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메시지 - 제4차 주교 시노드
1978년 7월호 (제 58호)
서 론 1. 교황 바오로 6세의 부름으로 로마에 모여「현대의 敎理敎授 특히 아동과 청소년 교리교수」를 토...

W. 카스퍼 저, 박상래 역 예수 그리스도
1978년 7월호 (제 58호)
그리스도信仰의 死活과 存廢가 달려있는 에수 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한 물음 이 오늘날 새로운 절박성을 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 - IX. 신앙의 역사성 -
1978년 7월호 (제 58호)
1. 歷史·“"우리의 가장 큰 問題 ■금세기 초에 프로테스탄트 神^者 이며 宗敎歷史家인 트된취 (E. Tro·...

아시아의 貧困과 共産主義의 誘惑
1978년 7월호 (제 58호)
一아시아修女聯合會 第4次 總會에서 1977년 11월 20일부터 3()일까지 10 일간 인도의 항구도시 봄베이에서 ...

社會的恩寵ㅡ새로운 司牧戰略을 위해
1978년 7월호 (제 58호)
ㅅ問의 言語는ㅡ우리가 말하는 것, 말하지 못하는 것,말하지 않는 것을 다 포함하여 ㅡ어떻게 보면 인간 ...

1966년까지 가톨릭 사회사상의 역사적 개관
1978년 7월호 (제 58호)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많은 사 란은, 1891년에야 비로소 가톨릭교회 가 체계화된 사회적 가르침을 제시...

現代世界의 敎會와 ?少年 敎理敎育
1978년 7월호 (제 58호)
ㅡ 主敎 시노드 제4차총회 의제를 중심으로 지난해 S월 30일부터 10월 28일까 지 로마에서 열렸던 主敎시노...

敎父들의 思想
1978년 7월호 (제 58호)
I. 序 論 "敎父들의 말씀은 믿고 기도하는교 회의 실생활가운데 풍부히흐르고있 는이 聖傳의 생생한現存을 ...

主日聖化를 위한 司牧的 配慮
1978년 7월호 (제 58호)
I. 머리말 어디로저렇게 열심히들가는것일까? 서울거리의저 인파와차량듭, 고속버스정류장의 저 장사진! ...

罷工法의 社會學的 考察
1978년 7월호 (제 58호)
I. 서 론 가톨릭敎會에는 主日을.거룩하게 지내라는 法이 있다. 그 방법으로 미 사參禮의 의무가 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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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1978년 7월호 (제 58호)

1966년까지 가톨릭 사회사상의 역사적 개관

M. 스쿠얀스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많은 사 란은, 1891년에야 비로소 가톨릭교회 가 체계화된 사회적 가르침을 제시·히· 였다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하 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적 상황 을 고리할 때, 이러한 ‘시간적 지체’ 는 보기보다는 던 수치스러운 것이디·. 사실 당시의 상황하에서 「노동헌장」 (Rerum Novarum) 희 칙 의 공포는 매 우 놈람고 예 상외의 처사였다. 19새 기의 가톨릭교회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과 인권선인문을 수긍하지 못하 고 있던 처지였다. 역대 교황은 남미 에서 발생하는 독립투쟁을 不當視하 였다. 새로운 것은 무엇이나의흑과 공포감율 가지고 대해졌고, 너무 조 급하고 일괄적인 단죄성명을 야기하 였다. 세속정신은 敵手라고 인정되고 검열관들은 세속정신을 사방에서 보 는 듯 하였다.

동시에 일부 가톨릭 集團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즉 보수에 (B。ssuet), 드 매스트르(de Maistre), 드:보날드(de Bonald) 등과 같이 왕정제도는 하느 님이 제정한 것이라고 민던 이들의 향수를 느끼었고, 19세기 말까지 W王 과 敎食의 필연적 결연을 계속적으로 선포하였다, 독일의 文化?爭 (Kultur· kampf)으로 가톨릭은 守勢에 몰리었 고, 교황국 응호자들의 소원이나 저 항에도불구하고 이태리는 통일되었 다. 여러 개의 유럽국가와 南^ 전역 에서는 독립이 성취된 후에도왕의 주 교임명권은 계속 존속하고, 교회와 정 부 사이 에 불투명 한 관계 가 지속하였다.

