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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량회의에서의 교황 바오로 6세의 연설 - 1974년 11월 9일
1975년 9월호 (제 41호)
의장, 사무총장, 신사 숙녀 여러분, 유엔 주체로 로마에서 열린 세계 식량회의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만나...

金起浩의「聖堂歌」政
1975년 9월호 (제 41호)
〔訂正〕본지 39호에서 필자는 「聖堂歌J의 작자를 洪 방지거로 보고 論하었다· 그러나, 이 Γ聖楚歌」가 ...

부교구장에 관한 교회법
1975년 9월호 (제 41호)
第 3 節 權限과 그 行使〔繼續〕 II. 권한의 性格 1. 부교구장의 권한은 그를 임명하는 주교로부터 導出...

윤리규범에 관한 신학적 고찰
1975년 9월호 (제 41호)
原文 : Johannes Griindel(독·y 원핸대학교 가?-릭신학부 윤리신학 주임교수),Zur Moraltheo-logischen ...

淸來 西敎書의 韓國思想史的 意義
1975년 9월호 (제 41호)
I 사상이란 생성 발전되는 것이지 고· 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한 민족이 그 민족 고유의 사상만을 고집할...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현존양식
1975년 9월호 (제 41호)
III. 傅承에 대한 예언자들의 태도 (1) 대예언자들은 모세 신앙을재 부활시켰다. 그들은 단지 옛 모세시 ...

교회와 아시아 혁명
1975년 9월호 (제 41호)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형편을 성실하게 반성해 보는 이라면,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또 이들 문제...

아동 미사 - 그 문제점과 해결방향의 모색
1975년 9월호 (제 41호)
현대의 분업화되고 다양화된 생활 체제에서 일어나는 여리가지 문제들, 특히 이러한 복잡한 상황 하에서 크...

신도와 사제의 협력
1975년 9월호 (제 41호)
이 문헌은 19기년 ‘現代世界의 任司祭職’ 의 주제를 걸고 로마에서 개최된 主敎 시노 드에 참고자료로서 ...

가톨릭 성서 모임
1975년 9월호 (제 41호)
I. 서 론 한국은지난10여년 동안 정치.경제·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국민 들의 문화 전통의 오랜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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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1975년 9월호 (제 41호)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현존양식

徐 仁 錫 (전 대건신대 교수, 신부)

III. 傅承에 대한 예언자들의 태도

(1) 대예언자들은 모세 신앙을재 부활시켰다. 그들은 단지 옛 모세시 대의 청신한 신앙을 답습하는 네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정화하여 한층 높은 차원으로 끌어윤렸다.

'예언자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새롭게 출현하시는 야훼의 놀 라운 행적을 체험하;고, 그·분의 불가 항력적 의지 앞에 인간이 내려야 하 는 결단의 촉¥를 깊이 이해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여튼예언자들의 새 신 앙자세를 규정하는 근본요인은 그들 이 체험하고 각성한 '神秘®驗’듭이 다.(如 그들이 체험한 여Hi-의 체험, 은 이스라엘 사회전통과 종교전승을 대하는예언자들의 판단기준이 된다-예언자들은 고대 근동의 제 종교전통 과 특히 이스라엘이 유산으로 남긴 傳承에 대 해 이 떤 태 도룰 취 했민가 ? 그·들이 그같은 전승들을 단지 의적인 요소처럼 빌려다 예언선포에 이용했 을까? 그것을 이용한 방법은 어면 것일까? 아니면 전승과는 전혀 독립 된 인물들로서 그저 전승들을 인용하 고 현실화하는 데서 그쳤을까?

