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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문
1975년 1월호 (제 37호)
1975년도(1월 18일?25일) 일치 기도주간 ≪하느님의 계획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되 ...

1974년도 주교 시노드
1975년 1월호 (제 37호)
1. 우리는 주께서 이번 주교 대의원 총회에서 성취하도록 허락하신 일에 대 하여 성신 안에서 위안을 누리...

문헌 - 인권과 화해에 관한 메시지
1975년 1월호 (제 37호)
제4차 세계 주교 대의원총회 (1974.10.23)1971년 세계 주교 대의원총회 이후로 교회와 세계에 대하여 특히 ...

한국 주교단 사목 교서
1975년 1월호 (제 37호)
복음 정신 실천으로 진리를 증거 한국 주교단은 추계정기총회〔10월 14일~18일)에서 최근 교회 안팎에서 ...

포교성성이 본 각지의 현황-
1975년 1월호 (제 37호)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최대의 성과는, 평신도들이 a회생활에 직극적으 로 참가할 길을 열게 된 것이라고 한...

金樂浩의「자신 책가」 소묘《II》
1975년 1월호 (제 37호)
5. 形式 및 內容攻 「자신책가」는 형식상으로 보아 4· 4調 4音步格 (tetrametre) 의 기본음수 율을 어김...

조선후기사회에 있어서의 서학의 조상제사 문제
1975년 1월호 (제 37호)
I. 儒敎世界의 전통적 祭祀觀 朝鮮後期社舍에 유입된 西學은 그 가 가지고 있는 異質文化 에너지의 강력한...

韓國人 宗敎心性의 基底構成
1975년 1월호 (제 37호)
1 1972년에 文化公報部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韓國내의 宗敎ㅅ口는 圓佛敎를 포함하여 佛敎가 867만명...

그리스도교의 바탕인 사랑
1975년 1월호 (제 37호)
〔譯者註〕사랑은 그리 스도교의 기 본 사상이 며 교회 가 세 상에 제 시 하는 메 시 지의 진수이다. ‘보...

相談者로서의 司祭 ㅡ그 態度와 價値觀을 중심으로一
1975년 1월호 (제 37호)
1 司祭가 되어 일선사목에 임하면 =L 는 조만간 자신이 相談老(counselor) 의 일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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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1975년 1월호 (제 37호)

그리스도교의 바탕인 사랑

R. 롬바르디

〔譯者註〕사랑은 그리 스도교의 기 본 사상이 며 교회 가 세 상에 제 시 하는 메 시 지의 진수이다. ‘보다나은세계를위한운동'의 창설자인 리까르도롬바르디 (Riccardo Lombardi, S.J.) 신부는 여기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 글은 원래 로마에서 있었던 신학교 영신 지도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을 그 대로 옮긴 것이지만, 그 내용이 비단 신학교 영신 지도자들뿐 아니라 현대의 모든 신자들을 위해서도 대단하 절실하다고 인정을 받아서 Spiritual Life誌 에 게재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 온 태도가 복음성서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에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를 하 느님 앞에 냉철하게 살펴보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읍니다.

하루는 예수님의 주위를 둘러싸고 모여들었던 거대한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나, 대단히 묘하면 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읍니다. 그 질문은 거기 모였던 사람들의 심 장에 깊이 파고들었고, 그 후에도 계 속해서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울려왔읍니다. “스승이여, 어떤 계명 이 제일 중합니까?” 이때 예수께서 주신 대답은 오늘도 변함이 없읍니다。 ‘‘너는 네 천주를 온전한 영신으로 공 경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 둘 째 계명은 첫째와 같으니..... 너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교 리서에도 있고, ■아이들도 줄줄 외우 고 있는 것으로서, 우리에게는 너무 나 잘 알려진 대답입니다. 그런데 이 렇게 진부할 정도로 잘 알려진 이 말 씀이,실상은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신비스런 것이어서,순전히 자연적으 로만 해석한다면 하느님께 대한 모독 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내용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답변이었읍니다. 꼬 집어서 제일 중요한 것 하나만을 물 었는데 대 답은 둘이 나왔고,게 다가 이 둘은 같은 명 령 임 을 바로 알 수 있읍니다. 이 말씀을 좀 가까이 관찰 해 봅시다. 먼저 말의 짜임새를 보면 --"둘째 계명은 첫째와 같다.” 다음 에는다시 그대답의 형태를 보고,이 번에는 혼히 주의하지 않고 지나치는 이 ‘같다,는 말을 눈여겨 보십시요. "둘째 계명은 첫째와 같다.” 그분의 답변 전체의 본질과 이 세 말마디만 보고도,여기 말씀하신'분이 하느님 의·권위를가진 분임을 알아볼 수 있지 않겠읍니까? 솔직히 말해서 인 간적 이성만으로는 그런 질문을 받고 정반대로 답변했을 것입니다. 자기자 신의 신적 권위를 똑똑히 의식하는 분만이,전혀 모순되는 듯한 이 계명 을 대담하게도 ‘같다,는 망로써 묶어 놓을 수 있었읍니다.

