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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世界에의 새로운 奉仕
1978년 9월호 (제 59호)
이 글은 예수회 총장 배 드로 아루빼 신부가 1977년 11월 21일 캐나다 몬트리을에서 열린〈제3차 秒I美 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 - X. 신앙의 미래 -
1978년 9월호 (제 59호)
1. 信仰의 未來一世界의 未來 의심없이 ㅅ類는 오늘날 비판적인 過渡期에 처해 있다. 깊이 파고드는 願覆...

使徒敎父 (Patres Apostolici)
1978년 9월호 (제 59호)
使徒敎父란 1?2세기 초의 그리스 도교 著者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12사 ...

사도 베드로와 주 예수 그리스도
1978년 9월호 (제 59호)
베드로는 이미 成ㅅ이 되었을.때 예 수를 만나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 그 는 이미 인간성숙의 제단계를 거...

크리스찬과 世上
1978년 9월호 (제 59호)
現世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요한 15,19; 17,16 참조) 오직 하느 님과의 일치를 삶의 궁극목적...

惡의 本質과 惡의 救援
1978년 9월호 (제 59호)
- 마르틴 부버의 對話的 實存思想 - I..序 論 마르된 부버 (Martin Buber, 1878~ I965)롤 가까이 알게 된 ...

轉換期 祈禱의 定立
1978년 9월호 (제 59호)
祈禱는 인간이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여,홈승과 감사’ 속죄와 청 원을 발하는 종교 내지 신앙행위의 ...

가시와 장미
1978년 9월호 (제 59호)
"나는 나자신에게 수수께끼가되었고,그래서 나는 내 혼에게 물었다,,고, 고통과 은총을 체험한 성 아우...

고대 수도자들의 기도
1978년 9월호 (제 59호)
ι. 성 베네딕또의 意義 이 글을 쓰게 된 의도는 본래 베네딕또 聖ㅅ의 祈禱에 대하여 고찰하려 는 것이었...

전례적 기도로서의 시편
1978년 9월호 (제 59호)
I. 머리말 ㅅ類文化史에 있어서 고대로부터 宗?는 예술의 모체요 그 발상지의 역 할을 했다. 종교적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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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輯·祈禱生活 1978년 9월호 (제 59호)

전례적 기도로서의 시편

崔 允 ? (가톨릭大 敎授.神父)

I. 머리말

ㅅ類文化史에 있어서 고대로부터 宗?는 예술의 모체요 그 발상지의 역 할을 했다. 종교적 집회와 기도의 장소로서 神殿의 건축양식이 발달됐고 종교적 행사의 儀式을 위한의상과 장식의 장교한공예품이 발전되었으며, 神에대한 종교적체험을개별적으로 또는단체적으로표현하는 찬미와 애원의 祈禱와 詩的 찬미가와 풍악이 발전했다고 하겠다. 이와같이 야훼 하느님을 믿어오던 舊約의 이스라엘백성은 야훼 하느님이 출현한 聖所룰 찾아 그 곳에 聖殿을 건축하였고 그들이 체험한 야훼께 대한 응답으로서 의 기도를 바쳤으며 讚美의 노래와詩歌를 불러왔다. 이러한神의 .체험은 여러 곳에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이루어졌다. 즉 전쟁터에서, 천막과 오두 막의 고독 속에서,광장의 재판석에서,성전과 넓은 광야와 목장에서, 도 시나농촌의 田園에서또는큰집회나각개인의 생활환경 안에서 이루어 졌다. 또 이스라엘은 자신을 선물로 주시며 가까이 오시는 야훼 하느님올 '상봉하며 체험할 때도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자신을 그들에게서 멀 리 하시 는 야훼 를 체 험 하기 도 했 다.

이러한 체험을 표현하는 그들의 기도와 외침과 환성을 대대로 이어가며 수집하여 수록한 것이 詩篇이라 하겠다. 여러가지 모양으로 이루어진 神 의 체험이기에 그 표현방법이나 내용도 다양하다. 어느 때는 야훼를 찬미 하는가 하면, 어느 때는 애원하며 청원한다. 神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인 간과 신과의 대화가 바로 기도요,그를 전인격적으로 고조화시키는 것이 찬미와 감사,애소와 청원의 노래라고 한다면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詩篇을 이스라엘백성이 敬神禮에서 활용했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타당하다고 하겠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계약의 백성으로서 그들 의 종교 및 일상 기도생활에 조상들이 전해준 詩篇을 사용하였고 특별히 대축일들과샤밭날단체적집회에서 그날축제에 맞는 시편을읊어왔디·. 즉시편은구약의敬神禮에 있어중요한祈禱書의역할을했다.

