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勞動에 바탕한 連帶性
1982년 9월호 (제 83호)
모든 聖職者들에게 禁止된 몇가지 運動과 團體에 관한 宣言文   聖職者聖省   일부 主...

모든 聖職者들에게 禁止된 몇가지 운동과 단체에 관한 선언문
1982년 9월호 (제 83호)
일부 主?들이 최근 몇해 동안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두 가지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

주일의 말씀
1982년 9월호 (제 83호)
듣고 응답하고 실천하라   제1독서: 이사 35, 4-7a 제2독서: 야고 2,1-5 복 음: 마르 7,...

오 리 제 네 스
1982년 9월호 (제 83호)
I. 生涯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가장 유명한 오리제네스(ㅇrigenes †254)는 동시에 초대교회...

人間의 生命에 관한 考察
1982년 9월호 (제 83호)
V. ㅅ間 靈魂의 單一性 인간 영혼의 주입 시기 (생명의 기원)문제와 관련해서, 정자세포와 난자세포의 ...

「ㅅ問의 救援者」에 나타난 司牧特性
1982년 9월호 (제 83호)
사목자는 사목방향이 뚜렷하여야 한다. 가톨릭 사목자는 가톨릭적 사목방향을 가져야만 가톨릭의 사목자...

敎會共同體
1982년 9월호 (제 83호)
I. 우리의 反省   우리 敎會가 가장 결핍되어있는 것이 있다면 共?體意識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韓國 平信徒의 未來像
1982년 9월호 (제 83호)
우리가 흔히 平信徒라고 번역하는 교회 용어 laikos(平民)는 laos(백성)에서 파생된 말이다. 70인역 구약...

가톨릭의 실업 윤리
1982년 9월호 (제 83호)
이 글은 1982년 6월 13일 한국 가톨릭 실업인회 담당주교인 황민성 주교님께서 가톨릭 실업인들을 대상으...

예언과 정치
1982년 9월호 (제 83호)
1. 預言者의 傳承史的 位置 이스라엘을 그 기원에서부터 고찰해 보면 이스라엘의 構成員 자체가 中央...

   1      


논단 - 敎父들의 思想 1982년 9월호 (제 83호)

오 리 제 네 스

咸 世 雄 (서울 漢江本堂 神父)

I. 生涯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가장 유명한 오리제네스(ㅇrigenes †254)는 동시에 초대교회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백과사전과 같은 지식의 소유자로 새로운 思考, 創造的이며 天才的 性品 의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리제네스에 대하여 비교적 풍부한 자료를 후대 교부들로부터 전해 듣고 있다.

우선 ?會史家인 에우세비우스는 오리제네스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갖고「교회사」6장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1백편이 넘는 오리제네스의 서간집이 유실되어 크나큰 학문적, 사상적 손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에우세비우스는 그 나름대로 오리제네스에 관한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에우세비우스의 스승인 Panphilus(†310)는 그의 저서「오리제네스의 옹호」(Apologia pro Origene)에서 오리제네스의 반대자들을 반박하면서 오리제네스를 변호하고 있다. 5권으로 된 이 작품은 후에 에우세비우스가 첨부하여 6권으로 이루어졌지만 유실되고 Ruphinus(†410)에 의한 제1권의 라틴어 譯本만이 전해질 뿐이다. 그리고 오리제네스의 제자인 奇?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Taumaturgus)에 의한「송별사」가 전해진다. 이 작품은 오리제네스의 생애뿐 아니라 그의 교육방법에 대하여서도 상세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 그 외에도 예로니무스와 Photius(†895)가 각각 오리제네스에 대하여 언급한 사실이 있다.

이상의 모든 문헌을 종합해 볼 때 오리제네스는 185년 알렉산드리아의 크리스찬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부친은 Leonides로 202년 Septimus Severus 황제 때 순교하였다. 오리제네스는 또한 여러 형제 중 장남이었다. 따라서 오리제네스는 아버지 대신 집안을 돌보며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오리제네스는 순교에 대한 열정에 불타 있었다. 이에 두려운 나머지 그의 어머니는 오리제네스가 밖에 나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옷을 감추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리제네스도 부친의 뒤를 따라 순교의 길을 틀림없이 걸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순교한 뒤 오리제네스 가정의 재산은 차압되어 오리제네스는 불가불 생계유지를 위하여 교사직을 맡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실 당시 박해로 인해 끌레멘스가 피신 중에 있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지도자가 없어 붕괴 직전에 있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Demetrius 는 비록 18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학식과 인격 그리고 성덕에 있어서 모두에게 모범이 된 오리제네스를 이 학파의 長으로 임명하여 끌레멘 스의 후계자가 되게 하였다. 이에 오리제네스는 학자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이 도시를 신학의 요람으로 꽃피게 하였던 것이다. 에우세비우스는「교회사」VI,3,7에서 오리제네스는 言行이 一致된 모범적 ㅅ物이라 칭송하며,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제자가 그를 뒤따랐고,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고 술회하며 오리제네스는 修德的인 관점에서도 뛰어난 사람으로 강철 감같(adamantms) 성품과 뚜렷한 개성의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어 에우세비우스는 오리제네스를 가리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산 實踐의 사람으로, 희생과 극기를 통하여 잠도 덜 자며 혹시 잘 때라도 침대가 아닌 맨바닥 에서, 그리고 단벌 옷을 지니고, 맨발로 지낸 攝理의 사람으로, 내일 걱정을 하지 않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위탁한 삶을 살아간 사람이라고 특징지어 술회하고 있다.