예 언자들과 전승과의 관계는 구약 성서 신학에서 자주 취급되는 문제 였다. 제일 소박한 해석으로는,예 언자들은 새로운 상황이 닥칠 때마 다과거의 전승울 시대에 적응시키고 실천면에서 이용했을 따름이라는 지 론이 있디-.그러나 그들은 지금까 지 전해 오는 종교사조를 실 단 배 척 하 고 그것에 대한 인정을 일단 보류했 으며,따라서 전승에 예속되지 않는 매우 독보적 자세를 견지했다는 것이 다. 그래서 예레미아 같은 인물도 옛 이스라엘의 종교사상을 자기가 처한 시대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 로 전혀 새로운 종교사상을 선포하고 있다〔예데 31’ 31-34)는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예언현상은 전승에 깊 이 뿌리박고 있다는 입장이 폰. 라드 (G. von Rad)를 필두로 하여 대두되 고'있다.폰. 라드는 예언자들이 세 가지 대전승 즉 이스라엘 逸民思 想을 대변하는 출애급 전총,다윗 선 택의 전승, 시온 선택의 전승에다 사 상적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였다. 이 세 전승의 복합체에다 제 2 이사야가 창조의 전승을 삽입시킨다. 예언자들 의 예언선포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 은 그들이 토대로 하는 전승의 흐름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민사상 의전승은 후기 예언자 시대에 와서 그것의 종말론적 해석 때문에 역사 안에 도래할 야훼의 새로운 구원행위 라는 비전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이같은 폰· 라드의 주장은 오늘날 성서학계에서 비판을 면치 못 하고 있다· 그것은 폰 · 라드가 역사 전승의 일부분을 우선 따로 분리하여 취급했다는 점, 유배이전의 예언자들 이 인용하는·역사전승들이 모두 단편 적이었고 예언자들은 그같은 단편적 인 전승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예언선 포를 전개했다고 주장한 점에 이의를 내걸고 있다. 더구나 예언자들이 채 택한 전승들이 하나같이 모세 오경의 전승 중에서도 가장 후기에 완성을 본 신명기계 전승과 제관계 전승에 속한 것 들이 라는 데 에 문제 가 있 다. 모세오경의 이 두 전승ㅡ특히 신명 기의 선민사상에 관한전승ㅡ이 오히 려 예언자의 신학사상에서 영향을 받 80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현존양식

았다는 사실을 브리젠(Vriezen)이 최 근에 논증한 바 있다.예> 물론 예언 자들이 옛 전승의 소재들윷 재정리하 여 자기네 신학에 도입하고는있으나, 그것은 자기네가 이미 수집하고 있던 신학에 입각하여 마지막 손질을 가함 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사조를 형성시 켰다고 봐야 한다.

폰. 라드의 이같은 ‘허점’을 차치 하더라도, 예언선포가 단순히 선민사 상의 세 가지 전승에만 근거한다는 주 장은 문제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사야의 두가지 테에마:시온의 멸망 에 관한 위협 설교와 시온과 다윗 가 문의 메시아에 대한 하느님의 가호를 폰· 라드는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뿐 아니라,文學批判은 이사야 1-6과 11,1-9의 텍스트가 과연 이사 야의 친작인가도 문제시하고 있다-예언자들이 서로 상반된 데에마를 선 포한 일도 있기는 했지만, 이사야가 과연 시온과 다빗 가물의 보호 약속 과심판의 위협이라는 이율배반에서 하필 그 하나만을 택히셔 자기의 배 경으로 삼았을까? 더구나 시온의 보 호 약속이 옛 전승에서 선포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역 사상으로는 시 온이 구 원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사야는 전 승이 주장하던, 시온과 다·벗 메시아가 당연히 보호받으리라는 약속을 한 번 도 선포한 일이 없다. 이사야는 아씨 리아가 스스로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야훼의 구원계획의 도구로서의 자격 을 상실한 후에도 시온에 대한 위협쪼의 선포를 철회하지 않았을 뿐 아 니라, B.C. 7이년 아씨리아군이 예 루살렘을 철수한 다음에는 시온의 멸 망을 더 욱 노골적 으로 위 협 하였다〔이 사 22,1-14; 32, 9-14). 그는 시종일관 구원은 철저한희개,곧 죄악으로부 터의 回心과 야훼께로의 軸:向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사야 29,1-8 (v. 4) ; 30,15-17 (v. ]5) ; 31,4-9 (v. 6) 등은 구원의 선재조건으로서 이 회심의 필요성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사야.1,19-20에는 '이것이 냐,저것이냐’는 선택의 결단이 명확 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사야의, 이전 입장은 여타의 모든 예언자들의 태도 를 이해하는 데도 해당한다.

예언자들이 율법 전승과 지혜문학 전승율 배경으로 예언선포를 하는 경 우에도 양자택일의 결단을 촉구하는 테에마는 여전히 대두된다.

