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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와 임종자에 관한 윤리문제
1982년 1월호 (제 79호)
어떻든, 腦에서 생명 활동이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전적으로 정지되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그런 인간은 죽은 ...

본당공동체를 위한 선교방안 - 40가지의 實踐 方案 및 技術〈II〉
1982년 1월호 (제 79호)
21.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스포츠나 포크댄스 등) 젊은이들은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해 무언가 ...

주일의 말씀
1982년 1월호 (제 79호)
천주의 모친 대축일 마리아의 참 모습 제 1 독서 : 민수 6,22-27 제 2 독서 : 갈라 4, 4-7 복 음:루가...

교부들의 사상
1982년 1월호 (제 79호)
이 글은 74號까지 연재해 오다 그간 필자의 사정으로 중단됐던「敎父들의 思想」의 계속 임. 첫연재는 58號...

신앙의 확신과 가치의 체험
1982년 1월호 (제 79호)
이미 이 정도만으로도 윤리적 관념들이 얼마나 서로 다른지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더욱 더 우리를 당황...

神觀의 어제와 오늘
1982년 1월호 (제 79호)
III. 超越的 人格的 神觀과 問題性   救世 이래 인간의 상황은 계몽사조 의 대두로 말미암아...

종말론 연구 현황
1982년 1월호 (제 79호)
I. 問題의 提起   사람은 누구나 장래를 염려하기 마련이다. 내일,모래, 몇 년 안에, 몇 십 년...

復活節 事件과 原始敎會의 胎動期 그 歷史的 考察
1982년 1월호 (제 79호)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된 다음 그 직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예수 부활과 그 뒤에 이어온 일련의 사...

그리스도인의 희망
1982년 1월호 (제 79호)
希望이라는 것은 무언가 오늘보다 더 나은 來日에 대한 바람입니다. 모 든 人間은 意識 無意識 중에 이러한...

우리 시대에 거는 희망
1982년 1월호 (제 79호)
새해가 되면 누구나 희망에 벅찬다. 올해는 무슨 좋은 수라도 없을까고 가슴을 설레인다. 새해라고 해서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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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오늘의 不安과 希望 1982년 1월호 (제 79호)

우리 시대에 거는 희망

宋建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새해가 되면 누구나 희망에 벅찬다. 올해는 무슨 좋은 수라도 없을까고 가슴을 설레인다. 새해라고 해서 행복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고 누가 갖다주는 것도 아니련만 그래서 새해마다 속아 살아온 것이 이제까지의 인생이면서도 새해가되면 행여나 올해는 하고 또다시 부질없는 희망을 걸 게 된다.

하여간 인생에 새해가 있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다. 새해라고 해서 무슨 별난 ‘날'이 아니면서도 묵은 것을 잊고 앞날에 희망을 갖게 해주어 좋다· 1982년이라고 해서 1981년 하고 다를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지만 다가 오는 새 1년에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 부질없는 희망인 줄 알면서도 새해가 되어 또 꿈을 갖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일까.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얄팍해진 일력을 한 장 떼면서 "새해에는 부디 이 불행한 땅 위에 사랑을 베풀어주소서! ” 두손 모아 빌고 싶은 심정이다.

요즘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특별 TV 프로를 보았다. 그렇게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은 일본이 어쩌면 오늘 저렇게 행복히 살고 있을까 싶어 하느님이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죄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 하고 착하고 약한 자는 하느님의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구 위에 태어난 지 반만년이 된 지금까지 일찌기 남을 침략한 일도 그래서 죽인 일도, 괴롭힌 일도 없는 착한 우리는 수난의 길을 걸어왔다. 남이 잘되는 것을 같이 기뻐해주는 것이 착한 사람의 태도이나 "어쩌면 일본은, 어쩌면 우리는” 하고 무엇인가 야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해는 잊고싶은 사건들이 너무나 많았다. 경찰관이 도둑질을 하고 스승이 제자를 죽인 사건 등으로 떠들씩한 가운데 한해도 다 저물어간다. 이제 잊고 싶은 이 모든 사건들을 묵은 해와 더불어 훨훨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82년 을 맞고 싶다.

I. 우리 民族의 아픔

마음은 아직도 십 육칠 세 소년 같은데 머리는 벌써 반백이 되었다. 50 여 년간 살아온 인생의 경험으로 볼 때 산다는 것은 결국 힘들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철들어 사회를 알았을 맨 내 민족이 식민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제국과는 달리 獨自文化를 가진 조선민족이 따로 있고 그들이 가난과 無知 속에서 신음하며 살고 있다는 식민지적 현실을 나는 친구로부터 빌려 읽은「흙」이라는 소설을 통해 더욱 전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땐 이미 한글 사용도 금지당해 있고 조선 농민들은 가을철마다 供出 독촉에 시달림을 당하고 靑壯年은 징병,징용으로 南洋인지, 중국대륙인지 어디론가 끌려가고 농촌마을엔 남편과 아들을 졸지에 잃고 우는 조선 여인들의 곡성이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중학소년 시절인 나는 인생이란,사회란 으례 이러한 것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슬픈건지, 억울한 건지도 모르고 살았다.

