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67년 5월호 (제 1호)

제 2차 공의회에서 제시된 평신도 사도직

정의채

서 론(序論)

평신도 사도직 문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취급한 문제 중에 가장 비중(比重)이 큰 문제 중 하나이다. 이 공의회는「Aggiornamento」 (현대화)의 기치(旗)를 높이 걸고 교회가 지나간 시대의 유물(遺物)이나 사물(死物)이 아니라 현대 세계 안에 생동(生動)하고 있는 교회임을 주장하며 현대 세계를 그리스도 안에 재건해야 한다는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을 천명하였다. 이에 자칫하면 현세에 대해 부정적(否定的)이거나 소극적(消極的)이기 쉬운 종교의 현세관을 지양(止揚)하여 그 가치를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음은 현세에 대한 가치판단에 가(可)히 큰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고 할 것이다.

하여간 공의회가 현 세계 안에서의 교회,현 세계를 그 내부에서부터 순화 (醇化)하여 하느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자태로 형성(形成)해내는 교회를 천명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평신도와 그 사도적 문제가 전면에 클로즈 엎 (close up)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겠다. 왜냐 하면 평신도는 현 세계 자체의 구성요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구성요소인 평신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현 세계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재건이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의 역사는 초대와 같이 평신도가 교회안에서 자기들의 본연의 위치를 인정받고 활동할 때는 교회가 세계를 향해 발전했음을 나타내고,평신도가 교회의 본질적 요인에서 탈락(脫落)되어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될 때는 겉으로는 아무리 화려해도 조만간(早晩間) 쇠퇴의 길을 걸어야 할 숙명(宿命)을 자기 안에 배태(胚胎)하였던 사실을 알려 준다.
 
근래에 이르러 교회 안에 잃어버린 현세를 그리스도 안에 다시 만회하려는 운동이 활발하여짐에 따라 평신도사도직이 고조되어 왔음은 순리 (順理)의 귀결이라 하겠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을 다만 외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평신도의 신학적 내적 본질에서 즉 하느님의 백성, 평신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 참여에서 구명(究明)하고 천명하였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이런 평신도상과 그 사도직이 전면적으로 수행될 때 근본 교리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나 교회가 현 세계 안에 자기를 표현하는 면모에는 크나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이 도래(到來)하는 세대에 교회의 미래상(未來像) 형성(形成)을 위해 중대한 역할을 할 평신도 사도직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諸) 문헌에 나타난 평신도 사도직상(使徒職像)을 미비(未備)하나마 여기에 요약하여 보는 것도 전혀 무의미한 일은 아닌 상 싶다.
 
평신도와 하느님의 백성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서 평신도는 신품에 속하는 이들과 교회에서 인가된 수도신분에 속하는 이들 외의 모든그리스도 신자를 말한다고 하였다. 즉 평신도는 성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합체(合體)된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에 들고 그들대로의 양식(樣式)으로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자기 분(分)에 상응하게 이행하는 그리스도 신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평신도도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백성에 근거한다. 교회 초기 세대의 성직자와 평신도가 일치화합(ㅡ致和合)하여 하나인 교회를 건설하던 상태에서 역사의 변천 중에 차차 성직자의 교회 독점경향과 평신도의 교회참여 후퇴현상이 나타났고 특히 종교개혁이 주안(主眼)을 두었던 교계제도 파괴에 대처하여 그 옹호에 주력한 나머지, 교회는 마치 성직자 일변도(一邊倒)의 교회이고 평신도는 교회에서 부수적이거나 혹은 제 2차적인 것처럼 생각되거나 실제로 그렇게 취급된 감이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공의회가 그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려 하였다.

