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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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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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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信仰의 內容 一
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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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사목방안
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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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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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과 體驗
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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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서 개관
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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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信仰에서 본 샤머니즘
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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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巫歌와 그 祝術原理
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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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톨릭典禮와 韓國巫俗
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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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輯 · 샤머니즘과 그리스도敎 1978년 1월호 (제 55호)

그리스도信仰에서 본 샤머니즘

沈 相 泰 (가톨릭大 ?授 · 神父)

I. 序 言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科學과 機械技術의 경이적 발전에 힘입어 前世紀에는 상상치도 못했을 빠른 속도로 21세기를 향하여 줄달음 치고 있다. 전반적 생활분야에서 거대한 업적을 이룩한 인류는 實在世界 의 主役이 되어, 자신과 自然世界의 運命을 자신의 수중에 넣기에 이르렀다. 西歐社會에서 일기 시작한 세계의 이 世俗化 과정은 現今 ?世界的 현상이 되었다. 공업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세계의 境界는 점차적으로 단축되어 모든 인류는 폐쇄적인 과거의 靜的社會에서와는 달리 상호의존하고 협력해야 하는 共同運命的인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⑴ 하나의 세계문명, 하나의 세계문화, 하나의 인간 가족을 指向하는 이 역사적 조류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韓國ㅅ들은 역사를 통하여 강대한 隣接國家들과의 정치 경제와 문화의 영향뿐만 아니라 간섭과 지배도 받으며 생활하여 왔다. 하지만 정치적이고 문화적 주체성을 보전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他意에 의하여 開國措置를 취하고 1세기가 지난 오늘날, 다시 폐쇄된 共産國家化 한 北韓을 제외한 자유세계의 일부인 한국은 후진국의 落後性을 탈피하고 공업선진국의 대열에 나서기 위한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한국의 선진국화는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지상명령인 것처럼 보여진다.

국가의 공업화 내지 先進國化는 여러 문제점들을 附隨物로 가지고 온다. 靜的 社會로부터 개방된 躍動社合로 변천하는 과정 속에서 意識構造에 변화가 일고 전통적인 인습들이 의문시된다. 인간들은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고 合理的 行動理想을 추구한다. 이러한 과도기에 당혹감이 일어날 수 있다. 異民族과의 협력과 유대를 통해서만 가능한 先進國化의 실현을 열망하면서도, 이로 말미암아 민족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되지 않을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날 수 있다. 現今 여러 생활분야에서 ‘主體性‘ 문제가 자주 논의되는 사실이 이점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 활발히 전개되는 ‘民族文化 再發掘’이나 ‘民俗文化 ?究’ 운동 등도 이러한 問題意識 속에서 일어난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한국문화의 正統要素에 이질적 요소를 지닌 종교로 간주될 수 있는 西方傳來의 그리스도敎를 신봉하는 우리가 「그리스도信仰과 民俗信仰」의 主題를 가지고 논의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의미깊은 일이다. 이 주제가 韓國ㅅ(특수내지 具體性)이면서 그리스도ㅅ(普遍 性)이려는 우리의 正體와 과제를 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問題要因들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現 ?史的 地平 속에서 제기된 이러한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어, 주어진 論題, 「그리스도信仰에서 본 샤머니즘」을 그리스도 神學的으로 간략하게 논의하려고 한다. 따라서 우리의 견해는 샤머니즘을 순전히 民俗學的으로나, 一般 宗?學的으로 보는 입장과는 상이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이하에서 샤머니즘(shamanism)을 佛?, 儒?, 道? 등 外來宗敎들이 中國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 민족적 종교 구실을 해왔고, 그후 오늘날까지 수다한 ㅊ小 宗?들이 ?勢를 확장해가는 데에서도, 민족의 대다수를 점하는 庶民들 속에서 뿌리박은 종교적 집단으로 이해하면 서,(2) 이를 그리스도信仰의 始原論的 局面에서, 原罪論的 局面에서 그리고 終末論的 局面에서 각기 관찰하기로 하겠다.

