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신자들의 기도」에 관한 고찰(考察)
1967년 5월호 (제 1호)
1. 기도의 역사와 그 의미 신자들의 기도 즉 공동기도는 새로된 것이 아니고 벌써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다....

제 2차 공의회에서 제시된 평신도 사도직
1967년 5월호 (제 1호)
서 론(序論) 평신도 사도직 문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취급한 문제 중에 가장 비중(比重)이 큰 문제 중...

새 교리서의 교회상(敎會像)
1967년 5월호 (제 1호)
교황 바오로 6세는 우리가 앞으로 신자들에게 교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공의회 정신에 상응...

대인 영세의 새 의식서 (儀式書)
1967년 5월호 (제 1호)
성 토요일 부활 전야의 전례를 개정한 중요한 발기인 중 한 사람인 P. Low 는,비오 12세가 완성한 개...

공의회는 왜 있었는가
1967년 8월호 (제 2호)
I. 머 리 말 역사적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종결된지도 어언 2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분명히 그 공...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
1967년 8월호 (제 2호)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헌장 중에서 가장 핵심이라 볼 수 있는「교회에 관한 교의헌장」(Constitutio Dogm...

결혼문제에 관한 고찰(考察)
1967년 8월호 (제 2호)
우리 교회는 소위 결혼의 불가해소성을 부르짖으며 교회에서 성사로써 이루워지는 혼배는 물론 사회적인 정...

젊은 세대
1967년 8월호 (제 2호)
인간은 날 때부터 악(惡)으로만 기울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선(善)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생물계의 진화(進化)는 확실한 것인가
1967년 8월호 (제 2호)
많은 신자들은 진화론에 대한 말을 들을 때에 불안감을 느낀다. 들리는 바에는 모든 생물들이 간소한 형태...

복음은 교회 안의 모든 신심의 기준이다
1967년 8월호 (제 2호)
I. 문제 제기 작년 여름에 「덕행의 실천」이란 책이 발간되었다. 그 책은 예수회 수련장 Rodriguez 신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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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1974년 1월호 (제 31호)

실존주의적 역사관의 방향

林 錫 珍 (명지대 철학과 교수)

삶이란 인식하는 사람의 실험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마치 위대한 해방자와도 같이 나를 덮쳤던 날, 바로 그 날로부터 나에게는 삶이란 것이 더욱…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니이체 著「즐거운 學問」에서〉

1. 철학과 역사

철학이 예로부터 추구하며 또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존재자로서의 나의 '모습'을 확인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즉 求心的인 하나의 '나'라는 존재는 마치 광활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대자연과 우주 속의 한 모래알과도 같은 微細하고 허약하며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내맡겨진 그러한 존재에 불과하였으나 그에게는 어느덧 인간으로서의 나의 위치와 나의 세계, 그리고 나의 소우주를 형상화하기 위한 방향과 방법의 모색이 필수적 과제로 등장하였다.

이 자연 속의 迷兒가 미몽의 원시상태를 벗어나면서 나의 존재와 그 의미를 알려고 발돋움하던 이와같은 '철학적' 욕구의 가장 초기에 나타나는 두드터진 양상은 '나'를 둘러싼 주위 환경 으로부터 그가 받게 되는 놀라움이며 또한 동시에 '공포', ‘불안'의 감정이다.
쉴 새없이 나의 마음을 두드려대는 이 소리없는 진동과 선율에 의한 의식의 첫 태동이 遠心的 작용에 의한 객관 세계와의 교류에 힘입는 바를 인정한다 치더라도 하여간 이제부터 자기 의식의 일관성과 명확성을 그 생명으로 하는 철학은 서서히 싹트기 시작한다.

