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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信仰職制委員會 하나의 聖洗,聖餐,聖職
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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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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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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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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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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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톨릭典禮와 韓國巫俗
1978년 1월호 (제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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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1978년 1월호 (제 55호)

wcc 信仰職制委員會 하나의 聖洗,聖餐,聖職

편집실

라. 여자의 서품

(64)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의 직무에 대한 그들의 특수한 공헌이 갖는 완전한 의미를 밝힐 필요가 있다. 교회는 남자가 맡을 수 있는 성직의 형태는 물론 여자가 맡을 수 있는 성직의 형태에 대해서도 권리를 갖고 있다. 참으로 우리의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가 모든 종류의 성직에 있어서 좀더 광범위하게 반영되어야 하겠다. 만약 성직이 그 성직에 관련된 이들의 온 인간성을 바치기를 요구한다면, 성직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창조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풍요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65) 여자의 서품을 옹호하는 자들은 복음과 서품의 의미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의거해서 여자의 서품을 옹호하고 있으며 또한 여자들이 서품되고 있는 교회의 경험이 대체로 긍정적이어서 아무도 이 결정을 재고해야 할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지금 모든 교회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대면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여자를 서품하는 교회들은 여자 의 은사도 남자의 은사와 마찬가지로 넓고 다양하며, 이들의 성직도 남자의 성직과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온전하게 축복해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자의 서품에 반대해 온 19세기 동안의 전통의 힘을 가볍게 무시할 수 없으며, 또 이러한 전통을 교회 안에서의 여자의 역할에 대한 존중심의 결핍으로 몰아낼 수도 없다. 이것은 우리가 당면해야 할 사회적이며 신학적인 문제들을 야기한다. 여러 교회와 여러 크리스챤 전통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문제들에 대한 토론은 모든 교회의 교회일치적 친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합동연구와 반성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66) 많은 교회에서 과거의 성직들의 효능을 인정하면서도 창세기 1,27과 갈라티아서 3,28과 같은 귀절을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요청에 맞춰 해석하고 있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피조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갖는 관련성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전망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극복된다고 하는 사실이 서품성직에 주는 함축적인 의미들을 좀더 충분히 탐구해야 한다. 전통에 따라서 같은 사실을 다르게 해석한다. 창조나 구원안에서 양성의 관련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남자만을 서품하는 교회들은 성의 구별을 명백히 규정된 사회적 역할의 분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 남자와 여자를 모두 서품하는 교회는 양성의 차이가 갖는 인간학적 사회적 의의를 과소평가할 위험을 무릅써야 할 것이다.

(67) 현대의 사회적 문화적 흐름 속에 퍼져있는 우세한 男性像은 이 논쟁의 양면에 있는 신학적 논증과 교회관습에 대해 불리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록 현대사회 특히 서양사회에서는 성서시대의 사회에서보다 여자가 상당한 동등성을 누리고 있지만 여자서품 지지자나 반대자 모두 언어와 관습으로 엮어진 구조물의 일부분인 남성우위 사조의 지배를 받고 있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러한 개념 유형들이 여자를 서품하는 교회에서나 서품하지 않는 교회에서나 신학적 논증과 제도적 관습을 왜곡시킬 수 있다.

(68) 자신의 안전과 권위가 도전을 받는다고 하는 일부 남자들의 느낌은, 이 문제에 있어서 실제적이기는 하지만 신학적으로는 부차적인 쟁점이다. 마찬가지로 일부 여자들이 사회 안에서 좀더 큰 세력과 영향력을 찾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허황된 생각이다. 교회는 자유와 정의 그리고 이들이 식별되는 진리의 편에 서서 사회적 심리학적 요인들을 충분히 인식하여,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거나 흑은 허황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누가 서품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은 이 주제와 관련되기는 하지만 같은 질문이 아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시대 상황 안에서 성령에 의해 해석되는 복음의 이해에 순종하여 성직의 유형들을 형성하고 있다. 서품의 문제도 이런 기반들 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69) 일부 교회에서는 이 문제들이 아직 활기를 띠고 있지 못하다. 이들 교회들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들이 교의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오랜 전통적 규율과 관련되어 있는지를 아직도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서로 다른 신앙고백을 하는 개인들도 교의적인 요소와 규범적인 요소 혹은 이 둘의 관계에 관해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한 차 이들 때문에 성직의 상호인정에 방해되는 것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해 요인들을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서로 상대방을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상대방 교회의 통찰력을 통해서 하나인 교회에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일치적 자각과 책임은 일단 한 교회가 적절하고 옳다고 결정하였으면 그 교회는 자신의 확신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자의 서품에 대한 교리적인 고찰들이 호의적이거나 아니면 중립적이라는 견해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므로 미래의 교회일치회의에서 이 문제를 취급하게 될 가능성은 열려있다. 그러므로 일치를 위한 연구를 통해서 이 문제가 다루어지는 것이 억제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충분히, 솔직하게 다루어지도록 장려되어야 한다.

