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성년과 청소년에 관한 사목교서
1975년 5월호 (제 39호)
ㅡ각 주교회으I, 전국위원희,청소년 지도자들에게 나는크나큰희망을품고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디나는 그들...

출판물 감독에 관한 교령 - 1975년 3월 19일 공포
1975년 5월호 (제 39호)
세계 만방에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위임받은 교회 목자들(註:주교, 교회헌장 23항참조)은,신앙의 진리를 ...

성소의 날 메시지 - 1975년 성소의 날에 즈음하여
1975년 5월호 (제 39호)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마태 9, 37; 루가10,2). 주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의 긴박한 적절성...

한국 주교단 메시지
1975년 5월호 (제 39호)
친애하는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 여러분에게 ! 1974년 7월 23일부터 영어의 몸이 되셨던 원주교구 ...

방지거의「聖堂歌 묘
1975년 5월호 (제 39호)
I. 序 언 天主歌辭는 한국 교회의 盛衰와 더 불어 밀접한 연관하에서 창작되어 왔 다. 이 둘은 서로 函數關...

道德敎育과 人間形成 ㅡ Erikson 의 人格發達論을 中心으로
1975년 5월호 (제 39호)
道德’이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나행위에 대한제약 또는구 속을 정당한 것으로 보는 일면을 가 졌...

임종자에 대한 교회의 사목
1975년 5월호 (제 39호)
原 文 : Alois Muller (프라이 부르그 ㅊ學 司牧神學 교수), "Care of the Dying as a Task of the Church...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현존 양식
1975년 5월호 (제 39호)
II. 예언자들의 비판정신 1. 예언자들의 歷史觀모든예언자들은 한건같이 자기네 백성이 갖고· 있던 史觀을...

洗禮에 관한 改新敎의 敎義
1975년 5월호 (제 39호)
다음은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희와·FOC〔신앙과 직제 위원회) 회의에 파 긴된 각 교파 대표들이 동의하여...

개신교에 있어서의 세례
1975년 5월호 (제 39호)
주 예수께서 친히 명령하신 두 가지 성예전, 곧 성만찬식과 세례식은 주님의 명령인때문에만아니라그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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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壇 1975년 5월호 (제 39호)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현존 양식

徐 仁 錫 (전 대건신대 교수, 신부)

II. 예언자들의 비판정신

1. 예언자들의 歷史觀

모든예언자들은 한건같이 자기네 백성이 갖고· 있던 史觀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예언자들의 익 사관과 당시 이스라엔 대중이 전통적 으로 갖고 있던 역사관 간의 현격한 차이점을 노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대.중의 역사관은맹목적이다.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타민족을 모두 배 제하고 이스라엘만이 갖는 유일한 특 전(契約의 ?係)이라는 것이디··. 그 렇지만 예언자들은 비록 이스라엘이 야훼와 유일한 관계를 맺고 있음이 사실이지만,야훼께서 이스라엘 안에 서와 이스라엘에 대해서 취하시는 역 사적 행동은 만백성의 운명과 역사를 모두 포용하는 役事하심의 일부에 불 과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더욱 큰 차이는 예언자들이 傳·承에 대해서 갖는 태도에서 또 나타난다. 그들이 역사를 거론할 때에 대중이 갖는 전승관념과는 크나큰 차이를 드러낸다· 한때는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읍바르고 구원을 보증할 만큼 이상적 이고 우호적이었다고 하는 것이 그들 설교였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이 스라엘 역사의 초기에만 국한된다. 호세아와 예레미아는 모세와 이스라 엘이 사막에서 방황하던 시기에다 두 고,이사야는 다뒷과 솔로몬 시대에 다 둔다, 그 시대가 지난 후 이스라 엘은 곧잘 야훼를 등졌고 예언자들이 등장하기까지의 수세기를 ??恩忘德과 離反으로 일관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좋고 이상적인 시대가지 난 후로는 이스라엘은 오로지 죄악의· 역사에 묻혀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 스라엘의 죄악의 역사를 야훼께서 잠 자코 보고 계시지는 않았다. 그 역사 는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재앙과 비운 의 역사로 바뀌었다. 하느님은 이스 라엘 역사에 수시로 재앙을 보내시면 서 인간들의 回心을 흐소하셨고 전반 적 파국으로 몰아넣을 심판이 닥치리라고미리 경고하섰다. 죄악의 역사 는 동시에 충고와 경고의 역사가 되 었다.

이사야는 이것이 바로 北朝 이스라 엘의 역사라고 설파하였디북조 이 스라엘 역사는 필리스틴 아라메아 전 쟁을 비롯하여 하느님의 성나신 말씀 과 진노에서 온 처벌로 해석된 지진 사건(이사 1, 1)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경고의 역사였다. 이 같은 비운과 재 앙에도 불구하고 백싱은 자기들을.치 시 는' 하느님 께 로 회 심 하기 를 거 부하 였다(이사 9, 7~20; 5, 25~29). 예언자들 은 팔레스티나 역사를 이해하는 두 가지 素因을 제시한다: 하나는 이스 라엘의 죄악이다. 다른 하나는 야훼 깨서 역사상의 비운과,예언자들을 통 해서 끊·임없이 서둘러온 당신의 교육 적 노력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역 사는 결코 ‘구원의 역사,(Heil^eschi-chte) 가 아니다. 현대신학은 이 용어 를 자주 거론하고 여러 가지로 설명 하고 정의하지만, 그 어느 것도 예언 자들이 지녔던 ‘구원의 역사’라는 개 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흑자는,야훼께서는 심판과 구원이 라는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원초적인 救援·i?t劃 (Urewige Plan des Heils)을 미리 세워두섰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것도 예언자들이 말하는 구원 역사관 에는 적용될 수 없다. 물론 원초적인 구원계획을 이야기하는 神託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사야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그 구원계획이 선포되는 文學 類型은 언제나 ?判威脅說敎 (GeH-ohtsdrohung)이지 결코 救援約束說? (Heilsverheisung)가 되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신학은 이사야 서 1-35장에 나타나는一후대에 첨가된 ㅡ설교 부분을 빙거로 하여 하느님으 로부터 원초적으로고정된 ‘구원계획' (Heilsplan)을 논한다. 사실 이사야서 1-35에서 첨가된 부분을 삭제히·고시 8세기의 이사야 설교만을 본다면, 구 원이 처음부터 점지된 무슨 계획처럼 제시되는 일이 없다. 더우기1구 미리 점지된 계획들은 사실상 매우 유동적 이고 상황에 따라 변조될 수 있는 것 으로 해석되고 있다. 예컨대,이사야 는 처 음에 는 아씨 리 아를 야훼 의 役事 의 道具로 생각했었다. 그리나 아씨 리아가 하느님께 버림받은 사실을 확 인하자,과거 소동과 고모라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던 유대인들에게 다시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유대인들 이 회심하면 救濟와 幸福의 가능성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아씨리아 인들이 유대에 부과한 勒Μ을 바치기 만 하면 그 가능성은 이뤄진다. 그런 데 에제키아스왕은 아씨리아에 조공 바치 기 를 거 부했 다. 이 사야는 유대 인 들이 왕의 이 정책에 말려들지 않을 때에 구원이 가능하리라고 설교하었 다(이사 22, 1-4; 32,9-14).

