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제 4차 사회문제 주교세미나 선언문 - BISA IV, 1978. 2. 24~3. 8, 마닐라 -
1978년 5월호 (제 57호)
1. 파키스탄에서부터 일본에 걸친 아시아 12개국과 불란서, 카나다, 뉴질랜드, 파푸아 뉴기니아 및 호주에...

가톨릭 학교에 관한 지침
1978년 5월호 (제 57호)
서 론 1. 가톨릭 학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로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Lumen Gentium)과 「현...

정치질성에 관한 그리스도교 원리
1978년 5월호 (제 57호)
- 브라질주교회의 제 15차 총회 성명서 - 지난 수년간 브라질 로마가톨릭교회 주교들은 社正義와 人權에 관...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 - VIII. 신앙의 교회성 -
1978년 5월호 (제 57호)
1. 敎會ㅡ신앙의 障碍 또는 後援 主題 ‘信仰의 敎會性’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쉽사리 불쾌감을 일으...

프래그머티즘의 문제점 - W. 제임스의 학설을 중심으로 -
1978년 5월호 (제 57호)
현대인들에게 직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상 중 하나를 말한다면 '프래그머티즘’(...

교회없는 종교 생활
1978년 5월호 (제 57호)
작년 5월 독일가톨릭중앙회(ZDK)의 사목위원회에서 "교회없는 종교생활ㅡ신앙과 교회에 대한 挑戰”이라는 ...

그리스도론의 어제와 오늘
1978년 5월호 (제 57호)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누구인가?” 참된 그리스도신자이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 문제가 오늘날 새로운 ...

문학에 담긴 종교적 심성
1978년 5월호 (제 57호)
I. 巫俗과 文學 발생론적으로 보아, 문학과 종교, 詩와 신앙은 ㅡ卵性 雙胎兒다. 하나의 모태에서 한 순...

한국 현대문학 속의 종교성
1978년 5월호 (제 57호)
옛부터 한국에 있어온 종교 및 종교적 ?態로서는 대체로 巫?(shamanism), 佛敎, 儒敎 등을 들수 있다. 이 ...

신을 찾는 자연주의자
1978년 5월호 (제 57호)
I 일본의 어떤 無神論者가 病苦와 老衰로 死境을 헤매게 된 어떤 날 弟子들을 불러놓고 "이제 조금만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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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1978년 5월호 (제 57호)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 - VIII. 신앙의 교회성 -

W. 카 스 퍼

1. 敎會ㅡ신앙의 障碍 또는 後援

主題 ‘信仰의 敎會性’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쉽사리 불쾌감을 일으키고 역정나게 한다. 이 주제가 宗敎裁判方式과 魔女裁判까지 생각케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도그마적 後見, 敎權的 操縱, 性向偵探과 操作을 너무도 쉽게 생각케 한다. 교회가 신앙의 使信을 신빙성있고 권위적으로뿐만 아니라 無謬的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교회의 요청은 근세적 自由感覺과는 철저하게 상반되는 듯이 보인다. 자기자신의 理性을 사용하는 용기는 敎會의 ?義로 하여금 獨斷主義(Dogma-tisrmis)의 혐의를 받게 하였다. 獨斷的 不?容은 오늘날 사회를 위해서는 하나의 위험으로 간주되고 배척되어 야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敎를 거스리는 수많은 反論들이 신앙의 ‘事件’ 이나 ‘예수의 事件’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信仰人들이 이 ‘事件’에서부터 製造해낸 것에 해당한다. 본래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信仰의 스캔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앞에서 눈에 띄는 불필요한 스캔들로 말미암아 가려지고 있다. 이때 일차적으로 倫理的 스캔들을 생각할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상에 의하면 인간과 그리스도 自由의 解放과 幸福에 방해가 되는 여러 敎會構造의 스캔들과 未熟과 권위적 思考와 행동을 방조하는 여러 교회구조의 스캔들을 생각해야 할 거이다.

이 反論들은 자주 교회의 ?義的 無條件性 주장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理念的 편협성을 띠고 제기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진지하게 받아 들여져야 한다. 교회가 신앙의 信憑可能性의 구체적 場이며 주요한 동기임을 주장한다면, 교회가 자신의 전 顯現樣式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증거를 드러내기 위해 행하는 福音에 맞고 인간에 부합하는 敎會改革을 위한 노력은 敎會 본래의 宣布委託에 속한다. 그렇다면 단지 추상적으로 그리고 他者를 상대하여서만 自由와 人間尊嚴, 연대성과 형제성을 강조하고 방어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이 가치들은 會共同體와 그 構造의 범위 안에서도 具現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더 원천적인 것이다. 질문 내용은 이러하다 : 우리가 도시 敎會를 필요로 하는가, 도대체 예수가 교회를 원했는가? 그는 하느님 王權의 到來를 선포하였는데 온 것은 교회였다(A. Loisy).⑴ 교회는 자신의 分立性으로써 그리스도敎의 普遍性에 손해를 입히지 않는 가? 이를테면 교회를 뛰어넘어 그리스도敎의 現世的 具?化를 착수해야 하지 않는가? 敎會的 敎義를 그리스도敎의 一般原論으로 대치시켜야 하지 않는가?(2) 그리스도敎의 이러한 일반원론은 그리스도敎가 자기 ?史의 흐름 속에서 유럽 ㅡ미국적으로 규정된 文明의 思考形式과 社會構造를,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文化交流(Akkulturation)의 道程 위에서 全世界文明을 각인하였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울 수 있다. ?方世界的 자유와 寬容觀念과 세계의 현세적 觀照,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가능케 된 자연과학적ㅡ기계기술적 世界征服은 대부분 그리스도敎에 입각하여 가능케 되었다. 이 점에서 우리의 文明의 構造的인 교회 바깥에서의 그리스도?性에 관해 거론할 수 있고 그리스도교의 경계는 교회의 경계보다 여러면에서 더 넓다.

