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使徒職 遂行 一 敎皇廳 平信徒使徒職 協議會 改編에 관한 자의교서 -
1978년 11월호 (제 60호)
그리스도의 神秘體인 교회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형태의 사도직 즉 '다양한 봉사직'(1 고린 12,5...

敎父들의 思想
1978년 11월호 (제 60호)
II. 안띠오키아의 이냐시우스이냐시우스 (Ignatius Antiochiae) 는 초대교회뿐 아니라 全敎會史를 통하여 ...

韓國의 敎會一致運動
1978년 11월호 (제 60호)
- 運動展開를 위한 열두 가지 實踐事項 -교황 바오로 6세의 서명으로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가「一致運動에...

現代世界에의 새로운 奉仕
1978년 11월호 (제 60호)
IV. 긴급한 해결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奇形의 만연과 그 기형이 내포하고 있는 깊이와 복잡성, 그리고 그 ...

사회 진화론과 원시 종교론
1978년 11월호 (제 60호)
1. 3가지 基本思潮 19세기의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온 대부분 進化論者들이었다. 그듬은 모 두 未開社合에 ...

시험관 아기의 윤리성 문제
1978년 11월호 (제 60호)
序 言 금년 7월 26일,영국의 브라운 부 부에게서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다 는 뉴스는 전세계의 관심을 집...

테살로니카 前後書 槪觀
1978년 11월호 (제 60호)
(1) 테살로니카 현대 테살로니카는 그리이스 북부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다. 이 도시 는 알렉산더 大王의 ...

영성쇄신과 교회 일치운동
1978년 11월호 (제 60호)
聖靈刷新은 敎會一致運動이라는 면에시 볼 때 특별히 내세울 만한 어떤 것이 있는가? 이에 관하여 많은 이...

얀세니즘歷史에 비추어본 聖靈運動
1978년 11월호 (제 60호)
1978년 5월 26일,광주 살레시오女高 강당에서 미국에서 온 맥나트(Mc-Natt)신부와 그의 일행, 5명의 신부...

聖靈刷新의 理解와 育成方案
1978년 11월호 (제 60호)
1. 머리말 靈性刷新 또는 聖靈 안에서의 쇄신이란 말은 성령께서 쇄신을 役事하신 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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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輯·聖趣運動 1978년 11월호 (제 60호)

얀세니즘歷史에 비추어본 聖靈運動

金 慶 桓 (대건신학대 교수, 신부)

1978년 5월 26일,광주 살레시오女高 강당에서 미국에서 온 맥나트(Mc-Natt)신부와 그의 일행, 5명의 신부와 수녀의 지도하에〈治癒의 밤〉이 개최되었다. 이〈밤〉이 개최된다는 사실을 筆者는 事前에「가톨릭 시보」에 실린 대대적 광고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고 상당한의아심마저 품고 있었 던 터이다. 그런데 뜻밖에 그날 밤 行事의 통역을 맡게 되었다. 이것이 필자가 聖靈刷新運動을 좀더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계기이다.

살레시오女高 강당에 모인 군중은 5천여명에 달했으며 그 분위기도 상당히 정숙하면서도 열렬한 것이었다. 지면관계상 이 <치유의 밤〉행사의 진행과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할 수는 없겠으나 주최자측에서나 참석 자측에서 다같이 大成功的이었다고 평가할 만한행사였다. 그렇게 많은 청중이 모였다는 사실만 해도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현상 이기도 하지만, 그 많은 청중들이 演士들의 지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행 동하고 또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은 대견스러웠다. 본당의 주일미사 때 모인 신자들의 열심도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볼 때 이 集會가 진정한 종교적 집회였는가 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필자는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첫째는, 意圖의 문제이다. 이 의도의 문제는 주최자측에도 참석자측에도 다같이 관련된다. 먼저 주최자측에서 볼 때 〈치유의 밤〉을 개최한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회개시켜 하느님께로 나아 가도록 하며 聖靈을 받아 신앙을 굳게 하고 애덕을 실천하게 하며, 기도 를 통해 하느님에게 봉사하며 敎會精神을 더욱 투철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가,아니면 성령쇄신운동을 선전하고 이 운동의 타당성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超自然的(?) 능력의 발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어느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은 것 같다. 특히 이 행사를〈치유의 밤〉이라고 이름을 붙인 그 자체는 벌써 인간적 방법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자 한 의도가 엿보이며 인간의 취약점을 이용한 商業手段이 개입되었다는 비난을면치못할것이다.

