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救援의 恩寵 - REDEMPTIONIS DONUM, 1984년 3월 25일
1984년 7월호 (제 94호)
救援의 神秘와 奉獻에 관하여 男女 修道者들에게 보내는 ?皇 요한 바오로 2세 聖下의 使徒的 勸告 예수 그...

주일의 말씀
1984년 7월호 (제 94호)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ㅡ 연중 제13주일(7月 1日) -성서주해 [제 1독서 -  2열왕 4,8-11.14-16] 오늘 ...

聖 아우구스띠누스의 牧者論
1984년 7월호 (제 94호)
18. "모든 산과 모든 언덕, 온 세상에 흩어져 있다”(에제 34,5). ‘‘온 세상에 흩어져 있다”는 이 말씀...

떼르뚤리아누스 (II)
1984년 7월호 (제 94호)
2. 論爭的作品 (1)「이단자 규정론」「이단자 규정론」 (De praescriptione haereh'corum)은 제목이 암시...

勞動法은 改正되어야 한다
1984년 7월호 (제 94호)
I. 勞動法 改正의 必要性 그간 한국사회가 겪은 급격한 産業化 過程을 통하여 勞動者는 量的인 면에서 그 ...

敎會法典 - 敎會法典 ?譯委員會 試譯
1984년 7월호 (제 94호)
제 2 편 교회의 교계 제도 제 1 부 교회의 최상 권위제 ι 절 교황(교종)과 주교(감목)단 제330조 주께서 ...

韓國 統ㅡ과 가톨릭의 立場
1984년 7월호 (제 94호)
1. 머리말  本人에게 주어진 주제는 ‘韓國 統ㅡ과 韓國 가톨릭 ?會의 立場’이다. 그런데 본인은 교...

가톨릭 敎會와 社會正義
1984년 7월호 (제 94호)
ι. 敎會와 社會의 關係에 대한 神學的 考察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마태 5,13-16)라는 복음의 ...

70年代 가톨릭 社會正義具現 活動과 評價
1984년 7월호 (제 94호)
Ⅰ 오늘 이같은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70년대의 苛烈한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民生과...

平和, 正義, 統一과 敎會
1984년 7월호 (제 94호)
* 이 特輯은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행사위원회와 기념사업위원희 北韓宣敎部주최 및 한국 가톨릭 社會...

   1      


特輯 ? 社會正義와 南北統一 1984년 7월호 (제 94호)

韓國 統ㅡ과 가톨릭의 立場

梁漢摸 (200周年精神運動委 委員)

1. 머리말 

本人에게 주어진 주제는 ‘韓國 統ㅡ과 韓國 가톨릭 ?會의 立場’이다. 그런데 본인은 교회의 입장을 얘기할 수 있는 制度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주제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과제는 조국의 南北統ㅡ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을 定立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본인은 다만 지성적 요소를 포함한 객관적 현실의 이해라고 할 수 있는 본인의 경험을 기초로 해서 조국의 통일문제에 敎會的으로 접근하여 볼까 한다. 여기서 교회적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전인류 일치의 標識이며 道具’’(교회헌장, ι항) 혹은 "一致의 聖事’’라는 관점에서 司牧的으로 문제를 보려는 태도와, 또한 福音의 원점에서 문제의 접근을 시도하는 방법과 그리고 복음의 宣? 가운데에 문제의 근거를 두려는 神學的 立場인 것이다. 
한국천주교회는 평양교구, 함흥교구, 덕원면속구, 연길교구 등 여러 교구를 그대로 북한에 두고 그 裁治權者인 교구장 서리를 임명해 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公的으로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한 한 견해를 밝힌 바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다행이도 작년부터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남북통일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이에 대한 사목적 관심을 표명하고 나왔다. 또한 2백주년 기념사업으로 北韓宣?部를 설치하고 침묵의 교회에 대한 선교에 손을 대는 한편, 통일문제에 나름대로 관심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교회가 조국의 통일문제에 접근하여 작업을 시도한다는 것은 실제로 극히 어려운 문제이나 그렇다고 무관심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挑戰的이고 宿命的인 교회의 과제인 것이다. 
오늘날 북한 金日成主義者 집단에 의해 三者會談이 제안되고 있으나, 그들에 의한 민족의 위기라고 할 정도의 緊張關係의 조성은 계속될 것이 뻔하다. 정치적 군사적 정세가 그럴수록 우리는 統一-政策의 수립이나 통일 운동의 전개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일에 철저해야 한다. 실제로 교회가 지금이야말로 꼭 착수해야 한 일은 그러한 基礎工事다. 우리는 보통 통일정책의 수립 집행 실현만이 중요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보다도 내면적인 정신적 기초가 더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福音精神에 의거하여 민족통일의 정신적 토대를 구축하는 기초공사에 힘을 쏟아야 한다.