II. 始原論的 局面에서 본 샤머니즘

그리스도신앙에 따르면 하느님은 인간과 세상 萬物을 포함하는 모든 實在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主이시다. 이 告白은 그리스도 創造信仰에서 자신을 명백히 드러낸다. 존재하는 만물은 당신 자신을 선사하는 智慧에 의하여 現存在에 이르고 충만되고 관리된다. 그러나 이 하느님의 지혜는 추상적인 世界原理나 순수한 자연질서가 아니다. 이 지혜는 구체적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萬事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救援秩序를 指向하여 조성되었다. 그러기에 창조와 구속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질서가 있을 뿐이다(1 코린8,6; 콜롯 1,16). 하느님은 당신과 인간들 사이의 유일한 仲裁者로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인류의 구원을 원하신다(1티모2,4). 이 告白은 배타적이기도 하고 보편적이기도 하다. 그리스도信仰 共同體는 처음부터 인간이 구원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의 구원을 원하시고, 이것을 위해 인간으로 태어나서 십자가와 부활의 救贖事業을 완성하였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 공동체는 지구역사상에 불과 2千年 전에 나타났다. 로마帝國治下에서의 유대아 지역에서 유대인들과 이교도들로 이룩된 보잘것없는 미소한 종교적 집단으로 출발해서 3세기에 걸친 혹독한 박해시기를 거쳐 서방세계에 비로소 정착한 뒤에, 우리 민족에게 신앙을 전파한 지는 아직 2백년이 채 되지 않았고, 그리스도교가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1백년도 되지 못한 一淺한 ?史를 지닌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있다. 인류의 역사는 오늘날 5천년이 아니라 50만년, 학자들에 따라서는 200만년에 이른다고까지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인류가 생존하는 어디에서나 超Λ間的 存在를 숭배하며, 이 존재의 뜻을 따르고자 노력하고 이에 상응하는 儀式行爲를 하는 종교적 활동이 발견된다는 것이 연구 결과로 드러났다. 그리스도 역사의 一淺性에 직면하여서 이미 그 이전에 출현한 다른 종교의 정당성 如否問題는 신학적으로 중대한 문제로 나타난다.(3)

그리스도敎 내에는 일체의 다른 모든 종교들을 인간의 不信仰과 우상숭배와 驢慢行爲로 단정하여, ‘하부로부터의’ 순전한 인간의 試圖로 낙인찍는 막강한 信仰 내지 神學路線이 있다. 금세기 20년대 이래 改新敎에서 소위 新正統主義로 등장한 바르트(K. Barth)에 의해 주도된 辨證法的 神學路線이 바로 이 경향을 대표한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이 입장은 그리스도신앙을 ‘上部로부터의’ 하느님의 계시로 보아 타종교들과 대립시켜, 그리스도신앙을 ‘神없는 자들의 所行인 종교’로부터 분리시켜서 '超自然的인 것’의 폭풍우를 벗어난 지대로 대피시킨다.(4) 이 입장의 결과로 남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孤立이고 그리스도信仰의 보편성과 공번성(가톨릭성)의 상실일 뿐이다.

신약이나 구약이나 聖書에는 異?徒들의 救援狀態나 종교에 관하여 명료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이러한 판결은 모든 커다란 역사적 현상들의 어쩔 수 없는 兩意性과 인간적 행위에 대한 궁극적 판결의 불가능성에 직면하여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리나 구약이 이미 아브라함과의 契約締結 이전에 生存하던 아벨, 노아 둥이나 舊約契約 바깥에서의 욥이나 멜키세덱, 사바의 여왕같은 우상숭배자였거나 舊約宗敎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졌던 異敎徒들 가운데 의로운 이교도들이 있었던 것을 증언하고 있다. 언급된 인물들이 구체적으로 생존했던 개인들이 아니고 특정한 유형의 ㅅ間 型을 지시한다고 하여도 문제는 없다. 이로써 의로운 이교도들의 存在可能性이 더욱 확대되는 때문이다.(5) 그리스도에 따르면 異?徒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顯示되는 하느님의 나라에 근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마르4,32). 그리스도는 당신의 救援宣布 속에서 민족과 출신과 교육수준의 境界를 두지 않고 이교도들이 유대인과 동등한 자격으로 구원에 참여할 것을 약속하였다(마태 25,31-46; 8,11 이하; 이사 25,66).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하느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이교도들도 그리스도의 주권하에 서 있다.