5. 현대의 성직수행

가. 교회내의 변화와 쇄신, 성직

(70) 교회는 역사 안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자신이 파견된 이 세상의 일부분이다. 인간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교회는 새로운 상황에서 하느님께 새로운 순종을 드리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사회 안에 새로운 의사전달 수단이 개발되면, 이것들은 말씀의 성직을 위해서 그 효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또 만약 어느 사회에 농촌에서 도시에로의 커다란 주민 이동이 있다고 할 때에, 전적으로 농촌 상황에 적합한 구조를 가진 교회들은 그 구조를 변경하도록 충동을 받게 될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서 반드시 해야할 일 즉 그리스도의 힘에 의지해서 자신의 생활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오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이러한 표명이 불가피하다. 

(71) 오늘날, 하느님의 교회가 있는 세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빠른 변화를 치르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의 사명과 생활을 적응시키기 위해 자신의 노력을 갱신해야 한다. 변혁의 능력은 곧 교회와 그 성직의 생명력의 척도이다. 교회가 세상의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할 때에, 교회는 하느님께서 과거에 당신의 순례하는 백성에게 나누어 주신 자력들과, 이 백성들이 하느님 깨서 저들을 놓아두신 세상으로부터 얻는 통찰력을 모두 이용해야 한다.

나. 성직자의 역할

(72) 교회쇄신의 본질적인 요소는 성직의 쇄신이다. 성직에 관한 어떠한 교리에도 성직자가 크리스챤 공동체 안에서 완수해야 할 역할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그가 성직을 수락할 때에 그는 자기 임무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를 가지고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챤 공동체가 그에 대해서 실제로 가지는 기대가 자신의 이해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곧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는 공동체의 기대들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73) 성직자들은 이러한 긴장을 경험하면서 어려운 딜레머에 봉착한다. 이들은 서품성직에 대한 자신들의 직관을 고집하며 회중을 멀리하거나 혹은 회중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자신을 적응시키며 죄책감을 경험하게 된다.

(74) 많은 경우에 자신의 역할에 대한 성직자의 이해와 회중이 가질 수 있는 기대 사이의 격차는 아무도 온전히 알 수 없는 깊은 긴장감을 감추고 있다. 이와같이 크리스챤 공동체는 그들의 성직자로부터 그들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실체적으로 다른 무엇을 원할 수 있다. 성직자도 자신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다.

(75) 성직자들과 희중이 서로 어떤 상황에 나타나는 갈등에 대해 좀더 솔직하도록 노력하며, 그 긴장을 창조적으로 맞아들이려는 마음자세가 쇄신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성직자와 크리스챤 공동체는 함께 그들의 기대를 어떠한 면에서 바로 잡아야 할지를 숙고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유형들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치를 수도 있고 그 유형들의 전부 혹은 일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성직자는 도래하는 하느님 왕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교회를 개혁하려 하는데, 그를 서품했고 또 지원해 주는 제도적인 교회는 주로 그에게 통계적으로 잴 수 있는 결과를 내거나 교회시설을 수리하는 데에 그 성직을 바쳐주기를 기대한다면 그 성직자는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76) 그리스도교 복음에 대한 충성심과 정치적 문화적 요인에 대한 충성심을 한데 묶어버리는 회중(예를 들면, 북아일랜드와 남아프리카)들에 대한 성직수행에는 특수한 어려움이 따른다. 또 성직자들이, 그 회중이 용납할 수 없는 경치적이며 사회적인 내용을 자기 역할의 일부로 생각할 때에도, 성직자들과 회중은 대립할 수 있다(이것 역시 북아일랜드나 남아프리카에서 찾아볼 수 있다).

