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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世界에의 새로운 奉仕
1978년 9월호 (제 59호)
이 글은 예수회 총장 배 드로 아루빼 신부가 1977년 11월 21일 캐나다 몬트리을에서 열린〈제3차 秒I美 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 - X. 신앙의 미래 -
1978년 9월호 (제 59호)
1. 信仰의 未來一世界의 未來 의심없이 ㅅ類는 오늘날 비판적인 過渡期에 처해 있다. 깊이 파고드는 願覆...

使徒敎父 (Patres Apostolici)
1978년 9월호 (제 59호)
使徒敎父란 1?2세기 초의 그리스 도교 著者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12사 ...

사도 베드로와 주 예수 그리스도
1978년 9월호 (제 59호)
베드로는 이미 成ㅅ이 되었을.때 예 수를 만나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 그 는 이미 인간성숙의 제단계를 거...

크리스찬과 世上
1978년 9월호 (제 59호)
現世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요한 15,19; 17,16 참조) 오직 하느 님과의 일치를 삶의 궁극목적...

惡의 本質과 惡의 救援
1978년 9월호 (제 59호)
- 마르틴 부버의 對話的 實存思想 - I..序 論 마르된 부버 (Martin Buber, 1878~ I965)롤 가까이 알게 된 ...

轉換期 祈禱의 定立
1978년 9월호 (제 59호)
祈禱는 인간이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여,홈승과 감사’ 속죄와 청 원을 발하는 종교 내지 신앙행위의 ...

가시와 장미
1978년 9월호 (제 59호)
"나는 나자신에게 수수께끼가되었고,그래서 나는 내 혼에게 물었다,,고, 고통과 은총을 체험한 성 아우...

고대 수도자들의 기도
1978년 9월호 (제 59호)
ι. 성 베네딕또의 意義 이 글을 쓰게 된 의도는 본래 베네딕또 聖ㅅ의 祈禱에 대하여 고찰하려 는 것이었...

전례적 기도로서의 시편
1978년 9월호 (제 59호)
I. 머리말 ㅅ類文化史에 있어서 고대로부터 宗?는 예술의 모체요 그 발상지의 역 할을 했다. 종교적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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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1978년 9월호 (제 59호)

크리스찬과 世上

李 洪 根 (대구 계산동본당, 신부)

現世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요한 15,19; 17,16 참조) 오직 하느 님과의 일치를 삶의 궁극목적으로 삼 고 있는 크리스찬에게는 ≪하느님과 동 시에 현세’’와의 관계가 바로 자신의 實存的 狀況과 내용이 되고 있다. 그 렇다면 크리스찬은 세상을 超脫해야 하는가? 혹은 적극적으로 現世事에 관여해야 하는가? 특히 오늘날·現世 超脫을 어떤의미로 알아들어야 하는 가? 현세초탈과 현세관여는 과연 서 로 對當되는 개념인가? 이러한 문제 는 오늘날 우리 크리스찬에게 중대하 고도 긴박한 과제일 것이다.

실상 超脫은 ■오늘날까지 크리스찬 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지배해온 靈性의 중심개념이었었다.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는 신자들에게 자 아포기와 현세초탈의 가치를 강조하 였고, 특별히 순교는 그리스도를 가 장 완전하고 철저히 따르는 증거로서 높이 평가되었다. 그러다가 로마의 300 년 대박해도 끝나 열심한 신자들 이 그리 스도를 가장 철 저 히 모방할 수 있는 순교의 기회를 잃게 되자수많은 이들은 을 지키며 국기와 보속과 희생의 생활을 통해 完德의 ■길을 걷 고자 했던 것이다.'

초대교회의 크리스찬이 현세를 도 피하려던. 경향은 역사적 내지 신학적 상황으로 보아 거의 필연적인 귀결이 었다. 우선 그들이 처한 시대와 사회 는 多神敎와 皇帝崇拜의 異敎世界였 으므로 그리스도신자는 이교사회에서 적대시되고 따라서 그리스도교와 異 敎勢力은. 共存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 신자들은 현세권력에 대해 敵對意識 을 가질 뿐 아니라, 초대신자들의 현 세관과 특별히 주님의 再臨이 임박했 다는 終末思想으로 말미암아 현세적 가치는 부정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침;과 현세와의 관계 는 본래 그리스도와 세상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따라서 크리스찬의 현세참 여나 현세초탈은 그리스도 자신의 현 세에 대한 태도를 본받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바로 모든 크리
스찬이 걸어갈 완덕의 길이요 모범이 기 때문이다.