사건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서 변천 한다. 이사야의 이같은 역사관에서는 구세사와 연관시켜 원초로부터 짐지 된 무슨 구원계획을 이야기할 수 없다. 오히려 사건의 변천은 시대적 상 황에 따라 발생하며,이에 덧붙여 하 느님의 決斷이 그 주도권을 잡고 있 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 의결단은개개의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시대 여건에 의해서 따로 그의미가온전히 전도될수도있다.

물론 우리는 역사적 사건을두고서,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 야훼의 한 행 동이 일정한 목표를 향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디-· 그 예로서 모 세오경의 話傳承〔J.E.D.〕은 역사상의 하느님의 행동이 어떤 목적을 향해서 진행되고 있다고 서술한다. 예를 들 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祭官系 史料〔P.〕가 내세우는 성스러움의 祭 儀에 관한 결정적인 成文化作菜一이 작업의 목표는 팔레스티나의 분배에 있었다ㅡ이 있고난 뒤,역사는 '역 사기- 不在,(geschichtslos)하는 상황으 로 전진한다. 이것이 바로 예언자적 종말론이 설정하는 건정적 역시-의 마 지 막 단계 이 다. 그러 나 이 목표를 향 하는 야훼의 행동은 한정된 기간을 갖고 있으며,비록 그 역사가 긍정적 국면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그 결과는 흔히 부정적 일면을 언제나 지니고 있다(그것이 부정직으로 간주되는 사 례로는 왕정시대에 대한 申命 iM 學派 〔D.〕의 날카로운 비판을 들 수 있고, 이스라엘 역사는 곧 죄악의 역사라고 단언하는 예언자들의 판단을 꼽을 수 있다). 때토는 목표를 설정한 역사가 당초부터 부정적 방향으로 질주할 경우도 있다· 전적으로 열망시키리라는 야훼 심판의 위협에 의해서 진행되는 역사가 그것이다. 어떻든 구원의 역 사(Heilsgeschichte)와 죄악과 멸망의 역사(Unheilsgeschichte)는 서로가 평 형을 이루는 지울과도 같다· 더 정확 히 말해서 하느님의 구원 행동과 하 느님 이 결정 하신 멸 망은 죄 악에 의 해 서 압도된 인간의 행동과 서로 밀접 히 얽혀 있다고 하겠다.

역사가 구원으로 방향지워져 있거 니-,멸망으로치닫고 있거나를 막론하 고,역사는 하나의 決斷의 歷史(eine Entscheidungsgeschichte) 임에는 틀림 이 없다. 역사는一예언자들은 現在 를 그토록 중대시했다ㅡ백성 이스타 엘과 인간 개개인이 그때마다 직면하 는 決斷의 狀況에 따라 결정된다· 그 결단은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또 현재 의 순간마다 야훼께로부터 더욱 이탈 (Abfall)하느냐,아니면 야훼께 귀환 (Riickkehr)하느냐 하는 상황에서 진 전된다. 따라서 결단은 언제나 그때 그때 닥치는 ‘現在’ 안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에 있 었던, 우호적 관계로 알려졌던 시대 ㅣ이스라엘의 봄(春)에 해당한다一 를 제외하고 나면,그 결단들은 줄곧 잘못된 결단들이었다. 따라서 이스타 엘은 미련하게도 행운을 놓쳐버린 셈. 이다:

아,네가 만일 나의 계명들에 순명 하였더라면,
너의 구원은 河海와 같았으련만!
그리고 너의 행복은 대양의 파도와
같았으련만! (이사 48, 1)

그러나 이스라엘은 순명하지 않았 다. 그래서 구원의 약속은 실현될 수 가 없었다. 야훼로부터의 이탈과 죄 악의 역사는 불순종으로부터 시작되 었으며, 급기야는 현재의 상황 안으 로 긴박히 다가오는 멸망의 선고를 결정짓게 된다. 다음으로 죄로 물든 그 억사는 한번 더 현재 안에서 마지 막 결단을 촉구하기에 이른다. 새로 제공되는이 마지막 기회의 결단은 이제 결정적인 미래를 초래한다:

만일 너희가 온순하고 순종한다면,
너희는 이땅의 열매를 먹을 수 있 으며,
만일 너희가 거부하고 반항에 고집 한다면,
너 희는 칼에 의해서 먹히리라 (이사 1’ 19 이하)

2. 경신례〔祭儀〕에 관한 예언자 들의 비판

이스라엘의 종교제도에서 敬神禮만 큼이나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례는 없다.. 예언자들은 경선례의 남용을 그 어느 종교에서도 볼 수 없 을 정도로 철저하고 맹렬하게 공격, 비판하였다·™ 대중 신앙이 두호하는 경신례는 야훼께로부터의 이탈이요 이 미 그 자체 로서 하나의 3] 악이 다, 이같은 경선례는 곧 다가을 처벌의 심판을 선고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호세 2, 15). 대중이 애호하는 제단, 石堪, 희생으로 바치는 짐승들이 죄스러운 것들이다(호세 8, 11-13; 10, 1 이하). 神性을 상징한다는 핑계로 造形된 動物像들도 죄스러운 것이다 (호세 8, 44-6).

이런 경신례는 그 자체로 별씨 간 음이요 매음행위다. 그런 경신행위의 결과는 자명하다. 祭儀를 빙자하이 도덕의 문란과 불의가 싹트기 시작한 디-. 음란한 정신은 인간의 전 생활태 도 안에 삼투하여 지 배 력 을 행 사하며 , 처녀들과 부인들은 남자들의 유혹에 정조를 헌신짝같이 버린다. 드디어 神聖娼婦制度가 경신례 안에서 버것 이 자리를 잡는다(호세 4,12-14). 사제 들조차도 祭儀를 미끼로 신도들을 현 혹시키며, ffi 職賣買 (Simonie) 를통해 서 백성을 착취하는 불의를 범하고 있다(호세 4,7-10; 5, 1 이하).

예언자들이 이런 경신례를 거슬리 투쟁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 은 경신례 안에 가나안의 祭儀要素가 살아 있으며,야훼를 像으로 표상하 여 그분을 감각적 이 고도 마술적 인 힘 으로 국한시키려는 질·못 때문만은 아 니다. 오히려 그같은 경신테는 백성 으로 하여금 '형식적인 경신례’(for-malisme du culte)를 하느님께 드림으로써 하느님께 바쳐드려야 하는 봉사 와 홈승의 의무를 다하였다고 믿었었 기 때문이다. 신도 대중은외적이고도 형 식 적 인 儀式 (Ritual)을 배 운대 로 정 확히 거행함으로써,신앙인이 하느님 께 다해야 하는 順命을 온전히 실천했다고 믿고 있었다(이사 29, 13 이하). 따라서 대중은 될 수 있으면 자주 제 .사에 참여하고 많은 헌금과 봉헌물을 드림으로써 안정과 만족감을 찾게 된 다. 그들은 하느님이 마치도 바쳐진 禮物과 Μ獻物의 노예라도 되신 것치 럼 생각하였다. 경신례의 남용을 가 장 신랄하게 공격한 예언자는 아모스 이 다(아모 4, 4 이 하)·

그리고 예언자들이 분노를 터뜨리 고 비판을 촉구한 경신례외 또한가 지 특성은 야훼께서 제시하신 倫理的 要請을 완전히 무시하였다는데 있다. 백성은 야훼의 윤리적 요구를 도외시 하고, 경신례 혹은 돌로 세워진 성전 에서 야훼의 보호와 그분과의 우정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점을 맹렬히 공격하는 예언자는 예레미아 이다(예레 7,1-15).

