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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徒職 遂行 一 敎皇廳 平信徒使徒職 協議會 改編에 관한 자의교서 -
1978년 11월호 (제 60호)
그리스도의 神秘體인 교회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형태의 사도직 즉 '다양한 봉사직'(1 고린 12,5...

敎父들의 思想
1978년 11월호 (제 60호)
II. 안띠오키아의 이냐시우스이냐시우스 (Ignatius Antiochiae) 는 초대교회뿐 아니라 全敎會史를 통하여 ...

韓國의 敎會一致運動
1978년 11월호 (제 60호)
- 運動展開를 위한 열두 가지 實踐事項 -교황 바오로 6세의 서명으로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가「一致運動에...

現代世界에의 새로운 奉仕
1978년 11월호 (제 60호)
IV. 긴급한 해결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奇形의 만연과 그 기형이 내포하고 있는 깊이와 복잡성, 그리고 그 ...

사회 진화론과 원시 종교론
1978년 11월호 (제 60호)
1. 3가지 基本思潮 19세기의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온 대부분 進化論者들이었다. 그듬은 모 두 未開社合에 ...

시험관 아기의 윤리성 문제
1978년 11월호 (제 60호)
序 言 금년 7월 26일,영국의 브라운 부 부에게서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다 는 뉴스는 전세계의 관심을 집...

테살로니카 前後書 槪觀
1978년 11월호 (제 60호)
(1) 테살로니카 현대 테살로니카는 그리이스 북부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다. 이 도시 는 알렉산더 大王의 ...

영성쇄신과 교회 일치운동
1978년 11월호 (제 60호)
聖靈刷新은 敎會一致運動이라는 면에시 볼 때 특별히 내세울 만한 어떤 것이 있는가? 이에 관하여 많은 이...

얀세니즘歷史에 비추어본 聖靈運動
1978년 11월호 (제 60호)
1978년 5월 26일,광주 살레시오女高 강당에서 미국에서 온 맥나트(Mc-Natt)신부와 그의 일행, 5명의 신부...

聖靈刷新의 理解와 育成方案
1978년 11월호 (제 60호)
1. 머리말 靈性刷新 또는 聖靈 안에서의 쇄신이란 말은 성령께서 쇄신을 役事하신 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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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壇 - 敎父들의 思想 1978년 11월호 (제 60호)

敎父들의 思想

咸 世 雄 (서울 漢江本堂 神父)

II. 안띠오키아의 이냐시우스

이냐시우스 (Ignatius Antiochiae) 는 초대교회뿐 아니라 全敎會史를 통하여 個性이 뚜렷한 信仰을 특징으로한 가장 위대한 人物이다. 그의 전생애에 대하여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고 다만 그가 남긴 일곱 통의 편지를 통하여 우리는 그 ㅡ生의 斷而을 그릴 수 있을 뿐이다.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불길같은 그의 但仰과 熱情 은, 그의 이름이 바로 ‘불,(Ignisㅡ Ignatius) 이란 말마디에서 파생되었다고 연상시켜준다. 사실 ‘Theophoros, (qui portat Deum, 하느님을 모시고 다니는 사람)라는 그의 또 다른 이름도 그의 깊은 신앙 및 하느님과 맺는 짙은 關係를 알려주고 있다.

後代 敎父들(뽈리까르뿌스, 에우세비우스, 요한 크리소스또무스)이,이냐시우스 주교 순교자에 대하여 증언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決定的 資料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가 두 使徒, 베드로와 바울로를 계승한 안띠오키아의 제 2대, 또는 제 3대 主敎였다는 점과, 로마서간 4,1 의 ≪나는 밀알, 맹수의 이빨에 갈려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하느님의 밀알이다”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그가 확실히 맹수들에 의하여 순교했다는 사실만이 반복, 강조될 뿐이다.

사실 그 외에도 그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袍敎錄」을 통하여 전해지고 있지만, 거기에는 人爲的으 로 과장된 요소와 또 후기에 첨부된 내용이 많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중에 대 표적인 것으로는 로마의 狗敎錄과 안띠오키아의 순교록이 있다. 후자의 순교록은 뜨라야누스 황제 (97?117 在位)가 107년에 안띠오키아에 왔었던 것으로 잘못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 年代를 歷史家 에우세비우스는 이냐시우스가 순교한 바로 그 해〔年]라고해석하고 있다.