2. 問題의 所在

금년 1984년은 국토가 분단된 지 39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 조국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민족은 분열된 채로 있다.
그동안 조국의 통일문제를 놓고 일어났던 역사적 흐름을 간단히 돌이켜 보면, (1) 38선에 의한 國土分斷과 美蘇 兩軍에 의한 국토의 分割占領, (2) 연합국에 의한 戰後 처리 문제로서의 등장, (3) 미국에 의하여 UN에 제기돼 UN에 유보된 문제로서의 계류, (4)남북 양지역에 國家의 樹立, (5) 6-25 동란 (6) 6-25 동란에 참전한 관련국에 의한 政治會議, (7) 재차 UN에 유보된 문제로서의 계류, (8) 7-4 공동성명과 남북 적십자회담, (9) 전두환 대통령의 남북 최고책임자 수뇌회담의 제의, (10) 버마 아웅산의 암살폭발테러사건과 파괴교란을 획책하는 무장간첩의 계속되는 남파, (11) 북한집단의 3자회담 제안, (12) 美-? 日? 中 3국 사이의 한국문제 거론 등으로 통일문제의 성격이 몇번씩 바뀌며 변천하였던 세계사 안에서의 통일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우리의 통일문제는 확실히 國際的 要因에 의해 발생하여 주로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취급되어 왔다. 주변 국가들은 자기네 세계정책을 위해 우리 민족을 自國의 政略이나 戰略의 도구로서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 민족이 내부에서 球心的인 협력에 실패함으로써 그것을 초래케 한 점도 없지 않다. 그래서 민족 내부 해결에로 수렴되어야 할 통일 문제가 외부로 확산되는 사이에 事大主義的 경향을 띠기도 했었다.
분단이 우리 민족의 意思와 관계없이 강대국에 의해 강행되었기에,민족 내부의 구심적 협력과 단결로 민족의自決 능력을 발휘했어야 했고 더우기 현재나 앞으로도 그래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 우리 조국의 통일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의 내부문제이다.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군사적 대치나 무력행사가 아니라 민족의 원점에 서서 인위적인 분단과 분열을 극복하며 세계사 안에서 민족의 진로를 개척하여야 한다.
우리의 조국 통일문제는 오늘날 기대에 상반되는 현실에 놓여 있다. 마치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가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서로 항쟁하기에 이르러 산발적인 局地戰을 계속했던 그 항쟁의 역사 속에 두 나라 사이가 악화됐던 것과 똑같은 역사적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실은 休戰이라는 分斷線이 문제라기보다도 우리들 마음의 휴전선이라는 분단선이 더 문제이다. 바꿔 말해서 마음의 장벽이 문제이다. 新羅에 의한 三國統ㅡ 이래 1천 3백년 동안 다른 민족의 침략을 받고 있었던 시기까지도 단일국토에서 통일민족으로 생활해 왔던 역사에 비추어보면, 他意에 의하여 초래된 39년 동안의 분단과 분열은 비극임이 틀림 없으나 그것보다도 더욱 39 년 동안 쌓아올린 마음의 장벽으로 인한 단절과 아울러 마음에 새겨진 증오에 의한 대결이 더 큰 문제이다. 더우기 통일문제가 民族成員인 남북의 국민대중이 각기 그 政權에 부과한 責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든가, 국민 대중으로부터의 통일운동이 아닐 때, 그것은 집권층 사이의 形式的 觀念的 통일 놀음이 될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기원전 920년에서 820년까지의 預言的 설교는 열왕기 상 11장 29~39절 에서 볼 수 있듯이 왕국의 분열을 긍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만일에 이스라엘의 良心인 그 예언자들이 북쪽과 남쪽과의 분열상태에 뚜렷이 반대하지 않았었다면 그것은 일반대중이 그러한 정치나 통치의 문제에 하등의 관련성을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우리의 정부 당국은 국민대중의 통일의지를 수렴하는 동시에, 북한의 동포인 그 민중을 상대로 하는 통일 노력을 하면서 국민대중의 통일운동을 촉진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주의 집단이 對南事業이라고 일컫는 對南挑發과 파괴공작을 끊임없이 획책하면서 통일사업이라고 일컫는 武力統ㅡ과, 아울러 통일전선의 전술로 平和攻勢를 시도하는 따위로 위험한 긴장을 고조시켜 왔기에 더욱 그러하다.
민족의 통일을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하느님의 救援計劃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罪의 깊이가 구체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통일문제는 하느님의 나라에 상반되는 것, 주님을 슬프게 하는 현실을 조성하고 있다. 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民族史에 자리하는 하느님의 支配 주권에 참여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건에서 어떻게 민족통일의 문제를 규명 정립할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건은 終末論的인 完成으로서 민족의 和解로 민족의 통일을 성취할 뿐 아니라 더욱 모든 피조물의 일치를 기초지어 주기에 말이다.
. 우리 민족은 냉혹한 역사적 현실에 직면하면 할수록 인내와 희생과 희망으로 통일추구에의 입장을 굳건히 다져가야 한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통일은 현실적으로 성실히 추구되어야 한다. 전술적인 술책이어서는 통일을 성취할 수 없다. 또한 그 통일은 특정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를 위한 것이기에 모든 사건이 통일을 향하여 전진을 계속해 마침내 하나의 공통된 미래의 만남이 되게 하여야 할 것이다. 냉혹한 역사적 현실에 직면하면서도 聖書가 개탄까지 하는 가운데에 말해온 그 일치 통일의 ?憬에는 어떤 근거가 있었는지를 현실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는 무서운 시련의 때에 동시에 그 시련 때문에 위대한 결단의 때에 살고 있다. 우리는 남과 북 어느 쪽에 살고 있든간에 모두가 정신을 가다듬고 우리의 민족이나 교회나 개인의 생활을 위협하는 위험을 자각하고 있어야만 한다. 한편 바로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현재에 대한 문제와 책임을 그리스도敎的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토분단의 비극을 懺悔의 정신으로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참회만이 지나간 역사를 同時代的 정세로서 이해하며 이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교적인 이해에 있어서의 전제조건이다.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은 분단와 고난을 자기의 아픔으로 떠맡고 지난 날의 분열을 인식하고 조국의 통일에 대한 현재의 장애를 응시하는 데 있어서의 預言者的이고 使徒的인 메시지의 깊이에 대한 근본적 통찰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실의 비극을 聖書의 메시지에 비추어 해석하면서 동시에 통일에의 미래의 희망을 민족에게 적극 제시할 수있느냐가 문제다.

