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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호 (제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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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聖職者들에게 禁止된 몇가지 운동과 단체에 관한 선언문
1982년 9월호 (제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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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호 (제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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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리 제 네 스
1982년 9월호 (제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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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의 生命에 관한 考察
1982년 9월호 (제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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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問의 救援者」에 나타난 司牧特性
1982년 9월호 (제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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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會共同體
1982년 9월호 (제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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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平信徒의 未來像
1982년 9월호 (제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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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실업 윤리
1982년 9월호 (제 83호)
이 글은 1982년 6월 13일 한국 가톨릭 실업인회 담당주교인 황민성 주교님께서 가톨릭 실업인들을 대상으...

예언과 정치
1982년 9월호 (제 83호)
1. 預言者의 傳承史的 位置 이스라엘을 그 기원에서부터 고찰해 보면 이스라엘의 構成員 자체가 中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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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1982년 9월호 (제 83호)

人間의 生命에 관한 考察

安 明 玉 (대건신학대학 교수, 신부)

V. ㅅ間 靈魂의 單一性

인간 영혼의 주입 시기 (생명의 기원)문제와 관련해서, 정자세포와 난자세포의 결합 순간을 영혼의 주입시기로 인정하려는 시도에 대해 반대異見이 있다는 것올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반대 이유는 정자세포와 난자세포의 결합 순간에 수정된 난세포로부터 이란성 태아 또는 이란성 태아 중 어느 태아가 생성될지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7)

이러한 異見의 배후에는 인간의 영혼은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신체라는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만일 이란성 태아가 생성된다면 그에 따른 새로운 영혼이 출현해야하거나 아니면 하느님에 의해 새 영혼이 창조되어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미리 태아의 분할을예견해서 태아 안에 사전에 여러 개의 영혼을 부여해 놓았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의 논증은 처음부터 영혼의 존재에 대한 능동적 가능태를 전제로 하고있지 않고, 완전하게 완성된 영혼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아니면 이러한 능동적 가능태는-완성된 영혼의 전단계이다-단일적이고, 불가분한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첫번째의 전제는 이미 가능태의 개념을 통해 어느 정도 해명한 바 있다. 그러므로 두 번째의 전제에 대해 간략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영혼의 單?性과 不可分性은 철학적 전통 안에서 정신적 행위의 분석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18) 이 정신적 행위가 아직 완성될 수 없는 곳에서는 영혼의 단일성과 불가분성이 증명된 것으로 전제 될 수 없다, 만일 영혼 또는 태아 안에 인정할 수 있는 정신적 원리가 자아의식 출현 이후의 경우처럼 단일성을 지니고 있다면, ‘행위는 존재에 따른다’는 公理에 따라 태아는 이미 초기 단계에 自在해야 한다. 즉 자아의식을 소유해야한다. 만일 이러한 사실을 정신적 행위의 결여를 이유로 해서, 그리고 적어도 태아의 초기 성장과정에 나타나는 육체적 토대가 정신적 행위에 대한 충분한 가능조건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근거로해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신적 원리의 단일성 또한 증명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이란성 태아의 형성은 오히려 정신적 원리의 절대적 불가분성에 대한 반대증명으로 평가될 수 있다. 만일 초기단계의 영혼을 육체의 형태로 이해한다면 수정된 난세포에 있어서의 기관의 內的 多元性은 정신적원리가 여기서도 아직도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행위의 중심성(핵심)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이란성 태아의 생성 가능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영혼의 주입시기를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로 잡는 시도와 견해는 영혼의 완전한 단일성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곤경에 부딪치고 만다.

