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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年 木? 共同體의 해 - 韓國主敎團 共同 司牧敎書
1982년 5월호 (제 81호)
한국 천주교회 주교회의는 마음과 뜻을 합하여 전국의 모든 성직자, 수도자 및 신자들에게 이 사목교서를...

주일의 말씀
1982년 5월호 (제 81호)
부활 제4주일 배척당한 자의 구원 제 1 독서 : 사도 4,8-12 제 2 독서 : 1요한 3,1-2 복 음 : ...

이레네우스 - 교부들의 사상
1982년 5월호 (제 81호)
리용의 주교인 이레네우스 (Irenaeus) 는 ‘가톨릭 교리의 수호자’라 불리울 정도로 가장 뛰어난 2세기...

신관의 어제와 오늘
1982년 5월호 (제 81호)
歷史-存在論的 神觀의 特性 여기서 뜻하는 ?史 “存/H論的 觀은 전통적 우주론적 신관이나 7세 이후의 ...

罪란 무엇인가 - 罪에 관한 神學的 考察
1982년 5월호 (제 81호)
현대에 오면서 철학이나 신학 분야에서 초월적 神개념은 단지 人間性의 內心이나 深衷에 존재하는 것으로...

유교적 인간이해와 그리스도교
1982년 5월호 (제 81호)
이 글은 1981년 10월 31일 '한국인의 심성과영성‘을 주제로 한 제8회 신앙대학 강좌에서 발표한 내용올 ...

하느님 앞에 선 인간
1982년 5월호 (제 81호)
1. 머리말 인간은, 희랍 철학에 따르면 정신계와 물질계를 연결시키는 小宇宙(micro-cosmos)이다. 그러...

k. 라 너
1982년 5월호 (제 81호)
이 글은 ?山·敎區 공의 회 사무국이 Karl Rahner 의 Strukturwander der Kircheals Aufgabe und Change(...

200주년 記念事業을 위한 提言
1982년 5월호 (제 81호)
1.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지 2백 년이 되는 기념스러운 해가 바로 눈앞에 ...

200주년 精神運動의 方向
1982년 5월호 (제 81호)
머 리 말 솔직히 고백한다면 저 같은 사람은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저는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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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壇 1982년 5월호 (제 81호)

하느님 앞에 선 인간

박진량 (서울신학대학 교수, 신부)

1. 머리말

인간은, 희랍 철학에 따르면 정신계와 물질계를 연결시키는 小宇宙(micro-cosmos)이다. 그러나 신앙인의 입장에 서볼 때, 하느님을 떠나서 인간을 생각해 볼 수 없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이 무엇이며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데는 방법론적으로 두 가지 고찰 방법이 있다. 하나는 思辨哲學的 탐구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歷史實證的 탐구방법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방법을 종합해서 탐구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관념적인 이론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 실증적 탐구방법에 호소해야할 것이다.

성서는 하느님을 만난 인간들이 自我 이해를 묘사해 놓은 가장 훌륭한 역사 실증적 문헌이다.

신앙은 언제나 하느님 이해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 이해를 포함하고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신앙의 객관화인 성서를 따라 하느님 앞에선 인간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2. 蓮書 안에서의 人間

성서는 인간을 언제나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관찰하고 묘사한다. 성서의 인간학을 온전히 살펴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성서 신학사전을 들추어가며 그 大綱을 서술해 보고자 한다.

성서는 ‘인간’을 묘사할 때, 그가 생명의 혼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영혼’(soul) 이라 지칭하고, 사멸해 버릴 연약한 존재임을 말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육체’(flesh)라 지칭하며, 하느님을 향하여 개방되어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정신,(spirit)이라 지칭하고, 외부적 형태 갖춘 존재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몸‘(body)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표현들을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인간은 영혼 과 육체로 구성 되었다”고 이해하는 것과 똑같은 사고방식이라고 오해 하지 말아야 한다. 이 표현들은 인간의 부분적인 구성 원리를 지칭해 주는 것이 아니고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이해한’ 全人 的 인간(the whole man)을 묘사해 주고 있다.