우리가 그런 질문을 받은 입장이었 다면 어했을까요? "네 온 정신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함을 명심하라· 그 러나 인간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같아질 수도 없거니와, 같아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또한 잊 어서는 안된다. 너는 인간인지라, 네 육체와 영혼에,또 네 전체 구조 안 에는,다른 인간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고,네 존재를 여인으로써 보충하 려드는 강한 욕구가 있으리 리-. 그렇 지 만 한 남자는 한 여 자를 하느님 같 이 사랑해서는 안될 뿐아니라, 그럴 수도 없음을 항상 명 심 해 라. 그러 니 까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인간에 대 한 사랑에로 이끄는 것은 무엇이든지 끊어버리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여하한 인간적 사랑으로든지 더럽힐 까 조심하라.’,一아마,이쯤 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적 권위를 잘 아 셨던 예수께서는 정반대로 말씀하셨

읍니다· 세상을 떠나실 시간이 임박 해서, 지금까지 가르치신 모든 교훈 을 간단히 줄여 말씀하실 필요가 있 었을 때에,그분은 의의에도 하느님 께대한사랑을 특별히 들추시지도 않으셨읍니다. "너희는서로 사랑하 라. 이는 내 계명이니라,“

그분은 당신의 가르침에서 나올 최 후의 결과를 항상 들어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는것이보통이지만,여기에 서 도 같은 수법 을 사용하십 니 다. 즉 그분은 우리가 역사 안에 살고 간 모 든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여,동시에 받게될 공심판의 상황을 보여주십니 다. 그런데 그때의 심판꺼리는무엇 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으며, 이 직접 적인 명령을 얼마나 이행했느냐 하는 것일 것입니다· 물론 사람 사람의 여 러가지 다른 행위들도 빠짐없이 심판 대에 올려지겠지만, 그분 자신이 직 접 판관으로 임하실 재판정에서 그분 은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의 명령에 관해서 특별한 방법으로 판단하실 것 은 당연한 논리가 아니-겠읍니까?

1. 그리스도교의 본질적 문제점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본질적 신비가 있읍니다. 우리 성교회에 관 해서 세상은 얼마나 그 참뜻을 깨닫 지 못하고 무지한 상태에 있읍니까? 그런데 이 무지가 심지어 사제들 사 이에도 널리 퍼져 있는 실정이 아닙 니까?ㅣ이 말을 믿지 못한다면, 몇몇 사제들을 상대로 질문을 해서, 그리스 도교의 가장 근본직인 도그마가 무엇 인지, 즉 그리스도 신자들을 다른 사 람들과 구별지어서 참된 신자로 만들 어주는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꼬집 어 대게 해보십시오. 그들이 모두 확 신을가지고올바르게 답변할 수가 있겠읍니까?내게는심히 의심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 하나만 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겠읍니 까?

그 물음에 체계적으로·또 가능한한 명확히 대답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내용이 무엇 이냐고반문할수도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대답해 봅시다. 첫째로 그리스도 신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 님을 믿습니다. 이점 그는 어떤 종교 의 신봉자들과도 다릅니다. 또한 그 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 을세상에 보내어 사람이 되게 하셨다 고 믿는데, 이점에서도 역시 그는 특 유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문 제는,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무엇 때문에 당신 아들을사람이 되게 하셨 는가 하는 것이며,그리스도 신자가 다른 어떤 사람들과도 구별되는 근본 원리는,바로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 읍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징은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으되, 그 오신 이유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 있었다는 점에 있읍 니다. 즉, 그분은 하느님의 사랑 때 문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본