이제 구약의 啓示宗敎를 완성하여 그 자리를 계승한 신약의 계시종교가 그리스도교라면 역시 경신예배의 기도서인 시편도 물려받았다는 것은 주 지의 사실이다. 新約聖書 안에도 예수님 자신이 詩篇의 말씀을 통하여 아 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셨음을 여러 대목에서 볼 수 있으며(마태 27,46; 루가 23,46) 40개의 시편이 명문화해서 인용되고 있고, 시편의*내용을 반영하는 대목은 훨씬 더 많다. 예수의 제자들인 사도들뿐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시편 노래를 즐겨하였다. “성령으로 충만하시오. 그래서 성시와 찬미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 십시오”(골로 3,;6). 이.와같이 2세기경에는‘ 시편은 교회의 기도에 있어서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교회의 公的祈禱인 성무일도의 중심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 150篇의 시편이며 이는 미사뿐 아니라 각종 예식서들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 말 씀의 전례에서 활용되고 있다. 私的祈禱와 특히 ?會의 공적기도인 典禮 的 祈禱 안에서 활용되는 詩篇에 대한이해와 그 중요성이 아용도에 비하 여 우라 크리스찬들에게는 너무나 도외시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는 여기서.典禮的 기도로서의 시편의 義意와 시편 낭송의 방법 등에 대하 여 간략히 언급함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II. 뽕禮的 祈禱로서의 詩篇

1. 典驢的 祈禱

전례적 기도는 私的인 기도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교회공동체가 교권으 로부터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성직자의 주관하에 교황청 인준 전례서에 의 하여 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을리는 기도다. 따라서 전례서에 규정된 기도들을 말한다. 이러한 법적인 의미로서 보는 전례적 기도롤 달리 말하 면 하느님의 백성인 信仰共同體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률 드리면서 구원 의 은총과 그에 필요한 모든 축복을 청하면, 하느님은 그의 찬미와 청원 을.들어주는 상호의 대화요 이 대화의 중개.역할을 하는 분이 바로 인간과 하느님과의 중개자인 그리스도다. 그래서 전형적인 전례적 기도는 共同®를 대표하는 주례자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 지께 감사와 찬미와 청원을 하는 기도다. 인간과 하느님 사이를 이어주는 길이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우리가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힘을 주는 성신이 없이 는 기도가 하느님께 올려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미사중의 기도(예컨대 본기도, 제물 위에 하는 기도, '영성체 후 기도,성찬기도등)와 각종예식서들안에 있는 기도들의 맺음부분이 성 신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Per Christum Domlnum Nostrum; 우리말 번역은 ‘우리 주그리스도의 아름으로'라고했는데 재고할여 ? 지가 있다고 본다) 하느님 아버지께 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양식 이 초기 그리스도교로부터 시행된 전례직 기도의 형태였고 오늘날에도 대 부분의 전례적 기도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전례적 기도의 맺음부분을“그는 세세에 영원히 살아계시고 왕하시나이다" 하는 형태를 볼 수 있다. .

이러한 양식이 생겨나게 된 이유외- 동기는 초대교회에서 발생한 그리스 도論의 논쟁에서 찾아이:.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神性을 반대하는 아리 안裂敎가 그 반대의 근거로 제시한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 이다,,하는 전례적 기도의 맺음양식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 는 하느님의 피조물 중에 至≪외 피조물이'요 가장 위대한 예언자요 하느 님을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분이지만, 하느님과 同一한 神性이나 本質 을 지닐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하고 공적으로 信仰을 고백하는데 ‘통과 하는 분,과 '그분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도달되는 종착점인 하느님,과 는 同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보다 下位에 있 으며 그에게 종속되어 있는 분이지 본질상 성부와 同一한 神性을 지니지 않았다는 이론을 아리안裂敎가 주장하고 신자들에게 전파함으로써 일대 혼 란이 빚어졌다. 이러한 혼란상태에 대처하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께 대한 올바른 信仰,즉 그는 참 인간이시며 동시에 참 천주시라는 것을 주지시 키며,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의미는 우리의 중개자요 대사제로서 그의 ㅅ間性에 관계하여 말하는 것이지 그의 神性에 관여하는 말이 아니라고 해명하기에 교회는 급급했지만,신자들이 이러한 신학적인 깊은 신앙진리 를 이해할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디‘

