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使徒職 遂行 一 敎皇廳 平信徒使徒職 協議會 改編에 관한 자의교서 -
1978년 11월호 (제 60호)
그리스도의 神秘體인 교회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형태의 사도직 즉 '다양한 봉사직'(1 고린 12,5...

敎父들의 思想
1978년 11월호 (제 60호)
II. 안띠오키아의 이냐시우스이냐시우스 (Ignatius Antiochiae) 는 초대교회뿐 아니라 全敎會史를 통하여 ...

韓國의 敎會一致運動
1978년 11월호 (제 60호)
- 運動展開를 위한 열두 가지 實踐事項 -교황 바오로 6세의 서명으로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가「一致運動에...

現代世界에의 새로운 奉仕
1978년 11월호 (제 60호)
IV. 긴급한 해결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奇形의 만연과 그 기형이 내포하고 있는 깊이와 복잡성, 그리고 그 ...

사회 진화론과 원시 종교론
1978년 11월호 (제 60호)
1. 3가지 基本思潮 19세기의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온 대부분 進化論者들이었다. 그듬은 모 두 未開社合에 ...

시험관 아기의 윤리성 문제
1978년 11월호 (제 60호)
序 言 금년 7월 26일,영국의 브라운 부 부에게서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다 는 뉴스는 전세계의 관심을 집...

테살로니카 前後書 槪觀
1978년 11월호 (제 60호)
(1) 테살로니카 현대 테살로니카는 그리이스 북부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다. 이 도시 는 알렉산더 大王의 ...

영성쇄신과 교회 일치운동
1978년 11월호 (제 60호)
聖靈刷新은 敎會一致運動이라는 면에시 볼 때 특별히 내세울 만한 어떤 것이 있는가? 이에 관하여 많은 이...

얀세니즘歷史에 비추어본 聖靈運動
1978년 11월호 (제 60호)
1978년 5월 26일,광주 살레시오女高 강당에서 미국에서 온 맥나트(Mc-Natt)신부와 그의 일행, 5명의 신부...

聖靈刷新의 理解와 育成方案
1978년 11월호 (제 60호)
1. 머리말 靈性刷新 또는 聖靈 안에서의 쇄신이란 말은 성령께서 쇄신을 役事하신 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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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壇 1978년 11월호 (제 60호)

테살로니카 前後書 槪觀

晋 토마스 (성 베네딕또 수도원장)

(1) 테살로니카

현대 테살로니카는 그리이스 북부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다. 이 도시 는 알렉산더 大王의 매부인 갓산드로 將軍이 기원전 315년경에 세워 자기 부인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카라 불렀다. 로마사람들이 그리이스를 合? 한 후 이 도시를 마케도니아州의 首都로 삼았다. 이 도시는 로마와 아시 아를 연결하는 도로변에 위치하여 옛 부터 매우 번창하였다. 테살로니카에 는 로마 관리와 다른 외국인들도 많 이 살았다. 그들 중에는 유대인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들은 자기네 종교인 유대교를 信奉하였다.

(2) 테살로니카 교회의 設立

제 2차 전도여행 (50-52년경)에 바울로 사도는 실라(우리 편지에서는 실바노라고 부름) 및 디모테오와 함께 아시아에서 그리이스로 건너와 필립비에서 복음을 선포하여 충성된 교회를 세웠다(필립비서 참조). 그러나 얼마 후 박해를 받아 추방되었다(사도 16,11-40; 1 테살 2,2). 그래서 바울로 일행은 테살로니카로 가 우선 유대교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여 바울로는 야손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전도를 하 였다. 그런데 머지않아 유대인들의 책동으로 바울로는 테살로니카에서도 추방되었다. 이 모든 일은 사도행전 17,1-10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로는 테살로니카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 활동하였다고 되어있는데 실제로 그 기간은 훨씬 길었을 것이다. 사실 바울로 는 거기서 천막 짜는 일을 하였고(1 테살 2,0; 사도 1β,3), 여러번 필립비 사 람들의 원조를 받았으며(필립 4,6), 많은 異邦人들을 회개시켜 굳건한 교회 를 세웠던 것이다. 루가가 사도행전 에서 바울로의 활동 가운데 시작과 끝만을 묘사하여 “세 안식일에 걸쳐” 라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바울로가 거기서 한동안 활동하다가 추방된 사 실로 미루어 볼 때 그가 머물렀던 기간은 몇달 가량 되었을 것이다. 그때 까지 테살로니카 1신자들온 기본적인 교리만 배웠을 뿐 부족한 점이 많았 다(1 테살 3,10). 그래서 갑자기 추방 된-바울로는 박해받는 새 교우들에 대 해 몸시 걱정을 했고 박해운동을 일 으킨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매우 분개 하였다(1 테살 2,15-16).