그럼에도 敎會없는 그리스도교란 유토피아요 夢想世界이다. 그리스도信仰의 확신들은 다른 모든 인간적 확신들처럼 일정한 정도의 제도화 없이는 오래 지탱할 수 없다.(3) 제도 속에서 바로 특정한 行動樣式들이 지속적으로 設定되고 관습화된다. 이것이 實情이 아닐 때 그들은 통상적으로 조 속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몇번이고 반복하여 源泉인 예수 그리스도께의 記憶을 깨어서 수직하는 교회들의 挑戰없이, 교회없는 그리스도敎란 기껏해야 한두 世代의 生存機會를 가질 것이다. 본훼 피(D. Bonhoeffer)가 第3帝國의 체험에서부터 새로운 野蠻國 으로 말미암은 위험에 직면하여 일어 난 원천으로의 복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숙고할 가치가 있다. "理性, 法, 敎育, 人道性은 이 개념들이 모두 뜻하는 바와같이 그 원천에서 새로운 意義와 새로운 활력을 찾고 발견하였다.”(4) 우리의 현 社會狀況은 확실히 第3帝國의 상황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自由와 人道 性의 그리스도觀念이 오늘날 자명하고 아무런 制度的 保護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주장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강대하고, 초강대한 制度들의 世界 안에서 자기자신을 제도화 하지 않은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온전히 영속하려 할 것인가? 개별 信者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주위를 거스려ㅡ이미 이렇게 말하여야 한다ㅡ他者의 信仰確信에 의하여 지탱되고 방비(보호)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사회학적으로 보아 敎會와 會衆의 의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大機構가 아니라 그리스도信仰의 납득 가능한 구조를 의미해야 할 것이다.

2. 制度와 發生으로서의 敎會

敎會는 요컨대 자기자신 때문에 현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교회자신 때문에 교회를 위하여 투신하고 교회를 옹호하고 사랑할 수 없다. 교회는 자신이 대표하고 그것 때문에 현존하는 '實象’ 때문에만 믿을 만하고 확신적으로 될 수 있다. 그리므로 자기자신과 자신의 구조에 관한 敎埋의 신학적 思惟는 神學史的으로 상대적으로 연륜이 짧다. 후기 중세기에야 비로소 대두하는 民族國家들과 열광주의적 운동들과의 그리고 위클리프(Wicliff)와 후스(HUS)와의 爭論 등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무엇보다 西方의 敎會分裂로 말미암아 교회는 思惟와 敎職的 陳述의 대상이 되었다.(5) 제1 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서도 고대의 교회전통과 이 전통의 神과 그리스도 中心主義와는 대단히 상치되는 거의 敎會中心主義와 같은 것이 발전되었다. 지난 공의회의 많은 본문들이 지나치게 교회내재적 視界에 머물러 있으며, 너무도 많이 敎會 중심의 구경거리를 벌이고 敎會의 ‘事件’에 대해서는 너무도 적게 말한다는 비난을 할 수 있다. 古代敎會的 神學과는 달리! 교회에 대한 古代敎會神學의 가르침은 고전적 양식으로 사도신경에서 표현되고 있다. 여기는 하느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께 대한 신앙과 "나는 교회를 믿는다” (Credo ecclesiam) (6) 사이에 구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교회는 동일한 양식으로 하느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과 같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하느님의 敎會를 믿는다. 때문에 敎會輪은 聖靈論 (Pneumatologie) 의 테두리 안에서 위치하고 있다. 이때에 성령이 먼저 하느님의 第3位格이 아니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救援活動이 역사 안에서 現存하게 되는 세력이다. 이를테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救援役 事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現存케 되는 구체적 場이다. ?會論은 聖靈論의 한 機能이다. 이에 반해서 近世神學에서는 성령론이 교회론의 한가지 기능이 되는 인상을 이따금 받는다. 성신은 制度敎會의 보증이 되어 聖靈論은 敎會論 위의 이념적 상층구조가 된다.

