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8월호 (제 2호)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

정하권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헌장 중에서 가장 핵심이라 볼 수 있는「교회에 관한 교의헌장」(Constitutio Dogmatica de Ecclesia)에 대한 해설을 이번호부터 정하권 신부가 말아 수차에 걸쳐 연재하게 되었다. (편집실)

서론 오늘의 가톨릭

I.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근대 사회의 변천

초대 그리스도교가 다신교도인 로마 제국 안에서 이질분자로서의 박해를 당하다가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 게르만족들을 교화시켜서 중세에 와서는 그 사회의 모든 구조의 초석의 역할을 하고 사상계 뿐 아니라 세속의 모든 분야를 지도하여 일대 그리스도교 사회를 건설했고,거의 교회와 국가는 정교일치(政敎一致)에 가까운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소위 크리스티아니티를 건설했다.

그런데 중세 말기의 십자군운동과, 정권과 교권의 충돌로 신성 로마 제국은 내부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고,새로 발견된 고대 이교 문명에 자극된 세속적 호기심은 팽배한 인문주의를 보급했고,그 인문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자유사상은 드디어 중세를 막 닫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근세사회는 중세사회의 특징인 권위와 전통과,전체를 중시하는 경향 대신에,자유와 진보와 개인을 존중하는 기풍 위에 건설되었다. 사상계에서는 신학의 비녀(婢女)가 아닌 유리주의(唯理主義)적 철학 사조가 성행하고, 경제계에서는 신대륙의 발견과 기초 자연 과학의 발달로 산업이 기계화되고, 상공업의 발달은 봉건적 농업 사회를 상업 도시 중심의 시민 사회로 이행시키는 산업혁명을 수행했으며, 종교계에 있어서는 중세 1천년의 전통과 권위를 자부하는 교회조직에 반발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이 일어났고, 이러한 모든 개인주의 사조는 전제군주에 대항하여 시민사회의 신장과 민주주의의 승리를 가져왔다.

19세기는 이 모든 근세사회의 산물이 극동에까지 전파되어 세계화되고, 잡다한 요소들이 혼돈 천지를 이루어 사상적 혼란과 사회의 무질서를 초래했다. 산업혁명의 극치를 이룬 자본주의는 그 내포한 모순의 발로로써 빈부의 극차를 초래하여 사회주의와 그 극단적 표현인 공산주의를 낳게 했고,무제한한 이윤 추구는 열강의 식민지 침략과 국제간의 무력 충돌을 빈번케 하였으며, 과학의 찬란한 발달은 미숙한 지성인들을 불신앙에로 인도했고, 과학 만능주의 때문에 드디어 인간은 자기의 소산인 과학의 횡포에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근세 사회가 걸어온 희망과 포부에 찬 출발이요, 경이와 변화로 가득한 진행이며, 회의와 번민으로 허덕이는 결과이다.

과거 4세기 동안 축적한 근대 문명의 종합 시기인 20세기 후반기는 한마디로 요약해서 기술이 지배하는 문명 즉 homo faber이 아니라 homo technicus가 행세하는 문명이다. 과거에 있어서는 기술은 인간 생활을 더 용이하게 하는 방편에 불과 하였으나,이제 기술은 인간 생활 자체를 달리 말해서 인간의 존재상황(存在狀況)을 변경시키고 있다. 기술은 벌써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인간의 도구에 불과했던 기술이,이제는 제3자로서 엄연히 서 있고,인간이 대상에 대해서 작용하려면 기술에게 호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기술이 그 호소를 들어서 작용하면 그 결과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책임을 포기하는 무감각에 빠져버린다. 기술적 인간은 세계를 파악함에 있어서 객체의 고유성을 문제 삼지 않고,부호(符號)와 숫자(數字)에 의한 상대성만을 고려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나 주체와 객체의 구별은 무의미해지고 만다. 여기에 20세기 인간은 자아(自我) 안에서 본래의 인간과 기술적 인간의 모순 갈등으로 말미암아 현대 특유의 불안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불안과 부조리 가운데서도 현대는 중세와는 다른 의미의 종합적 인간관을 모색하고 있다. 이 새로운 인간관은 인간의 본체와 속성을 구별하여 논하면서 인간의 당위(當爲)를 규명하려던 근세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본질다울 수 있게 허락하는 상황을 중시하고 인간의 당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된 것으로 파악하려 한다. 따라서 근세 철학의 중심 과제이던 존재와 당위의 문제는 실존과 참여의 문제로 대체되어 현대 사상의 중심과제가 되어 있다.