또한 오리제네스는 박해 중인 이 무렵 마태오 19, 12의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 도 있다”라는 말씀을 너무 字意的 으로 해석하여 자신을 去勢하는 愚를 범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의 생애를 두 時期로 구분하여 기술할 수 있다.

제1시기는 203~231년 사이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長으로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던 때이다. 오리제네스가 가르친 내용은 수사학, 물리학, 수학,지리학, 천문학, 그레시아 철학, 신학 등 모든 분야에 걸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키 힘겨워 오리제네스는 초급반을 He-raclas에게 맡기고 자신은 상급반을 맡아 주로 철학과 신학을 전담하게 되었다, 오리제네스는 또한 과감하게 新플라톤 학파의 창시자인 Ammonius Saccas의 강의도 들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학문적 종합과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기도 했다. 사실 Ammonius Saccas에게서 오리제네스는 대단히 큰 영향을 받았다.

오리제네스는 212년경 로마에 여행하여 그곳의 주교 Zephininus도 만나고 Hippdytus도 상면하여 신학적인 교류를 갖게 되었다. 215년경에는 아라비아에 와서 로마의 집정관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이어 안띠오키아에 와서 로마 황제 Alexander Severus 의 모친인 율리아 망메아 (Julia Mammea)의 초청을 받아 그를 가르치기도했다. 그후 Caracalla 황제(211-217년 재위)는 자기 동생, Geta의 살해에 분노하여 그 응징으로 알렉산드리아를 섬멸하게 되자 오리제네스는 216년경 이 곳을 떠나 팔레스틴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에 체사래아, 예루살렘 등 팔레스틴 지역의 주교들은 오리제네스 에게 성서학 강의 및 강론을 부탁 하여 오리제네스는 그의 교수직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데메뜨리우스 (Demetrius)는 이에 반발하여 평신도가 주교들 앞에서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오리제네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에게 순명하는 뜻으로 고향에 되돌아왔다. 15년 뒤에 오리제네스는 데메뜨리우스의 명을 받아 그레시아에 가던 중 체사레아를 거칠 때 그의 옛 친구인 예루살렘의 주교 Alexander와 체사래아의 주교 Theoctistus는 오리제네스에게 사제품을 수여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데메뜨리우스는 오리제네스의 自?的 去勢 (mutilatio voluntaria)는 사제가 될 수없는 결격사유라해서 무효라 주장하였고 231년 Synodus를 통해 오리제네스를 알렉산드리아 교회로부터 파문하였다. 그러나 에우세비우스는 데메뜨리우스의 이러한 결정을 인간적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해석하고 있다. 232년 데메뜨리우스가 죽은 뒤 主?位를 계승한 오리제네스의 옛 보조자인 헤라끌라스도 같은 이유로 알렉산드리아에 돌아온 오리제네스의 파문을 확인하였다. 이와같이 오리제네스는 인간적 아픔과 쓰라림을 당해야만 했다.

이제 오리제네스는 그의 생애 제 2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오리제네스는 고향을 떠나 체사레아에 와서 그곳 주교의 배려로 새로이 신학연구와 모임을 통해 제자를 양성하게 된다. 이곳에서 오리제네스는 약 20년간 봉사하게 된다. 바로 여기서 기적의 그레고리우스가 배출되 었고 그가 남긴「송별사」(Discursus)를 통해서 우리는 오리제네스의 인품과 교육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체사레아에서의 교육방법도 알렉산드리아의 그것과 동일한 것임을 우리는 또한 알 수 있다. 특히 윤리부문에서는 구체적 생활과 밀접한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여 다루 었고 하느님의 존재와 섭리를 부인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철학자들의 저서도 읽을 수 있도록 권장하였다라고 그레고리우스는 술회하고 있다. 그 뒤 데치우스(Decius, 249-251년 재위) 황제 박해 때 오리제네스는 옥고를 치루며 갖은 고문과 형벌을 받았다. 그리고 출옥 후 후유증으로 고통의 악순환 가운데 253년경에 띠로에서 사망하였다.