많은 선배들이 軍에 입대한다는 소식이 있을 때마다 나도 멀지 않아 일 본군에 끌려가겠구나 생각했다. 어떤 친구는 자진 지원해서 일본군의 少 年 飛行兵으로 입대했다. 그럴 때마다 학교에서는 "大日本帝國의 영예로운 공군 비행사로 지원 입대하는 ㅇㅇ군을 환송한다”고 떠들썩했었다. 학교 당국에서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일본 공군의 소년 비행사로 지원하라고 권유했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신문마다,라디오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천황 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 를 외치는소리 뿐이었다. 삼천리 강산이 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심에 가득차 있는 듯이 보였다. 조선사람 삼천만이 모두 애국심에 충만해 있는 듯이 보였다. 보이고 만나는 이마다 일본의 애국자뿐 조선민족의 독립을 말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II. 世俗의 眞理와 永遠의 眞理

한시대의 ‘價値’,그것은 그때그때의 정치권력이 좌우해 왔다. 언제나 그 시대를 지배하는 정치가 절대적 진리요 그것이 뭇사람들이 따라야 할 가치로생각되었다. 그 ‘가치' 에 대한 비판은 물론 회의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너나없이 주어진 그 '가치' 를 따라간다. 그것이 역사요, 인간 사회인 듯이 보인다.

사람들은 ‘眞理'가 이긴다고들 한다. 저마다 진리의 대변자인 양 주장 하고 자처한다, 세상엔 진리의 대변자, 지지자만이 가득차 있는 듯이 보인다. 인류 역사의 온갖 진리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자기인 양 자처하기 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큰소리치고 내세우는 진리는 언제나 권력의 官許眞理라는 사실이다. 日帝末 조선사회를 온통 뒤엎다시피한 ‘대일본제국'의 진리,'천황'의 진리가 하루아침 사이에 뒤바뀌었을 때 우리는 권력의 교체를 그곳에서 보았다. 진리가 바뀐 것이 아니라 권력이 바뀌였기 때문에 따라서 진리도 바뀌어진 것이다.

세속의 진리만이 아니라 信仰의 진리가 바뀐 것도 우리는 경험했다. 神社參拜를 하는 것은 조선 기독교인의 나갈 길이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한 시대의 진리를 대변한 때가 분명히 있었다. 누구도 그 진리에 懷疑를 제기할 수 없는 시대가 분명히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알 수 없는 일이라 하겠지만 8.15 후엔 ‘천황'의 진리를 대변한 그 입들이 이승만의 진리를 추대하는 것이 역사의 大勢로 변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진리'의 교체 에 아무런 회의도 보이지 않는 것이 세상 인심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오늘의 ’진리'가 진짜 진리라고 주장하고 선전하며 또 대부분 그렇게 믿는다. 그러다가 새 ‘진리'가 등장하면 이번엔 또 그 새로 교체된 진리를 진짜 진리라고 믿고 대세를 지배한다. 1876년 개항 이래 얼마나 많은 진리의 교체 속에서 이 민족은 시달림을 받아왔는가.

오랜 민족적 수난 속에서 우리는 그때마다 주장되는 진리가 정치권력에 농락되는 진리며 따라서 ‘유행의 진리'며 언제나 상대적 진리라는 것을 체험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때그때 그 시대를 지배하는 이 상대적 진리 를 절대적 진리인 양 선전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상대적 진리가 독무대처럼 한 시대를 지배하는 속에서 진리의 영원성, 진리의 절성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아마 신앙의 진리일 것이다. 신앙의 진리는 진리를 영원한 것으로,절대적인 것으로 굳게 믿는 데 특징이 있다. ‘신사참배'가 조선 기독교인의 나아갈 길이라는 주장이 지배하던 시대에 이것에 정면으로 대항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진리의 영원성을 믿는 믿음이었다.