2. 執筆 動機

(1) 첫째 편지

바울로는 테살로니카를 떠난 다음 베레아, 아테네, 코린토에서 전도하 였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테살로니 카 의 유대인들이 베레아까지 따라와 바 울로를 박해하여 그는 흡로 아테네로 갔다(사도 17,14; 18,5). 태살로니 카 전 서 3,1-2에 의하면 바울로는 아테네 에서 동료들을 만났다. 바울로는 직 접 테살로니카로 가려했으나 그럴 수 가 없었다(1 테살 2,18; "사탄이 방해했다”). 그래서 디모테오를 테살로니카로 보냈다. 디모테오가 코린토로 간 바울로에게 테살로니카 교회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하자 바울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첫째 편지를 보내게 된다.

테살로니카 전서는 바울로의 다른 편지와는 판이한 성격올 띠고 있다. 우선 그 집필동기가 ?理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얼마 전에 떠나온 새 로 세운 교회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교회에 대해 격정하던 바율로는 좋은 소식을 듣자 큰 기쁨을 느꼈다. 새로 이루어 진 信仰의 共同體가 충실한 생활을 하 므로 우선 바울로는 긴 감사의 기도 를 드린다(1,2-10절이 원문에는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테살로니카의 信者들은 시련을 잘 극복하고 좋은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 길로 꾸준히 나아가라고 권고한다. 바울로 는 신자들을 다시 만나 그들 신앙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겠다는 생각을 하 고 있었으나(3,10), 걱정하지는 않았 다. 그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굳게 믿 으.며 믿는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있 었고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來臨에 대한 희망 속에서 살아 가고 있었다(1,10; 2,19; 4,16). 테살로 니카 전서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 해야 할 형편에 처한 자녀들에게 주 는 아버지의 자상하고도 정다운 격려 의 글과도 같다(2,11-12). 우라는 이 편지에서 초대교회의 투쟁과 승리, 그 열성과 긍지, 그리고 하느님이 하시 는 일들에 대한 놀라움을 볼 수 있다.

(2) 둘째 편지

인사말을 보면 바울로와 실라 및 디모테오는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테살로니카 전서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바울로가 둘째 편지를 보냈을 것이다. 두 편지 사이에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는 두 가지의 문제가 일어났다.

첫째, 어떤 이들이 주님의 再臨이 이미 왔다고 주장했다. 바울로는 이 러한 주장을 물리치며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는 두 가지의 前兆가 있을 것 이라고 했는데 그 중 하나는 信仰背反이며 다른 하나는 反그리스도의 출현이다. 이 두 가지 전조가 있은 다음에야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2,1-12).

둘째, 일하지 않고 말만 하며 남에게 부담이 되는 사람들이 생겨 바울로는 단호히 그들의 改善을 촉구하고 불순한 사람을 멀리 하라고 명한다 (3,6-13).

3. 執筆 年代

바율로는 제 2차 전도여행 중 52년경) 코린토에서 1년반 동안 활동했다(사도 18,11). 그는 테살로니카 전서를 51년경에, 후서를 같은 해, 혹은 52년경에 썼을 것이다. 이두 편 지는 바울로의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대략 20년 만에 지술된 이 편지는 모든 신약성서 중 가장 먼저 작 성된 문헌이다. 그러므로 이 두 편지는 그리스도교의 첫 문헌으로 매우 귀중한 것이다.