敎父들(Justinus, 알렉산드리아의 Clemens)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합당하게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 로고스(λoγоδ)의 斷片들이 創造 속에서 발견되며, 이교도 종교들의 陳述과 儀典 속에서도 발견된다고 보았다.(6) 인간의 구원가능성에 대한 물음에서 대단히 엄격히 판결하는 아우구스티누스까지 ‘아벨로부터의 교회’ 이론을 알고 있었다. 敎父들은 요컨대 하느님의 善이, 그의 救援恩寵이 만백성 속에서 작용하는 것을 認知하고 있었다.(7)

이제 창조 이래 인간에게 제공되는 하느님의 구원은총은 통상적으로 孤立的 인간의 양심의 孤獨性 속에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 存在者인 인간의 전체 사회 ㅡ문화적 상황 속에서 만나게 된다. 보통으로 인간은 神을 崇拜하고 그의 뜻에 附合하고자 하는 종교적 삶을 자신이 처해 있는 宗敎共同體를 통하여 제공되는 현실 속에서 영위하게 된다.(8) 이 종교 속에서 인간은 양심의 절대적 요청을 만나게 된다. 특히 교육을 받지 못한 無知하고 계몽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종교적 삶을 실제로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지배적인 종교를 통하여 所與되어 있는 形式 속에서 성취해야 하는 이외에 다른 실존적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이러한 인간은 헤어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에게는 최종적으로 拘束的인 양심의 호출을 대하게 된다..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에 따라 모든 인간들에게 선사된 救援恩寵이 그들이 몸담고 있는 종교 속에서 특히 受容되어 구원이 성취된다는 점이 시인되어야 한다. 여기서 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該當 非그리스도 종교가 구원의 구체적 場이 되고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가 하느님에 의하여 하게 되는 自然事物들 속에서 작용하는 超ㅅ間的인, 초월적인 ‘힘’에 畏敬을 느끼고, 地上에서의 삶 뒤에 영혼의 불멸을 믿고서 만물을 주재하는 神을 숭배하고 예배행위를 하였었다.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 행해졌다고 思科되는 迎鼓(부여), 東盟(고구려), 舞天(동예) 등으로 불린 祭天行使들 은 그 당시 우리 선조들의 역사적 상황에서는 그보다 더 완전한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진실한 예배행위였을 것이다. 이러한 祭天行使들이 샤먼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서 部族社會가 형성되고 종교적 생활을 영위하였을 것이다. 이들의 宗?行爲가 현대의 그리스도信仰의 관점에서 볼 때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저들의 神에 대한 畏敬行爲 자체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意志에 순응하는 신앙행위의 발로였다고 볼 수 있다. 4세기 이래 불교와 유교 그리고도교 등 高等宗敎들이 전래되어 샤머니즘이 李朝時代에 이르러는 천시되었으나 庶民들 사이에서 특히 부녀자들 사이에서 地盤을 확고히 하는 등, 민족의 종교적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샤머니즘은 우리민족의 경우, 보편적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에 의하여 허용된 긍정적 宗敎集團으로 看做해야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의 先ㅅ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사머니즘적 宗敎 表象世界 속에서 생활하고 구원에 필요한 종교적 행위들을 실천하는 이외에 다른 實存的 可能性이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불가피하다고 느껴진다.

 III. 原罪論的 局面에서 본 샤머니즘

그리스도信仰에 따르면,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물음은 신앙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을 구속시키지 않고 완전한 자유에로 해방시킨다. 이에 이르기 위해 인간은 決斷에로 呼出되고 신앙행위를 실천해야 한다. 물론 하느님은 당신의 義化를 그리스도信者이거나 非信者이거나 상관없이 이들의 신앙에 입각하여 구별없이 선사하신다. 문제는 여기서 구원에 필요불가결한 신앙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뜻하는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明顯的 信仰만이 구원가능한 신앙인가? 아니면 인간이 자기 現存在의 헤아릴 수 없는 神秘를 冒險하면서, 신뢰하면서 받아드리는 곳 어디서나, 드러나지 않는 匿名的 形態의 신앙으로도 구원이 가능하지 않는가?(11) 聖書는 이 물음에 직접적인 해답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성서는 복음이 선포된 사람들의 信仰에 관해서만 긍정적으로 허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命題는 모든 종교가 동등하게 정당하고 여하한 종교에서도 구원은 발견된다는 宗敎無區別의 주장과는 다르다. 임의의 모든 종교에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절대적인, 역사적으로 바뀔 수 없는 양심 속에서 하느님의 召命이 일어나는 종교에서만 인간은 구원을 발견하고, 이러한 한에서 이 종교는 정당한 종교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서는 非그리스도 종교의 정당성 문제를 일체의 구별없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理論 속에서 추상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논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강조한다.(9)