교회는 초세기부터 로마제국의 多 神敎와 헬레니즘의 문화권에 살면서 근 300 년간 異?思想과 대결.하여 오 던중 마침내 로마는 그리스도의 십자 가 앞에 무릎을 끓게 되었으나 그 동 안 교회 안에는헬레니즘의 세력과異 ?的 영향이 꾸준히 스며 들어왔고 그 결과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희랍적으 로 해석하려 했었다. 유대-그리스도 교의 세계관은 희랍-아라비아의 二 元論的 및 ?的 세계관의 영향을 받 아ㅡ예를 들면 靈智主義(Gnosticism) 와 마니?(Manichaeism) ㅡ세계를 자 연과 초자연,肉과 靈, 물질과 정신, 현세와 천국으로 兩分하여 전자는 무 시하고 후자의 가치를 긍정하고 강조 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고 이러한 思 潮는 줄곧 중세에까지 계속되었던 것 이다. 이리하여 현세부정 내지 현세 초탈은 크리스찬 영성의 특징인 것처 럼 생각되었고 특별히 수도자들에게 는 修德의 中心辣超가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제2차 바티칸 공 의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크리스찬 의 현세참여와 현세사물에 대한 가치 긍정이 크리스찬 영성의 주요 테마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같다. 그러나 오 늘날 그리스도 강생의 신학과 過程神 學(Process Theology)에 근거하여 크 리스찬의 현세활동의식과 미래지향 적인 動的 세계관이 확립되고 있다· 더우기 현대과학의 産物인 기계기술

과 아울러 대량생산은 대중사회 및 세속화를 가져왔고 인간의 활동분야 는 나날이 복잡하고 광범위해졌으며 이에 따라 크리스찬의 현세활동과 물 질세계에 대한 가치는 한결 강조되게 되었다. 이리하여 오늘날 크리스찬은 자신이 차지할 세속적 위치를 의식하 게 되고 크리스찬 영성은 중세적 현 세초탈이 아니라 과학기술■사회에서 외 현세참여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인은 多方面에 걸친 급속도의 과학적 탐구와 발견에 힘힘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음에 경탄하고 인 간의 知力과 ?在力의 끝없는 개발가 능성을 긍정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의 건설을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 밖 외 他者와 관계를 맺는 對他的 存在 이고 자신이 지닌 모든 가능성을 최 고도로 발휘하여 자신을 완성하려는 내적 충동이 있다. 이리하여 인간은 마침내 타인에 대한자기 개방과 사 회적인 교제를 넘어서 절대자인 하느 님께 자신을 개방하고 瞻與함으로써 하느님과 결합할 때 비로소 그 존재 가 완성된다. 그런데 크리스찬이 하 느님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 을 벗어나고 현세의 것을 초탈해야하 는데 이것은 결코 현세가 악하기 때 문은 아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피조 물로서 창조주의 善性과 아름다움과 진실성을 반영하고,더우기.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 걸작품으로서 유독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터므로 이 세상은 사랑과 찬미의 대 상은될지언정 결코 혐오의 대상이될 수는 없다.

그런가 하면 현세에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즉 죄와 타락도 있다. 하 느님께서 세상을사랑하셨다는 말과 “여러분은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1요한2,5) 라는 말에서 ‘세상'은 ㅡ窓的인 의미 로 알아들을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 서 사랑하시는 세상은 피조물과 특별 히 인간을 말하는 것이고 .요한 사도 가 말하는 세상은 죄로 인도하는 육 체의 정욕과 현세의 쾌락과생활의 자 랑 즉 현세적인 교만(1 요한 2,15-17 참 조)을 뜻하는 것이다. 크리스찬은 세 상 자체 와 세 상에 서 나오는 죄 악을 구 별해야 하고 인간성 자체와 육신 안 에 뿌리박힌 타락된 본성〔邪愁偏情〕 올 구별해야 한다. 만일 크리스찬이 현세를 싫어한다면 그것은 복음적 의 미에서 이지 결코 淸敎徒的 의미에서 가 아니다. 크리스찬은 오직 그 자체 안에 목적을 두고 하느님과는 상관없 이살려는 세상을 멀리하고 하느님을 떠나자신의 쾌락속에 파묻히려는 현 세를 죄악시하며 현세적 가치를 절대 시하려는 ‘세속의 얼,을 부인할 뿐이 다. 달리 말하면 크리스찬은, 현세 자 체가 악하고 더럽고 인간을 타락케 하 는 것이라 생각하여 현세를 초탈하려 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이 세상과 는 비교할 수없이 선하고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오직 그분과 결합하기

위해 현세를 초탈하려는 것이다.