오리제네스는 확실히 문제의 인물이다. 파란곡절이 많던 그와 생애와 똑같이 그가 죽은 뒤에도 그에 대한 그리고 그의 사상에 대하여 분쟁은 계속되었다. 그는 ?,反 양론의 엇갈린 대상이 되었다. 물론 그가 신학적으로 약간의 오류를 범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는 늘 교회에 충실하고 정통적인 그리스도교인이기를 원했고,또 그대로 실천했다. 오리제네스는 자신의 저서 「원리론」(Ite Principiis) 서론에서 "나는 오직 교회 즉 사도적 전승에 충실하여 여기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자신의 신앙을 피력하고 있다. 그는 사실 늘 이 원칙에 충실했다. 그리고 온 삶 을 다하여 순교자적인 자세로 이 원칙을 고수했던 것이다.

오리제네스와 끌레멘스를 비교하면 끌레멘스는 철학에 대하여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길잡이’ (conduc-. tor ad Christum) 라고 명백히 표현하고 있는 반면 오리제네스는 오로 지 성서만을 강조하면서 철학은 다만 신앙을 위한 보조적 기능내지 준비시키는 역할만을 할 뿐이라고 낮게 평가하고 있다. 기적의 그레고리우스 (Gregorius Taumaturgus)에 의하면 오리제네스는 모든 학문은 신앙을 위한 준비일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 하고 있다. 즉 기하학, 음악, 문법 수사학, 천문학 등이 결국 철학와 시녀인 것처럼, 철학도 결국 성사 또는 크리스찬 사상의 시녀 라고 못 박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오리제네스는 끌레멘스보다 훨씬 더 성서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오리제네스도 플라톤의 짙은 철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그의 聖書註釋 방법에 있어서 본의 아니게 몇 가지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교의상의 오류를 범하게도 되는 것이다. 영혼의 先在思想이 바로 그 구체적인 증거이다. 그리고 지나친 寓意的 解釋의 일방적 주장으로 오리제네스는 구약을 배척하고 동시에 찬미하는 모순적 결과도 가져왔다. 따라서 이것은 성서의 주관적 해석을 강조하게 되는 오류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오리제 네스는 문제의 인물이 되며 그에 대한 찬반양론은 6세기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오리제네스의 반대론자들은 필립비의 메토디우스, 알렉산드리아의 Petrus, 찬성론자는 체 사레아의 Pan-philus이다. 400년경에는 논쟁이 격화되어 Salamina의 Epiphanius와 알렉산드리아의 Theophilus 둥이 오리제네스의 주장을 비판하였으며 이어 그를 斷罪하고, 아나스타시우스 교황에 의하여, 그리고 유스띠니아 누스 황제에 의해 553년에 오리제네스의 15命題가 단죄된 후 교황 Vigilius(537-555년 재위)와 모든 동방주교들도 이를 확인 조처했다.

 

II. 著 書

 

오리제네스에 대한 반대 격론으로 그의 많은 저서들이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남아있는 작품도 대부분 라틴어 역본으로 전해질 뿐 이다. Panphilus에 의해 작성되고, Eusebius에 의해 첨부된 저서 목록도 사실상 유실되었고, 예로니무스의 증언에 따르면 오리제네스의 작품이 2천권으로 추산된다. 한편 Epiphanius에 의하면 6천권으로 추정하며 이중 8백권 정도만이 우리가 제목올 알 수 있다고 예로니무스가 증언하고 있다. 이와같이 방대한 작품을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많은 협조자가 있었고 또 口述한 내용을 제자들이 速記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추정한다. 발렌띠니아니즘에서 회개한 Ambro-sius의 많은 도움을 받은 것도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Eusebius,「ff.E.」W, 6, 23,1-2 참조).

1. 聖書 批判本(Textus criticus Hexapla)

오리제네스는 주로 성서주석에만 전념했다.「Hexapla」는 바로 구약에 대한 첫 번째의 비판본이다. 이것은 오리제네스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방대한 力作이 다. ‘Hexapla’ 라 불리우는 이유는 거기에 여섯 가지의 역본이 함께 수록되어 있기 때 문이다. 오리제네스는 다음의 순서로 이 「Hexapla」를 정리하고 있다. (1) 히브리語 原本(textus haebrai-cus) (2) 히브리語 原本을 그레시아語로 表記(올바른 發音올 위해) (3) Aquila (하드리아누스 <117- 138년〉황제 때 유대교에서 개종한 ㅅ物)의 그레시아 번역본 (4) Sym-machus의 그레시아 역본(Septimus Severus 황제 때의 히브리ㅅ)· (5) 70인(LⅩⅩ) 역본 (6) Theodotius의 그레시아 개역본(180년경) 다섯 번째 나열된 70인 역본에는 다음과 같은 부호가 표시되어 있는데 표는 첨부된 것을 가르키며 ※표는 누락된 것을 가르킨다. 뒷부분은 흔히 Theodotius에 의해 보충된 부분이 다. 이 밖에 오리제네스는 4개 의 그레시아 역본 즉 Aquila 역본, Sym-machus 역본,LXX 역본,Theodotius 역본 등을 수록한 「Tetrafila」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寫本으로 전달되다가 너무 큰 작품이기에 完本은 전해지지 않고 부분역본들이 전해질 뿐이다. 이 작품은 성서 연구를 위한 첫 체계적 작품이며 비판본이라는 점에서 크게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2. 聖書 註釋 作品