출발점에서의 이러한 강조점 이동은 ?會論의 구체적 형태에서 결과가 없지 않다. 자신 안에서 정지하는 교회 觀照는 교회를 다소간에 정치적이고 법률적 勢力構造로 판결할 것이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보수적이고 진보적 방식으로 가능하다. 여기서는 福音, 救援, 聖神이 교회의 소유물이 되고, 교회에 의하여 관리된다. 복음과 성신은 거의 교회의 지휘에 들어간다. 이와 동시에 교회에게는 아무런 비판적인 相對方이 더 이상 없다. 이러한 교회론은 애당초 모든 疑問視로부터 특권적으로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교회론은 자신 안에 폐쇄된 體制가 되었다. 이에 반해 성령론으로부터 구성된 교회론은 敎會를 좀더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 들어 온 眞理와 自由,그리고 正義가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머물고 몇빈이고 반복하여 새로 생동케 되는 事件(Gesche-hen)으로 파악할 것이다. 그리면 교회는 '예수의 事件’이 성신을 통하여 現存되고 信仰 속에서 포착되고, 사랑 속에서 具現되는 곳 어디에나 있다. 교회는 이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하나의 發生이다. 교회는 發生이다.(7)

敎會의 發生性格은 제도적 형식을 제외하지 않는다.(8) ‘예수의 事件’은 지상의 예수한테서 이미 그의 人格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이 사건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삶의 증거와 부합되고 있다. 인격과 사건, 증거와 증인의 이 共屬性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적 基本構造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신앙은 지속해서 唯一同的으로 傳承된 ?理에 부착되어 있다(유다 1,3). 精神의 진실성은 그가 예수를 主로 고백하고(1 고린 12,3) 그에게서 척도를 취하는 데에서 증명된다. 계속하여 의무를 지우는 이 예수의 ‘事件’은 자신을 교회의 시대에도 예수의 證人들로부터 분리케 하지 않는다. 이 기본 법칙은 바오로한테서 두 군데에 걸쳐 고질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린토 후서 5, 18ㅡ21에 따르면 役事와 말씀 속에서의 和解에의 奉仕는 화해와 함께 제정되어 있다. 두가지가 함께 같이 원천적이다. 로마서 10,17은 이 共屬性을 “信仰은 듣는 데에서’’ (fides ex auditu) 形式에 담는다:"그러나 그분을 믿지 않고서 어떻게 그 이름을 부를 수 있겠읍니까? 또 들어 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읍니까?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읍니까?”(로마 10,14) 이렇게 교회의 聖靈論的 次元은 派遣과 全權을 제외하지 않고 포함하고 있다. 교회는 인 간학적이고 사회학적 熟考에 입각하여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神學的 本質에 입각하여서도 制度的 而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언제나 두 가지 制度와 發生이다. 하지만 제도적 국면은 聖靈論을 통하여 설정될 뿐 아니라 限定되기도 한다. 제도는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몇번이고 반복하여 硬化의 위험에서부터 탈피되고 力動化되고 生動化되어야 한다. 때문에 제도적 요소들이 聖靈役事를 위한 보장이 아니다. 교회는 자신의 可視的 制度的 형태로서 오히려 聖事, 즉 標徵實在이다. 敎義形式들이나, 敎會法的 규범들은 표징과 지시의 성격을 지닌다. '敎職의 史的 承繼도 교회의 사도적 전승과의 지속성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종래에는 오로지 성령 안에서 자신의 實在를 소유하는 持續性의 표징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약의 戒律이 기록된 계율인가고 한번 묻는다. 그는 이 물음에 대해 신약의 戒律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선사되는 성령의 은총이라고 대답한다. 신약의 法律은 그에 따르면 이를테면 마음에 쓰여진 법률이다. 신약에서 기록된 법률은 단지 이차적으로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성령을 받아 모실 준비를 하고 성령으로부터의 삶을 위한 올바른 결과를 이끌어내는데 이바지하고 있다.(9) 여기서 교회 안에서의 制度와 發生과의 관계에 관한 신학적 省察이 착수되고 계속 사유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국면들 중에서 하나만을 약간 진술할 수 있겠다.

3. ‘下部로부터의’ 眞理 發見

聖靈은 성서의 증언에 따르면 모든 受洗者들에게 주어져 있다.(10) 성령은 교회 안에서 한 특정한 계급에 독점적으로 留保되어 있지 않다. 모두가 성직자들이다(갈라 6,1). ?史 안에서 '예수의 事件'을 증거하기 위한 全權과 派遺은 근본적으로 교회에 전체적으로 그리고 교회의 모든 肢體들에 게 주어진다. 이들 모두는 하느님의 偉業을 전파하도록 위임받은 왕다운 百姓과 거룩한 司祭群을 형성한다(1 베드 2,9; 묵시 1,9; 5,10; 20,6 참조). 聖洗로 말미암아 모든 이에게 마음의 눈들이 照明되었다(에페 1,18). 모두가 그리스도의 心性(1 고린 2,16)과 무엇이 온당한 것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섬세한 感情(필립 1,9 이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1 요한 2,27).

