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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량회의에서의 교황 바오로 6세의 연설 - 1974년 11월 9일
1975년 9월호 (제 41호)
의장, 사무총장, 신사 숙녀 여러분, 유엔 주체로 로마에서 열린 세계 식량회의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만나...

金起浩의「聖堂歌」政
1975년 9월호 (제 41호)
〔訂正〕본지 39호에서 필자는 「聖堂歌J의 작자를 洪 방지거로 보고 論하었다· 그러나, 이 Γ聖楚歌」가 ...

부교구장에 관한 교회법
1975년 9월호 (제 41호)
第 3 節 權限과 그 行使〔繼續〕 II. 권한의 性格 1. 부교구장의 권한은 그를 임명하는 주교로부터 導出...

윤리규범에 관한 신학적 고찰
1975년 9월호 (제 41호)
原文 : Johannes Griindel(독·y 원핸대학교 가?-릭신학부 윤리신학 주임교수),Zur Moraltheo-logischen ...

淸來 西敎書의 韓國思想史的 意義
1975년 9월호 (제 41호)
I 사상이란 생성 발전되는 것이지 고· 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한 민족이 그 민족 고유의 사상만을 고집할...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현존양식
1975년 9월호 (제 41호)
III. 傅承에 대한 예언자들의 태도 (1) 대예언자들은 모세 신앙을재 부활시켰다. 그들은 단지 옛 모세시 ...

교회와 아시아 혁명
1975년 9월호 (제 41호)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형편을 성실하게 반성해 보는 이라면,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또 이들 문제...

아동 미사 - 그 문제점과 해결방향의 모색
1975년 9월호 (제 41호)
현대의 분업화되고 다양화된 생활 체제에서 일어나는 여리가지 문제들, 특히 이러한 복잡한 상황 하에서 크...

신도와 사제의 협력
1975년 9월호 (제 41호)
이 문헌은 19기년 ‘現代世界의 任司祭職’ 의 주제를 걸고 로마에서 개최된 主敎 시노 드에 참고자료로서 ...

가톨릭 성서 모임
1975년 9월호 (제 41호)
I. 서 론 한국은지난10여년 동안 정치.경제·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국민 들의 문화 전통의 오랜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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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壇 1975년 9월호 (제 41호)

윤리규범에 관한 신학적 고찰

J. 그륀델

原文 : Johannes Griindel(독·y 원핸대학교 가?-릭신학부 윤리신학 주임교수),Zur Moraltheo-logischen Begrundung Sittlicher Normen: Aktuelle Themen der Moraltheolo-gie, Munchen 1971, pp. 16-25, 鄭學根(분도회 서울신학원 신부) 譯.

금일에 와서 신학적으로 규범을 찾 아서 그 규범의 기준을 설정하려는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이유로서는 인종학상 각윤리규범들 의 내용이 서로 다르년시 그것이 문 화적 조건에서 연유되는 것으로 相對 的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한편, 사회 학적이며 인류문화 연구의 결과로,인 간의 윤리적 행위를 규정짓는 규범들 은 관습법의 횡포에서 보호되고 인간 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되 기 때문이다.ω 현대인간은 어떤 단 체나 권위 혹은 교회에 의하여 제시 된 규범을 척척 받아들이지 않고 오 히려 그 규범이 자기들에게 타당한 것인가를 알아보려 한다. 이러한 비 판적 자세는 전직으로 진정한 성숙의 표시로 평가할 수 있겠다. 그리나 여 기에 대하여 교육자듭은 명백한 태도 를 취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자는 개개의 윤리 규범을 어디에서 얻어들이는가一어떻게 그 규범들을 발견하며 근거를 세 우는가 ?

이문제에대한해답을얻기 위하 여 여리가지의 源泉들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이하에서는그원천들 가운 데 몇가지만 취급하기로 한다.

