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메시지 - 제4차 주교 시노드
1978년 7월호 (제 58호)
서 론 1. 교황 바오로 6세의 부름으로 로마에 모여「현대의 敎理敎授 특히 아동과 청소년 교리교수」를 토...

W. 카스퍼 저, 박상래 역 예수 그리스도
1978년 7월호 (제 58호)
그리스도信仰의 死活과 存廢가 달려있는 에수 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한 물음 이 오늘날 새로운 절박성을 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 - IX. 신앙의 역사성 -
1978년 7월호 (제 58호)
1. 歷史·“"우리의 가장 큰 問題 ■금세기 초에 프로테스탄트 神^者 이며 宗敎歷史家인 트된취 (E. Tro·...

아시아의 貧困과 共産主義의 誘惑
1978년 7월호 (제 58호)
一아시아修女聯合會 第4次 總會에서 1977년 11월 20일부터 3()일까지 10 일간 인도의 항구도시 봄베이에서 ...

社會的恩寵ㅡ새로운 司牧戰略을 위해
1978년 7월호 (제 58호)
ㅅ問의 言語는ㅡ우리가 말하는 것, 말하지 못하는 것,말하지 않는 것을 다 포함하여 ㅡ어떻게 보면 인간 ...

1966년까지 가톨릭 사회사상의 역사적 개관
1978년 7월호 (제 58호)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많은 사 란은, 1891년에야 비로소 가톨릭교회 가 체계화된 사회적 가르침을 제시...

現代世界의 敎會와 ?少年 敎理敎育
1978년 7월호 (제 58호)
ㅡ 主敎 시노드 제4차총회 의제를 중심으로 지난해 S월 30일부터 10월 28일까 지 로마에서 열렸던 主敎시노...

敎父들의 思想
1978년 7월호 (제 58호)
I. 序 論 "敎父들의 말씀은 믿고 기도하는교 회의 실생활가운데 풍부히흐르고있 는이 聖傳의 생생한現存을 ...

主日聖化를 위한 司牧的 配慮
1978년 7월호 (제 58호)
I. 머리말 어디로저렇게 열심히들가는것일까? 서울거리의저 인파와차량듭, 고속버스정류장의 저 장사진! ...

罷工法의 社會學的 考察
1978년 7월호 (제 58호)
I. 서 론 가톨릭敎會에는 主日을.거룩하게 지내라는 法이 있다. 그 방법으로 미 사參禮의 의무가 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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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壇 1978년 7월호 (제 58호)

敎父들의 思想

咸 世 雄 (서울 漢江本堂 神父)

I. 序 論
"敎父들의 말씀은 믿고 기도하는교 회의 실생활가운데 풍부히흐르고있 는이 聖傳의 생생한現存을 입증한다-이' 聖傳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聖經典 害를 식별하여, 성경 자체가 성전 안 에서 한층더깊이 인식되고끊임없이 생활력을 갖는다”(계시헌장, 8항).

인간의 ?史와 思想은 외톨이로 존 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하나의 연 륜과 연속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이 연속과정 속에서 인간은 공통된 그 무 엇, 곧 眞理에 집하게 된 디이 진리 를 신앙 안에서 이해할 때 ■그것은 곧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된디?그런데 교회는 자주 이 사실을 망각해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 본 모습을 찾아야겠 다는 각성 과 함께 복음과 그· 복음이 전해진 길을 주의깊게 살펴봐야했다. 그래서 일그러진 모습을 바로 잡게 된 다. 이러한의미에서도 복음과 聖傳 은 거울과 같은 구실울 하고 있다.

계시헌장은 성경과 성전에 관하여 토론을 거치면서 그 둘의 관계가 바 로 불가분의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것은 곧 하나의 起源에서 나온 두 源 泉 (una origo duae fontes) 일 뿐이 다,

그것은 또한 바로 한 실체의 양면성 의 관계이다. 따라서 새삼스럽게 敎 父學의 중요성을 말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지만 언어의 장벽과 어려운 어 건 속에서 우리는 교회가 걸어온 신 앙의 발자취를 가까히 대할 수 없었 다. 그리고 교부학에 대한 서직이 하 나도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실정이 다'. 오직 이 이유 때문에 그리고「司 牧J 편집부의 의도를 따라 감히 이 글 음 시 작함 수 있었다. 주로 B. Altaner 와 J. Quasten의 「敎父學」의 체계를 따를 것임을 밝혀둔다.