그런데 철학이 자기 고유의 영역을 닦아 나가려는 이 때의 '나'는 과연 눈 감고 아웅하는 식의 唯我中心的이고 주관일변도적이며 또한 자기 폐쇄적인 명상에만 의거해서도 참다운 나의 세계,나의 소우주 그리고 '單子'와 같은 내 영혼의 실체를 이룩하고 또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모름지기 역사와 역사성에 대한 철학적 내지 정신적 탐구와 그 상호연관와 필연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인간으로서의 내가 추구하며 정립하려는 철학은 무엇보다도 그저 단순히 주어지고 버려져있던 '자연'이라는 밑거름을 우선 비옥하게 하기위해 그것을 정복하고 이용하면서 점진적으로 인간의 세계와 '역사' 속으로 스며드는 구체적 현실성을 나의 사상과 이념에 반영시킴으로써 자기 존재와의 기본적이고도 적극적인 合ㅡ 點에 도달하려는 역사적 실존의 철학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철학과 역사,혹은 인간적 존재자로서의 나의 '자각'과 절대적인 時空的 여건 속의 역사적 '현실'은 서로 엉키고합쳐진 ㅡ體性을 이룰 뿐만 아니라 좀더 나가서는 바로 여기에 실존자의 역사에 대한 책임과 자유와 결단이 요구되는 所以가 있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이나 사상이 지닌 역사관은 따라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바와 같은 꽁트流의 실증주의적 역사발전론이나 랑케, 드로이젠 등에게서 볼 수 있는 역사주의적 세계관의 방법이나 목적에 引入시켜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현대 사회과학의 ㅡ分科로서의 경험적 역사과학을 철학적 측면에서 검토 분석하는데 노력을 집중시키면서 역사 연구의 방법,대상 혹은 그 의미의 확정 등도 그렇거니와 (콜링우드,토인비, 슈팽글러 참조) 헤겔과 마르크스에게서 특히 그 양상이 尖?化 된 모든 이데올로기적 내지는 형이상학적 역사관과도 類를 달리 하는 것이 실존주의 사상가들의 역사 파악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端初的인 철학적 문제에 대한 인간의 향수가 불가해하고 魔力的인 자연과의 투쟁과 그 체험에서 얻어짐으로써 존재의 原義 파악이란 難題가 연면하게 현대 실존주의의 중심적 과제를 이루고 있듯이 역사를 대하는 그의 안목 역시 객관적 사물과 그 현상을 인식하고 거기서 抽出된 성과를 토대로 對自的(fur-sich-seiend) 세계의 완결점에 도달하려는 많은 연구 태도와는 아주 상이한 바가 있다.

2. 역사의식과 실존주의의 사적 전개

(1) 키에르케고르

위에서 우선 본 바와 마찬가지로 삶과 그에 대한 투철하고 예리한 참여의식에서 출발한 독창적인 주관정신의 表出로서의 실존주의는 그 사적 연원을 19세기 초엽 덴마아크 출신의 명상과 고독의 철학자이며 종교사상가인 키에르케고르에서 찾을 수 있다. 근세 서양철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독일 관념주의를 완결 지은 헤겔에 의하면 진리의 완전무결한 자기실현은 역사와 자연 또는 주관과 객관을 망라하면서 절대적 인식행위를 수행해 나가는 절대정신이 다시금 전개시키는 진리의 자기소외와 그 극복을 실현하는 자유의 반복과정으로서의 변증법적 운동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이 범논리적이며 극히 짜임새 있는 합리적인 체계에 의한다면 현실구조의 필연적이고도 당위적인 생동하는 집약체로서의 역사가 목적하는 바는 ?對理性의 內在的 자발성에 의하여 역사의 전체성과 초개인적인 절대의 이념 그리고 정신의 자기구현 및 자기충족에 있을 따름이다. 어린 시절로부터 직접 간접으로 입은 깊은 종교 심리적 傷痕과 명상적 체험의 개별적 의식세계를 두루 섭렵했던 키에르케고르는 이와 같은 헤겔주의적 이상주의에 항거한 실존사상의 창시자였다.
그는 죽음 앞에서 느끼는 절망감이나 해명할 수 없는 독자적 구조를 가진 불안의 의식을 찾음으로써 범우주적 역사발전의 행로를 强占하다시피 하는 일체의 合目的的 사고와 논리적 구성의 독자적 세계를 수립한 헤겔적 시도에 반대하였다.
특히 '주관이 바로 진리'라고 본 그는 '실존적 반박'이라는 부제가 붙은 자기의 主著「결론에 도달한 비학문적 附書」에서 실존하는 개인으로서의 개별자 (Der Einzelne als existierendes Indi-viduum)는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실존만이 관심사가 될 뿐 헤겔이 말하는 절대적인 발전의 이념에 예속화된 듯한 형이상학화된 세계사와 그 법칙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즉 영원의 실체를 시간성 속에서 구현시켜 보겠다는 실존하는 인간으로서의 개체적 자아가 노리는 역사적 집단성과 생의 규격화에 대한 內心으로부터의 주관적 도전이며 반발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키에르케고르야말로 세계사는 종국적으로 신의 의사가 실현되어 나가는 이성의 자기 발전사라고 한 헤겔에 대결하여 한편으로는 유한자로서의 숙명적 시간성에 제약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자에 대한 想念으로 충만된 주체자의 창조직 행동성 속에서 실존적 인간의 본질을 추구함으로써 역사인식의 포판적 집약화에 반대하여 개별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심리의 역사로의 승화를 이룩한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2) 니이체

야스퍼스도 지적한 바와같이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 철학을 처음으로 탄생시킴으로써 직접적으로 현대철학과 사상의 선구자로서의 거대한 쌍벽을 이룬 니이체도 역시 전통적인 존재의 형이상학이 보여주는 경화되고 생명력이 없는 독단적 판단기능에 항거하여 역사의 이해나 종합적인 생의 현실과 모든 고유의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까지도 단순한 靜態的이고 思辯的인 인식의 과제로 환원시키는 데에 반대하여 명석하고 뿌리깊은 논박을 전개하였다.

