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성서교리교육의 새로운 관점
1974년 9월호 (제 35호)
몇 해 전만 해도 교리교육은 신앙의 메시지를 신학적 체계로 설명한 교리문답을 중심으로 실시해 왔을 뿐 ...

교리교육의 주요한 내용
1974년 9월호 (제 35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아 초세기부터 예비자들에게 교리교육을 실시해 왔다. 물론 시대에 따라 교리...

예비신자 교리교육의 프로그램
1974년 9월호 (제 35호)
예비자 교리교육 프로그램은 그 대상과 환경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를 생각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본당에서...

主日學校 敎理敎育의 實態와 그 問題點
1974년 9월호 (제 35호)
I. 머리말 아동들의 종교교육이 우리 교회 안에서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경 부터라고도 하겠으나 본...

교리교육과 청소년의 신앙
1974년 9월호 (제 35호)
1. 머리말 지난 2월에 원주 교구에서 개최한 청소년 교리교육을 위한 교사 세미나에 강의를 부탁 받고 원주...

韓國敎會 敎理書의 變遷史
1974년 9월호 (제 35호)
序 論 우리나라에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래 오늘에 이르는 동안 교리서가 어떻게 變遷해 왔고 또는 發展해 ...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정치적 참여와 그 실천
1974년 9월호 (제 35호)
1.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정치적 使命受任이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정치직 사명의 수임에 관한 질문은 各...

침묵의 의미
1974년 9월호 (제 35호)
현대는 말이 참 많은 시대다. 먹고 뱉어내는 것이 입의 기능이긴 하지만, 오늘의 입은 불필요한 말들을 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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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교리교육의 문제점 1974년 9월호 (제 35호)

교리교육과 청소년의 신앙

金 勝 惠 (서울 ?理神學院 講師 修女)



1. 머리말

지난 2월에 원주 교구에서 개최한 청소년 교리교육을 위한 교사 세미나에 강의를 부탁 받고 원주에 간 적이 있었다. 모인 교사들의 숫자는 예상보다 적었지만 무언가 본당 내에서 청소년들이 교리교육을 철저히 해야되겠다는 자각이 강하게 움직이고 있음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약 3년 전에는 가톨릭 중 고등학교 교장단의 위탁으로 이루어진 종교교과서 편찬위원회의 일원으로 2년 동안 일하면서 우리나라 가톨릭 학교 내에서의 종교 교육의 문제점을 두루 살펴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필자 자신이 4년 동안 시골 본당과 연결된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예비자와 신자 청소년들을 가르친 경험 때문에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청소년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한국교회에 환기시킴으로써 계속적인 연구와 개선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짧은 글을 쓴다. 

사실 아동교리에 비해서 청소년 교리교육은 등한시되어 왔었고,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직접적인 교리교육을 강력히 실시하기를 주저해 온 형편이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밝혀 둘 것은 여기서 청소년이라 할 때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나, 그 연령층에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연령이야말로 교육적으로 보아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교리교육을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인간 전체가 신앙인으로 변화되도록 교육시키는 것 "(1) 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청소년 시기야말로 참으로 生에 대한 선택이 가능한 때이고, 가치관의 변화와 확립이 이루어지는 때이기에, 이 시기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리교육의 근본 목적은 인간을 신앙으로 이끌음으로써 구원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말씀은 지성적 동의뿐만 아니라 마음 속까지 스며들어서 자기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리교육을 통해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줄 알게 도와 주어야 하고, 그 현실 안에서 구원의 표징과 약속들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이에 행해지고 있는 청소년 교리교육이 이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을 우리 각자가 해야 되겠으나 특별히 이번에 각 본당과 가톨릭 학교에 보냈던 설문지의 회답 중에서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 제일 부족하게 느끼는 것이 청소년 교리지도 문제이다. 이 방면엔 연구자도 별로 없으며 참고 서적도 전무한 조건이니 한심할 따름이다." 어느 본당에서 들어온 설문지 맨 끝에 기록된 평이다. 그리고 우리는 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교리교육의 체계적 계획이 결여되어 있어서, 아동교육이 받고 있는 만큼의 조직적 관심과 지원을 본당에서도 교구에서도, 또 한국교회 전체에서도 받지 못하고 소홀히 되고 있는 것이 청소년 교리교육의 전체적인 모습인 것 같다.