3. 福音으로부터의 民族統ㅡ

福音이란 무엇인가? 로마서에 의하면 하느님의 支配에 관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능력“ (1,16)이다, 유대인을 비롯하여 희랍인도 곧 종교인도 세속인도,경건한 사람도 무신론자도, 자유민주주의자도 김일성주의자, 모두 믿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키는 하느님의 힘이 복음이라는 것이다. 또한 남북한의 體制 理念의 차이, 對立을 넘어서 양쪽으로부터 믿는 사람들을 부르는 하느님의 啓示의 능력이 복음이다. 하느님의 능력 곧 힘은 바로 하느님의 활동을 뜻한다. 하느님이 모든 힘과 권위의 근원이며 그분만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고린토 전서는 "그가 곧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힘입니다”라고(1,24) 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특별히 하느님의 활동 그 자체임을 기술하고 있다. 하느님의 힘이며 복음 자체인 그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았던 담을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헐어버리시고 서로가 원수가 되었던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던 것이다’’(에페 2,14),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드시고 .평화를 이루셨던 것이다”(에폐 2,15). 그러므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끓고"(필립 2,10) 전인류가 그리스도에 있어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에페 4,13) 통일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 예수는 고별의 사제적 기도에서 共同體의 통일을 청원하며 최후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요한 복음서에서의 통일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통일을 뜻하는 동시에 그것은 천상적인 것과의 連帶를 뜻하고 있다. 즉 진리, 빛, 생명이 天上的인 支配의 한 표지인 것처럼 일치, 통일도 마찬가지로 천상적인 지배의 한 표지이며 특징이다. 그러므로 만일에 지상에 통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하늘의 투영으로서 즉 啓示의 標徵과 대상으로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모든 영역에 통일이 회복된다. 聖靈의 인도하에 모든 사람이 같은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전인류의 통일을 이룬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에 있어서 만민의 일치, 통일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최종의 목적으로 지향하는 일치의 주요 부분이다. 그 통일은 만물 즉 천상에 있는 것과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이 죄에 의하여 잃은 통일을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는 것이다(에페 Ι,9-10). 바울로가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비의 특수한 본질이란 이것이 아닌가 한다.
조국의 통일문제에 근본적 장애가 되고 있는 북한 김일성주의자 집단의 폭력혁명의 전략과 아울러 통일전선의 전술에 의거한 군사상의 남북 대치는 나아가서 남북의 軍備擴張 경쟁과 외교상의 신경질적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의 군비확장은 경제성장과 발전에 주력하여 경제적으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려는데 있어서 남북한이 다 함께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북한 김일성주의자 집단으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민족문제의 군사화와 외부확산에 대해서 우리 교회는 信仰告白的 拒杏宣言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남북의 민족문제를 원점에 되돌려 사법 안에서의 對話로 복음의 빛 아래 平和統ㅡ에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分斷線을 헐어버리고 남과 북을 화해시켜 하나로 통일시킬 것이 분명하다. 하느님의 능력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복음으로부터의 남북통일은 믿는 사람의 신념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신앙고백만이 정치체제, 사회제도, 이데올로기,군사력의 장벽을 깨고 넘어서 "거룩한 하나”로 조국통일을 성취시킬 것이다.

4. 福音宣敎와 統一

예수가 목숨을 버린 것은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하여, 곧 利己主義로부터 利他主義에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분열한 사회를 兄弟愛에 바탕한 共同體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복음서에는 예수는 "흩어져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11,52)라고 기록되고 있다.
