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친교와 섬김의 교회 공동체 1993년 1월호 (제 168호)

공동체와 참여

박석희(안동교구장?주교?철학)

서론
공동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인격체로서의 인간과 그 행동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심리학에서나 정치학 및 사회학에서도 인간 공동체를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고, 신학에서나 영성학에서도 공동체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은 인간의 행동과 인격의 관계를 논함으로써 그 근본 성격이 밝혀지고, 다른 분야에서 말하는 모든 공동체의 특성도 이러한 철학적,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현상 철학적 분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본다. 공동체에 대한 이러한 분석을 가장 적절하게 한 학자는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현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인격과 행동」이라는 저서이다. 1)여기서는 주로 이 저서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하면서 참된 공동체 특성을 밝혀 보고자 한다. 이 저서는 공동체에 대한 특별 항목을 설정하고 있지 않지만 인간의 행동과 인격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참된 공동체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공동체가 다른 인간 단체들과 다른 특성은 한 공동체 회원의 참여의 질과 정도에 따라 나타난다. 그러므로 참된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참여와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

Ⅰ. 참여
1.인격과 행동의 상호성

행동은 인격이 드러나는 특수한 순간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격은 단순하게 윤리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본 인격이다. 보에시우스의 정의대로 "이성적 본성을 지닌 개체적 실체”2) 또는 성 토마스의 정의대로 "이성적 자립자”(subsistens rationale)3)로 보는 것이다. 행동은 이러한 인격을 이해하는 길이고, 이렇게 인격을 이해함으로써 행동의 본질 자체도 이해하게 된다. 행동은 인격을 통찰할 수 있는 수단이며 특별한 근거가 된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인격에 가까이 갈수록 행동의 본질도 더욱더 드러난다. 이러한 통찰은 모두 인격과 행동의 상호성에 근거를 둔 것으로, 이 상호성 안에서 보면 인격과 행동은 두 가지 요소요 양극과 같은 것으로 서로 관련을 맺고 있다. 서로가 자기 관점에서 상대를 설명해 주고 밝혀 주기 때문에 행동을 이해하면 인격을 이해하게 되고, 이렇게 이해한 인격의 관점에서 행동을 더 잘 이해하고, 다시 더 잘 이해한 행동 의 관점에서 인격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이렇게 인격과 행동이 단계적으로 상대를 밝혀 주는 이 역동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참여”를 이해하고 공동체가 무엇임을 이해해 가는 것이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의 방법이다.
그러나 인격과 행동의 관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을 수행하는 데서 나오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라는 말은 차차 밝혀 지겠지만 우선 여기서는 사람이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다”라는 사실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인간의 다양한 사회적, 통교적 관계를 말한다. 구체적인 한 행동의 세부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들의 행동이 여러 가지 인간 관계나 사회적 관계 안에서 수행된다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과 함께 살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나 단체 및 사회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인간 관계가 아무리 다양하고 그 다양한 관계에서 나오는 인간 행동 역시 다양하다 하더라도 이 모든 다양한 행동들도 "행동”과 "인격”의 역동적 관계가 기초로 되어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든 행동의 근본적 성격이 “인격”과 “행동”의 역동적인 연결이다. 이런 근본적 관계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든 행동이 “인간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사실에서 보면 인간 관계가 아무리 복잡하다 하더라도 사람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그 사람의 인격의 행동이다. 인간 행동의 사회적 본성이 나오지 인간 행동의 사회적 본성에서 인격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인간 행동의 인격적 본성을 파악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간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수행된다는 사실에서 유추해야 한다.

2. 행동의 인격적 가치
행동 수행은 하나의 가치이다. 인격에 의한 행동의 수행 자체가 하나의 근본적인 가치이다. 이것을 우리는 행동의 인격적 가치라고 한다. 이러한 인격적 가치(personalistic or personal value)는 도덕적 가치(moral values)와는 다르다. 이 도덕적 가치들은 수행된 행동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고,이 행동들을 어떤 윤리 규범에 연결지을 때 나오는 가치이다. 행동의 윤리적 가치는 먼저 그 행위가 행 하여진 것을 전제로 한다. 행동이 수행되었느냐 안되었느냐에 따라 윤리적 가치가 결정된다.
행동의 인격적 가치는 인격에 의한 행동의 수행 자체에 속하는 가치이다. 사람들이 각자에게 적절한 양식으로 행동하고, 그 행동을 위하여 지기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행동을 통하여 자기 인격의 초월성이 실현되는 그 사실 안에 있는 가치이다. 이 가치 안에서는 인간의 영(靈)과 육(肉)의 두 영역이 일치하게 된다.
더욱이 행동의 인격적 가치란 행동을 수행하는 인격이 그 행동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충만하게 하고, 그 행동 안에서 자기 통제와 자기 소유가 이루어지고 자아의 실현이 이루어지는 행동의 존재론적 의미, 존재론적 가치를 말한다. 만일에 행동을 통하여 인격의 자기 충만성과 실현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자기 통제 가 없는 행동, 자기 결정이 아니라 다만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한 행동 등에는 인 격의 행동 수행 전체에 존재론적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이때는 행동이 존재론적 윤리 가치를 상실하였다고 한다. 진정한 참여와 공동체 삶에는 인격의 행동 수행 자체에 따라 나오는 존재론적 가치가 있다.