이와같이 稀敎現場의 구체적 상황은 알지도 못하고 전해지지도 않지만 그가 그리스도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처형대상이 되어 군인들에 의하여 로마로 압송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또한 우리는 그의 狗敎旅程을 그의 書簡集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다. 그는 바다를 거쳐 (안띠오키아ㅡ셀류키아 항구ㅡ킬리키아 또 는 빰삘리아) 또 陸路로 소아시아를· 지나면서 필라델피아를 거치고 스미르나에서 얼마간 머물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에페소, 마네시아, 뜨랄리아 교회 등의 사절단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애타는 마음과 존경을 나타내며 순교자에게 뜨거운 이별의 인사를 드린다.

이 기회에 이냐시우스는 세 지역교회에 각각 1통씩의 편지를 발송하고 동시에 로마害簡도 집필하게 된다. 다음 여정 뜨로아스에 와서는,안띠오키아에서 박해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필라델피아, 스미트나,뿔리까 르뿌스 둥에게 각각 1통씩의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필립비, 테살로니까 등지를 거쳐 로마에 끌려온다. 그는 확실히, 그가 간절히 바라고 각오했던 그 죽음을 원형극장(Coloseum)에서 당했다. 순교록은 그의 뼈가 신자들에 의하여 안띠오키아로 옮겨져 신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전해준다.

교회는 10월 17일을 그의 축일로 기억 존경하고 있다.

1. 일곱 서간의 내용과 구성

일곱 개의 서간은 ① 에페소 교회에 보낸 편지, ② 마네시아교회에 보낸 편지,③ 뜨랄리아교회에 보낸 편지, ④ 필라델피아교회에 보낸 편지, ⑤ 스미르나교회에 보낸 편지, ⑥ 뿔리까르뿌스에게 보낸 편지, ⑦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안띠오키아에 서 로마로 가는 狗敎 旅程에서 쓰여진 이 일곱 서간은 위에서 언급한바와같이 ①②③ 세서 간은 스미르나에서, 그 각 교회가 베푼 은혜와 관심에 감사하면서 쓴 것이며, ⑦서간도 스미르나에서 로마의 신자들이 자신의 구출을 위하여 무엇인가 애쓴다는 소식을 듣고,그것을 만류하면서 자신의 순교적 자세와 신앙을 토로하면서 쓴 글이며, 나머지 ④ ⑤ ⑥ 세 서간은 뜨로아스에서 집필한 것이다.

(1) 첫 세 서간

같은 곳에서 같은 動機와 Β的으로 쓰여진 것이기에 내용과 구성도 대동소이하며 平行을 이루는 共通點을 지니고 있다. 이 각 서간은 전반부에서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교회의 一致와 和睦을 위하여 주교에게 순명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당시 교회 내부에서 야기된 이단과 이선에 대한 경고및 위선자들과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현혹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어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다.

(2) ④⑤⑥서간
이 세 서간도 앞의 서간들과 내용이 비슷하다. 즉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해치는 분열자에 대하여 대항할 것을 가르친다. 또한 신앙을 해치는 假現說(Docetismus)을 거스려 정통설을 확립하며 목자들에게 순명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특히 뽈리까르뿌스 서간에서는 주교의 임무와 사명을 강조 재확인하면서 젊은 주교에게 긍지와 자부, 용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주교는 영육간 만사에 있어 파수꾼이어야 하며, 과열된 상태를 안정시키고 병든 자, 상처받은 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이며, 이단을 거스려,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굳세고 항구 한 사람,과부, 노예,부부 그 누구에게나 벗이 되어야 하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 모두에게 관심을 두어야 할 사람과 실천의 사람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3) 로마서간

위의 여섯 서간과는 달리 이 로마 서간에는 敎階制度나 異端에 대한 경고라든가, 언급이 없고 다만 그는 이 서간을 통하여 그의 신앙자세,주님께 대한 사랑, 승화된 인간의 신비적 면을 감동적으로 묘사 고백하고 있다. 성실한 인간의 고백,진실한 신앙인 의 실천,그것은 時空을 넘어서서 누 구에게나 공감을 주며 시들지 않는 싱싱함을 전해준다.