성서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의 模相’이며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파트너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은 아주대단해서 하느님 친히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으로 태어나실 정도 이다.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인간은 크게 나누어볼 때 ‘죄인’과 ‘인간’으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前者는 ‘아담’으로 예시되고 後者는 ‘하느님의 종’으로 예시되었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다. 예수 그리스도도 역시 아담이시긴 하지만 그러나 그분은 (지상적 아담' 안에 나타난 ‘천상적 아담'이시다. 따라서 성서의 인간학은 ‘그리스도論'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3. 하느님의 模相대로 創造된 人間, 아담

'아담’이란 말은 본래 ‘인간나’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말마디는 어떤한 개인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고 인류 전체를 의미하고 있으며, 이른바 ‘法人體的 人格性’ (the corporate personality) 인 것이다. 아담은 세 가지 본질적 관계성을 타고 난다 : ① 하느님과의 관계, ② 세상과의 관계, ③ 동료 인간과의 관계.

(1) 성서가 말하는 인간의 첫째 특성은,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하느님과 끊임없는 본질적 관계를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창조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와 ‘진화’ 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훅으로부터 나왔지마는 그에 매여 있지는 않다. 그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불어넣어 주신 '생명의 숨결’에 매달려 있다. 인간은 살아있는 자유로운 존재이며 동시에 하느님께 매달려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이 하느님께 대하여 紐帶?係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 하는 인간 본성 을 완성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 본성의 존재 시작부터 타고난 특성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께 대한 유대관계를 도외시한 채 인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일 (nonsense) 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말씀’ 을 또한 덧붙여주신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 2, 16-17).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 즉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생명이신 하느님과의 유대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하느님의 계명의 말씀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제한조치가 아니라 생명과 자아완성의 필수적 요건이다.

아담에게 주신 하느님의 계명은, "인간에게는 인간이 하느님〔神"이 아니며 항상 그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매달려 있는 존재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신 것 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께 生死가 걸린 근본적 從屬隨係로 결합되어 있다. 인간이 이 유대관계를 무 시 하는 날, 그는 반드시 죽는다. 인간은 이 종속관계를 자유로운 순종의 행위로 써 표현(실천)해야 한다. 이 계명은 인간의 마음, 양심에 새겨져 있으며 하느님은 이 양심을 통하여 인간과 대화를 나누신다.

(2) 그러나 한편, 인간은 다른 나머지 창조물들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代理人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우주의 머리〔頂點〕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담 즉 인간을 善하고 아름다운 창조물들 가운데 놓으시고 그 모든 것을 지배하며 보호하도록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아담 으르 하여금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 게 하심으로써 그것들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신다(창세 2,19).

이것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자연만물은 결코 神格化되어서는 안되고, 그 반대로 지배되고 統御되어야 함을 가리키신다. 아담은 세상을 지배하며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노동의 의무가 하느님께 순종해야 할 의무를 代替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의무와 순종의 의무는 상호 관련된 것이며 兩者가 서로 넘나들게 되어 있다. 하느님께서 일곱째 날에 휴식하는 것은 인간 노동의 한계를 보여준다. 인간의 노동은 창조주의 노동을 반영 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3) 인간 상호간의 관계(즉 사회 관계). 결국 인간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육체를 타고난 인간본성 그'자체로 말미암아 사회적 존재 (social being)이다. 인간이 난성과 여성으로 존재하는 것은 힘(완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한 생명의 유 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그 생명의 원천을 제공해 주신 것이다. 男女의 관계는 서로 도와주는 상호협조의 관계다. 자아성취의 원친은 他ㅅ格과의 만남에 있으며 만남의 본질은 自我抛棄(自我讓 渡)에 있다· 이제 아담은 자아포기의 각 오불 가지고서 하와(여자인간)를 만나야 한다. 창세 2,25에 "아담 내의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들의 사회적 관계 안에는 아무런 어두움도 없이 모든 것이 떳떳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둘은 하느님과 평화롭게 지냈고 자기 동료와 또 다른 동물들과도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살고 있었다.