이 두 요소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일원적 (一元的)인 근원(根源) 즉 하느님의 백성에서 설명하고 있다. 성직자도 평신도도 다 같이 한 하느님의 백성이며 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성직자와 평신도는 이질적(異質的) 차원(次元)에 속하는 두 요소가 아니라 하느님의 같은 백성으로서 다만 그 직위와 직분 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호협조 내지 상호보충을 기하여 하느님의 백성을,그리스도의 몸을 완성시켜가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신자는 교회의 본질적 요소이다. 교회는 이 지상의 가지가지의 고난을 통하여 역사의 경과 중에 이 지상에서 천상의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시켜 가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하느님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은 그 직위 여하를 막론하고 같은 하느님의 백성이니 하느님의 백성으로서는 다 같이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따라서 평신도도 교황이나 주교나 사제나 수도자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백성의 일원(一員)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을 모으고 그 백성이 이 세상의 험난한 행로(行路) 중에 신앙을 굳건히 보존하여 구원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하느님의 백성을 돕는 역할을 그 백성의 일부(一部)에게 위촉하셨다. 이들이 이른바 성직자이다. 그러므로 교황을 위시하여 모든 계급의 성직자는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공복(公僕)이며 권력에 의한 지배의 사람들이 아니다. 성직자는 봉사의 사람들이다. 그러기 때문에「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을 위시하여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모든 문헌에는 일관하여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성직자의 크리스찬 사랑에 의한 봉사가 거듭거듭 강조되고 있다.

평신도의 사제직(司祭職) 참여

모든 하느님의 백성 즉 교황, 주교,사제, 신도는 다 하느님의 백성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물과 성신으로 다시 난 사람은 "간선된 인종이며 왕다운 사제군이며 거룩한 민족이며 (하느님의) 소유로 간택된 백성이 되나니··· 옛적에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닌 백성이었으나 지금에는 하느님의 백성”(1베드 2, 9-10)이 되었다. 이와 같이 물과 성신으로 다시 남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 신자의 사제직을 평신도 공통(共通) 사제직(Sacerdotium commune fidelium)이라 한다. 그러나 이 공통 사제직은 성직자의 직위적(職位的 ministeriale) 혹은 교계적(hierarchicum) 사제직과는 그 정도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상호 관련되어 있으며 각각 독특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 사제는 그가 향유하는 성스러운 권능으로 사제적 백성을 형성하고 다스리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성체의 제사를 거행하여 그 제사를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바친다. 평신도는 자기들의 사제직의 능력으로 성체봉헌에 참가하고 제(諸) 성사배령(聖事拜領)과 기도와 감사와 성스러운 생활의 증거와 자아포기와 행동적 사랑으로 이 사제직을 행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제직무의 일부를 평신도에게 부여하신 것은 그들이 행하는 신심행위와 속사(俗事) 일체를 성신 안에 행하여 그 모든  것이 하느님께 가납되는 영적 희생이 되게 하고 특히 그 모든 것이 성체성사 거행에 있어 주의 몸과 더불어 성부께 봉헌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평신도는 그 공통 사제직으로 말미암아 세상 어디서든지 성스러운 예배자(禮拜者)로서 세상 자체를 하느님께 봉헌한다.

평신도의 예언직(豫言職) 참여

성부의 나라를 선포하신 위대한 예언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영광을 완전히 나타내신 종말(終末)시기까지 성직자 뿐만이 아니라 평신도를 통하여서도 당신의 이 예언직을 성취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평신도를 증인으로 세우시고 신앙의 마음과 말의 은혜를 그들에게 주시어 복음의 힘이 가정과 사회에서 그들의 일상생활중에 빛나게 하신다. 평신도는 이와 같은 실천생활과 말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므로 그 예언직을 수행한다. 또 이 예언직은 평신도가 견고한 신앙과 확고한 희망으로 현시 (現時)를 잘 이용하며, 인내를 가지고 장래에 임할 영광을 기다리며,그 생활을 통하여 자신들을 약속의 아들로 나타내므로 이행된다. 그 희망은 마음 속 깊이 감추어 둘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의 계속적인 개심 (改心)과 노력으로 세속에 그 희망을 전파해야 한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거나 잃어버려 인간 본연의 희망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영원한 희망을 다시 일으켜 주어야 한다· 이 복음의 선포 즉 생활의 증거와 말로써 평신도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속의 일반상황(一般狀況) 중에서 그리스도를 알리는 데 평신도 예언직의 독특성이 있다.