중요한 信仰眞理에 대하여 혼란상태에 있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神性을 강조할 필요성을 느낀 주교와 지방교회에서는 모든 公的祈禱의 맺음 을 ‘그리스도윤 통하여,라는 말을 삭제하고 ≪그는 세세에 영원히 살아계 시고 왕하시나이다”로 끝맺도록 했다. '그는,바로그리스도요 ‘세세에 생 활하시고 왕하시는 분은,神만이 할 수 있기에 그리스도는 참 神이시라는 信仰眞理를 보존하였다. 그래서 옛 전례적 기도들 중에는 그 기도의 내용 상 하느님 성부께 향한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세에...’ 라는 맺음 양식을 많이 볼 수 있다. 본래 '그는 세세에…’라는 맺음의 기도는 그리 스도께 향한 기 도일 때 하는 양식 이 다. 그리 고 典禮的 祈禱의 구조는 우 선 共同體의 이름으로 바치는 기도이므로 ‘기도합시다,‘감사합시다,‘찬 미합시다,등의 기도에 초대하는 부분이 있다.그다음, 기도를들어줄 분 곧 하느님을 부르고 이제 기도의 내용과 동기들을 품달한 후 중개자 즉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를 들어 허락해 달라고 청원하며,. 하느님의 영원한 神性에 신뢰하고 그에 연결지어 끝을 맺는다.

전례적 기도는 그리스도신자들인.대중을 상대로 하므로 극히 사소하게 생각되는 부분이라도 신자들의 신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잘못되는 경우에는 그들을 언제나 크게 誤導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례적 기도뿐 아니라 단체적 기도의 내용은 교회와 적어도 主敎의 인준 을 받게 되어 있으며 아무리 사소하게 생각되는 전례의 부분이라 하더라 도 그를 변경시키기 위해서는 지방교회에서는 주교단의 3분의 2의 찬성 을 받아서 교황청의 인정을 받게 되어있다. 전례적 기도는 私的 및 개인 적 기도가 아니라 公的 및 共同體의 가도이기 때문에 주례자의 임의로 변 경할 수 없으며 사적인 것을 삽입해서는 안된다. 만일에 전례적 기도에 주례자나 기타의 사람이 사적인 것을 임의로 가감하는경우에는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신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것이며 사목상 큰 손실을 가져올 것 이다. 더구나 첨가 삽입한내용이 오류적인 것일 경우에는 많은 신자들을 그룻된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典禮憲章에서도 典禮의 調節權 의 최하 단위가 主敎라고 규정하고 그외에 사제일지라도典禮書의 규정 밖 에서 어떤 것을 가감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22항).

2. 典禮行爲 안에서의 詩篇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약의 시편은 이스라엘이 神의 體驗을 노래한 것을 수록한 것이다. 신의 체험이 이루어졌던 장소와 사건의 다양 성에 따라서 또 시기와 神을 체험한 개인이나 집단의 다양성에 따라서 시편의 文學類型도 다양하다. 오늘날 성서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詩篇 안에는讚揚詩,哀願詩,感謝詩, 야훼의왕권과동시에 이스라엘의 王을 찬양하는 君主詩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을 메시아직 詩, 敎訓詩 등 여러 가지 형태로 區分하고 있다. 각 시편이 생성된 생활배경과 시대가 다르고 그 내용과 유형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詩≪堪의 노래들은 유대교 敬神行事 에 도입되었고 시편들 모두가 어느 시기에든 한번은 이스라엘의 敬神生活 의 구체적 표현양식이 되어 그 기능윤 발휘했다고 하겠다. 敬神禮 안에서 활용된 기도로서의 시편의 구조도 기도에 초대하는 도입부(예컨대 '너희 는 주님을 찬양하라,만백성이여 !,‘야훼님께 너희는 환호하라,), 기도 의 동기와내용을'하느님을 불러 이야기하는 展開部와축복이나 감사,청 원이나 신뢰를 표하는 애소문으로서 끝을 맺는 終結部로 이루어져 있다. 유대교의 회당 예배에서 활용된 시편을 옮는 방법은 선창자나 합창단이 선창으로서 시편의 한 구절을 옮으면 백성들은 그 구절을 반복했고 다시 선창자가 詩篇의 節句들을 노래하면 백성·&은 먼저 처음에 한 짧은 구절 을 반복하여 응답을 하였다.

