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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는 평 화를 향한 길
1975년 3월호 (제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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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會內 和解에 관한 ?皇勸告
1975년 3월호 (제 38호)
- 1975 로마 聖年에 즈음하여 존경하올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건강과 사도적 축복을 보냅니다. ...

인권선언일에 즈음하여
1975년 3월호 (제 38호)
이 글은 필자가 1974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선언일,에 서울 명동 기도회에서 행한 강론의 全文이다. ...

한국교회와 음악
1975년 3월호 (제 38호)
한국에 가톨릭 교회가 창선된 이후 약 200년의 세월이 홀렸다. 그동안 교회는 개인의 精神生活뿐 아니라 낡...

크리스찬의 主體性과 連帶性
1975년 3월호 (제 38호)
I. 크리스찬의 主體性 新約聖經 마태오 복음 8장 21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나더러 주 , - 여 주...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현존양식
1975년 3월호 (제 38호)
I. 예언자들의 메시지(1) 1. 예언자들의 신앙 대예언자들의 신앙은 모세 이후의 야훼 종교가 이스라엘 전통...

한국문학에서 본 운명관의 한 모습 - 역마 를 중심으로
1975년 3월호 (제 38호)
어떤 神學교수가 金東里의 장편「사반의 十字架」를 검토하면서 다음처 럼 결론짓고 있음은 흥미있는 일이...

진심의 미학 - 보조국사 지눌의 무신론 -
1975년 3월호 (제 38호)
I. 禪佛敎의 傳統 나는 無神論이란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른다. 다만 막 연하게 집히는 바...

까뮈의 思想 ㅡ「페스트」를 中心으로ㅡ
1975년 3월호 (제 38호)
알베르 까뛰 (Albert Camus)는 1913년 당시 불란서 식민지였던 알제리에 서 태어났다. 1914년 전쟁에 아버...

영국의 무신론자들
1975년 3월호 (제 38호)
I無神論者는 神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神이 정확하게 무엇인가 - 어떠한 存在를 神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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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1975년 3월호 (제 38호)

한국교회와 음악

金 晋 均 (계명대 음악과 교수)

한국에 가톨릭 교회가 창선된 이후 약 200년의 세월이 홀렸다. 그동안 교회는 개인의 精神生活뿐 아니라 낡 은 傳統文化에 대해서도 새로운 생명 의 입김을 불어넣어줌으로써 일대 혁 신을 가져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이디-. 이러한 사실들이 敎會史의 측 면에서 또는 文化史의 측면에서 여러 모로 규명되어짐은 고무적이고도 뜻 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會音樂이 우리나라에서 미 사를 포함한 여러 종교행사에, 그리 고 사회적인 여리 音樂運動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 왔는가에 대한 기 록은 의의로 너무나 빈약하다· 하기 야 여러 祝日 미사 때에는 성가를 불 터온 것이 사실이지만,그러나 교회 의식에 있어서 이러한 성가의 역할이 어느 정도 높이 평가되었으며 또한 어느 정도 정당하게 認識되어 왔는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을 수 없다.

필자는··한국교회에서 聖音樂이 걸어온 길을 간단히 살펴보고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든 극복하여 진실로 하 느님께 대한 찬미의 노래가 敎會안팜 에 울려 퍼져 신앙 공동체의 높은 사 명을 온 누리가 다시 한번 찬양하기 를 기대하는 바이다.