ι. 敎父學의 槪念파 對象

(1) 槪念 : 교부학이 란 그 말마디 자체 가 주는' 의 미 와 같이 敎父들에 관 한 학문이다. 그것은 신앙을 기초로 하여 하느님께 대하여,그에 따라 필 연적으로 인간에 대하여 논한 교부들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그것은하나의 神學이다· 그러나그것 은 그 연구대상의 저자와 작품 및 시 .대적 배경의 동일성 때문에 初期 그 리스도敎 敎손文^의 일부분으로 간주 되기도한다. 그렇지만교부학은복 음과 신앙의 빛음 따라 이루어진 중 언과 함께 그 상호간의 밀착도-H- 신 .학ㅡ교의직 측면에서 관찰, 언구하 고 있을 뿐, 결코 文향史的 관점에서 다루고 있지는 않디이와같은 신학 ㅡ교의적 관점 때문에 교부학은 正統 敎理의 주창자나 옹호자뿐 아니리·.異 端學說의 주창자들도 간접 직 이 기 는 하 지만 그 연구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진리의 수호자들인 교부함의 神방思 想과 초세기 인물들의 정동학설에 대 한 고찰과 연구야만로 교부학의 일차 적이요 주된 .작업이다.

‘敎父學,(patrologia) 이란 용어는 루 터파 신학자 요한 게어하르트 (J.' Gerhard) 에 의하여 1653년에 치음으 로 사용되있디-. 그러나 그 개념피- 의 미는 이미 초세기 著환들에게서 발견 되고 있다. 19세기까지는 '교부학,이 란 용어가 주로 中世까지의 일종의 그 리스도교 文환史로 간주되어왔다· 그 러나 그후 점차적으로 그 對象時期가 초세기로 한정되기 시작하면서 그 내 용 또한 구체화하게 되었다.

예로니무스 (Hieronymus, +420)가 이해한 교부학의 개넘은 初代敎한 文 學史와 동일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 는 非가톨릭 저자들음 구별치 않고

인용 소개하고 있디-. 사실 초대교회는 非가롤릭의 지자들과 함께. 동일한 문 화권 속에서 생활하면서 철학, 문학 의 많은 요소 즉어휘와 함께 思想面 에 있어서도 이들에게 짙은영향과 많 은 암시를 받아왔다, 그 구체적 실례 ir 우리는 神論, 특히 그리스도論에 서 찾아볼 수 있으니, 그리스도에 대 한 깊은 이해와 설명,그리고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회람철학의 많은 용어 ■S- 빌리왔기 때문이다.

(2) 對象 : 교부학은 초대 교회 저 술가들의 生涯와 作品 그리 내용 둥을 연구하어 그 개인사상 및 시대 적 사상조류의 종합을 꾀하고 있다.

① 生涯 : 正統敎理의 확립에 공헌 한 주인공들인 경우에는 그 가르친 학 선 내용의 무게와 유익성 ?때문에 그· 생에 자체가씬구대상이 된:다. 왜냐 하면 이러한 연구는 그의 個性과 ㅅ 品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 작품이 쓰 여진 동기와 배경을보다 생생하게 알 려주기 때문이다.

② 혔?? : 작품은 역사와 밀접히 연 관되어 있다. 따라서 우선 그 작품의 β正性 (authenticitas) 이 증명되어야한 다· 사실 많온 학자들이 문헌비판 및 고증을 통하여 진정성 여부의 결론을 제공해주고 있다.

③ 學說 : 저자가 주창한 학설과 교 리륜 연구하면서 그것이 前後代 敎父 나 저 술가들과 맺 는 관계 를 살펴 야 한 디따라서 그내용이 저자 자신의 독 창적인 것인기- 아니면 종속적인 것안가, 그 농도는 어떠한가, 또는 그것 이 외톨이의 사상이니··학설인가, 그 렇다면 그이유는 어떻게 설명될'수 있을까, 그렇지 않고 후대에 영향을 주었다면 어느정도일까, 그전승된 내용의. 가치는 무엇인가 등의 .점들 음 종합직으로 고찰하여 그 신학ㅡ교 의적 비중과 의미를 찾아낸다.

그리 고 또한 쟁 점 이 된 사상과 내 용 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소홀히 취급 되고 잊혀졌던 점들을 재고찰하여 神 學史를 위한 재평가 자료를제공한다. 그리고 어느 학설이나 주장이 敎導權 에 의하여 단죄 및 배척을 받은 경 우,그 배경율 다시 검토하여 신앙의 보다 깊은 이해를 도모하기도 한다.