그러면 여기서 삶의 유연하고 부단한 흐름과 그 禍中에서 생동하고 원천적인 힘을 내품어대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그것은 침체 와 억압과 무기력에 잠긴 허무적 상황의 심연을 헤치고 일어선 디오니소스적 인간이었다. 디오니소스 적 인간, 즉 새로운 인간이며 작열하는 대낮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넘기는 이 영웅적 인간은 이론과 체계 그리고 규범과 예속을 박차고 완성체로서의 終章이라곤 모르는 창조와 행동, 본능적 충동과 욕구의 갈망으로 충만된 역사의 여명을 장식하는 행동자로 등장하고 있다.「생에 대한 역사의 유용성과 유해성」이란 글의 제 2부를 이루고 있는〈시대에 역행하는 관찰들〉에서 니이체는 칸트로부터 시작하여 특히 헤겔의 관념주의적 체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바와 같은 어떤 합법칙성이 역사의 흐름을 지배한다는 맹신과 역사인식에 있어서의 도식적 규격화의 폐습을 통박하고 나섰다.
그에 의하면 역사는 어디까지나 삶의 과정에서 모든 인류가 추구해 나가야 할 행동과 노력에 의한 창조적 목적을 일깨워주는 방편으로서 필요한 것이지 약동하는 삶의 이 광장을 다만 관조하거나 어떤 지식의 축적을 위한 과거의 교훈으로 삼는 데서 그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역사적 현상이든 그것이 일단 순수하고 완전하게 인식됨으로써 하나의 인식현상으로만 끝나버린다면 그것을 인식한 사람에게는 이미 생명없는 것이 되어 버리며" 또한 "역사가 순수과학으로 사료됨으로써 자기의 독자성을 띠게 되면 그것은 마치 인류가 삶과 고별하고 그 결산을 내려버린 거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과거를 통해서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현재적 역사는 힘찬 새로운 미래창조와 모든 기성 가치체계의 근본 적 혁신을 위한 용솟음치는 삶의 물결을 지탱해 나갈 초인적 의지의 발동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관념주의적 인습에 부착되어 있는 역사주의의 '비역사성'도 바로 현재적인 삶 속에만 함축되어 있을 수 있는 절대적 힘을 외면하고 오히려 생명없는 역사의 유물을 거울삼아서 현재를 보고 인식하려는 복고적 성격을 지닌 데 있다. 인간의 개체적 심리현상을 통하여 표출되는 다양 하고 변화무쌍한 체험의 세계를 무분별하게 균일화하고 역사의 한 단면으로서 정당시해 버리는 역사주의적 상대론이 무기력하고 답보적인 데 반하여 힘과 약동하는 삶에의 의욕, 그리고 권력에의 의지를 주축으로 하여 끊임없는 창조적 작용을 가하는 초인의 실현은 그가 밟고 디디는 역사의 발자취 마다에 절대적 일회성으로 점철되는 상승과 또 상승만이 있는 永劫回歸의 동일자다운 초인을 부각시킨다.

즉 니이체의 역사철학은 기독교가 지니는 사이비적 도덕과 가치관에서 나타난 그 역사적 허구성을 투시함으로써 그보다 더 앞서 있고 더 깊은 근지를 이루고 있는 허무주의와 무신론을 起點으로 한 신이 사멸한 이후의 삶의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하겠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관념세계나, 구체적 생의 현실을 도외시한 어떠한 想念의 세계에 대해서도 결별을 고한 니이체의 생의 개념은 內在的인 자기법칙성에 의한 인간의 역사적 自已高揚과 함께 생물학적 의미의 生態的 進化까지를 포용함으로써 투철한 그의 정신력과 철학자로서의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니이체와 시대를 같이하던 딜타이가 개별적 심리현상을 ㅡ貫하는 역사적 상대성의 법칙을 내세운데 반하여 니이체는 생의 원천적 욕구의 발현으로서의 자기성장과 발전을 보장해주는 근저를 역사적 측면과 생물학적 측면에서 찾았는데 이와같은 역사와 인간의 본질 속에는 스스로 거부해 마지 않던 형이상학적 가정이 암암리에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感知할 수 있다. 요컨대 니이체의 역사관을 형성하고 또 그것을 전개시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실체는 생물학적 인간의 현실적 생을 통한 자기발양일 뿐이므로 여기에는 일반적인 역사철학적 예견이나 전망과 같은 세계사의 평가나 판단 근거도 없으며 또한 개체적 생의 역사형이상학적 의미나 가치 부여도 없다. 다만 여기서 부연할 것은 허무주의적 심언으로부터 신의 인식과 신앙의 문제를 직시하고 초인의 권력의지의 구현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영원자의 이 회귀사상 속에서 그가 구체적 현실로서의 세계사나 그 사관을 취급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보다 훨씬 웅대한 우주론적 내지 종교사상적 의욕의 실천자로서의,실존자로서외 투철한 사상세계가 역사의 대단원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3) 하이덱거