이제 이 시편을 聖-害로서뿐 아니라 祈ifIS로서 물려받은 그리스도교는 초창기부터 그의 종교직 행사와 敬神禮拜 안에서 활용하면서 발전시켜왔 다. 이와같이 교회의 기도인 Si務日® 안에서 150의 詩篇이 전부 활용되 고 있을 뿐 아니라, 미사성제의 여러 부분(예컨대 입당송,. 층계송,알텔 루야의 小句,봉헌송과 영성체송)에서,또 각종 禮式書들 안에서 읊어지고 있다. 詩篇이 교회에서 공적으로 인준된 典禮書 안에서 옮어진다는 法的 이며 외형적 의미에서만 전례적 기도라고 하는것이 아니라,위에서 본 시 편의 단체적 敬神禮 안에서 활용되는 구조적 면이나 그 내용적 면에서 전 례적 기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1) 詩篇은 新約의 대사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

신약의 하느님의 백성은 구약의 이스라엔백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詩篇 을 노래하고 기도한다고 하겠다. 새로운 차원의 里程標는 바로 그리스도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詩篇은 자기의 根源에서의 균열됨이 없 이 새로운 定位와 새로운 理解地平을 지니게 됐다. 다시 말하면 시편은 구약의 救世史가신약의 완성을지향하는일반적 개방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편 안에는 이러한 完成의 定向이 제일차적으로 마차 ‘預 言과 그의 成就,라는 식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편의 그리스도論的 관계는 더욱 깊고 근본적이라 하겠다. 찬미와 애원을 내용으로 하는 시편에는 당신의 백성과 계약을 맺는 하느님이 상대자로 출현하고 있다. 이 하느님은 그의 높은 神的 지위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으로서 안간에게 來臨하고 있다. 이러한神의來臨思想,안에서,하느님아들의 ㅅ 化에서 이루어진 聖子의 降臨을 이미 선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동시에 이 로써 하느님의 본질적 구원행위가밝히 드러났으며 이 행위는 ‘下降과 上 昇,‘卑下와 顯揚,으로서 표현될 수 있고 이것의 절정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건에서 이루어졌다.

이와같은 광범한 事實的 관계에 근거를 두고 교회는 옛부터 시편을 두 가지 모양과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지어 기도와 노래로 옮어왔 다. 즉 한편으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으로서의 그리스도 자 신에게 향한 기도로 시편을 노래하며,다른 면으로는 하느님 백성의 머리 요 대표자로서 하느님 아버지께 향한 예수의 기도로서 노래한다. 즉 교회 가 노래하고 기도하는 시편의 내용은 인간이 참 사람이시요 참 천주이신 그리스도에게 향한 것과 신비체인 하느님 백성의 머리로서 예수 그리스도 가 그 백성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향한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물론 두 관점이 다 救援史的 의미를 속속들이 지니고 있지만, 聖書上으로나 典禮 上으로 볼 때 후자의 관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역시 대 부분의 시편이 계약의 상대자인 神의 말씀에 대한 같은 계약의 상대자로 서의 인간의 응답으로 나타나는 성격에서 볼 때 후자의 관점이 더욱 부합 하기때문이다.그러므로신약의하느님백성은주로ㅅ間 가운데거처한 인간이며 따라서 인간적인 모든 것에 신뢰심을 가질 수 있고 계약을 충실 히 이행하는자로서박해와 고통을당하고처참하게 죽었지만 아버지께 로부터 다시 소생케 되었으며 그의 오른편에 올림을 받은그들의 머리요 주님인 분과 함께 일치하여 詩篇을 노래한다. ·