예수가 가파르나움의 장교의 신앙을 보고 놀라와하고(루카7,10), 바오로가 아테네인들에게 "그대들이 알지 못하고 공경하는 것을 내가 선포한다”(로마 17,26)고 말할 때, 성서는 異敎徒들에게 제공된 구원이 이교 속에서의 그릇된 하느님의 表象 하에서도 구현될 수 있는 진정한 종교적 행동 속 에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증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격적인 하느님의 崇敬行爲는 순전한 개념직인 神認識에 의하여 좌우되지는 않는다. 개념적인 神認識이 非對象的이고 非主題的인 神體驗을 뒤따르는 인식과정임을 인지할 때, 그릇된 神表象 하에서라도 구원에 필요한, 양심을 따르는 생활이 가능하며, 하느님께 대한 진실한 崇敬行爲가 가능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10) 그런데 明示的인 그리스도信仰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구원이 창조와 구원계획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중심위치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련 없이는 성취불가능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어야 할 것이 결론적으로 따른다.

이제 先史時代로부터 장구한 세월을 거쳐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전해져 온,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정신과 생활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민족적인 宗?集團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샤머니즘은 北方民族에 속하는 우리 민족의 주위민족들인 滿洲, 시베리아, 中國, 蒙古와 日本 등지에서뿐만 아니라, 남북미의 인디안족과 에스키모족, 南洋 또는 아프리카의 원주민들 사이에도 발견되는 ?世界的인 종교집단임이 학술연구에 의하여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民俗學的 宗敎學的으로 샤머니즘의 原始性이 그 神觀과 우주관 그리고 인생관에서뿐만 아니라 儀式行爲 속에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현대의 比較宗敎學的인 학술적 견해이고, 여기서 관심이 되고 있는 샤머니즘의 救援意義에서 결정적인 否定的 기준이 될 수 없다. 物神主義나 精靈主義 단계에서의 원시인간들은 생활 속에서 대 직접 언급하고 있다.

聖書에서는 인간이 실제로 처해 있는 상황이 문제가 될 때, 낙관적인 판결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聖書와 聖傳의 확신에 따르면 인간들은 하느님의 眞理를 인식하기는 하였으나,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眞理를 破棄하고 하느님의 위엄을 無常한 인간과 짐승들의 형상으로 교환하 였다. 創造主의 자리에 피조물이 들어서서 恭敬과 欽崇을 받기에 이르렀다(로마1,18-25). 그 때문에 新舊約과 敎父들은 다른 종교들 안에서 미신과 欺瞞과 진정한 종교의 악마적 模傲과 악마적 현혹 그리고 교만과 도덕적 타락을 보고 있다. 여기서는 創造秩序가 완전히 顚倒되었다. 이 상태에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摸像으로 이해되지 않고, 인간이 자기 모상과 형상에 따라 神을 제조해 낸다.(12)