성서적으로 보면 예수는 역사의 한복판에 나타나서 우리를 解放하는 동시에 和解로 일치시키기 위하여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하여 결정적인 성취가 이루어진 救援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계속된다. 이 구원은 하느님과의 일치와 아울러 인간끼리의 완전한 일치를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의 성장을 위한 罪와 惡 그리고 억압으로부터의 人間의 解放인 것이다. 따라서 구원은 인간의 일치 및 해방과  밀접하게 맺어져 있다. 분열이 있는 곳에서 일치, 통일을 지향케 하기 위해 각 개인 안에 있는 분열, 인간관계 가운데에 있는 분열, 사회 안에 있는 분열과 모순에서의 해방을 알리는 복음이다. 福音의 宣敎는 다름아닌 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구원은 복음선교의 중심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과 우리 민족의 통일과 아울러 전인류의 일치를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부활신앙과 이 땅에서의 일치 통일에의 노력을 분리할 수는 없다. 이 땅에서의 인간의 일치, 발전, 해방은 명백히 복음선교의 일부이다. 그런데 우리의 복음선교는 언제나 우리 民族共同體 안에 속해 있다. 왜냐하면 복음의 가르침은 우리 민족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전해져야 할 뿐 아니라 모든 言語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 살아 있거나 하나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복음선교에 있어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 그들의 언어, 그들의 문제에 대답하지 않거나 그들의 실생활에 관심을 표시하지 않는다면 복음선교는 당연히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현대의 복음선교, 63항)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의 神的 능력으로 우리 조국의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이 관계하고 있는 활동, 그들의 생활과 구체적 환경을 변혁시켜서 조국의 통일을 성취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복음선교를 하고 있다고 하겠다(현대의 복음선교,2(3항 참조),
교회는 복음의 선교로 이민족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복음적 통일의 토대를 구축토록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개인생활의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 더욱 인간관계에까지 미쳐서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사람을 새로운 참사람으로 바꾸는 복음의 힘이 발휘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 땅에서 복음의 힘이 더욱더 발휘되어야만 하며 따라서 교회의 북한선교는 중대성을 띠게 마련이다.
교회는 김일성주의자의 도전에 대응할 태세를 갖추어 나가는 한편,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본질적 사명에 따라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복음선교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북한지역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 새로운 사실에 실행력을 갖고 부딪치고 더욱 기로에 선 김일성주의자에게 하느님의 구원 능력인 복음을 침투시켜야만 할 것이다. 김일성주의자는 주체사상도 인간의 하나의 사상으로서 인류사회의 추이에 따라 또 사회의 특질에 따라 스스로 변질해 간다는 사실에 의하여, 한국 천주교회는 북한 共?主義의 특징에 비추어 한국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그들과의 대결 아닌 대화에로의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가 북한 김일성주의 집단과 대화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교회는 더욱더 그들과의 대화를 할 수 있게 정치적 정세에 발 맞추어 꾸준히 노력한다면 복음의 씨를 북한 땅에 심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조국의 통일이라는 구원의 현실을 향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가운데 김일성주의자들을 위한 복음선교로서 무엇을할 수 있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할지를 깊이 연구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 땅에서의 복음선교야말로 통일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위대한 말씀의 봉사인 것이다.