또 한가지 여기서 청소년 교리교육이라 할 때에는 예비자를 위한 교리뿐만 아니라 영세한 젊은이들을 위한 계속적인 교육도 포함하고 있다. 영세 한 이들을 계속 영신생활에 성숙시키고 발전시켜서 하느님 안에서의 인간 완성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지혜를 찾게 하는 목적을 교리교육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이것을 3단계로 분류하여,첫째, 기초 교리 습득 단계, 둘째, 영속적 교리 습득단계,셋째, 완전 교리 습득 단계로 분류하는데,(2) 여기서는 이런 명칭에 구애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교리교육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고,또 이 과정 속에서 청소년 시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이며 우리나라 교리교육 현실은 아동교육에서 성인에 이르는 체계적인 연결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2. 청소년 교리교육을 위한 설문지 보고와 분석

현재 우리나라 본당과 가톨릭 학교 내에서 실시되고 있는 청소년 교리교육의 현황을 파악하려는 목적으로 기초적인 질문 10가지를 전국적으로 보냈다. 14교구 내에 있는 본당에 보낸 설문지의 총수는 446인데, 그 중 답을 보내준 본당이 184곳으로(무기명으로 온 5본당 포함) 약40%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 현재 청소년 교리를 따로 하고 있는 본당이 126곳, 전혀 안하고 있는 본당이 10곳, 성인반에서 함께 하고 있는 본당이 15곳, 학생회 등의 클럽 활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본당이 29곳으로 나왔다. 답을 보내준 본당 중에도 몇 곳에서는 청소년 교리교육이 실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물어 본 것을 전혀 답할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설문지를 반대로 보내준 경우가 있는 것을 미루어보아, 답이 오지 않은 본당 중에서는 실시하고 있지 않는 확률이 위의 본당들보다 더 높지 않을까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가톨릭 중고등학교로는 전국적으로 40개의 설문지를 보냈는데, 31곳에서 답을 보내주어 약 78%의 반응을 보였다. 그 중 27 개의 학교에서는 학교수업 시간 중 종교 교육(보통 매주 1시간씩)을 실시 하고 있고, 한 학교는 전혀 안하고 있으며, 3곳에서는 쌜 등의 클럽활동을 통해 서 실시하고 있었다. 이 번에 보냈던 기초적 설문지의 10가지 질문과 응답을 교구별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다음 페이지의 도표 참조)

위의 설문지를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종합해서 분류해 보자면 5가지 문제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무관심 내지 비종교적 분위기가 청소년 교리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으로 설문지 1번과 3번의 질문이 여기에 해당한다. 본당의 관심을 나타내는 청소년 교리교육에 대한 실시 상황은 이미 언급한 바 있고, 3번 문제의 답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학생들의 무관심’과 ‘전체적 교리 교육의 방향이 비실천적이고 생활화되지 않은점’이다. 이 조목들은 설문지 끝에 부탁한 제안들 중에도 가장 많이 나오는데, 곧 가까이는 부모와 가정의 무관심과 종교적 가치에 대한 희박한 관념 때문에, 또 본당과 가톨릭학교 자체 내의 비종교적 분위기 때문에, 그리고 크게는 지역사회 전체가 너무나도 복음정신과 상이한 가치관을 젊은이들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비종교적 큰 조류를 거슬러서 크리스찬적 가치관을 가치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기가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이다. 어느 한 본당에서 들어온 평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청소년 교육뿐 아니라 전체적인 司牧이 안되어지고 있군요. 成人들의 이해부족으로 학생들에게 확실한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世俗 안에서 교회 자체가 뚜렷한 이미지를 사회에 주고 있지 못하니까 학생들이 당황함을 느끼는듯 합니다." 아주 핵심을 뚫어본 평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신앙인의 공동체 자체가 뚜렷한 신앙의 증거를 현실적으로 주지 못할 때, 청소년 교리교육의 방향이 제대로 잡히지 못하는 것 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리고 또 다른 설문지에 "학생들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대체적으로 소극적이기 때문에 별로 교리를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지못해 끌려오는 격이지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어떻게 열의를 갖도록 하나’이지요." 라고 묻고 있다. 학생들 쪽의 무관심을 바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 신앙인 공동체 자체가 먼저 신앙과 또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열의를 갖게 되는 것이고, 가장 직접적으로는 공동체를 대표하고 있는 부모와 교사들의 신앙의 열도를 높이는일이라 하겠다.