3. 참여의 개념
참여(participation)는 그 형이상학적 의미에 비추어 인간 행동 영역에서 보면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행동의 특징이다. 일반적인 뜻으로 보면 어떤 일이나 어떤 것에 한 몫을 누리고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행동의 현상학에서 본 철학적 의미는 다른 사람과 행동을 함께할 때에 자기의 역할, 자기 분담의 근거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참여는 인격의 의미와 관련이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며, 인격 자체가 “나와 너”라고 하는 인격과의 교류로 이루어진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참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고 행동해야 하는 그 인격의 근거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참여로 나오는 행동의 인격적 가치는 또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기 때문에 실현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된 참여의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 할 때에 인격의 초월성이 행동에 드러나야 한다. 즉 한 인간이 사회적인 교류나 인간 조건들에 흡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동하고, 자기 행동 방향 선택과 결정을 할 때에 자기 자신을 소유하고 유지하는 상태에서 행동해야 한다. 둘째로는 행동하면서 자기 자신의 인격적 가치를 유지할 뿐 아니라 인격적 자기실현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참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행동하고 존재해야 하는 “인격?인간” 자체에서 나오는 특성이다. 그리고 모든 협력과 협동의 인격적 가치를 주는 요소이다.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하는 모든 일에 “참여”가 없으면 그러한 협력 행동에서 인격적 가치가 결여된다. 그러나 진정한 참여는 자기 인격의 실현과 동시에 다양한 인격 상호간의 관계를 가능케 한다. 다른 사람이 이미 선택한 사람들과 인격적 교류가 이루어 진다. 이때에 참여는“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할 능력이 된다.

4.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 참여를 제안하는 것들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먼저 참여하는 주체에서 나온다. 그것은 참여의 결여로서 개인주의이다. 행동 주체 밖에서 오는 이유는 행동하는 인간 공동체 전체가 참여 작용을 하기에는 결함이 있는 체계나 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체주의 또는 반개인주의이다.
개인주의는 개인 안에서 최고의 근본적 선을 본다. 공동체나 전체 사회의 이익은 모두 이 개인에 예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반대로 전체주의는 반개인주의로 개인이 공동체나 사회에 전적으로 예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두 가지 이념은 모두 궁극적인 선과 모든 규범의 원천을 반대하는 것으로 참여를 부정하게 된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기 자신과 개인의 이익에만 집중하여 개인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개인주의의 개인이 추구하는 선도 공동체나 다른 사람의 선과 분리된 것이고 다른 개인의 선과 반대되고 모순 된 것이다. 개인주의의 개인이 선택하는 선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거기에는 자기 보존과 자기 방어가 있다.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고 존재하고 산다는 것은 개인이 자기를 타자에게 완전 예속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속성들과 부(富)와는 하나도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타자들이란 자기를 제한하는 것으로 보이고 여러 가지 자기 이익들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주의의 개인들이 공동체를 만든다면 그것은 개인의 재산을 타자로부터 보호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개인주의는 참여를 부정한다. 그리고 타인과 함께 행동함으로써 자기를 완성시키는 본질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반대로 전체주의(totalism)는 개인주의에서 사회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다. 개인주의가 사회의 주된 적이고 공동선의 적이다. 개인을 제한해야만 공동선이 얻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전체주의가 제창하는 선(善)은 개인의 소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개인이 참여의 원리에 따라 자유로이 독립적으로 선택할 선이 아니다. 이렇게 전체주의의 선은 개인이 얻을 수 없고 오히려 개인을 제한한다, 그래서 전체주의자들은 그들의 공동선 추구를 위하여 강제성을 띠게 된다.
이렇게 개인주의는 공동체로부터 개인의 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고,전체 주의는 개인으로부터 어떤 특수한 공동선을 보호하고자 한다. 전체주의는 결국 전도된 개인주의로서 모두 같은 인간 개념에서 출발한다.
인간 본성은 원래 다른 사람과 함께 존재하고 행동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렇게 함께 존재하고 행동함으로써 자기 인격의 내적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행동을 통하여 자기 완성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 인격은 행동할 권리가 있다. 즉 "자유로운 행동”의 권리가 있고 이런 행동 수행으로 자기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는 인격과 행동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간 본성을 무시하고 그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리기 때문에 비인격적이고 반인격적인 인간관이라고 한다. 실상 자기 완성을 위하여 인간?인격이 행동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윤리 가치의 조건이 된다. 반대로 윤리적 규범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는 사람에게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요소와 규범은 인간 행동의 인격적 가치와 반대되는 것이아니라, 인격이 자기를 완성시킬 수 있는 “도덕적 선”이다. 그러나 악은 인격 완성과는 반대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행동의 인격적 가치에서 보면 행동할 자유와 권리가 있지만 악을 행할 권리는 없다.