(Opera exegetica)

오리제네스는 성서를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킨 첫 학자이다. 그는 신구약 모든 분야에 걸쳐 그 나름대로의 주석을 세 가지 모양으로 종합 설명하고 있다. 즉 Scholia, Ho-melia, Commentarium이 바로 그것이다.

(1) Scholia (발췌해석, σχ?λια)

Scholia는 몇몇 성서 귀절, 특히 문법적으로 난해한 귀절에 대한 설명으로 예로니무스와 루피누스의 증언에 따르면 오리제네스가 출애굽기, 레위기,·이사야서, 시편 1-15장,집회서, 요한복음 그리고 민수기 등에 대하여 몇몇 특별 주석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중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몇 개의 단편만이 Basilius와 나지안즈의 그레 고리우스에 의하여 전해질 뿐이다.

(2) Homelia (講論, ομιλ?αΓ, Trac-tatus)

Homelia는 전례모임 즉 공동체 모 임에서 읽은 성서를 오리제네스가 설명한 一種의 강론내용을 뜻한다. 歷史家 Socrates 에 의하면 오리제네스는 매 수요일과 금요일에 강론한 것 으로 되어있고, 오리제네스의 傳作家로 알려진 Panphilus에 의하면 거의 매일 오리제네스는 성서를 중심으로 강론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오리제네스는 성서 전반에 걸쳐 강론을 행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현재 전해지는 것은 예레미아서 외 20편, 사무엘 전서 28,3-25(엔도르의 무당)에 대한 그레시아語 강론만이 남아있고 루가복음 제35강론 부문 중 얼마와 마태오복음의 25편 중 단편 등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루피누스에 의해 전해지는'·역본은 창세기 16편, 출애굽기 13편, 레위기 16편, 민수기 28편, 여호수아기 25편, 판관기 9 편, 시편 9편 등이다. 예로니무스는 아가 2편, 이사야9편, 에제키엘 14편, 루가 39편 등을 라틴어로 전해주고 있고 뽀아띠예의 힐라리우스는 욥서 제25편의 부분 역을 전해주 고 있다. 그리고 익명의 작가에 의해 사무엘 전·후서, 예레미아서,열왕기 상·하권, 고린토 전서, 히브리 서간 등이 라틴어 역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이 모든 부분 역을 종합하고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학문적 손실이 크다. 474편의 강론 중 20편만이 원어인 그레시아어로 남아 있고 388편은 라틴어역으로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현존하는 작품을 통해서도 우리는 오리제네스의 기본사상을 파악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신앙인들을 위한 영성적 목적의 강론 이었기에 성서 주석학에서 보다 오 히려 영성 신학사에서 더 큰 의미와 관심을 갖게 되며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구체적 삶 속에서 이해되고 전달된 말씀이기에 보다 설득력있고 생동감을 주는 내용이다.

또한 1941년 Tura에서 발견된 작품「Heraclides와의 토론」에는 빠스카에 대한 그 강론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발견된 이 작품은 글을 해독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훼손되어 있지만 Nautin이 지적한 대로 몇 가지 홍미있는 자료들을 얻어낼 수 있다. Pasqua 에 대하여 이레네우스, 떼르둘리야누스, 히뽈리뚜스 등도 동의 한 π?σχειν ~ suffrire =고통받다, 수난하다란 뜻으로 이해 설명한 어원적 관계를 오리제네스는 부인하며 그 본래의 참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오리제네스에 의하면 ‘Pas-qua’는 히브리어의 Passer에서 연유된 것으로 그레시아어로는 δι?βαση 즉 轉移(transitus)를 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Pasqua의 참뜻은 어둠과 그늘에서부터 빛과 光明에로 향한 크리스찬들의 변화된 생활, 그 여정을 뜻하는 것이다.