죽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곧 영 생의 "시작, 새로운 탄생일 뿐이다. ≪지구를 떠나 하느님께로 향하는 황혼의 태양이 얼마나 찬란하고 영광스 럽습니까! 나를 그분 계신 곳으로 가게 해주십시요”(로마 2,2). ≪여러분의 사랑이 결국은 나를 해치는 결과가 될까 두렵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갈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만나기란 좀체로 쉽지 않습니다”(로마 1,2; 2,1; 4,1).

이와같이 우리는 그의 서간을 통하여 그리스도 초기교회의 모습과 내 적 자세를 엿볼 수 있으며 이냐시우스 자신의 신앙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 다, 우리는 그톨 통하여 깊은 감동을 받으며 심금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꿰뚫고 하늘로 불 타오르게 한다.
그의 글은 古典體는 아니지만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로 문장 을 구성하면서 반복된 표현과, 寓意的 象徵的 및 암시적 표현을 통해 그 의 生動性과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일곱 서간은 ?義史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 가르침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하느님의 구속사업이다. 하느님은 세상과 人類를 죄의 상태에서 구원하신다. 구원의 역사에 서 예언자들은 메시아를 위한 준비과정이며,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완성시킨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수 있는가!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스승이다”(마네 9,1).

(1) 神人 예수 그리스도

이냐 시우스는 예수그리스도의 神人性을 明白히 천명하면서 반복,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神觀, 敎會觀, 信仰, 삶을 포함한 全存在의 영역에서 중심이며 원천이다. 그는 信仰敎義에 대한 理論的 이해와 설명 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살고 ≪錢한 사람이었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랑하고, 자신의 몸으로 그를 說破하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그로 하여금 아단과 오류에 대하여는 더할 수 없이 강한 자세로 조금도 양보치 않고 단죄하며 거부하게 만든다. 사실 이단자들에 대한 그의 표현은, 예를 들어 원수, 늑대, 물어 뜯는 개, 짐승,주검의 비석, 썩은 무덤,영원한 불 속에 던져질 자, 사 탄의 악취 등등으로 매우 거칠다. 이와 같이 그는 진실이 허위와, 진리가 거짓과, 정의가 불의와, 올바름이 不正과 그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타협될 수 없음을 明白히 일깨워주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이단과 오류, 그 위선과 기만을 거스려 항변하고 있다.

첫째, 그는 모세 律法의 준수를 고집하는 유다 主義를 거스려 율법의 한계를 말하머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만이 참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뚜렷 한 목표와 확실한 완성,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시되었고 이루어졌 다. 따라서 신앙인은 파수꾼의 자세 로서 깨어, 이진리를수호해야한다.

둘째, 그는 假現說을 거부, 배격한다. 가현론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人性을 부인한다. 그들은 人間 예수를,오직 外形的 顯現, 外樣 (appwentia) 또는 幻想(phantasma)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고통, 수난, 죽음, 부활 둥의 의미가 근본 적으로 달라질 뿐 아니라 실제로는 그 사실 자체가 부인된다. 그뿐 아니 라 결과적으로 성찬예식올 통하여 이 루어지는 성체 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성까지도 부인하기에 이 른다. 이 이단들은 一種의 유다 靈? 主義 사상의 형태로써 混合된 誤謬 사상이다.

이냐시우스는 바로 이러한 이단설을 거스려 예수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을 고백하며 가르치고 있다. “예 수 그리스도는 영육간의 唯一한 의사(medicus unicus corpora lis et spirituaiis)≫ 세상에 나셨으나 영원하신 분(genitus et ingenitus) , 마리아에게서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나신 분 (natus ex Maria eta Deo), 수난하셨으나, 조금도 다치지 않으신 분(passibilis et impassibilis)"이다(에페 7,2).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神人 兩性을 주장하는 가르침 속에서 동시에 우리는 성부와 맺는 그 關係를 알 수 있 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를 따 라서는 다윗의 후손이지만(descendens ex stirpe Davidis secundum carnem),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Filius Dei secundum voluntatem et potentiam) 임 을 명백히 고백하고 있다(스미 1,1).