사회문제에 관해서라면, 여러 나라 의 가톨릭신자들이 ㅣ民權支持의 호소 와 특히 노동자를 위한 다급한 호소 를 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호소들은 고립되고 분산된 외침이었 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이 원하신 社會秩序에 대한 위협이라고 여겨졌 다. 그 외침은 냉대받고 때로는 斷罪 받았다. 시대를 앞지른 사람들의 징 상적 운명은 의혹받는 것이다.

I. 敎會와 ㅅ問社會

이러한 배경에 비추어진 교황 레오13세(1878?1903)란 인물은 번갯불처 럼 선명하게 보인다. 1810년에 로마 귀족이며 외교관 집안에서 대어난 레 오교황의 통찰력, 투시력, 시야의 폭 은 단연 비범하였다. 그가 82세에 공 포한「노동헌장」(1891년 5월 15일) 은' 이기적이고 현혹되어 있던 일부 가畏 릭집단이 병적으로 사랑하던 중세기 정 신에 종지 부-3" 찍 었 다. 그 회 칙 은 우선적으로 교회가 이제부터는 노동 자 문제의 관점에서 현실적이머 희밍· 적으로 세상을 평가하고자 한다는 것 을 보여준다. 그 희?척은 위협읍 받던 소위 ‘그리스도敎的 秩반'를 옹호하 는 試?를 하지 않는다. 그 회칙에는 靜止的이고 보수적인 기미가 없디 교황 요한 23세 의 말윤 빈 리 면 노동 헌장은 "경제 사회 제건의 대헌장" (어머니와 교사, 26항)으로 나타난다. 이 렇게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회칙은 그 전 시기의 경고문들과는 대조-이룬 다.

그 회칙의 참신함은 주로 私밖?;f 과 정당한 임금과 노동조합에 관한 제 안에 있기보다는 無産:大衆에 대한 새 로운 졌해와 새로운 행동방향읍 구상 하려는 결의에서 더욱 나타난디희 칙의 의도는 노동자가 사회 안에서 차 지하는 위치를 그리스도교의 원칙과 더욱 조화시키는 데에 있었다.

교황 비오 10세 (1835-1903-1914)는 現代主義의 위기에 짐착해서 사회문 제에 별반 관여하지 못하였다. 그는 고작 ie &7/o≪(프랑스의 사회주의 新)음 단죄하고(ΙΘΙΟ년),그리스도교 적 민주주의의 ㅿ설립을 제안하였다. 이 思想은 자유보다는 질서유지에 더 욱 관심 을 두고, 사회 적 불평 등을 아 직도 創?主의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디_

1914~1918년의 제 1 차:大戰 기 간은 분명히 교횡- 버]네딕또 15세(1954-19 14-1922)가 사회문제에 관한 공식 선 언문을 발표하기에 적합한 시기는 아' 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그는 국가듭을 격리하여 ‘자유의 수호’와 '사회질서의 유지;를 바라보며 하나 의 사회구성윤 향해서 단합하라고 하 였다. 그리고 우리는 1920년 5월 23 인에 발표된 회칙「평화는 하느님의 임 무」(Pacen Dei Munus) 에 서 여 러 개 의 主題가 싹트는 것을 발견하며, 그 주제들은 후대 문헌에 재등장하고 발 전되어 갔다.

레오 13세의 노동헌장이 공포된 지 40년 만에 비오 11세 (1857-1922-1939) 는 태明한 선임자의 가르침을 쇄신하 였다. 회칙「제40주년」 Anno 1931,5.15)에서 자본주의의 진 보와 기 업 체 의 집 중현 상을 지 적 한다. 대기업체의 팽창은 자본주와 노동자 와의 유대-!" 파손하였다. 공산주의나 온건적 형태의 사회주의가 제안하는 개선책을 그리스도인들이 수락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조직 을 형성하도목 초대되었다. 어떤 것 은 직업변 조직체이고.다른 것은 정' 치직 조직체이디-. 비오 11세 교황자신이 장려한 ‘가톨릭액션’ 운동의 영 향으로 조직체의 수가 급증하였고, 1939~1945년의 제 2차대전 직전에는 그리스도교 노동조합과 기독교 민주 당들이 대폭 증가하였다. 비오 11제 는 회칙에서 노동자의 자유가 재산소 유권과 밀접하게 연관됨을 지적하고, 그리스도교적 정당조직을 권장하며, 유명한 상호보완의 원리(86항)를 상기 시킨다. 정부가 자기 능력을 과도하 게 주장하고 개인들의 창의력을 통제 하면, 인격은 파괴되는 것이다. 우리 가 아는 바와 같이 이원리는 후에 가 난한 나라에게도 적용되었다. 가난한 나라들은 개발을 위해서 자기 힘에 의지하고 책임지야 한다는 것을 각성 해야 한다.