질은여기에있는것이며, 지옥이나 언옥의 존재를 믿는 것, 하느님의 섭 리를 믿는 것은 여기에 비하면 2차적 인 것들입니다. 우리 신앙의 중추적 인 신 비 는 삼위 일체 이 신 하느님 께 서 당신 아들을사람이 되게 하심으로씨, 인간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 게 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이 근본 도그마에서 부터 이제 우리가 직접 끌어내지 않 을 수 없는 결론은, 윤리적인 것으로 서, 그리스도교신앙의 본질적인 윤리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 상호간의 사랑을 말하며, 이 사랑은 우리에게 向主三 德의 하나가 되어 있읍니다. 이제 우 리는 그리스도교 사상의 심장부에 들 어와 있읍니다. 물론 다른 2차적인 덕목들도 인간에게 대단히 유익했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아리스토 탤레스도 용기, 정직, 순결, 인내 등 을 논했읍니다. 그러나어떤 사람도 단순한 인간으로서는,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 어 인간이 되게 하시고,인류를 神化 시키심으로써, 이제부터는 영원히 사 람들끼리의 관계가, 한마디로말해서, 신학적인 것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준 일이 없읍니다.

이야말로 인류 역사에 혁명적인 사 실이 아님니까? 따져봅시다. 우리는 하느님께 대해서 취하고 싶은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취할 것을 명 령받았읍니다. 즉 우리가 사람에게 하는 것은 하느님께 하는 것이 됩니 다. 인간 상호관계만윤 유일한 관심 사로 만들고 있던. 인류의 역사-!h 하 느님과의 땔 수 없는 관계라는 복음 의 언덕에로 이끌어 놓은 이 사상은, 따라서 세계사를 바꿔 놓은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여러가지 모양의 대단히 놀 라운 내적 기도로써만 표현해왔던 하 느님께 대한 사랑을,사람들 상호간 을 위한 피차의 협조와 사랑의 활동 으로써도 볼 수 있게 표현해야겠다 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지 않겠읍니 까?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 들인 사람들을 함부로 취급하고 학대 하고서도,제대 앞에 아주 얌전히 끓 어 기도한다면, 우리는사기꾼보다나 을게 없다는 결론이 안되겠읍니까? 요한복음의 말씀마따나,하느님의 아 들들이며 항상 눈앞에 보여지는 형제 들을 아무렇게나 대하면서,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달 수 있겠읍니까?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 리스도께서는 바로 사랑이시며,모든 사람들은 영신적으로 뿐 아니라 육체 적으로도 그분의 형제가 됩니다. 따 라서,≪이 미소한 자들 중 하나에게 베풀 때마다 내게 배푼 셈”이며,"주 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친국에 들어가 지 못하고, 내 성부의 뜻을 준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 간다”는 말씀은 틀 림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준행한다’ 는 이 말은,이웃에 대한 사랑으로써 만 표현될 수 있을 뿐; 달리는 표현

될 수 없읍니다. 이 말의 참뜻은 심 판 때에 가서야 밝혀질 것입니다, 그 때에 다른 사람들과 가졌던 우리의 관계로써, 하느님께 대해서 취했던 우리의 태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질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은 이것입 니다. 즉 당신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 거나, 괴로워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만 있으면,당신은 하느님을 사랑하 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 을 모질게 비판하면 당신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 손시키 면, 하느님의 명예를 깎아내리 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메시지의 이 기본사상에 입각해서 당 신의 기도를 이렇게 종결지으셨던 것 입니다. ㅡ‘'성부여,저 모든 이로 하

여금 하나이 되어..... 우리에게 합

일하여 있어, 세상으로 하여금 당신 이 나를 보내신 줄을 믿게 하소서.’’ 그리 스도께 서 는 성 부의 뜻이 라고 생 각하셨던 바를 원하셨읍니다. 즉 사 람들 사이에 신적 사랑이 있음을 보 고,모든 세대의 인류는,그런 현상 이^지상에 기원할 수는 없고,천상에 근거하고 있음을 믿으며, 유한한 인 간을 하느님과 같이 대한다거나,사 람에게 한 것은 하느님께 한 것이라 는 점을,단순한 인간으로서는 아무 도 생각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인 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 셨던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그분 은 당신의 제자들이, 서로 염려하고 서로 헌신하며 티없이 숭고한 사랑으 로 결합된 것을 세상에게 보여중으로 써, 사람들이 이렇게 위대하고 세상 을 흔들어 놓을 듯이 힘찬 생활태도 를 따르고, 그들의 사랑을 봄으로써, 그들의 스승이 참으로 하느님이심을 확신하게 되기를 원하셨읍니다。