둘째로는, 청소년 교리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 대한 것으로 설문지에는 2번과 3번에 나타나 있다. 설문지에 의하면 신부님이 가르치시는 곳이 44 곳, 수녀님이 102곳으로 가장 많고, 교리교사나 전교회장님이 92곳, 대학생이나 평신도 교사가 가르치는 곳이 31곳으로 나타나 있다. 물론 보통 한 본당에도 여러 사람의 교사가 있으므로 이 조항에는 중복이 많이 되고 있다. 그리고 3번째 질문인 청소년 교리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한 답으로 교사의 지식부족이 55로 나타나, 교사의 양성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일반과목의 성격과는 다른 교리교육의 성격 때문에 교리지식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교리교사는 아닌 것이다. 이런 점은 설문지 끝에 기록된 제안에 많이 나오고 있는데, 거의 모든 본당이 청소년을 교육시킬만한 인재의 부족을 문제시 삼고 있다. "청소년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좋은 지도자를 구하는 것이다" 라고 전제하면서 도시본당에서는 대학생들에게 많이 의존을 하는데, 대학생들이 맡을 때 교리지식의 미비함과 더불어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운 점을 들고 있다. "자기자신이 먼저 사회와 교회의 일치를 자기 삶에서 이룸으로써 사회 안에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신앙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강하고 확실한 제시를 해주고 꾸준히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라고 어느 설문지에 기록되어 있다. 너무 딱딱해도 안되겠으나 학생들이 하자는 대로만 끌려가서 교리시간을 오락으로 착각하도록 해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청소년을 이해하면서도 그들의 수준에 함께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견고한 신앙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본당에서는 교사의 질면에 어려움을 안고 있는 반면에 시골본당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 필자는 청소년 교리교육의 실시 여부가 도시본당과 시골본당 사이에 급격한 차가 있으리라 예상했으나, 실시하고 있는 자체로 보아서나 답을 보내온 숫자로 보아서 별로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시골본당의 문제는 열의의 부족이 아니라 인재와 재정의 결핍인 듯하다. 어느 시골본당 신부님의 설문지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올바른 지도자, 헌신적인 지도자가 아쉽다. 지도자 교육 방안을 세워보아야 하겠고, 여기에 대한 바른 양식이 필요하다. 도시는 도시 안에 사는 대학생들 중심으로 중고등학생을 지도할 수있다지만 시골엔 젊은이가 없다." 사제가 혼자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그렇다고 교리교사를 채용할 만큼의 여유도 없는 데다가 청소년을 지도할 만한 지도자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거기다가 시골의 학생들은 대개 산재되어 있어서 상호 유대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모임을 자주 갖기가 힘들며, 많은 공소의 학생들은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자들의 안목을 넓혀야 될 시골본당일수록 출판물의 보급도 거의 안되고 시청각 자료를 위한 녹음기, 환등기, 전축 등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에게 무언가 관심을 갖게 하기가 더욱 힘들다는 것이다. 하물며 성서를 구입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는 본당도 있었다. 어느 한 시골 본당에서 온 설문지에는 "도시 교회는 각기 주보를 낸다던데, 그 주보들을 시골 본당에 발송해서 교우들이 세상성화를 위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보아 도시본당과 시골본당의 유대가 매우 절실한 것 같으며 한국교회 전체가 무언가 체계적으로 이런 유대 관계를 맺도록 주선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청소년을 위한 교사문제는 가장 심각하며, 교리교사의 개발과 양성 및 질적 향상을 위해 교회가 상당한 관심을 갖기를 원하고 있다. 어느 한 설문지에는 청소년 교리교육을 위해서는 정식 교육과정을 마친 지도자가 필요하며 전담지도자가 있어야 될 단계에 이르렀다고 쓰기도 했다.