이와같이 크리스챤은 세상 속에 살 지만 세상을 위해 살지 않고 만물을 초월하신 하느님을 향해 사는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공간적으로 현세를 떠 나 살 수는 없지만 우리의 궁극목적 이 현세. 밖에 있는 만큼 결국 현세를 초탈해 야 한다는 것 이 다. 그렇 다면 어 떤 방법으로 현세를 초탈해야 할 것 인기.? 초탈은 바로 現世輕蔑과 도피 톨 의 미 하는가 ?

우리는먼저 中世크리스찬영성의 길 잡이처럼 읽혀은'「준주성범」(Imitatio CAr/siO에서 초탈개념을 살펴보자.

"네 모든 일과 생각에 오늘죽을.것 처럼 하고 있어야할것이다.......슬프다. 오래 삶으로 항상 善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요,도리어 흔히는 죄를 더 할 뿐이다. "…。죽는것이 두렵다면 아 마 오래 사는 것은 더 위험할것이다. 자기의 죽을 시간을 항상 목전에 두 고 있고 매일 죽음을 예비하는 자는 복되도다....…세상을 완전히 경천히

보고, 덕행에 나아갈 간절한 원의를 품고 ■수고를 다하여 보속하며 , 쾌 활 히 순명하고 자기를 이기고 그리스도 를 사랑하는 뜻으로 무슨 곤란이든지 참아 견디게 되면 복되이 죽겠다는자 신이 많이 나리라.……이제부터 너는 후세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기 위하여 세속에 대하여 죽기를 배워라. 이제부터 너는 후세에.거리낌없이 그 리스도깨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 을 경천히 여기기를 배워라. 너는 죽을 때에 확실히 안심하기 위하여 지 금 보속하여 네 육신을책벌하라.…… 오! 미련한 자여 !???..네 영혼을구 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지 f 고, 천주의 사정만 주의하라.. 너는 이 세상을 지나는 ㅅ순례자와 나그네로 여겨 세상의 모든 사정에 상관치 말아라.
너는 매일 저 곳을 바라보고 기구하며 탄식하고 체읍하여, 死後에 네 영혼이 주의 품으로복되이 옮겨가 기를 빌어라”(1권 23장 죽음을 목상함).

위의 인용문에서 현세도피의 영성 과현세부정적인 修德思想을 역력히 찾아볼 수 있다. 이와같이 현세도피 적이고 他界中心的이며 비현실적이고 명상적인 경향은 현세를·“귀양살이요 눈물의 골짜기”로 생각케 하고 크리 스찬의 생활을 활기없고 退?的인 것 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세 의 영성에 뿌리박힌 사상은 단순히 현 세경멸이나 현세도피의 소극적 면이 라기보다는 되도록이면 현세사에 적 게 관여하고 세상의 혼잡과 유흑을 피 하는 반면 하느님께 더육 많은 관심 을 갖고 직접 그분께로 향하려는 초 탈의 경향이라 하겠다. 즉 현세초탈 은 완덕과· 구원의 지름길로 생각되었 고 “사람이 온 천하를 얻는다해도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 냐?”(마르 8,36)라는 그리스도의 말씀 에서 현세와 천국을 비교하여 후자의 초월성과 절대성을 긍정한 나머지 현 세적 가치를 등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크리스찬의구원은 자

신을 떠나고 세상을 초탈하여 '영원 하고 완전하신 분’ 안에서만 이루어 지는 만큼 하느님만이 궁극적인 관심' 사와 최종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세의 부정적인 면 보다는 긍정적인 면과 더우기 그리스 .도강생의 신비에 착안할때 크리스 찬의 영성은 현세참여라는 적극성을 띠게 된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하여 인간이 지닌 품위와 우주 안에서 차 지하는 특이한 위치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지위가 지상의 그 어떤 다른 피조물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지성과 의지·i 갖고 세상을 지배하고 관리하 며 다른 피조물을 이용할 수 있는 권 리와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 1,26-28 참조)·

