신부가 될 것이다.” 사제 수품을 앞두고 신학교 생활을 마감하며 사은회를 하는 자리에서 어느 은사 신부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제 힘든 준비 기간이 다 끝났다는 안도의 기쁨과 사제 생활에 대한 벅찬 기대로 들떠 학창 시절의 무용담과 은사님들의 기행을 웃음 속에 떠드는 가운데 조용히 내 귀에 들려주신 말씀이라 다른 친구들은 하나도 엿듣지 못했겠지만, 내 안에 잠재워 있던 깊은 불안을 깨우는 한 말씀이었다.
물론 그 말씀은 단순한 우려만이 아닌 기대가 섞인 것임도 알았다. 우려가 훨씬 더 컸다면 마지막 사정 회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힘이 은사 신부님의 마음을 움직여, 제자와의 마지막 자리에서 그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말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던가?
내가 누구던가? 그래도 그 누구보다도 진골 가톨릭이 아니던가? 비록 순교자의 집안은 아니었지만 전교 회장인 아버님 덕분에 유아 세례를 받았고, 성당 마당을 내 놀이터로 삼고 자랐다. 또한 초등학교 1학년 때 첫영성체를 했고, 그 자리에서 커서 뭐가 되겠느냐는 본당 신부님의 질문에 당당히 신부가 되겠다고 대답을 했다. 당시는 제주 출신 신부가 한 명도 없던 시절이라 길 가던 할머니가 나를 만나면 내 손을 꼭 잡고 “네가 신부가 될 때까지 내가 살 수 있을까?” 하시며 꼬깃꼬깃 감춰 뒀던 지폐를 꺼내 주시곤 하지 않았던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꼬마 신부였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구에서 막 시작한 선목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 첫날, 규칙, 특히 대침묵에 대해 배우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친구들이 이불 속에서도 소곤대는 소리를 듣고는 “신부가 되겠다고 온 녀석들이 대침묵도 안 지키고….”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도 모범적인 신학생이 되기로 작심을 했었다. 기상 종이 울리기 전에 깨어나 세면도구를 조용히 챙겨 두었다가 종이 울리면 누구보다 먼저 벌떡 일어나, 세면장에도 성당에도 제일 먼저 도착했다. 수업 끝 종이 울리자 답을 쓰던 손을 그대로 멈춰 버린 도미니코 사비오의 답안지에 하느님께서 나머지 부분을 황금으로 써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대로 따르도록 애썼다. 덕분에 학업에서도, 운동에서도, 문예 활동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었고, 제주도 촌놈이 급장에, 학생회장에다가 수석 졸업하는 가문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당시 교장이었던 고 이갑수 주교님은 나를 두고 “다른 놈들은 신부가 안 되도, 저 놈만은 꼭 신부가 될 거야.”라는 평을 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신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아니 학교 도서관이 문제였다. 소신학교에서는 도서실이 아동 문학 수준이었고, 다른 세계 명작은 금서 목록에 올라 있어, 읽다가 들키면 퇴학을 당할 정도였다. 그런데 대신학교에 오자 교수 신부님들은 폭넓은 독서를 권장하였고, 방대한 도서관의 그 수많은 책들이 다 내 손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마치 가뭄으로 갈라졌던 저수지 바닥이 단비를 빨아들이듯, 문학에 굶주렸던 내 마음은 동서고금의 명작들을 게걸스럽게 탐닉하기 시작하였다. 그 두꺼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수업에도 빠지기 일쑤였고, 취침 시간에도 잠자리에서 살며시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읽고, 심지어는 면회실의 비상등에 의지하여 읽으며 밤을 새기도 하였다.
그때 만난 가장 매혹적인 사람이 바로 “방랑해 본 자만이 흘러가는 저 구름의 의미를 안다.”고 노래했던 헤르만 헤세였다. “진세를 버렸어라. 이 몸마저 버렸어라. 깨끗이 한 청춘을 부르심에 바쳤어라.” 서울 신학교의 교가에도 있듯이, 티끌 같은 덧없는 세상을 버리고 이 한 몸 온전히 하느님께 드리는 순결한 희생 제물이 되고자 한 내가 아닌가? 그런 나의 모습이 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에 그대로 묘사되었고, 『데미안』에서는 내가 전혀 모르고 있던 세상을 엿보는 구멍을 마련해 주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새는 아프락사스에게로 날아간다.”는 구절은 “든든하다고 믿었던 그 발판이 어느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대학 생활을 영위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대학 국어 교과서의 한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있던 나에게 성경 말씀 이상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선과 악의 신이라는 아프락사스의 정체에 호기심이 밀려왔는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만나면서 나도 아프락사스에게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지성적인 수도원장 나르치스와 감성적인 방랑자 골드문트의 우정 이야기로서, 읽으면서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어 주었다. 현실 속에서 나는 신부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는 나르치스였다. 사제직은 하느님의 소명이요, 내가 아는 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소설 안에서 나는 골드문트가 되어 신학교의 담장을 뛰어넘어 깊은 숲 속을 떠돌며 온갖 위험과 외로움, 추위와 굶주림, 욕망과 좌절을 함께 겪었다. 그러면서 성과 속, 순결함과 타락, 고귀함과 천박함, 지고한 사랑과 본능적 쾌락을 함께 지닌 영원한 어머니 마리아의 조각상을 완성함으로써 자아를 온전히 실현해 나가는 골드문트를 보며 독백하는 나르치스가 되었다.
“이성과 도덕의 기준으로 보면 그 자신의 인생이 더 낫고 올바르고 더 안정되고 정돈되어 있으며 더 모범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의 인생은 잘 짜인 질서 속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어김없이 봉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시키는 삶이었고, 늘 새로이 명료함과 의로움을 추구하는 삶이었다. 그것은 방랑자나 바람둥이로 살아가는 예술가의 인생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더 나은 삶이었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관점,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어떨까? … 세상에 등을 돌리고 손을 씻은 채 정결한 삶을 살면서 조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사상의 정원을 꾸며 놓고 잘 가꾸어진 화단 사이로 죄를 모르고 거니는 것보다는 어쩌면 세상의 끔찍스런 흐름과 혼돈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러다가 죄를 짓기도 하고 죄의 쓰라린 결과를 감수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더 당당하고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교회 어른들과 교우들의 애정 어린 우려를 알면서도, 사제관을 지키기보다는 지역 문제와 소외된 이들의 처지를 고민하는 시민 단체의 회합과 거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의 삶, “내가 만든 것을 더럽다 하지 말라.”는 말씀을 외치며 성과 속의 이원론을 타파하고자 하는 나의 삶은, 공의회 문헌인 사목 헌장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나는 아직도 멋진 신부이기보다는 문제 신부로 남아 있지만, 이제 문제 신부라는 것이 더 멋있어 보이니 이를 어이할꼬?

임문철 | 제주교구 신부. 198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교구 사목국장과 교육국장, 서귀 복자 본당과 서문 본당 주임을 지냈다. 지금은 제주 중앙 주교좌 본당 주임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