이와같은 이유로써 교부학은 ≪證 神學 (theologia pastiva) 이며 동시예 ? 史神學 (theologia historica) 부문 ㅣ 에 속한다. 한편 敎父神學 (theologia patristica) 이란 표현은·17세기경 성서 신학, 스콜라신학, 이론신학, %징신 학 등과 구별짓기 위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후에는 敎義史 (historia dogmatis) 로 발전되었다. 교의사는敎 父뿐 아니라 禮典 및 公議쌍錄 등 교 의와 연관을 맺고 있는 그 모든 내용 율 검토하여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핀 다. 이리한 관점에서 교부학은 그, 정된 대상과 내용으로 교부신학 내교1 敎義史를 위한 入門書라고 간주할· 수 있다. 개인의 작품이 아닌 공동체 및 집단의 産物인 내용들,예컨대 예전 문헌, 봉의회 기록,순교록, 성인행

적, 수도원 규칙,신경 및 비문 등은 교부학에 있어서 제2차적 대심서며, 교부들의 저서 및 사상내용이 제 1차 적 대상이 되고 있디-.

2. 敎父와 그 權威

(1) 敎父 (Pater Ecclesiae) 란말마디:

이는 璧害 h으로나 敎合史的 면에 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초대교회 공동체가 그의 주 교, 스승, 학자들에게 부여한 칭호로 서 사랑과 존경 을 나타낸 말마디 이 다.

聖書上에서는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1 베드 5’13),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지 도해줄 교사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아 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가 없읍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교인으로 태어나게 한 사 탐은 바로 나입니다.……그(디모테오) 는 주님을 진실하게 믿는 내 사광하 는 아들입니다,’(1 고린 4,15.17), κ찬된 믿음의 아들 디 모테오”(1 디 모 1,2), “나 바울로는 아들과 같이 사랑하는 디 모테 오에 게 ” (2 디 도 2, 2), "진 실 된 아들,’(디도 2,4) 등이란 표현에서 우리 는 신앙의 판계에서 맺어지는 깊은의 미를 볼 수 있다. 또한 그뿐 아니라 교부들도 같은 의미로 이 말마디를 사 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예범적인 것 을 본다면’ 이레네우스( Ireneus, +c. 202) 는 그의 저서「反異端諭」(Aiwr-sus Haereses Ν , 41,4)ㅞ又! "ㅙ? 스승에 대하여 아들이다· 따라서 스승은 아버지”라고 하였고 알렉산드리 아의 클레 멘스 (Clemens Alexandrinus, + 215 이전)는 그의 저서 I'양탄자ㅣ {Stromata I, 1,3)에서 "언어로써 정 신 작용은 자란다. 그러 므로 우리 몰 가 르치는 분을 우리는 아버지 라 부른다” 고 언급한 사실 둥이다.

3세기부터 ‘아비지,란 칭호의 사용 이 확장되면서 목자,' 즉 t敎들에게 도 이 칭호가 주어졌다. 사실 주교뮤 은 복음의 증인이며 그 말씀을 전하 고 가르친 점에 있어서 초대 신앙인 들이 그들에게 이 칭호를 부여한 것 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아우구스띠 누스 (Augustinus, + 430)는 예로니무스가 주교·가 아닌 단순한 사제였음에도 ‘아비지'란 칭 호를 부여했다. '그것은 예로니무스가 지닌 신학적 권위에 기인하는것이디 이와같이 이제는 正統敎理의 수호자 란 점이 ‘아버지’라는 칭호률 얻을 수 있는.,조건이 된 것이다. 사실 칼 체돈 공의회의 논쟁 때 주교들은 선임 자들의 가르침과 증언에 관심을 기울 였을 뿐 아니라 그 증언자체가 하나 의 ㅣ규범 내지 척도가 되었다. 따라시 러 랭 (Lerins)의 빈첸 시 우스 (Vincentius, +c. 450)는 434년에 저술한著하「備 忘錄J (Commonitorium) ·^ 디 체 적으로 "신앙과 친교의 일치 속에 있는,, (in unitate comraunionis et fidei permanentes) 그·은 누구나 상 관없이 스승일 수 있다고 명백히 망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른바 젤라
시 안 규정 (Decretum Gelasianum) 은 교