평신도의 왕직 (王職) 참여

성부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께 높임을 받으시어 당신 나라의 영광에 들어가셨다. 이에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 굴복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권능을 당신 제자들에게도 주셨으니 이는 제자들이 왕적 (王的) 자유에 확립되어 자아포기와 성스러운 생활로써 죄의 지배를 이기고,그리스도께 봉사하여 겸손과 인내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왕께로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그리스도왕께 섬기는 것은 지배하는 것이다. 주께서는 당신 나라를 평신도를 통하여도 넓히시기를 원하신다. 이 나라는 피조물 자체가 노예 처지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자식들의 자유에 참여하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이며 성성(聖成)과 은총의 나라이고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다. 평신도는 죄를 초극(超克)하며 이런 그리스도의 왕국을 신장(伸張)하므로 그 왕직을 행사한다.

사도직(使徒職)에의 평신도의 소명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느님의 백성에 근거한 평신도의 내적(內的)이고 신학 존재론적 (存在論的)인 고찰을 전제로 하여 평신도의 사도직에 대해 논하여 본다.

사도직 (使徒職)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창립 하신 목적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왕국을 온 땅에 확장하여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그 사람들을 통하여 온 세계를 그리스도와의 연관 하에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이 목적을 달성키 위한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활동은 그 어느 것이든 다「사도직」이라 한다. 이 평신도 사도직은 신도가 성세와 견진으로 말미암아 주께 직접 받는다. 그러므로 평신도 사도직은 신도가 하느님의 백성,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가 된 그 내적 본질에 근거(根據) 유래(由來)되는 것이며 사제가 자의(恣意)로 신도에게 베푸는 어떤 특전이거나 아니면 사제가 어떤 사정 하에 신도에게 청하는 부탁같은 것이 아니다. 더욱이 평신도 사도직은 신도가 사제를 개인적 호의에서 돕는 어떤 동정적 도움같은 것도 물론 아니다.

교회의 현세관(現世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 즉 세속에서의 그들의 사도직의 진가(眞價)를 통찰함과 동시에 또한 교회의 현세관을 그 본연상 (本然相)에서 제시한다. 현세사 (現世事)는 희랍의 관념철학(觀念哲學) 이 생각한 바와 같이 실세계(實世界)가 아닌 저 멀리 있는 이념(理 念)세계의 한 영상(映像)이거나 가상(假像)이 아니며,회의주의(懷疑 主義)가 보는 바와 같이 그 실상(實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그 러한 것도 아니며, 더욱이 신(神)을 극단적으로 거부하고 우주의 생성 (生成)의 근저 (根底)에 절대적 무의미 (無意味)와 무가치 (無價値)를 선언하여 근본적 허무주의를 태동(胎動)시킨 니체와 같은 현세관도 아니다. 혹은 또 현상(現象)에서는 불안과 자기분열, 모순으로 시종하며 그 근저(根底)에는 절대적 허무의 진상(眞相)이 감춰져 있는,현대를 풍미 (風靡)한 무신론적 실존주의도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그와는 반대로 존재자(存在者)는 신(神) 뿐이요,우주 만물의 현상은 그 신의 발로(發露) 내지 신의 자기 발현(發現) 현상으로만 보아 인간도 이런 신의 일부라 주장하여 인간 각자가 욕구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그에게 가(可)하며 또한 선이라고 보는 낙천주의 (樂天主義)나, 근대에 만연하였던 자연이란 미명 (美名)하에 현세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만, 선한 것으로만 보려던 자연 낙관주의의 현세관과도 다르다. 또한 과학 만능과 물질지상(物質至上)의 지상낙원 (地上樂園)을 설교하고 물리적 힘으로 모든 인권과 자유를 짓밟는 횡포의 현세관도 아니다. 내재 (內在)의 세계 안에만 침전(沈激)하여 무한과 영원에로 열린 인간정신이 출구(出口)를 찾지 못하고 질식 (室息)케 되는 막다른 현세관도 아니며 현세를 전혀 무시한 초월만을 논하는 비현실적 현세관도 아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런 모든 주의 사상에 내포된 올바른 진, 선, 미 (眞, 善, 美)는 이를 거부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좋은 것을 긍정하고 본연의 인간상안에 순화(醇化)시킨다. 제2 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현세관은 하느님의 계시에 입각한, 있는 그대로의 진상 (眞相) 의 현세관이며 세계의 내재성 (內在性) 과 초월성 (超越性)을 잇는 현세관이다·