이와같이,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우주 창조계획의 극치였다. 창세 1,26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과 대화 할 수 있으며 父子之間의 관계처럼 하느님께 매달려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가 여느 부자지 간의 관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그 모상의 원형인 하느님으로부터 독립해서는 존재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다는 말의 의미이다.

인간은 두 가지 모양으로 '하느님의 모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첫 예로,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은 땅 을 가꾸어 보존하고 발전시켜 충만케 할 뿐만 아니라 둘째로 지 배자이신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은 우주를 통솔한다. 인간은 땅의 주인이며 지상에 하느 님의 현존을 드러내주는 영적(정신적)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창조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아담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곧 바로 실현되지는 않고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야 비로소 완전한 성를 보게 된다.

아담은 하느님의 계명 중의 하나를 의식적으로 또 고의적으로 거스려 불순명 하였다. 아담(인간)은 이제 죄인이 된 것이다. 성서는 이 반역 행위의 외적인 측면보다도 그 내면적 측면을 한충 더 강조해서 지적해 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빠져서 "선과 악을 아 시는 하느님과 같이 되기를”(창세 3,5) 원하였다. 원죄 행위에 대한 가장 일반 화된.해석에 따르면, 元祖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하느님을 대신하여 그분을 제 처놓고 선과 악을 결정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즉,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서가 아니라 자기들 자신을 판단기준으로 삼아세상 일올 결정하고, 자기들 스스로가 운명의 주인이며, 따라서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자기들의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종속관계의 유대를 끊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죄의 결과로써 아담이 제일먼저 발견한 것은 자기들이 나체라는 사실,즉 그때까지는 사회적 관계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떳떳했다는 상징이었던 이 사실이 부끄러움(분열)칙 요인이 된다는 점이었다. 창세 3,7에 이렇게 되어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 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 앞을 가리웠다."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죄로 말미암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의 마음에 비로소 '양심의 가책’이 생긴 것이다.

죄를 짓기 전에는 하느님과 함께 그토록 친밀한 관계를 누리던 아담과 하와 가 하느님께로부터 責前을 받기도 전에 벌써 "야훼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야훼 하느님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세 3,8). 그러니까 낙 원에서 추방당한 것은 결국 인간의 이러한 마음을 밝혀 주는 확인조치 에 불과 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자기들 편에서 하느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여 하느님을 기피한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반역 올 자행 하고 그로 말미암은 추방의 책벌까지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하느님의 경고 말씀(계명)이 거짓된 것이 아니고 참된 생명의 말씀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그 둘은 하느님을 떠났으므로 생명의 나무에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가 막혀버렸고(창세 3,22), 결국 그들에게는 죽음만 남아 있게 되었다.

죄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들끼리의 사이(사회 관계 )‘도 갈라놓는다. 죄를 범하자마자 아담은 하느님께서 반려자로 주신 여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 든다“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얼매를 따주기에 먹었을 뿐입니다”(창세 3, 12).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여자에 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너는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고 하신 책벌의 말씀도 역시 그 둘 사이의 관계가 불화상태에 있음을 반영해 주고 있다. 이러한 불화(분열)상태는 조금 더 나아가 카인 이 자기 동생 아벨을 살해하기까지 번지고(창세 4,8) 드디어 폭력과 弱肉强食 만이 지배하는 시대가 출현하게 된다 (창세 4,24).

아담의 죄 때문에 땅은 이제부터 저주 ■볼 받고,인간은 땅에서 저절로 나오는 곡식을 먹지 못할 것이며,이마에 땀을 홀려 노동을 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창세 3,17). 만물은, 바울로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제 구실을 못하게“ 타락했고(로마 8,20) 인간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게 되었다. 즉 인간은 자기 안에 하느님의 현존을 이루어주는 神律 (theo-nomy : 하느님의 다스림)을 거절함으로 해서 그룻된 自律 (autonomy)에 빠졌고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계명)은 인간의 마음에 他樓(heteronomy), 영원히 낯선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즉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세 3,19).