이제까지 우리는 개체적 주관의 내면 세계에 짓들어 있는 실존자의 그리스도적 속죄의식에 의한 변증법적 무한성의 개념을 진개시킨 키에르케고르와 이러한 종교심리적 내향성이 아닌 생물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겪는 신의 죽음에의 절규와 그에 따른 막막한 공허함을 매꾸어 보려는 全人的이며 超人的 창조의 형이상학을 구축한 니이체에 관해 살펴 보았다. 그런데 20세기로 이이진 인간과 신, 익사와 진리 등에 대한 전반적 회의와 동요 혹은 불안과 절망의 사상적 풍조는 그 심대한 영향을 파급시키면서 특히 철학에 대한 새로운 방향 모색을 필연적 과제로 등장시켰다.

이 결코 우연으로 돌릴 수 없는 키에르케고르와 니이체라는 구체적 삶의 체험자이며 의지와 결단의 제창자들이 출현된 데 이어 그들의 사상적 계보를 깊이 의식한 마르틴 하이데거는 현대철학의 전반적 판도를 주름잡는 거대한 존재로 등장하였다. 즉 헤겔과 마르크스를 거쳐가던 19세기 중반 이후에 나타난 인간이성에의 무한한 신뢰와 역사적 낙관 주의에 입각한 객관적 세계사의 인식 가 능성에의 맹신에 대한 예언적이며 투시적인 체험자로서의 반항과 공격이 있은 그 후로부터 현대로 넘겨진 과제는 오직 인간의 본질과 역사적 진리에 대한 심층으로부터의 재검토와 그 희생을 위하여 눈길을 돌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힘겹고도 거대한 과업은 어디까지나 본질과 존재(Wesen und Sein), 즉 인간과 역사의 두가지 측면이 혼연한 일치를 이루면서 이 양자에 대한 연구와 모색상의 구조적 및 체계적 통일성이 확보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만약 19 세기 실존주의 선구자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와 대상이 가장 엄격한 의미로서의 실존의 체험과 활력에 찬 그 전개에 있었다고 한다면 하이데거가 시도한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은 새로운 존재론으로서의 본체론적 이론의 체계화에 있었던 만큼 자기 스스로가 '실존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를 기피한 데는 우리들 역시 異議를 제기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딜타이의 역사상대주의적 심리주의에 기초한 생철학적 공헌이나 브렌타노의 새로운 경험주의적 심리현상의 파악태도와 훗서얼이 말하는 인간의식의 내적 경험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지향성 등을 망라한 새로운 그의 기초본체론의 성립요소를 바탕으로 그의 주저「존재와 시간」이 마련되었다. 그 속에는 전체적 서양사상과 철학 및 그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음미,그리고 예리한 문제제기와 탁월한 시대상황의 의미포착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기초적 경험'을 통하여 자기 철학의 종국적 단계를 수놓은 인간의 역사적 실존성의 논거를 마련했던 하이덱거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탐구를 위시한 자기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어느 누구도 바로 그 존재의 기초는 필연적으로 죽음과 직접 대결된 상태에서 이 낯설고 몸가눌 바를 알 수 없는 세계 속에 던져진(投企; Geworfen. heit) 불안과 두려움의 존재자로서의 '현존재'라는 점에 착안하지 못했다고 꾸짖고 있다. 현실을 보고 파악하는 각자의 안목에는 많은 상이성이 있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여기서 그가 제기한 존재와 현존재의 상관성을 기점으로 한 思辯的(spekulativ) 철학에서의 탈피와 실존적 Cexistentiell) 개 인의 입장에서 나타나는 '역사성'(Geschichtlichkeit)으로 이 새로운 방향전개야말로 역사철학의 근본적 문제이며 그 난제라고도 할 역사적 존재로서의 현실구조 속의 인간의 위치를 시사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즉 개체적 실존자로서의 모든 '나'는 구체적 역사의 흐름 속에 이미 던져졌을 뿐 아니라 다른 이떤 도피구나 탈출구도 없는 탓으로 그는 이 자아의 실존성을 바로 범역사적인 현실세계와 역사성에 발맞추는 의식의 실존적 구체화에 다같이 주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존하는 개인은 어떻게 하여 역사의 물결 속에서 자기 擴故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인식론적 의도에서 철학의 재건을 시도했던 칸트는 유한자로서의 인간인식의 가능성이 不可知的 限界에 부닥치자 실천철학적 윤리적 대명제로서의 인간 내심에서 싹른 당위성(Sollen)을 근거로 하여 다시금 여기에 객관적이성(objektive Vernunft)의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그런데 이 이성의 주체에게 부여된 인간본질로서의 '自由'의 발양에 의해서는 자유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결단을 내리는 존재일반과의 상관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자아의 실존이 보장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합리주의적 전통에 뿌리 박은 인간관과 역사 속에서의 인간의 자유의 실현이란 문제는 역사주의의 흐름을 따라서 계속 內在的 이성의 필연성과 절대적 법칙성에 완전히 종속된 영원한 이념의 역사라는 문제로 귀착되고 말았다. 순발적이고 현재적이면서도 순수하고 청명한 '선험적 변증법'의 절대적 진행만이 그 본질을 이루고 있는 '시간'은 그것이 지니는 절대적 순간의 순수행위성에 의해서 초시간적 '영원성'의 절대적 자아상실성과는 하나의 긴장과 대치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역사주의적 사관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은 영원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비자율적인 초자연적 법칙성의 인정은 구체적이며 '현재적'인 순수행위적 시간성 속에 집약되는 '과거와 미래’의 현존재 적 실존의 뜻과는 거리가 먼 얘기임이 명백하다. 하이멕거도 "현존재는 진리 속에 있·다’,고 했으며 동시에 그 현존재는 "진리의 단계를 이미 벗어나는" 인간의 역사적 실존성에 의한 결단과 행동,시간과 역사의 발전과정 속에 놓여 있다고 했다.