종교現象 속에서의 이러한 原罪論的 측면들은 그리스도信仰 外部에서의 救援可能性의 국면과 함께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보다 깊고, 보다 포괄적인 진리 때문에 성서적 예언자적 宗敎批判과 啓蒙思潮 이래 일기 시작한 근세적 종교비판이 샤머니즘의 實在에 해당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近世的 宗?批判은 바로 사회의 공업화와 연결된 世俗化 過程을 통하여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며 종교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 있다. 이 근세적 종교비판은 예언자적 종교비판과 함께 인간을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諸勢力으로부터의 ㅅ間解放과 종교적으로 치장된 폭력과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저해하는 종교적 幻想의 欺瞞으로부터의 인간구원에 봉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샤머니즘의 현 實態는 어떠한가? 샤머니즘에서는 무수한 神이 신봉되고 있다. 金泰坤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13) 현재까지 273종의 神이 조사되었고, 이것을 다시 系統別로 보면 天上神(天日月星神), 地神, 山神, 土神, 水神, 火神, 風神, 石神, 方位神, 門神, 神將神, 邪鬼神, 冥府神, 疫神, 動物神, 農神 등으로 自然神 계통이 분류될 수 있고, ㅅ神系統으로는 王神, 將軍神, 大監神, 夫ㅅ神, 巫祖神, 佛?神, 道敎神 계통의 일반 ㅅ神系統과 其他系統으로 분류되는데, 신봉되는 神들 중 63.6%가 자연신 계통의 신이라는 것이다. 자연신 계통의 경우, 인간의 일상생활과 가장 密接한 自然物인 地, 水, 山, 天의 순서가 되고 ㅅ神일 경우, 장군신, 왕신, 불교신, 巫祖神의 순위로 신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神觀을 관찰하면, 神은 인간의 신화적 투사 이의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포이에르바흐(L. Feuerbach)의 宗敎批判이 바로 해당된다고 보아야겠다.(14) 자연에 무력하게 投棄되었던 인간들이, 역사적 의식이 결여되었던 단계에서 주위세계 속에서 만나게 되는 不可解的 實在를 자신의 요청에 따라 神像으로 투사한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은 呪術宗敎로서 주술에 의하여 만사를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 신앙의 목표 자체가 현세적 所願成就로서 幸運, 招福, 除炎, 治病 등의 現實的문제에 집착하여 초월적인 神力에 의존하여 해결해 나가려 한다. 소원성취 방법이 倫理決斷的 실천행위보다는 靈力이 있는 샤먼들을 통하여 신에게 祭物을 바쳐 그 祭物의 量과 質에 비례하는 신의 應顯이 功利的인 신앙관에 전적으로 의존되고 있다. 儀禮行爲는 타부〔禁忌〕를 범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살(煞)을 풀이하는 데 목적이 있고, 자신이 스스로 범한 罪를 속죄 참회하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勸善懲惡이 없지 않으나 善神 도 잘 대접하지 않으면 재앙을 줄 수 있고 惡神도 잘 대접하면 福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善과 惡이 倫理的 規範이라기보다 物質的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信仰觀은 한마디로 말하여 인간을 부자유스럽게 만들고 허황한 환상 속에서 생활케 한다. 그래서 인간을 미래를 지향하는 躍動的인 역사적 과정에서 사회의 낙오자로 만든다. 이 점에서 샤먼 信仰層이 종교의 主體를 찾는데 외면하는 사람들이고 발전하는 一般文化에서 뒤진 사람들이며, 샤머니즘은 고대문화의 殘津文化이고 그런 만큼 하루속히 界華시켜야 할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15) 그래서 요컨대 오랜 세월을 두고 오늘날까지 흘러오는 가운데 샤머니즘은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淨化되어야 할 많은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宗敎集團이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異他的 文化宗?的 요소들과의 遭遇를 통해서 자신의 성격을 변모시킴으로써 原初의 모습을 잃을 수가 있다. 오늘날 발견되는 한국 샤머니즘 속에서 불교, 유교 내지 도교적 요소가 발견된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高等宗敎의 요소뿐만 아니라 잡다한 민속적 風習要因들이 오늘날의 샤머니즘에 가미되어 복잡한 混合宗敎 집단으로 형성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스도敎가 샤머니즘과 遭遇하게 되었을 때에 샤머니즘의 救世史的 상황과 合法性은 변화된다. 그런데 언제 샤머니즘이 그리스도?와 참으로 만났는가 하는 물음은 역사 적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遭遇는 두 相對者들이 時空間的으로 만나는 것 이상이다. 遭遇는 상대방 상호간의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조우는 순전한 知的 經偉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진리를 실천적으로 드러내는 데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겠다.
그리스도信仰은 인간에게서 어두움에 가득찬 과거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죄악을 참회하고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의 구현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요청한다. 현세적 생명 보전에 집착하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회생한 그리스도와 같이 爲他者가 될 것을 요청한다. 인간을 사랑하는 나머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이 하느님께 바쳐야 할 참된 信仰形態란, 부패하여 없어질 祭物의 봉헌이 아니라 자기 헌신이라는 것을 명시한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그리스도信仰 공동체는 인간을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要因을 제 거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샤머니즘이 지닌 문제성들을 지직하여 무지와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빈곤하며 나약한 샤머니즘 信奉者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유로운 자녀생활을 현세에서 이미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IV. 終末論的 局面에서 본 샤머니즘