인간의 실존은 그 본체와 속성의 분석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성과 공간성의 관련에서 발견되는 것이며,주관과 객관의 대위(對位)에서가 아니라,나 주체와 너 주체의 교환(交換)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실존은 역사를 만들면서 역사에 지배되고, 사회를 만들면서 사회 안에 제약되며,내가 너를 만들어 나가고 네가 나를 대처해 나가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역사성과 사회성의 매듭 위에 서 있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따라서 실존적 인간의 현존(現存)은 과거와 미래의 분기점이 아니라 과거의 압축임과 동시에 미래의 내포이며 사회성을 포함한 개성이며 우주 내의 존재이다. 실존적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서가 아니라 주어진 자유라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 좋건 싫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인간의 실존적 참여로 이루어진 현대는 너무나 벅찬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많은 과제들은 한 마디로 부조리의 극복 노력이라고 말할수 있다. 오늘의 세계가 찾고 있는 궁극적 그 무엇은 자기 나름대로의 절대인 것이다. 이 절대 추구의 양상은 구체적인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0세기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문제의 세계화이요,비인격화이다. 매스콤의 극도의 발달로써 세계의 구석구석의 일들이 인류전체의 문제로 확대되고 다시 압축되어서 개인 침실의 텔레비전 스크린까지 도달했을 때 이미 그 문제는 부분적이요,개인적인 문제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 세계의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열거해 보자. 우리는 다음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30여억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중국인이요,3분의 1이 공산권 내에 살고 있으며,4분의 3이 기아와 후진에 허덕이고,3분의 2가 비그리스도교도요,크리스찬의 절반이 비가톨릭 종파에 속하고 있다.

소위 자유세계의 대중은 형식적인 종교 생활 여부를 막론하고 철학적 무신론은 문제도 안될 정도로 실천적 무신론자이다. 아니 적극적인 무신론자들이 아니라,숫제 유신론 무신론에 관심조차 보내지 아니하는 유물론자들이다. 심지어는 무신론적 크리스티아니즘을 주장하는 자까지 속출하는 현상이다. 현대의 유물론은 '신(神)은 죽었다.'고 주장한 니체를 광신자라고 볼 정도로 초자연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자칭 자유세계 안에 살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공산주의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지만은,공산권 내에 들어 있는 대중에게는 공산주의는 이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것은 뚜렷한 생활 양식이 되어 있다. 공산주의의 관념적 시비는 그네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고, 거기에 태어나 그것 밖에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는 그것이 바로 생활이요 세계이다. 그 사람들은 관념적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적 인간이다.

제 3세계라고 불리우는 지역에서는 후진성 극복의 피나는 투쟁을 통하여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자아를 정립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후진성 극복투쟁은 이미 열강의 압박을 물리치려는 독립 투쟁 뿐 아니라 최저한도의 인간적 품위를 옹호하려는 거창한 견의인 것이다. 그것은 유럽인이 아메리카인에 대하여 가지는,우리도 그들과 같이 잘 살아 보자는 의욕이 아니라, 우리도 남에게 인간 대접을 받아 보자는 비장한 결의의 발로이다.

흔히들 제2차 대전 후 세계는 동서 양진영으로 대립되어서 냉전과 일진을 반복하고 있다고 보아 왔으나, 앞으로의 세계는 동서의 대립보다도 남북의 대립 즉 가진 세계와 가지지 못한 세계의 대립 상극이 더 심각할 것이다. 폭발적인 빈곤 인구의 격증과, 후진 지역의 욕구의 팽창과, 선진 지역의 이기적 이윤 추구가 제속될 때, 세계의 평화는 위태로울 것이며, 국제 협조를 통하여 세계의 빈곤을 공동으로 극복하고 과학 기술의 맹목적 위험을 다시 인간의 윤리성으로 억제할 수 있어야만 인류는 번영과 평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창조주가 설정한 질서 안에서 자기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의 정신이 물질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살진의 지배자가 되어서 조물주의 창조 사업에 정당히 참여할 때에 비로소 인간의 행복은 달성될 것이다.