1. 성서가 말해 주는 규범들

윤리규범을 찾는?ㅣ 있어서 가장 중 요한 원천은 구약과 신약성서에 담겨 져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렇다 고 해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의무로 부과되고 있는 규정들이 하느님의 계 시로 분명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지시 되 었 다고 생 각하고, 성 .경 만 읽 으면 모든 구체적 규정들을 알아볼 수 있 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결코 계시 말씀으로 쉽게 해결되어 나갈 수 있 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현대교회의 수많은 전형적 인 문제 ㅡ예컨대 책임성 있는 가족 계 획 문제 ㅣ 에 대 하여 성 서 는 아무런 답변도 주고 있지 않으며≫ 다른 한편으로 성서에 나와 있는 윤리적으 로 중대한 말씀들은 일단 그 말씀의 복음선포적 기본 내용을 중심으로 재 고되어야하기때문이다. 가장 핵심 적인 것, 즉 시대룰 초월한 타당한 말씀은 윤리신학자가 이러한 성서 귀 절들을 신학적 증거 자료로 삼기 전 에, 먼저 시대외- 상황의 제약을 받는 껍질을 탈피해야 한다. 우리는 단순 히 성서 인용을 가지고 윤리적 요구 를정당화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성 서 귀절을 인용하기 전에 그 귀절들 의의미와중요성을알아야한다.따 라서 과거에 인용된 많은성서 귀절 들은 오늘날 그것의 타당성에 관하여 새로이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윤리를정립하는데 있어서, 요구 되는 기초-5- 놓고 그를 제시하기 위 해서 성서가 명령하고 단죄하는 여러 표현들 가운데 어떤 것이 시대성에 예속된 것이고, 어떤 것이 시대를 초 월하는 불변적 요소들인지 그리고 핵 심적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성서 주석 자들에게 문의해 보아도충분치 않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한계성을 지니 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 주석자도 인 간학적으로 규정된 조건에 놓여 있는 사람으로서 성서 귀절을대하게 되고 그 조건 안에서 해석하고 있기 때문 이 다.

성서 주석자는 말씀의 수많은 範例 的 특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말 씀들은 초대교회 당시의 사람들이 어

별게 추종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을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그리고 사랑 안 에 서 실 제 적 으로 행 동화되 어 지 는 신 앙이 사도들에게 어떻게 보여졌는가 를 입 증해 줄 뿐이 다. 사도들의 행 동 은 각 시대의 인간들에게 ?例의 성 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그 를 踏®해서는 안된다.

성서 주석자는 때로는 더러 이중성 올 띤 문구에 접하게도 된다. 이를테 면 성서의 내용이 모호함을 확실히 해두고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을 인정해야 될 경우이다. 특히 계시 말 씀의 신학적 내용에 관해서 말할 때 에는 최대의 신중성이 요구되는 것이 다. 예컨대 바울로가 각 죄악들에 대 히-여 날카롭게 단죄한 경우ㅡ 특히 음탕, 탐욕, 동성애 등등(로마 1, 24-2 7; I 고린 6, 9; I 디 모 1,9 참조) ㅡ 에 이 귀절들의 콘텍스트가 무시되어서는 안된디바울로는 이러한 죄악 목록 으로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에게 하느님의 진노하심이 분명히 나 타나게 될 것을 묘사하고자 한 것이 다。만일 인간들이 현세에서 만날 수 있는 하느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창 조성을 부인하며, 자기자신이나 창조 물을 神格化시키려 든다면, 윤리적 무 질서에로 빠져들게 마련인 것이다.® 바울로는 이와같은 무질서를 죄악 목 록으로 열거해 보이려고 시도한 것이 다. 각 죄악들이 그·자체 신학적 진 술의 직접적인 테에마는 아니다. 만 일 우리가 성서의 텍스트에서 윤리적 규범을직접 얻으려 한다면, 몇개의 근본적인 요구(예컨대 사랑의 계명) 를 제의하고는 대부분 補免的 작업의 도움 즉 텍스트에 대한 교회의 공식 적인 가르침이나,인간의 자연 본성 에 나타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함으로 써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성서가 바로 어떤 직접적인 윤리적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 본성 에 대한 개념을 푸는 실마리가 성서 의 계시 이외에 결정적으로 윤리적 규범의토대를 세우고 확립키 위한 길을 열어 주게 된다. 그 타음에 인 류학적 관점이 경우에 따라 각 성서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낳게 할 수도 있고,모호한 성서의 표현을 선명하 게 깨닫게끔 할 수도 있다. 또한 자 연 도덕률을 동원하는 것은 그리스도 교전승의 확고한부분적 요소가 되 었고,성서적으로도 전적으로 합법화 되고 있는 것이다(로마 1, 19-21; 2,14-16 ;#20.