Ⅱ. 참여와 공동체
1. 공동체의 구성 요소인 참여

공동체의 개념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고 행동한다는 원리가 들어 있 는 현실을 말한다. 그런데 인간 공동체는 인격 경험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인격 안에는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고 행동하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완성시키게 하는 본질이 있다. 그러므로 인격 안에는 참여의 실재가 있다. 인격의 본질인 이 참여가 곧 인간 공동체의 구성 요인이다. 이렇게 인격과 공동체는 함께 간다. 그리고 참여의 특성이 결여된 개인주의와 전체주의의 경향으로는 참된 인간,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는 공동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고 행동하는 실재로 말하기보다는 간단하게 추상화된 명사로 공동체를 말할 때가 많다. 이렇게 공동체를 추상화된 명사로 말할 수 있다고 해서 공동체를 행동의 주체로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하는 일이다. 행동의 고유한 주체로서가 아니라 준주체성(準主體性, Quasisubjectiveness)으로만 보아야 한다. 물론 공동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개개인이 자기 정체성으로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 것과 다르다. 그리고 공동체라는 새로운 주체성은 공동체 회원 전체가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격을 가진 인간 개개인이 행동의 고유한 주체이고 행동의 기초 질서이다. “사회” 혹은 "공동체”라는 말은 개개인에서 도출된 질서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고 존재하는 것은 행동의 새로운 주체들인 인격들간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시킨다.
공동체 회원들간의 관계와 유대에 따라 존재 공동체와 행동 공동체로 크게 두 가지 공동체를 말할 수 있다. 존재 공동체는 인간 존재들이 공동 존재와 이 공동 존재 때문에 형성된 회원들간의 유대를 강조한다, 그러나 존재 공동체보다 행동 공동체를 더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짜맞춘 작업반 같은것은 행동 공동체를 강조하고 존재 공동체는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행동 공동체가 행동과 인격의 역동적 관계가 더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공동체 인식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행동 공동체는 존재 공동체에 근거를 두고 있고, 존재 공동체가 행동 공동체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이 양자를 분리시켜서 보기란 어렵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두 가지 공동체의 회원들의 관계가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그렇지 않는가이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말하는 단체 회원 또는 조합원의 관계와 공동체 회원의 관계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것은 공동체의 특성과 일반 단체와의 특성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단체 회원의 관계는 참여가 아니다.
예컨대여기 일단의 노동자들이 깊은 고랑을 파고 있고, 일단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고 하자, 이들은 모두 행동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와 학생들 개개인은 모두 행동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는 행동 목적에 따라 다른 공동체가 된다. 깊은 고랑을 싸움을 위한 참호로 팔 수도 있고,집을 건축하기 위해서도 팔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공부하는 과정에 따라 국민학생이든, 중학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땅을 파는 노동자들이나 학생들이 모두 공통 목적을 가질 수 있다. 단일한 공통 목적은 행동 공동체를 객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객관적 의미로 볼 때 행동 공동체는 사람들이 함께 행동하는 목적에 따라 규정된다.
그러나 인격과 행동의 상호성에서 볼 때에 객관적인 행동 공동체도 중요하지만 "참여”라고 하는 주관적 계기도 참된 공동체를 위해 중요하다. 행동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공동체의 공통 일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그 행동들을 통하여 자기를 완성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은 "참여”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체 밖에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객관적 공동체는 된다고 하더라도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는 주관적 공동체는 없다. 따라서 행동 공동체나 존재 공동체만으로는 주관적 공동 체가 없는 객관적 공동체만 있을 수 있다.