(3) Commentarium (성서 주석 , τ?μοι)

강론은 주로 신자들의 영성적 목적을 위하여 기술되었고 성서주석은 보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철학, 역사 등 그 본뜻을 밝히기 위한 신학적 작품이다. 오리제네스는 무엇보다도 우선 그 신비적 의미 (sensus mysticus)를 찾고 있다. 그는 우의적 방법으로 자의적 해석 방법을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오류가 내포되기도 했지만 어쨌든지 오리제네스는 그 누구보다도 깊은 성서 의 내면적, 영신적 의미를 추구하여 우리에게 많은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이 주석 역시 우리에게는 오직 몇몇 斷片으로만 전해질 뿐 完本으로는 하나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① 마태오복음 주석: 224년 체사레아에서 그레시아어로 집필된 이 작품은 25권 중 8권만이 전해질 뿐이다. 즉 제10권~17권이 남아 있는데 마태오 13,36-22,33까지를 다루고 있다. 익명의 라틴어 역본 은 마태오 16,3-27,65까지를 수록하고 있다.

② 요한복음 주석 :32권 중 역시 8권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자기의 친구 Ambrosius에게 헌사된 것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4권, 동방으로 여행 중 1권, 나머지는 체사레아에서 집필한 것으로 추정되는 데 오리제네스의 영성 및 내면생활을 이해하는 데 큰 자료와 도움을 주는 작품이다.

② 로마서간 주석 : 15권으로 구성된 이 작품도 다만 단편으로 전해질 뿐 유실되어 완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Athos山에서 발견된 Ruphinus 역본이 전해지고 있는 데 이것도 10권만 수록하고 있을 뿐 완본은 아니 다. 이 작품은 마태오 복음 주석보다 먼저 쓰여진 것으로 224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④ 아가 주석: 여러 편의 구약성서 주석 중 아가 1~4권의 내용만 이 Ruphinus에 의한 라틴어 역본으로 전해진다. 또한 아가의 강본을 번역한 예로니무스는 오리제네스의 아가주석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로니무스는 아가강론을 번역함에 있어서 솔로몬을 그리스도로, 新婦를 교회의 표상으로 이해한 반면 Ruphinus는 주석에서 신부를 크리스찬 각 個ㅅ 또는 각 영혼으로 이해 설명하고 있다.

⑤ 유실된 주석 작품: 오리제네스는 그밖에도 창세기 13권, 41편의 시편에 대한 46권, 이사야36권, 애가 5권, 에제키엘 21권, 소예언서 26권,루가 15권, 갈라디아서 5권, 에페소서 3권,필립비서, 골로사이서,데살로니카서, 히브리서, 디도서,필레몬서 등에 대하여 각각 주석을 남긴 것으로 에우세비우스가 증언하고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대부분 유실되었고 극히 적은 부분이 단편 등으로 전해질 뿐 이다.

3. 호교작품 (Opera apologetica)

오리제네스의 가장 유명한 호교작품은 「첼수스 반박」(καια κ?λσου; Contra Celsum) 이다. 이 작품은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작품은178년 'Celsus가 크리스찬들을 비방하여 쓴, 反그리스도교적 작품인 이른바 「眞言」(Discursus)에 대하여 이를 반박하여 쓴 호교적 작품이다. 사실 첼수스의 원 작품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오리제네스의 이 작품을 통해서 챌수스의 사상과 주장을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챌수스는 자신의 지식을 동원하여 크리스찬들이 스스로 오류에 있음을 인정하도록 비교적 수가 높은 글을 쓰고 있다. 챌수스는 당 시 교회를 비방하는 대중적 감정의 언어를 피하여 논리적 표현을 꾀하고 있다. 그는 성서뿐 아니라 기타 그레시아 철학에도 박학한 인물이다. 유다적 관점에서는 예수가 메시아가 아님을 온 힘을 다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로마인의 관점에서는 역시 또 유다사상 즉 구약의 모 순과 비합리성 및 비현실성을 비판 하고 있다. 특히 복음과 기적의 예수,부활의 예수를 비웃으며 그것은 헛된 망상, 마술사 등의 이야기라고 일축해 버린다. 사도들은 사실 예수라는 우상을 만든 장본인들이라 지적하며, 그리스도교를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지 닌 윤리도덕적 가르침과 Logos의 가치에는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어쨌든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 는 로마제국을 분열시키는 위험요소로 간주하며 오로지 로마 황제와 그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봉사하고 일치하는 것만이 의미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가 세상 을 구원하고 사탄을 이겼다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악하고 죄가 존재하지 않느냐는 현상론을 열거하며 세상의 변혁은 종교로써가 아니라 로마제국의 튼튼한 정치, 권력제도를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챌수스의 이른바「眞言」은 크리스찬들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후대 교부들이 별로 언급치 않았고 오리제네스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오리제네스는 육십이 넘은 말년에 차분한 맘으로 이 챌수스의 작품을 하나씩 하나씩 반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리제네스의 글에는 별 박력은 없지만 그 대신 자기 삶의 종합을 꾀하며 理性과 信仰의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쓴 종교적 확신의 작품인 것이다.