2. 인간의 자연 본성에서 나타난 규범들

윤리신학자나 교직자들은(특히 가 톨릭 교회) 성윤리에 관하여 진술할 때 자주 인간 본성의 중심 개념을 들 어 남녀 양성간외 관계에 대한 윤리 적 질서의 원칙을 이끌어 낸다. 철학 은규범을 찾아내는 방법을 "인간은 존재에 부합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Agere sequitur esse)란 원리 로 표현하고 있다. 존재가 당위 (Soll-

≪0를 뒷 받침 한다 ㅡ 혹은, 인 간은 자 기가 누구인지 파악하게 될· 때 무엇 올해야 할지를 알게 되고, 하느님 의 은총에 힘입어 자기 스스로 무엇 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 러한 원리는 우선 인간 존재가 확고 하고 不可變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當爲 사이에 엄격한 상호 관계를 진술하자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인 간과 인간사회의 존재는 역사적 변화 를 겪게 마련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될 때,이러한 존재에서 나온 윤리적 요구 역시 .변화를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신학자는,어떤 영속적이고 근본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와 발전에 따라 자기가 처한 시 대에서 생기는 의무에 대하여 항상 새 톱게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므 로써 오늘날 계속 참신해지려는 그리 스도교의 윤리는 어떤 다이나믹한(역 동적) 특성을지니고 있게 된다. 이러 한 관점에서 볼 때 역시'우리는 변화 를 의식하며, 인간 생활의 역사가 이 전보다 오늘날 강하게 대두되고,외 적 측면에서의 인간상을 제거해 버린 한,전적으로 ‘새로운 윤리,란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인간이 변화무쌍한 측면 이외에 恒續的이며 따라서 항상 有?性을 지니고 있는 점이 있다는 것을 否認해서도 안된다. 현대에도 ‘하느님의 뜻’ 의에 다른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고, 근본적으로 경외심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할 분명한 戒 律이 있다. 예컨대 살인과 簽淫의 금 지이다. 그러나이러한 禁令이나명 령도그.범위나내용에 있어서 시대 적으로 상응한 확대 해석,혹은 축소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누가 ‘살인’이란 것율 개체적인 것으로만 알아듣고 한 ‘종족살해’를 간과하는 경우다. 만일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 이 기아로 죽어가는데,경제적 도움 을 줄 수 있으면서 이를 등한히 하였 다면 그들의 죽음에 대한 共犯者가 되는것이다. 이밖에오늘날 우리는 언어의 한계성을 알게 되었다. 가끔 동일한개념이매우 다른 내용으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에어렵고공통된 표현을 쉽게 할 수 없는 경우다. 역 시인간의생활영역과인간 상호간 에 다양한 언어 구사를 염두에 두고 윤리적 규범을 설정해야 한다· 인간 에게 의무지워진 것에 관하여 긍정적 으로 말하려 할 때, 인간 스스로의 행위를수행해야할바의 방향과목 표는 다소 일반적으로만제시될 수 있 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자연법의 요청이나 과제라고 하는 것들 중에서도 시대성 을면것과시간을초월하는것,가변 적인 것과 불변적인 것을서로 구분하 는 것, 그리고 본래의 성서적이고‘자 연법’적인 인간의 性의 가치를 가리 우고 있는 것으로 현대에는 무의미하 게 된 시대성과 문화적 영향을 입은 비그리스도적 인 것을 제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성윤리 안에는 역사 의 흐름에 따라 구약성서적 청결개념 뿐만 아니라 거의 동물적인 영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로마법과 스토아적 본성개념 (신성과동일한 ‘거룩한것' 으로서의 본성)이 포함되어 있고,거 기에다 잘못되어 그리스의 이원론적 인 육체와 영혼의 개념이 바울로의 육과 영 (Sarx-Pneuma)에 대한 가르 침과 관련되어 인간과 인갑의 성에 관한 순수 성경 말씀의 어떤 다른 요 소가 초래되었다는 점은 오늘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체를 보는 각도 를 그와 같은 식으로 날조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자체에 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적 의견 즉 그 당시의 인류학적 표상에 입각한 지배 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윤리신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원리 "Agere sequitur esse’’는 또 다른 무 엇인가률 명백하게 한다. 그리스도교 성윤리의 윤리적 요구는 인간에게 결 코 외부로부터一말하자면 ‘권위적, 이고 ‘임의적’인 것 ㅡ본성과 동떨어 진.어떤 것 ㅣ강박된 것이 아니다. 그 것은 오히려 인간 존재의 양식에서가 아니라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 라서 어떤 권위도 전혀 마음대로 직 접 ‘입법하는 식으로’ 윤리적 규범을 만들거나 흑은一그 규범들이 언젠가 발견되어 옳은것으로 규명될 경우 一 개인의 힘으로 변화하거나 파괴할 수 가 없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근본적으로 타율적인 윤리로서 이해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 때부터 이미 하 느님께로부터 지시되어진 것이며, 인 간 본연의 性向이나 결정에 일치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인격과 신앙에 유익 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고 인식과정이 발전되어, 그 자체가옳다고인식한 윤리규범으로 선언된 것 즉 정립시켜져야 할 것이 배제되는것은아니다.이런 의미에 서 볼 때, 모든 윤리적 지침은 인간 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가 입법자가 된다. 그러 나 동시에 자신이 입법을 할 경우에, 일단역사와하느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종파간의 대화에 있어서 신 구교 양 측은,‘자연,에 관하여 서로 다른 내 용으로 이‘해하고 있는 점을 주시해 볼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자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자 연은 창조와 더불어 주어졌다. 또한 그들은 죄악으로 일그러져 있지 않는 ‘하느님 앞에서의 올바른 상태,와 죄 악에 떨어지기 전에 가졌던 하느님과 인간의 원래적관계에 주목하고 있다-이에 반하여 가톨릭 윤리신학은 자연 본성 가운데서 인간으로서의 인간에 속하는 각. 인간 존재의 근본 구조一 원조의 범죄 전이거나 죄악의 상태이 거나 혹은구원의 상태이거나ㅡ와그 리스도께서 참 사람으로 받아들였고, 그리스도교적 인간상에 속하는 어떤