이와같이 역사는 합목적적 의의가 부여된 인식대상으로만 그쳐버릴 수도 있고 동시에 또한 영원 속의 이성적 내재성의 초현재적 이데을로기의 독점물이 될 수도 있는 반면에 인간존재의 원래적 모순과 이율배반의 상징과도 같은 자유를 향한 소외의 극복에 의한 적극적 참여의 광장에서의 견정적 자기유한성의 극복을 마련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기초적이며 근원적인 존재와 그 현존재가 벌이는 변증법적 상관관계에서 출발한 역사적 인간은 원래적인 이율배반성 속에 놓인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는 마당에서 법칙부여자로서의 이성이 아닌 죽음을 관망하면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의 극복을 위한 실존적 자유의 구현자로서의 자기 책임의 수임자이어야 한다. "죽음을 향한 원래적 존재로서의 시간성의 유한성이야말로 현존재의 역사성을 뒷받침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이다" 라고 그의 「존재와 시간」에서 뚜렷이 밝히고 있듯이 숙명적 비극을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유한한 존재성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표시를 하이데거는 역사 속에서 나타낼 뿐 아니라 절대적 시간과의 냉엄한 생사의 대결을 가름하려는 실존자로서의 운명의 실험을 기도하는(geworfen) 그 자체가 역사성의 표시로 이해되고 있다.