2. 참여와 공동체

참여가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 요소라고 한다면 공동체 회원들이 어디에 어떻게 참여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공동체 회원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거나 행동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공동체가 지향하는 어떤 선(善)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공동체와 참여의 문제는 공동선의 문제를 제기한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는 것은 참된 공동체 구성을 위해 중요한 것이다. 공동선을 공동체의 선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공동선을 일방적으로 가치 영역에로 몰아 세울 위험이 있다. 사람들이 함께 행동 한다는 사실만으로 객관적인 행동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이러한 맥락 안에서 공동선이란 행동하고 있는 어떤 공동체의 목적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의 목적은 목적들의 연쇄 안에서 보면 공동체의 공동선으로 나타나는 다른 선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공동선을 이렇게 객관화시켜 공동 활동의 목표로만 이해하게 되면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고, 그 전체 뜻이 왜곡된 것이다. 공동선은 객관적 의미와 함께 주관적인 계기도 고려해야 한다. 즉 행동하는 인격과 관련지은 행동의 계기를 보아야 한다. 이러한 계기를 고찰할 때에 공동선은 공동체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행 동의 목표만이 아니다. 공동선은 일차적으로 공동으로 행동하는 인격들 안에 참여를 유발하고, 때로는 참여의 조건이 되는 것이며, 인격들 안에 주관적인 행동 공동체를 개발하고 형성시키는 것이다.
공동선온 주관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이중 의미로 볼 때에 행동의 목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공동선의 주관적 의미는 인격의 속성인 참여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공동선이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주관적 의미로 말할 때이다. 이렇게 공동선이 바로 올바른 참여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공동선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는 사람이 참된 행동을 수행하게 하고, 이 행동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공동선온 가치의 의미로 보아서 공동 존재를 위한 조건을 창출하고, 이것에 따라 행동을 유발하게 하면 공동체의 선이 된다. 공동선이 여러 공동체들이나 단체 및 사회 등의 가치 서열을 결정할 수 있다. 이들 단체나 공동체들이나 사회가 가진 공동선에 근거해서 그 단체, 공동체, 사회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 행동은 존재를 따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동선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는 영역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영역에 속한 것이다.
참된 인간 공동체의 근거는 공동선이다. 일시적인 행동 공동체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 단체들 안에서는 함께 존재하는 사실에 근거를 둔 공동체만큼 참여의 강도가 약하다. 일터에서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노동자들의 공동체는 가정이나 국가 및 종교 공동체에서만큼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행동 공동체보다는 존재 공동체에서 참여의 근거도 더 든든하고, 참여의 필요성도 더 강하다. 따라서 공동체의 가치도 더 크다고 하겠다.
이러한 존재 공동체들은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일치하는 것으로 본성적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공동체들의 회원들은 다른 회원이 선택한 선을 선택할 수 있고 또 다른 회원이 선택하였기에 자기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은 자기 자신의 인격을 충만하게 하는 자기의 선이 된다. 동시에 참여의 능력으로 희원들은 자기가 선택한 공동선에 근거한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신의 행동이 공동체 에 이바지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고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때에 회원들은 자기의 선을 포기하고 공동체의 선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희생은 인간 안에 내재한 참여의 능력과 일치하고, 이 참여의 능력이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본성에 반(反)하는 것은 아니다. 참된 공동선은 공동체 회원들을 풍요롭게 하고, 풍요로워진 희원들의 노력으로 공동체가 더욱 발전하게 된다.
공동선은 개인적인 선이나 부분적인 선보다 우선하고 상위인 것은 사회의 양적인 차원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공동선은 더 많은 사람, 대다수의 사람에 관한 것이고, 반면 개인적인 선이나 부분적인 선은 소수에 관한 것이 아니다. 공동 선이 개인적인 선보다 우선하는 것은 수나 양적인 의미에서 본 일반성 때문이 아니라 공동선에 고유한 본성을 규정하는 내적 특성 때문이다. 공동선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공동 행동”과 "공동 존재”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는 회원들의 참여가 힘차게 이루어지고, 참된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Ⅲ. 공동체 회원과 이웃

1. “이웃”과 “공동체 회원”