회칙「제40주년J은 노동헌장의 공 포 40주년 기념으로 발표되었으나, 노동헌장의 내용과 문제를 넘어서고 ' 있다. 회칙 제40주년은 국가내의 징 치문제와 사회문제 사이의 변증법적 유대를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변증 법적 유대’란, 사회문제의 고찰은 필 연적으로 정치문제의 분석읍 끌어들. 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상황의 영향을 받아 비오 11세 는 사회사상을 상세하 설명하고 발전 시·켰다. 그는 회칙 Non Abbiamo Bii0ST?0(1931.6.24)에서 무쓸리니 정 부의 정책에 對備하여 이딸리아 주교 를 경고하였다. 회칙 Quanta Cura (1937.3.U)에서 그는 사회주의 국ㅣ가 의 극단적 행동을 특히 단죄하였다.
몇일 후에 회칙 「구세주 하느님 J {Divini Redemptoris) 에 시 공산주의 를 강력 하게 비 판하였디이 상 세 편 의 회칙에서 노동자의 권리뿐 아니라 개인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를 포함한 인권에 대한 강조가 점점 더 강해졌 다. ㅣ교황의 선언문 공포를 정당화하 던 것은 인간의 기본적 자유에 대한 위협이었다.

교황 비오 12세 (1876-1939?1958)의 많은 선언문 중에서 우리는 ?민지 방 송메시지 세편을 선택한다· 1941년 6 월 1일의 성령강림절 메시지는 노동 의 권리를 선언한다. 1942년 12월 24 일의 성탄 메시지에서 교황은 기본권 과 평화와의 관계를 게판하였다. 2년 후에 교황은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상세히 해명하였다.

세계대전이 終:1、된 후에, 비오 12 새는,국제노동기구 (ILO; 1954. 11.19. 딤?화)와 유엔기구(UNO; 1956. 12.23. 방송 메시지)와 같은 국제기구에 대 해서 두 선임자보다는 더 많은 기대 를 표명하였다. 그 機構들은 종교자 유를 포함해서 인권옹호를 위하여 조 직된 것이기 때문에, 가톨릭신자듬이 그 기구에 협조하라고 교황은 당부하 였다.

교황 요한 23세 (1881-1958-1963)는 이상 전통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 할 인물이었다. 선임 교황들의 문헌 에는 사목적 성격이 뚜럿하였으나, 그· 문헌이 특수상황에 관한것이란점 도 선명하였다. 누구보다도 더욱 司牧的 교황인 요한 23세의 사회직 가 르침이 역설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 가르침의 두가지 중요 해명이 추심·적으로 쓰였다고도 합 반 한 문헌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교사」(1961.5.15)와「지상 의 평화」(1963. 4.11)는 요한 23세의 고요한 思索의 결실이다. 요항.23새 는 긴급상황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세 계 공동체의 발전이 요청하는 교리적 문헌을 작성합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

이것은·호인 교황 요한 23세의 ‘헉 명’의 극히 작은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교황이 사회경제문제와 정치 문제를 망원경을 거꾸로·보기 시작함 으로써 즉 말하자면 제 3 세 계 의 관점 에서 보기 시작함으로써 가져온 혁명 임에 틀림없으며, 현안문제吾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의 방법으로 다루는 길 을 열어놓은 혁명이다.

끝으로 요한 23세는 교회가 인간공 동체의 일부를 형성한다고 하였디 물론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빛οㅣ 되 는 것이지만 또한 땅의 소금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는 인간과 인간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있다·· 비오 12세는 國際機構에 가입하라고 그리스 도인들을 격려하였디-. 요한 23새는 국제기구에 투신하라는 호소률 인정 하고 확장하였다. 그의 견해로는 교 회가 세싱· 안에 현존해야 하고 인류 의 발전을 위、해 협조해야 한다. 이러 한 호소는 우선 회 칙「어 머 니 와 교사J

에서 들려온다. 유명한 주제인 '社會 化'에 판해서 언급하면서 교황은 인 간유대외 새류고 복합적인 형태를 지 직하고, 이것에 비추어 특히 노동자 의 경영찬여문제, 농업과 저개발의 문제를 고찰한다.