4. ? 容

(1) 使徒의 體驗

테살로니카 전서에서 바울로는 現在時制를 사용한다. 이 현상은 특히 1ㅡ3장에서 현저하다·'새로운 문단 을 시작할 때마다 바울로는 “기억하 고 있다”, "아는 바와 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기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곳 사람들의 기억에 호소한다(1,3.4.5;2,1.2.5.9.11;3,3.4.6; 4,2; 5,2). 다시 말하면 使徒와 受信人들의 현재 관계는 몇달 전에 있었던 共同體驗에 그 뿌리를 박고 있는것이다. 그때 바 울로와 테살로니 카 신도들은 함께 살 면서 복음선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교의 공동체가 탄생하는 것을 목격하 였다. 다른 어느 편지에서도 바울로 가 이만큼 상세히 한 교회의 由來를 회상한 적은 없었다.

복음선포를 듣고 데살로니카 사람 들은 자기네 생활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제 그들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당신의 아들 예수의 西臨을 기다리게 되었다. 바울로는 그들의 신앙과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1,3). 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은 옛적 이스라엘을 選民으로 탁하신 하느님의 자유로운 사랑에 의한 선택이다(1,4; 2, 12).

테살로니 카 사람들은 바올로의 말 때문에 회개한 것이 아니며 또 바울로는 개인적인 성공을 거두거나 사람들의 호의를 얻고자 말재간을 부리지 도 않았다(2,3). 그의 말을 통하여 하 느님께서 친히 작용하셨다는 점이 중 요하다. 그러므로 헬라사람들이 "우 상으로부터 돌아서서 살아계시고 참 되신 하느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신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권능이다(1,9).

하느님께서는 바울로의 입을 빌어 말씀하시고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그 결과 신앙이 싹트고 그 신앙은 하느 님의 권능을 드러낸다(2,13).

바울로는 자신이 宣布한 것을 일컬 어 '福音'(그리이스語로 ‘에우앙겔리온,), ‘하느님의 복음,(2,4.9) 혹은 '그리스도의 복음,(3,2)이라 한다. 바울로는 테살로니카 전서 1,9-10에서 傳統的인 표현을 빌어 복음의 내용을 요약한다. “여러분이 우상으로부터 하느님께로 돌아서서 살아계시고 참 되신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으며 또 한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 키신 그분의 아들, 우리를 장차 올 진노로부터 건져내 주시는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고대하게 되었 다.”

복음을 선포할 때 使徒는 하느님의 협력자가 된다(3,2). 그 이유는 선포 속에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힘차 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1,5). 예수께 대한 믿음이 박해와 환난을 초래함에 도불구하고(2,14), "성령의 기쁨으로 (1,6)"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놀라운 사실을 달리 설명할 도리는 없다. 그 리 고 하느님 은 신 앙이 싹틀 때 에 만 활 동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신자들이 투쟁과 고통 가운데서 신앙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에 더 활동적인 신앙, 더 헌신적·인 사랑,그칠 줄 모 르는 희망을 갖도록 계속 그들의 마 음을 움직이신다. .

예수를 부활시키신 하느님의 그 능 력이 지금도 사도들의 宜布 속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는 그가 확 신하고 있는 復活事件을 그저 陳述하 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는 행위로써。 하느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를 부활시키신 하느 님의 이 능력은 옛날 예수 안에서 작 용했듯이 지금 신도들 안에서도 작용 하고 있다.

하느님이 신자들 안에서 작용하시 는 것을 보고 바울로는 위로를 받고 (1 데살 3,7) , "여 러 분이 야말로 우리 의 영광과 기쁨입니다” (1 테살 2’20)라고 했다. 이와같이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즉음과 부활의 신비가 얼마나 큰 현 실성과 효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그 傳 道活動을 통하여 체험하게 되었다. 빠스카(죽음과 부활)사건은 과거의 것 만은 아니다. 使徒와 敎會는 예수께 서 겪온 시련을 지금도 겪는 한편(1, 6; 2,14)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 광에 도 이 미 참여 하고 있는 것 이 다.