5. 福音的 統一의 ?念

남북한은 각기 다른 두 개의 통일노선을 내세워 대립된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통일의지를 보이고 있다. 즉 대한민국은 自由民主化의 통일노선을 북한김일성주의 집단은 高麗民主聯邦制라는 김정일 세습노선과 남조선 폭력혁명 노선을 뜻하는 통일노선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대화의 여지없는 대결과 도전에의 응전으로 민족 내부의 문제해결로 수렴하지 못하고 3자회담이니 4자회담이니 하는 식으로 도리어 외부로 확산시키고 있다. 주변국가들에 의한 어떤 부면에 조정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민족 내부의 해결이 선행하여 우리 민족이 主體的으로 대화를 통해서 조절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통일의 문제상황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통일에 대한 입장은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사에 자리하는 하느님의 지배 주권에 참여한 부활한 그리스도의 복음에 뿌리박은 福音的 統ㅡ이어야 한다. 복음적 통일이란 이 땅에 있어서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표징에 의해 암시되는 민족공동체의 실현이다. 그 共同體는 하느님의 사랑에 이끌려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공동체로 전진해 가는 역사의 과정에서 초자연적 사랑의 유대로 맺어지는 민족공동체이다.
복음적 통일은 민족의 분열과 대립으로부터의 解放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통일은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화해시키는 과정에 의하여 달성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고. 남과 북을 하나로 만드는 화해를 통하여(에페 2,14) 국토분단선의 철폐와 아울러 민족성원의 마음의 장벽까지 헐어버리고 사랑의 사귐을 이루며 그 사랑의 사귐으로 일치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복음적 통일이다. 또한 복음적 통일은 민족성원들이 "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사도 4, 32) "평화의 줄로 하나가 되게 하고”(에페 4,3)"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는 것”(1고린 1,10)이다. 그리하여 민족성원의 일치로 政權을 單一化하는 것이 복음적 통일인 것이다. 그 일치는 폭력에 의해 강요할 수 없다. 남북에 존재하는 不信, 不正, 폭력으로부터.해방시키는 복음에 의한 형제애에 의해서만 그 일치는 달성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복음적 통일은 서로의 사귐으로(필립 2,1 참조)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치는 것이다(필립 2,2 참조). 남북한의 사귐에 의한 제반 교류 곧 문화적 교류,운동을 통한 교류,서신의 교류,경제의 교류, 정치의 대화적 교류, 남북한 사람의 내왕에 의한 교류 등에 의하여 사회의 異質化를 극복하여 사회의 同質化를 성취하는 것이다. 사귐을 민족성원 모두가 누릴 수 있을 때 남북 상호간에 긴밀한 사귐을 낳게 하며 복음적 통일은 달성된다. 그러므로 복음적 통일이란 남북한의 화해로, 분열에서 일치에로 향하는 사귐에 의한 민족공동체의 실현이다. 그 복음적 통일은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식과 실천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복음적 통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救援活動에 철저히 맺어져 있다. 사실 복음적 통일은 民族의 歷史안에서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이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는 민족의 통일을 그 미래로부터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되는 하느님의 나라는 조국의 통일을 달성하고 終末論的 共同體를 향해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전진케 할 것이다.