「어머니와 교사」를 포함해서 이상 의 문헌에서 취급된 중요한 요소들이 회칙 「地上의 平和 J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세가지의 새로운 점도 보인다. 다른 곳에서 지목된 인간의 기본권은 교육, 정보와 나아가서 정치참여에도 연장된디그뿐 아니라 요한 23세는 그리스도인에게만 말씀하지 않고, 모 든 선의의 사람의 반성자료로 자신의 메 시 지 를 제 지 한다. 끝으로 요한 23 세는 '시대의 표지,에로 주의를 집중 시키면서 방법상의 실질적 변화를 선 인하였디-. 그것의 결실이「사목헌장J 에서 확인되었다.

피牧憲章(1965. 12. 7)은교회의 사 회직 가르침의 기본원리들을 재구성 하고,특히 인격체 존중의 사상에서 많은 점 을 받아들인 다. 교리 적 관점 에 서 사목헌장은 ‘地上活動의 自律性, (36항)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 자율 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런 정확한 표현은, 가르.친 책임을 가진 교회가 시대의 표지를. 해석하고 행동방향을 결정하기 위해서 인간과학을 점점 더 사·용해야 하는 시기에 나왔기 때문에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사목힌장의 사목직 성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헌장은 우선 격렬한 가톨 릭 액 션 의 저 변 에 서 체 험 되 는 문제듬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사목 적이다. 그것은구체적 투신과용감한 創意性을 강력하게 호소하는 데 있어 사목적이다. 이 .문서를 연구한 그리스 도인들은 이 점들을 실패없이 인식하 였고, 사목헌장에 층실함은 이 헌장에 서는 오로지 싹트고 있기만 했던 결과 를 즉시 낸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구체적 투신의 강조는 교황 바오로 6세(1897 = 1963 -)의 처음 宣.言文에 서 발견되는 주요 특징들 중의 하나 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은 유엔이 인권을 신장하고 평화를 옹호하리라 는 자신의 신임을 수차에 걸쳐서 확 인하였다(유엔 담화문. 1965. 10. 5). 회칙 「민족들의 발전 J 은 평화와 발전,징 의와 자유의 변증법적 관계를 해설한 다. 완전한 발전은 모든 국가의 사람 들아 진정으로 참된 권리의 所持者가 되는 것을 진제하고 요구한다. 부자 나라들도 이런 요누조건을 채워야 하 나, 먼저 국가와 집단의 이기적 이해 타산을 버 리 야 한다·

II. 力動的 가르침

위에서 검토한 짤막한 槪觀은 교회 의 사회적 가르침이 갖는 역동적 성 격을 들어낸다. 레오 13세는 노동자 계급의 조건만을 고참하였다. 그런데 1914~1918의 제 1차대전과 복합적 결과로 만미임-아 초기 문제의 범위가 처음으로 확장되었다. 사회문제는 국

가의 정책과 관련해서 연구되어야 한 다는 인식이 서서히 자랐다。 各國이 채택하는 정치체제는 조심스러운 검 토를 받아야 한디-· 국내평화와 국제 평화는 같은 문제의 상호보충적인 두 측면에 불과하다. 국내평화는. 주로 각국을 통치하는 이들의 관심사이며, 국제평화는 오히려 국제기구의 임무 이다· 둘다 인권을 존중할 필수저 과업을 가지고 있다,

1. 문제의 統合

요한 23새 이후에는 전통적 가르침 이 인정되고 통합되었으나, 전통직으 로 취급되던 문제들은 확산되었다.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새로운 태도 즉 인간공동체의 ‘奉仕者,란 태도를 취 한다. 유기체적 종합이 이루어졌다。 후대 문힌은 전대의 문헌보다 더 넓 고 복잡한 영역을 포함한다· 정치적 영역이 더욱 두드러진 위치 fr 차지하 는 까닭은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식량 기타 문제들의 해결이 정치영역 에 많이 달려있기 때문이디-· 국제문 제에서 국내문제에로, 공동체에서 개 인문제로, 세계적 문제에서 지역직 문제에로 전진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접근법은.집회의 권리, 임금문제, 자연자원 문제들을 새로운 형식으로 취급한다. ‘통합직계획’의 관념이 바오로6세의「민족들의 발진」 에 도입되었으며 새로운 국제 경제질 서를 위해서 오늘날 기본적 조건이라 고 간주되는 것이 무엇인지 지저하고
있다.