하느님은 지상의 만물을 인간올 위 해 창조하셨고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 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인간 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모든 기능을 최고도로 발휘하고 자아완성 과세계의발전을위해 맡은바과업 에 매진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 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능력과 잠재력을 발휘하지 않거나 고귀한 知 性과 力動的이고 未來志向的인 충동 ㅡ더 나은 삶을 향한意志■ㅡ율개발 하여 活性化하지 않으면 결국 하느님 의 創造意圖에 역행하고 인간의 품위 를 손상하는 것이 된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지성과 의지와 여타의 창 조적 기능을 주신 것은 인간으로 하 여금 당신의 창조사업에 능동적으로 협력케 하려는 것이다. 더우기 이 세 상은 하느님이 친히 강생하여 구속활 동을 한 장소이고 인간의 생활터전이 며 궁극적인 완성을 향해 발전하는 세 계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 신 나머지 친히 강생하셨고 구속의 십 자가를 지.셨는데 크리스찬은 이 세상 을 외면하거나 도피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계명’과 크 리스찬의 현세참여를 결부시킬 수 있 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사랑하셨고 당신의 구속활동을 통해 성부께 순종 하셨듯이 크리스찬은 세상을 사랑함 으로써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만큼 세상을 사랑하게 되 는 것이다. 크리스찬에게는 이 세상 이 하느님에 대한사랑을중거하는 장 소가 된다.

우리는 이머· 현세의 부정적인 측면 에서 현세경멸 내지 현세도피사상 및 거기에서 나오는 초탈개념과 소극적 인 修德理念을 잠시 살피보았거니와 이제 현세의 긍정적인 면·에 치중하여 새로운 형태의 초탈개념을 살펴보고, 그것율 현대 크리스찬의 영성적 근거 로 삼을 수가 있다. 이러한 초탈개념 은 특히 때이야르의「神의 領城

Λ?) 에서 매우 뚜렷이 드러 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현세초탈은 바로 자아포기와 현세집념을 통해 이 루어지는 것이다.

크리스찬은 자신의 .현세적 職務에 전적으로 매진할 때 결국 利己的 欲 望을 버리고 심지어 自我까지 망각하

게 된다. 그는 흔히 가정이나 자신의 활동에서 오는 현세적인 모든 보상을 잊고 더욱 크고 높은 어떤 가치와 목 적을 찾아 모든 것올 희생한다. 이와 같이 크리 스찬은 오히 려 現世事에 매 진할 때 자신을 떠나고 마침내 그가 활동하고 있는 현세마저 초탈하게 된 다. 크리스찬은 원래 그리스도를 향 해 전진하는 세계를 사랑하고 이러한 세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만큼 그 는 세상에 살년서도 실상 세상에 매 이지 않고오직 하느님께만 얽매인다. 이와같이 크리스찬이 현세적 직무에 집넘할 띠ㅣ 겉보기에는 현세사물에 애 착하는 것같지만 실상은 철저하게 이 세상을초탈하는것이다. 왜냐하면 현 세적인 수고와 노력을통해나태와무 기력을 극복하고자아완성과 세계발-전을 위해 십자가를지면서 삶의 궁극 목적인·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관해 떼이야르 드 샤르댕은 다음과 같이 실감있게 언급하고 있다. "크리스찬에게는 어느 것이 더 좋은 가 ? 활동 인 가 비 활동 인 가, 삶 인 가 죽 음 인 가, 성 장 인 가 감퇴 인 가, 발전 인 가 퇴보인가, 소유인가 포기인가? 여 기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왜 단일 한 노력의 양면을구태여 분리하고대 립시키는가? 당신의 의무와 욕망은 바로 하느님과 결합되어 일체를 이루 는 것이다. 그러나 결합되기 위해서 는 민저 당신이 자아로써 존재해야하 고될 수 있는대로 당신의 본성을온. 전히 보유해ο?ν한다. 그리고 당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당신 자신을 발전 시 키 고 세 계 를 소유해 야 한.다. 이 것 이 이루어진 후에 당신'자신을 포기 하고, 타자에 속하기 위해 초탈을 수 탁하라. 이것이야말로 크리스찬 修德 의 유일하고도 이중적인 계명이다” [Le Milien Divin, Fontana books, Collins 1962, p. 95-96).

