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5월호 (제 1호)

새 교리서의 교회상(敎會像)

최석우

교황 바오로 6세는 우리가 앞으로 신자들에게 교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공의회 정신에 상응된 교리 교수의 재검토를 촉구하면서, 주교와 신부들은 물론이요 일반 신자들까지도 교회에 대한 연구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요망하였다. 왜냐 하면 교회를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교회를 쇄신하는 데 불가결의 것이며, 교회에 대한 깊은 지식에서 비로소 교회 쇄신에 대한 긴급한 요구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에 관한「교회헌장」과「교회 재일치에 관한 교령」이 제시됨에 따라 자연히 종래의 교리 교수에서 교 회에 관한 여러가지 점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그런데 공의회 문서에 의거하여 교리서를 수정하는 데 있어서 공의회에서 제시한 것을 다 채택할 수는 없는 것이며 사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는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것만 추려야할 것이며 동시에 공의회가 오늘의 신자들에게 특히 강조하고자 한 점이 과연 무엇인가를 십분 참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교회에 대해서 공의회가 주로 강조하려고 한 중심되는 관심사는 무엇일까? 앞으로새 교리서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는 뜻에서, 교회에 관하여 공의회가 주로 관심을 둔 것으로 여겨지는 다섯 가지 점을 들어 약간의 설명을 붙이고자 한다.
새 교리서의 교회 편이 많은 점에서 아직 수정을 필요로 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훌륭한 교리 교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결코 교과서가 아니라 교리 교사에매어 있음을 미루어 보아 먼저 교리교사 자신이 공의회의 권고 사항을 충분히 깨닫는다면 비록 미비한 교과서를 갖고서라도 공의회 정신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1. 종속관계를 피한 병렬(?列) (가톨릭 교리서 23, 26과)

교회의 위계제도(位階制度)적 구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과거에는 피라미드식 표현 방법을 즐겨 사용해 왔다. 즉 탑 꼭대기의 교황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음 주교와 신부,끝으로 신자에게까지 이르는 계단적 종속관계의 묘사를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면만 강조함으로써 신자들은 마치 교회의 전 생활이 교직자(敎職者)들에 의해 지배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한편 교직자들은 신자들의 고유한 은사 (恩賜) 의 가치와 의의를 무시하거나 등한시할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헌장도,목자들이 그리스도로부터 교회의 직무를 받은 것은, 세계를 향한 교회의 전 구원사명을 자기들만이 도맡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자기들 나름의 방법으로 공통된 일에 일치 협조하도록 그들을 사목하고,그들의 봉사와 은사를 인정하는 것이 그들의 탁월한 임무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였다 (30 조)·

그러므로 새 교리서는 과거의 상하 관계의 서술 방법을 가능한 한, 나란히 평등하게 서술함으로써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첫째로 교직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교회 곧 하느님의 백성의 공통된 용무(用務) 임을 나타내고 강조하려고 했다. 따라서 교회 헌장의 순서대로 (10-12 조) 먼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고(22 과), 그의 예언직에 참여하며(23과), 그의 왕직 (王職)에 참여하는 하느님의 백성을(26 과) 이야기하고 나서, 비로소 봉사하고 돌보는 교회의 직무에 대해서(27과) 말하였다.

2. 그리스도와 교회 (27, 28 과)

우리는 이제까지 교황을 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으로, 그리스도를 교회의 볼 수 없는 으뜸이라 불러 왔다. 그런데 교황을 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이라고 부르는 것이 설령 교리적으로 옳다고 치더라도 이러한 호칭이 오늘날 교회일치를 위해서이건 교리 교수 자체를 위해서이건 이미 권고할만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며 더욱이 그것은 교회 안에서 계속 작용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참된 모습을 흐리게 할 우 려조차도 있는 것이다. 사실 교황과 그리스도가 둘이 다 교회의 으뜸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차이는 질적으로 다르고 큰 것이니,그리스도는 교회에 생명을 주기 때문에 으뜸이 되는 것이고, 교황은 교회를 지도하고 일치로 인도하는 의미에서 교회의 으뜸이 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교황이 뚜렷이 구별되어야 할 필요성은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별에도 한결같이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에 당신 전권을 위임하셨으므로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바 사명을 다할 수 있게 완전히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이렇게 과거모양 계속 가르칠 것이 아니라,이제는 교회헌장의 정신을 따라서 홀로 거룩하시고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와는 달리,죄인들을 자신 안에 품고 있는 교회는 성스러운 동시에 회개와 쇄신을 계속할 사명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8 조).
그러므로 우리는 신자들에게 교회에 대하여 거짓 없는 올바른 자랑, 곧 인간의 거절에서 오는 교회의 스캔들의 가능성과 사실에 대한 솔직한 인식을 줄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교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더욱 일깨워 주어야 한다.

3. 성체성사와 교회 (21 과)

지금까지는 교회 편에서 성체성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들어볼 수 없었던 반면에 교회헌장에는 도리어 성체성사가 현저하게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새로운 이스라엘인 하느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릴 수 있는 것도 성체성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구약의 하느님의 백성이 성전에서 계약을 새롭게 함으로써 서로 뭉쳤듯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은 성체봉헌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심 으로 키워지고 또한 이 몸 안에서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의 일치를 드러내게 된다 (11 조).
"면병은 하나이므로,우리는 수가 많으나 한 몸을 이룬다. 우리는 다 한 면병에서 나누어 받기 때문이다” (꼬린 전 10, 17)고 한 성경 말씀과 같이 성체의 빵을 쪼갤 때마다 우리는 주의 몸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주님과 또한 우리 서로의 상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7 조).

4. 재일치를 위한 모든 이의 기여 (28 과)

재일치 교령은,가톨릭 신자들 자신이 일치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의 도움과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이 시대의 징조(徵兆)를 깨달아 각자의 능력대로 일치운동에 참가할 것을 거듭 권고한다 (1-5조). 왜 가톨릭이 아닌 다른 그리스도 신자도 구원될 수 있는가? 그들이 영원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할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교회헌장은 어느 정도의 해답을 주고 있는 데 즉 비가톨릭 신자들도 많은 이유로써 우리 가톨릭과 결부되고 일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 역시 성경을 믿음과 생활의 규범으로 존경하고 있으며, 성실하고 열심한 종교심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과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며,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맺아지고, 더욱이 같은 성신이 그들에게도 은혜와 은총을 주어 그들 안에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다.

5.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 (26, 42 과)

지난 날의 교회가 무엇보담도 먼저 세상의 배신과 박해를 대항해서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내세우며 세상에서 권위를 보전하려는 공동체로서의 특징을 나타냈던 것이나 이제 공의회는 교회가 이미 자기 목적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고 세상을 향해 크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강조한다. "인자(ㅅ子)는 봉사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봉사하여 생명을 버림으로 민중을 구원하러 온 것이다”(마르꼬 10, 45)라고 하신 주님의 모범을 따라서 교회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세상에 봉사하며 또 세상을 위해서 괴로움을 받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권에 참여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권력이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특권을 포기하고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죄의 지배를 자신 안에서 물리치고,형제들에게 봉사하며 그들을 겸손과 인내로써 그리스도 임금에게로 인도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봉사의 임무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일반신자들은 모든 창조물을 창조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 그리스도안에 재건함으로써 세상을 성화할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신분과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신자들은 지상 사회에서 노력과 기술과 문화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사회 전체의 진보와 인류구원에 기여하게 된다.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에 대한 이와 같은 봉사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성화의 길이 되는 것이다 (36, 40조).

<필자 · 가톨릭 대학 신학부 교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