공의회는 현세 만물을 창조주의 창조가치에서 풀이하여 그 모든 것은 존재론적(存在論的)으로 좋은 것,가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피조물이 그 본연상(本然相) 에서 왜곡되어 가지가지의 물질적 정신적 불행과 악이 발생하는 현실도 공의회는 직시(直視)하며, 현세사(現世事)를 그 근원에서 단절된 유한성에 유폐(幽閉)된 상태나 혹은 허무 위에서가 아니라 그 존재근 원과의 연결에서 즉 창조주의 계획에 입각한 영원상의 배경에서 고찰 한다. 현세사(現世事) 전반은 그 자체로써 참된 의의와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인간의 목적과 관련됨으로써 그 의의와 가치가 더 정확히 판단되고 올바르게 인정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 영적 생활과 사도직 활동이 마치 세속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세속사와는 차원(次元)이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생각하여 온 일부의 재래 관념과는 달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도직을 전 (全)인간과 그가 사는 세계와 거기서 발생하는 모든 관계와 모든 활동영역에 걸쳐 논한다. 즉 창조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영원에로 순례하여 가는 종말적 (eschatologica) 인간상에서 현세사를 고찰한다.

평신도 사도직의 특성과 실천

세속적 능력은 평신도에게 고유한 것이며 특징적인 것이다. 신도에게 고유한 소명은 현세사(現世事)에 종사하며 현세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므로 현세사 전반에 걸쳐 하느님의 나라가 건설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평신도는 세속에 살며 그 안에 크리스찬으로 불리웠다. 그러므로 신도는 세상의 시민으로서 이 세상 질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협력하여 가정, 직업, 문화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더 높은 지도원리를 신앙의 빛에서 구해야 하며 창조주의 영원한 계획에 비추어 세상 질서를 적극 건설해가야  한다. 이렇게 그들은 세속에 있어서의 자기들의 임무 일반을 이행함으로써 또 복음의 정신으로 인도됨으로써 세상의 성화를 위해 마치 누룩과도 같이 세속의 내부에서부터 작용한다. 세속에서 영위하는그들의 생이 신앙과 희망과 사랑으로 빛남으로써 특히 자기들의 실생활의 증거로써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그들은 불리웠다. 그러기 때문에 평신도는 그들이 살고 있는 현세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의도를 따라 실현되고 성장되며 세상 만사가 창조주와 구세주께 대한 찬미가 되도록 현세의 모든 것을 비추고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평신도에게 부가된 사명이다. 평신도는 이런 소명을 개체 개체로서 혹은 단독실존자(單獨實存者)로서 성취하기보다는 인간 공동체 안에서 수행한다. 평신도는 교회가 그들로 말미암아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장소와 환경에서 교회를 현존케 하고 활동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해 불리웠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교회의 선교의 증인인 동시에 산 도구이다. 평신도는 하느님의 인류 구원계획이 모든 시대와 세상만방에 또 모든 사람에게 잘 전달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성스러운 의무를 진다. 교회는 사도직을 그 신비체의 전 지체를 통하여 수행한다. 교회 안에는 가지가지의 직무가 있다. 그러나 그 사명은 하나이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성화하고 다스리는 임무를 그리스도께 받았다. 평신도도 또한 그리스도의 사제직,예언직,왕직에 참여하였으니 교회와 세속에서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사명 중에서 그들이 수행하여야 할 역할이 있다. 평신도는 복음을 선포하며 사람을 성화하기로 힘쓸 때 또 복음의 정신을 세상에 침투시켜 세상의 질서를 창조주의 의도를 따라 완성하기로 노력할 때 사도직을 실천한다. 이와 같이 하여 그들의 노력은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의 증거가 되며 사람들의 구령에 봉사한다. 그리고 이런 사도직 활동이 성신이 교회를 통치하도록 정하신 사람들(敎階)과 일치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사도직의 본질적 요소임을 공의회는 상기시킨다.