오랜 인류역사를 통해 볼 때이 영원의 진리는 거외 인제나 권력의 진리,바꾸어 말하면 세속의 진리에 몰리는 것이 상례였다. 영원의 진리는 언제나 십자가를 메는 운명에 있었다. 영원의 진리,그것은 바꾸어 말해 십자가의 진리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십자가의 진리는 고난의 진리이다. 현실적으로 수난을 면치 못하는 진리다. 사람들은 이 십자가의 진리 앞에 섰을 때 두 가지 길에서 어느 하나의 길을 택한다. 하나는 고난 외길을 포기하고 세속의 진리 앞에 굴종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신앙의 힘, 믿음의 힘으로 헌실적 고난을 극복하고 영원의 진리 속에 사는 길 이다. 가난에 시달릴 때 가난에서 생기는 고통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질병에 시달릴 때 육체적 고통,죽음의 공포를 믿음의 힘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온갖 정치적,사회적 고통과 수난도 이러한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III. 苦痛의 克服

믿음에 의한 고통의 극복은 현실적 극복이 아니라 마음 속의 극복이다. 현실의 고통을 제거하고 치료하는 극복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믿음의 힘으로 그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게 하지 않는 마음의 승리인 것이다. 현실 사회 속의 극복이 아니라 마음 속의,정신 속의,관념 속의 극복이자 승리인 것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세속적인 온갖 고통과 수난을 이 믿음의 극복으로 버티어 나간 예가 많다. 기독교 역사는 어느 면 현실적 고통을 믿음의 힘으로 극복해 나간 역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고통을 믿음의 힘으로 이겨낼 만한 신앙이란 보통 의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탁월한 신앙인이 아니면 그 경지에 도달하기 어 려운 믿음이다.

사람에 따라서 믿음의 정도는 천차만변이다. 실로 깊고 깊은 믿음이 아 니면 죽음의 공포,육체의 고통,가난의 고통,억눌림의 고통을 참고 신 앙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때문에 현실적 고통을 믿음의 힘으로 극복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로 깊은 신앙심을 가진,극히 제한된 일부 독실한 신앙인에게나 기대할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 사람들은ㅡ비록 믿음에 사는 사람이라해 도ㅡ현실적 고통은 현실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신앙의 힘에 의지할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약과 치료로써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생각 을'갖게 되고 또 그러한 해결이 가장 현실적이며 따라서 누구나 바라는 극복책일 것이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오늘 겪고 있는 여러가지 고통은 관념의 세계에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믿음 속 의 해결이 아니라 구체적인 해결이다. 믿음 속의 해결은 특수한 일부 사람만의 해결이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해결은 가장 일반인을 위한 해결이며 따라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이다. 새해는 이 땅 의생활속에서 아직도 우리의 희망을 저해하고있는 온갖 고통이 현실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IV. 새해의 希望

새해 들어 가장 절실한 희망은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해방되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점이다. 해마다 수출이 일마 늘고 GNP 가 얼마가 됐다는 소식이 요란스럽게 들린다. 아닌게 아니라 서울에는 고층 빌딩이 늘어서고 주택 골목마다 승용차가 서민의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씌우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서민들은 저마다 경제문제에 관심이 높다. 나라의 빚이 얼마로 늘어나고 인플레가 얼마나 오르고 한해 적자가 얼마가 된다 는 등 결코 명랑할 수 없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명랑한 소식 못지않게 우울한 소식이 오히려 더욱 많은 것이 요즘의 경제 소식이다.

80년에 물가가 44%나 올랐다는데 임금이나 봉급이 그만큼 올랐다는 소식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그만큼 가난해졌다는 뜻이다. 숫자로는 해마다 부자가 되는 것 같은데 나라 살림은 오히려 걱정이 더 많아지기만하니 이런 식의 경제성장이 과연 바람직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성장은 멈추는 한 이 있더라도 빚없는 살림,안정된 경제생활올 할 수는 없는 것인지 82년 은우리의 경제 살림이 성장보다 차라리 안정되기를 바라고 싶다.

둘째,새해에는 양심의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사람에게 발전이 있다는 것,아니 사람에게 ?史가 있다 는 것은 사람에겐 동물에 없는 지적 활동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옳고 그르고를 분별하고 선하고 악한 것을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능력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 누구는 민족을 사랑할 자유가 있고 누구는 자유가 없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자기 양심에 따라 시대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나라와 사회를 사랑하고 걱정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양심에 따라 쓰는 글은 비록 일부에게는 비위를 거스리는 일이 있어도 그의 양심적 자유는 존중되어야한다. 양심이 위축된 사회,그것은 발전과 개선이 마비된 사회,활기를 잃은 사회가 될 것이다. 발전과 향상이 있으려면 양심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 누구도 양심의 자유는 독점할 수 없다. 1982년은 이러한 점에서 양심과 이성의 자유가 존중되는 관용의 사회가되기를 기대한다.