2. 사랑의 修業

그러면 이제부터는 이 거대한 ?面 에서 특정 부분만을 따로 놓고 생각해 봅시다. 다른 어디보다도신학교는그 리스도교 신앙을 배우는 가장 완전한 학교,즉사랑이 그 본래의 자리를 차지하는 장소가되어야 할것입니다. 그렇다면 솔직히 생각해 봅시다. 모 범 신학생은, 사랑과 그리스도교는 같은 것이라는 말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던가요? 있다면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스도 교적 사랑이 없는 사람은실상하느님 자신의 가슴을 치는 자라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는가요? 이런 면에서 ■볼 때에는,다른 모든 덕목들은 그렇 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고 있는가요? 우리가 그를 훈계하거 나 가르칠 때에는 이기심을 꼬집어서 죄중에서도 가장큰죄악임을 밝혀 주 었던가요? 그를 평가하고 그에게 소 위 ‘모범형’을 제시해 주며, 모든 노 력의 가치를 판가름해 주는 우리 자신 은 과연 이런 기준에 의해서 행동해 왔던가요? 여기 한 신학생을 봅시다.
그는 열 심 히 공부하고 시 간을 잘 지 키 며 모든 공동생 활을 잘 해 나가고 침 묵을 철저히 지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주의자라면, 우 리는 바로 이 점이 그가 장차 일할 사 회에서 가장 해로운 요소임을 알아차 리는가요? 그렇지 않고 우리는 그의 2차적인 덕행들, 예를들면 시간을 잘 지킨다, 순명을 잘한다,하는 등으 로 만족하고 있지나 않은지요? 그런 데 여기 또한 사람은 가끔 당국의 干칙을 어기는 일도 있지만, 그 도량 니 넓고 동료들을 잘 돌보며 헌신적 인 성격을 가졌다면, 우리는 그를 어 떻게 보는지요? 그를 전체적으르 평 가할 때에, 이런 점들을 그의 가장 중요한 장점으로 인정해 주고 있읍니 까?

우리는 모두 신학교 생활을 해보s 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놓고 당국에서 내리는 판단은, 흔히 동료들이 보는 견해와는 정반대로 달 라지는 경우가 많음을 잘 보아왔읍니 다. 어느 편이 옳은지는 알기 힘든 일입니다. 자기자신의 신학생 시절을 회상해 보십시요. 어려운 입장에 처 해서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을때에, 당신은 제일 먼저 누구한테 달려갔던 가요? 당국의 견해에 가장 흘륭한 사제가 될 학생으로 인정 받은 소위 '모범생’한테 갔던가요? 그때 당신 은 오히려 좀더 친절할 듯한 다른 동 료를 찾아가지 않았던가요? 좀더 터 놓고 이야기해 봅시다. 솔직히 말하면,우리는 이상하게도 당국에서 보는 소위 ‘모범생’한데 가질 않았고, 직 어도 이 방면에서만은 당국의 견해와 학생들 간의 견해가 반대로.나타나는 수가 많음올 보았읍니 다.

이 사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문 제들을 일일이 매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침묵을 깨뜨린다는 것은 좋은 규칙을 위반하는 일이므로 물론 잘하는일이라고는 볼 수 없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적인 것이나 사적인 것을 막론하고, 공동생 활을 통해 서, 사랑을 가진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한 학생들을,건전한 덕행의 소유자로 보아줄 만한 충분한 아량을 가져 야 합니다. 그에게는 이것이 그의 신학 교 생활의 중심점인 것입니다. 왜냐 하면 참된 그리스도적 사랑을 실천할 기회에 처할 때마다,그는 말하자면, “네게는 무엇이 제일 중한 계명이냐 ?”고 하는 명백한 진문에 봉착할 것 이고, 여기에 대해서 그는 행동으로 대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앓고 있 는친구의침대곁에서 어려운일을 도와 준다든지, 혹은 그 친구가 더불 어 얘기라도 나눌 상대를 요구하기 때문에, 한밤중까지 자지 않고 벗이 되어주는학생들이나,소같이 무슨 일이든 선뜻 나서서 해치우는 사람들 이,우리 신학교에서 4모범생,으로 인정받는가요?