이 사실이 참석자들측에서 여실히 들어났다. 5천명 가량의 참석자 중 95퍼센트 이상이 병을 치유받기 위해 모여들었던 것이다. 멀리 부산,대전,울산 등지에서 광주까지 찾아온 이유는 병을 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중에는 불구자도 많았고 갖가지 신체적 병을 잃고 있는 사람들뿐이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을 고쳐준다는데 어찌 천리길을 멀다고 하겠 는가? 물론 병을 치유받으러 왔다가 병의 고통읍 참아받음으로써 하느님 을 만나게 되고, 그리스도의'수난에 참여하게 된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되 었다면야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기는 하겠는데,오히려 치유받을 희망에 부풀어 왔다가 아무런 병의 차도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게 된다면 절망은 더욱 클 것이고, 동시에 하느님을 원망하는 심정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 모임의 본래 뜻이 전혀 살아나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결과가 전혀 없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 이며 한 사람이라도〈치유의 밤〉때문에 교회와 신앙으로부터 멀어졌다면 이러한 행사는 再考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인간의 경 향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모든 것을 평가하나 그리스도人의 올바른 자세는 弱點과 短點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II

〈치유의 밤〉에 대해서는 이상으로 이야기를 종결짓고 聖-靈刷新運動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한다. 이 운동에 대해서는이미 서적과 신문을 통해서 많이 소개되었고 또 仁川과 水原敎區에서는 이에 대한구체적인 指針까지 발표한 바 있다(가톨릭 시보 1110. 11335. 참조). 성령쇄신운동이 성직자와 평신자들의 信心을 향상시키고 기도를 더욱 열심히 바치게 하며 성서를 읽게 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이 운동에도 위험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이러한 위험이 현실적으 로 구체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가능성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올바른 성령쇄신운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 필자의 소망이다. 그런데 이 위험이란 아직도 구체화된 것이 아니어서 뚜렷하게 말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과거의 교회 역사 중에 있었던 운동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소개함으로써 그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경고하고자 한다. 여기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얀세니즘(Jansenism)이다. 그러나 前提해야 할 것 은 성령쇄신운동을 얀세니즘과 同一視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다만 얀세니즘의 ?史는 다른 어떠한 방식으로도·교회내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얀세니즘의 역사는 성령쇄신운동에만 국한시켜서 비교할 것이 아니라 교회내에 생활하는 모든 성직자와 평신자들에게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III

얀세니즘은 꼬르넬리우스 얀세니우스(Cornelius Jansenius)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얀세니우스는 1585년 홀란드 남부지방에서 태어나 빠리와 루뱅 에서 ?學을 마쳤고 그후 교수로 생활하다가 1635년 벨지움의 이쁘르(Ypres) 主敎로 임명되었으며 1638년 그의 사망 때까지 충실하게 敎區長의 직책을 수행한 주교이다. 그는 생존시 그의 畢生의 작품으로「아우구스띠 누스」라는 著書를 편찬해냈으나 그가 죽은 2년 후인 1640년에 가서야 비 로소 출판되었다. 바로 이「아우구스띠누스J가 얀세니즘의 敎義的 기반이 되었다. 얀세니우스가 사망한 후 그의 사상은 그가 빠리의 ?學時節에 사 귀었던 쌩 씨랑(Saint-Cyran) 수도원장이었던 작끄 뒤벨지에 드 호란느 (J. Duvergier de Hauranne)에 의해 뽀르 로이얄(Port Royal) 수녀원에 소개되어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되어나갔다. 그런데 이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종교적 정치적 상황올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7세기의 유럽의 상황은 과도기였었다. 國粹主義時代가 到來하여 지상 의 최대 이해관계는 국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국가보다 더 우선적인 아무 것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교회 역시 국가 위에 군 림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의 지배를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 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교회에 대한 외부에서의 개입은, 비록 그것이 로마 교황청의 명령이나 지시일지라도 왕과 국회의 감시를 받도록 하였다. 프랑스교회는 교황청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적 교회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을 소위 갈리까니즘 (Gallicanism, 프랑스교회 독립운동)이라고부른다.