2. 직접관계와 간접관계

요한 23세 전에 교회의 사회적 가 르침은 아직도 매우 제도적이면서도 인간관계에 대한 고전직 유리판의 특 징적 구분법을 다분히 사용하었다. 고찰되던 인간관계는 흔히 어민 특징 활동의 걸과로 인간들 사이에 선정된 직 접 적 관계 였 다. 현 대 기 술과 상승한 생산성이 결합된 오늘날보다는 19세 기 말엽의 중소기업체에서 ‘정당한 임금,을 논하기가 디 용이하였다. 에 를 들면 레오 13세는 오늘날에 우리 가 한번도 직접으로 집근하지 않음 사람들과 우리-Sr 연결히ㅜ는 무수한 경 제, 사회, 정치직매개체ㅡt" 예견한 수 없었다. 그리나 점차로 교회의 사 회적 가르침은' 인간이 고안한 제도와 조직체의 仲裁를 통해서 타인과 갖는 간접 관계 를 고유한 대 상으로 식 빈 하 고 규정해 왔디그런데 간접관계에 관해서는 직점관계에 .관한 고전저 유 리관은 적합하지 않다. 이제 문제되 는 인간관계는 우리가 한빈도 대면하 지 않윤 사람들을 우리 와 연 걸 시 킨 디-· 그러나 이 유대의 진실과 효력은 우 리가 타인과 협력하면서 창조하고 비 판하며 수정해야 하는 중간집단읍 동 해서 이루어진다. 간접직 유대는 필 수적이면서도 의미없는 듯이 보이기 도 하고 혹은 그자체로 목적이 된 위 험성을 지닌 사회제도류 통해시 이루 어진디、

이와같은 안목에서 볼 띠ㅣ, ?心에 대한 호소는 더욱 긴급해진다. 타인 에게 개방적이 되는 것은 나와·”··당신 관계에 특수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 미하지 않는다. 직점적으로 증인함으 로써 우리가 쉽게 변명할 수 있는 것 도 아니다, 해방은 內的回心에 달려 있고, 그것 없이는 우리는 이득을 주 되 억입·적인 구조를 의심해보지 않고 더욱 충족한 참여를 위한 구조조성에 노력하지 않유 것이다. 우리는 가난 하고 저개발상태의 사람의 문제에 관 .심없다고 선언할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제도직 운명론에서 태만의 정 당화수단,이기주의와 심지어는 권력 욕의 합리화, 기본적 불성실의 방어 책을 발견할 것이다.

요한 23세는 물론 제도를 도덕행동 외 주체로 삼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 리니-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적하 기·S- 사회제도는 문화적 창조물로 보 아야 하고, 사랑윤 표현하고 인간들 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것, 다른 말로 히·민 넓고 다양한 형태의 형제에게 제도적 지원윤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3. 다방면51 접근·

이렇게 해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에 부과된 새로운원동력은최근에 발 생한 중요한 방법상의 변화와 결부된 다. 다른 부면에서 설정된 전제에서 明不·的으로나 默示的으로 ■출발하며, 근본저으로 演縛的 논증을 더욱 중요시한다는 기색이 없어졌다. 여러 시-랑 중에서도 톡히 까르뎅 (Cardijn) 이 추천하고 레 브레 (Lebret)가 확인한 병-법의 영향을 받아 구체적 상황에 관 한 그리스도교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서 우선적인 목표는 과학의 도움을 받으며 상황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 리고 기본적 원리에 비추어 상황을설 명한 다음에만, 그· 가본원리에 기초 를 두고 사목적 견지에서 정당화되는 실천적·단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것은 분명히 다방면적 접근법이다.

「지 상의 평 화」이 후 이 와같은 방법 의 발전은 본질 적 으로 요한 23세 가 그 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한 공헌의 풍요 함을 확인한 것이다. 이 방법은 교회 의 사회 적 가르침 읍 불충분하게 만 고 찰되고 기본원리와 부당하게 동일시 되었던 시험적·'假定(m提)에서 분리 시킴으로써 진정한 원리가 뚜렷해지 고 모든 힘과 효과를 내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적 사회윤리가 敎義에.너 무 깊이 투입되면 상황직 성격을 약 간 상실하게 된다. ■교회의 사회윤리 는 이제 역사과정을 통한 실현의 신 학흑은책임, 창의성, 모험과그리 스도교적 실천의 신학으로 보아야 한 다. 이 사실로 인해서 신학이 하나의 이념으로 변질되고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될 위.험성은 전.에보다 감소되었 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점,과다양 한 종파에의 소속사실이 새로운 방법 으로 인해서 절충된다면, 그들이 세 속 구조에 투신할 가능성은 증가된다.
새로운 형·태의 다원화가 가능해진다。 동시에 그리스도교 종파간의 깊은 대 화와 더 나아가 교회일치 행동음 위 한 더 좋은 조건이 조성되는 것이디·。 끝으로 메델린 (Medellin) 주교회의가 훌륭하게 보여주었듯이, 最高· 敎導權 者인 교황의 가르침은 특수한 사회문 화적 상황에 마추어 다양하게 적용되 기도 한다.