그리하여 예언자들은 경신례에 버 금하는 윤리적 요구를 주창하게 되었 다. 다시 말해서 윤리적 요구가 마땅 히 일상생활의 근본자세를 규정하고 그것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모 5,21-24).(6) 그리고 경신례가 救 援의 道具가 될 수 없다는 원칙에 입 각하여,이사야는 단호히 경신례직 형 식주의를 거부하기에 이른다(이사 1, 10-17).

그러나 예언자들이 경신례 그 지-체 를 거부하거나 祭儀의 의의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 당시 이스라 엘의 경신례를 규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일상생활의 기본자세에서는 야훼의 뜻을 거부하고서도, 제헌만을 중대시하는 이른바 형식에 얽매인 경 신례는 그 자체로 이미 하느님을 거 부하는 不敬의 죄이다. 이 불경의 죄 는 백성을 멸망으로 몰고 간다. 따라 서 이런 모순 안에서 一倫理的 要求 와 形式的 祭儀 사이의 이율배반ㅡ 경신례는 결코 다가오는 심판을 저지 하는 데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이 주창하는 참다운 경신례 는 이렇다 : 인간은 聖所에만 국한하 여 야훼를 찾아나설 것이 아니라,善 業을 실천함으로써 그분을 찾아야 하 며(아모 5,4-6. 14 이하), 생활과 경신 의 이율배반적인 제사를 통해서가 아 니리- 法과 正義를 일상생활에서 구체 적으로 실행에 옮김으로써 야훼를 찾 아나서 야 한다(아모 5, 21-24)는 것이 다.

?由主義 신학사상에 젖어 있는 주 석가들은 예언자들이 경신례에 가한 비판을 오해하였다. 즉 이들은 예언 자들이 모든 敬神禮와 祭儀에서 근본 적으로 해방된 ‘倫理的 宗敎’〔kult-freie ethische Religion〕만을 옹호하였 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입장이 오늘날의 성 서연구에서 오류임이 밝혀졌다. 예언 자들이 경신례를 비판하고 공격하였 지만, 결코 敬神禮와 倫理를 대립시 킨 것이 아니다. 경신례를 도외시하 고 오직 윤리적 종교이상을 중대시하 는 사조는 오히려 이스라엘 지혜문학 (Ecole de Sagesse)의 사상이었다. 예 언사상이 윤리적 요구를 강조한 것은윤리가그지-체로서 가치가 있다 거나율법에 의거한 구속력을 갖기 때문이 아니라,오히려 윤리적 요구의 실현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인간에 게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표현되기 때문이었다. 윤리적 요구 뒤에 하느님의 뜻이 숨어 있으며 또 인간이 그 요구에 순종함으로써 하느 님 앞에 신앙하는 인간의 근본 태도' 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앙인은 윤 리요구를 실현함으로씨 하느님의 至 上統治植을 인정하게 된다는 말이다.

실상은 이 근본 자세가 예언자들의 경신례에 대한 비판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예언자들이 경신례를 맹렬히 공격한 것은,그 형식 위주의 경신례 가 하느님을 속이는 사기와 기만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백성이 그의 하느님을 신앙의 영역으로부터 소외시킨 처사이며, 하느님이 각 신 앙인의 마음까지도 지배하고,. 마음의 소산인 윤리까지도 지배하시는 분임을 무시한 셈이 된다. 하느님의 본뜻을 무시한 경신례의 거행은 예배받으시 는하느님을 단순히 인간의 사악한이 기심의 노예로 삼을 뿐 아니라, 이는 가장 교묘한 偶像崇拜의 일종으로서 야훼 를 우상으로 격 하시 키 는 소치다.

참다운 경신례가 가능하게 되는 유 일한 조건은 법과 정의를 실행하는 인간의 올바른 윤리적 행동을 반드시 요구하고 있다〔미케 6, 6-8). 禮가 그것 의 禮節(Rubrica)에만 국한된다면,그 禮는 敬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 背逆하는 것이다. 信心이 오직 형 식적인 전례생활에 한정되고 실생활 안에서의 사회정의를 도외시한다면 그 런 신심은 단죄받아 마땅하다. 예언자 들은 그런 경선례를 단죄하고 回心, 法逝, 正·箱를 신도대중에게 요구하였 다. 마음으로부터 동의하고,양심이 요구하는 바를 실행해 가며 거행하는 fe는 聖·s과 眞理로 바치는 경신례이 다(요한 4장 참조)· 예언자들은 경신례 (Kultus) 와 윤리 (Ethos) 가 그 자체로 서 무조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았 다. 이것들이 가치를 갖게 되는 근본 이유는 야훼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성 립되며 야훼만이 경신과 윤리 안에서 신앙인의 믿음, 희망, 사랑의 대상이 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 들이 당시의 경신례를 비판한것은 징 신례를 미끼로, 불신앙하는 인간이 하 느님의 뜻과 그뜻에 순종하기를 거부 하고,자신의 이기심 즉 안녕피- 일시 적인 행복,배부름을 추구하였기 때 문이었다.

이 때 인간은 자신의 이기심에 하느 님의 뜻을 굴종시키려는 잘못을 범하 게 된다. 예언자들이 선업, 정의, 법 도를 실천하도록 호소한 이유는 이같 은실행을 통해서 인간이 근본적으로 야훼의 지배하에 있음을,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그분의 被造物임을 승인 하는 標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에게 경신례가 가치를 갖 게 되는 조건은 이렇다: 하느님의 절 대 통치권과 하느님 생명의 공동영위CRegnum Dei〕가 인간의 진 생활을지 배하는 理想이 되고, 또 예의 理想 때문에 인간이 실생활에서 이웃에게 정의와 사랑을 실천한다면,경신례는 이 때 하느님의 절대주권을 승인하는 신앙인의 표지가 된다. 이와 같은 경 선례는 야훼의 초월하심과 임위를 진 정으로 홈숭하는 祭儀가 됩 수 있다. 오직 그런 신앙인의 경신례만이 야훼 깨서 즐겨 받으시는 제헌이디-. 왜냐 하면 그 신앙인의 생애는 야훼의 뜻 에만 지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배시기 이전의 예언자들 중 한 사람도 올바른 신앙인의 경신 례 가 이 러 저 러 해 야 한다고 구상하거 나 그와 같은 경신태를 조직한 일은 없다. 언뜻 보기에 예언자들은 당시 의 이스라엘에게 참다운 경신례를 조 직하는 일이 시기상조이거나 무의미 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것은 백성 이 하느님의 윤리척 요구를 준수하여 그분께 진심으로 회심하지 않는 한, 전례 쇄신과 참 신앙인이 갖는 경신 례 조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들 이 보았기 때문이다. 참 신앙인의 경 신데가 가능하려면 먼저 회심이 선행 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예언자들은 당시의 경신례를 改·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먼저 하느님의 뜻에 진적으로 歸依하여 헌신할 것을 호소하였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바벨의 침공으 로 멸망하였다(B.C 587/6년). ≪Ο년 이스라엘 社稷의 종언과 더불어 성진 도,사제도, 제헌도’사라졌다· 심판을 받은 다윗 왕조의 백성은 일부 바벨 로 流刑갔다.