아모스는 가끔 法律?式을 인용한 다·그러나 그 법조문들은 하느님 의법이라기보다는 공동생활 영위에 필요한 생활규칙일 따류이다. 따라서 그것들을 하느님의 율법에다 연관시 키면서 율법전승이 예언사상에 큰 영 향을 끼쳤다는 논증은 되지 않는다. 미케아 6,8의 법률 용어들도 문제가 없지 않으니,(25) 미케 아 6,1-8이 미 케아의 친작이라기보다는 후대의 성 서재독의 소산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miSpaf 을 ‘열두 지 파 연맹의 법률’,higgid 를 '경신례 안에 서 의 법 선 포’ 라고 해 석 할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미케아 6,8 의 설교 대상은 이스라엘·인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Cadam)이 아 닌가? 따라서 그 용어들은 보편주의 의 비전을 갖고서 이스라엘이라는 경 계를 초월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그리고, 볼프 (H.W. Wolff) 가 주장 하듯이,아모스가 과연 고대 씨족사 회의 지혜문학에서 영향을 받았을 까?(26) 볼프의 입장은 사실상 비판 을 받고 있다.(27) 예언자들과 지혜문 학 전승과의 관계는 아직도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이사야가 지혜 문학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모든 예 언자들에게도 하나의 규범이 되고 있 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아모스의 경 우는 지혜문학 전승의 영향을 받기는 커녕 정상인의 상식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 예언자들의 ^출현은 그들의 언 행면에서 고찰할 때,고대 이스라엘 뿐 아니 라 고대 근동의 문화 및 종교 전승의 영향도크게 받고 있다.그 렇다고 예언자들을 고대 근동의 전승 에다가 편입시켜 메소포타미아나 가 나안의 敬神 預言者들과 같은 수준에 둘 수는 없다. 또예언자들이 그저 옛 이스라엘의 전승을 그대로 보존하고 답습하여 단순히 개혁하고 새시대의 현실에 절충시 키 기만 했다고도 못한 다. 전승에 대한 예언자들의 태도는 독보적이다. 그들이 이스라엘 전승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 전승을 거쳐 고대 근동의 제민족의 전승과도 연관을 맺고 있음은 사실이나, 그 전 승이 예언자적 현존양식을 결정하는 주요소가 아니다. 그들이 고유하게 체험한 "야훼와의 만남”이 그들의 현 존양식을 결정하였다. 야훼의 체험, 말씀의 체험올 통해서 예언자들은 매 우 고유한 무엇 (etwas Eigenes)을 얻 었다. 그들은 당시의 인간들이 가졌 던 제신앙사조와의 타협을 포기하고, 실존직으로 체험한 진리를 말씀의 체 험이라는 경위를 통해서 취득하게 되 었다. 이때에도 그들은 전승을 모조 리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취사선택하 여 자기 예언선포에 이용한다. 다만 옛 전승이 그들 자신이 보유하던 신 앙의 근본 요소는 못된다. 더군다나 전승을 이용하는 과정을 보면, 하나 의 전승을 꼭본원의 맥락에서 척출해 내어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며, 그 새 로운 내용은 예언자가 선포하고자 하 는 의도에 종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 사야〔이 사 2’ 12-17은 아모 5, 18-20과 연 관됨)는 ‘야훼의 날’이라는 원초직 개 념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변조시켜 말하며,야훼의 보호를 표현하는 ‘바 위’와 '돌’이 많은 이가 걸려 넘어지 는 바위로 바뀌고〔이사 8, 14), '시온 의 산 위에 거한다,는 표현이 성도의 멸망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고(이사 8, 16-18), 다뒷이 감행한 聖戰의 승리 가 유대 멸망을 재촉하는 야훼의 분 노로 표현된다(이사 2S, 21). 이처럼 이사야가 전승을 변혁시켜 만든 새로 운 의 미 는 그가 체 험 한 소명 에 서 연

유한다. 그는 야훼 께 ‘언 제 까지 입 니 까?.,라는 질문을 제기했었고, 야훼 의 대답은 시온과 온 백성의 완전한 파멸이었다(이사 6, 11). 여기서 전승 이 맹신하고 있던 예루살렘의 구원이 라는 의의가 완전히 전도되지 않올 수가 없었다. ,

이상과 같이 예언자들은 전승에 예 속되지 않았었다· 오히려 전승에서 온전히 독립하여 있으면서 자기들의 의 도하는 예 언 선 포에 자유자재 로 전 승을 이 용한다. 여 기 서 예 언 자들의 자기의식 (prophetisches Ich)은 주체의 식이 강하며, 그같은 자기의식에 입 각하여 전 승을 예 언 선 포에 다 종속시 키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또 그들이 전승과 그 해석을 이용한다는 말은,생활하신 야훼의 말씀이 청중 들에게 이해가 가는 방식으로 선포되 어야 한다는 목적성을 띠고 있다. 그 리고 인간이 야훼와 세계에 대해 .갖 춰 야 하는 (예 언 자들이 제 시 하는), 새로운 시야의 설정에 전승이 어떤 공헌을 함을 뜻한다. 예언자들은 자 기네가 지닌 새로운 비전 때문에, 옛 전승을 회고하는데서 그치지 않을뿐 더러 야훼의 말씀의 체험이라는 새로 운경험의 가능성을모든인간에게 연 어준다· 전승의 내용이 변조된다는 것은 그들이 선포하던 회심이 옛 인 간, 즉 죄스러운 인간을 새 인간으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에 부응한다고 하 겠다.
IV. 이스라엘 제종교사상에 대 한 예언자들의 태도