여기서 우리는 잠깐 최근 解放神學 者들이 어째서 구원과 해방을 ㅅ問性 의 관점에서 또 교회의 사회적 성격 에서 이해하며 설명하는지 그 이유의 암시를 받게 된다· 사실 초월신학, 실존신학, 인격주의 신학 또는 근자 에 와서 종말론 신학으로 불리우는 이 모든 신학의 움직임들이 그 나름 대로 .신앙과 구원을 설명 시도하고 있지만, 구체적 삶의 현장,그 현실, 그 人間, 그 상황에 뿌리박지 못한 채 一種의 ‘초연한 자세’로서의 극복만을 말하고 있다면 (J.B. 멧츠, 敎會의 社會的 기 능,「神學展望 29號 pp. 6-7 참조), 그것은 사실 새로운 형태의 假現說에 빠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G. 구티에 레즈, Γ解放神學 분도출판사 1977. pp. 281-232 참조),

구체적 人間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 의 실현과 완성을 말할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면 여기서 우리는 똑같은 모 양으로 구체적 현실을 통해서 구원의 절이 열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神人 예수,그 양면성은 나누일 수 없는 單一의 ?在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 스도의 原聖事 (Ursakrament) 라면 그것은 마땅히 교회가 지닌 可視性 (visibilitas) 과 社會性 (socialitas) 을 통 해서만이 구원이 이어진다는 사실울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와같이 교회의 사희구원과 사회참여는 바로 그리스 도의 降生에 뿌리를 박고 있는신앙고 백의 핵심적 요소이다. 神人 예수 그 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그는 어떠한 교회를 믿고 고백하는 것일까. 새롭 게 降生해야 할 ?會,그 교회는 현실에 눈을 뜨고 그 속에 뛰어들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진정 神人 예수 그 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 된다.

(2) 敎會論

① 이냐시우스는 교회를 ‘희생제물 의 봉힌소,(θυσιαστ?ριου; locus sacri-ficii) 라고 부르고 있다. 이 표현은 성 참례를 제사로 보았다는 간접적 논중 이 된다. 사실「디다케 J (14장)에서 성 체는 祭物로 표현되고 있다. 성체는 바로 “죽지 않고 죽음을 방지하는 약 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지 는 永生” (Medicina immortalitatis, antidotum mortis et vita aeterna in Jesu Chisto) (에페 20,2)이라 부르고 있 다. 이냐시우스의 이 가르침은 성체 성사에 대한 입증자료로 중요한 의미 를 지닌다.

② 이냐시우스는 ‘가톨릭’ 교회란 말을 첫번째 사용한 敎父이다. 그는 주교의 권위를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가톨릭교회가 존재하듯, 주교가 있는 그곳에 교회공동체가 존재한다” (Ubi episcopus, ibi est communitas, ut ibi Jesus Christus, ibi est Ecclesia Catholica) (스미 8,2). 여기서 쓰여진 ‘가톨릭’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이루어지는 신앙과 사랑의 一致를 가리킨다. 그것은 곧 地域敎會간의 유대를 지칭하는 '하나인 ?會’ (Ecclesia una: unitas Ecclesiae)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 根源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가톨릭’이란 이 表現은 뽈리까르뿌스에 와서 더 풍부한 뜻을 지니며 ‘참된 敎會,(Ecclesia vera)로 이해된다.

③ 로마敎會의 優位性: 로마서 간 에는 다른 여섯 서간과는 다른 독특성이 발견된다. 

ㄱ.  이냐시우스는 서간 서두에서 로마 교회를 다음과 같이 지칭 표현하고 있다: ≪로마인들의 지역에서 主導하는 敎會” (Ecclesia quae praesidet in loco regionis Romanorum: ?τα και προκ?θηται εν τοπω κ?ρ?ου 'Ρωμα?ων) 그리고 “합당하고 순결한, 사랑을 主 導하는 敎會” (digne-casta et caritatis praesidens: ?ξ?ο&γνο? και προκαθημ?νη Τ?? αγ?πη?) 라고. 여 기 서 προκ?θημαι (praesidere) 란 동사와 α·{?%·η (agape) 란 말마디들은 특히 學者들이 關心을 끄 는 對象이 된다. 즉 praesidere(주도하 다, 자리잡고 있다)란 말은 지역교회 내에서 행사되는 주교의 구체적 권위 를 나타내 준다. agape란 그 단어 가 지 니는 풍부한의미, 그리고 상징적인 뜻 때문에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해석이 다르다. 하르낙(A. Harnack) 을 비롯한 프로테스탄트 학자들은 아 가폐를 단순히 사랑, 자비,자선이란 뜻으로 알아듣는다. 때문에 이것은 로마교회가 이제까지 이웃교화들을 위하여 애덕과 사랑, 자비와 자선을 베풀고 판대했다는그돕는 행위를가 리킨다. 바로 이에 대하여 이냐시우스가 칭찬 또는 그 베푼 은혜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단순한 표현으로 본다.