(2) 終末論

테 살로니 카 전 서 는 敎理를 밝히 기 위하여 저술된 편지는 아니지만 終末 에 관한 가르침은 중요한 역할을 한 다. 1一3장은 주로 과거의 전도활동 과 테살로니카 신도들의 생활을 회상 하고 있지만 4,13 ? 5,3은 주로 종말 에 대한 일련의 문제를 해결하는 교 훈이디·. 근러나 종말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1 ? 3장에서도 뚜렷이 드러난 다(1,10; 2,19; 3,13 참조),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 람이다。이 재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신자의 생활방향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는 역사의 종말을 일 컬어 ‘주님의 날’ 흑은 ‘야훼의 날’ 이라고 했다(예 :아모 5,18). 이 날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義人들에게는 영원한 평화, 惡人들에게 는 무서운 벌을 주리라 생각했다. 바울로는 이 날을 그리스도의 날이라 일컬었다. 그날에 그리스도께서는 하 느님 아들의 영광을 띠고'오셔서 믿 는 이들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니 신자들은 그 날에 조금도 흡잡힐 데가 없어야 한다.

테살로니카 후서에는 終末論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집필동기부터가 世末에 대한 문제이다. 세상의 종 말과 예수 재림에 관한 가르침은 그 어느 편지에서보다 테살로니카 전후 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바울로는 世末을 묘사할 때 구약 예언서와 유대교 묵시문학의 사상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인다. 묵시문학의 史觀에 의하면 역사의 말기에는 악의 세력이 떨쳐 극심한 혼란과 박해가 일어난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 혼란과 박해를 막을 수 없다. 오직 하느님 혹은 그분의 대리자만이 미구에 하늘로부터 나타나 극적으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리고 묵시문학계에서는 세말 장면을 묘사할때 대천사의 소리, 하느님의 나팔(1 테살 4,16), 불꽃(2 테살 1,8), 구름을 탄 심판자 (1 데살 4,17) 같은 소재를 즐겨 사용했다. 바울로는 묵시문학적인 상상과 표현을 받아들이지만 그 내용은 아주 달라진다.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함으 로써 이미 세말이 시작되었다는 믿음 때문이다. 바울로가 주장하는 종말론 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예수는 부활하셔서 주님이 되시 고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 그는 다시 오셔서 악인들을 멸망시키고(1 테살 5, 3; 2 테살 1,9; 2,10-12), 믿는 이들을 구 원하여(1 테살 5,9), 당신의 영광에 참 여케 할 것이다(2 대살 2,10).

② 바울로는 초대교회 신도들과 마 찬가지로 곧 주님의 날이 올 것을 알았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남아 있을 우리 산 사람들(1 테살 4,15)이란 표현은 예수 재림 임박사상을 분명히 입증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로 가 그리스도의 재 림 이 몇 년 안에 이 루어진다고 가르친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자신이 죽기 전에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다시 뵙는 것이 소원이었 다. 그러나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 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울로 자신도 차츰 예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을 각오를 하게 되었다(1 고린 15,31-32; 2 고 린 5,1-8; 필립 1,20-24).

테살로니카 신자들은 재림 전에 죽는 형제들이 구원받지 못할 것을 걱 정했다. 그들에게는 아직 부활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바올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전 서 4,13-18에서 죽은 이들도 불리한 점은 없다고 실명한다. 신자는 즉어 도 그리스도께 대한 희망이 사라지지 않는다. 예수를 부활시키신 하느님의 권능은 그 부활을 믿는 신자를 버리지 않는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자기 에게 속한 이들을 하나도 잊지 않을 것이니 그들 모두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민저 죽은 자 들이 부활하고 그 다음에 그들은 살 아있는 신자들과 함께 주님 앞에 나 아갈 것이다. 이와같이 모두 함께 영 원히 주님을 모실 것이다.