이 시대의 위대한 예언자는 에제키 엘이었다. 그는 사제로서 예언자가 되었다.(7) 이제 에제키엘은 야훼로부 터 마음과 S과 진리로 바칠 새로운 경신례를 조직할 사명을 받는다. 에 제키엘은 심판과 유형으로 淨化된 이 스라엘만이 야훼께 드릴 수 있는 진 실한 경신례를구상한다(에제 40-88장). 시편 51 (Miserere)편이 노래하는 '새 로운 제 사’ 는 분명 에 제 키 엘 의 제 자 들이 창안한 理想일 것이다.

새 이스라엘의 경신례도 먼저 '당 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당신와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는 기도의 바램이 실생활 속에서 실천될 때 聖靈과 眞 理 안에 거행되는 전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예언자들의 法精神파 社會正義

(1) 法精神…

예언자들의 법정신은,현대적 용어 로 표현한다면,일종의 法哲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法秩序(Rechtsord-mmg)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표명하 였다. 그들은 법질서에 대한 輕視와 犯法行爲를 가차없이 비판 공격하였 다. 야훼의 종교를 수호하던 예언자 들의 눈에는 그같은 경시와 범법이 단지 윤리적 정치적 퇴폐풍조를 조성 시 키 는 데 서 그치 지 않고 죄 악을 조장 하는 것으로 비쳤다. 법을 제정하시 고 두호하시는 야훼 그분을 멸시하는 짓이요, 범법은 그 자체로 이미 야훼께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게 ㅣ된다. 하느님 이 法과 正義를 세우셨다. 따 라서 누구든지 법을 경시하는 자는 법을 세우신 야훼를 경멸한다는 方稱 式이 된다· 더우기 적어도 3寺篇의 사 상에 의하면,법과 정의는 신앙인과 야훼의 연대책임하에 수호되어야 한 다.”) 그러므로누구든지 법을경시한 다면 그는 이미 내심으로 야훼께 대 한 신앙과 신뢰를 포기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至上權ㅡ이 주권은 야곱에 서 시작하여 세상 극변에까지 이른다 (시편 135, 4)ㅡ및 하느님 生命의 共 同營爲를 포기하고 결국 외면하는 것 , 이다(예레 23, 4-6; 이사 11, 1-9). 

예언자들이 각별히 통박하는 범법 행위는 당시 이스라엘의 지배계급과 부유층이 저지르는 악행이었다.

특권층과 부유층은 상거래에서 사 기를 일삼고 축제일이 오면 속이거나 장사속을 차리며 축제의 본 정신이 요구하는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다(아 모 8, 4-7). 그들은 법과 정의를 혐오 하고 살인과 不敬만을 저지른다(미케 3, 9 이하:). 그들은 법정에서 진실된 증언을 하는 자들을 가장 꺼리고 자 기들의 利權을 침해하는 자를 항상 증오한다(아모 5,7. 10 이하:!· 또 그들 은 뇌물을 받고서 죄 있는 자를 풀어 주고 무고한자는 단죄한다(이사 5,23).

그런데 질서 있는 사회생활이 가능 키 위해서는 그 사회에 통용되는 법 질서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예언자들은 反律法 노선을 주창한다. 처음으로 Τ 를 주창한 예언자는 아모스다. 추운 겨울을 날 유일한 재산〔의투)을 합법 적인 담보로 가난뱅이에게서 차압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부유 층이 법질서를 빙자하여 가난한 자의 생존권마저 탈취하거나,빚을 못 갚는 다해서 그를 노예로 삼는 것은 부당 하다(아모 2, 6-8〕. 당대 이스라엘에서 통용되던 상거래법에 의거하면 채무 를 갚지 못하면 자기 생존을 좌우하 는 소유물을 담보로 내주거나 그에게 종살이를 하겠다고 나서는 길밖에 없 었다. 예언자의 말은,비록 이같은 法條文이 통용되고 있을지라도 부유 층이 이 법질서를 그대로 강행한다면 그것은 죄악이라는 것이다. 법을 문 자 그대로 해석하는 율법주의는 법정 신과 그의의를 도외시하는 狀況倫理 論이다."ω 웁법주의자들의 죄과는 법 을 문자그대로 시행하고 법정신을 도 외시하여 자신의 惡心과 利已心을 은 폐시키는 데에 있다:

이 백성은 말로만 내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들의 입술로만 나를 영화롭게 하도다.
반대로 그들의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내게 대해서 표시하는 그들의 두려움은
겉으로만 중얼거리는 인간의 계율 에 불과하도다. (이사 29, 13J)

법질서의 테두리에서도 하느님 야 훼는 인간이 전적으로 당신께 服屬하 고 당신에게만 헌신하는 자가 되기를 요구하신다. 외적인 법준수와 형식적 인 준법정신은 결코 상찬할 것이 못 된다. 법준수가 가치를 지니려면 하 느님의 뜻을 추종하려는 기본태도와 연결되어야 한다.

“정의여,이루어져라! 세상은 망 해도 좋거니 ! "(Fiat justitia, pereat mundus!) 하는 주장은하느님이 인간 을 ‘위해서’ 세우신 법정신에 전직으 로 위배된다.

이런 뜻에서,현대 국가들이 불란 서 혁명(1789년) 이후에- 비로소 발견 한 ㅅ權擁護를 예언자들은 이미 기원 전 8세기부터 부르짖고 있었던 것이 다. 그들이야말로 ㅅ權한 Μ 의 초석을 놓은 자들이다.

예컨대 이사야서 1,16-17을 보면 을바른 법정신이 무엇인가를 서·술하고 있는데 법정신의 근본요구를 모두 내 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희는 악을 행하기를 그쳐리-, 선업을 행하기를 배우라! 법과 정의 (mis phat)를 추구하라, 압박받는 자를 도우라 ! 고아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 주라,

과부의 송사를 두호하타 ! 고아와 과부는 압박받는 자들의 상 징이다. 그들의 권익을 비호하는 일 은 본래 국왕의 임무이다. 하무라비 법전(Rev. XXIV, 60 이하), 우가틸 텍스트(Aqht I, 23-25; II Aqht V, 7이하; 127,33 이하, 45-47) 및 시편 72, 2.4 등이 예의 임무를 천명하고 있다. 그 러나 국왕에게 고유한 이 임무는 ‘이 웃을 발견하게 만든’ 출애급사건으로 말미암아 民主化하여 모든 이스라엘 인들에 게 전 반적 으로 부여 되 었 다(출애 22, 20-23; 비교 :신명 10, 18; 24, 17이하27, 19). 이사야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 아가 새로운 법정신의 向方을 제시한 다. 그의 근본 요구는 이렇다: "善業 을 행하라! 그리고 악을 피하라 ! ” 이같은 요구에 비할 때에 법정신의 개별 준수(과부와 고아를 두둔하는 일 등)는 뒤따라오는 細部守則에 불과하다.