많지 않은 문헌 가운데서 敎含音梁 과 관련된 것으로서 그래도 그 방면의 전문분야를 다룬 것으로 류 홍럴 ■첬 「韓國天主敎會史」, 이 유선 著「洋耀 80年史」, 민 원득 著「開化期의 音樂 敎育」등을 손꼽을 수 있겠는데 이 가운데서 가톨릭 교회음악에 관해서 는 한줄의 언급도 없다. 이러한 사실 은 교회 안에서 음악의 역힐-이 매우 경시되어 왔고, 또한 對社會的인 면 에서도 기록될 만한 그어떤 업적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에 서 양음악이 처음 들어온 것은 1890년 대 기독교 찬송가를 통해서 였으니, 이른바 新敎育의 요람이었던 이화학당에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공 부라고· 하는 것이 주기도문과 예수사 랑하심이란 찬송가를 영어로 배우면 서 예 배 를 보는 것 이 다,,(이화 70년사)리-는 기록에도 나타나 있듯 改新敎에서 는 처음부터 찬송가를 예배에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한 요소로서 인정하고 또한 중요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런데 이 기독교보다 훨씬 앞서 들어온 천주교회는 어떤가. 李旗蒸의 세례 와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만 보더라도 기독교보다 100년이 앞서 있는 처지 인데 壁歌에 관한 아무런 기록도 찾 아볼 수 없음은 어찌된 일일까· (이 것은 혹시 필자의 이 방면에 대한 지 식의 부족에서 오는 탓일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음악에 관심있는 이 방면의 전문가들이 한국에 있어서의 교회음 악의 역사를 정리해 보는 것은 매우 뜻깊은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팔자의 몇가지 조사에 의하면 20세 기에 들어서서 교회의 기도문이나 경 문 등이 한국 고유의 이나 民謠가 탁에 맞추어 읊어졌다는ani이 있다.

아마 이러한 기도문과 경문을 거저 읽는데서오는 단조로움을 서하고 이른바음악적 리듬을 넣어서 읊는 것이 더욱 효과직일 거라는 점에서 시 도된 것일지 모르나 이런 것은 일종의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다.

1930년경 單s으로 된 성가집이 서 울과 덕원 등에서 발간되기도 했는데 이 러 한 노래 가 주일미 사에 서 청 소년 들에 외해서 불리어진 것은 사실이지

만 어띤 藝術的 높이란 것은 거의 기 대하지 못했을 것임운 대구의 여러 교회에서의 필자의 경험으로서도 능 히 짐작할 수 있다.

언제부터聖歌隊라는형태가 갖추 어져서 混聲합창이 시작되었는가하 는 기록은 하 대응 교수의 증언으로써 어느 정도 밝혀진다. I939년 장 발, 한창우등서울명동성당의 유지들 이 소박한 單聲의 노래를 지양하고 이른바 합창으로써 노래 부르기를 시 도했다 한다. 그래서 음악에 조예가 깊은 동성상업학교의 보댕 신부의 도 움을 얻어 그 해 복자침례 때 아르카 탤트의「아배 . 마리아」와 헨델의 오 라토리오에서 멜로디를 얻은「라우다 때 도미눔J을 남성합창으로 불.화다 한다. 이것이 아마 한국교회에서 울 려진 최초의 합창이라 하겠다. 이것 이 계기가 되어 동성상업학교 음악교 사로부임한젊은 성악가하대응씨 가 명동성당의 합창지도를 맡게 되었 으며 점차로 주일미사 때 남성합창이 불리어지게 되었으나 남녀 부동석의 시대였던지라 여성합창은 별도로 성 체강복때 불리어졌다한다.

1945년 해방이 되어 ?韓美軍의 환 영미사가 거행되었을 때 混聲合唱이, 이를테면 모험적으로 감행되었고이때 부터 서울 가톨릭 합창단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 무렵 노기남대주교(그 당시는신부)의 이 해있는 태도에 힘 입은바 컸다 한다.

대구 교구의 경우 계산동 성당에서는해방이후학생회가 주동이 되어 성가운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남 자들은 오르간이 놓여 있는 2층 성가 대석에서,여자들은 아래충의 신자석 에서 혼성합창을 시도한 진풍경을 보 이기도 했다.