그러므로 크리스찬에게는 현세관여 ■와 현세초탈이 결코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행위의 양면이디-. 크 리스찬에게는 현세집착과 현세초탈은 마치 호흡과 같아 서로가 조화되는 것 이다. 이 兩者는 궁극목표인 하느님 깨로 도달하기 위해 현세를 뛰어넘는 도약판인 것이다. 크리스찬이 하느님 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벗 ‘어나야 하고 자신을 벗어나기 위해서 는·먼저 자신을 지녀야 한다. 크리스 찬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를 완성하 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해 죽어 야 하고 자신이 줌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 안에 참된 삶을 지녀야 한다. 소유하지 않은 것을 어찌 포기할 수 있겠으며 참된 삶이 없아 어떻게 온 전히 즉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수 있겠는가? 크리스찬은 현세집착이 크 면 클수록 자아포기와 희생 및 ;현세 초탈도 그만큼 완전할 것이고 따라서 하느님과의 ■일치도 더욱 온전히 이루 어질 것이다. 이와같이 현세집착에 의 한 자아포기와 초탈이야말로 크리스 . 찬이 하느님께로 도달하는 길이고 따 라서 삶의 내용이 되고 있다,
크리스찬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 조되었으며 그분 안에서 보존되고 그 분을 지 향하는 세 상(골로 1,16-18 참조), 그분이 친히 강생하셨고 구속활동을 한 이 세상을 속되게 보거나 地上의 諸價値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크 리스침;의 모든 활동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지향하고 이 사랑은 마침내 인 간을 하느님과 결합시키는 것인 만큼 현세의 모든 활동은 그·자체로 종교 적인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 리고 현세의 것은 그 무엇이나 하느 님의 영광을 위해 올바로 사용될 때 모두가 蜜化되는 것이다. 실로 “하느 님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다 좋은 것 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 도버릴 것이 없는”(1디모4,4) 것이다.

크리스찬의 현세활동온 그 무엇 하 나 그리스도께 대한사랑과無關한것 이 없다. 크리스찬에게 있어서 산다 는 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영 생에 대한 희망을 가지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세상에 봉사함을 뜻 한다. 그런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인간이 하느님과 一體가 되려고 하느 님께로 향하는 내적충동이며 아울러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결합시키 려고 당신께로 이끄는 초자연적 引力 아다. ≪먹고 마시고 일하고 무엇을 추 구하는 것,진리나 美나 행복을 창조 하는 것,이·모든 것들이 우리에게은 서로 舞質的이고 색다른 형태로 보여 상호관련을 맺어주는 어떤· 개념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었다. 그러 나 실 상 이 러 한 하나하나의 행위는 開花 도중에서 자연법칙에 따 라 벌어지고 있는 많은 가지물 중 그 어느 하나에 불과한.사랑이디-· 그리 나 그것은 그리스도께로 志向되고 행 동의 다발은 서로 함께 모인다。이는 마치헤아릴수없이 많은햇살이함 께 모여 하나의 흰 광채-πㅡ 내는 것처 럼 수많은 행동의 諸樣相이 시로 흔 동되지 않은채 우주적 그리스도의 거 대한 능력 아래 단일한 色調i 융합 된다. 그런데 이리한 운동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Teilhard de Chardin, Science and Christ, Harper & Row, New York 1768 pp. 170-171).

현세는 크리스찬이 하느님을 사랑 하고.이웃에 대한 봉사와 더 나은 미 래의 건설을 위해, 수고함으로씨 하느 님께 영광을 드리는 장소다. 즉 이 세 상은 크리스찬이 자연적이고 현세적 인·제가치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초자 연화하여 인간의 모든 영역음 神의 영 역으로 변화시키는 활동무대이다.