오리제네스는 인간이 지닌 영직 가치를 강조하면서 성신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도 교회도 모두 위대하고 거룩하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은 성신의 능력을 받은 그리스도 신자 개개인이 위대할 수 있고 이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오로지 신앙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또한 오리제네스와 챌수스의 국가관을 비교분석할 수 있다. 챌수스는 일종의 폐쇄적인 국수수의자로 현실론자이다. 그에게 있어서 국가는 모든 가치규범의 척도로 나타난다. 그는 로마 황제와 그에 의한 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오리제네스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법, 영원한 神定法을 강조하면서 로마의 法도 이 神法에 위배되지 않는 한 가치가 있을 뿐, 하느님만이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리제네스는 보편적 인간, 우주적 인간이다. 그는 챌수스가 플라톤의 짙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지적, 반박하면서 국가는 문화의 문명의 확산 그 외의 아무것도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이 작품은 또한 종교사에 있어서도 귀중한 문헌자료가 된다. 이것은 이교 사상과 크리스찬사상의 투쟁을 한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거울과도 같다. 이것은 또한 초대 교회의 작품이 지만 미래에 내도할 모든 인간 현실 문제를 함축하여 표출시킨 방대한 작품으로 평가되 기 도 한다. 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나 에우세비우스는 이 작품을 일컬어 모든 오류에 대한 해답이라고까지 강조했다.

4. 敎義的 作品(ㅇpera dogmatica)

(1) 원리론 (De Principiis)

원리론 역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신학의 교과서와 같은 체계적인 첫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바실리우스의 Philocalia와 유스띠니아누스 황제의 두 작품을 통하여 그레시아語 단편으로만 전해질 뿐 完本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다만 루피누스가 이 작품 속에 내포된 오류나 문제된 내용을 삭제하여 자기 본위대로 의역한 라틴어 역본만이 완본으로 전해질 뿐이다.

「원리론」은 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느님, 인간, 자유, 계시 등을 주제로 하여 이론을 전개 시키고 있다. 제목 자체가 암시해 주듯이 이 작품은 일반 원리 특히 그리스도교의 기본원리를 서술하고 있다. 오리제네스는 이 작품의 서론에서 모든 종교적 진리의 원천과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의 후계자들인 사도들의 가르침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성서와 성전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교회 가르침의 원천이며 신앙의 규범임을 반복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모든 문제에 대하여 결정적 해답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사고를 통해 미해결된 주제들 예컨대 인간영혼,천사, 사탄 등에 대하여 더 연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학의 임무이며 과제라고 오리제네스는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리제 네스는 전승 (traditio)과 발전 (pro-gressus) 또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 요소가 교회와 신학 안에 병존한다 는 사실을 깨닫고 그 나름대로 실증신학과 이론신학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학도 역시 자연의 발전과 생명체의 성장이라는 변화과정을 거쳐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4권으로 구성된「원리론」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神論(De Deo) ② 우주론(Cosmo-logia) ③ 인간학(Anthropologia) ④ 목적론 (Theleologia)

1권-제1권 神論에서는 초자연계를 주로 논하며 聖三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성부는 볼 수 없는 비물체적 존재로, 성자는 말씀과 지혜로, 성신은 성화자의 주재자로 설명하면서,이어 하급 신들을 언급 하고 있다. 특히 천사의 기원과 그 타락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2권 "우주론(De Mundo)에서는 물질계와 인간 창조를 언급하면서 구약과 신약에 언급된 하느님을 동일선상에 이해하고 있으며 특히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흥미있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어 아담의 죄, 성자에 의한 구속 및 부활, 공심판 등을 언급하면서 종말론을 펼치고 있다.

3권 인간학 부문이라 할 수 있는 여기서 오리제네스는 주로 인간의 자유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육이 투쟁하고 있지만 결국 선이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우리 주변에 유혹이 있으나 천사의 도움과 자유의지의 결단으로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음을 천명하고있다. 3권은 마치 윤 리신학의 초벌로도 생각이 된다.

4권-앞의 내용을 종합하면서 성서가 지닌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성서는 신앙의 원천이라는 점 그리고 성서해석에 대한 세 가지 방법을 언급하고 있다. 즉 인간이 육체 (corpus), 정신 (anima), 영신 (spiritus) 으로 구성 되었 듯이 성서 말씀에도 그 자연적 의미, 각 개인과 관계된 의미, 그리고 완덕에 불리운 사람들에게 주는 영성적 의미가 각기 내포돼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오리제네스는 사실 플라톤의 짙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그의 작품「원리론」도 신학적 많은 오류와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성과 숙고를 통한 오리제네스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오리제네스가 그리스도교 신학과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애쓴 그 정성과 선의 때문에 이것은 언제나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 거기에는 표현의 미숙, 잦은 반복, 조화를 이루지 못한 개인적인 약점이 있으나, 신학의 첫 종합 시도라는 관점에서 너그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2) 헤라끌리데스와의 討論

(Disputatio cum Heraclide)

1941년 카이로 근처 Tura에서 발견된 빠삐루스本에 이 작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Heraclides와의 토론」은 학문적인 작품이라기 보다는 대중교육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종합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세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성삼에 관한 논쟁, 영혼과 피 의 관계 그리고 영혼의 불사성에 관해서이다.