6·25 사변 때서울 가·!·릭 합창단이 대구로 내려오고 대구 측에서도 이에 자극을 받아 교회 안에서, 그리고 對 外的으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렇게 볼 때 한국 가톨릭 교회의 음악이란 것은 그 역사가 매우 짧고 또한 그 음악적인 내용도 매우 얕다 는 것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원시고대사회 때부터 宗敎와 音樂 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실제 음악을 동반하지 않는 종교의식 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기도 를 드리는 경건한 마음과 신앙의 고 백이 고조될 때 이것이 필연적으로 음악형태로 界化된다는것은음악심리 학적인 면에서 뿐아니라 실제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성서에도 음악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 민 족이 에집트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 널 때 모세는 이 감격을 노래로써 나 타내었고, 또한 예수성탄 때 천사들 은 하늘에서 이 기쁨을 합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소리높여 기도하고 노래로써 하느님 을 찬양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言語 的 표현이 고조될 때이것이 노래로

바뀌어진다는 것은 예술의 역사에 있 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 대 Γ파우스트」마지막 장면에, 구원 의 여성이 나를 인도한다는 감격적인 부분을 대화아닌 천사의 합창으로씨 끝맺고 있는 것은 아마 이러한 예에 속한다 할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얼마나 음악을 중요시해 왔는가,그 리고 많은 樂聖들이 얼마나 교회음악 작곡에 힘을 기울여 왔는가 하는 것 은 서 양음악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에 있어 서의 聖音樂의 침체는 그 원인을 어 디서 찾아야 하겠는가. 한국교회에 전승되어 오고 있는 전례의 형태에 그 첫째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즉 改新敎의 경우는 찬송가는예배 성 립의 기본조건인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경문읽기가 훨씬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 다. 그래 서 인지 성 직 자 중 에서도, 그리고 일반신자 중에서도 聖 音樂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 이 매우 적고 이것이 敎會音樂의 침 체 를 가져 온 원 인 이 아닌 가 생 각된 다. 500명의 신자를 가진 改新敎 교회당에 서 는 본격 적 인 혼성 합창이 이 루어 지 는데 수천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는 가톨릭 본당에서는 웬만한 혼성합창 하나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묵과할 수만 있겠는가.

아마 그 첫째 원인은 앞서 만한 바 와 같이 교회 당국에서 聖음악에 대 한 인식이 부족하고 이것을 육성 발 전시킬 행정적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겠다. 또 한 가지는 음악에 소양이 있는 일반신자의 협동 심이 부족한 데 기인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가 연쇄 반응이 되어 걸국 합창단원이 부족하다든가 예산이 모 자란다든가 하는 등의 難點이 유발되 는 것이 아닐까.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다 또 한 가 지 지난번 바티칸 公識舍의 팬歌화 唱의 권장이 오히려 우리나라 교회에 서의 合唱.運動의 쇠퇴를 초래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한 사실이 아닐 수 없 다. 公議會 본래의 뜻은 미사때 일부 신자들만 노래부름으로써 대다수의 신자가 방관방청만 하는 폐단을 없애 고 신앙 공동체의 意識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해서 개창운동이 권장된 것이 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合 唱無用論까지 대두하게 되었음은 유 감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外國의 경우 주일 미사 때는 신자들 이 개창하는 부분과 합창단이 노래하 는 부분이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改?敎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미사에 참여한다는 뜻에서 이 른바개창을하고또한아울러 음악 적으로 아름답고 깊은 감동을 주는 聖歌合唱을 들음으로써 그 미사 참례 는 더욱 완벽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개 창에 만 만족하고 성 가합창을 없앤 다는 것은 美와 理想을 포기하고 실 용적 편의에만 따라생활하는것이 되 며 이래서는 어떤 발전과 향상을 기
대할 수 없을 줄 안다.