종교생활에 있이서는 유럽은 宗敎改革을 치른 직후여서 루터는 독일에서 로마교회와는 일체 관계를 단절한 改新敎를 창설했고,영국의 헨리 8 세 역시 영국교회를 로마 가톨릭교회와 분리하여 영국국교로서 성공회를 창설했다. 로마에서 갈려져 나간 개신교에 제도적인 기반을 제공해준 이가 칼빈이다. 칼빈의 비상한 조직직 두뇌는 개신교에 새로운 조직을 부여하였으며 교회는 장로,목사, 교사, 집사에 의해 운영되도록 했다, 또 개신교 신도들에게 도덕적 생활과 모범직인 宗敎人 生活을 가르쳤다. 그래서 16세기 말엽과 17세기 초에는 누가 보든지 개신교 신도들이 더 열심히 성서를 읽고 기도를 바치며 정직하게 생활하여 他의 모범이 되었고 사회생활의 氣風을 더 잘 살려나갔다. 그러기에 일부 가톨릭신도들은 개신교를 부러워하고 그 생활을 본받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물론 로마 가톨릭교회내에서도 刷新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디-. 이 쇄신은 靈性生活과 敎育과 敎義의 확정이라는 세가지 양상을 띠었다. 16세기 중엽에는 여러개의 수도회가 발족되었는데 그 중에는 예수회, 오라또리오회, 울술라회 등이 있고 로마와 독일의 여러 지역에 새 大學들이 창설되었으며(로마에는 그레고리안 대학) 뜨리덴띠노 공의회가 소집되어 (1545?1563년) 교회의 敎義와 규범들이 정확하게 규명되었다(DZ 1500-1850 참조). 그러나 교통과 통신수단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이 시기에 공의회의 가르침이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요하였고 더구나 각 나라의 군주들은 공의회의 걸정을 인준 공포하기를 꺼려했었다. 프랑스에서는 공의희가 폐막된 지 50년 후인 1614년에서야 비로소 공의회의 헌장과 교령을 인준 공포하기를 프랑스국회에서 결정했던 것이다. 어쨌든 공의회의 건정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學界 일부층에서는 뜨리덴띠노 공의회가 논의하지 아니한 문제들을 두고 연구와 토론을 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문제가 恩寵과 人間自由와의 관계 문제였다. 이것이 은총에 대한 神學的 思想들이 배출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얀세니우스 역시 이 문제에 관한 해답을 시도했다. 그래서 ‘은총의 학자'라 불리는 성 아우구스띠누스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여 위에 말한「아우구스띠누스」를 저술했던 것이다. 그러나 얀세니즘은「아우구스띠누스」에 국 한된 사상적 새 학파만이 아니라 일종의 운동이었다. 다니엘 롭스(Daniel Rops)는 얀세니즘을 세 측면으로 구분했다(L'Eglise de temps Classiques, P. 393 이하)· ?義的 얀세니즘과 信心生活로서의 얀세니즘과 黨派로써의 얀세니즘이 그것이다.

IV

교의적 얀세니즘은 얀세니우스의「아우구스띠누스」안에 全的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 주된 思想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人類의 原祖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써 범죄 이전의 인간의 상태와 범죄 이후의 타락된 상태와의 사이에는 절대적 차이가 생겼다. 범죄 이전의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자연적으로 善을 행할 수 있는 곧은 意志를 소유하고 있었다. 자유를 누리던 이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됨으로써 죄의 노예가 되었고 ‘地上的 향락'에 끊임없이 이끌려가게 되었으며 그의 행동은 모두가 부패되고 不淨할 수밖에 없어졌다. 그러나 萬善의 하느님은 인류 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베풀어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功勞를 통해 하 느님은 은총을 주시어 인간을 들어높이신다. 이 은총을 소유하는 인간은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나 이 은총을 받지 못 한인간은아무것도 할수없고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래서 義人일지라도 은총을 받지 않았으면 하느님의 戒命을 지킬 수 없고 救援될 수도 없다. 그러면 하느님이 이 은총을 모든이에게 주시는가? 얀세니우스는 불리운 이는 많으나 선택된 자는 적다고 한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소수의 사람들 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의 사람들은 하느님이 벌하시지 않더라도 그들의 罪中에 그대로 남아있게 되며 永罰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얀세니우스의 사상은 인간의 自由意志를 인정하기는 하나 다만 은총을 소유하는 자들만이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얀세니우스는 하느님의 절대적 권한과 인간의 원죄상태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인정하나 그 구원을 豫定된 자에게 국한시켰던 것이다. 바로 이 豫定說이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사상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절대적 권한과 인간의 허약성과 구원의 필요성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게 하는 데는 얀세니즘이 공헌한 바가 없지는 않으며 지금도 우리 신자들이 어느정도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얀세니우스의 가르침은 인간 중에는 은총을 받아 미리 선택된 사람들이 따로 정해져있고 그들은 어떻든간에 구원된다고 했기 때문에 인간구원과 윤리 도덕생활은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이 착하게 살려고 하는 노력이' 그의 구원에는 무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얀세니즘의 역사는 이와는 전혀 반대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얀세니우스의 사상 을 받아들여 그것을 전파한 사람이 문제였다. 빠리의 뽀르 로이얄 수도원 의 안젤리끄(Angelique)원장의 지도신부이고 얀세니우스의 친구였던 쌩 씨랑은 과격하고 정열적 神秘家였디.. 그는 아우구스띠누스의 실천적인 생활규범에 관한 결론을 이용하여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靈性運動 을 전개해나간 것이다. 쌩 씨랑은 ?義的 얀세니즘을 嚴格主義的 경향을 띤 윤리적 얀세니즘으로 바꾸어놓은 장본인이다.