셋째로는,청소년 교리교육을 위한 교과서에 대한 문제이다. 현재 구할 수 있고, 중고등학생을 위한 종교교재라는 특정한 목적으로 출판된 것은 가톨릭 교장단이 낸 종교교과서 4권(중고 각각 上下)이 있을 뿐이라고 알고 있다. 그 외에는 가톨릭학생 교본과 쎌 교본 등의 종교적 클럽활동을 위한 책들이 몇 권 나와 있고 몇 교구에서 프린트 되어 배부되는 교안들이 있다. 한국 가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는 학생 수효와 그들의 중요성에 비해 볼 때 너무나 소홀히 되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설문지 4항에 나와 있듯이 아직도 가톨릭교리서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어서 청소년들이 가진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가톨릭 교장단의 종교교과서를 보면(설문지 7항 참조),가톨릭 학교 내에서는 상당히 쓰이고 있으나 본당에서는 참고적인 역할을 할 뿐이며 이 책이 본당에 맞게 되려면 전폭적인 수정판이 필요하리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약 52%는 종교교과서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고 약 48%는 수정판을 요구하고 있다. 가톨릭 학교 자체 내에서도 수정판을 요구하는 의견이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나 어떻게 수정되기를 원하는가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지 않다. 한쪽에서는 종교교과서가 종교교육을 위해 지나치게 교리적이라고 보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너무 일반적이라고 평하고 있다. 또 어느 설문지는 너무 까다롭고 어렵다고 하는 반면에,  다른 설문지에는 유치할 정도라고 혹평을 하고도 있다. 중학교 교재는 잘되어 있는데 고등학교 교재는 청소년의 관심과 먼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고등학교 교재는 좋은데 중학교 교재의 내용이 어렵다고하는 평도 있다. 이렇게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에 전체적으로 일치하는 의견은 비신자들에게 크리스찬적 가치관을 심어 줄 수 있는 보편적 내용의 첨가를 바라고 있고,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토착화된 우리사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루어 주기를 요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청소년의 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시급하다는 것이 절대적이고 설문지 5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자들을 위한 교과서와 예비자를 위한 교과서가 별도로 출판되어야 하고 이를 지도할 교사를 위한 교과서도 요청되고 있다. 또한 이런 정식 교과서 이외에도 청소년을 위한 성경연구 특수교재라든가 청소년을 위한 전례적 신심행사 지침서 및 청소년의 신앙교육을 이끌어 줄 서적들이 출판 보급되기를 바라고 있다.