신앙의 증거가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위탁되어 있다는 이 초대 그리스도 基本敎理는 오랜 동안 교회 안에서 널리 망각되어 있었다. 1884년도의 붸쪄(Wetzer)와 뷀테(Welte)의 대표적 交會百科辭典은 標?語〈平信者〉를 간명한 記載 "평신자는 성직자를 보라”로 처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평신자는 이를테면 단순히 부정적 형체, 非聖職者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은 사건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함께 말해서는 안되는 非專門家에 대한 世俗的 의미에서의 문외한들이다. 때문에 진술한 백과사전에서 관계항목〈聖職者> 하에 '‘平信徒司祭職이란 진지하게는 아무한테서 도 주장될 수 없다”고 간결하고 요령있게 단정되고 있는 것은 놀랍지 않다. 平信徒司祭職을 위해 베드로 전서의 말을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커다란 악취미와 주석상의 혼란의 한 ?表”로서 간주되고 있다. 이 條文에 따르면 단지 "非本來的인, 기껏해야 2차적인 信者들의 司祭職에 대해"거론 될 수 있다.(11)

말년의 추기경 뉴먼 (Newman)이 이러한 성격을 띤 神學風土 속에서 1859년 그의 저서「信仰?理의 물음 속에서 平信者의 質問에 관하여」를 발표하고 거기서 "니체아 공의회가 前半部 동안에 로마座와 公識會나 主敎들의 의연한 확고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信者들의 同意’ (consensus fidelium) 로 말미암아 保持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였을 때에 극도의 혐의와 불쾌감을 유발하였음이 물림없었을 것은 이해할 만하다. 뉴먼은 신자들의 感性과 同意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위해 튜빙겐 신학자 묄리 (J.A. Mohler)를 증인으로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思想은 금세기에야 비로소 완전히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敎會憲章에서 단정하고 있다:”신도들의 總體는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니 '주교로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이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에 백성 전체의 초자연적 신앙심에서 이 특성이 드러난 다.”(12) 이 진술들을 교회가 信仰을 오로지 信仰形式 안에서만 전승하지 않고, “교회 자신의 모든 것과 또한 교회가 믿는 모든 것을 통하여” 전승한다는 啓示憲章의 陳述들과의 脈絡 속에서 보아야 한다. 요컨대 신자들의 신앙체험과 신앙실천은 교회의 신앙증거에 참가한다. 교회의 敎職的 信仰敎理와 신자들의 일상적 신앙체험 사이에 불일치가 생기게 될 때에ㅡ현재 광범위하게 실정이 그러한 것과 같이, 이러한 갈등들은 간단히 토의없이 전승된 信仰形式을 반복하고 새로 엄명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로지 모두의 同意 속에서만 福音의 眞理는 뚜렷하게 된다. 신앙의 敎合性이 교회적 직제에 대한 順命行爲 속에서 일차적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敎會性은 일차적으로 굽신거리고 받아 삼키는 데에서가 아니라 傾聽과 相互理解 속에서 표현된다. 각자 他者를 신앙 속에서 지탱하며 자극하고, 해야 한다면 비판하기도 한다. 성서에 따르면 각자 자신의 은사(Charisma)를 소유한다(고린 7,7; 1 베드 4,10). 이렇게 모두가 서로 경청하며 서로 배워야 한다: 선생들은 목자들을, 목자들은 선생들과 예언자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예언자들은 다시 교회 안에서 구체적 職務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이들한테서 모범을 취해야 한다. 요컨대 교회 안에서 順命은 절대 일방적으로 기술될 수 없다. 그것은 相互的 事件이다.