 

VI. 倫理的 問題點

인간의 개체 발생사에 있어서 영혼의 주입시기(생명의 기원)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윤리적 문제점들은 여기서 상세하게 취급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인간 이하의 생명은 殺害가 허용되고, 이와 반대로 인간의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문제의 핵심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무 단순하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그 전통적인 해석에 있어서 두 가지 예를 인정하고 있다. 첫째 예외는 부당한 공격자를 살해하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이고 두 번째 예외는 死刑의 적용에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경우이다. 그러나 언급한 두 가지 예외규정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에 대한 상이한 논쟁들을 세부적으로 고찰하는 대신, 단순화시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부당한 공격자의 살해허용은 특히 戰爭倫理 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倫理神^의 견해에 의하면 19) 하나의 防御戰을 수행하고, 부당한 공직자를 살해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방어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려움을 야기시킨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전쟁의 원인은 어느 일방의 책임으로 전가시킬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쌍방의 어느 편도 완전히 정당한 방어전을 수행 한다고 볼 수 없게 된다. 거기에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個個 兵士는 상황의 사태를 책임있게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 병사에게 적병을 살해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특히 現代戰의 경우 대부분의 병사는 전투에 임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만일 이상의 사실을 고려한 다면, 비록 적군의 정치 지도자들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적군의 대부분은 무죄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쟁 중 적군을 살해해야 한다는 권리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존속해야 한다면, 이 권리는 개개 적군의 윤리적 책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생명 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근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군의 커다란 손실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적군을 살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거를 뒷받침하고 있는 형식적 원칙은 ‘善의 測定原則 (Giiter-abwagungs-prinzip)이다. 20)

살인금지 규정의 두 번째 예외는 이미 언급한 대로 사형의 적용 경우이다. 이 예외는 오늘날의 시대적 감각에서 볼 때 적군 살해 허용보다 더 복잡한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사형을 단지 범죄의 보상으로 정당화시킬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리적 책 임은 단지 외부로부터 부가되어지는 사형을 통해 보상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형제도의 정당성을 수장하는 주요논거는 사회의 관심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1) 이 경우 우리는 단지 범죄의 위협적인 결과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한 사회의 규범의식을 위한 이러한 제재조처의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형의 정당성에 대한 논거를 두고 시비를 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사형에 대한 전통적인 주장에서도 ‘선의 측정원칙’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형의 경우 생명 대 생명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신 범죄자의 생명이 다른 가치로 인해 희생되는 것 이다.