내게는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습니 다. 내 말을증명하기 위해서 한가지 만물어봄시다. 여러분들이 아시기에,
몇 사람이나 이기적이거나 자기만 아 는 사람이라는 확증이 나타났기 때문 에,신학교에서 제적된 일이 있는가 요? 다시 말하면 제적된 이유가 불 순명이나 학과성적.때문이 아니고, 단순히 그들이 사랑이라는 기본적 덕 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경우 가 몇 번이나 되었던가 하는 것입니 다. 무절제한 사람이나 외모가 다른 사람, 보기에 역겨울 정도로 곤란한 사람을 우리는 정당히 제적시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조치였다고 말합니다. 그런 데 우리는한번이라도이기적인 사람 을 같은 이유를 붙여 내보낸 일이 있 었던가요? 지금까지 신학교에서 제 적당한사람중에는, 다른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는 가히 모범적인 사람들이 대던-히 많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읍니다. 그 런데 그들은 그리소도의 눈에는 2차 적인 것으로 밖에는 보아지 않을 것 임이 확실한 종류의 결점 때문에,희 망이 없다는판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까지보다 훨 씬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이 특별한 덕목인 사랑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또한 이기주의가 사 제에게는 가장 근본적인 결점임을 명 심해야 되지 않겠읍니까? 그런데 우 리가 실제로 해온 일은 어떤가요? 사제가 될 생각을 단념하도록 지금까 지 우리가 종용해왔던 학생들 중에는 관대한 성격 때문에 훌륭히 사제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마 음이 관대하다는 바로 이점 때문에, 양심의 깊은 정직성은 우리 신학교들 의 형식직인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이 기 곤란했던 사람들도 있었읍니다·

물론 이 문제에는 여러가지 다른면 이 있다고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나 도 이를 인정합니다. 확실히 모든 상 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다 만 여러분들에게 호소하고싶은것은, 관대한 성격이나 참다운 형제애의 소 질을 가진 사람을 과소평가하거나, 가까이서 관찰하면 자기자신에게만 갇혀 사는 사람들을 과대평가하지 말 자는것입니다. 또한가지 감히 경 고를 할 수 있다면, 규칙을 기계적으 로지키거나장상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주기를 두려워하는태도등소 위 '모범생,의 외적 태도는 가장 고 질적인 이기심에서 나온 결과인 경우 가 많다는 것입니다.

3. 모든 것율 사람에至 향하게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읍니 까? 지금까지 말해온 바로써 명백하 지만, 제일 급한 일은 그리스도교 신 앙 내용을 모두,진실하고 참다운 사 랑을 중심 으로 하여 설 명 하고 제 시 하 는 일입니다. 본인이 지금까지 몇 마 디로 말하려한 것은, 우리 신앙이 갖 는 전체 내용을대충이나마종합해서, 그 신앙의 신학적 진리와 일상생활을 통한 구체 적 인 실행 이 항상 사랑의 계명을 중심으로 하여, 이를 싸고 돌

수 있도록 하려는데에 있었읍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생 명을 주셨다고 믿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사상입니다. 우리는 또한 오늘날에도 과거 어느 때와 마찬가지 로,바로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며 사람은 정말로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어 있 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이것도 역 시 그리스도교 사상입니다. 그렇다면 만사가 다이를 최후 목표로 해서 움 직여야 하지 않겠읍니까? 우리의 모 든 말과 행동이,사랑이 사람들 사이 에 가장 중요하다는 확신에 부합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저기 기차역에서 일하는 역원이 있 읍니다. 여행자들이 하루 종일 계속 해서 자기 창 앞에 몰려와,초라하고 초조한 모습으로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볼 때에 그는 어떻게 이들을 대 합니까? 그가 어떻게 이들을 대하는 가논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확실히 그리스 도교 신자임에 틀림없읍니다. 그는 바로 오늘 아침에도 영성체를 하고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기도드렸 읍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일하고 있 는 지금, 그는 하루 종일 그리스도께 나가려는 생각온 까맣게 잊은 채 삼 고 있읍니다. 오히려 이번에는 그리 스도께서, 그의 창 앞으로 밀려드는 하나하나의 여행자의 모습으로 그에 게 오시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그리 스도를 아침에 성당에서 대하듯이 맞이하고 있읍니까?