넷째로,교리시간 이외에도 종교적 클럽활동과 기도회나 피정 및 성서, 신앙, 기도 등을 주제로 한 정기적 공개강좌를 통하여 학생들과 교사들을 살아있는 신앙으로 이끌어야겠다는 것이다. 우선 학생회, 레지오 마리에, 쌜, 성서모임 등(설문지 7항참조)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신앙교육은 상당히 중요시되고 있다. 어느 본당에서는(소수의 가톨릭 학교도 포함) 이런 간접적 교리교육에만 의존하고 있고, 여기서 얻는 효과를 더 크다고 보는 의견도 약간 나왔으나, 8항에 의하면 이런 클럽들의 유익성을 절대화는 시키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이런 클럽 활동 이외에도 정기적 기도모임이나 성서연구 및 봉사활동을 통해 교리교육이 지식전달에 끝나지 않고 신앙실천의 단계로까지 나아가야 되리라고 보고 있다(10항 참조). 특히 교사들을 위한 교구 주체 세미나는 전적으로 필요성을 인정받고 요청되고 있으며(9항 참조),같은 교구내에서도 '이미 하고 있다' 라는 답과 ‘아직 없다' 라는 답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비록 이런 세미나가 있을지라도 본당신부님이나 교리교사들이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교구별로 중등부 교리연구 센터 등이 있어 전화 문의 등에 응답할 수 있는 제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끝으로,청소년 교리교육의 가장 실제적 난점으로 한결같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학업에 지쳐서 신앙생활과 교회활동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는 것이다. 가톨릭 학교에서까지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은 종교교육을 거의 시키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학년들도 1시간 이상 종교교육을 위해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한다. 사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종교교사들은 보통 다른 과목도 겸하기 때문에 교사 자신들도 시간에 쫓겨서 학생과 교사 양쪽이 모두 시간적 무리를 경험하고 있다. 본당에서의 시간문제는 더욱 심각해서 학생들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어떤 신앙적 체험을 할수 있게끔 이끌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데서는 이런 시간적 압박감 때문에 학생들을 위한 교리교육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좀더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부모들의 협조를 구하고 학생들이 성당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가톨릭적 사고 방식을 확립시켜 줄 특별 교육 계획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하는 제안도 나왔다. 이런 계획의 한 예로서 주일날이나 방학시기의 조직적 활동과 교리 교육 내지 피정 등을 들고 있다.

3. 청소년 교육을 위한 몇가지 제안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새로운 제안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설문지에서 이미 나왔고, 한국교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항상 느껴왔던 것을 다시 한 번 요약할 따름이다. 우선 언어상의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여기서 쓰여진 비슷한 세 단어,즉 ‘종교 교육’과 '교리 교육'과 ‘신앙 교육'에서 필자가 보는 바로의 차이점을 간단히 설명하겠다. '종교교육'이란 신자와 비신자 학생이 섞여 있는 우리나라 가톨릭 학교에서와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신앙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교리뿐만 아니라 종교를 포괄적으로 다루어서 종교가 우리 삶에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여러 종교의 가르침을 알게 하여서 학생 자신이 스스로 참된 진리라고 깨닫는 바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종교시간에는 일반적인 것에 치중하게 되고 인간학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 다음 ‘교리교육'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예비신자를 가르치는 데서 시작하여 결국에는 그 사람 전체가 그리스도께로 변화되어 신앙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본당에서의 교리시간과 학교에서 예비신자나 신자 그룹들을 모아놓고 하는 교리가 여기에 속한다고 보겠다. 그 다음 ‘신앙교육’이란 이미 받아들인 신자를 그 신앙의 깊이까지 깨닫도록 도와주어 신앙생활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여 신앙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교리교육과 신앙교육은 결국은 같은 것이나 ‘아는 신앙에서’ ‘사는 신앙으로’ 비약하는 차이를 강조하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한국교회에서 하는 청소년 교육이 신앙교육의 단계에까지 발전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다시말해서 교리시간에 와서 어떤 모르던 지식만을 더 배워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나누는 사람들과 서로 만나서 신앙의 증거를 보고,자극을 받고, 함께 기도하는 경험을 통해 청소년 자신의 신앙이 성숙하도록 하는 교육이어야겠다는 것이다. 論語에서 그렇게도 강조된 동양적 學(배움)의 사상을 이제 다시 우리 신앙생활 안에 회복시켜야 하겠다. 동양사상에서 배운다(學)는 것은 곧 앞서 깨달은 사람을 보고 모방하여 따른다는 것이며 그러기에 실천할 때에만 배울 수 있고 되풀이해 익히는 동안에 그것이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될 때에는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희열을느끼게 된다. 그래서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제 때에 그것을 익히는 것은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라고 했던 것이다.(3)