만일 '선의 측정원칙’을 인간의 생명에다 적용시킨다면, 인간의 생명은 아무런 절대적 가치를 소유하지 않게 된 다. 그렇지 아니할 경우 어떤 가치의 대가로 발생하는 생명의 파괴는 절대적으로 배제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물론 인간의 생명이 다른 가치처럼 측정되어 질 수 있는 일정한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권리와 관련된 특별히 중요한 역할은 인간 자신의 고유한 결단이다. 죽음에 이른 불치 병의 환자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래서 엄청난 치료비용의 부담으로 환자의 가족이 채무에 시달리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의사는 이 엄청난 비용이 요구되는 의료행위를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찬자가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가능한 한 모든 의료 행위를 요구한다면 적어도 어느 수준에 이르기 까지 의사는 환자의 요구를 따라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사형의 근거에 있어서도 대중의 의식이 사형을 정당하다고 여기는 지, 또는 여기지 않는지 중대한 구별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명의 권리에 대한 한계는 이렇게 분명하게 결정 지을 수 없는 일면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상 언급한 살인금지에 대한 두 가지 예외규정을 단순히 법률 조항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 태아는 부당한 공격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사형의 처벌을 받아야 할 만큼 重罪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신성불가침한 것 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태아의 직접적 살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될 수 없으나, 간접적인 살인은 중대한 이유가 있을 시 허용될 수 있다는 완화조건도 개별적인 경우에 따라서는 불합리한 걸과를 초래할 수 있다 22) 정상적인 상황으로부터 추상화시킨 이러한 근본법칙을 예외없이 문자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것은 무리이다.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 아무런 절대적 가치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인에게도 그리고 태아에게도 적용된다. 그래서 태아는 아직 자유와 의식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성인보다 더 적은 존엄성과 권리를 소유한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의 삶을 못다 살고서 어린 아이가 죽는 것을 매우 애통해 하고, 그 대신 더 오래 살아보아야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노인의 죽음은 쉽게 받아들인다. 그리므로 인간의 생명을 ‘當爲는存在에 따른다.’는원리에 따라 단순히 현재로부터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상의 언급을 바탕으로 해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충분한 전망을 소유한 태아와 얼마 살지 못한다는 확신한 판정을 받은 태아 사이에는 중대한 구별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태아는 아무런 인격적 미래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 즉 이 태아는 영혼이 완전하게 실현되고 의식과 자유를 소유하게 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 어머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임신 중절이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인간의 생명이 아무런 절대적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원칙적으로 태아의 생명에도 ‘선의 측정원칙’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적용은 그에 상응하는 중대한 이유를 바탕으로 해서 간접적인 태아의 살인을 허용했을 때 교회의 전통도 인정한 바 있다. 왜냐하면 한 가치의 파괴는 인간이 보호 하고자 하는 가치보다 더 작은 가치를 소유할 때 허용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 문제시되는 곳에서는 모든 종류의 경솔과 放逸은 회피되어야 한다. 만일 ‘선의 측정원칙'을 적용시킨다면 성장과정에 있는 인간 의 생명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윤리적 판단에 있어서 서로 각축을 일으키는 가치를 정확하게 규정지우는 데 사실상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의무의 갈등이 야기되고, 그 결과 '선의 측정원칙'의 적용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성장 과정에 있는 새로운 생명에 대해 가지는 태도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특히 폭력에 의한 임신의 경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경우 임신중절과 낙태의 정당성을 두고 논쟁을 벌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자신의 도움을 전적으로 거부해야 하는지, 아니면 여자의 책임과 결정을 援用하여,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게 된다. 이와 유사한 물음은 건강상 여자가 더 이상 임신을 통한 엄청난 고통을 감수할 수 없을 만큼 허약한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윤리적 판단의 본질은 단순히 몇몇 중요한 관점만을 보편화, 추상화시킬 것이 아니라 문제의 모든 요인들을 고려할 것을 요구 하고 있다, 그러므로 윤리신학은 개개의 경우 모은 요인에 대한 해명을 하고 난 후 비로소 학문적으로 완벽하게 논증된 진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VII. 給語

지금까지 인간의 생명기원 또는 영혼의 주입시기라는 문제를 고찰해 보았다, 인간생명의 기원에 대한 相異한 학문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재삼 강조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행복한 삶이 보장되지 못한 생명이라고 해 서 그리고 단지 인구증가를 억제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생명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은 지나친 이기주의의 결과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인은 미래에 희망을 두고 사는 자들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비복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부활의 희망과 하느님으로부 터의 영원한 부르심에 시선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어둡고 답답한 오늘이라는 현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信仰한다. 신앙이 단순히 안락한 생활의 부산물이나 정신적 사치품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한 자기투쟁, 자기포기, 자아희생의 결과라면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으로부터 탈피하여 믿음의 연대성에 가담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소망에 대한 믿음이 점점 약화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세속화의 불길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생명을 단지 ?在的이고 範崎的인 차원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유혹이 발생한다. 이럴 때일수록 신앙인들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근본진리에 입각한 생명의 그리스도교직 가치평가를 연역해 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註〕

17) 註 1)을 참조.

18) A. Willwoll, Psychologia metaphysica, Freiburg 1952, S. 226-233.

19) Κ. Hormaim, Lexikon tier Christlichen Moral, Innsbruck 1969, S. 702?704.

20) B. Schuller, Zur Problematik allgemeiii verbindlicher ethis'cher Grundsatze: Theologie und Philosophic 45 (1970), S. 13 18.

21) A. Thomas, ScG Q, 146, 5.

22) B. Haring, Das Gesetz Christi, Bd. ffl, Freiburg 1967, S.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