세째,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는 利害의 多樣性을 인정하는 사회라야 한다. 이런 사회는 끝없이 복잡하고 따라서 이해가 상충하며 입장이 달라지고 의견이 대립되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민주사회는 이렇게 서로 갈라지고 대립되고 때로는 서로 반목하는 의견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타협시키고 서로 양보케 하여 누구나 특별히 소외되는 일 없고 특별히 독점하는 일 없이 원만히 조화를 이루는 데에 그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민주사회에서는 각 사회 계층이, 각 개인이 자기의 의견을 법질서가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간섭받는 일 없고,위협받거나 방해받는 일 없이 자기의 양심에 따라 발표함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는 자유롭게 자기의 주장을 발표할 수 있고 어느 누구는 발표의 자유가 부당하게 박탈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여론이 다양한 것이 정상이다. 같은 문제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런 주장을 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여론 현상을 국론분열이라고 주장하고 국론이 분열되면 사회가 불안해 지고 국력의 통일이 안되 며 결국 정치안정,사회안정에 해롭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인간 사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주장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를일사불란하게 만들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보이는 사회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그 사회가 일사불란해서가 아니라 어느 특정한 의견을 물리적 힘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데서 생기는 일시적이며 표면적인 질서이다. 다양성이 정상인 인간 사회를 물리적 힘으로 일사불란하게 규제한다면 그러한 사회는 일단 안정되고 질서가 잡힌 사회처럼 보여도 그것은 표면만 그렇게 보일 뿐 절대로 안정된 사회일 수 없다. 밖으로 나타난 불평이나 반대가 없어보여도 사회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불평 불만이 들끓으며 이리한 사회는 질서를 잡기 위해 물리적 규제를 더욱 강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규제가 계속될수록 불평은 深化되어 불안이 안으로 불타들어가 불만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이리하여 안정을 위한다는 규제가 결과적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구실을 하게 되어 규제와 불안정이 이 른바 상승작용을 하게 된다. 사회에 이렇게 불안정이 심화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른바 국론분열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국론분열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새해에는 사회여론이 정상적으로 발표되어 순리적으로 각계의 여론이 정치,경제,문화 정책수립에 반영되었으면 한다.

네째,우리 사회에서 불신풍조가 일소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민주사회는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서로 신뢰하는 데서 원만히 유지되어 나간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여 경계하고 불신한다면 사회는 안정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제자는 스승을,직장인은 상사를,상사는 하부직원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가 없는 사회는 안정도 발전도 질서도 없다· 신뢰는 인간사회의 존속에 불가결의 전제조건이 된다. 신뢰하는 사회가 되려면 어 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정직한 사회'라야 한다. 특히 사회에 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가 정직해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에게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특히 통치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국민에게 언제나 신용받을 수 있는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국민에게 약속한 것은 절대로 지켜져야 한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어떤 때는이런 말을하고 또 어떤 때는 저런 약속을 하고서도 언제 그런 공약을 했느냐는 듯이 그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면 국민과 정치 사이에는 불신만 커갈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국민에게 한 공약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신중히 연구검토하고 반성 하여야한다. 정치인은 꼭 지킬수 있는 약속만을 공약하여야 하며,일단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지킬 생각도 힘도 없으면서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무책임한 공약을 하고 후 일 국민을 실망시키거나 배신감을 갖게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치불안을 조장하는 가장 큰 잘못이 될 것이며 국민과 정치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계기가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난날 정치인과 국민과의 관계는 거짓말 의관계, 속이고 속는 관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때 특히 온갖 달콤한 약속을 늘어놓고는 일단 당선만 되면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 듯한 태도를 취한 예가 참으로 많았다. 거짓 정치, 거짓 정치인은 절대로 정치를 안정 시킬 수 없을 것이고 국민은 말은 안해도 두번 다시 거짓 정치인들을 신뢰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을 것이다. 거짓 정치는 사회불안 조성의 첫째 조건이 된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민주사회에서는폭력이 일소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나 공공입장에서나 사람과 사람과의 문제해결이 서로 대화와 토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대화와 토론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뜻한다. 나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주먹올 휘두르거나 힘으로 상대방을 억압하려 한다면 이것은 한낱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폭력이 지 배하는 사회는 道理와 이치가 짓밟히고, 정의가 유린되고, 不義가 지배하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가 민주주의와 背馳됨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 해결을 대화와 토론으로, 이치와 도리로써 해결하지 않고 힘으로 상대방을 억압하려 한다는 것은 윤리의 타락을 의미한다. 옳고 그른 것,善하고 惡한 것의 분간에 무관심하고 힘으로 상대방을 억누르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는 사회윤리, 도덕의 타락을 가져온다. 스승이 제자를 살해하고 경찰관이 도둑질을 한다는 것은 물론 한두 사람의 범행이지만 옛날엔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들의 귀가 시간이 좀 늦어도 벌써 걱정이 된다.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 때문이다. 마음놓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는 없는가고 간절히 기원해 본다.

1982년의 새해 문턱에 서서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싶다. 사건 사건이 연발한 1981년 묵은 해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해에는 우리의 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