(77) 점점 더, 서품성직자들은 그들이 재건운동이나 혁명운동에 어느 정도로 동조해도 되는지 흑은 동조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이들은 이러한 운동의 최초의, 찬양할 만한 목적은 불의를 바로잡고 비인간화하는 사회적 경치적 구조들을 개혁하는 것이었지만 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이 운동도 또 다른 불의와 비인간화하는 구조들의 씨앗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을 고통스럽게 인식하며 이 일을 해야 했다. .

(78) 성직자의 역할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오는 이러한 갈등으로 말미암아, 성직자와 회중이 서로의 관계에서 갖게 되는 상호간의 책임과 성직자의 권위가 위협을 받는다. 모든 성직의 권위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 속하며 그 본질적인 특성은 봉사하는 데 있으므로, 성직자는 자신의 서품에 비추어 회중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회중도 어느 한계까지 성직자의 권위에 응해야 하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 부류의 사람들은 전체로서의 당신 교회에 주신 그리스도의 위임에 비추어서 또한 상대방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에 대한 그들 서로의 책임에 비추어서 자신들의 의견차이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 새로운 성직과 옛 성직

(79)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은 과거나 현재의 경험에 비추어서, 어느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 있는 교회가 물려받은 성직의 유형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유형의 성직에도 장려할 만한 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동시에 교회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성직의 유형들도 자주 새로운 상황에 탁월하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 있는 교회는, 전승되어온 유형이 오래된 것이고 다른 유형이 새것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전승되어온 유형을 쉽사리 포기하거나 다른 것으로 갈아치워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유산으로 내려온 성직의 유형이 일정한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새로운 상황의 요청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고 밝혀지는 한 이 존귀하고 전통적인 유형ㅡ예를 들면, 전승되어온 본당 성직ㅡ을 보유하거나 물려받는 것이 가능하며 또 크게 바람직할 것이다. 동시에 어느 교회가, 물려받은 성직형태에 새로운 양식을 보충하거나 흑은 새롭고 시도적인 성직들을 구상해 냄으로써 새로운 사회상황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에 대처한다 하더라도, 그 교회는 그 때문에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그 예로, 특수직업이나 직업단체의 구성원들을 위한 성직들은 여러 곳에서 긴박한 요청들을 해소시켜 주었다. 어쨌든 교회는 새로운 양식의 성직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대로 사도시대와 속사도 시대에 그리고 그 이후 시대 그리고 교회의 오랜 역사의 어느 시대에도 다양한 성직들 가운데에서 전형들을 보유하고 있다.

(80)이 점에 있어서 교회일치를 위한 예민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교회들의 상호관련성을 통해서 어떠한 교회도 다른 교회의 활동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했다. 언제나 범교회적 토론회를 통해서 ㅡ?이 방법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ㅡ성직의 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을 것이다. 참으로 어떤 문제들은,심지어 거의 보편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종파수준 흑은 지역수준에서 이루어진 해결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각 교회는 특별히 성직과 같은 민감한 영역에서 각 교회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갖는 잠재적이며, 교회일치에 도움이 되는 암시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민감하게 알아차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81) 더 나아가서 새롭고 시도적인 성직의 양식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일을 서품성직자들이 단독으로 처리해서는 안되며, 각 단계에서 평신도의 의견과 경험을 경청하며, 그 결정을 내리는 데에도 평신도를 참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82) 현재 많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교회에서 서품된 성직자들로 구성된 합동사목이 요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학 교회 상담이나 병원사목 혹은 어느 한 교회에 대한 봉사에도 이와 같은 합동사목이 이루어질 수 있다.

(83) ①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합동사목을 통해서 성직에 관한 교회전통들의 차이가 주는 깊은 대조들이ㅡ’이미지’ 혹은 '개성’등으로ㅡ어느 정도 부각됨을 알 수 있다. 어느 두 교회가 성체성사에 관해서 명백하게 신학적인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이나, 어느 한 교회의 성직자는 다른 교회의 성직자에게는 낯설은 교회 안에서 매일매일의 예전과 통교로 이루어지는 전통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좀더 일반적으로 교회간에 더욱 긴밀하게 교회일치를 위한 협동을 발전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합동사목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현저한 대조들을 정면으로 대하고 받아들여 철저히 처리해야 하겠다.