부의 자격 유무와 그 가르침의 정통 싱 여부가 로마교회와의 일치에 달려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와같이 로 마교회외 두드러진 점피- 함께 정통과 권위의 의미가 새로운 관점에서 진전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점을 종합하여 현재는 교 부라는 칭호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일 반석으로 다유의 네가지 조건이 '구비 되어야한다고 가르치고있다: ①교 리의 정통성 (doctrina orthodoxa), ② 모법된 생활 (sanctitas vitae),③ 교회 의 있준 (approbatio edclesiastica), ④ 고내성 (antiquitas) 등이다. 그런데 敎 fjff-·'^ (Doctor Ecclesiae) 란 칭호는 꼭 교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학자 란 古代이 .4여된 경우에도 뛰어난 인품과 특히 그가 이룬 신학적 공로 에 따라 교회가 부여하는 일종의 명 예 지 칭 호이 기 도 하다 (예 : 빠도바의 안또니 우스, 大알베르뚜스, 토마스 아 퀴나스,보나벤뚜라 등). ‘

800년경에 분도희 수사 요한은 암_ JJ.보시우스 (Ambrosius, +397), 예로 니무스, 아우구스띠누스, ㅊ그레고리 우스 (Gregorius Magnus, +604)를 4大 敎父라 하여 그들을 "낙원에서 흡러 온 네 줄기의 江”이라고 칭송하였다.

1280년에 와서 보니파시우스 교황 은 이돌을 西方敎會의 4대교부로 공 식 선언하있다·. 한편 東方에서는.* 바실 리 우스 (Basilius Magnus, + 379), 나지 안즈의 그레 고리 우스 (Gregorius Nazianzenus, +C.390), 요한크리소스 또무스 (Joannes Chrisostonus, f407) 등3교부를 公敎父 (Patres Oecumenici) 로추대하였다. 그런데 여기에다라된 교회에서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 373)를 첨가하여 공경하였다. 그리 고 삐우스 5세는 I568년 이들에게 교 희박사 (Doctor Ecclesiae) 란 칭호를 부 여하여 성무일도(Breviarium)에 삽입 하였다.. 따라서 동서방교회 각 4명의 교부를 합하여 8대교부라고 하는 것 이다. 그러나 이외에 교회학자란 칭 호를 받은 초대교부들도 또한 몇 분 있 으니 서 방교회 에 서 는 봐띠 예 (Poitiers) 의 힐라리우스(Hilarius,+367), 베드 로 크리스로구스 (Petrus Chrislogus, +C.450) ㅊ레 오 (Leo Magnus,+461) 세빌라의 이시도루스 (Isidorus, +636) 이 며,동방교회 에 서 는 에 프렘 (Ephrem, + 373), 아타나시우스,바실리우스, 예 루살렘 의 치 릴 루스 (Cyrillus Hiero. solymitanus, +386), 알렉산드리아의 치 릴 루스(Cyrillus Alexandrinus, +444) 등이 다.

(2) 敎父들의 一致된 意見 (unammis consensus Patrum) : 교부들의 권위는 그문체나 학설에 근거한것이 아니라 신앙의 올바른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교부 개개인은 교회의 藥傳 (Traditio)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되지 만 결코 할傳 자체는 아니다. 어쨌든 성전의 한 몫이며 구성요소인 각 교 부의 권위는 그가 주창한 학설의 내 용이 교회의 가르침이나 다른 학자들

의 주장, 또는 자신의 성덕과 신앙 에 일치되는 정도에 따라 비례된다。 따라서 그 권위를 크게 하는 요ft 는 물리 적 量이 아니 라 윤리 적 質이 다.