대예언자들은 당시 이스라엡 사회 에 이 미 뿌리 박은 제 종교사조와 직 접 간접으로 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별나게 그들은 오로지 하나의 신앙 사조만을 존중하여 그것의 보존과 원 초적인 전승을 인정하였다. 그·리나 당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그 신앙사 조가 그리 중대 한 위 치 도 점 유하지 못했고 별다른 영향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예레미아는 그 사조의 대변 인들과 신앙인들의 의도를 존중했었 다(예레 35장: 레카빗 족속에 관한 말씀참 조). 그렇 다고 해 서 예 레 미 아가 야훼 종교는 본연의 형태로 복고되어야 한 다고 주장하거나,야훼종교야망로 유 목민 생활의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도라고 생직-한 일은 없었다. 예언자들의 메시지에는 종교 의 이 상이 본시 부티 추구하던 바를 구 현할 가능성이 항상 내프되어 있었다. 예 언 자들의 메 시 지 는 제 종교사조의 본연의 이 상을 자기 것으로 동화시 켜, 새 역사 상황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실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메시지는 야훼 종교의 본연의 순수성을 유지 보존하는 데다 억점을 두고 있다. 그대신 야훼 종교와 연관 된 제종교사조는, 그것이 인단 새로 운 시대상황에 적합치 못할 때에는 거리낌 없이 배척당하게 된다.

■예언자들이 제종교에 대해 가졌던

태도는 土着化 신학을 구축하는 데 있 어서 좋은 지표가 되고 있다. 그들은 주변의 제종교사조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처럼 무조건 배척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그들은 어떤 신앙사조 내지 전승이 애초 발견되면 일단 있 는 그대로 받아들인 연후에, 야훼 종 교의 순수성에 위배되거나 새로운 시 대직 여건에 부적합한 요소를 정화시 키는 작업을 서둘렀다. 이런 작업은 어떤 신앙사조가 당초부터 보유하고 있는 본연의 의도를 성취시킴을 의미 한다. 예언자들의 이같은 자세는, 당 시의 제종교사조가 비록 표현양식에 미흡하고 미신적인 요소가 없지 않으 나,본바탕은 하느님을 향하고 있음 을 인정한·데서 기인한다. 한마디로, 그들의 토착화 노력은 제종교사조를 능가하고 동시에 그 사조의 참된 의 도를 성취하는 것이니, 그들은 復古 主^를 고립하지 않으면서 그 사조들 의 본연의 의도를 완성한다고 하겠다·

(1) 먼저 예언자들은 魔術을 초극 하면서 동시에 마술의 본 뜻을 완성 시켰다, 그 좋은 사례가 예언자들이 실천한 상징 행동 (symbolische Hand-lungen)에서 나타난다· 어느 종교현상 에서나 그렇듯이 상징행동은 마술 행 동에 기원을 두고 있다.

무룻 마술행동은 그 자체가 효력을 지니며, 그런 행동을 하면 魔力을 힘 입어 기원하는 바가 자동적으로 실현 된다고 믿어 왔다. 예언자들은 그같 은 해 석 은 거 부한다. 마술행 동 자체에 효험이 있는 것도 아니요,거기서 기계적인 성과가 얻어지는 것도 아니 다. 예언자들은그대신에 마술행동 이 의도하는 바를 상징화하였다. 즉 마술행동에 어떤 힘이 내재한다는 생 각을 타파하고, 상징화된 마술의 의도 를 야훼의 위력에다종속시킨것이다. 이리하여 마술적 요소는 상징행동을 통해서 정화되고 극복된 것이다.