(84) ② 어느 경우에도 교회일치적 합동사목(예를 들어, 대학 캠퍼스에서)은 교회의 평신도 교육을 위한 힘있는 도구가 되고 있다. 어느 한 교회 전통 안에서 교육된 크리스챤은 광범위한 양태의 예배와 성직 그리고 새로이 나타나는 양태들을 경험하게 되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복음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갖게 되어 새롭게 교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85) ③ 교회일치적 합동사목이 개발됨으로써 범종파적 신학교에서는 서품을 위한 교회일치적 훈련에 있어서 이미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되었다. 이런 학교에 있는 서품된 교수진과 그 학생들에게도 유사한 긴장상태와 교육기회들이 생기고 있다.

(86) 이 모든 이유들 때문에 성직자들은 서로 교회일치적 협동을 통해서, 여기에 참여하는 교회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교회의 성직들에 대한 상호인정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급박한 요구를 받아들이게 한다.

(87) 이 모든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성직들의 상호인정이 성직에 관한 교리적인 합의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어느 교회에서나 상직자의 역할에 관한 긴장과 갈등을 성령께 굳게 의탁하면서 창조적으로 맞이하려는 준비성을 포함한다.

6. 성직의 인정과 화해를 위한 제언

가. 교회일치와 성직인정

(88)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성직에 대한 충분한 상호인정이 요구된다. New Delhi 회의(1961)에서 채택된 일치에 관한 진술서는 이 점을 명백히 해 준다. 이 진술서에서도 완전한 친교를 이뤘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을 열거할 때에 이 성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일치란 교회의 지체들과 성직자들이 크리스챤 공동체의 어디에서도 인정될 때에야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한 교회의 성직자가 다른 교회에서 어떤 직무들을 수행할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이러한 인정은 여전히 제한된 인정일 뿐이다. 성직자들이 초청을 받으면 어느 교회에서나 그들의 성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가능해야 한다. 물론, 어떤 지역에서 성직을 수행한다고 할 때에 행정적인 제한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제한은 하나인 교회 안에서도 있을 수 있다. 일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직에 대한 부르심과 그 성직의 열매가 모든 곳에서 인정되어야 한다.

(89) 교회들간의 분열은 흔히 서로 상대방의 성직을 배척함으로써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척이 항상 그 성직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생기지는 않는다. 성직자는, 공동체가 오류로 간주하는 것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인정을 취소당할 수 있다. 그는 공동체가 그 특수한 신앙고백 혹은 윤리적 결정을 고수하는 한, 용인될 수 없다. 그러나 이 분리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즉시 그 성직자도 자동적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성직 자체에 대한 이해에 의해 분열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성직에 관한 합의를 보는 것도 일치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90) 어떤 경우에는 사도적 계승의 표지가 이와같이 불일치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모든 교회의 상호인정이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갈라진 신앙의 문제에 강조점을 두고 대화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는 성직 자체의 이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91) 이와같이 성직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가 갈라진 교회들의 모든 관계에 같은 효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 문제는 확실히 모든 교회에 대해 아주 커다란 중요성을 가지며, 성직에 관한 공통적인 이해 없이는 일치를 향한 길에서 아무런 결정적인 진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일부 교회들에 있어서는 성직에 대한 공통견해와 관습이 즉시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하겠지만 어떤 교회들에 있어서는 이러한 공통견해와 관습이 꼭 필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공통적인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각 특수한 경우마다 일치를 위한 다른 보조적인 접근방법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충만한 상호인정은 많은 개별적인 노력들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92) 또 상호인정을 달성하기 위해 숙고할 때에는 교회가 분열되었음 때의 조건들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통해서, 합의를 보기 위해 따라야 할 방법이 광범위하게 결정될 것이다. 예를 들면,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상호인정은 16세기 초의 종교개혁 사건의 재조사와 재평가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영국 국교와 감리교회가 일치하기 위해서는 18세기의 분열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인 차원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도 안된다. 오늘날 모든 교회들은 그들이 분리되었을 때의 조건들을 넘어서서 변천해왔기 때문에 모든 교회의 공통적인 이해는 꼭 필요하다. 분리의 단순한 재연은 갈라진 틈을 고칠 수 없다. 교회들은 오늘날 그들이 쇄신되어 있는 대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나. 인정의 여러 단계