이에 대하여 典禮憲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원한 신약의 대사제이 신예수그리스도는인성을취하심으로써천상의궁전에서영원히읊어지 고 있는 찬미가를 이 지상 유배지에 가져오셨다. 그이는 이 神的 찬미가 를 당신과 함께 노래하도록 온 인류를 당신에게 결합시키신다. 그이는 이 히祭的 과업을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계속 수행하시니, 교회는 미사성제 를거행함으로써뿐 아니라,다른 여러가지 방법으로도특히 성무일도룰 바 침으로써 하느님께 간단없이 찬미를 드리고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전 구한다”(83항). 찬미의 노래인 사편이 인간과 하느님의 중개자요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지체들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전구하는 "그리스도의 기도”(84항)라면 또 성무일도를 통하여 그리 고기타 典禮書들을 통하여 시편을 옮고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외 배필의 가장 훌륭한 영광의 한 몫에 참여하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하느님께 찬 미를 드리면서 자모이신 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어좌 앞에 서 있기 때 문”(85항)에 시편은 의당 典禮的 祈縫이며 그 性格을 지닌다고 하겠다.

(2) 典禮 안에서의 詩篇 詠誦法

典禮的 행위는 私的인 행위가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公的인 행위이기 때 、문에 典禮 안에서의 시편의 활용도 이 共同性에 이바지해야 한다·· 따라서 시편의 詠誦方法도 전례적 규정을 따라 옮어져야 한다. "전례 집전에서 성 ■직자이든 평신자이든 각자 자기 직무를 수행하는 테 있어서는 禮式의 성 질과 전례규정을 따라 자기에게 관계되는 모든 부분을,그 E] 고 오직 그것 만을 행해야 한다”(전례헌장, 28항). 이 典禮的 規定은 각 전례서에 따라서 또 시편을 노래하는 관계자에 따라서 또 그 구체적 상황에 따라서 다르기 도 하고 또 변화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典禮行·爲 안에서 읊어지는 詩篇 은 일반적으로 舊約 유대교 회당의 .예배에서 유래된 對應誦의 성격을 그 대로 지닌다고 하겠다. 聖務 Η ≪에 있어서는 먼저 선창자가 읊을 시편 중 에 한 구절을 후렴 (전럼)으로 하고 그다음 시편을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미 때에 혼자서 성무 일도 의 시편을 낭송한다 면 혼자서 다의우고 단체적 으로 하는 경우에는 양편으로 나누어 詩句를 번갈아 할 수 있다. 어떠한 양식으로 하든지 시편을 영광송으로 끝을 맺고,다시 처음 시작에 한 후 렴을 반복한다. 미사성제 중에 입당송,봉헌송(노래로 하지 않는 경우에 는 생략한다),영.성체송의 詩篇句와 聖句는 신자들이 해야 할 몫으로서 성가대와 교우들이 교대로 하거나 혹 전체가 합창으로 하거나 혹은 성가 대만이 할 수도 있다. 이 때에 노래로 한다면 詩句에서 후렴을 로마예식 성가집에서 취한다. 그렇지 않고 낭송을 할 경우 교우들이 외든지,그 중 몇몇 사람이나 혹은 봉독자가 왼다.

이제 미사뿐 아니라 각종 예식서에 있어서 말씀의 전례 중 독서끝에 응 답 시편(층계송이라고 하지만 이는 8세기경에 생겨난 말로서 응답송을 층 계,계단에서 성가대가 노래했기 때문이디-)이 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 을 경청한 후에 그에 대한 信仰ㅅ의 응답인 것이다· 이 응답송은 성가대 가 노래로 하는 경우에는 신자들은 앉아서 경청한다。노래로 성가대가 하지 않는 경우에는 主誦者나 독서자가 후렴송을 외면 모든 신자들이 반 복하고 다음 다시 독서자가 따라오는 구절들을 모든 이가 알아듣도록 또 박또박 외면 매구절마다 신자들은 후렴으로 응답하는 것이 정상이다 (미사경본 지침, 36항). 미사중의 제 2독서 후에 하는 ‘알렐루야,송도 같은 방 법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대응 시편을 모든 신자들이 함께 낭송하 는데 오합지졸의 양상이며 이는 속히 시정되어야 하겠다.