그러므로 현세는 현세로서의 ■가치 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초월자인 하느님이 창 조했고,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을 통 해 구원 받을 희 망의 세 계 이 다. 실 상 세계는 부정적인 면과 아울러 긍정 적인 면이 있긴 하나、그렇다고 이 세 상을 근본적으로 聖스러운 영역과 俗 된 영역으로 兩分할수는 없다. 이 세· 상의 어두운 면인 죄, 사욕편정, 타 락 등을 도외 시 하고 피 조물의 善性과

긍징직인 년만음 강조할 수도 없거니 와, 이 새상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 하고 세계의 아름다움과 하느'님께로 향하는 본래의 목적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크리스찬은 현세의 죄악 및 인 간의 타락과 함께 미래의 희망과 구 원음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디.· 그 렇 다면 세 상에 대 한 크리 스찬의 태 도 는 단순히 현세도피나 현세적대도 아 니요 그렇다고 현세추구나 현세탐닉 도 아니다. 오직 죄악에 대한도피요 사욕편정에 대한 극기이며 이기심에 대한 희생이다.

또한 피 조물의 善性에 대 한 찬미 요 본래 적 인 간성 에 대 한 긍정 이 며 구원 받을 세상을 위한 헌신이다. 현세의 부정적인 면과 인간의 타락상에 치중 할 때 현세혐오· 내지 현세도피의 영 성과 보속, 苦身克Ξ, 희생 등 소극 직인 수덕개념이 강조될 것이나 이 와 반대로 현세의 긍정적인 면에 치 중할 때 현세관여 및 물질적 가치의 긍정, “인 간의 잠재 력 개 발 및 제 기 V의 최대활용’’이라는 역동적 윤리 가 강조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양 면성음 동시에 받아들일 때 언제나현 세부정과 긍정, 반항과 헌신의 긴장 관계가조성되고, 이때극기와희생 은 자아완성과 세계발전에, 자기이탈 은 하느님과의 일치에 전제조건이 된 다. 크리스찬은, 세상이 하느님으로 부터 먼 그만큼 세상과 멀어야 하고, 또 세상이 하느님의 현존 속에 잠겨 있는 그만큼 세상 속에 잠겨야 한다.

크리스찬은 세상에 살면서도 하느님 만을 향해 살아야 한다.

현세는 덧없이 지나고 고통과 죽음 이 지배하고 악이 실질적으로 세력을 휘두르며 인간은 갖은 탐욕과 정욕에 사로잡혀 타락해 있지만 결코 하느님 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하느님의 사 랑을 받아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새 로와지고 완성될 것이다. 크리스찬에 게 있어서 현세는 하느님께로 나아가 는 道程이다. 크리스찬은 천국을 향 해 순례하는 나그네인 만큼 현세와천 국 간의 관계는수단과 목적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목적없는 수단은 헛되 고무의미한것처럼천국없는현세는 허무하고 무의미하며 그야말로 맹목 적인것이다. 그런가하면수단(방법) 없는 목적은 그 자체가 실현 불가능 하고 비합리적인 것처럼 현세없는 천 국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그누구나 현세를 거'쳐야만천 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은 현세냐 천국 이나, 자연이냐 초자연(은총)이냐, 현세집착이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냐 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오직 세상 을 거쳐 천국으로 도달하고자연 안에 서 초자연적 은총을 누리며현세적 활 동을 통해 세상을 초탈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현세와 천국, 자연과 은총, 활동과 명상, 물질적 내지 육 체적인가치와 정신적내지 영적가 치 간의 連續性과 신비로운 조화 및 유기적인 관련성을 발견할 수 있다·

크리스찬은 성세성사를 통하여 하느 님의 생명을 누리게 되고 이 때부터 육신은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실상 하느님과 천상세계에 속하는 것 .이다. 크리스찬에게는 이 세심서 오 진 천국을 향한나그네의 길이며 자아 완성과 영원한 구원웁 얻기 위해 갖가 지 유혹과 고통속에서도희망을 갖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련의 길이다.

"이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 시 살게 되었으니 천상의 것들을추구 하십시오.…… 여려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 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 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 입니다”(골로 3,1-3).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인들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헛된 생각을 하고 마4이 어두워져서 하느님이 주 시는생명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도덕적인 감각을 잃고 거리낌없이 방 탕에 빠져서 온갖 부정한생활에 미 쳐버렸읍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 스도를 그렇게 배우지는 않았옵니다. ……여러분은오히려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 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거룩한진리의 생 활을' 하는 사람압니다’’(에페 4,17-20;23-24).
크리스찬은 현세와 천국 사이에서 끊임없는 긴장관계 속에 살면서도 시 시각각으로 하느님을 향한 삶의 결단 을 내려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