(4) 칼 야스퍼스

하이데거와 함께 전후 서양철학계의 실존주의적 양대 쌍벽을 이룬 칼 야스퍼스 역시 니이체와 키에르케고르의 깊은 사상적 감화를 받으면서 '이성의 철학'을 표적으로 한 광범한 영역에서의 업적을 남겼다. 그에 의하면 실존자로서의 인간은 누구나 '제한된 상황' 속에 놓여진 채 고통이나 죄악 혹은 죽음을 바라보는 피선택자이긴하나 이 숙명적 인간의 조건은 결코 자기에게 생소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을 감행할 수 있는 책임과 자유를 걸머진 것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끊임없는 숙명의 연속 속에서 이 주어진 운명의 극한상황을 되풀이 전개시켜 나가는 역사적 실천의 주체는 바로 자아의 실존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는 자유와 필연의 궁극적 통합을 꾀하면서 역사적 실존의 자기이해를 추구하는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사회과학 방법론의 沒價値的 판단기준을 근거로 하여 역사과학에 있어서도 역시 역사적 실존자로서의 인간 자체에 의해서만 역사파악의 주체인 인간의 자기이해가 가능하다고 한 마르크스 베버에 힘입은 바 있던 야스퍼스는 역사를 영도하고 포괄하는 이성적 합법칙성이 세계사의 운행을 답당한다고는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전통적 합리주의 철학과 거기서 파생된 다양한 형태의 형이상학적 이념들을 거부하고 나섰던 모든 실존주의 사상가와 마찬가지로 그도 인간의 본질과 인류의 역사는 다같이 발생 端初나 그 존재 의미,그리고 진행목표를 알 수 없는 未知의 세계를 등에 업고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스퍼스의 역사관의 기저에는 인간의 자아인식이 심리적이거나 생물적 또는 사회적인 여러 측면에서 일정한 한계를 초극할 수 없는 제한성과 유한성율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과 같이 역사의 의미를 논하는 철학적 탐구에서도 역시 지식과 신앙의 혼돈, 혹은 사실의 역사와 희망의 역사를 구분하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나는 인류가 어떤 하나의 발생원인과 또한 하나 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일종의 신뢰감에서 출발은 했으나 실지에 있어서 우리는 그 원인과 목적을 알 수 없는 바 여기에는 어떠한 지식의 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역사의 起源과 목적」에서 그는 실토하였다. 결국 야스퍼스는 전체로서의 종합적 역사의 목적 지향성이나 합리적 의의에 회의를 제기함으로써 연면한 역사의 광장을 통해 이룩된 인류의 다각적인 지식의 보급과 축적(Koirnnimikation의 개념과 상통)은 다만 인간적 자아의 실존을 확인케 해주는 절대적 요건의 구실올 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경험과학으로서의 역사연구의 방법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실존적 양태를 연구함에 있어서 해명이나 이해(er-hellen)를 위해 注力할 수는 있을지언정 본질적인 자기의 의미를 파악(wiss-en)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결코 이성의 형이상학을 앞세우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일관된 통일적 역사에 임하는 인류의 역할과 그 정신 속에서 어떤 暗默的이고 초자연적이며 동시에 초경험적인 합리화된 역사의 목적이 지배한다든가 더우기나 이 신적인 역사목적의 실행자의 의지나 의사를 포괄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듯이 표방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며 다만 역사 속에 생동하게 점철되면서 전개되어 나가는 정신세계의 구체적 현실을 論究하려는 데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러한 이성적 자각에 근거를 둔 역사적 개체로서의 실존적 인간이 다짐하는 자기실존의 해명을 통한 역사감각 외 方向定立은 우주적 내지 세계사적 범위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인간존재의 統體的 양상을 드러내 줄 것이다. '역사의 기원과 목적'을 다룬 제 3장 〈역사 의미에 대하여〉의 서문에서 그는 이 상과 같은 철학적 이성의 희랍적 전통을 되살린듯한 자기 의지의 일단을 이렇게 쓰고 있다.“전세계사를 觀照함으로써 자아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해 보겠다. 의지는 아마도 자기자신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면서 예언까지는 아니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실망함이 없이 용기있게 미래를 내다보는 철학의 강인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프랑스 실존주의 사상가들

모든 존재에 부착된 기존의 질서와 그에 따른 가치체계의 전도를 가져오는 생물진화론적 및 생철학적 창조로서의 생성을 향한 권력의지적 발동 그 자체가 바로 절대의 규범으로 화했던 니이체에게는 아직도 본체론적(ontologisch) 의미에서의 존재 그 자체보다는 이미 확정된 태두리 속에 갇혀있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의식을 지배해온 논리적 범주나 본질 추구를 위한 이념의 변화를 도모하는 데 그쳤음을 우리는 보아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전통적인 존재와 그 본질에 대한 위계질서의 근원을 파헤침으로써 새로운 본체론울 시도하여 旣存의 의미와 개념이 그대로 현실 속에 투영되고 구체화되는 단순한 양상면에서의 변화보다도 학문과 종교 혹은 사회와 역사가 지닌 '의미'를 새롭고 능동적인 절대적 역사성의 體顯者로서의 실존적 결단에 의하여 다시금 음미하고 또 검증한 것이 하이데거의 크나큰 공헌이었다. 그런데 싸르트르에 의하면 창조적인 자유를 실천하려는 역사적 실존의 주체인 인간은 '존재 그 자체'와 자기와의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과도 같은 '무의 틈바구니'로 인하여 영원히 스스로의 자기 동일성에 도달할 수 없는 숙명적 迷兒와도 흡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시사를 통하여 역사에의 긍정적 참여를 제창한 싸르트르의 면모가 이미 엿보이고 있다. 즉 19세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모든 실존주의 체계에 공통된 당시의 역사와 사회를 지배하던 모든 존재의 규범이나 그 가치질서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재검증을 통하여 너무나 약동하는 생명력을 과시한 이들이야말로 싸르트르가 예기한 바와같은 인간적 비극과의 숙명적 대길이 불가피함을 직시했던 탓일 것이다. 인간의 실존성은 존재자가 이미 규정된 어떤 한계 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영구히 자기 본질율 확정지을 수 없는 끊임없는 疏外者로서의 충족되지 못한 붙운의 연속 속에 놓여짐으로써 자기의 在性을 뒷받침해주는 존재자로서의 원인을 찾아내는 데 있다.