III. 세가지 不變的 主題

이상의 발전이 몇차례의 결징직 단 계를거쳤다는것을 想起했지만, 우 리가 모든 문헌의 기본적 定向을 결 정하는 기준관점에 대해서 간단하게 라도 고찰하지 않으면 발전을 이해 할 수 없다. 사회적 가르침이 칠학, 자 연법, 성서, 전승, 과학에서 무슨 공 헌을 받았는지는 고찰하지 않는디-. 이 글에서 이상의 원천들이 틀림없이 언급될 것이다. 반면에 이 試?的 종합의 글에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정도에 있어서 상이하지만 세가지 기 본적 주제를 중심으로 구체화한다는 것을 화상하는 것이 필요한 듯하다. 우리 생각에 이 기본주제의 의미가 아직 충분히 開發되지는 않았다。 토 론 자극제인 이 주제에 관해서 간략 하게 언급하겠다.

ι. 인간의 존엄성

첫째 주제는 직· 인간의 존임성, 상 이성과 특유성을 가질 권리에 관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하느 님의 자유에 참여하기 때’문에 자유륨 다. 즉 사람은 사랑받는 피조물의 자 유를 가지고 있다. 이 자유는 분명히 죄로 인해서 감염되었으나 구원으로 써 회복되었다. 이것이 ㅅ權fiti의 이유가 된다. 이것이 또한 인간에 대 한 프로미테안 (Promethean) 學說음 원 칙적으로 배척하는 이유가 된다. 이 학설은 인간을 아주 높이 추겨읍려 결국에 인간을 자신과 타인을 위한 표 惡規範의 실진적 제정자로 만들어 놓 는다. 傲慢 (hybris)을 배격하는 순간 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의 回心이 이 루어진다. 그리고 이 자유는 먼지 묵 은 아담은 추방하고 본능적 충동과 공 격성과 욕정윤 배격한 후에만 완전하 다.. 특유함과 독창성을 가질 권리가 모든 민족,국가, 문화의 기본권리라 고 점차 인정될 것이다.

2. 友情의 생활

이와같은 회심으로써 우리는 조화 있는 우정의 생활을하도목준비된다. 이제 正義의 엄밀한상호교환성은 ‘새 로운 계ㅣ명,으로써,즉 다른 사람 안 에서 하;!=;님의 모상음 인정함으로써 초월화된다. 그퍼므로 사랑은 하느님 의 사랑, 성실,공평, 완전성과 자비 심에까지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안목에서는 정 의의 요구만이 사회관계를 지배할 수 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다인 안에서 하느님 모상을 인정하는 것이 형식적이 아니고 현실직 실재가 되기까지, 제도晉 개선하기 위한 끝없는 노력을 하도록 요청받는다. 그래서 모든 수 준에 참여하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 로 그리스도교적 희망과 일치하는 하 나의 안목이 된다. 그리고 하나의 제 도나 이넘이 장래볼 방해하기 때문에 거진하는 것도 하나의 특수한 그리스 도교적 자유의 행사미다. 정치제도와 사회제도가 그리스도인의 목적 자체 가 될 수는 없다.· 어느 제도가 필연 적이라는 인싱이 제거되어야 하듯이 그것들을 정당화하려는 이념체계의 가민이 벗겨지고 적나라하게 노출되 어 야 한다.

이러한 고발은 두가지 부면에서 작 용필 수 있다. 첫째는 모든 형태의 政治的':無神論이고, 둘째 부면은 첫 째 것과 자주 연결되는 것으로, 모든 인 간관계 와 사희 관계 를 우정 관계 나 敵 對顯係 둘 중에 하나로 구분하는 ‘정 치 X]' 마니 케 이 즘,(Manicheism) 이 다.. 후자는 인간을 필연적 적대관계에 놓 여있는 것으로 보고, 선전을 통해서 일방적 적개심 감소니- 타인의 敎化 즉 타인의 소외가 유일한 해결책이라 본다. 타인은 자기의 특유성을 거절 당하고 주빈직 지위로 밀려나거나, 정신병원에 구금되거나 흑 심지어는 단순히 살해된다. 이것은 타인의 감 축이나 제거를 정당화하는 신전·이 복 음과는 상충하지만, 복음은 갈등의 신학을 요청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유은 개인의 특유싱을 인정하기 때문이 다.