"이웃”이라는 개념의 내용과 "공동체의 희원”이라는 개념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 그러면서도 이 두 개념은 서로 겹쳐지고 일치한다. 사람은 한 공동체의 회원으로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된다. 한 공동체 내에서 같은 공동체의 회원이면서 이웃이 되면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지며, 더 가까운 "이웃”이 된다. 따라서 동일한 한 공동체의 회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이웃 관계는 더 가깝거나 더 멀거나 하는 관계를 갖게 된다. 자기 가족과 자기 동포들은 다른 가정의 가족들이나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는 더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회원이라는 관계 체계에서는 항상 더 가까운 관계와 더 먼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관계에서는 인간의 소외됨과 나그네됨이 있게 된다.
그러나”이웃”의 개념은 인간 관계에서 더 가깝고 먼 관계보다는 더 깊은 관계이다. 그러므로 “이웃”이라는 개념은 “한 공동체의 회원”이라는 개념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한 공동체의 회원됨은 언제나 사람들은 서로 “이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동체 회원이 된다고 해서 “이웃”이라는 관계를 구성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공동체들의 회원이고, 이러한 공동체들 안에서 더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도 있으나 통교의 정신이 미약한 낯선 사람의 관계로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사람들은 서로 "이웃”들이며, "이웃”이라는 관계는 항상 그대로 있다.

2. 참된 참여는 인간들의 인간성에 참여함이다

"이웃”이라는 개념에서 우리는 인간 안에는 공동체 회원이 되는 사실과 독립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식별할 수 있다. "이웃”이라는 개념은 인간으로 서 인간과 관계를 맺고있으며, 인간이 어떤 공동체 또는 사회에 속하여 있든지 이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가치 자체와 관련을 맺고 있다. "이웃”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인간됨 곧 인간성과 관련 있는 것이다.
인간성은 공동체를 위해 가장 넓은 기초이다. 어떤 공동체의 회원들이든 인간 성온 모든 사람들을 일치시킨다. 한 공동체의 회원됨이 비록 이웃이라는 개념과 관련된 실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이웃” 개념을 제한하고, 이차적 차원으로 밀어내고 흐리게 한다. 그러나 "이웃” 개념도 모든 인간들이 인간성 안에서 맺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 관계를 강조한다. "이웃”이라는 말은 인간존재들이 참여한 가장 넓고 보편적인 실재를 뜻하며, 인간 공동체의 가장 보편적인 근거를 지칭한다. 인간성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가 다른 모든 공동체의 근거이다. 어떤 공동체이든 이 근본적인 공동체에서 분리되면 그 공동체는 필연 적으로 인간적 특성을 상실하고 만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참여”의 뜻은 더욱 깊어지고, 참여의 능력도 더 넓어 져서 "이웃”이라는 개념이 내포한 전내용에까지 확대된다. 인간 인격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고 활동하는 공동체 생활에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간성 자체에도 참여할 수 있다. 한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참여는 모든 인간 존재의 인간성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고 있다. 모든 참여가 인격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여기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참여란 한 공동체의 희원이 됨으로써 이루어질 수 없고 이회원됨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인간성에 도달해야만 이루어진다. “이웃”이라는 말의 뿌리가 되는 이 “인간성”자체에 참여하기 때문에 참여의 역동적 성격이 인격적 깊이를 갖게 되고 보편적 차원을 갖게 된다. 이때애 우리는 한 개인이 공동체 회원이 되고 진정한 참여를 통하여 충만하게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의 인간성 자체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모든 참여의 핵심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행동하고 존재하는 것의 인격적 조건이 된다.

결론

인격과 행동은 분리될 수 없으며 모든 행동은 인격적 가치를 드러낼 때에 올바른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인간의 인격적 가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고 행동할 때에 드러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고 행동하는 것은 또한 인간 인격의 참여의 특성이다. 이러한 인격의 참여의 특성에서 공동 체가 이루어진다.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는 인간 인격을 비인격화 내지 반인격화 시키는 것으로 참여를 방해하고 공동체 구성을 막는다.
참된 공동체는 참된 인격적 참여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참여를 유발하는 것은 공동선이다. 공동선은 인간 인격의 참여를 유발할 뿐 아니라 참여하는 인간 인격을 충만하게 하고 완성시켜 준다. 참된 공동체는 진리에 근거를 둔 공동선과 진정한 인격적 참여로 이루어지고, 공동체 안에서는 항상 인격 성장이 있다.
참된 공동체 회원들은 모든 인간들의 인간성에 근거한 "이웃”을 전제로 한다. 공동체 회원됨은 항상 "이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에 예수께서 "너의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계명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존재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원리임을 알 수 있다.

1) Karol Wojtyla, The Acting Person, transl, by Andrzej Potocky, D. Reidel Publishing Company, Dordrecht: Holand/Boston: U.S.A/ London: England, 1979: Personae Atto. Trad. Ital, Liberia Editrice Vaticana.
2 ) “ratiomalis naturae individual substantia,” S. Boethius, Contra Euthichen et Nestorium(에우티켄과 네스토리우스룰 반대하여),0.4
3 )성토마스아퀴나스, 신학대전, I, 23, 3;이교도 대전 IV, 35,1; 참조, I ses, 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