4. 세가지 基準

이 자리에서 현재 교회 범위내에서 물론 구체적인 難點들이 있다. 과거에는 그리스도信仰의 상대 적으로 커다란 일치성과 협동성을 비교적 용이하게 성취할 수 있었다. 가톨릭 信者들의 압도적 다수가 가톨릭 思想資産에 의해 매여있는 단일적인 환경에서 살았다. 하기는 이전에도 修道團體들 속에는 제도화되기까지 되었었던 상이한 神學學派와 信心形式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공동적인 理解地平의 범위내에서 움직였었다. 누구나 他者의 입장을 알고 이해할 수 있었으며 어느 점에서 그리고 왜 타자와 구별되는지를 말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서 오늘날은 思考前提들이 아주 상이하고, 問題들은 아주 막대해서 교회 안에서의 對話가 극도로 어렵게 되었다. 아무도 더 이상 모든 입장들을 적절히 판결할 수 있기는 고사하고 이들을 알지도 못한다. 이렇게 새로운 類型의 復數主義가 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사정하에서 ?會의 單一性이 신앙 속에서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이다. 교회의 증언은 이 발전들로 말미암아 이미 불명하게 되지 않았는가? 이것은 자신의 明白性과 光輝를 상실하지 않았는가? 교회가 이러한 형편하에서 어떻게 山上의 都市이며 촛대 위의 촛물일 수 있는가? 이것은 절박한 물음이다. 물론 한가지 해결책, 즉 敎導權과 權威立場에로의 복귀는 제외되어 있다. 이 복귀는 모두의 파견과 책임에 대한 眞理에 위배되기 때문에 일단 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다른 편으로는 적어도 오랜 視點에서 볼 때 성공 적일 수 없다. 그것은 유명무실한 피러스의 승리(Pyrrhussieg)임이 곧바로 알려질 것이다. 문제들이 일단 발발 되었으면 잠정적으로 이들을 억압할 수 있으나 세계로부터 더 이상 去勢할 수는 없다. 모든 復古와 反動은 스스로 논증해야 하는데 모든 論證은 부지중에 새로운 문제들을 유발한다. 문제는 요컨대 이러한다:그리스도信仰이 자신의 明白性과 單一性을 최소한 기초 물음에서 보전할 수 있는가? 오늘날 信仰의 敎會性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가능한가? 교회헌장에서 이미 前述된 本文(12항)은 이를 위해서 세가지 기준을 들고 있다. 첫째 기준으로 聖神이 일컬어진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법률적이고 ?義的 思考에는 놀랍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 진술은 공의회 본문들에는 單數的이 아니다. 교회헌장에서는 성신을 소유하고 있는 모든 이가 교회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14항). 교회내에서의 肢體性과 교회내에서의 바른 신앙은 이를테면 끝에 가서는 法的 捕捉性과 敎義的 定義에서 벗어난다. 신앙 속의 단일성은 획일적인 敎義形式을 통하여서도, 민주적인 多數決定을 통하여 시도도 달할 수 없다. 여기서는 權威的이고 民主的 決定過程으로부터 구별되는 知識體系가 문제인 것이다. 신앙 속에서의 同意와 그것의 단정은 교의적 과정이다. 이들은 오직 성신으로 말미암아 작용된 신앙의 感性, 신앙에 대한 內的 情感 및 敏感, 동시에 六感에게만 파악될 수 있다: 신앙의 陳述들은 이러한 것으로서 信仰의 言語規則 범위내에 머물 때에만 意義깊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단순히 知能的으로 만사를 끝없이 토의하고 세분할 수 있다. 신앙과 불신앙, '正統信仰과 異端의 경계가 가망없이 소멸될 때까지 오래 이들을 해석할 수 있다. 어디서 眞理가 끝나고 誤謬가 시작하는지에 대해서 단순히 知的樣式으로는 일치와 분별점이 자주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적어도 기본문제에서 명백한 진술들을 해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교회직인 판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마침내는 신앙속에서의 진리를 공동으로 행함으로써 信仰의 眞理를 보장할 수 있다. 여기서 사람들이 함께 속하는지 또는 실제로 동떨어져 살아왔는지가 명시될 수 있고, 명시될 것임에 톨림없다.

이러한 성령적 판결이 恣意判決이거나 또는 박약하고 무의미한 熱狂主義로 이끌지 않도록 교회헌장은 또 두 번째 基準을 든다. 교회헌장은 신앙의 의의는 唯一回的으로 傳承된 것과 같이(유다1,3), 所與된 信仰內容과 관계가 맺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성신은 실로 그리스도의 성신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役事를 상기케 할 것이다(요한 14,26; 16,13f). 때문에 교회의 신앙은 주관적으로 열심한 ?感狀態의 순전한 投射나 객관화가 아니다. 교회의 신앙은 聖書와 聖傳 속에서 객관적 信仰證言들과의 遭遇 속에서 형성되고 해설되어야 한다. 교회는 소여된 규범과 부과된 규범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啓示의 말씀 위에가 아니라 밑에 자리하고 있다. 교회는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 안에서 계시 말씀에 의거 입증되어야 한다. 요컨대 교회는 論證하여야 한다. '理性的이고, 책임있는 同意에 이르기 위해 信心的이고 神學的 啓蒙, 특히 신학적 成人?育 내지 成人領洗 준비를 필요로 한다. 성서와 성전과의 대결은 이때에 비판적이고 해방적 활력을 지닐 수 있다. 이것은 교회의 신앙이 常識(sensus communis)이나 시대정신과 시대유행의 자명성에 무비판적이고 무기준적으로 빠져버리고 자기자신의 애호관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을 저지시킨다. 교회와 신학 안에서도 점점 더 자리를 넓히고 있는 역사적으로 생각하고 역사적 原典을 통하여 자신을 의문에 처하게 하기를 혐오하고 못하는 不能性은 위험하다. 비판적 관념에 무비판적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 자기자신을 더 이상 비판적으로 전문케 두지 않는 비판은 僞善이고 理念的 자기정당화로 변질된다.