근본적인 면을 주장한다.(4)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 신학은“우리는 원래 진노의 자식들이다’,C에페 2,3)란 바울 로 사도의 말씀과』관련하여; 본성이、 전적으로 상실되었다고 한다. 즉 아담1 의 범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원래적 관계가 완전히 상실되었다고 주장한 다. 이 러 한 견 해 에 서 보면 죄 악으로 완전히 상실된 본성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에게 있어서 어떤 윤리적 규범 을 찾아 설정하기 위한 토대가 될 수 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테스탄 트 신학은 “Agere sequitur esse"란 원 리 역시 거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서 가톨릭 신학자가 윤리적 규범 을 이끌·어내는 출발점으로 인간의 본 성을 끄집어 내려 할 경우에 다음과 같은 개 념으로 이해하게 된다. 一추상 울 표현한 것一그때 그때의 인간의 역사적, 상황에 예속되지 않고 창조나 구원 질서의 존재 이해에 상응하는 인간적 존재의 실제적인 사실,_ 여기 서 본성에 반대되는 개념은 은총이다. 물론 소위 순수본성 다시 말해서 순 수 자연적인 상태는 결코 한번도 주 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구체적 인간 은 창조에서부터 시작하여 원조의 범 죄를 거쳐 하느님 나라가 시작할 때 까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항상 하느님의 은총 을 요구하는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 이 다. (≪

이런 점에서,· 자연이란 결국 어떤 연구를 위한 가설로 남게 된다. 그러나이러한보조방법을저버릴 수는 없다. 만일 누가 인간의 본성에 관하 여 말하려 할 경우, 이러한 자연 개 념 안에 인간의 역사성을 포함시켜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언어와 언어구 사의 특성이 숙고되어야 한다. 그 결 과 본성에 관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항상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남게 마 련이다.