이렇게 고찰하면, 교황문헌들은 전 적으로 복음적 편애를 보여준다. 그 문헌들은 가난한 사람을 찾아사 인정 받지 못한곳에서 그를 인정해주고, 그에게 창의성과 책임감을 일깨워주 도록 권장한다. 교황문헌은 매개체를 통해서라도가난한 사람을 이웃으로 만들라고 제안한다. 전에는 가난한 사람을 무산대중이라고 보았으나, 실 상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 다. 여자, 노인, 불구자, 태아, 정치 범, 굶는자,무식지-,무방비한원주 민 등 모두 복음적 특권의 소지자이 다. 그리스도는 그들과 자신은 동일 시하였기 때문이다.

3. ㅅ問파 自然의 關係

제 3의 주제는 인간과자연의 관계, 말하자면 勞動과 文化의 주제이다. 교회는 노동이 商이라거나 ?이라 고 보지 않는다. 노동은 인간과 피조 물을 연결시키는 것이므로 의무이고 권리다. 따라서 인간은 기분내키는 대로 자연을 남용할 수 없다. 노동시 간의 계속적인 감축이 복음정신에 부 합한다고 히-지 못한다, 결과를 통해 서볼 때, 노동은 사람과 사람 사이 의 교환이다, 노동은 奉仕라고도 인 경받아야·한다. 반면에 무책임한 광 고의 자극을 받은 인색한 향락, 쾌락 주의 적 소유, 낭비 등의 난폭한 소용 돌이는 노동의 결심을 인간들간의 장 벽으로 전락시킨다. ‘
노동은 오로지 요구와 욕구충족음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적하 였듯이, 노동은 공동체에 봉사할 제 도창조를 목표 삼는다. 노동의 또 다 른 목표는 가치축척을 증가시키면서 지성적 선익읍 완성하는 것이다· 많 은 사람의 협조에서 산출되는 질적으 로 새르운 이 선익은 새로운 형대의 재산과·힘과 영향을 낸다·

이 새로운 재산은 그리스도인의 양 심 에 새 로운 문제 를 일으킨다. 지성 적 재 산의 분배 문제 는 새 로운 제 도블 요구하는 듯도 하기 때문이다· 지식 이 지배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은 연구의 의미외- 목적결정에 관련되는 더욱 근본적 문제이다.

IV. 새로운 발전의 길
 
이 런 주제 의 고찰은 교회 의 사회 적 가르침에· 특수한 성격을 부여하는 것 이 무엇인지 명백히 해준다·· 그리나 이 교리가 중요한 발전을 거쳐야 한 다는 예감이 든다. 이 부분의 신학연 구는 시대적 도전에 대하여 기의 무 감각한 일부 신학자들이 가끔 등한시 하있디-. 그러나 이 문제는 윤리신학 자를 분명 히 강요하;여 사유재 산, 잉 여재산, 자선행위에 대한 표준교리를 깊이 탐구케 한다. 그러면서도 이 부 분은 敎義神學者에게는 새롭고 긴급 한 문제를 제기한다. 어떤 교의신학 자들은 이 문제 에 관하여 심 히 미 지 근한 관심을 갖는 듯하며, 이 방면의 신학이 앞으로 세속적이‘고 부적절한 교회론이나 宜敎神學을 전개하고 너 무 과격한 것을 말할 것이라는 예감 을 갖는 것 같다;

1. 神學의 道具化

우리의 상황은 사실 16새기의 상황 과 유사하다. 그때와 같이 오늘날에 는 새로운 인문주의가 발진하고 있 다. 국가들은 형 체 를 갖추거 나 그들 의 정체가 인식되고 인정되기를 바라 고 있다. 하나의 국제적 사회, 아니 세계적 사회가 ?故중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16세기에는 국가와 통치자들 을 위하여 새로 발생한 무조건적 주 권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한 신학자들 이 있었다. 심지어는 매우 의심스러 운 십자군 정신의 영향을 받은 제국 주의적 정복을 국제주의의 미명하에 정당화한 신학자도 있었다.