그대신 예언자가 상징행동을할때 에는 상징된 사건이 반드시 일어나리 라는 확신이 서 있다. 야훼께서 상징 된 그 사건을 꼭 실현하시기 때문이 다. 이처럼 야훼께 대한 신앙으로 말 미암아,상징된 것 (das Symbolisierte) 은 구체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가능 성이 된다.(30)

(2) 그 다음 예언자들은 敬神禮 信 心을 능가하고 완성시켰다. 생활하신 하느님 야훼의 체험을도외시하고, 형 식적인 경신례 거행을 통해서만 인간 실존의 안보를 도모하려는 사상을 그 들은 지양하였다. 祭儀는 결코 구원 의 수단이 못된다(이사 1’ 10-17). 인간 이 야훼의 구원을 보장받는다고 생각 하는 모든 것, 즉 성전, '사제, 신상, 제단과 번제, 노래와 합창과 춤, 허 원과 축제일 둥은 날숨과 같이 무력 하고 덧없는 것들이다. 실상 이 모든 제의가 나라 안에서 국민을 죄악으로 유인하고 있으며, 인간을 하느님께 헌신케 하는 대신에 인간의 욕망에 하 느님의 뜻을 예속시키는 이 제의 자 체가 죄악이다. 그따위 경신례는 구

원을 가져오기는커녕, 인간 부패의 표지가 되고 야훼의 심판을 초래할 따름이 다.

예언자들은 경신례 신심을 능가할 뿐 아니 라,그 신심의 본 뜻을 기도로 서 완성 시 킨 다. 신 앙인 이 야훼 를 흡 숭한다는 본연의 의무가 기도에서 이 뤄진다. 예레미아의 생애를 보면 기 도 안에서 흡숭의 i®가 구현되는 세 가지 양상을 알 수 있다· 예레미아는 야훼를 추적하는 내면의 투쟁을 벌인 다. 그룻된 길에서 방황하는 백성을 위해서 중재의 기도를 바친다. 야훼 께 깊숙히 沈下함으로써 거기서 그때 그때 야훼의 뜻을 발견한다.이같 은 기도생활을 함으로써 인간의 욕망 을 본위로 하던 경신례의 잘못이 시 정되고,본래 의도하던 흠숭의 예를 부각시켰다.

(3) 예언자들은 國家宗敎의 한계를 부서뜨리고, 國家本位의 종교관을 시 정하였다.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하느 님은 어느 일정한 민족이나 조정외 利害를 조정하거나 국가 권력이나 민 족 문화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야훼의 지존 한 뜻에 비겨 볼 때에, 민족이니 국 가니, 군주제도, 선민사상,우호동맹, 무적의 군대 따위는 너무도 하찮은 것들이다. 당대의 군주들을비판하고, 국민 을 지 탄하는 예 언 자들의 태 도가 여기에서 유래한다. 백성이 맹신하고 있던 야훼와의 배타적인 유대관계나 선민사상이 여기서 무너진다. 예언자들의 신앙에 의하면 야훼께서는 이스 라엘만이 아니라 만백성의 ■운명을 손 에 쥐고계시며,國家神이 아니라천 하만국의 통치자이시다.

나라의 역사는 이스라엘이라는 국 경을넘어世界史에 자리잡게 되고 세계사의 안목에서 이스라엘史가 이 해된다. 예언자들의 안목은 국경을 넘어 세계의 사건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스라엘 國家信仰의 본 뜻이 채워진다. 이스 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통해서 만백성 의 구원 이 도래 한다는 것 이 다. 이 런 전망에서는,야훼의 계시가 사시사철 의 운행과전답의 풍작을주관하는데 있지 않고 ㅅ間史와 인류의 생활에 개입하는데있음을의미히께 된다. 이제는 자연주의적 神觀이 극복된다. 동시에 이런 전망에서는 야훼께서 이 스라엘이라는 일개 민족과 그듭의 국 가체제에종속되어 있다는 맹신을 능가하였으며,그분이 곧 만민의 ? 史의主이시라는신넘이 승리했음을 중언하고 있다.

예언자들이 이교백성 (goyim)에 관 한 신탁들을 자기네 예언에 삽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훼의 뜻이 이 교백성들에 게서도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야훼의 말씀을 이교백성들에게도 선포하였고, 그들 이 야훼의 명에 배역할 때에는 거침 없이 심판의 위협을 발설하였다. 모 압인들이 에듬인들에게 가한 잔혹한 처사는 야훼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아모2, 1-3).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예언자들이야말로 세계 안의 정의 (justitia in mundo)를 최초로 주창한 인물들이다. 유배 이후의 예언자들의 종말론에 서 는, 만백 성 이 마지 막 때 에 이스라엘의 구원에 참여한다.