여기 또 사제가 있읍니다. 그는 고 백 신부이며 영혼의 목자입니다. 본 당 신자들은 그가 그리스도와 친밀히 일치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병자의 모습을 하고 그 를 부르실 때에나 죄인으로 그의 앞 에 나타나실 때에, 또 두 젊은이가 결혼문제로 그를 찾아올 때나 어린 이들이 그의 격려와 이해를 바라고 그를 동무로서 요구할 때,그는 이들 을 어떻게 대하고 있읍니까? 그는 그리스도 안에 그분과 함께 살고 있 읍니까? 그가정말로 그렇게 살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찾아 오실 때에 그분을 맞이하는 태도를 보고 이상히 여길 것이 없읍니다. 우리가 그의 그리스도적 정신과 침·다운 사제 로서의 정신이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이때 뿐인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신학교에서도 이론적으로는 가르치고 있읍니다. 또 한 그것이 교리신학,윤리신학,영신 지도 등에서 당연히 취급되어야 함 도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은 참으로 가르쳐져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가르치십시오. 그러나 거기에 그쳐 서 는 안됩 니 다.- 신 학교 생 활 전 체를 이 가르침을 중심으로 조직하며, 그리스도교에 가장 반대되는 죄악이 이기주의라고 하는 신념을 실제 행동 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당 신이 가끔 이웃에게 냉혹하게 굴고

거칠게 대하는 학생들을 발견하거나, 동료들이 병들고 걱정스런 일들을 당 하여 낙망하며 나쁘게 되어가는 것을 보고도 완전히 무관심한 신학생을 보 게 되면,여러분은 그런 행위가 종이 울리고 난 뒤에 침묵을 깨는 일보다 훨씬 심각한 결점임을 깨달아야 합니 다.

결국 우리는 무슨 권리로, 마음 속 으로나마 우리 이웃을 죽이는 것입니 까? 우리는 대부분이 마음 속에 컴 컴한 잡초 덤불을 숨겨가지고, 남에 대한 좋지 않은 판단으로써 이를 계 속 키워가고 있읍니다. 그렇게 되면, 겉으로는 아무리 극기와 자제를 하고 수도자와 같은 언행을 한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아실 일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아무것도 끊어버리지 않았고, 가슴 속에서 뿌리 뽑아진 것이라고는 없읍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눈에 우 리는 야만인 그대로이며,그의 눈 앞 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피를 홀 리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는 괴물로 보이므로,차마 당신의 자식 이라고 할 수는 없는 존재로' 나타납 니다. 우리가 타인을 비방하고 원한 을 품으며 남의 행위를 속단할 때에, 우리는 그의 살을 물어뜯는 셈이 됩 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우리 형 제들을 ‘고쳐주는’ 것이며, 이런 말 들을 하는 것은, 公益을 위해 악표양 을미연에 방지하기위함이라고말합 니다. 이런 변명들이 참으로 사랑에 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채워야 할 조건이 몇 가지나되는지 한번생각 '해보신 적이 있읍니까? 따라서 우리 는 수하 사람들이 자기 동료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 앞에 이러쿵 저러쿵지껄이는말이나, 남을 묘하 게. 중상하는 태도를 엄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 얘기가 악마의 소행아 될 수 있음을 누가 부정하겠읍니까?

애덕에 반대되는 행위니- 이기적인 행동을 보기 위해서는, 아무 날이나 하루동안 주위를 살펴보기만 하면 됩 니다.어떤사람들은직접자기 일에 해당하는 일이 아니면 절대로 하지 않 습니 다. 공동생 활을 해 나가는 데 있 어서 어떤 일을 해야 할 때나, 어떤 행사 준비를 해야 할 때에도 그는 이 를도와주기보다는, 공부를해야한 다거나, 아니면 모처럼의 휴가를 즐 기기 위해서 차표나 비행기표를 사러 가던 중이므로, 이러저러한 일을 위 해서 단 일 분도 지체할 수는 없읍 니다. 그뿐 아니라,그의 말대로 하 면, 그는 별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 이라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말이지 만, 좀 큼직한 일을 위해서 절대로 노력 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완덕의 표는 아닙 니 다.