이것은 신학연구가 단순한 도구호 사용되지 않고 신학의 世俗 理念體系 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신학자들의 주 의가 얼마나 커야 하는지 보여준다. 근대역사가 입증하듯이, 이상의 신학 적 전람은 가끔 신학자와 어느 지방 교회를 변질시켜 정치권력의 종속물 로 만들었다. 근대의 국가는 교회를 보호하고 주교를 임명하였으면서도 세속적이었다. 권력은 질대적이었고, 폭력의 중심이고, 도덕직 혹은 종교 권위가 아무 영향음 미치지 못하는 의지의 주체였다. 종교는 보조직 형 태로만 사회에 존재하였고 점은 래비아탄들(Leviathans)에게 이념적 보호 -M- 제공하기 때문에만 인정되었다. 신앙은 단순히 개인문제가 되어야 했 고≫ 사람의 양심 속에서 안식처를 얻 고 그 속에 오랫동안 감금되어 있어 야 했다-

2. 세가지의 용기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그리스도 교직 체힘의 있년을 분명히 표현하고 그 체 험 율 계 속적 으로 비 판 검 토하는 반면에, 우리뮴 초대하여 현대세계에 서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지 좀더 선 명히 식별케 한다. 이 가르침은;우리 로 하여금 시대의 표지 (kairos) 에 주 의합 기울이게 한다. 이 사명은 우리 편 에 세 기-지 의 용 기 를 전 제 한 다. 旣存制度와 유행하는 이념체계를 직접 으로 다루지만, 초연함이 가능한대로 신학적 탐구 자체에 관해서도 대담하 게 비판적이기를 요청된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복음적 유토피 아몰 받아드릴 용기를 가져야 한다. 실상 희망은 우리를영원한불만에 찬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약점 과 업 적 의 불확실 성 음 재 면 서 예 상외 의 것피-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언제 나 개 방적 인 여 행 자가 되 게 한다.

이리한 비판석이고 이상적인 용감 성 은 인종의 길핑 성 인정 을 견제 로 한 디·· 많은 복합적 영역에 있어서, 실 상 그리스도인은 비판을 뒷받침하고, 행동방향을 제공하며 예언자를 고무 하는 기본원리를 선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복음이 실 천적 제안을 할 수 없다는 것과, 그 책임은 기술자와 결정 책임자에게 있 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자 주 자신들의 당황을 인정하거나 판단 을 보류해 야 한다.

끝으로, 그리스도인듬은 특수한 성 격을 가진 이 교리의 효력을 가능케 하고 구현하는 도구를 제조해 야 한다. 교회가 공동증언을해야한다면, 공 동행동을취하고 지속해야한다. 다 원성? 자율성, 창의성의 자유가이 공 동명령보다 우선할 수는 없디노력 분신, 산발적 실험은 우리가 역사의 전환점을 놓치는 것을 의미한다. 따 라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 진정으 로 효과내자면ㅡ그렇지 못하면 모순 적이다ㅡ적절한 조직의 구성은 필수 적이다.

이 조직체들은 옛날이나 최근의 종파제도를 복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 러 나 지 역 교회 기. 적 당하다고 생 각한 다면 이 조직체들은교회가사회적 활 동에 손대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데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새 조직 체 는 우선 적 으로 조금 전 에 언급한 비판적이고, 건선적이고 이 상적 인 활동에 관심 을 두어 야 한다. . 레닌과 그의 추종자들이 자주 주장 한 것은 이론이 아무리 폭발적이라도 이들의 효력을 드러내는 조직체를 통 하지 않고는 혁명이 발생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인간 공동체 안에서 그리 스도인들아 지닌 실천적 가능성이 얼 마인지 우리는 거의 모른다. 교의와 윤리의 차이점이 계속 존재해도, 우 리는 인치해서 굶주림, 억압, 폭행에 대하여 민감하지 않은가? 공동행동 이 우리를 서로 접근시킨다는 것을 안다. 오늘의가난한사람에게서그 리스도의 얼굴을‘발견하도록 함께 노 력함으로씨 우리가 활동적 사랑을 실 친하고, 사람들의 소망을 더 잘 이해 하고, 그들과 함께 희 망의 이 유를 나 눌줄 아는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 아 닌가? 

원문 Rev. Michel Schooyans, Catholic Social Thought to 1966: an Historical Outline, Church Alertt Nov-Dec. 1977. 吳庚?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