이에 대하여 가톨릭학자들은 agape 란 말마디가 로마 서간에 두번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주시하면서, 여기서 더 깊은 의미와 독특성을 본다. 따라서 그것은 로마교회가 지닌 특수한 위치와, 권위를 뜻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사실 다른 서간에서 agape란 표현은 主敎들의 특수임무, 깨어 수직 해야 할 牧者로서의 사명을 뜻하고 있다. 그것은 똑같이 종속된 의미로 사제, 부제들에게 적용된다. 여기서 agape는 지역교회란 뜻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냐시오가 사용한 ‘가톨릭’이란 말과 연결시켜 생각할 때 이것은 지역교회간의 긴밀한 일치와 교회가 지닌 보편성을 나타냄에 있어 로마교회가 지닌 優位性을 암시해 준다.

좀 다른 견해는 agape를 넓은 의미 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알아듣는다· 그것은 즉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불태워 超自然生命을 얻게 하는 총체를 의미한다. 인도하고 지 도하고 가르치는 교회의 권위, 그것 은 곧 모든 이를 불태워야 할 사랑과 봉사의 임무이다. 사실 사랑은 북음 서에서 보듯이 고백과 중언과 실천을 나타내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구체적 징표가 된다. 부활 후 그리스 도가 세번씩이나 요구한 베드로의 사 랑의 고백의 의미와 함께 로마교회는 베드로의 그 특성과 임무, 그리고 권위를 지니는 것이다.

ㄴ. 그 외에 로마 3,1에 쓰여진 “여 러분은 다른 이들을 가르쳤읍니다≫란 표현은 다른 서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성이다. 사실 다른 서간에 서 이냐시우스는 언제나 일치와 평화, 순명,異端에 대한 경고,守直을 말 하면서 권고 당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이 로마서간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로마교회에 대하여서는 가르치거나 권고할 자격 이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 사해준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로마교 회의 우위성을 말하고 있다. 사실 로 마교회는 두 사도 베드로와 바울로가 전해준 가르침과 그들로부터 받은 권 위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 권위를 이 냐시우스는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로마교회에 대한 이냐시우스의 이러한 중언은 클레멘스와 이레네우스와의 증언을 연결시켜 주는 다리와 같은 구실로서 중요한의미를 지니고 있다.

④교계제도: 이냐시우스는 클레멘스와 같이 하느님께 기원을 둔 교계 제도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 미 전제된 것으로 하고 그는 주교의 권위 및 그 행사권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주교는 교회를 나타내는 可視的 징표이며 판단、기준 이다. 주교는 ‘교회의 降生,,(ecclesia incarnata) 이다.「디 다케 J에 언 급되 어 있는 예언자들에 대한 가르침은 이냐시우스 서간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敎階는 주교 중심으로, 主敎 君.-fe制 (Episcopatus monarchicus) 이 다. 주교를 가운데 놓고 사제와 부제들은 둘러서 있다. 주교는 하느님 또는 예 수 그리스도를 표상해주며 사제들은 사도로서, 부제들은 봉사자로서 묘사 설명된다· 따라서 주교가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命題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렇기에 그 직능또한초자연적인 것 이다. 이 점은 이미 사도 바울로도 1 디모테오 4,11에서 명백히 한 바 있다. 누구도 주교를 젊다는 이유로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권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ㄱ. 主敎는 신자들의 스승이다. 주교는 올바름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 척도도 된다. 따라서 주교와 함께 하고 일치한다는 것은 이단과 오류에 빠지지 않는 표시일 뿐 아니라 더 나아 가서 진리에 머무는 보증이 된다고 가르친다. 이 이유 때문에도 주교는 그 자신 계속 신자들을 이끌며 모두의 일치를 위해서 몸바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주교와 사제들과의 관계는 거 문고의 紘이 그 악기에 부착된 것과 같다. 하나가 될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調和를 이를 수 있다.