IV

이제 오늘날의 교회음악의 침체를 극복하고 부흥 진작시키기 위해 어떤 시도와 노력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이미 성서에서부터 시범되었고 중세 기의 장엄하고 화려한 경로를 거쳐 현대에까지 연면히 이어져 있는 가톨 릭 교회음악의 전통을 어떻게 우리 現??에 받아들여 이것을 올바르게 정 착시키고 발전시킬 것인가는 전체 가 톨릭 신자,특히 음악 전문가들에게 는 하나의 과제 며 사명 이 아닐 수 없 다. 여기에서 필자는 구체적으로 몇 개의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이미 지적한 바이지만 교회 당국의 합창음악에 대한 인식과 신자 개창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즉 개창은 필요하고 권장해 야 하겠지만 아울러 塑歌合唱團의 건 전한 육성은,예컨대 축제미사를 더욱 '장엄 화려하게 하는데 매우필요하고 또한 높은 차원에 있어서의 하느님께 대한 예배라는 것을깊이 인식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다,

둘째로는유능한지도자의 발굴이 다. 합창 지휘자가 능력 부족일 때에 는 합창단원들의 노고에 비해서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은 명백한 사 실이고견국합창운동은 흐지부지하 게 되어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合唱指揮’란것은하나의 음악기술 이기 때문에 신자 중에서 전문음악가를 찾아내거나 또는 지도자강습 같은 것을 통해서 지도능력을 육성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본당 신부와 합창 지도자가 합심해서 앞장서면 필요한 합창단원의 수를 확보하는 것은 그다 지 어려운 일이 아닐 줄 안다.

세째로는 일정한 예산의 뒷받침이 있서야 한다. 아마 몇몇 교회를 제외 하고는 여기 대한 예산 편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일정한 예산을 측 정하여 일정한 계획아래 합창단을 운 영해 나가는 이를테면 조직적인 체제 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질 때 여러 본당이 참가하는 ffi歌경연대 회같은 것을 개최하여 우수한 합창단 을 표창하는 것도 매우 유효한 일이 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선의의 경쟁 을 통해서 또한 여러 합창단의 연주 성과를 알게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얻 는 바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韓國聖歌의 작곡과 그래고리 안성 가의 부흥을 제 안해 두고자 한디.. 제2차 바티칸 公議會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세계 여러 국민은 그들 고유의 음악 전통을 바탕으로 해서 그들 생 활감정과 밀착된 성가룔 작곡하고 또한 노래 부를 자유와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많은 신자들은 깊이 깨닫지 못하고 성가는 으례 그러한 것이려니 하는 식으로 서양의 성가를 거저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기왕에 미사성제도 우리말 로 봉헌하는 이 새로운 시대에 우리고

유의 민족전통과 생활감정을 담은 성 가를 작곡해서 노래 부르는 것은 너 무나도 바람직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위의 주장과는 모순될 지 모르지만 교회는 항상 개체를 존중하면서 또한 통일성을 보유한다는 의미에서 그레 고리 안성 가의 부홍을 바라는 마음 또 한 간절하다. 이 그레고리안성가는 가톨릭 음악 전통의 가장 숭고한 유산 이 며 또한 가장 높은 위 치 에 놓여 진 예술작품인 것이다. 세계의 모든 가 톨릭 교회가 그들의 言語로써 말씀의 전례를 행하고 있는 현재에 있어서 교회의 정신적 통일이라는 점에 있어 서도 축일미사 때에 이 그레고리안성 가를 노래 부르는 것은 특별한 의미 를 갖는 것이라 하겠다.

작년 5월 19일의「가톨릭시보J에 의 하면 교황 바오로 6세는 그의 개인적 선물로 그레 고리 안성 가책 을 전세 계 의 주교들 및 수도회장상들에게 전달했다 한다. 그리고 "모든 나라의 신자들이 지난 세기의 산 전통의 그들 모든 형 제들과 합치하기 위해서’,, 그리고“서 로 다른 국가 · 민족 · 언어를 가진 모 든 신자들이 내년도 로마에서 열리는 성년행사때다함께 전례에 참여할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라띤語 성 가가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매우 지당한 말이다. 이런 뜻에서 대구의 주교좌 대성당인 계산동 천주교회에 서 월말 주일미시ㅡ 때에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노래 부르는 試?는 매우고 무적인 일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