(4) 예언자들,특히 이사야와 예데 미아는 인간의 지혜에만 의존하는 사 조를 극복케 한다.이사야는 자기 지혜와 정치수완과 기획에만 의지하 는,하느님의 지혜를 의심하고 현세 적 지혜(에집트의 지혜)에만의존하는 당시의 贊者들을 통렬히 비난한다. 현자들의 오만한 지혜는 하느님의 上 합에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는 까닭이 다, 야훼 홀로 유일한 지혜이시며 현 자들의 지혜는 죽음과 더불어 소멸한 다. 난관에 처한 인간이 돌파구를 찾 아 우왕좌왕하는 잔꾀를 지혜라 일 컬을 수 없느니,신앙에 입각한 행동 과 회심하고 하느님 손에 의지하는 데에 참 지혜가 있다(이사 7, 9; 30, 15).

이러한 배경에서 현세 지혜에 의존 하려는 현존양식은 극복이 되었으나, 지혜의 본 뜻,즉 성공과 행복한 삶 은 하느님의 上智 안에서 완성을 보 게 되어 있다.

(5) 유배 직전에 출현하기 시작한 율법주의 ㅡ이것은 항시 경신례 율법 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ㅡ의 현 존양식도예언자들에 의해서 지양되 었다. 율법을 지킨다 함은, 예언자적 메시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경건한 자가 자기 행동을 율법이라는 의무에매어둥으로써 야훼의 뜻을 좀더 철 저하게 준수하려는 하나의 시도에 불 과하다. 따라서 경건자는 율법의 문 자와 법조문에 구애받지 않고 율법의 정신을 깨달아 실천해야 하며, 조목 조목을 절대적인 무엇으로 생각할 것 이 아니라 법이 요구하는 정신을 내 심에서 또 헌신과 사랑의 정신으로 실행해 야 한다.

인간이 율법주의에 떨어지면,하느 님 뜻에 전적으로 승복하는 태도를 보이는대신에,因果應報 사상에 젖 어 자기 행위에 대한 권리라도 되듯 이 하느님께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이 때 하느님은 인간이 내거는 권리에 예속된 분으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율법적 경건심 (GesetzfrSmmigkeit)의 섬세한주장에 도 율법주의에 떨어질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였다.

물론 그들은 道德法이 인간에게 요 구하는 바를 받아들임이 마땅하다고 설교하였다. 그러나 윤리 원칙들은 그 하나하나가 따로 가치있는 것들이 아니고,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야훼의 근본 요구를 세칙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다. 윤리 계 명을 준수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야훼 앞에 서 있는 올바른 인간현존이 ㅣ초 래하는 하나의 결과이지, 결코 그 현 존의 기반이나 필수불가결의 조건은 아니다. 야훼 뜻에 전적으로 복속하 고 하느님께 자기를 헌신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앙인의 표지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倫理法은 당초 신앙 인의 神觀에 달려 있다고도 하겠다-

예 언자들의 이같은 윤리관은 많은 사실을 설 명 해 준다. 예 레 미 아는 요시 아왕의 종교개혁에 열광적인 태도를 보인 일도 없고 시종일관 침묵으로 그 사업을 지켜보고 있었고,후에는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그 개혁이 경 신데와 율법에다 너무 큰 비중을 두 고 있었기 때문이며, 속마음에 율법 이 새겨지지 않는 한 겉치레의 율법 준수는 인간 개조에 전혀 무능함을 통 찰하였기 때문이다〔예에 31, 31-34). 마 음에다 참다운 율법을 심어주시는 분 은 하느님 이 시 다. 그러 므로 하느님 없는 윤리 (la morale sans Dieu)는 인 간개조에 전혀 무능하다는 것이다.

에 제 키 엘 도 같은 입 장을 취 한다. 신 명기계 사상에 구원이 있다고는 생각 지 않았으며,예루살렘의 개혁이 그 멸망을 철회시킬 수는 없고, 유일한 구원의 길 은 백 성 과 신 앙인 각자가 새 생 활을 .시 작하고 회 심 하는 데 있 다. 에제키엘 20, 10 이하에 묘사되는 바 와 같이 수차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 고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야훼께 로부터 이 탈하였다는 것은 신명 기계 개 혁 이 실패 작으로 그쳤 음을 증명 한 다는 것이 에제키엘의 견해이다. 올 바른 인간현존(윤리도덕을 존중하는 인간)은,호세아의 말대로, 하느님을 아는 지식 (la connaissance de Dieu)에

달려 있다.