(93) 분열에서 일치에로의 진위는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차근차근히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들은 일치의 도정에서 서로 다른 지점에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것은 상호동의에 대단히 가까운 반면 어떤 것은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에 덮여있다.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상호인정의 여러 단계와 양상을 구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94) (ㄱ) 상호인정의 최초 단계ㅡ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는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성취했다ㅡ는 상호존경의 단계다. 다른 교회의 성직자를 단순히 한 개인으로 간주하지 않고, 자기 공동체의 대변인이 되게 해주는 어떤 권위를 지닌 자로서 간주한다. 교회일치 대화를 위해서라도 그 성직자의 대변자로서의 특성을 인정한다. 이러한 용인을 통해서 그의 성직의 영적인 가치를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만나기 위해 부정적인 판단을 보류하게 된다. 비록 이러한 태도에서 어떤 신학적 결론이 유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태도는 대부분의 교회가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어떤 신학적인 암시를 갖고 있다.

(95) (ㄴ) 다음 단계의 인정은 다른 교회의 교회적 특성을 이해할 때에 이루어진다. 이때에는 상대방 교회의 성직이 아무런 결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런 영적인 중요성도 가지지 않는다고 선언할 수 없다. 성직자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해 들어올리신 자로서 또한 서품성직에 할당된 임무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 자로서 이해된다. 이들의 성직은 사도적 성직에 약속된 완전성을 결여할 뿐이다.

(96) 많은 경우에 이러한 인정이 어떤 실제적인 노력을 하도록 이끌어주지는 않지만 자주 광범위한 협동작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비록 교회들이 서로 상대방을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하지는 못하지만, 그 성직자들은 많은 점에 있어서 함께 일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교회일치를 위해 무엇을 시도할 때에나 전도사업에 있어서 공동증거자들임을 확신하게 된 다. 이런 교회들은 아직 성체성사에 대해 완전한 일치에 도달하고 있지 못하고 서로 분리되어 있다 하더라도, 예외적인 경우에 교회론적 조건이 허락하는 곳에서 이들은 성찬례를 공동으로 집전하기도 한다.
(97) (ㄷ) 다음 단계의 인정은 다른 교회의 성직을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도적 성직이라고 인정할 때에 이루어진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인정을 통해 두 교회가 완전한 통교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런 인정을 통해서 좀더 자주 공동으로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그러나 일부 교회들에 있어서는 다른 결정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루어진 후 에야, 이러한 진전이 그들 관계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98) (ㄹ) 결정적인 단계는 성직에 대한 상호인정을 암시하는 공동체들간의 상호인정이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각 교회는 다른 교회를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하는데 동의한다. 이러한 인정은 그들이 반드시 같은 유기적 구조를 채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고, 복음에 대한 증언이 요구하는 곳에서 합류될 수 있는 준비성을 암시한다.

(99) 교회들과 교회의 성직들에 대한 상호인정은 어떤 공적인 행동을 암시하며 이런 행동으로부터 완전한 일치가 실현될 것이다. 이러한 공적인 행동이 상호간의 안수, 미사때에 盛式의 생략, 특별한 의식이 없는 장엄경신례, 예식 중에 단순한 공동 텍스트의 봉독 등의 여러 양식으로 제안되었다. 반드시 어떤 일정한 전례 양식에서 공표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상호인정이 달성되었음을 공적으로 발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 만찬례를 함께 거행할 때에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100) 이 여러 단계에 대한 서술은 확실히 체계적이지만 이것은 두 교회 사이의 모든 단계가 반드시 이 모든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지역적 상황에 따라 각 진전과정은 바뀔 수 있다. 여기서는 교회들 가운데에서 실제로 발견될 수 있는 여러 일정단계들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다. 상호인정에로 진전하기 위한 제안

(101) New Delhi 진술서에 표현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하며 노력해야 된다. 토론은 문제점들을 명백히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토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들은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접근 방법과 실천에서 생기는 실제적인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102) 위의 언급된 바에 의하면, 서품관례에 관한 상호인정에는 두 가지 사항이 대단히 중요하다. 첫째, 사용되는 예식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를 위한 사도적 성직을 전달하려는 지향이 표현되어야 한다. 둘째, 예식은 성령강림축문(epiklesis)과 안수를 포함해야 한다. 성령강림축문은 일부 전통들에서 서품의 '성사성’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을 보호하고 보중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상호인정을 달성하기 위해, 각 교회들은 그 나름대로 서로 다른 과정을 걷게 된다.