II. 현대 세계와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

전통과 권위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한 현대사회가 기술적 인간의 모순으로 고민하고 있는 처지에서, 가톨릭 교회가 어떻게 근세에서 현대에 걸처 처신하였는지를 살피는 것은 이번 공의회의 교회관을 규명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는 여기서 기관 내지 제도로서의 교회의 내부 상태와 비그리스도교계에 있어서의 가톨릭 교회의 처지와 일반사회에 대한 교회의 태도 세 가지 점을 고민하고자 한다.

A. 박해시대가 끝나고 게르만족을 교화시키면서부터 교회는 점차 제도화(institutionalisatio)되기 시작해서 11세기에 교황 그레고리오 7세 때에는 왕권의 보호를 벗어버리고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필립 왕과의 충돌을 거쳐서 13세기에 인노첸트 13세 교황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왕권 위에 군림하는 교황권이 확립되었다. 그러다가 14세기에 와서 교황청의 문란은 교황권의 약화를 초래했고,소위 의회주의자(Conciliarismus) 들은 그레고리오 7세 이전의 교회에로 복귀할 것을 부르짖으며,교황권에 대한 지방 주교권의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하는 바람에 교회 내부에 혼란을 초래했디다.

그러나 16세기에 와서는 위에 말한 근세사조의 단적인 표현으로서 서방교회의 그레고리오 ㅡ인노첸트적인 구조자체에 대하여 도전하게 되었다. 루터나 쯔윙글리에 의하면 제도화된 교회는 하느님의 순수한 은총으로 가능케 된 구원의 진리와 이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순수한 신앙 사이에 장벽이 되는 것이고, 칼빈에 의하면 이 순수신앙의 교환이 진짜 교회이고 기관적이요 가견적인 신자 단체는 가짜 교회라는 것이다. 소위 종교 개혁자들과 교회 당국과의 은사령 시비는 종교개혁이라는 거창한 교회관 시비의 하찮은 기회에 불과한 것이고,근본적인 것은 두 개의 교회관의 정면 충돌인 것이다. 즉 개혁론자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평면적 집합체요,각자는 성신의 은총을 따라 구원의 현의를 구현시키는 것이며,교계제도는 역사적 필요에 의하여 조직된 인간적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 당시 교회 당국자에 의하면 교회는 그리스도 친히 교제 제도를 선정하셨으며 성신의 은총도 이 제도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볼 때 이 두 가지 주장은 상호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유인한 교회의 두 가지 불가분의 요소이다. 문제는 쌍방이 어느 한 가지 면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불행한 분쟁을 초래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대의 추세에 너무나 어두웠던 그 당시 교회 당국자들은 혁명이 일어난지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교회 개혁과업에 착수해서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었다. 이미 깨어진 독을 수리하려는 기술자들인 공의회의 교부들은 불행하게도 당대의 요청을 간과하고, 후기 스콜라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된 어용 법학자들과 벨라르미노 같은 철저한 교황권 신장파 신학자들의 힘을 빌어서 권위주의적인 교회개혁을 수행하였다.

공의회는 혁신론자들의 주장과 행동에 있어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면에만 유의하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면을 간과했기 때문에,단죄와 처벌로써 사태를 수습하려고 시도했다. 우리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위대한 업적을 과소평가하려는 자는 아니다. 공의회가 이룩한 업적으로서는 세밀한 말단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획일적인 교리체제의 확립, 교계제도의 엄격한 규정과 질서의 확립,윤리석 타락을 혁신 광정하기 위한 세밀한 윤리 규범과 시행세칙의 설정, 신자 개개인의 신앙생활의 철저한 감독과 지도,교회의 외적에 대한 가차없는 투쟁 등,이 모든 광범한 업적 안에는 극히 타당하고 다행한 면과 동시에 불행하고 퇴보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콜라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체계화된 조직신학은 성서와 교부를 기초로 하는 실증신학을 질식시키는 소지를 마련했고,교회론은 교계제도론이 되어버릴 바탕을 제공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배경으로 하는 윤리신학은 결의론적(決疑論的 casuistic) 방향으로 흘렀으며, 재속 성직자를 준봉쇄수도자로 양성하였으며, 개개인의 신앙생활의 심화보다도 수계범절 준수에 급급한 신자들을 배출했으며,타교파를 열교와 이교로 낙인함으로써 교회분열을 반영구화시켰으며, 현실 세계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인식은 신자들로 하여금 깊이 있는 신앙생활을 위하여 현실도피적인 생활태도를 가지게끔 하였다.