그런데 우리의 교리교육이 신앙교육으로 되기 위해서는 교회공동체 전체가 참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성인신자들에게 청소년 신앙교육의 필요성을 자각하도록 모든 기회를 이용해야 되며 본당에서는 사제와 수도자와 사목회, 학교에서는 학교의 운영자와 교사 전체의 관심이 높아져야 하고 이에 따른 실질적 협조와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청소년 교육에 대한 이런 관심과 중요성의 인식이 본당과 학교의 예산에 반영되어 시설이 갖추어지고 자료가 구입되며 교리교사의 처우가 개선되기까지 구체화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청소년 교육에 ι차적인 책임을 지고있는 부모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사제들은 주일미사 강론 등을 통해서 청소년의 신앙에 부모가 미치는 큰 영향을 인식하도록 설득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둘째로, 교리교사들은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하며 지적으로나 영신적으로 계속 발전하여 신앙에서 나오는 기쁨과 생기를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리교육의 제일 근본되는 가르침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4) 교사가 "이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교사 자신이 그리스도께 대한 이해와 신앙을 깊이 가지고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리교사는 신학적 지식을 충분히 가져야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기회가 있으면 인간학, 심리학,사회학과 교육학의 원리를 배워서 우리나라의 전통적 배경과 문화 및 사고방식을 이해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느님께 가는 길을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라는 환경 속에 살고 있는 현대 젊은이들을 이해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려면 금년 광주 영성학 심포지움에서 한 네메세기 신부의 표현대로 교리교사는 참으로 100% 신앙인이면서 100% 현대인이어야 하고 100% 한국인이어야 한다. 이렇게 현대적이면서도 토착화된 순수한 신앙교육이 실시되려면 교회 전체의 교리교육 방향이 현대화되고 토착화되어야만 가능하리라 보면서도, 동시에 각 교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이면에 있어서 교회를 도와주어야 되리라 믿는다.

셋째로,교과서에 대해서는 가톨릭 중고등학교를 위해서 편찬된 교장단의 종교교과서는 계속되는 비판과 연구를 통해 계속 수정판이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며, 본당을 위해서는 상임 교재연구위원회가 반드시 설치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청소년용뿐만 아니라 성인용과 아동용, 그리고 아직도 전교지방인 우리 실정에 맞게 예비자용과 신자용으로 구분하여 학생들과 교사들을 계속 지원해주면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교재연구 위원회의 계속적인 노력이 없이는 교과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다른 일에 종사하며, 이름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니 교재 연구와 편찬, 특히 토착화하면서도 현대적인 그리스도의 신앙을 책으로 펴내기 위해서는(이 속에는 시청각자료의 토착화와 연구도 물론 포함됨) 온전히 이 일에만 몰두하는 몇 사람의 전문가가 반드시 있어야 되겠고, 한국주교회의의 지원을 받으며 전국기구에 소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본다. 이 교재연구 위원회는 교리교육에 대한 상담과 충고를 줄 수 있는 센터에 주재하며 교구를 초월하여 도시와 시골 간의 교류를 도와서 교리교육에 관한 보조를 해 줄 수 있어야 하겠다.

더 있는 공동체가 덜 있는 공동체를 돕는 사랑의 실천이 우리 한국교회 안에 빨리 시작되어야 하겠다. 한국교회 전체가 이런 교재연구위원회를 위한 지원과 희생을 할 수 있을 때에 교리교육이교회 안에 차지하는 중요성이 입증되는 것이며, 이런 증거가 각 교구로, 그리고 본당과 학교로 퍼지고, 가정의 부모들의 사고방식에까지 미쳤을 때, 비로소 우리 교회는 인간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분명히 "교회는 그 교육상의 임무를 완수함에 있어 모든 적절한 수단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경주해야 한다. 특히 교회의 고유한 수단에 대해서 배려하며 그 고유한 수단 중 첫째 가는 것은 교리교육이다"(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 n. 4)라고 언명하였다.