5. 敎會 職制의 問題

교회와 그 신앙에 대한 지속적으로 규범적이며 비판적인 福音의 對峙性은 교회헌장이 敎會信仰의 규정을 위해 제출하는 세번째 기준 속에서도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의 敎職制와의 共同體性이다. 우리가 敎導職을 비로소 세번째로 지칭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앙의 ?會性이 교회 교도직에 대한 ?命活動속에서 고갈되지 않는다. ?職은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자리잡고 있으며 계시의 말씀 밑에 서 있다.(14) 敎職은 교회위에서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共同追究 위에서 홀로 올림픽의 ?上 위에서 군림하고 검열을 가하는 最上基準이 아니다. 오히려 ?職은 신자들의 공동체와 여기에 소여된 信仰內容을 올바른 관계에 이르게 하는데, 그리고 교회 내부에서의 올바른 交互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책임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敎職은 이중적 관점에서 奉仕로, 말씀에 대한 봉사와 공동체에 대한 봉사로 기술될 수 있다.

敎會職은 복음의 말씀에 대한 봉사이다. 교직은 교회로 하여금 복음의 권위에 定向케 하고 다른 권위에 정향케 되지 않도록 하는 책임이 있다. 이를테면 敎職은 교회에 대한 복음의 對峙를 나타내고 있다. 敎職이 복음의 所與性과 占有不可性을 표징처럼 나타내고 유효하게 사용하는 한에서 敎職 스스로가 공동체에 對峙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건대, 敎職은 교회가 자신을 교회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對峙를 드러냄으로써 교회를 대표할 수 있다. 이것은 물론 敎職의 권위란 봉사하는 복음의 권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뜻하고 있다. 이런 한에서 봉사는 權勢를 제외시키나 全權을 포함하고 있다. 권세가 他者에게 자기 의지를 강요할 수 있는데 반해서 全權은 他者를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노예로 만들지 않고 主人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리스도의 자유야말로 복음으로 말미암아 해방된 자유이다(갈라5,1). 물론 敎職이 복음에의 자기자신의 속박을 제도적으로 분명히 하고 봉사로 신분을 드러내고 제시하는 것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이것은 現在의 權威 危機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겠다.

福音에의 봉사는 동시에 공동체에의 봉사이다. 敎職은 공동체로 하여금 자유롭게 그리고 자신이 봉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에페 4,12 참조). 교회의 信仰意識이 상이한 입장의 平衡 속에서 시대와 함께 스스로 理性的 中間部에서 왕복하다가 끝에 가서는 보다 나은 論證에 입각하여 진리 가 관철한다고만 오로지 신뢰하는 것은 순진한 調和信仰일 것이다. 이것은 理想이나 유감스럽게 實在가 아니다. 이러한 理想은 교회 안에서 모두가 相互傾聽하고 확신시키도록 두게 하는 의향이 있는 개방된 대화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어떤 유형의 支配關心과 獨善 그리고 고집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이 필경 실정이 아닌 때문에 통교와 대화의 공간이 항상 반복하여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敎職制度는 자신의 表象에서부터 自由의 制度와 같은 것이고 또는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通交의 中樞이어야 하며 모두가 발언할 기회를 얻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것은 이 모두의 대화 속에서 共同 基本確信들을 표현하고 유효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職에게는 이것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無通交性과 孤立性이 방해가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 안에서 過度한 권위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구속력 있는 신앙을 善意를 지닌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여 同意가 성립 하도록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권위의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敎職이 이 調整機能윤 광범하게 상실하였는데 이것은 교직이 敎會內的으로 黨派가 되어버린 때문이다. 이와 함께 敎職은 役割葛藤(Rollenkonflikt)에 빠져들어 여기에서 지금까지 다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敎職을 근본적으로 다른 직무들과의 접촉과 통교에 의존하고 있는 다른 직무들 중의 한가지 직무로 간주한다. 그리나 이제 ?職이 한번 혼자서 결정할 수도 있고 최종적으로 구속력 있는 발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톨릭 敎理이다.(15) 이것은 傳統神學에서 敎導權 행사의 예 외적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다. 교회 안에는 정상적인 通交形式들이 어떠한 이유에서 기능을 발휘 치 못하고, 그러나 교회의 存續을 위해서는 분명히 말하고 결정지어져야 할 상황들이 있다. 여기서 敎職은 신앙의 증거로서 솔선하여 敎食信仰의 代辯者로 등장해야 할 것이고 해야 한다. ?權 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위해 말하지 않고 敎會信仰의 대표로 등장한다. 그러면 그것은 교회에 다함께 고유한 無謬性을 점유한다.(16) 때문에 이러한 외적 결정은 단지 한가지 목표, 즉 集合的 眞理發見의 正常形式을 다시 이룩하는 목표만을 가질 수 있다. 현명한 어떤 권위도 긴급 條 頂으로 계속해서 통치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우리는 이에 반해서 실제로 지속적인 憲法危機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때문에 敎導權은 정상의 경우를 위해서 集合的이고 同僚的인(公識的이고 主?會議的인) 정상적 진리발견을 자기 의무로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위급한 경우에 교도권의 권위에 유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劍을 일단 참으로 필요로 할 때, 劍이 쉽게 무디어 있을 수 있다.