여기서 ≪교부들의 일치된 의견”이 라는 신학적 표현도 그 가르침의 진 이 우선적이라는.것으로 이해할 것이 며 數量的인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실 제 1 차 바티 칸 공 의회가 가르친 성서주석에 대한 교부 들의 일치된 견해는 바로 無識的이라 는 말도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오늘 날 현대인들은 이 표현에서 일종의 저항 내지 거북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을 교회론적 입장에서 이 해할 때 무리한 분쟁을 극복할 수 있 다. 따라서 그것은 字;a的 해석보다 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이 교회 안 에 충실하게 더물고 살았던 증언자임 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일치 된 의견*이란 다름 ■아닌 바로 교회의 가르침 이 라는 사실과 함께. 그 逆關係, 즉 교회의 .가르침이란 사실상 구체적 으로 그러한·방법.과 양식을 통해서 나타났다는 사실에 눈길을 모아야 한 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인이란 바 로 교부들의 사·람, 곧 교부들의 언어 로 말하는 사람오로 알아들었던 중세 기의 사고야말로 참으로 우리에게 깊 은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교부들의 언어로 말하고 그 사고방식을 따라 사 는 사람은 바로 신앙과 聖傅에 충실 한 사람이다.
여 기 서 제 2 차 바티 칸 공의 회 가 의 쳐왔던 "원천으로 가자”,"초대교회 의 삶을 살자”라는 표현의 참된 의미 를 우리는 또한 깨달을 수 있다. 사 실 교부들이야말로 자신의 생을 다하 여 진리를 지켰던 중언자들이며, 이 방인의 문화권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 을 잘 가꾸어 자라나게 하고 꽃피게 한 主役들로서, 이들이야말로 주님의 포도밭의 참된 일꾼들이었다.

3. 敎父學의 歷史

‘교부학,이란 명시적 표현은 비록 최근에 사용된 어휘이기는 하지만 그 개념은 훨씬 오래 전,즉 初代敎한 文 學史에서 이미 발견되고 있다. 체사레 아의 에 우세 비 우스 (Eusebius caesari-ensis, +339)는 그의 저서 「?會史」 (Hisioria ecd.) 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을바르게 전한 사람들과 함께 오류를 범한 저술가들도 함께 나열하 면서 그 주장내용을 인용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교부학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그러나 神學史的 관점 에서 볼 때 예로니무스의 「名ㅅ錄 J Viribus Λ니rifc:) 이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 작 품이 비록 에우세비우스의 「교희사」 와「역대기」에 종속되었다 하더라도 그나름대로의 체계와 종합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니무스는 3배년 베틀레행에서 로마 집정관 멕스때르 (Dexter)의 청에' 의하여 Γ명인록」을 저술하였다· 이 작품은2세기 초엽에

쓰여진 .같은 제목의 수에또니우스 (Suetonius) 의 작품과·위에 열거한에 우세비우스의 두 작품을 모형으로 하 여 사도 베드로로부터 39'2년 당대까 지 135명의 인물들을 열거 설명하고 있다. 이 가분데에는 유다인인 필 로(Philo, +C.54), 플라비우스 요셉 푸스(Flavius Josephus, +95) '및 로마 칠학자 세네카(Seneca, +65) 등 非그 리스도교 저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같이 가볼릭 및 非가톨릭 저자들 을 구별치 않고 무분별하게 다루었다 는 사실 때문에 이 작품이 출간되자 아우구스띠누스는 곧 비판을 가하였 다, 그뿐 아니라 이 작품에는 많은오 류가 있고 또 저자 자신의 편향성이 두드러지게 엿보인다. 어쨌든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닌 가치 와 권위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는다. 사실 미 누치 우스 ' 펠 릭 스 (Minucius Felix, +2세기말?),때르둘리아누스 (Tertullianus, +220 이후), 치쁘리아 누스 (Cyprianus, +258), 노바씨아누 스(Novatianus, +252 이후) 등 몇명 의 인물에 대한 기술내용은 이 작품 만이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자료이며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명인록」은 1 천년 이상이나 교회 문학사에서 그 자 리를 확보해왔고 영향력을 미쳤으며 후대의 '저자들은 이 부문에서 거의 모두 그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명인 목」에 종속되었다. 이와같이 그것은 모형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

480년경에 마르세이유의 사제 젠나디 우스 (Gennadius, +c. 492/502)가 출 간한 같은 제 목의 작품은 마치 예 로 니무스 작품의 제 2부와 같은 것이 다. 젠나디우스의 것 역시 중요한 의 미와·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같은 제 목의、세 빌 랴의 이 시 도루스의. 작품이 나 똘레 도의 일 데 퐁수스 (Ildefonsus, + 667)의 작품은 너무나 지역적 성격 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별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9세기의 포씨 우스 (Photius, +c.895) 는 「岡書錄 J {Myriobiblion 또는 Bibliotheca) 에 서 280명의 그리스도인 및 비그리스도인 작자들의 작품을편찬수록하였다. 이 편찬에 있어서 그는 당시 알라지지 않 았던 많은 내용을 수집하였다.