(103) ① (ㄱ) 주교계승을 보존해온 교회들은 이러한 주교계승을 보유하지 않는 교회 안에 있는 서품성직의 참된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 두 부류의 교회의 상호분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당신 약속에 충실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주교 계승은 없어도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며 생활하는 공동체들에게, 열매를 보고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말씀과 성사의 성직을 주신다. 이 공동체들은, 여러 경 우에, 없어서는 안될 평신도 성직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104) ① (ㄴ) 주교계승을 보유하지 않는 교회들은 이러한 계승을 보배롭게 여기는 교회들도 여러 세기에 걸쳐 말씀과 성사의 성직을 보유해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자신들은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고는 있어도 이 사도적 계승의 표지를 충만히 갖고 있지 못함을 자각해야 한다. 만약 완전한 가시적인 일치를 달성하려 한다면 이 사도적 계승의 표지를 충만히 복구해야 할 것이다.

(105) (ㄱ) 주교계승을 보유하는 교회들은 주교성직의 가치를 특히 그 사목적인 면에서 재확언해야 하며, 다른 교회들로 하여금 이 주교계승으로부터 위격적으로 형체화한 가시적인 일치의 표지로서의 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106) (ㄴ) 이 교회들은, 주교계승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그 직무상 주교와 사제의 기능을 함께 보유하는 서품성직자들의 계승을 형상화해주는 어떤 서품 성직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알아야 한다. 또한 공식적인 주교계승 혹은 감독ㅡ장로계승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실제로 사도적 신앙의 계승을 보존하려는 특별지향을 가지고 있는 어떤 성직들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V. 후 기

1. 세 성명서의 작성 경위

이 소책자의 본문은 여러 해를 걸쳐 이루어진 교회일치 토론의 결실이다. 여기에 포함된 합의사항은 교환과 토론을 거쳐 성숙된 것들이다. 여러 차례 자문회를 개최하였었다. 각 주제에 대한 토의의 주요과정과 세 진술서의 기안 과정을 여기에 요약하고자 한다.

2. 세례와 성체성사

일치운동의 초기부터 세례와 성체성사는 신학토론의 주제가 되어왔으며 ‘신앙과 직제’에 관한 주요 회의에서 이 두 성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루지 않았던 적은 한번도 없다.
세례에 대한 공동이해는 Lund 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에 관한 3차 세계회의(1952)와 Montreal 에서 열린 4차 세계회의(1963) 기간 동안의 주요관심 문제의 하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연구 결과로 One Lord One Baptism이란 보고서가 작성되었으며 Montreal 에서 열린 4차 세계회의에서 이 보고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몇년 후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이 두 주제에 관해서 새로이 연구를 착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전까지의 연구에서는 교회의 전례와 예식에 대해 구체적인 결론들을 내리지 않고 주로 이해의 공동전망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지만, 새로운 연구에서는 상호인정의 가능성을 좀더 직접적으로 검토하기로 하였다. 더군다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도 토론에 능 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어 토론은 새로이 재개되어야 했다.

세례에 대한 연구는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Bristol에서 모임을 가졌던 1967년에 시작되었다. 1968 년 봄에 열린 1차 자문회의에서는 많은 지역단체에서 계속 토론되고 논의된 이 주제에 대해 간략히 분석하였으며, 2년 후에 CSSR 의 Revnice에서 열린 2차 국제자문회의에서는 많은 특수문제들을 좀더 상세하게 토론하였다. 이 연구 결과로 Baptism, Confirmation, and Eucharist 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나왔으며 이 보고서는 Louvain 에서 모임을 가진 ‘신앙과 직제’위원회에 제출되었다.