③ 世末은 예고 없이 갑자기 닥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밤중의 도둑과 같다(1 테살 5,1-3). 사람들이 안일하 게 지내고 있을 때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다. 그리므로 그리스도교인 들은 항상 깨어있으면서 주님을 기다 려 야 한다. 그들의 생 활은 고대 하는 생활, 깨끗한 생활, 맑은 정신의 생 활이라야 한다(I 테살 1,10; 3,13; 5,4-10.23).

④테살로니카 후서에서는 종말문 제를 보는 관점이 매우 다르다. 그리 스도 재림의 임박성을 성급히 해석한 나머지 일올 신자들은 주님의 날이 이 미 와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다. 그 들은 이러한 해석을 사도의 가르침으 로 뒷바침하려 들었다(2 태살 2,1-2). 그리고는 그들은 현세의 모든 일에 대 한관심을 잃어버리고 무질서하게 살 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 일하지 않고 구걸하며 다른 사람의 부담이 되었다(2 테살 3,6; 10-12). 그래서 바울로는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환기시켰다. 그리고 그는 상식을 벗 어난 열광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 고 세 말에 나타날 前兆에 관하여 설 명한다. 그의 의도는 세말이 이미 도 래했다는 착각을 버리고 현실에 충실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바울로는 유대교 묵시문학을 참조 하여 세 말에 나타날 前兆事件과 과정 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ㄱ) 사탄은 이미 이 세상에서 활 동하고 있다. 그 활동으로 신자들은 박해를 당한다. 이 세상에서 믿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게 되는데 죄악은 점점 자라며 거짓과 불의가 퍼져나간다. 특히 위험한 것은 거짓을 참으로, 불의를 정의로 誤認 케 하는 속임수에 의한 인간의 착각 이다(특히 2 테살 2,9-12).

(ㄴ) 다음으로 背敎하는 사태가 발 생하고 ‘不法의 사람,혹은 ‘無法者' 라는 인물이 등장할 것이다(2 테살 2,3-12). 배교의 개념은 묵시문학(다니 11, 32; 1 마카 1, 46-52; 2,15-16; 2 마카 6,1 이하) 및 복음서에서도 나타난다(루가 18,8; 마태 24,10-12). 바울로는 배교를 무법자의 활동과 동일시한 것 같다. 그 무법 자의 유혹에 빠져 眞理와 善 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보시기에 背敎者들이다.

불법의 사람, 無法者는 ‘反그리스도’ (Antichristus) 라고 하는 존재다. 反그리스도는 요한의 표현에 의한 것이다 (1 요한 2,18.22; 4,3; 2 요한 7). 모든 악의 化身인 이 자는 놀라운 기적을 보 이고 ≪진리의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 은”(2 테살 2,10) 사람들을 속이고 오 만으로 가득차,하느님으로 자처하며 성전에 착좌할 것이다. 反그리스도란 개인을 가리키는지 혹은 집단을 가리키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ㄷ) 反그리스도가 아직 나타나지 못한 원인은 누가 혹은 무엇이 그를 붙들고 있는 까닭이다(2,6-7). 이 장애물이나 막고 있는 사람이 어떠한 혹은 누구인지 우리가 알기는 어렵다. 틀림없이 테살로니카 신자들은 이에 대한 바울로의 가르침을 들었을 것이 다. 이 장애물의 성격에 대하여는 다 음과 같은 학설을 들 수 있다.

ㅡ로마帝國과 皇帝(제국은 붙들고 있는 것, 황제는 붙들고 있는 이) : 제국은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 여 전통적으로 세말의 징조로 생각하 는 혼란과 전쟁을 막고 있다는 것이 다. 이것은 많은 敎父들의 견해이다.