대응 詩篇뿐이 아니라 典禮 중 독서나 심지어는 복음과 사제적 기도까지 도 다 함께 읽으려는 경향이 한국교회 안에서는 너무나 농후하고 실제로 실천되고 전례의 주례자인 사제가 조장시키고 있는 사례도 있는 것 같다. 이는 "전례의 정신과 힘에 온전히 젖어있어야할 사목자들이”(전례헌장, 14항) 典禮의 근본적 개념을 파악하지 못한 처사라 하겠다。典禮行事란 마치 연 극이나 그 연극올 노래화한 오페라와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연극이나 오 패라의 성공은 각자가 맡은 역올 얼마나 충실하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다 른 사람이 할 역할을 빼앗아 한다든지 독창을 할 대목에서 합창을 한다든 지 소프라노를 할 곳에서 베이스를 한다면 조화의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그 러한 연극이나 오페라는 완전 실패작이다. 이와같이 하느님 백성의 공동 체직 행사로서의 典禮行爲도 각자가 자기에게 관계된 모든 부분을 충실하 게 이행하고 또 그것만을 할 때에 하느님을 찬미하고 경배하는 調和의 아 름다움을 드러내고 하느님께 의합한 禮를 드린다고 하겠다.

典禮중의 시편 낭송에 있어서도 정상적, 방법을 따라 읽는다면 미사경본 을 갖고 오지 않은 신자들이나 사제석에 앉아있는 사제와 복사들도(본래 전례에는 신자들이 책을 들고 올 필요가 없도록 꾸며진 것이며 신자들은 간단한 응답이나 후렴으로써 환호하게끔 되어있다) 봉독자가 읽는 것을 귀 담아 듣고 이해하며 마음으로부터 환성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典禮중에 낭독되는 말씀 특히 “성서의 말씀은 그리스도 친히 하시는”(전래헌장, 7항) 宣布의 성격을 지녔으므로 그것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이지 宣布중에 무 엇을 읽는다는 것은 올바른 자세도 아니며 생생한 말로써 대화하는 宣布 의 본뜻을 알아듯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III. 결 어

詩篇이 하나의 聖書로서뿐 아니라 敎會의 典禮書들 안에서 기도로서 늘 활용되어왔고 우리는 이 시편을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언제나 읽어왔다. 이와같이 우리와 가깝고 함께 하는 시편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인지 모르게 ≫ 생소하게 느껴진다. 미는 詩篇의 眞意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편 노래가 인간이 신의 체험을 노래한 것이며 이러한 체험에서 인간의 모든 喜怒哀樂을 하느님께 품달하는 것일진대 神과 ㅅ間과의 대화로서 이 보다 더 위대한 걸작품은 없을 것이다. 또 이 시편이 이미 구약에서 豫示 되었던 신약의 그리스도 사건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次元을 지니게 됐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간이 되신 예수그리스도가친히 이 시편의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 애원과 절규의 祈禱를·올렸다. 이 제 그ㅡ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죽음윤 당하고 부활과 영광에 도달한 ㅅ類의 구원자요 =L 머리로서 그의 지체들과 함께 하느님께 끊임없이 전구하고 있 다. 바로 시편은 인간의 편에 서서 인간을 대표하여 인간과 함께 하느님 을 향해서 하는 그리스도와 노래이다. ‘

우리는 시편을 노래하면시 神ㅅ 그리스도께 직접으로 바치는 詩篇祈禱 도 있고 우리의 형제요 대표자며 머리로서 우리를 대신하고 우리와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詩篇祈磁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 性格에 맞추어 노래하고 묵상할 때에 시편의 β味를 맛들이게 될 것이다. 성무일도가 우 리말로 번역되었으니 그 의무를 지고 있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뿐 아니라 평신도들도 이 기도를 바치기를 권장하는 교회의 정신을 따라(전례헌장, 100항) 詩篇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풍부한 지식을 습득해야 할 것이다(상동 90항). 이를 위한 실질적 효과를 거두려면 사목자들 자신이 먼저 시편에 대한 ·연 구와 眞意를 깨닫고 신자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성경과 전례의 텍스트와 샘에서 취해야 할 강론윤”(상동 35,2 참조) 복음성경에만의 존하지 말고 시편을 주제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