그리스도信仰 공동체는 샤머니즘에게 ‘예’와 '아니요’의 관계하에서 있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은 終末論的 展望을 통하여 매개되어 있다. 聖書에 따르면 전체 인류와 實在世界는 하느님의 약속하에 서 있다 (창세 3,15). 구약은 종말론적 救援時期에 諸民族들이 예루살렘에로 순례할 것으로 알고 있다(이사 2,2:미카 4,1; 마태 8,11). 이 민족들은 主를 찬미하는 가운데 종말론적 평화를 이끌어갈 것이다.(16) 신약에 따르면 이 終末識的 救援時期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속에서 다가왔다. 그리스도는 그의 한몸에서 유대인들과 異?徒들을 화해시켜 모든 인류를 위한 共同家庭을 이룩하였다(에페 2,14-19). 구약뿐만 아니라 全實在가 그리스도와 그의 役事 속에서 완성을 발견하였다(에페1,10). 그리스도는 저들이 만나는 공동적인 集合地點이다. 이교도들과 유대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 ?會는 創造속에서 이미 작용하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救援決窓의 具現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교회는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구원된 인류의 단일성의 場이며 화해의 空間이다. 하느님과의 가장 내밀한 일치이며 전체 인류의 單ㅡ性을 드러내는 표징이다.(17)

이 終末論的 展望 속에서 만민들의 문화와 종교들은 새로운 빛 안에서 보여진다. 이들은 ?父들이 말하듯 福音의 準備이며, 하느님의 敎育의 表現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아들은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보편적인 救世經?에 궁정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하느님의 구원질서는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인간 자신의 과거로부터의 탈출의 법규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다. 전체의 救援歷史는 십자가의 標徵과 자기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생명을 바치는, 자기자신을 超克하는 사랑의 법칙을 통하여 표지되고 있다.(18) 샤머니즘도 救世史의 과정 속에 여러 종교집단들과 함께 하느님의 終末論的 平和에 기여하는 만큼 救援意味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구원의미의 최종적 명료성과 보편성에 샤머니즘은 다른 종교집단들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이르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非그리스도信者들에게는 증명되지 않은 독선적 주장으로 나타날 것이다. 종교학자 엘리아데.(M. Eliade)는 역사적으로 된 現代世界에서 역사적 종교로서 역사와 긍정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가 자유의 創造的 힘과 ?史的 前進의 긍정적 가치를 발견한 인간들 에게 삶의 意志와 意味를 부여하고, 인류의 보다 깊은 정신적인 일치와 화해를 일으키게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19) 바로 이 점이 그리스도?會를 오늘날 인류의 구원과 미래를 위한 세계적 과제에로 내세운다. 교회는 완성된 하느님의 왕국이 아니라 이 왕국의 聖事的 標徵이고 순례하는 교회로서 십자가의 교회들이다. 萬民들의 회개는 교회와 신앙인들의 그릇된 획일적 思考와 우월감으로부터의 회개를 전제로 한다.(20)

하느님 나라의 終末論的 顯現을 위한 宣?活動은 신학적 식민주의나 교회의 제국주의적 확장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교회는 알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擴張이 아니라 교회의 扶植에 관해 말하고 있다. 민족들의 일치를 위해서 필요한 선교활동은 그리스도의 肉化를 세계 속에서 具現해야 한다. 하느님의 肉化는 그 充滿을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 事件 속에서 발견한다. 救續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改宗뿐만 아니라 再生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두번째 誕生은 無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다. 부활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죽었던 존재이다. 교회가 이런 의미에서 샤머니즘의 再生의 蜜事가 될 때, 이 샤머니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세로 이끌어갈 때, 그리스도敎會는 萬ㅅ의 종교적 재산의 상속자가 되고 자기자신의 충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이 나라에서도 항상 他者를 위한 標徵이어야 한다. 그리스도信者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他ㅅ들을 위해서 그리스도信者이듯, 그리스도敎會는 자기자신을 비워서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이웃 宗?들, 여기서 샤머니즘을 昇華시켜 새로운 誕生에도 나아가도록 봉사할 때, 자신의 정체를 민족 앞에서 신빙성 있게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V. 結  語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非그리스도 傳承의 종교들과 그리스도傳承사이의 연관성들이 연구되어야 하며, 宜敎活動의 합리적이고 질서정연한 遂行을 위해 非그리스도 宗敎와의 대화를 촉구한 바 있다.(22) 이 立場은 교회가 샤머니즘을 대할 때에도 해당된다. 샤머니즘이 다른 세계적 大宗敎들처럼 조직화된 교리나 구조를 지니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이들 大宗敎들과의 遭遇를 통하여 이들에 의하여 侵?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이들을 變容시켰다. 그리고 샤머니즘이 한국 그리스도敎를 샤머니즘화한다는 見解가 대두될 정도로 그리스도敎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끈질긴 生命力 을 지닌 종교적 집단이라는 사실에 유의하여 진지한 대화를 포함하는 신중한 샤머니즘 ?究作業이 한국 가톨릭?會 안에서도 활발히 전개되어야 하겠다.