이 점이 바로 전후 서구 사상계에 선풍적 물결을 일으킨 자유를 향한 결단과 그에 따른 현실참여라는 역사철학적 표제와도 같은 싸르트르의 문제의식의 논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에 의하면 자아와의 구체적 동일성을 획득하기 위해 존재자로서의 자기근거를 응시하는 실존적 인간은 이미 고착화되고 확정지어진 그러한 본질이 아니라 '존재와 무'의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에 끊임없이 직면하여 시간의 순간적 계열과 함께 영원히 자기시도에 의한 자유의 체현자로서의 결단을 행사해야만 하는 참여자이다. 따라서 이와같이 자기존재의 원인을 스스로의 내적 분열과 양립에서 추구하는 행동적 결단의 이행자는 오로지 역사의 기본구조로서의 시간성이 일깨워주는 인간 자체의 기본적 존재양식을 근거로 한 극한상황과의 대결을 통하여 역사참여자로서의 실천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의미의 번화는 가져왔을지라도 이미 키에르케고르에서 發芽됐던 '실존' 개념이 싸르트르에 있어서의 역사 참여자(engaㅡ gement)로서의 개인이 자유를 지향하는 결단을 행사하는 데서 再具現된 느낌을 갖게 된다. 이와같은 역사 속의 자유의 실현자로서의 실존적 자아는 근세 이후의 주관주의적 혹은 합목적적 및 이성적 관념주의에서 나타난 인간능력에의 過信 내지는 자유를 향한 절대적 욕구의 무한성을 새로운 본체론적 차원에서 더욱 더 극단화시켰고 인간의 至上性을 앞세우고 신의 死滅을 부르짖게 되었다.

싸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이 무신론적인 성격을 띤 반면에 가브리엘 마르셀은 마치 키에르케고르가 당대를 지배하던 헤겔철학이 말하는 主客간의 모순에 대한 변증법적 者和에 의한 점진적인 진리의 자기실현에 반대했듯이 新헤겔주의적 관념론에 대한 비판기를 거쳐서 점차 주관주의적 색채를 띤 실존주의 철학을 전개시켜 나가면서 신의 실존을 파악하는데 더 큰 의의를 부여한 실존의 개념을 연구했다. 이 실존의 세계의 중심에는 나에 대한‘너'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상호 보충적인 창조적 행위를 기초로 하여서만 가능한 자유의 실현이란 문제가 제시되어 있는 바 여기서부터 더 높은 자유의 체현으로서의 '너와의 관계'가 펼쳐진다. 특히 싸르트르나 하이데거와는 달리 죽음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 마르셀은 비록 논리적 체계와 같이 확연하지는 않을지라도 본체론적 의미까지도 부여할 수 있는 忠實性과 희망(fidilitg, es-poir)의 개념을 도출하여 죽음 앞에 굴복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그런데 일단 이 '너'에게는 현실이나 역사 속에서 하나의 대상으로 화해버리는 상대적 한계성이 주어지긴 했을지라도 이 유한성을 초극함으로써 어떠한 객관성도 더이상 지닐 수 없는 '절대의 너'가 신의 이름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러한 유신론적 입장에서 그는 싸르트르가 제기한 역사적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결단에 의하여 자기의 가치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실존적 인간을 공박하고 있다.

3.'역사적 실존'을 앞서 가는 인간학적 과제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적 인식이나 이해를 돕는 경험과학적 실증적 방법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존재영역으로서의 역사의 본질적 의미와 그 해석을 위한 실존주의 철학의 발걸음을 더듬어 보았다. 또한 우리는 그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견해와 입장의 깊은 밑바닥에 깔려있는 역사철학적 투시력과 직감력 혹은 기대감과 의욕이 본 특집란이 제시한 역사관이란 주제로 다루어질 수 있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하에서 발생한 세계사적 현실의 추이나 그 발전을 경험적 소재로 하는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論究와는 상이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본문의 제 1장에서 이미 시사한 바와같이 특히 하이덱거가 常用하는 '역사적 실존'의 의미는 바로 인간의 사유능력이 '극히 미세한 개체적 소우주' 속에서 싹트기 시작하던 그 태고적부터 모든 인간에게 고통과 욕망, 신비감과 경탄을 자아내게 한 자기 스스로의 존재와 그 본질을 깨우쳐 보려는 인간의 太初의 문제와 그 대상에 일치한다. 다시 말하면 '무한'한 존재성을 가장 밀밀접하고 친숙한 사이에서 느낄 수 있던 인간이 바로 이와같은 절대의 時空性 속에서 자기의 '유한'성과 운명의 사슬을 직감하던 순간이 다름아닌 철학과 역사의 동질성을 가능케 한 계기이기도 했다(하이데거「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1 참조).