우선 성삼론에 있어서 Heraclides는 一種외 獨主論 (Monarchiatiismus)者로서 樣相論者 (Modalista) 이다. 따라서 성삼의 구별보다는 그 一致性, 나누일 수 없는 절대성을 강조 하고 있다. 반면 오리제네스는 일종의 종속론 (Subordinationismus)者로서 성부,성자의 구별에 초점을 맞추고 있 다. 사실 오리제네스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두 분의 하느님’ {δ?ο θεο?-, duo Dei)이 란 표현을 사용하며 이것을 강조하였는데 그 이유는 독주론자들의 주장을 반대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Heraclides 등 많온 이들은 Duo Dei란 표현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하여 오리제네스는 Duo Dei 표현의 가능성 및 그 조화된 의미를 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세 가지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① 결혼의 예를 들어 아담과 에와 또는 부부가 육체적 결합을 통하여 하나일 수 있다는 사실. ② 그리스도 신비체의 관점에서 주님과 이루는 영적 일치를 생각할 수 있다는 점 (1고린 6,17). ③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성부와 성자는 곧 하나이다(요한 10, 30)라는 표현에 근거를 둔 神的 一致를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히브리 사고방식의 하나라는 절대적 주장에 오리제네스는 그레시아적 철학을 기반으로 생동감이 있는 다양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오리제네스도 성부, 성자의 관계에서 '사고와 의지’의 一致性은 늘 강조 하고 있다. 이에 Heraclides와 오리제네스는 대화와 논쟁을 통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표현의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즉, 성부, 성자의 관계는 δ?ο θεο? δ?ναμη μ?α{?ηο Dei potentia una)라는것이다. 두분의 하느님 그러나 능력과 힘 또는 삶이 하나라는 뜻이다. 이 도식은 후에 나온 三位一體 교리의 설명에 있어서 位는 여럿이나 본체 (substantia)는 하나이다 라는 定式의 모형이 된 것이다.

다음은 영혼과 피〔血〕와의 관계 이다. 이 관계에 대하여 오리제네스는 사람의 피를 외적 물리적인 피 외·내적 인간의 피로 구분 설명하고 있다. 내적 인간의 피, 그것이 바로 영혼이 라는 것 이 다. 의인은 죽더라도 이 내적 인간이 즉 영혼이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 깃든다고 설명하고 있다.

끝으로 오리제네스는 영혼의 不死不滅性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오리제네스는 모호하게 영혼은 사멸하는 동시에 불사적 존재라 표현하고 있다. 그는 우선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고찰한다. ① 죄에 대해 죽은 그는(로마 6,2) 하느님 안에 .영원히 살 수 있다. ② 그리고 죄지은 장본인은 죽는다(에제 18, 4). ③ 그리고 일반적인 표현으로 자연적 죽음이 있다. 영혼은 이 자연적 죽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앞의 두 부분, 즉 하느님과 관계된 설명에서 우리는 영혼의 삶과 죽음을 언급할 뿐이다.

그밖에 「부활론」(De , Resurrec-tione)과「양탄자」(Sirowote) 등의 작품이 에우세비우스 둥 후대 교부들을 통해서 단편만으로 전해질 뿐이다.

 

5. 實踐倫理作品(ㅇperapractica)

(1) 기도론 [περ? ε?χηξ;De oratione)

233년경 오리제네스는 암브로시우스와 파씨아나의 청을 받고 이 「기도론」을 저술하였다. 33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이 세분할 수 있다:

서론(1-2장)

제1부(3-17장): 기도에 대한 일반론.

제2부(18-31장):「주의 기도」에 대한 해설.

부록(32-33장): 기도의 자세, 장소, 종류 등을 언급, 그리고 곧 더 완전한 작품의 저술을 약속하고 있다.

「기도론」은 크리스찬 역사상 기도에 관한 최초의 작품으로 큰 가치를 지니며 영성신학에 있어서 많은 자료를 제공해 준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오리제네스의 깊은 영성 및 개인 신심을 엿볼 수 있으며 하느님께 위탁된 섭리의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기도론」의 저술목적은 하느님의 은총을 강조함에 있다. 기도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성신의 도움이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기도의 어원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기도는 간청만이 아닌, 감사의 정을 내포하고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기도의목적은 하느님과의 일치, 그분과의 대화에 있다고 설명하면서 오리제네스는 유혹과 그밖에 자기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서 기도가 유익하고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리제네스는 디모테오 전서2,1을 주석하면서 기도의 네 가지 특성을 상기하고 있다: 간구, 흠숭, 간칭, 감사. 그런데 오리제네스는 종족론에 빠진 나머지 성부만을 강조하여 흠숭의 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신학적 이론 정립의 미숙에서 연유된 듯 하다.