3. 윤리성과 실생활

인종학자와 인류문화학자 특히 사 회학자들이 지금까지 인정하여 오던 윤리규범들이 아직도 얼마만큼 준수 되고 존중되며, 얼마만큼 무시되거나 철저히 거부당하고 있는지를 통계적 으로 밝혀 준다. 그렇지 만 이 런 식의 확증은, 인간에게 ‘본성에 따라’ 주 어진 윤리규범의 가치가 긍정적인 인 간의 법률과 비슷하게 단순히 공동체 에서 받아들여지느냐에 달려있기나 한 것처럼 쉽게 인상올불러일으킨다. 신학자는,일정한의무를 더 이상 채 우지 못하고 어떤 규범 ㅡ아마도매우 자주ㅡ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규범을 폐지하거나 무효라고 단언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 이것은 킨제이 보고나 구체적 생활양식을 윤 리적교과서로 단정하는 격이 되고 만다. 물론 규범을 거스르는 행위가 증대함으로써 해당된 규범의 전체 기 준을 고려하게 되고, 그 규범들이 통 용되는 영역을 검토하도록 '만들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통용되고 있는 법

이 기존법을 무효라고 설명하거나, 새로운 법을 정립하기에 충족한 이유 가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윤리성을 설정하는데 중요성을 면어떤 집단에 서 통용되는 참된 확신이 단순히 묵살 될 수 없다. 비록 그러한 확신이 을 바른 표현이 아니라 할지라도 바르고 뜻이 깊고 본성에 맞는 윤리질서를 얻고자 하는 인간적 노력의 일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죄악 때문에 인간의 인식이 흐려졌고, 그 결과로 인간에게는 오류의 가능성이 생겨났 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한 자에게 자기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느끼도록 하자면,죄악에 떨어진 인 간 안에 음바른 윤리규범을 설정하거 나 찾아내는 능력이 없다고 몰아쳐서 는 안된다. 그러나 객관적 인식올 얻 는데 있어서 죄에 기울어지기 쉬운 성향과 죄악에 떨어진 인간적 무질서 의 결과로 수많은 장애가 있음은 사 실이다.

인간은 진리를 찾는데 있어서 이러 한 인식을 똑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실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어떤 오류를 초래할 수 있는 그때 그 때의 상이한 전제와 선입견 내지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따라서 만일 누 가 가장 훌륭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 며 아무리 양심적인 사람이라 할지라 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자신의 확신만을 주장할 수 없는 것 이다. 한 개인의 양심에 대한 획·신 역시 틀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경우에 양심이 자체의 가치를 지니긴 하지만,그리스도 신자는 이 러한 사실에 직면할 때,자신의 판단 과 참된 확신을 정당성에 입각하여 계속해서 묻고검토해야할것이다.