6. 敎會性의 새 形成 : 對話的 正統 敎理

세가지 基準의 설명과 해설 뒤에 적어도 개괄적으로 교회의 正統敎理의 새 형태를 소묘하는 것이 가능하다. 권위적으로 보증된 획일적 敎會單一性과 어떠한 樣式으로도 조정될 수 없는 自由主義的 復數主義에로의 溶解의 제외된 두가지 가능성들에 대한 양자택일은 단지 對話的이고 躍動的으 로 이해된 正統敎理일 뿐이다. 이것은 진리는 교회 안에서 모든 恩賜와 路線의 對話過程 속에서 산출되어야 한다는 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누군가가 교회 공동체와의 대화의 인과관계를 보전할 준비가 되어있는 한, 교회 공동체의 진술들을 의무를 지우는 요청으로 승인하는 한, 그리고 그가 자기자신의 주관적 신앙 확신에 비하여 실질적 기회를 양도하는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한에, 정통신앙적이고 교회적이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에는 교회가 거의 2천년이 흐르는중에 만든 모든 信仰의 陳述들을 개인적으로 제것으로 만들 수 없고, 뿐만 아니라 당장에는 어쩌면 한번 그것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을 때에도 이러한 입장을 정직하게 취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의 모든 신앙진리들을 동일한 양식으로 현실화하려 한다면 우리 모두가 신앙속에서 절망적으로 과로되어 있을 것이다. 부분만의 동일화가 말하자면 근본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 이것이 즉시 변두리 그리스도교로 부인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對話的 正統敎理觀이 선명한 境界가 그어지게 되는 것을 제외하지 않는다. 교회의 가르침과는 간단히 ‘손을 끊고’ 어느 양식으로도 더 이상 福音의 地盤 위에서의 가능성으로 인정치 않는 입장은 제외되고 있다. 자기 자신의 知的 眞擎性을 맹세하고는 소위 현대적 信仰意識에게는 실현될 수 없는 형식들을 간단히 파기하는 난폭한 極端主義類型도 역시 제외되고 있다. 知性的 眞擎性에는 자신의 입장의 有限性에 대한 통찰과 자신을 타자에게 납득시키게 하는 용기가 속하고 있다. 이렇게 할 용의가 되어있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교회 공동체로부터 제외시킨 것이며, 교회가 이 구별을 확실히 할 때에 그것은 眞實性과 자기자신과 異質的 確信에 대한 敬意의 행동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성서에서 화제가 되듯이 아주 기본적이고 명백한 문제들에 국한되어 머물러야 할 것이다. 바오로가 대략 다른 복음을 선포하는 자를 거스려 저주를 발할 때(갈라 1,6), 그에게는 어떠한 신앙문제가 아니라 그의 福音宜布의 中心內容, 그리스도 십자가의 유일한 救援意味가 문제되고 있다. 동일한 것이 요한 제1서에 해당 한다. 그의 판결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고(1,22; 5,1), 하느님의 아들이며 (4,15; 5,5), 육신으로 왔음을(4,21) 부인하는 자들에게 해당한다. 이 문제들 속에서 더 이상 명백하게 말하지 않을 교회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인게다.

한가지 입장의 敎會敎理와의 不合致의 형식적 단정행위는 요컨대 특히 기본적인 신앙의 확신들이 문제가 될 때에 미래에도 근본적으로 가능하며 明白性을 위해서 촉구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대개 과거의 두 마리아 敎義보다 본질적으로 더 근본적인 진리들을 선포하 였으면서도 이러한 破門을 발하지 않았던 것은 의미깊다. 뿐 아니라 공의회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공의회는 敎皇의 首位權과 無謬性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파문을 파문을 부분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지양하였다. 이것은 공의회가 正敎會 크리스챤들을 특별한 경우에 미사성제에 입장을 허용함으로써 일어났다.(17) 미사성제 공동체는 그러나 교회공동체이다. 이처럼 여기에 교회가 자신에 의해서 일단 정의된 진리를 계속 眞理로 고수하나 이와 연관된 파문을 철회하는 가능성이 적어도 地平線 위에서 비추고 있다. 여기에서부터 敎會一致 대화를 위해서 주요한 결론 등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 스스로 고수하고 있는 각 신앙의 진리가 이 문제에는 다른 의견을 가진 모든 다른 이와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그리스도 고백과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공동체의 단절을 요청 한다고 누가 말하는가?

끝으로 위대한 튜빙겐 신학자 묄러(J.A. M0hler)의 말이 언급된 바를 요약할 것이다 : 그는 교회생활에는 두 極端이 있고 두가지가 모두 실제로 利己主義라고 말한다. 즉 각자가 모든 것이려 할 때 극단적 敎會個人主義이고 하나가 모든 것이려 할 때는 극단적 敎會中心主義라고 말한다. “첫번 째 경우 모든 것이 분리되어 교회 공간이 냉랭하게 되어 사람들이 얼어붙을 것이다. 두번째 경우는 단일성의 매듭이 아주 좁고 사랑이 아주 더워서 사람들이 질식으로부터 더 이상 몸을 지킬 수 없을 수 있다. 우리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속에서 凍死하고 싶지도, 극단적인 中心主義 속에서 질 식하고 싶지도 않다. 이것은 두가지 極端이 기피될 때에만 가능하다.” "한 사람이나 각자가 모든 것이려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단지 모든 것일 수 있고 모두의 단일성이 전체일 수 있다. 이것이 가톨릭 교회의 理想이다.”(18) (다음 호에 계속)
(原文 : Walter Kasper, EinfUhrung in den Glauben, 1972, Grflnewald Mainz. 沈相泰 神父 譯)
[駐]
(1) A. Loisy, L'Evangile et I'Eglise, Paris 1902, 111.