'주위 기도’를 주석하면서 오리제네스는 구약과 비교,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 새로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주기도는 신약의 특징이며 동시에 특권을 주는 내용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바로 이「주의 기도」의 연장 또는 연속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일용할 양식은 바로 생명의 말씀, 그리스도 자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천상적 가치를 추구하 도록 역설하고 있다.

끝 부문에서 오리제네스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여 무릎을 끓고 기도바칠 것을 당부하면서 아울러 내적인 준비로써 마음의 투쟁이 따르는 정화작업, 이웃과의 화해,분심을 없애려는 노력 등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결국 하느님은 우리가 노력하는 그만큼 우리에게 사랑과 은총을 주신다. 그러나 오리제네스는 은총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오리제네스의 이러한 가르침은 후에 에집트 등 동방 수도회의 영성에 큰 영향을 끼쳐주었다.

(2) 순교에 대한 권고(Exhortatio ad Martyrium)

이 작품은 Panphilus, Eusebius, Hieronymus 등 후대 교부들이 함께 언급하고 있다. 235년경 Maximinus 박해 때,오리제네스가 암브로시우스와 Prototectus 둥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이 작품을 기술했다. 사실 오리제네스는 순교한 그의 부친을 따라 항상 순교에 대한 정열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을 에우세비우스의 증언을 통해 밝혀 알 수 있다.

50장으로 된 이 작품은 권고체로 거짓 예언자들의 꾀임을 지적하며 잠시, 현세의 시련을 이기고 극복해야 할 신앙인의 삶을 묘사해 주 고 있다.

제1부(1-5장)는 강론체로 시작되면서 심각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 굳센 믿음으로 흔들리지 말 것을 강조하고,오리제네스는 이어 순교란 모든 신자의 의무란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굳센 믿음으로 주님을 증거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상면할 수 있고 영생의 기쁨 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제2부 (6-10장)에서 오리제네스는 배교와 우상숭배를 단호히 거부하도록 강조하며 우상숭배와 배교는 가장 큰 잘못이란 점을 설명하고 있다.

제3부(11-21장)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순교를 강조, 권고하고 있다. 순교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길이며, 이 지상에서 우리가 세상의 것, 지상의 것, 우리의 것을 버리고 회생한 그 비례에 따라 우리에게 응분의 상급이 주어지는 것이다.

제4부 (22-27장)에서 오리제네스는 항구와 인내를 강조하며 마카베오 후서 7장에 나오는 일곱 아들의 순교자를 둔 장한 어머니의 용덕을 높이 기리고 있다.

제5부(28-44장)에서 저자는 순교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며, 순교가 지닌 그 보속과 공로의 의미, 축복과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첩경임을 설명하며 크리스찬 본래의 역설적 진리 안에서 이 순교의 의미를 다시 정리하고 있다.

끝 부분(45-50장)은 종합과 부록으로 다시 순교를 권고하고 있다.

오리제네스의「기도론」은 그의 개인적 신심생활 및 순교에 대한 열정 그리고 내면적 종교체험을 가장 뚜렷하게 전해주는 작품으로 오리제네스의 인물묘사를 위해 중요한 가치를 지 니고있다.

(3) 서간집

그밖에 오리제네스는 많은 서간을 집필했으나 우리에게는 전해지지 않고 다만 부분역으로 존재할 뿐 이다· 그중 두개의 서간만은 완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① Philocalia에 수록된 서 간 238~243년 사이에 Nicodemia 에서 오리제네스가 그의 제자 기적의 그레고리우스에게 보낸 서간이다. 유다인들도 성전과 지성소를 꾸미기 위하여 금은보화 등 이방인의 요소를 사용했듯이 우리도 크리스찬의 진리를 더욱 밝히 깨닫고 전달키 위해 그레시아 철학 등을 방법론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지향과 신앙을 바탕으로 한 성실성임을 강조하고 성서를 부단히 읽고 묵상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② Julius Africanus에게 보낸 서간

이 서간에서 오리제네스는 이른바 제2경전의 내용이, 특히 수산나의 이야기도 정경 (Canon)에 속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70인 역본의 권위와 교회의 전승과 결정에 따른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 정통성을 강조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240년 경에 집필된 것이다.

그밖에 에우세비우스에 의해 언급된 편지들이 많이 있지만 모두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