6. 福音的 統ㅡ의 基本原理

조국통일의 복음적 기본원리는 첫째로 自由이다. 자유는 인간이 인간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유를 얻기 위하여 하느님께 부름을 받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우리 민족을 부르시고 계시다(갈라5,13 참조). 사실 복음이란 우리 인간을 일체의 隸屬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하느님의 기쁨 그리고 恩寵의 메시지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자유는 希望의 빛에서의 자유이다. 그것은 우리와 우리의 민족을 그리스도를 위해 자유롭게 하고 서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유롭게 하고 더욱 옳은 자유에로 해방시키는 것이다. 조국의 통일은 민족성원들의 自由가 기초로 되어야 한다. 자유없는 통일은 거짓 통일이며 또한 통일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劃ㅡ的이 되게 하고 자유의 억압을 초래하는 방식으로 그 통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통일의 추진단계에서부터 자유는 소중히 여겨져야만 한다. 자유가 없는 통일원칙은 생각할 수도 없기에  말이다.
둘째는 正義이다. 사회 한복판에서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義를 구하는 것은 사회 안에서 정의를 구하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대로 ?會가 보유해 온 복음의 가르침 안에는 정의와 평화를 촉진하고 억압, 예속, 차별, 폭력, 기타 인간의 존엄이나 생명을 위협하고 宗敎의 自由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싸울 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웃사랑과 사회정의에 대한 노력이 소용이 없지 않다고 믿는다면(1고린 5,18), 분열과 싸움과 미움이 있는 곳에 비록 조금이라도 통일과 평화와 사랑이 있도록 협력하고 이 땅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통일의 노력이다. 정의가 행해지지 않는 한 통일이 실현된다고 할 수는 없다.
세째로는 進步이다. 하느님의 계획대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발전시키도록 태어났다. 따라서 민족성원 누구나 보다 인간적인 조건을 갖춘 개개인 및 민족의 진보를 위한 사명을 띠고 있기 마련이다. 민족성원의 각기 인간 전체와 민족 전체의 발전향상인 전체적 진보가 통일의 기초가 돼야 한다. 조국의 통일문제 해결은 민족사회에 있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의 질곡을 해소하고 또 극복한다는 성격을 띠어야 한다. 분단 하에서 향해진 발전에의 추구와 노력은 통일을 촉진하고 통일촉진의 과정에서 전진하고 통일 실현을 통하여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네째로는 平和이다. 통일은 평화의 민족공동체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예수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평화의 복음이라고(에페 2,17; 6,15) 일컬었다. 우리 민족의 통일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평화의 성격이 수반돼야 한다. 이 평화의 성격이란 통일문제가 해결되어 통일이 실현된 결과, 또 통일이 실현된 경우에만 전쟁의 요인이 없어지고 평화가 확보되는 것으로 의미하고 있으나 그것 뿐이 아니다.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통일실현의 방법에 있어서도 일체의 武力行使를 용납하지 않고 절대적인 平和의 履行過程을 거쳐서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만 통일이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로 兄弟愛이다. 형제애도 통일의 추진과정 가운데서 민족통일의 새로운 형태를 창출하는 역동적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창조적 형제애는 통일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엔가, 우리가 갈망하는 통일이 현실화한다면 그것은 형제에에 의하여 달성되는 것일 것이다. 따라서 형제애 곧 복음적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이 민족의 일치 통일의 행동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7. 韓國 天主敎會의 統? 責任과 立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헌장 가운데서 교회는 큰 일치 통일에의 운동으로 파악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치 또 사람과 하느님과의 일치의 聖事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 땅에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래서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의 빛을 반사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과 일치의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는 당연히 민족의 일치와 조국의 통일에의 관심과 책임을 지니고 있다.
세계사적 민족사적 상황에서 보면 한국 천주교회는 민족 앞에 서서 복음에 대한 자신의 充實과 아울러 福音的 行爲로 민족의 통일문제에 대해서 복음의 빛을 비춤으로써 통일실현에 노력하는 자기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시대의 표지를 잘 읽고 하느님이 구원의지를 민족사를 통해서 또 성령이 민족성원들 사이에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진정 통일운동은 현대 한국사회에서 읽을 수 있는 위대한 時代의 標識인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통일의 책임을 정부당국이나 정치단체나 사회단체에게만 돌릴 것이 아니라 책임이 그들과 함께 자신에게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전인류 ㅡ致의 標識이며 도구로서 일치의 聖事이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宣布해야 할 본질적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민족통일에 대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복음적 입장이다. 따라서 첫째 懺悔와 아울러 容恕의 입장이다. 오늘날의 조국의 정세 하에서 문제되는 것은 남북한 양쪽의 참회 및 용서의 정신이다. 조국의 통일 선상에는 참회의 不在가 뚜렷하다. 현재에 대한 문제와 책임을 민족의 양심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비극을 참회의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다. 또한 남북 상호간의 잘못,민족성원들 사이의 잘못을 서로 용서하는데서부터 통일문제는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용서란 우리의 가난한 마음보다 더 위대한 행위인 것이다.
둘째, 인간의 基本的 自由인 양심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치참여의 자유,종교의 자유 등이 통일의 추진단계나 그 실현에서도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째, 하느님의 模相인 인간의 尊嚴性과 人權이 존중되어야 하고 社會 正義의 실현이 통일의 추진단계 및 그의 성취 후에도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네째, 어떤 형태이건 간에 고문, 폭력, 무력 사용을 배격하는 입장이다,
다섯째, 어떠한 극한적 대립상황에서도 화해의 직무를 수행하려는 입장이다.
여섯째, 통일문제를 정치목적에 종속시키거나 통일을 다른 목적에 이용하기 위한 정략적인 술책으로 삼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곱째, 분단지향적인 것으로부터 통일지향적인 것에로 근본적 태도 전향을 하도록 촉발하고 이끄는 입장이다.
여덟째,남북한이 군비확장 경쟁을 지양하고 군축과 경제협력으로 전민족의 비약적 경제발전을 성취토록 하려는 입장이다.
아홉째, 人類史가운데서 민족의 진로를 개척하되 주변국가의 세계정책에 따른 전략상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바라는 입장이다,
열째,통일정책의 수립과 실천과 실현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기본적 정신구조를 구축하는 동시에 통일의 복음적 원리를 제시하는 복음적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통일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교회 자체내의 일치는 물론이려니와 나아가서 改新敎와의 일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개하여야 하며 또한 타 종교와의 대화를 깊이 하여야 한다.