예언자들은 고래로 전해오는 세세 한 법준수의 범례들을 거론하는 대신 에 전인격의 앙가쥬망올 요구하는 법 의 기본요구를 중점적으로 천명한다: "선업을 행하라 !”는 법의 지상명령 이다. 그리고 그 요구는 일상생활의 근본태 도에 서 구체 적 으로 관찰되 어 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법정신의 부 정적 측면은,법을 세우신 야훼께서 내리시는 권선징악의 심판 원칙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기본되는 법정 신율 외면하였다. 그리하여 예언자들 은 법정신이 외면당한데 분개하여 율 법주의와 겉치레로 그룻 제정된 법조 骨과 법적용을 신랄히 비판하기 시작 한다. 법정신을 도외시한 법제정과 해석은 인간의 邪心이 낳은 악법에 불과하며, 법의 내용을 공허하게 만 들따름이다. 書士들의 날쌔고재치 있는 붓끝이 야훼의 참뜻을 거짓으로 조작한다(예레 8,8). 그리하여 악법이 成文化되어 뻔뻔스럽게 국가사회에 자리잡는다:

예 레 미 아는 '하느님 의 참뜻’ 을 내 세워 그같은 악법에 항쟁한다. 성문 화되어 반포되는 그 많은 법조문들은 관리들이 쉴새 없이 국왕의 이름으 로 반포되기는 하지만 실상은 오로지 백성의 짐을 더욱 무겁게 하고 정당 한 그들의 법적권리 (Rechtsanspriiche) 를 박탈할 따름이다: 붙의한 법령을 반포하는 자들에게 저주 있으라,압박을 위한 칙서를 반포하는 자에 게 저주 있으라 !

그것은 그들이 약한 자들의 정의를 박탈하고,
나의 백성의 가난한 자들의 권리를 남용하고,
과부들의 몫을 자기들의 전리품으 로 삼고
고아들을 수탈하끼 위해서 그렇게 하는도다.
심판의 날에 너희는 어떻게 처신할 것이며,
불행이 멀리서 닥쳐올 때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누구에게로 피신하겠느냐?
그·리고 너희는 너희 재산을 어디에 도피시키겠느냐? (이사 10, 1)

이러한 악법에 비해서 참다운 법은 매순간의 現在一이 현재는 全ㅅ의 獻身을 요구하는 앙가쥬망을 전제하 고· 있다ㅡ에서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뜻을 추종하는 일이다. 하느님께 헌 신하는 가운데 인간은 법ㅣ의 기본요구 가 무엇임을 깨닫기에 이르며,이미 반포된 법을 책임과 인격적 결단을 통해서 준수하게 된다.

그러나預言文學과, 예언자들의 영 향을 각별히 받은 申命記에는 법질서 를 능가하는 4사랑의 계명,이 있다는 사상이 등장한다(신명 6, 6 이하참조 : 레 위 19, 7-18). 그것은 법질서만이 인간 의 사회 생 활을 지 배 할 수 있 고 지 배 해 야 한다는 생 각을 시 정 한다. 법 과 사랑이 공동으로 인간의 공동생활을 규제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예인 자들의 기본사상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 정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들의 법정신이었다.

(2) 社會正義(11)

사회정의에 관한 예언자들의 테에 마는 그들의 법정신을 보완하는 것이 다. 오늘날의 세계가 특히 관심갖는 사회학의 문제제기는 기원후 19세기 서구사회에서 여러가지 사건으로 발 생했던 사회문제를 전제하는 것이다. 사회문제가 제기되는 양상을 보면 기 성사회질서가 19세기에 붕괴하였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20세기에 와서는 새 계급이 등장하고 또한 기술과학의 공업 화로 새 시 대 가 시 작되 었 다는 데 로 방향을 잡고 있다. 사회과학자는 사회생활을 움직이고 있는 기본원칙과 근본법칙을규명하려 든다. 그러나 흔히 그들은 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진 전되어야하며,문제의 해답이 어떻 게 표명되어야 하느냐에는 그다지 진 지한 연구를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보통으로 사회문제를 거론할 때에 실친직,정치적 측면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에서는 인생의 역사적 차원과 생활의 근본태 도가 심한동요를 겪고 있다. 과연 참다운 인생이 북쫓아야 하는 원리가 어디에 있을까? 구약성서는 이같은 사회 문제 에 적 많은 빛 을 던 져 준디-. 왜 냐하면 구약성서 자체가 인간의 사회 생활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많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성 서가 제공하는 사회학적 소재를 여기 서 모두 취급할 생각은 없다·“2)

우리는 단지 기원전 8세기 이후의 대예언자들이 사회과학의 큰 주제 중 의 하나인 社會正義를 어떻게 천명하 는지 살펴보고자 할 따름이다.

모세 종교에는, 출애급의 사건을 계기로 하여, 근본적으로 ?ㅅ平^의 사상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웃을 발 견하게 한” 출애급 사건으로 인해서 누구에게나 균등한 재산과 않을 향유 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 르고 이스라엘에 王政制度가 도입된 후 두 가지 사회문제가 제기되었다. 즉 이스라엘에 사회계급의 격차가 반 생했으며, 계급간에 긴장관계가 조성 된 것이다. 사회의 이같은 변혁은 물 론 역사적 소인에 근거하고 있다. 이

스라엘 사회가 아직도 일종의 지역사 회 또는 씨족사회를 이루고 있을 당 시에는,각자가독립하여 자기 생존의 ?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경 제문제는 그리 중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왕정제도가 수립되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 사회도 자연경제에서 화폐경제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근동의 국가체제를 도입 한결과 자연히 文化革命이 일어난 것이며, 가히 지난 세기의 産業革命 에 비길만한 커다란 변혁이었다.

당시만 해도 商去來와 貿易은 국왕 이 독점하였고 交揚에서 얻는 수익은 왕국건선이라는 목적에 이용될 따름 이었다· 솔로몬은 그때까지 이스라엘 에서만 볼 수 있었던 국민이 선출하 여 세운 군주제도를 당대의 근동사회 에서 통용되던 절대군주제도로 변경 하고 세습제까지 도입하였다. 그리하 여 신하들의 이익을 왕가의 권익과 행복에 예속시켰고,드디어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政制度를 설립하 였고, 왕국의 제반 土木工事의 부역 에 백성을 동원하였다. 그에 병행하 여 화폐경제에 편승하여 형성된 소수 의 부르조아 계급이 특권층으로 등장 하였고,국왕의 상거래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들은 단시일에 권세와 부 를 독점하고,국민 대중의 재산을 탈 위하면서 자기네 사유재산을 확장해 갔다. 우리는 예언자들의 설교에서 이런 현상이 8세기에는 거의 일반화 되어 있었음을 알아볼 수 있다.

또 그 문제와는 별도로 이스라엘에 는 8세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항상 '번 곤의 문제’가 있었다. 사회에 가난한 자가 상존하는 이유는 당사자의 잘못 이나 능력부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달리 태어나기어ㄴ 인간의 다양성에서 오는 사회적 차이 (계급출현의 둘째 요인)를 전적으로 말소시키기는 불가능하다. 가난은 또 비운이나 전쟁의 결과일 수도 있다: 재앙은 한 인간이 쌓고 모은 재산과 업적과 성공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 는 법이다. 인간이 타고난 생활조건 에서 오는 가난도 있으나, 가난한 부 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가난하기 마 련이다. 여기서 무엇 때문에 누구는 부유하고 누구는 가난하며,가난의 구 제책이 꼭서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는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예언자들의 사 회정의에 관한 문제제기는 곧이 두 질문을 바탕으로 한다.