사도직의 정신적 원천

사도직은 성신이 교회의 전 지체의 마음에 부어주시는 신앙,희망, 사랑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특히 주의 최대 계명이며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라고 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신도는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한다는 지향에서 일상 생활의 직무를 성실히 이행하여야 하며 그 영신생활 즉 그리스도와의 일치를심화(深化)해가야 한다· 이 영적 심연(深淵)에서 흘러나오는 열성에서 사도직을 수행해야 한다. 사실 사도직 활동은 생생한 애덕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공의회 이후에 일부에서 잘못 생각하는 바와 같이 사도직 수행이란 순행동주의적 (純行動主義的) 활동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전통적으로 지켜온 깊은 영적 생활 특히 애덕을 그 근본적 힘으로 하는 사도적 활동인 것이다. 공의회는 또한 초대교회에 있어서 성체만찬에「애찬」(愛餐 Agape)을 첨가하여 사랑의 유대를 강화하였던 것을 상기시키며 성체에서 사랑을 길어내고 애덕행위를 실천할 것을 권고한다. 사실 성직자 뿐만 아니라 모든 평신도도 완전한 크리스찬 생활과 완전한 사랑에 불리웠다.

평신도와 목자

평신도는 목자로부터 교회의 영적 부(靈的富),특히 하느님의 말씀 과 성사의 도움을 풍성히 받을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며 바라는 바를 하느님의 자녀와 그리스도 안에 형제된 바에 합당한 자유와 신뢰로써 목자에게 표명해야 한다. 평신도는 그들이 향유하는 그 지식과 능력과 우수성에 의해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들의 의견을 표명할 권리와 때로는 그렇게 할 의무를 진다. 평신도는 또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성스러운 목자들이 교회에서 교사와 통치자로서 제정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순명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교적 순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의 목자들은 주의 모범을 따라 그들 상호간에 서로 봉사하여야 며 다른 신자들에게 봉사하여야 다. 평신도는 자와 교사에게 즐 겨 협력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목자와 신자는 다 같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다양스러우면서도 감탄스러운 일치에 대한 증거를 드러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도처에서 강조된 것은 목자가 교회와 신자에 대해 사심없이 봉사하는 것이며, 평신도는 교회에 대한 피동적(被動的)이며 방관적 내지 개인적, 이기적인 정신자세와 실생활 태도에서 탈피하여, 평신도 본연의 자세에서 적극적이며 희생적이고 범 (?) 세계적인 교회활동에 참가하는 것이다.