11세기말부터'교회문학에 새로운시 도가 시작된다· 분도 수도회의 傳記 作家인 벨직 장블루(Gembloux)의 .시 게베르뚜스 (Sigebertus, +1112)가 그 의「名ㅅ錄」에서 古代作家들에' 대하 여 언급하였다. 에로니무스와 젠나디 우스를 모형으로 하여 쓰여진 이 작 품은 회람 저술가들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1122년에 아우툰 (Autun) 의 호노리우스(Honorius)의 비슷한 종류의 작품인 「敎會의 등불」(pe Luminaribus Ecclesiae) ≪1 1135년경에 는 프튀 페 닝 (Pruefening) 출신으로 생 각되는 이른바 멜크(Melk)의 無名著 者의「敎會著述家들」(De&r쟌ior^w ecd.) 이란 작품이 출간되었다. 또한 1494년에 요한 뜨리 테 미 우스(J. Tri-themius)가 964명의 저술가들을 수록

설명한 작품도 나왔다. 위의 모든 작 품들은 예로니무스와 젠나디 우스에게 종속된다. 한편 동방에서도 예로니· 무스의 작품이 번역되어 에시키우스 (Esichius, 4-C.550), 포씨우스 그리고 역사사전류인 란 작품에 많

은 영향을·주었다.

■?·典文學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는 ㅅ文主義時代에는 프로테 스탄트의 비판에 자극을 받음과 동시 에 가톨릭 내부에서도 각성하여 교부 들에 대한 재인식을 하여 그 연구가 활발해지게 되었다. 벨라르미아누스 (Bellarmianus, +1621)의「교회 저술가 늘」(Z)e Scriptoribus Eccl. liber unus) 과 함께 프랑스의 두 저자 띠에몽 (Tillemont, +1698) 과 쎄 이 예 (Ceiller) 의 저 서 가 나오는 등 비 로소 교부들 에 대한 全集類와 특별본이 빛을 보 기 시작했다.

I9세기에 이르러서는동방문헌의 발 견으로 그리스도교 문학의 새로운 정 립과 함께 학문연구가 그 절정에 달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批判本의 필 요성을 느끼게 되어 비인과 베블린읔 중심으로 전문 연구기구가 생기미 학 파가 형성되어 라틴어와 희랍어 저시 들에 대한 비판본이 나오기 시작했다. 프랑스 학자들은 특히 동방교부들의 작품을 정리 출판했다. 또한 시리아 어, 아르메니아어,꼽틱어 등의,寫 本이 :발견되고 많은.대학에 교부학강 좌가 신설되게 되었다.

20세 기 에 와서 는 역 사의 개 넘 및 그리스도교의 용어, 주장,교리 등의 상 호관계를 더 전문적으로 연구 분석하 게 되었으며 특히 최근에는 에짚트둥 지에서 새로운 문헌이 발견됨에 따라 많은 새로운 귀중한 자료를 얻어 보 다 깊은 였구에 박차-3· 가하고 있다。

4. 時代區分 및 言ρ

(1) 시대구분: 교부학에서 연구대 상이 되는 시기는 초기 7~8세기까지 이다. 학자에 따라 구분기준의 연대 가 조금 다르기만 하지_만 일반직으로 는 다음과 같이 3기로 구분한다. 초기 :사도시대부터 니체아 공의회

(3래년)까지‘ 전성기 : 니체아 공의회(325년)부터 갈^돈 공의회(451년)까지

r서방:세빌랴의 이시도루스 j (+626)까지

말기ㅣ 동방: 다마스코의 요힌·<:+74

‘ ^ 9)까지 ‘

초기에는 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 앙고백 및 그 선포가 주임무보서 그. 리스도 神性의 중명이 초점이 되어 그 분을 통한 구원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교부들은 박해와 與端의 오류에서 오 는 안팎의 시련과.역경을 극복하면시 정통신앙을,보존하기 위하여 몸바치 게 된디이와같은 호교론자뮴의 뒤 를 이어 오리제네스(ㅇ rigenes, +253) 를 주축으로 하여 비로소 신학체계가 잡히면서 알렉산드리이- 학파가 형성 되기 시작한다. 제 2기인 ^성기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삶이 신앙 안에서 규정되며 동 시에 그리스도의 핵심직 교리가 열매 맷게 된다· 즉 그·리스도論과 함께 聖-"?:論의 교리가 정리 종합된다. 에페 소 공의회에서 고맥된 아버지와 아들 의 Μ體他 (Consubstantialitas)Pl 381년 .곤스탄티노·품 공의회 때에는 향神께 도 적용 고백된다. 이어서 그리스도 인의 실생활과 언관 적용되면서 恩寵 論이 부각된다.