이스라엘에 군주제도가 도입됨으로 써 초래된 화폐경제에로의 전환은 필 연적으로 계급을 출현시키고 계급간 의 긴장을 발생시켰다고 했다. 국민 대중은 소지주나 농민 또는’목축업자 로 남고,소수의 부유층은 왕가의 권 력과 결탁하여 小g과 牧場을 꾸려 사 는 평민의 재산을가차없이 탈취한다. 땅을 때 앗긴 농부들은 새 地主의 ffi 奴가 되 거 나,그곳에 서 쫓겨 나 도읍 으로 옮겨 살며 일종의 무산계급을 형 성한다. 땅을 뺏긴 무산계급은 지금 까지 자기네가 향유하던 시민의 권리

의무마저 박탈당하고,종교 敬神禮的 共 ? 體에 서 도 제 거 되 고,그 모든 권 리는 대지주의 손으로 넘어간다. 그 터므로 그들은 정치, 법률,종교상의 모든 권리를 새 주인에게 이양할 수 밖에 없었다. 대지주는 자연히 세도 를 쥐고 새로 등장한 무산계급에게 위 력 을 행 사한다. 실 상 고대 사회 에 서 지주계급의 등장이야말로 자유의 부 재와 노예제도의 원인이 되고 있다. 드디어 인간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분류된다. 못 가진 대중을 신 하로 지배하는 국왕과 조정, 영광과 존귀와 사치를 마음껏 향유하는 귀족 계급, 대지주계급,巨商,국가 토목 공사에 동원된 기술자, 체제에 편승 한 관리,다소 금력을 확보한 小市民 계급, 이농한 농민의 재산을 착복한 小® 등이 '가진 자’에 속했다.

예언자들은 이와 같은 상황 앞에서 과연 어띤 태도를 취했던가? 사회부 조리를 두고 그들은 어떠한 판단을 내렸던가? 예언자들은 사회과학자가 아니요,금세기의 교황들처럼 칙서를 쓴 일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 도의 교회가 갖고 있는 사회이론이 예언자들의 사상에 크게 의지하고 있 음은 아무도 부인 못 할 것이다.

예언자들은 교역과 생산으로 일어 난경의발전을 부인하거나 문제시하 지는 않았다. 그들이 문제삼은 것은 적은 노동과 노력으로 쉽사리 큰 수 익을 얻는 상황,부당하게 축적되는 자본과 재산이 소수 인간에게 집중되는 경제체제였다. S·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어서 그것을 부 인하지는 않으며,문제는 그 부를 어 떻게 취득하고 사용하느냐에 있다. 재산이 온당한 노동의 대가로 한 인 간의 수중에 들,어가 을바로 활용된다 면 좋다. 그러나 불의한 수단으로 얻 은 재 산,이 익 과 소유욕의 노예 가 되 어 사기와 폭력을 통해서 이웃의 생 존권마저 무시해가며 손에 넣은 재산 이 문제이다. 인간이 자신의 권세욕 과 飽食?衣의 Η昧를 추구하여 재산 을 축적한다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 같은 행동이 규탄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이유에서 예언자들은 호화로운 주택과 장식,화려한의복과 낭비를 일삼는 생활을 조장시킬 부정축재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아모스의 다음 신탁은 예언자의 규 탄의 전형적인 어투를 나타내고있다. 맹렬하고 날카롭고 신랄한 풍자까지 곁들여 있다: 저주있어라,

시온에서 안일을 누리 는 자들에게,
사마리아의 산 위에서 마음이 든든 한 자들에게 !
저주있어리·,만백성의 만물로 자처하는 귀족들에게,
이스라엘 가문의 족장들에게 !
너희는 불행의 날이 멀다 하여 안
일에 빠져 있으니·,
실상은 폭력의 왕국을 재촉하고 있도다.

너희는 상아로 만든 침상에 누워 기지개켜며,
안락의자에서 빈둥거리며 나자빠져 있도다.
너희는. 양때에서 어린 양을,
우리 에서 송아지를 끌어다 처먹고,
비파에 맞춰 허황한 노래를 웅얼거리며,

마치 다핏이라도 된 양, 악기를 만 들어 홍얼거리는 도다.
그들은 포도주를 대접으로 퍼마시 며,
매우 귀한 기름을 온 몸에 처바르고 있도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드디어 유형을 떠날 것이며,
그유형 대열의 선두에서게되리라.
기지개켜는 자의 주지육림과 통음 난무가 이제 끝장나리라!

(아모 6, 1-7) 이사야도 비슷한 신탁을 예루살렘 의 특권층에 설토하고(이사 5, 11-13) 유행의 첨단을 따른다고 부산하던 예 루살렘 귀부인들을 공격한다: 진정 시온의 딸들이 오만불손하기 작이 없으며, 그네들은 목덜미를 길게 떼들고 추 파를 던지면서 하느적하느적 거닐 고 있도다.

그네들의 걸음걸이는 방자하기 이 를 데 없이 아기작거리며, 발목에 방울을 매고 짤랑거리며 거 니는도다.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대 가리에 옴이 걸리게 하실 것이며 그네들의 이마가 대머리가 되게 하 시리라.
그때가 오면 그네들에게는 유향 대신에 악취나는 쓰레기통이, 고운 허리띠 대신으로 포승줄이, 홀날리는 미리카락 대신으로 홀딱 벗겨진 대머리가, 화사한 야회복 대신으로 깔깔한 삼 베옷이 남으리라·….· 그 고운 자태는 간 데 없고 벌겋게 단 쇠붙이에 불탄 상처만 남으리라. (이사 3,16 이하 24)

그렇다고 예언자들이 소박한 유목 민의 생활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도 아니며 削髮入山을 이상적인' 생활이 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낭 비와 사치를 일삼는 생활을 규탄한 것이다. 그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자 면 적 많은 千와 재 산이 요구되 고,그 만큼 착취 와 부정 이 따르기 때 문이 디-. 예언자들이 사치와 허영을 그토록 신 랄하게 욕하고 울분을 터뜨린 까닭은 부정축재로 국민대중이 갈수록 ‘못 가 진 자’들이 되고 또 무산대중을 경시 하는 풍조를 낳기 때문이었다. 또 그 들은 경 제 발전 의 부산물인 사치 생 활 의 폐습뿐 아니라 경제성장 자체가 지닌 문제점을 파헤친다. 이미 십계 명의 열 번째 계명(출애 20, 17)이 ‘이 웃에 속하는 재물을 탐하지 말리-’는 禁令으로써,貪≪의 죄악을 못 박았 다. 이 웃의 재 물을 탐하는 자는 하느 님의 축복에 참여할 수 없다: 이웃의 재물을 거리낌 없이 침범하여 무한정물욕에 젖는다면 그 행실은 단지 인 간관계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도 파괴한다. 그런 탐닉은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뉘 주신 封土ㅡ이스라엘 인들이 부치는 농토는 모두가 Κ高地 이신 하느님의 소유이다(엘리아와나 봇의 정의, 1 열왕 21장)(I3)ㅡ를 혼자서 독점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급기야 사회문제인 계급투쟁을 유발하기 때 문이다.

그래서.권세욕과 소유욕에 급급하 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을 예언자들은 거침없이 규탄하였다. 아 모스는 상인들의 곡물매매에 의한 폭 리를 통렬히 비난한다.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들어라, 가난한 자들을 짓바수는 너희. 너희는 나라의 궁핍한 자들을 짓뭉 기려 하는도다:

‘초승달이 언제 지나서 우리의 곡 식을 팔게 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새어 밀을 내어 다 팔꼬’하며 안달하도다. 너희는 말하기를 '됫박을 속여 작 게 할 것이며, 반대로 그 값은 윤 리고, 저울의 눈금을 지우고속임수 로 저울질할 것이로다,하는도다. 야훼께서는 야곱의 긍지를 두고 맹 서하셨도다.