사실상, 한국 가톨릭神學은 지금까지 西歐의 思想的 地平 속에서 형성 발전된 소위 '西歐神學’을 번역 소개하는 段陪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普遍要請을 내세우고, 그리스도 神學이 자신의 목표를 福音宣布의 寄與에 두는 한, 한국 가톨릭神學이 일방적으로 西方 傳來의 신학에 의존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국인이며 그리스도ㅅ이려는 우리는 한국적 구체성을 띤 普遍的 그리스도神學을 啓發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인의 일반적 思想構造와 종교적 心性에 영향을 미치는 儒?佛敎를 비롯한 동양적 내지 한국적 종교들과 동양 내지 한국사상과의 허심탄회한 대화와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이들 종교 및 사상들과 그리스도의 福音이 어떠한 相關關係를 지니고 있는지, 이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救援眞理를 수용하는 데 기여하는 어떠한 진리들이 발견되는지가 熟知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作業들을 통해서 요청되는 그리스도神學 土着化의 취지가 정당하게 성취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註〕

(1) H. K?ng, Die Kirche, Freiburg?Basel?Wien 1969, 13; W. Kasper,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 사목 50호 (1977.3), 62-64 참조.
(2) 샤머니즘에 관하여 주로 하기 저서 및 논문들을 참조하였다. 문상희, 한국의 샤머니즘, 종교란 무엇인가, 왜관(분도출판사) 1975, 123-189; 김태곤, 한국 샤머니즘의 구성체계, 종교사 연구 2진, 서울 (한국종교사학회) 1973, 61?80;상동, 무속의 내세관, 상동 1집, 서울 (한국종교사학회) 1972, 1-28;유동식,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5;상동, 한국 종교와 기독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5 (제 9판);장병길, 민속종교와 샤머니즘, 한국문화의 상황분석, 한국아카데미 총서 5, 서울 (삼성출판사) 1975, 413-421;최병길, 한국 샤머니즘의 흐름, 상동 405-412 ; M. Eliade, Shamanism :  Archaic Techniques of Ecstasy, New York 1964.
(3) 비그리스도 종교에 대한 신학적 사유에 관해서 H.R. Schlette, Die Religionen ah Thema der Theologie, Freiburg 1964; H. Heislbetz, Theologische Griinde der nichtchristlichen Religionen, Freiburg 1967; W. Kasper, Der christliche GlauBe angesichts der Religionen, in: H. Feld (Hg?), Wort Gottes in der Zeit, Diissel-dorf 1973, 347-360; S. Shim, Glaube und Heil. Mine Untersuckung zer Theorie von den “anonymen Christen” Karl Rahners. Dissertation, Ttibingen 1975.
(4) K. Barth, Kirckliche Dogmatik 1/2, Ziirich 1960 (제 5판), 304-397.
(5) J. Danielou, Die heiligen Heiden des Alten Testamentes, Stuttgart 1958.
(6) W. Kasper, op. ext., 350.
(7) Y. Congar, Ecclesia ah Abel, in: M. Reding (Hg.), Abhandlungen iiber The(K logie und Kirche. Dusseldorf 1952! 79-108 참조.
(8) S. Shim, op. cit?, 146 참조.
(9) Ibid., 263-267 참조.
(10) J. Heislbetz, op. cit., 25ff.
(11) S. Shim, op. cit., 126-144 참조.
(12) Ibid.,264f.
(13) 김태곤. 한국 샤머니즘의 구성체계, 71-75 참조.
(14) L. Feuerbach, Das Wesen des Christentums, Stuttgart 1969, 80-169.
(15) 장병길, 민속종교와 샤머니즘, 420.
(16) W. Kasper, op. oit., 354f.
(17) 교회헌장 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서울 (천주교중앙협의회) 1975참조.
(18) W. Kasper, op. cit., 355f; S. Shim, op. cit., 370ff.
(19) M. Eliade, Kosmos und Geschichte. Der Mythos der ewigen Wiederkehr, Hamburg 1966, 125ff.
(20) 심상태, 교회헌장에서?의 교회본질(사목 52-54호) 참조.
(21) 교회의 선교활동에 판한 교령 6항.
(22) 동상 16.34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