ㅡ使徒들의 전도활동과 바울로 사 도 자신(몹수에스트의 테오도르,테 오도레토, 칼빈,클만의 견해): 예수 깨서는 복음이 모든 이방인들에게 선 포되기 전까지는 세말이 오지 않으리 라 하셨다(마르 13,10; 마태 24,14; 루가 21,24; 참조로 로마 11,25). 여기서 묵시 록 11,3-14의 두 증인의 역할도 생각 할 수 있다. 결론으로는 이미 아우구 스띠노가한 말을들겠다: “그 당시 의 신자들온 알고 있던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으므로 사도가 뜻한 것이 무 엇인지 수고를 다하여 따지려 해도 찾 지 못하고 있다. …… 그가 도대체 무엇을 말했는지 내가 모르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神國 2권 19,2).

여하튼 주님의 재림 전에는 배교의 사태와 무법자의 策動이 있게 마련이 나 아직 그런 현상이 없으므로 종말 이 이미 도래한' 것은 아니다,

(ㄹ) 反그리스도가 나타난 다음에 야 주님이 발현하셔서 그를 멸하실 것이다(2,8).

주님의 날이 이미 와 있기 때문에 걱정없이 살수 있노라고 잘못 생각하 는테살로니카의 신도들은 世末事件 의 진행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을 저 버린 것이다(2,3). 그들의 안일한 생 각과는 전혀 달리 世末은 환난과 투 쟁의 시대임을 사도는 강조한다. 재 림하실 그리스도가 승리하시기 직전 에는 싸움이 한충 더 격렬해질 것이 다. 이때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을 차 리고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알아야 된 다· 복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영광 에 한 몫을 차지하도록 초대하고 있 으나(2,15), 박해와 고통이 그 영광에 先行한다(1,4-5). 이 환난을 극복해낼 수 있으려면 사랑과 믿음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

테살로니카 후서의 이러한 입장을 테살로니카 전서와 비교할 때 종말의 임박성은 다소 상대화된다. 후서에서 주장하는 바는 세말이 가까와졌다는 핑계로 공동체와 사회의 진서를 뒤엎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세말의 승리 를 얻었다 하여 일하기를 그만문 사 탐들을 멀리하고 필요하다면 그들과 의 모든 관계도 끊어야 한다(3,6.14). 역사의 종말을 인내로 기다리지 않고 이미 실현되었다고 하는 열광주의자 들은 그 이후에도 종종 교회에 나타 났다. 이에 대하여 테살로니카 후서 는 열광주의자들을 반박하며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계획을 설명한다.

(3) 初代敎會의 ?理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두 통 의 편지는 초대교회의 생활과 그 희망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 다. 이 편지에서 바울로는 종말론을 제외한 다른 敎義的인 문제를 본격적 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초대 그리스 도敎의 중요 교리가 대부분 그 속에 들어있다. 執筆年代인 51~52년경 이 미 중요교리가 이처럼 확립된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이 교리는 바울로 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라 그가 전통 적인 표현과 定式을 빌어 교리를 밝힌 예가 몇군데 있다.

중요 교리는 다음과 같다. 하느님은 모든 일의 근원이 되시고 사랑으 로써 인간을 불러 신앙과 구원을 얻게 하신다. 그는 아버지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 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다가 부활 하셔서 하늘에 살아계신다. 신자들은 그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의 재림을 간 질히 바란다. 성령은 말씀의 선포와 공동체의 생활 가운데서 활동하신다.

이제 信仰人은 자신의 부활을 큰 확신으로 고대하면서 박해 중에 인내하며 각 도시와 나아가서는 제국 내에서 형제적 사랑으로 한데 뭉쳐진다.

교회는 약 2천년 동안 이 서간들을 읽고 해석해왔다. 비록 짧은 .글이나 우리는 그 속에서 초창기 교회의 생 생한 모습을 볼 수 있고 우리가 이어 받은 신앙의 소박한 원형을 알게 된다. 방향의식을 잃어가는 현대의 신자들에게도 이 편지는 신앙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며 특히 그리스도교적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