5. 새 人間 그리스도

그러나 한편 창세 3에 암시되어 있던 첫 번 구원의 약속(proto-evangelium) 말씀과 같·이 이사야書는 하느님의 뜻에 죽기까지 충실한 ‘하느님의 종’을 소개 한다(이사 42,1; 49,4-6; 53,13-14 참조).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의 고난받는 종‘에 대한 예언은 예수그리스도에게서 현실로 들어맞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하지 않으시고,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읍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 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읍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읍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끓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읍니다”(필립 2,6-11).

인간은 이제 ‘그리스도의 모상대로’ 새로이 재형성됨으로써 구원되어야한다. 아담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지만 실패하였고 참으로는 천상적 아담이신 그리스도만이 '하느님의 모상’ 이시다(2고린4,4; 히브1,3). 그리스도는 ‘제 2의 아담’ (1 고린 15,45)이 시 며 우리 가 새로이 본받아야 할 모상을 지니신 '천상적 아담’이시다(2고린 15,49). 그 분은 교회의 머리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 사회의 일치의 원리이시다(에폐 1,10). 아난(인간)은 그리스도의 모상을 지님으르써만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게 되었다(갈라 4,4).

이제, 인간이 순종하고 공경 하며 자신을 同化시켜야 할 대상은 직접적으로는 하느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로마 10’5-13). 우리가 해야 할 단 한가지 일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분을 '믿는 일‘이다(요한 6, 29). 왜냐하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는 단 한 분 뿐이신데 그분이 바로 인간 예수 그리스도“(1디모 2,5)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세상 안에 표현된 한에 있어서 하느님 자신이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전에 아담이 하느님과 동료인간과 세상 만물에 대하 며 가졌던 유대관계는 다시 화해되었다 (골로 1,18-20참조)· 만물은 이제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갈라 3,28). 그전에는 성별의 차이가 갈등과 분열의 근거가·되었고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분열이 사회적 및 인종적 분열로 확대되었었다. 그 터나 이제는 인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의 全ㅡ性올 재발견하면서부터 인간의 환경을 재정립하고 統御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결혼한 사람이든 동정을 지키는 사람이든 <1고린 7장),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인간들의 분열을 상징하던 언어의 혼란(바밸 탑) 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내려주 시는 성령의 언어로써 극복된다.

이제, '새 인간‘(the new man)이 탄생한 것이다. 새 인간은 누구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며 (에폐 2,15), 또한 주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영광스럽게 살아계시다는 것은 육체에 대한 靈의 승리가 계속된다는 것을 말한 다 (갈라 5,16-25; 로마 8, 5-13).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육체의 몸’(골로 1,22)을 취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되어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의 죽음에 참여 하여(로마 6,5), 죄에 대해서 죽음으로 써 (로마 8,10), 그 비참한 몸은 영광스러운 몸(필립 3,21), 즉·‘영적인 몸’(1고린 15,44)이 될 것이다. 그들의 지성적 능력도 역시 새롭게 변화하여(로마 I2,2; 에폐 4,23), 성령의 비추심을 받아 판단하는 법을 배워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로마 14,5), 성령의 체험을 현명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는 이렇게 ‘낡은 인간,(Λε old man) 의 ‘찌그러진 모상’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상을 따라 날마다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여러분은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버렸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와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골로 3,9-10). 이 구원은 인간들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에게도 효력을 미치게 되어 새로운 창조물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만물이 구원되어 죽음의 권세가 완전히 정복되면 이들은 자기의 왕권을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넘겨주실 것이다·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완전히 당신 뜻대로 다스리실 것이며 ‘모든 것 안에 모든 것‘(all in all)이 되실 것이다(1고린 15,2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