쌩 씨랑은 罪人인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서 예리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비참함을 극복하기 위해 진투를 벌이기는 하나 하느님 의 도움없이는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추악한 죄인들이다. 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무한히 노력하지만 구원을 확실 히 얻었다는 자신은 한번도 가져볼 수 없다. 이러헌- 사상적 경향에 쌩 씨 랑 자신의 엄격한 성격이 첨가되어 얀세니즘은 엄격하고 침울한 종교를 제시하게 된 것이다. 쌩 씨랑의 이러한 경향이 뽀르 로이얄 수녀들과 은수자들에 게 영 향을 미 치 게 되 어 이 뽀르 로이 얄 수녀원 이 얀세니즘의 牙 城이 되고 만 것이다. 뽀르 로이얄과 그의 추종자들은 기도하며 재를 지키고 교회의 법규들을 엄격하게 지키는 열심한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그 태서 이들을 ‘열심쟁이’ (devoti)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르네쌍스 운동이 교회내에까지 침투해 들어온 15세기 이후 교회가 종교 단체인지 勢道를 누리는 정치단체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을 빚었고 또 신자들의 신심생활이 最底線에 이르도록 타락한 이 시기에 열심하게 살도록 유도하는 이러한 운동이야말로 아주 바람직한 운동이 아닐 수 없었다. 사 실 17세기에는 얀세니즘 밖에서도 교회 안에 머무른 信心運動의 선구자들이 많이 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가 그 중의 대표인물일 것이다. 얀세니즘은 그의 苦行的 경향 때문에 많은 추종자들을 얻게 되었다· 이들은 고백성사를 자주 보아야 했고 또 모든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告해야 했으 며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것이니 만큼 대죄는 물론 소죄 까지라도 없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영성체는.자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1643년에는 뽀르 로이얄의 은수자 안또완 알놀(Antoine Arnauld)과 예수회 간의 격렬한 筆禍事件이 벌어졌는데 그 계기는 예수회의 한 신부가 무도회에 참석한 다음날 영성체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알놀은「성체를 자주 영함에 대하여」 라는 책자를 반행하여 이에 완강히 맞서게 된 것이디-. 결국 敎義와 倫理 에 대해서 새로운경향을제시하던 얀세니즘은 이제 교회의 법규에까지 새로운 것을 제시하여 새로운 종교생활을 시도하는 한 집단으로 형성되어 교회와 맞서는 당파토서 대두한 것이디-· 얀세니우스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운동이 성공적으로 전개되어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고(왕후 중에도 얀세니 스따가 있었는가 하면 주교들과 학자들 중에도 많은 얀세니스따가 있었다) 또 자신들 聖德에 대해 자신을 가진 나머지 자신들만이 참된 그리스도교 회를대표한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얀세니즘은 槪存敎會 와대립되고 교계의명령을받아들이지 않는 반항적 단체가 되고 만 것이다.

교의적 얀세니즘과 윤리적 얀세니즘은 1669년의 끌레멘스 9세의 법령에 의해 일단락되었으나 그 영향은 교회내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남아있 었으며 당파적 얀세니즘은 1669년 이후에도 프랑스교회 독립운동과 결탁 이 되어 18세기 프랑스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많은 혼란을 빚어냈다.