넷째로,정규 교리교육을 보조하고 생활화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클럽활동과 공개강좌 및 피정과 기도회 등이 계속 연구되고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쇄신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보조수단이 정규적 교리교육을 대신할 수 있을까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분위기 조성은 중요한 것이나 처음부터 신앙에 무지한 사람에게는 직접적 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을 배우면서 또 그것이 실천되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위로부터 오는 신앙을 받아들인 자세가 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신앙의 증거를 요구하는 우리 시대에 평신자들이 소그룹 단위로 모여 함께 기도하고 신앙적 체험과 거기서 오는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속히 주어져야 하며, 본당운영과 예산문제를 떠난 좀 더 신앙적인 면으로의 서로 간의 격려와 자극이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이런 모임은 한 달에 한번이라도 정규적으로 해야만, 한번 하고 지나가는 공개강좌나 피정의 성과를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회가 참례자들이 만든 전례와 결합되어 전례가 신앙의 표현임을 깨닫게 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본당 신부님들에게 이면으로의 개척을 부탁드리고 싶다. 수도자들은 영성면의 전문가라는 소명을 받고 있는 만큼 이런 모임에 본당신부들의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기도와 생활을 연결시키도록 격려해 주는 것,그리고 사제나 수도자나 평신자나 모두 하느님께로 순례하고 있는 약한 인간들이면서도 하느님의 능력이 나타나도 록하는 곳이 바로 신앙인들의 공동체라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야 하겠다.

4. 맺는 말

우리는 청소년의 교리교육을 아주 기초적인 면에서 다루어 보았다. 사실 청소년 교육의 난점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포교성성에서 교리교육 상황을 시찰하러 오셨던 고문 주교와 한 시간 가량 이 문제를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아동교리는 그대로 무난하게 되어가는 데 비하여, 청소년 교리는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를 물은 즉 아동들은 아직 동화의 세계에 살기 때문에 이야기 형태로 교리가 주어질 때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은 아직 비판력이 성숙하지 않은 반면에, 청소년들은 이제 현실의 세계에 살고 현실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만을 받아들이려는 비판적인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교회에서 제시하는 교리내용이 실천되고 있지도 않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을 때, 그들은 점점 교회와 멀어지는 것이다. 결국 그의 말로는 모든 새로운 프로그램과 교수법의 발전에 앞서서 신앙인들의 공동체가 신앙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여야만 청소년 교리교육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거대한 공동체의 쇄신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항상 불완전한 우리들을 통 해 하느님의 성신은 일해 오셨고 큰 일을 이루어 오셨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능력과 권위의 한계 내에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하겠다. 어느 신부는 설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앞으로 학생들의 신앙을 위해 우리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두 사람이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신부와 수녀, 그리고 지도자들이 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목 등을 해야 하는 모든 사람이 학생들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게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우리 교회의 희망이 아니겠읍니까?" 그래서 우리는 다시 주교회의로부터 본당 사목회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교리교육에 좀더 큰 관심을 가져주고 그 발전을 위해 실제적인 지원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이해하고 있는 한 기다릴 수 있고 사실 다른 교육이나 마찬가지로 신앙교육은 시간이 필요한 것임을 알고 인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은 아니다. 교육은 각 사람이 일생을 두고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으로서 적당한 기회에 남의 격려를 받고 또한 삶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교육은 이런 의미에서 문화와도 같다. 문화를 가진 사회는 원시사회보다 나은 것이나 문화란 오래고 느린 과정으로서 단시일 내에 남이 만들어 줄 수 없는 것이다.”(5) 기다림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충고라고 본다. 끝으로 청소년 교리교육의 여러 문제가 더 철저하고 광범위한 스케일로 전문적 위원회에 의해 연구되고 뚜렷한 방향이 제시되어 실천될 날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이다.

〔註:]

1) Sacramentum Mundi, Vol. I, "Catechesis", p. 266.
2) Sacramentum Mundi, p. 266-7. 
3)「論語」學而第一,朱子의 註 참조.
4) 버나드 쿡 著「신앙의 형성」,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1965, p. 136.
5) Gabriel Moran, Vision and Tactics, N.Y.: Herder and Herder, 1968, p. 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