(6)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예언자들은 종교개혁가도 아니요, 혁명가도 아니며, 더구나 '프로테스탄트,는 아 니디그들이 당대의 이스라엘 제종 교사조에 취하던 현존양식이 이 사실 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들은 제종 교사조의 허점을 극복하고 동시에 본 연의 의의를 깊이 파악하여 완성시켰 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제종교사 조에 대 한 예 언 자 신 앙의 우월 성 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우월성은 돌 연히 출현하지 않았다. 모세 신앙에 이미 배태되어 숨겨지 있었다. 경신 례 를 중시 하고 국가종교의 성 격 이 짙 은 신앙생활을 영위하던 이스라엘 안 에서 서서히 움트고 있었다. 그러다 가 새로이 하느님을 만나됩고 예언자 로 등장한 인물들의 말씀의 채험에서 이 씨 앗이 자양분을 받아 성 숙한 것 이다. 이리하여 예언자의 맙씀 선포 는 국가종교의 권위륜 부각시키려는 역시·가, 신명기계 신학을 대변하는 인물들, 후대 지혜문학의 창시자들, 유배이후에 등장한 모든 유다이즘 주 창자들에 게 막대 한 영 향움 끼 치 기| 된 다.

V. 대예언자들의 종교사상적 의의

(1) 대예언자들의 현존양식은 아직 도 原始宗敎의 잔재가 우세하던 데서 高等宗敎에로의 喊移륜 가능케 하였 다. 그들의 사상은 '원시종교,에서 (성숙된 종교,에로의 발전을 가능케

한 기로에 위치하고 있다.(如 한 가 지 놀라운 사실은, 예언자들의 출현 과세계사상사의 획기적 전환이 세계 도처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

이 다, (34)

희 람 문화권에서는 기원전 800?500 년 사이에 신화 (mythos) 에서 말씀 (logos)으로의 전이, 神話에서 神學으 로의 전이가 이뤄졌다. 이것을 발단 으로 헤시오두스 (Hesiodos) 의 우주론. 직 사색이 시작한다. 그도 다신론적 神論에서 출발하여 일신론적인 결론 을 내리 하나의 신성(加?W) 을 논하 였다. 그에게서는 아낙사고레스에서 아리 스토탤 레 스에 이 르는 유신 론 사 조와,엘레아 학파 빛 플라톤 그리고 스토아 학파에 이르는 신비주의 노선 의 일원론 두지류가 파생된다. 둘다 전대자의 일원론을 주창하고 그 존재 에 대한 고차원의 종교심을 발전시켜 나갔다.

인 도에 서 는 베 다의 원시 종교가 이 무렵에 고등 종교의 내용을 갖추게 되었다. 이 무렵에 완성을 본 우파니 샤드 문학은 고급종교로서의 면모와 표현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 문 학에도 祭祀에 관한'사변직 고찰이나 신화 등의 원시종교 잔재가 남아 있 긴 하지만 절대자의 유일성이 고조되 는 중이며, 拂陀에 와서는 일원론이 승리한다.

고대 중국에서도 질대자 개념이 두 조류로 형성되었다. 유신론적 경향을 띤 孔子의 사상과 신비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老子 사상이다. 두 인물 다 기원전 6세기에 활약했었다.

이 상과 비 숫한 사상적 성 숙이 이 스 라엘 예언현상에서 출현한다. 예언자 들이 이 시기에 고등종교에로의 발전 을 구축한다. 자기들이 출현하기 전 에 이미 존재하던 실천적 유일신교 (야훼 종교)에서 그들은 절대자로서 의 하느님 을 체 험 한다. 고등종교의 첫 요소가 그들의 神體驗에서 연유한다. 제 2 이사야에 와서는 그 신체험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사변적 유일 신교'의 정립을 본다.

그러나 고등종교의 둘째 요소는 예 언현상 그 자체로부터 기인한다. 인 간자체가 문제시되는 것으로서, 인 간은 절대자 하느님께 대한 체험으로 부터 얻은 인식을 지니고 있는 데 그 인식에 의하면 인간은 실존적으로 멸 망의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예 언자가 출현하기 전에는 이런 실존이 해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제신앙사조 를 능가하는 예언자몰의 고등종교가 얻어낸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멸망 에 붙여진 인간’이라는 실존이해는 원 시종교에서 고등종교로의 전이를 가 능케 한 제일 중대한 요인이다.

(2) 예언자들의 출현은 야훼 종교 를 민족종교 (Volksreligion) 에서 탈 피시켜 세계종교 (Weltreligion) 로 전 이케 하였다· 세계종교에서는 민족공 동체 이 기 에 곧 신 앙공동체 라는 공식 ㅡ이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 개개인이· 신앙의 主®가 되며, 이런 신앙인은

누구와도 특수한 종교 공동체를 형성 할 수 있다. 그가 쿠쉬인이기에, 아 시아인이기에,백인이기에 나와 신앙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세계 역사를 주재하시는 하느님께 신 앙을 갖기에 나와 한 공동체를 만든 다. 여기서 인종차별은 근저에서부터 허물어진다.