4. 윤리적 諭據의 증명력에 관하여

인간의 행위에 관해서는 신학자들 만의 영역이 아니고 계시가 요구하고 제시하는 것 외에, 인류학적으로도 중요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 지고 있는 인접 학문들과 관련을 맺 고 있다. 따라서 윤리적 규범을 제시 할 경우에 인간의 행위에 관하여 여 러 학문들을 참작하여 그 학문들이 말하고 있는 주장에 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부분적 국면으로 그 학문들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다. ㅣ인간의 인식을 부분적으로 보려 는 사실에서 윤리적 명령을 설정하려 할 때,다른 견해들을 고려하여 개개 의는리를 종합적으로 보려고 노력해 야 한다. 성행위에 관하여 ㅣ심리학자 나 생리학자, 또는 사회학자나 생물 학자의 의견만으로는 충족치 않다. 왜 냐하면 부분적 견해로 만족하는 자는 부분을 전체로 생각하고 인간의 실제 적인 면을 날조하는 과오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부분을 전체화하는 이데 을로기 (Pars-pro-toto-ideologie) 에 빠지게 되고 만 다. 윤리적 행위는 인간의 전 면모와 관계됨으로 인간의 다양한 면에 관심 을 두고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뉴우먼 추기경 (J.H. Newman lMlㅡliWO)은신앙의 영역에 있어서 종합적 인 관찰을 중시 했다. (6) 그의 주 장은 윤리적 논거에도 해당되는 것이 다. 개체적 논거에 비해서 종합적인 관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 으로써 각 윤리적 의무의 타당성과 영역을 더욱 잘 그리고 확실히 제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체를 묶 어서 종합적으로 볼 때 영향력이 적 고 일방적인 윤리규범의 근거를 낳게 되고 그 규범들의 反證을 쉽게 피할 수 있게 된다. 철사줄 하나만으로는 지탱할 힘이 없으나 수많은 칠사로 구성됨으로써 큰 지탱력을 가지게 된 케이블선과 마찬가지로 윤리적인 것 을 제시함에 있ㅚ서도 개개논리(사회 학적, 생물학적 혹은 심리학적) 역시 그 자체로는 지탱력을 별로 가지지 못한다· 서로 다른 논리를 규합할 때 비로소 윤리규범의 근거와 의미가 충 분히 드러나고 그러한 명령의 합리성 도 제시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 고 이와같이 종합적으로 관찰할 때, 전체는 각 부분의 총화보다 크다는 일반적 철학 원리가 유효하게 된다.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은 윤리적 의 무를 제 시 할 경 우에 도 중요한 것 이 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습을 각 분야 별로 다르게 보고 그것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주장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저 변에 놓여 있는 인간상에 따라서 신 학의 과제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원과 목적에 관한 전망을 제시하고 거 기서 나온 지침을 윤리신학의 토대로 삼는 데 있다.

윤리적 명령은 논리적 논증과는 근 본적으로 다르다. 논리적 논증은 이 성의 영역에서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고 보면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 나 윤리적 명령은 결코 윤리의 유효 성을 인정하도록 강요되어서는 안되 는 것이다. 규범을 받아들인다는 것 이 인간 전체에게 의지와 정서를 포 함하여 실천하도록 요청되는 것이고 보면 인간의 자유로운 영역 안에서 완성되는것이다· 의미있는행위ㅡ예 컨대 어떤 성관계와 순수한 인간 사 탕의 특성一에서 윤리규범의 유효성
이 증명되어야 한다.

현대 신학자는 바로 성윤리의 영역 에서 자주 斷見에 입각한 논거들을 접하게 된다. 이를데면 근본적으로 재 고되 어 야 하는 윤리 규범 을 기 초로 윤리 성 을 주장하는 경 우다. 예 컨대 누가구체적인연구 조사의 결과나 심리학자들의추리를가지고 윤리규 범의 유효성과 무효성을 제시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간주하고자 한다면 그 는 이미 위에서 지적했던 ‘Pars-pro-toto-ideologie,의 희생물이 되어버린 다. 따라서 항상 각 논거의 한계성을 유의해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것이 다.

1) F. BOckle, Sexualitat, s. 252f 참조.

(2) 동상, s. 262.

(3) J. Griindel, Wandelbares, s. 16-20 참조·

〔4) F. Bfickle, Grundbegriffe der Moral, Aschaffenburg 1966, s. 54 참조.

(5) 여기에 대하여 A. Auer, Weltoffener Christ. Grundsatzliches und Geschichtliches zur Laienfrommigkeit, 3 Aufl. Dusseldorf, 1963 참조.

(6) 여기에 대하여 상세하게 다문 것으로서 나의 논문 Die Bedeutung einer Konvergenz argumentation fur die GewiBheitsbildung und fur die Zustimmung zur absolu ten Geltung einzelner sittlicher Normen, in; Wahrheit und Verkflndigung, MUnchen u.a., 1967, s. 1607-1630 참조; 역시 J. Griindel?Η. Van ㅇyen, Ethik ohne Normen?, Freiburg 1970, s. 64ff 침·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