이리하여 성직자들은 외부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를 사용하고,이해할 수 없는 복장을 하고, 사회에 대하여는 옹졸하고 비겁하면서 교회 내에서는 오만하고 무례하기가 일쑤이다. 평신도들은 교회 밖에서 신자의 표를 내기를 꺼리고, 신앙은 교회당에서,생활은 사회에서라는 분리주의로 살고 사회자체의 발전과 성화를 위한 노력에 있어서 극히 소극적이다. 현대 사회의 모든 생활분야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데도 불구하고,유독 교회만은 봉건적 군주적 체제라야 되는 줄로 착각한다. 교회는 군주제라는 근본적인 오류에 젖어 있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민주주의를 논하면 오해를 받아왔다. 교회 운영은 성직자들의 손에 일임되었고, 제정 문제에 이르기까지 평신도의 발언권은 봉쇄되어 있었다. 돈은 평신도들이 내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느님이 설립한 것 (institutio divina)이지,결코 군주주의적 구성 (constitutio monarchica) 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학적 의미의 군주제도도 아니요 민주제도도 아니고,다만 교회적인 유일한 존재양식이다. 따라서 교회라고 해서 시대의 요청인 민주적 행정을 할 수 없다는 교리적 근거는 없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된 진리를 전수하는 교도권 이외의 일반적인 사목 사항에 이르기까지 명령 일변도의 지도방식은 시대 착오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의 지성인들이 가톨릭 교회에 들어오면 그 질식할 분위기에 질려버리고 따라서 차츰 그들은 교회에서 멀어진다.

Β.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과는 그리스도교 세계 안에서의 가톨릭의 위치를 고답적인 유아독존으로 특징지었다. 대부분의 비로마적인 관습과 제도와 형식은 폐기되거나 로마화 되었고, 지방의 고유한 것을 고집하는 경우에는 가톨릭적 일치에 위반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서방교회의 주류인 가톨릭과 열교로 지칭되는 프로테스탄트와의 관계는 초기의 열띤 논쟁과 30년 종교전쟁을 거치면서 감정의 예각만 남고,교리적 대화는 점점 드물어져서 완전 분리된 채로 각 파의 자세는 굳어져 갔다.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의 모든 제도를 의문시하고,더 근본적인 자체 수술을 요구했고, 가톨릭은 탕자들의 회두를 기다리면서도 무정견한 프로테스탄트 각 파의 자중지난을 의미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동방교회에 대해서는 그들의 고유한 전통과 생명력을 이론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실제로는 가급적이면 그들의 관습이나 신학이나 전례를 라틴화시킴으로써 흡수하려는 태도로 임했고, 서방교회 최고 당국의 동방교회 전통 존중 성명이 거듭 되었어도,말단에 있어서는 동방교회의 라틴화만이 교회 재일치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였다. 동방교회가 전연 참석하지 아니한 서방종교회의를 로마 교황이 주재했다는 이유로, 전 교회의 공의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동방교회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로마 가톨릭의 배타적이요 고답적인 태도는,질시와 경계심을 길러주고,자기네끼리는 투쟁하면서도, 일단 일이 가톨릭과 결부될 때에는, 비가톨릭교도들은 적어도 표면상 단결해서,가톨릭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오르토독스 교회에 대하여 준비없이 일방적으로 초대했다가 도리어 역효과를 낸 것은 언반의 소식을 잘 말해주는 실례이며,프로테스탄트 각 교파들이 시작한 교회일치운동 (Oecumenism) 이, 오로토독스를 상대하면서도 가톨릭과는 손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한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교리적 대화의 두절은 서방교회가 일방적으로 무염시태와 몽소승천과 교황의 무류지권 같은 도그마를 선포함에 이르러 그 절정에 도달한 것같다. 이러한 일방적 처사는 일치 운동을 아마 수세기 지연시켰는지도 모른다. 교리해석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신학의 대립 뿐 아니라, 직접으로 교리와는 상관없는 사회생활에서까지 가톨릭 신자들과 비가톨릭 신자들은 상호협력은 커녕 분파주의적 경쟁으로 시종하였다.