4. 사랑β 증거하는 교회

"하느님의 교회가 흡이나 오점이 없게 되도록” 바라신 그분의 원의를 적어도 장차 사.제가 될 신학생들 만 이라도 깨닫게 된다면! 또 그들이

교회의 발전과 일치에의 노력에 자발 적으로 자기 의지를 부합시키는 일이, 참다운 가톨릭 사상을 구현하는 일이 라는사실을깨닫는다면! 자모이신 교회가사제들의 이기심 때문에 일마 나 큰 슬품과 고통을 당하는가 ㅣ 야 심율가지고 높은지위를 탐하는 사 제들의 狂氣, 물질적 이익이 많은 자 리를 차지하려 하고,차지한 후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제들의 탐 욕 때문에*교회는 신음하며, 한 때는 ㅣ가장 적격자로 인정을받아서 어떤 지 위에 올랐었으나 지금은 다만 해악과 분열^을 조장하는 거추장스런 사제 들이, 그 지위에서 물러서려 들지 않 는 고집으로 인해 교회는 발을 묶이 고 있읍니다. 이 모든 것을 치료하려 면 사랑의 정신을 주입시키고, 모든 사람들의 공익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 는 희생정신을항상연마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자기 자신과 같 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교와 사랑은 같은 정신이며,우리 마 음에서부터 나오는 이런 정신에 의해 서 우리는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것들로써 완덕을 삼으려는 망상을 치워버립시다. 사랑 의 정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소극적 인 수단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언제 나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적극적인 요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 탐을 참다운 그리스도 신자로 만들려 면,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의 정신율 강력히 주장합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양성한 사제들은 어떤 선업이라 도맡아 수행할준비가다되어있는 셈이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 이 그다지도 간절히 바라는, 그리스 도교의 전체적 핵심을 방해하는 대부 분의장애물이, 그뿌리에서제거되 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사제들은 '더 좋은 업’이라고 하는 것이, 하느 님의 영광과 현세에서의 교회의 발전 이라는더·큰 이익올위해서, 자신의 원의와 욕망을 희생하는 것이라는 사 실을 실제 경험을 통해서 이미 배운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매일 매 일 동료들 간의 교제와 협력에서, 또 '작은 일들’에서,이 진리를 이미 배 운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는 신학교 의 생활태도를 실제 사목생활에서도 그대로 지속하여, 일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사도사업에서 요구퇴는 대 로 서로 관대히 협조할 것이며,그렇 게 되면 바로소 교회와 세상은 그들 이 발전하기 위해서 그렇게도 필요한 사제들의 공동협력을얻을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다지도 진보를 못하고 비능률적인 상태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교회는 임청난 힘을 많이 가지고 있고,보통 말하듯 이 유리한 조건을 그렇게도 많이 가 졌는데도,실제로 성취된 일이라고는 별로 없읍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 엇입니까? 우리가동시에,개인주의

자들이고 자신만을 알며 심지어 완덕 이라는 개념조차 개인주의적인 노력 인 것처럼 보게 되어버린 데에 그 이 유가 있는 것이 아님니까? 잠깐 생 각해 봄시다. 실상은 사랑,이 그리스 도교 완덕의 중추적 원인이 됨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일의 전후를 완전 히 뒤바꾸어서, 개인의 공적에 그리 스도교적 영웅주의가 있는 것으로 잘 못알고,타인에 대한사랑을 이·런 공적들의 결과로 보고 있지나 않은가 요?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남에 대해서 사랑을 ?는 것은, 우리가 좋 은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 고 이 때문에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입니까?

.지 금까지 여 러 가지 를 애 기 한 것은, 이 문제들이 우선 내 자신의 마음을 상하遣 했기 때문이며,다음으로는 그? 리스도 당신께 제일 깊은 관계를 갖 고 있는 이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침 묵을 지키고 넘어가는 데 대한 질책 을 면하기 위 해서 입 니 다. 우리 가 아 끼는 그리스도교회가 쓸모없이 되고, 사멸한다거나 반신불수가 되기를 원 치 않는다면,그리스도께서 행동하신 대로 우리도 가르치며, 사랑을 우리 생활에서 가장 존귀한 자리에 올려놓 읍시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세상 은 귀를 기울일 것이며, 모든 사람은 다시 그리스도께로 돌아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