8. 맺는 말

한국 천주교회는 이제 2백주년을 맞이하였다 이 은혜의 때에 즈음하여  선교 제3세기를 향하여, 민족통일을 향하여 한국 천주교회는 순례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할 재출발점에 서 있다. 이 시점에서 민족의 통일은 역사 안에서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이며 하느님의 지배 주권은 그 힘에 복종하는 사람들 사이에 통일을 제공한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고 새로운 결단으로 통일에 대한 책임을 수행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바로 하느님의 지배가 사람사이에 통일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곧 민족의 일치,조국의 통일을 요구한다는 데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힘인 복음은 분단선을 타파할 것이며 그 타파하는 사태야말로 유일한 구원의 현실임을 우리는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의 백성은 복음의 선교 가운데에 남과 북의 통일의 근거를 두고, 통일의 원천인 성령의 역사하심을 신뢰하고 사귐의 신비 안에 일치하여 통일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강연이 의도하는 바는 주제의 결정적인 형태로 취급한다기보다도 문제를 제기하여 토론의 자료가 되려는 것이다,

〔註〕이 강연내용은 2백주년과 북한선교에 입각한 "北韓宣?와 統一”이라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발행한 '현대사목 연구자료'에 게재된 필자의 "南北統一의 問題에 대한 神學的 立場"과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