성체성사에 관한 연구는 좀더 일찍 시작되었다. 일련의 자문회의의 결과로 The Holy Euckarist란 보고서가 작성되었으며 1967년에 Bristol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위원희에서 이 보고서에 대해 토의하였다. Upsala 에서 열린 WCC 4차회의의 요청에 따라 나중에는 상호 영성체라는 주제가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1969 년 Geneva에서 열린 자문회의에서는 Beyond Intercommunion 이란 보고서를 내었다.

이런 연구가 진행되면서 교회일치운동에서 얻은 세례와 성체성사에 관한 합의사항들을 두 문헌으로 정리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여러 차례 시안이 작성되었으며 결국 1971년에는 Ecumenical Agreement on Baptism과 The Eucharist in Ecumenical Thought 두 진술서가 ‘신앙과 직제’위원회에 회부되어 토론되었다. 몇 주일 후 WCC 집행위원회에서는 ‘신앙과 직제’위원희의 요청에 따라, 교회의 반응과 평가를 받기 위해 두 진술서를 WCC 모든 회원 교회에 보냈다. 여러 교회의 반응에 비추어 본문이 수정된 후 1974 년 Accra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위원회에 다시 회부되었다. 현재의 형태는 이 모임에서 개정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3. 서품성직

서품성직에 관한 진술서는 성질상 다른 두 진술서와는 약간 다르다. 이 진술서는 교회 일치 회의에서 얻어낸 합의사항을 요약하고 있다기보다는 서품성직에 관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점들을 개관하고 성직에 관해 완전히 상호인정을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합의점에 도달하게 해주는 공동 전망들을 지적하려 하고 있다.

서품성직에 관한 문제는 이미 Lausanne(1927)과 Edinburgh(1937) 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에 관한 1,2차 세계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두 회의에서는 "교회의 어디에서나 온 교회의 재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성직”에 대한 필요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토론을 통해서, 성직의 ’권위’와 ‘기능’에 있어서는 넘어서기 어려운 견해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실질적으로 합의를 보게 되리라는 희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 문제를 독립된 주제로서 연구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단지 다른 좀 더 일반적인 주제들과 관련되어 토론되었을 뿐이다. 이 주제는 Montreal에서 열린 4차 세계회의(1963)에서 ‘신앙과 직제’운동의 의사일정에 다시 나타났다.

그러는 동안 여러가지로 발전되어 이 문제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의 본성에 관한 여러 ‘신앙과 직제' 연구에 의해, 성직을 새로이 이해하며 교회 안에 그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또 신앙고백의 전통을 넘어서 이루어진 성서연구와 역사연구는 토론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다 주었다. 평신도운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백성 전체의 부르심에 대해 점점 더 강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품 성직에 대한 참된 이해는 이 성직이 모든 신자들의 사제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새로이 인식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는 공동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

Montreal 에서 열린 4차세계회의의 토론에 대한 반응으로 사제직에 관한 연구가 착수되었다. 이 연구는 여러 면에서 발전되었다. 이 연구의 ‘첫 열매’인 The Ordained Ministry란 보고서가 Louvain (1971) 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위원회에 제출되었다. 위원회에서는 실질적인 진보가 있었음을 알고 좀더 연구하도록 명령하였으며 이 새로운 명령에 의해서 국제자문회의가 Marseilles에 구성되었다(1972). 수많은 단체와 개인 신학자들이 이 모임에서 작성된 문안에 대한 반응과 주해에 가담하였으며 1973년 후반기에 Geneva에서 열린 2차 자문회의에서는 이런 반응에 비추어 그 본문을 개정하였다. 그후 이 수정된 본문은 Accra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위원회에 회부되어 철저한 토의를 거쳐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 위원회는, 문헌이 밝히고 있는 상호이해의 놀라운 단계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진술하며 "이 문헌은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더욱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또 그들의 반응을 얻도록 출판되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Berlin에서 모임을 가진 WCC 중앙위원회는 이 세 문헌을 모두 출판하여 회원 교회에 보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이 진술문들이 나오기까지 많은 신학자들이 연구와 토의과정에 참가하였다. 여기서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며, 수년 동안 수행된 연구작업에서 주요 책임을 맡아왔던 러시아 정교의 Vitaly Borovoy 수석사제와 미국의 연합 감리교의 Gerald F. Moede 박사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