主敎는 大司祭이며 은총의 분배자이다. 따라서 성세, agape, 성체 등은 주교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부부일치의 약속도 주교 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신앙인은 육체와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여기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결혼관과 童貞觀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로에게 짙은 영향 을 받았다.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영원한 일치 속에서 이해 설명 하고 있다. 그는 또한 동시에 동정의 가치도 높이 평가, 인정하여 권고하고 있다.

3. 實踐的 雄性 一 神秘主義

그가 바울로, 요한 두 사도에게 신학적 가르침의 짙은 영향을 받았듯이 그의 ?踐的 규범, 영성생활의 원칙도 두 사도가 제시한 그것을 따라 종합 묘사된다. 바울로가 말하는 부부 사랑의 비유와 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는 位格的生의 참여와 일치사상이 이냐시우스에게 와서는 하나로 묶어지며 예수 그리스도를 이상적 목표로 놓고 끊임없이 달려간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位格에의 침투 및 그리스도의 內在가 그의 靈性을 특징지워준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내 안에, 신자들 안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 나타나고 실현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따라서 초기교회에서 열망되었던 그리스도의 임박한 再臨思想 (parusia) 이 이제는 새로운 次元에서 이해되며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루어지는 구체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열망,그 ?現으로, 그 現存의 체험이다. 이 현존의 체험은 구체적 행동 실천을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일이다.

(1) 그리스도를 따름: 狗敎

따라서 信仰人의 열정은 구체적으로 순교로 나타난다. 순교야말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장  완전한 길이다. 그리스도가 聖父의 뜻을 따랐듯이, 이제 신앙인은 그리스도의 뜻과, 그가 걸어간 길을 따라 나서야 한다. 참으 로 그를 위하여 생명까지 바칠 각오와 결단이 서 있어야 한다. 이 때문 에 그는 감히 죽기를 원한다. 그 죽음은 죽음이 아니고 새 生命을 싹트게 하는 過程이기 때문이다. 소리는 發說되면서 비로소 '말씀’ 곧 뜻을 이루고 전한다. 이와 같이 인간도 죽음 그것을 통해서만 영생으로 옮아가는 것 이 다. ‘목소리 ㅡ 말씀,과 ‘죽음 ㅡ 영생’의 도식에서 우리는 그가 이해 한 신앙의 높은 차원과 영성을 볼 수 있다. 즉음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하나가되기 위한필수적 條件이다. 음식이 섭취되어 사람과 하나가 되듯 죽음을 통해서만 구원과 일치가 이루 어진다.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 는 온갖 형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염원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나는 제자가되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아무것도 내가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질투해서 방해하지 말 것 입니다, 불도 좋고 십자가도 좋고 맹 수의 무리도 좋으며, 四肢를 짓이기고 찢어도 좋고, 배를 갈라도 좋으며,팔다리를 짜르고 온 몸을 난도질해도 좋습니다. 가장 잔인한 형벌도 좋습니다. 다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갈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로마 5,3).

(2) 그리스도의 現存과 그 ㅡ致

그는 신앙 안에 內在하시는 하느님을 강조한다. 사람은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성전이다. 하느님의 이러한 현존은 신앙과 사랑의 열매이며 구원의 표지이다. 신앙인은 이제 무아지 경에서 사랑의 極致인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일치를 꿈꾸며 실현한다. 이 러한 것은 θ制,현실극복, 기도 등 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냐시우스는 바 로 이러한 삶을 살고 몸소 實踐,行動, 헌신한 분이다.

자신 안에 內在하며 現存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면서, 그가 바로 모든 신자, 모든 교회를 묶어주는 끈과 頂點으로 고백하고 있다. 예 수 그리스도에 대한 現存의 체험은 그를 필연적으로 교회 공동체 속에 살게 하여 일치시켜 주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참고 서적〕
(1) B. Altaner ? A. Stuiber, Patrologie, Freiburg/Br. 1966, pp. 47-50.
(2) F. Cayri, Patrologie et Histoire de la Theologie, Paris, 1953, pp. 61-71.
(3) M. Pellegrino, Litteratura graeca cristiana, Roma, 1963, pp. 10-12.
(4) Quasten, Patrogia, Torino, 1967, 64-75.
(5) 徐公錫, 로마인돌에게(성 이냐시오),「神學展望J 24號(1974), pp. 103-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