C. 이러한 보수적인 자기 방어 태세는 교회의 지도를 벗어난 현대 사회가 나날이 진보하고 다기화(多岐化)하고 독자적인 지보를 굳히는 동안에 교회로 하여금,혼탁한 현실을 높은 탑 위에서 굽어보면서 위험 신호나 올리는 정도밖에 영향을 줄 수 없도록 고립화시켰다. 교회와 사회는 많은 문제에 있어서 병립하다 못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는 완전히 소외되고 말았다. 벨라르미누스적인 교권과 정권과의 투쟁, 가톨릭과 비가톨릭 교파와의 분열,교리 설명과 과학 정리와의 알력,스콜라 신학과 현대 철학과의 대립,신앙과 이성의 투쟁,보수와 진보의 상극,보호주의와 자유주의의 항쟁을 거치면서 현대사회는 점점 더 교회에서 멀어져 갔다.

과거 4백년 동안에 자라나는 새 시대에 대한 몰이해로 말미암아 교회는 차례차례 자녀들을 잃어 갔다. 16세기에는 시대의 선구자들을 종교혁명으로 잃었고, 17세기에는 갈리까니즘 (Gallicanism) 에 대항하는 헛수고로 지배자층을 상실했고,18세기에는 사고력의 빈곤으로 위대한 사상가를 남에게 양보할 수 밖에 없었고,19세기에는 교육의 후진성 때문에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잃었고, 마침내 20세기에 와서는 노동자와 대중을 잃어버린 것이다.「레룸 노바룸」(Novarum)「자본론」보다 반세기나 늦게 나왔으니 어찌 노동자를 잃지 않았겠는가.「베떼룸 사삐앤시아」 (Veterum Sapientia) 같은 시대 착오적인 문서가 이번 공의회 직전에 발표되는 현실에서 어찌 현대의 대중을 모으겠는가. 현대의 정신분석학이 무엇인지, 실존주의가 무엇인지,공산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저들의 말투가 교회의 전통적인 말투와 다르다고 단죄만 하려고 드는데 왜 현대의 지성이 도망하지 않겠는가. 아세아,아프리카,전교 지방에서 선교사들이 제국주의 식민자들과 협력부동한 일이 전연 없었던들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 극동 제국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종교박해가 그토록 무참하였겠는가.

이렇게 현대사회가 정치,경제,문화,기타 각 방면에서, 교회의 주장은 아랑곳없이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동안에, 교회는 과거의 대외적인 지도권을 상실한 대로,대내적으로는 만능적 권위를 구사하는 소수 성직자단과, 매사에 유유낙종하는 무기력한 신자 대중으로 구성되어 혼란한 현대의 국외자로서 고립되어 있었다.

세상을 위하여 세상 안에 존재하는 교회가, 세상에서 고립된 이 형편은, 현대 교회의 가장 큰 고민인 것이다. 이태리 총선거 때마다 고위 성직자들이 직접 간접으로 기민당을 후원해야만 간신히 우익정권이 유지되는 현상은 무엇을 뜻하며, 명색이 가톨릭국인 칠레의 경작 가능 면적의 90%를 전 국민의 5%인 백인 가톨릭 지주가 소유하고, 95%의 원주민이 농노의 처지를 면할 수 없는 실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거의 반반 정도의 인구 비례를 가지고 있는 서독의 대학 교수의 절대 다수가 비가톨릭이고 대학생의 3분의 2가 프로테스탄트임을 지적한다. 이러한 현상은 허다한 사례 중에 우연히 예거해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가톨릭이 사회의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정상적인 영향력이 없거나 부족하고, 적당한 곳에 적당히 쓸 인재가 모자람을 증명한다. 한국 교회만 보더라도 두 배의 역사를 가진 가톨릭이 그 절반의 역사밖에 안가진 프로테스탄트에 비하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진술한 심히 객관적인 논평은 교회 밖에서 사태를 비교하는 식자들의 견해이다. 따라서 교회 내의 우리 처지에서 볼 때 이상의 비판의 각 세부에 있어서는 교회로서 얼마든지 변명 내지 반박할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또 이러한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엄연히 살아 있고 발전하면서 이 적대시하는 현대 사회에 봉사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 가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현실의 가톨릭 교회가 현대의 요청에 비하여 너무나 낙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번 공의회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신경마비 증세와 혈맥경화 증세를 수술하기 위해서 개최된 것이다. 이 수술이 성공하면,세상은 교회가,저들이 생각하듯이 거대한 시체가 아니요,역사의 유물이 아니요,박물관의 화석이 아니라,현대의 동반자요, 미래의 조타수(操舵手)임을 깨달을 것이다. (계속)

<필자. 마산교구 마산 중앙 본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