그 문헌들은 성직자나 평신도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교 본연의 정신인 인류의 보편성과 공동성 안에서의 구원을 강조하며,상호 협조와 협력의 정신 계발(啓發)에 힘 쓰며, 그 실천을  절실히 요망한다. 목자는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의 지위와 책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향상시켜야 한다. 목자는 평신도의 현명한 의견을 활용하여야 한다. 목자와 평신도 간의 건설적 대화와 상통이 요청된다. 목자는 평신도에게 교회에의 봉사를 위해 신뢰를 갖고 임무를 맡길 것이며 행동의 자유와 여지를 주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착수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그들을 교육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평신도의 창의 (創意), 요구,희망을 그리스도 안에 자부적 (慈父的)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신중히 고려하여야 하며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정당한 자유와 인간 가치를 존중하여야 한다. 목자와 평신도 사이의 친밀한 상통(相通)은 교회에 크게 기여한다. 이런 상통으로 인해 평신도의 책임감이 강해지며 열성이 육성되며 평신도의 힘이 목자의 힘과 합쳐서 상호보충(相互補充)하므로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왕국,그 신비체가 영광스러운 종말적 완성에로 전진하게 된다.

결 어(結語)

교회는 지금 세계 도처에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천명하여 놓은 평신도 상(像)에로 신도들을 교육하여야 할 긴박성 (緊迫性)에 몰리고 있다. 이 긴급성은 우리 한국에 있어서 더욱 그러한가 싶다. 이 땅의 신도 대다수는 이른바 신문교우이며, 구교우도 교리지식에 있어서 나은 것은 없다. 우리나라 평신도의 교리지식은 그들의 신앙생활이 일천(日淺)함과 마찬가지로 매우 피상적이다. 구식 문답 한 권을 마스터한 교리지식으로 자기의 신앙생활 전부를 지탱하여 가고 깊게 하여 가기 위해서는 너무나 큰 무리가 있다. 그들의 신앙생활이 육신생활, 세속생활과 부조화(不調化)를 일으킬 때 그들의 연약한 신앙은 큰 위기를 당한다. 또 소위 선진국에서 경험하였고 또 경험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 이 땅에도 어느 날엔가는 찾아 오리라고 예상된다. 즉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부흥,거기에 따르는 향락생활의 추구로 빚어지는 신앙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냉담 현상이다. 공의회가 평신도 사도직 문제를 그 내면성에서부터 천명해 준 이 때, 그 정신에 입각하여 평신도를 전반적으로 계몽 교육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정신계발로 신도가 평신도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사도직을 충분히 인식하여 자발적이며 활동적이 될 때 교회는 현 세계 안에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 신장(伸張)하기 위해 막강(莫强)한 힘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니,평신도는 세계 도처에 그리고 각계,각층, 각 분야에 침투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 사도직의 구체적 실천에 관해서는 지방환경 대상등에 의하여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그 처한 환경과 대상에 의해 구체적 연구와 조직적 활동이 필요하다. 평신도의 이런 막강한 힘이 충전(充全)히 활용될 때 제2 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향한 교회상이 일신(一新)된 면모를 갖춰 이 지상도처에 도래할 것이다.

<필자 · 가톨릭 대학 신학부 교수 신부〉

〔참고 문헌;]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CONSTITUTI이)OGMATICA-DE ECCLESIA)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J (DECRETUM DE APOSTO-LATU LAICORUM)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교회의 선교(宣敎)활동에 관한 교령」(DECRETUM DE ACTIVITATE MISSIONALI ECCLESIAE)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현대 세계 헌장」(CONSTITUTIㅇ PASTORALIS DE ECCLESIA IN MUNDO HUJUS TEMPORIS)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DECRETUM DE PRES-BYTERORUM MINISTERIO ET VITA)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DECLARATIO DE EDUCATIONE CHRISTIANA) Y. Congar, Lay People in the Church. Y. Congar, La Chiesa come Popolo di Dio, Concilium, I, 1965. Y. Congar, Laity, Church and World. Hans Heimerl, The Laity in the Constitution on the Church, Concilium, Vol. 3, No. 2. Karl Rahner, S.J., The Christian of the Future. Pietro Brugnoli, La Spiritualitd dei Laid, Morcelliana. Presbyteri, ex hominibus assumpti et pro hominibus 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