(2) R. Rothe에 의지혜서 특히 Τ. Rendtorff에 의해 대변되고 있다: Kirche und Theo? logie. Die systematische Funktion des Kirchenbegriffs in der neueren Theo-logie, Gutersloh 1966; J. Mattes, Religion und Gesellschaft. Einfilhrung in die Religionssoziologie I, Hamburg 1967; 상동, Kirche und Gesellschaft. Einfiihrung in die Religionssoziologie II, Hamburg 1969; W.-D. Marsch, Institution irn Obergang. Evangelische Kirche zwischen Tradition und Reform, Gottingen 1970 참조.

(3) 제도의 개념에 대하여 Recht und Institution, hg. v. H. Dombois, Witten 1956; H. Shelsky, Ist Dauerreflexion institutionalisierbar ? Zurn Thema einer moder-nen Religionssoziologie, in: Auf der Suche nach der Wirklichkeit, Diissel-dorf-Koln 1965’ 250-275; P.L. Berger / Th. Luckmann, Die gesellschaftliche Konstruktion der ^irklichkeit. Eine Theorie der Wissenssoziologie, Stuttgart 1969; Zur Theorie der Institution, hg. v. H. Schelsky, Dusseldorf 1970.

(4) D. Bonhoeffer, Ethik, Munchen 1949, 60.
(5) Y. Congar, Die Lehre von der Ktrche、in: Handbuch der Dogmengesch III/ 3c u. 3d, Freiburg-Basel-Wien 1971 참조.

(6) 본서 제 VI장 註 4항과 8항 참조.

(7) H. Fries, Kirche als Ereignis, Dusseldorf 1958.

(8) 제도와 은사에 관한 R. Sohni 과 Α.V. Harnack 사이에 있었던 토론은 여전히 의미가 깊다: R. Sohm, Kirchenrecht I, Munchen-Leipzig 1892; 상동, Wesen und Ursprung des Katholiszismus, Leipzig-Berlin 1912(지12판); A.V. Harnack, Entstehung und Entwicklung der Kir chenverfas sung und des Kirchenrechts,

, Leipzig 1910; K. Holl, Der Kirchenbegriff des Paulus im Verhaltnis zu dem der Urgemeinde, in: Ges. Aufsdtze II, Tubingen 1928, 920-947; J.L. Leuba, Institution und Ereignis. Gemeinsamkeiten und Unterschiede der beiden Arten von Gottes Wirken nach dem Neuen Testament^ Gottingen 1957; R. Bult? mann,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Tubingen 1954 (제 2 관)s 440-446 ; Ε. Kasemann, Satze heiligen Rechts im Neuen Testament^ in: Exegetische Versuche und Besinnungen II’ Gdttingen, 1964, 69-82; Η Conzelmann, GrundriB der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Muchen 1967, 57-63; H. Dombois, Das Recht der Gnade. Okumenisches Kirchenrecht I, Witten 1969 (제 2판); G? Ha、 senhiittl, Char ism a~Ordnungsprinz ip der Kirche, Freiburg-Basel-Wien 1969 참조.

(9) Thomas von Aquin, Summa Theologiae I/II q. 106 a.2.

(10) F.X. Arnoid, Kirche und Laientumi in: Glaubensverkundigung und Glau-bensgemeinschafty Dflsseldorf 1955; Y. Congar, Der Late. Entwurf einer Theologie des Laientums^ Stuttgart 1957; H. Kung, Die Kirche, Freiburg-Basel-Wien 1967, 437-457 참조.

(11) Art Laien, in: Kirchenlexikon VII (1891), 1323; Art. Clerus, in: a.a.O. Ill (1884), 546.

(12) J.Ii. Newman, Ober das Zeugnis der Κ at en in Frag en der Glaubenslehre,

in: Ausgewahlte Werke, hg. v. M. Laros und W. Becker, IV, Mainz 1959, 273.

(13) 본서 제 I 장 註 2항 참조.

(14)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헌장 10항.

(15) DS 3065.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의 이해를 위하여 die Beitrage in: De Doctrina Concilii Vaticani primi, Vatikanstadt 1969 참조.

(1,6) DS 3074.

(17)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일치 교령 15항.

(18) 이 말은 Ρ?Β, Gams 가 우리에게 중개 전달하는 Brentano의 기억에로 소급된다.; J, R. Geiselmann 의 Mohler 상징론에 대한 주석서,ㅍDarmstadt 1961,69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