'나는 결코 그들의 비행을 잊지 않 으리라!, (아모 S, 4-7)
이사야와 미케아는 세도가들이 저 지르는 ft地收用 (Bauernlegen)의 부 정을 비판한다.
지주 있어라,
가옥에 가옥을 불려 가지고, 전답에 전답을 더하여 자기 것으로 하며,
이 땅에 남아 있는 농토가 하나도 없게 함으로써
홀로 그 가운데 거히·려는 자에게 ! (이사 5, 8)

저주있어라.
그들은 침상에서 악행을 획책하며 날이 새기가 바쁘게, 권세가 그들 의 손에 있기에,그 악랄한 계획을 실천하는도다.
그들은 밭이 있으면 탐하여 빼앗고 집들이 있으면 곧 탈취하는도다. 그들은 폭력으로 그 주인과 더불어 낚아채가고
사람을 그의 유산과 더불어 약탈하 는도다. (미케 2,1-2)

당시 이스라엘의 지배층은 그곳을 점령한 외국 군대보다 더 가혹한 수 법으로 나라 백성을 수탑하였다. 하 느님은 이사야의 입을 빌려 그들의 수법을 고발하신다: 너희는 포도원을 폐허로 바꾸었으 며, 또 가난한 자들에게서 약탈한 재물 이 너희 집에 쌓여 있도다! 무슨 권리로 너희는 나의 백성을 짓바주었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을 짓밟고 짓밟았는가 ? (이 사 3,I4b-15)

미케아는 더 기괴한 표현을 구사하 여 지배계급의 악랄한 행실을 공박한다:
너희는 내 백성의 살을처먹었도다.
내 백성의 껍질을 벗겼으며
뻑다귀는 바수어 버렸고
내 백성의 살을 살코기처럼 찢어
남비에 집어넣고
작은 솥에다 살점을 부글부글 끓였도다- (미케 3, 3)

이 모든 설교에서 예언자들이 노린 것은 경제적으로 약세에 내몰린 가난 한 자들의 권리(法)를 옹호하는데 있었다. 가난한 자들을 상징하는 인 간 부류들은 과부와 고아와 뜨내기들 이었다. 예언자들은 새로 도입된 경 제체제의 발전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전대미문의 가공할 法과 正義의 破徒 을 규탄했다. 자연경제 가 화폐 경제 로 전환되었다고 해서 농민들의 농지를 수용해 가거나 고리대금이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그것으로 농민들을 소 작인과 농노로 격하시킨 다음에 이스 라엘인 동포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의가 정당화할 수는 없다· 경제성 장이라는 명분이 무산대중의 생존권 과 재산을 박탈하는 것을 정당화 못하 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이 경제성장의 염원과 필요성에 선행하며,인간 기 본권과 생존권은 모든 재물의 가치를 능가하는 까닭이다· 인간 실존이 위 태로와지면 사회의 존속마저 위협당 하므로 경제정책은 어느 경우에든 경 제적으로 소외되고 무력한 무산대중 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옹호하지 않으 면 안된다.
경제정책이 이 권리를 침해한다면 가차없이 분쇄되어야 한다. 예언자들 의 공격은 소수의 특권층이 토지와 농지 를 독점 하는 그 자체 만이 아니 라, 그 독점으로 말미암아 경제사회의 富 의 根幹을 대중에게서 박탈하고 그들 의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일이다.

혹자는 예언자들의 이런 입장을, 니체의 주장대로, 奴諫蜂起의 선동이 라고도 하겠지만, 그들은 결코 노예 제도에 항거하는 대변인들은 아니었 다. 물론 약자와 무산대중의 권리를 그들이 대변한것은사실이나,그들의 처신의 동기는 어디까지나 하느님과 그분께대한신앙에있었다. 박탈당 한 그 권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상실될 수 없는. 천부의 권리이기 때 문이 다.

사회부조리에 대한 예언자들의 비 판과 항거를현대인의 정치적, 감정적 색갈로 채색함 수는 없다. 그들이 비 판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 지도계급에 촉구한 정의는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의거하여 주창한 것에 불과하다.

또예언자들이 부르짖은 사희정의 는 결코 唯物史觀에 의해서 해석될 수도 없다. 그들이 사회 경제적 제도 가 산출한 계급의 등장과 부수해서 정의를 착상하였고 또 그들의 말이 계급투쟁을 유발시킨 원인이 되고 있 는 양 이해해서도 안된다. 예언자들 이 그 시대의 상황과 사회부조리에 대해 자기 나름의 입장을 취했으나 그것이 곧 예언자 출현의 동기나 이유는 아니디-. 더구나 그들의 사회적 신분은 프롤레타리아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목장과 농토를 소유한 지주계 급, 중산계급이었다. 또 그들이 계급 의식에서 사회적 긴장을 조장하거나, 프롤레타리아에 편들어 부유층에 대 항해계급투쟁을 전개한 일도 없었디-· 이사야가기대하던 바는 프롤레타 리아 독재기- 아니었고 현 지배계급이 복귀하여 국가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이사 1,26-27). 지배계급을 숙청한다 고 이상국가가 서기는 고사하고 무정 부상태를 초래할 뿐이며, 그같은 상 태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오는 全滅읍 가져온다(이사 3, 1-9).

사회부조리에 대한 예언자들의 발 언은 그들의 신앙에 근거한 것이며, 항상 자기들의 종교적 윤리적 태도에 지배되고 있디-. 예언자들에 의하면, 사회 운동은 곧 종교적 행 동을 의 미 하 고 하느님 친히 서두르시는 澳化를 뜻한다. 그러므로 경건한 신앙인은 사회적으로 사고하고 사회적으로 처 신하는 인간이다: 사람이 만일 의로와서 법과 정의를 따라 행동한다면, 산꼭대기에서 음식을 들지 않고G. 우상숭배) 이스라엘 족속의 쓰레기들(ㅡ우상) 을 향해서 눈을 들지 아니한다면; 이웃의 아내를 범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 하며,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고,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도로晋려주고, 약탈하지 아니한다면; 그리고 만일 사람이 굶주리는 자에 게 자기의 빵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음 옷을 나뉘주며, 고리대금으로 돈을 ?-리지 아니하 고, 이자를 받지 아니하머, 스스로 손을 삼가하이 범죄하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올바른 판건을 내린 다면; 만일 사람이 내 계명을 지키며 나의 법도를 유의하이 처신한다면, 그렇게 '행동하는 자는 의로운 자이 다.

그런 자는 정녕 살아 남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에제 18, 5-9) 그러므로 바른 신앙인의 행동 구별 은정의와 사랑이다. 사랑과 정의가 그 인간의 전생애를 지배해야 한다. 사막에서 방랑하고 가나안을 정복하 던 시대의 씨족사회는 공동체의 이같 은 법도를 확고히 지니고 있었다. 이 스라엘 공동체의 성원-&은 모두 평등 하였고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 의무를 공동선에 입각하여 행사했다· 정의는 그 공동체의 기본법이었고,출애급의 체험을 계기로 하여 사랑은 곧 ‘이웃 사랑’으로 이해되었다(레위 19,18). 그 러던 사회가 화폐경제가 도입되고 그 것이 그룻 운영됨으로씨 파국에 들어 갔다. 예언자들은 정의와 사랑에 입각한 하느님의 본뜻을 따라서 인간의 전생에륨 다시 복구하려고 하였다.그· 태서 그들의 메시지는 인간의 구원만 이 아니라 現(Mr福祉에도 관심을 갖 는다. 로랭땡,(R. Laurentin)의 말대 로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救援과 開發 을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14) 하느님 을 위해 決斷한다는 것은 곧 이웃사 람에 대한 을바른 處身을 의미한다. 인간이 멸망의 심판을 면하는 길은 하느님께 바치는 祭儀가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행하는 올바르고 정의로운 사회적 처신이디-(이사 1,10-17).