V

얀세니즘의 발전과정은 우리에게 몇가지 원칙을 제시해주고 있다. 첫째, 교회의 혼란기나 과도기에 신심이 저하될 때에 어떤 새로운 운동이 일어 난다는 점이며,둘째, 이러한 운동은 ?義의 어느 한 점만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얀세니즘은 恩寵과 人間意志 중에 은총만을 중요시하고 인간 의지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세째, 이러한 운동은 대체로 과격하거나 일 방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에 의해 전개된다는 것이며,네째, 당파적인 성격 을 띠게 되어 ‘교회 안의 교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교회와 ?階를신랄하게 비판하고 자기들의 집단만이 정당한 교회라고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네들 집단이나 운동에 속하지 않는 자들을 이단시하고 따라서 자기네들 운동을 강요하기에까지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筆者의 所見으로는 한국의 성령쇄신운동이 이 모든 원칙을 충족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그렇게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다분히 지니고 있지 않는가 생각하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미연에 방지하는 뜻으로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주체성 결여와 우유부단한 성격을 감안할 때 한국의 성령쇄신운동이 異端的이거나 裂?的 운동으로 변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다만 교회의 과도기에 잠깐 나타났다가 또 사라져버리는 다른 여러 운동과 똑같은 운명을 겪지 않을까 생 각된다. 그러면 이제 위의 네 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가톨릭 성령쇄신운동 을 살펴보기로 한다.

1. 과도기의 현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세계교회가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역시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傳來된 이후 박해, 俊政의 압제, 6.25동란 등으로 많은 수난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상당한 활기를 찾게 되었고 교회는 어떤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어가는 느낌이다. 때를 같이하여 한국에는 온갖 운동들이 도입되었다. 꾸르실료,공동체 묵상회, 성서모임 등과 함께 성령쇄신운동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성령쇄신 운동은 개신교의 열성을 높이 평가한 나머지 그들의 운동을 가톨릭이 받아들인 것이라 하며,반드시 가톨릭 성령쇄신운동이라고 명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어쨌든간에 이 운동이 가톨릭신자들 의 종교적 생활을 향상하여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더욱 굳게·하고 기도를 더 잘,더 많이 바치게 하며 성서에 더 자주 접근하게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러한 것은 한국교회로서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敎理의 일면성 : 성령쇄신운동은 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그 본래 의 명칭은 Pentecostal Movement(五旬節 운동) 또는 Charismatic Re-newal(恩賜의 刷新)이라고 한 것이 우리 말로 성령쇄신운동으로 번역되었 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번역한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운동의 중심은 성령이다.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敎理가 성부 성자 성령 이시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믿는 사실이디-. 물론 성령쇄신운동가들이 성부와 성자를 배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일방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경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성령을 위주로 하게 될 때 다른 교리면에서도 교회의 가르침을 위배할 계기가 생기게 마련이니 만큼 이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남달리 교회의 正統神學을 연구 해야만 할줄 안다.

3. 인간성격에서 오는 영향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그운동을 펼쳐나가는 사람들에 따라 成敗가 좌우된다· 그래서 문제는 운동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사람들이 그 운동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이기주의적 사람은 이기주의적으로, 감정이 격렬할 사람은 격렬하게,폐쇄적인 사람은 폐쇄적으로, 일방적이고 남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은 파 벌을조성하면서 운동을 .펼쳐나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성령쇄신운동을지 도하는 지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人選율 철저히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더구나성령쇄신운동은 그 자체가 인간을 초월하는 성령의 은사를 다이나믹하게 나타내는 운동이 아닌가. 그런데 인간을 초월하는 恩賜이기에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뜻을 부여하고 자신의 이기직인 유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환자가 낫고 방언을 하는 것 등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신적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실 성령쇄신 운동의 고귀함을 주장하려고 할 때 주로 초자연적 은사의 체험을 앞세우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인간의 욕망을 채워준 것이 대부분이다. 즉 병의 치유를 받았다든가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는 등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불완전 한 인간이 자신의 病苦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령에 의지하게 될 것 이며, 만일에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면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더 클 것이고 하느님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치유의 밤〉같은 행사는 이러한 면에서 유익하기보다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지 않을가 생각된다.

성령쇄신운동에 바라는 것은 개인적인 이해득실 관계를 초월해서 우리 신자들을교육하여 사회정의 구현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들며 애덕을 실천하여 자신의 병고보다 이웃의 병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성령쇄신운동이 거대한 애덕 실천사업으로 발전되어 나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는 바이다.

4. 파벌성 : 한국 가톨릭 성령쇄신운동이 어떤 파벌을 형성했다고는 생각치 않으나 이 위험을 면하기 위해서는 敎階에 대한 철저한 순명과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이고 또 藥事에 대한 존경심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교회에 대한 애착심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어 디까지나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自信을 갖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죄인이다. 따라서 우리 개개인의 구원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인생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은 결국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되는 것이다.

끝으로 한국 가톨릭 성령쇄신운동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며 이 운동을 얀세니즘 역사에 비추어본 것은 이 운동을 얀세니즘과 동일시하기 위한 의도에서가 절대로 아니라 다만 과거 역사를 앎으로써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하려는 데 그 의도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