말기에는 진승된 정통교리가 뿌리 내 리 는 시 기 로시 동서 방교회 모두 신 심의 시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도 원이 확장되며, 禮典祈il 및 윤리규 범이 제정되고 마리아論이 정림된다·

(2) 인어 : 초세기의 ■로마제국 문 화권의 통용어는 회람 ㅊ衆語인 꼬이 네 (Koine) 였다. 따라서 이 희랍 대중 어가 교부들의 언어이기도하다. 그 러나 180년깅부터 지역에 따라 차춤 라된어, 시리아어,꼽틱어, 아르메니 아어 등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다양 한 언어권이 형성된디■따라서 회람 어는 그위력읍 잃게 된다. 특히 로마 롭 중심 으로한 라된문화권에 서 는 성 서 吾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고 狗 敎錄 등도 라련어로 述되기 시작했 다. 사실 때르晉리아누스(Tertullianus, ■I 220 이 후) 에 이 르러 서 는 북아프리 카 -f 중심으로 라틴어가 본격적으로 사 용하게 되었으나「헤르마스의 목동」· 에 나타난 표현 등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로마에서는 라틴어가 사용되 고 있었음윤 알 수 있다. 동방문화권의여러지역언어와함께 라린어,특 히 회람어가 교부들의 언어이다.

5. 敎父 全集 및 批判本

초대교회의 작품은 筆寫本으로 전 해왔기 때문에 비판본은 아니다· 그 러나 대부분의 原本이 유실되었기 때 문에 이 필사본은 중요한 가치를 지 니 며 바로 原典 (textus originalis) 의 구 실을 하기도 한다·

ㅅ文主義時代에 언어학자들의 수집 공헌으로 초대교회의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으며 특히 1618년에 세워 진 쌩 모르 (St. Maur) 의 분도회 수사 들에 의한 文集 (folia) 이 가장 오래된 全集類로서 17?18세기에 이르러 이 들은 희랍어 원문과 함께 라틴어역 및 색인목록까지 수록하였다.

무엇보다도가장광밤위한전집류는 프랑스 학자 미네(J。P. Migne, +1875) 의 「라틴敎父集」{Patrologia latino) 과「희랍敎父集」CPfl아沿graecd) 으로서 비록 誤記된 부분과誤植이 있 기는 하지만 중요한 작품이다. 그 뒤 에 비판본으로 비인과 베를린 그리고

투른홀트에서 東西敎父에 대한 비판 본이 계속 연구 출판되었다. 그중대 표적인 것울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J.P. Migne, Patrologia graeca (Paris 1857),Patrologia latina(Paris 1878),Corpus scriptorum ecclesi-asticorum latinorum (Wien 1866).

R. Graffiti ? F. Nau, Patrologia Ortentalis (Paris 1903), Corpus Christianorum, series latina (Turnholt 1953),Die griechischen Christlichen Schrtftsteller der ersten drei Sahrhunderte (Leipzig 1897).

H. de Lubac - J. Dani6lou,So urces chritiennes(Paris 1941).

O. von Gebhardt - A. Harnack, Texte und Untersuchungen(Leipzig 1883). .

그리고 교부학에 관한 비판 단행본 및 연구서, 또한 각세부주제에 관한 참고문헌은 아래 나오는 B. Altaner 및 J. Quasten의 저 서 에 서 아주 풍부하게 찾아 얻을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참고 문헌〕

(1) B. Altaner - A. Stuiber,Patrolㅇgie, Freiburg/Br. 19667.

(2) Ο. Bardenhewer, Geschichte der altkirchltchen Literature Freburg/Br. 1914.

(3) L.M. da Caviz, Hist or ia de la literatura patristica, Buenos Aires 】953≪

(4) F. Cayre, Patrologie et Histㅇire de la Theologie, Paris 1953.

(5)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London 19684.

(6) M. Pellegrino, Letteratura graeca cristtana, Roma 1963; Letteratura latina crisiiana, Roma 1970.

(7) J. Quasten, Patrology, Utrecht 1950.

(8) M. Simonetti, La letteratura cristiana antic a greca e latina, Firenze 1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