하느님의 편에 선다는 결단은, 예 언자들의 사상에 의하면,일차적으로 어느 공동체가 이룰 과제가 아니고, 민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인격적 앙가쥬망에 의해서 이뤄진다· 하느님 의 공동체 (Gottesgemeinde)는 敬神禮로 규합되는 공동체가 아니고, 은총을 힘입어 回心과 救續을 얻은 개개인들이 구성하는 공동체이며.,인 간의 마음에 ■刻印된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유지 보존된다(예대 31, 31-34). 그같은 공동체가 형성되는 유일한 조 건은 각개인이 자기 존재를 하느님께 로만 방향을 정하고 있을 때이며,사 회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유 거된다.

에언자들의 '정열적인 호소가 있었 건만 가난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 제 나 인 간을 위 협 하는 적 으로서 사회 에 존속한다.

그렇다면 구약성서와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이 사회문제를 그지 인간들 의 손에만 맡긴 것일까? 과연 사회 문제 는 사회 학자의 손에 방치 해 야 하 는가, 아니면 세상의 不a란 하느님 의 창조가 불완전히-기 때문일까? 사실 사회긴장과 부조리는 언제나 인간의 의지 여하에 달려 있디-. 문제 는 그 인간이 난폭하고,분쟁과 시기 와 균열과 경쟁의식 속에 타락되어 있다는사실이다. 인간학이 제기하는 倫理惡의 실재성은 오늘날 윤리신학 뿐만 아니라 행동과학에서도 중대시 하고 있디·. 단지 사회학자들이 거의 가 이같은 학계의 동향을 자기네 분 야와 교육과정에 일반화시키고 있지 못할 뿐이 다.

사회긴장과부조리 및 계급투쟁의 원인은 죄스러운 인간의 現存樣式에 있으며, 개개인의 속마음에 군림하고 있는 악의 세력에 있다· 악은 하느님 앞에 선 인간과세상을 피로 물들이 고 있으며 腐敗의 連帶性에로 그것들 을 휘몰아간다. 그러니까 예언자들의 투쟁목표는사회개혁이 아니었다. 그 들은 이러저러한 개혁을 하면 새로운 인간관계가 수립되고 新ㅅ問이 창조 되리라는 주장을 결코 신임하지 않았 다. 인간개조를 도외시하는 제도상 의 사회개혁은 오히려 무서운 파국을 초래한다는 것이 예언자들의 건해이 다. 성서와 예언 사상이 겨냥하는 목 표는 인간이다. 인간이 먼저 개조되 고,인간 속에 자리잡은 악의 세력 (das B6se)이 극복되어야 한다. 그래

야만 비로소 인간이 하느님 앞에 ‘가 난한 자,가되고 겸허하고 헌신적인 사람이 된다. 하느님 앞에 가난한 인 간은 경 손하게 그분께 가까이 가며 오로지 그분께만 영광을 돌려드린다. 그는 하느님이 미천한 자기를 도우실 것이며 위대한 힘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신뢰를 갖는다, 하느님께로의 回心, 또는 하느님에 의한 구속一예 언자들이 애점하게 호소하던 것이 바 로 이것이다一이 한 인간을 탈바꿈 한다, ■그리하여 내면의 인간개조를 체험한 인간은 새로운 인간이 된다. 진심에서 신앙하는 그 현존을 일상생 활에 실현하면서 i?化를 향하여 生.을 영위한다. 새 인간은 하느님의 절대 주권을 승인하는 한 개의 작은 섬치 럼 大洋 안에 자리잡는다. 이 섬은 또 다른 섬들과 교통을 이루기 시작 하여 드디어는 대륙에 닿는다. 신앙 을 통해서 생활하는 이같은 구원의 연대성이 조장하는 움직임은 드디어 사회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창조하고, 환경과 구조를 변혁하기에 이른다. 신앙하는 인간은 사회적으로 사고하 고 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결 코 개 인 주의 자가 아니 다. 그는 신 앙을 통해서 이웃을 만나게 된다. 이 웃은 단지 그에게 귀찮은 존재가 아 니고, 정의와 사랑 안에서 만나는 이 웃이 다. 이 리 하여 인 간개 조는 사회 정 의구현의 척도가 된다. 예언자들의 사희정의 사상은 이처럼 법질서를 능 가하며 동시에, 사회정의는 법질서를 이웃사랑의 명분으로 보완하고 있다. 이웃을 만나는 신앙인은 정의를 통해서 반드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까 닭이다. <次號에 繼續〉

(4) G.F. Allen, The Prophetic Interpretation of History, ET 51(1939/40),454-457; G.H. Davies, The Yahvistic Tradition in the Eight-Century Prophets, in: Studies in Old Testament Prophecy, Th.H. Robinson-Festschrift, 1950, 37-51; G. Fohrer, Prophetie und Geschichte, in: Studien zur alttestamcntlichen Prophetie(1949-1965), 1967, 265-293; J. Hempel, Die Mehrdeutigkeit der Geschichte als Problem der prophetischen Theologie, 1936; O. Procksch, Die Geschichtsbetrachtung bei den vorexilischen Propheten, 2902; A. F. Puukko, Die Geschichtsauffassung der alttestamentlichen Propheten, in: Actes du XX Congres International des Orientalistes, 1940, 296; J. Rieger, Die Bedeutung der Geschichte fur die Verkiindigung des Amos und Hosea, 1929; H.W. Wolff, Das Geschtsverstand-nis der altiestamendichen Propheten, Gesammelte Studien zum Alien Testament, 1964, 28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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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f. L. Monloubou, Un Pretre devient Prophete: Ezechiel, LD 73,Paris 1972.
(8) A, Causse, Les prophetes et la crise sociologique de la religion d,Israel, RHPhR 12 (1932),93-140; H. Donner, Die sozialc Botschaft der Propheten im Lichte der Gesell· schaftsordnung in Israel, Oriens Antiquus 2(1963), 229-245; E. Gillischewski, Die Wirt-schaftsethik der israelitischen Propheten, Jb fur jiidische Geschichte und Literatur 25(1923/ 24), 32-61 ; Η. J. Kraus, Die prophetische Botschaft gegen das soziale Unrecht Israels, in: Biblische-thcologische Aufsatze, Nculurchen-Vluyn 1972? 120-133,
(9) 서인식,븍수와 저주의 시편, Γ신학전망」,23(1973), p. 111 이하.
(10) Β. 헤링,狀況倫理,ㅣ'신학전망」22(1973), 42 55.
(11) G. Fohrer, "Das soziale Leben”,in: Theologische Grundstrukturen des Alten Testaments, Berlin 1972,231-250.
(12) R. Laurentin, "Les droits des pauvres dans la Bible et dans la tradition", in: Deve-Joppemeni; et salut, Paris 1969,p. 109-133.
(13) cf, G. Fohrer, Elia, 1968(EUa, in: Geschichte der israelitischen Religion, Berlin 1969, 229-231),
(14) cf. R. Laurentin, "Pourquoi le developpement concerne le salut",'in: Developpement et Salut, Paris 1969,151-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