무한의 계열 속에 되풀이 되는(regre-ssus) '시간'의 절대성과 순수성이 가능케 하는 현실이라고 하는 역사의 터전으로서의 '세계'와 동시에 철학의 실마리로서의 '인간'은 서로가 다같이 주어지고 창조하여 靜態的이며 動態的인 인간적 구조로서의 세계(Welt als menschl. Struktur)인 것이다. 여기서 현실과 세계 속에 투영되는 인간은 자기의 존재 (Sein)와 본질(Wesen)이 바로 하나같이 본체적이며 운명적으로(on-tisch-schicksalhaft) 내던져진채로(ge-worfen) 역사의 한계를 절 대적 시간의 도움으로 超克해 나가는 자인 것이다.

"존재하는 것의 展開國이며 所?物로서의 역사와 본질의 체현자이며 실천자로서의 인간은 이제 이 웅대하고도 두텁던 신비의 배일을 벗기면서 철학에 의하여 이어진 인연과 유대를 다름 아닌 역사적 실존자의 '개체적 주관성'(키에르케고르),'디오니소스적 초인의 힘'(니이체),'결단의 자유를 통한 실존자의 역사참여'(하이덱거), '실존적 인간의 이성적 자기이해'(야스퍼스), '무를 극복하려는 자아의 결단과 선택'(싸르트르) 혹은 '희망을 신조로 한 인격적 개체의 형성'(마르센) 등으로 하나의 통일된 적극적 형상으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과연 그러면 존재의 세계 내의 현존재자는 여기까지 보아온 실존주의 사상의 테두리에서 실제로 그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역사의 관철자로서의 구실과 현대 사상이 걸머진 역사적 所任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여러 측면에서 허다하게 지적되고 비판되어왔듯이 이 자리에서도 역시 功過의 半分을 피할 길이 없다. 단지 싸르트르가 보여준 大戰 이후 지금까지의 갖가지 참여와 행동에는 괄목할만한 점이 있음을 수긍해야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도하는 바와 같은 일방적인 사회경제적이며 물질적인 존재에 관한 실천변증법이 어떻게 확정짓기보다는 행동하는 존재(아놀드 겔렌 「人問...세계 속에서의 그의 본성과 위치」참조)로서의 인간과 그의 多層 구성적 複合素의 제공자로서의 역사의 본질과 방향을 설정하고 예견하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헤겔로부터 유래된 역사적 정신에 관한 철학으로서의 '경선사'라는 현대적 개념에 의하여 '현실 세계사'와 특히 '정치사'에 대한 역사경험적 분석과 판단이 흐려졌던 바와같이 하이덱거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현실적이며 생동하는 개별적 자기세계 와 존재 양상에 대해서까지도 다만 그 '본질로서의' 존재인 실존에만 注力하여 추상적이며 비능률적인 실존적 '의식의 구성'으로 막을 내린 듯하다.

그러나 인간은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장구한 세월을 흘러보낸 현재까지 '아직도 그는 자기 스스로가 하나의 숙제거리'로 되어 있는,말하자면 스스로가 제기한 문제에 스스로 답을 내려야 하는 야누스적 존재인 것이다(겔렌의 前揭書 참조).

結論的으로, 그렇다면 실존적 '자각'만으로는 미흡한 투철한 역사의식과 그 실천력에의 현대적 命題가 인간학적 접근방법에 의해서라면 간단히 해소되고 보충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점이야말로 현대의 모든 철학이 當面한 인간과 역사,현실과 이상 등을 망라한 근본적이고도 직접적인 여러 문제들에 대한 결정적 해답의 실마리이며 열쇠가 될 것이라고 본다. 山稷한 현대 철학과 사상이 역사와 현대 앞에 걸머진 과제는 아마도 실존주의의사상세계와 그 類를 달리하여 대자연과 우주 속에서의 '나'의 自存性과 그 위치를 자각한 單一者로서의 인간이 自然生態的 '필 연' 속의 자기를 직시하면서 동시에 궁극적 自己顯現의 종국적 완성을 향한 정신의 '자유로운 伸張'(chance at the bottom and freedom at the top: 떼이야르 드 사르댕의 「인간의 현상」영역본 참조)을 期하는 데 있을 것이다(파스칼,라이프닛츠 및 동양적 天人思想과 샤르탱 참조). 그런데 거대한 사상과 경신의 경이적 절정과 심연을 두루 섭렵한 듯한 신비의 사상가 샤르댕은 위에서 본 우주적 자연과 인간의 창조적 정신을 함께 보살피며 이끌어주는 신에의 귀의라는 새 역사의 章을 전개시키고 있지만 여기에 좀더 행동자로서의 인간의 영역과 그 능동성이 보장되도록 하는 길은 없을까. 인간 스스로가 '인격화된' 이 대우주 (personalizing universe) 속에서의 시간 공간적 확신인 역사와 그 발전은 모름지기 실존적 의식의 定型化나 직관적인 삶에의 욕구충족만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이 현대의 역사와 세계 속에 펄쳐져 있는 인간의 창조적 결실들을 토대로 한 생활학적 인간학적인 새 가치의 설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