종족을 기반으로 하는 신앙공동체 에서는 종족집단에의 소속은 구원의 보장이요, 거기서 제외되는 것은 곧 구원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제 상황이 전도되었다. 이제는 각자 에게 주어진 인간조건은 모두와 각자 에게 처해진 실존적 멸망의 상황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인생의 최고목표 는 '존재하느냐 아니면 존재하지 못 하느냐' (to be or not to be)는 기로 에 서서 구원을 획득하는데 있다. 예언자들의 기본관심은 인간 자체와 인간적 실존이다. 종족의 모든 유대 에서 해방되어 전적으로 독립되고 기-장 위격적인 필요성이라 할 인간 구 제가 문제다. 참으로 종교적인 문제 다.

그래서 예언자들의 설교는 이스라 엘 뿐 아니라여타의 모든 고대 백성 들을 향해서 울리고 있다(만백성에 대한 신탁). 인간이라면, 이스라엘인 들이 그토록 멸시하던 이교도(goyim) 들도 포함된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그들에게도 하느님 말씀을 선포했고, 이 때문에 그들의 메시지는 세계종교 서에처럼 보편성을 갖는다. 인간은 누구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구원을 갈구하고 있고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보편성을 갖 는다는 말은, 예의 보편성이 모든 인 간과 개 개 인에 게 해 당한다는 뜻보다 는 인간 조건 즉 멸망에 붙여진 인간 실존의 보편적 구원의 필연성을 말하 는 것이다. 구원이란 한 인생이 하느 님의 절대주권 하에서 그분과 공동생 활을 영위하는 필연성이자 하나의 가 능성이다. 그가인간인 이상누구나 ‘생명에 이르는 길'로 듭어선 수 있 다.

예언자들이 권유하는 '보편적인 초 대’는 회심 또는 구속을 통한 시ta改 造이다. 이 초대에 응하면 새 현존과 더불어 구원을 얻는다. 이런 권유는 역사에 오른 모든 상대적 실존을 능 가하는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근 본문제인 실존(Existenz) 흑은 비실 존(Nicht-Existenz)을 취급하는 까닭
이 다.

예 언 자들의 메 시 지 는 인 간의 일 부 분,그러니까 인간의 한정된 존재양 식에 국한시켜 인간개조를 논하지 않 는다. 인간에 관한 한 全ㅅ에 영향력 을 행사코자 한다. 세계종교로서의 예언자적 신앙은 인간실존의 가장 내 밀한 핵심과 먼저 접촉하고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핵심에서 시작하 여 한 인간 실존이 갖는 모든 분야와 영역에까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하느님과의 합일을· 구현코자 한다. 신비가들과는 달리, 예언자들은 인간 실존의 핵심을 변혁하고 개조함으로 씨 인생과 세계에 일어나는 모든 ㅅ 問事에 하느님이 주신 생명으로 변혁 된 새 현존양식이 삼투되기를 염원하 였다. 이제 인간과 천하의 삼라만상 은 애오라지 하느님께로 되돌아가야 한다. '회 심 ’ 이 야말로 예 언 자들이 생 명을 바쳐 외친 메시지의 최후의 언 어이다.

(20) J. Hempel, Prophetische Offenbarung, ZSTh 4(1926), 91-112; F. Horst, Die Visionsschilderungen der alttestamentlichen Propheten, EvTh 20(1960), 193-205; J. Lindblom, Die Geschichte der Propheten, StTh 1(1935), 7-28; S. Mowinckel, Ecstatic Experience and Rational Elaboration in the Old Testament Prophecy, AcOr(Leiden) 10(1935), 264-291; I.P. Seierstad, Die Offenbarungserlebnisse der Propheten Amos, Jesaja und Jeremia, 1965.

(21) J. Bright, A History of Israel, 1964, p. 251 sq.

(22) G. von Rad,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 II. 1965, p. 89 sq.

(23) Th. C. Vriezen, Die Erwahlung Israels nach dem Alten Testament, 1953.

(24) R. Bach, Gottesrecht und weltliches Recht in der Verkundigung des Propheten Amos, in: Dehn-Festschrift, 1957, 23-34.

(25) W. Beyerlin, Die Kulttraditionen Israels in der Verkundigung des Propheten Micha, 1959.

(26) H.W. Wolff, Amos geistige Heimat,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