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현대사회와 청소년 1987년 7월호 (제 112호)

한국의 청소년 문제에 관한 재고

金文朝 (高麗대학교 敎授)

1. 머리말

靑少年을 나누는 기준은 시대나 지역별로 그 규정이 다소 상이하나 일반적으로는 십대 대부분 및 이십대 초반의 인구를 포괄하는 연령 범주로서 정의된다. 그런데 청소년층은 연령 계층상의 일정 위치를 나타낸다는 이같은 정의적 특성보다도 그것이 주로 장·노년 층으로 대표되는 소위 기성세대에 대응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보다 큰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당장에는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그러나 항차 기성세대로의 진입이 필연적인 청소년층은 바로 그러한 生活週期上의 독특한 위치로 인해 理想主義와 現實主義 또는 保守主義와 改革主義 간의 갈등을 가장 절박하게 체험하는 문제 집단인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 문제에 관한 지난날의 논의들을 훑어 볼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通念的 誤認가 흔히 발견된다. 즉 우리는 한국 청소년 문제의 현황이나 대응책을 생각하기 이전에 우선 문제점 이해에 중대한 장애가 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이들 몇 가지 오류를 일단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오류로는 否定的 偏見을 들 수 있다. 그 점은 청소년 문제라는 어휘 자체에도 다소간 내포되어 있는 것이기는 하나, 보다 직접적으로는 청소년 문제를 곧 非行이나 犯罪와 同一視하는 발상에서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청소년 비행은 양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또 질적으로도 그 양상이 보다 極端化·凶暴化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缺損이 아닌 正常家庭 청소년들의 비행이 늘고 있으며 또 빈곤층 출신 못지 않게 중산층 이상의 청소년들의 비행 가담률이 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청소년 대책위원회,「청소년백서 1986」, 1986, 국무총리행정.조정실,pp.401-40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비행청소년에 비해 양순하고 모범적인 청소년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 범죄의 시대별 추이에 근거해 청소년 일반을 放縱이나 暴力 등에 물든 사고뭉치,또는 마약복용,성행위 및 절도 등과 관련된 ?在的 범죄 집단으로 분류하는 일은 그 동기 여하를 떠나 객관적 현실을 과장 왜곡하 는 부당한 편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年?優 待主義로 인해 “나 때는 너와 같지 않았다“든가 ”젊은 놈들이 날친다”는 식으로 나어린 청소년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관용적인 것이 사실이다. 두번째 오류로는 문제점 진단이나 해결을 오직 청소년층으로 한정시키고자 하는 局地的 사고경향을 들 수 있다. 물론 즉각적 효과를 위해서는 마치 외과의사가 환부를 관찰하고 도려내듯 현상 자체에 천착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청소년 문제의 궁극적 진원을 탐색하고자 한다면 편협한 轉嫁的 태도를 넘어서서 그것을 기성세대라는 주변 집단과 연관해 파악하는 총체적 시각이 요청된다. 청소년은 가정으로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기성인들과 접촉하면서 행위 사고 및 규범을 보며 배우며 산다. 이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청소년들의 행태를 단독으로 분리해 생각한다거나 개선시키고자 하는 국지적 사고는 명백히 현실성을 결여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예컨대 우리는 가끔 요즘 청소년들은 영악하고 타산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도 경제성장을 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질주해온 것이 저간 우리의 사정일진대, 단순히 드러난 현상에 주목해 문제의 발생근거나 책임을 청소년층에 전가시키는 일은 부정적 편견 못지 않은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세째로는 狀況的 特性을 외면한 一般化의 오류를 들 수 있다. 아직 적지 않은 청소년 문제 연구가나 지도자들이 청소년의 태도 변화나 비행 추세 등을 분석할 때 그들을 산업화 과정으로 인한 하나의 普遍的이고도 不可避한 현상으로 간주하곤 한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격렬한 학생시위를 산업사회의 발전도상에서 치러야 할 불가피한 홍역쪽으로 이해하여, 그것을 60년대 구미나 일본 등지의 것과 비교하고는, 그러한 현상은 후속적 발전 에 의해 능히 소멸되리라고 믿는 낙관론자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주로 급격한 사회변동에 수반된 상대적 빈곤이나 기대 상승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이같은 설명은 加增되고 있는 외채부담이나 정치적 퇴행과 같이 분명 객관적으로 나빠지고 있는 우리 사회 고유의 현실적 요인들을 생각하지 않은 무분별한 추론인 것이다. 따라서 이후의 진술에서 필자는 청소년 문제를 단지 비행과 같은 ?法的 범주로 국한시켜 공식적 통계자료를 예거하여 청소년 문제를 논하는 방식을 지양하는 대신, 司法的 정의와는 관계 없이 우리나라 청소년층의 지배적 행위 특성이 과연 무엇이며 또 그 발생 메카니즘은 어떠한 것인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시각이 이런 까닭에 干체적 분석 역시도 청소년의 행태 변화 자체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기성사회의 기풍이나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진술과정 역시도 산업사회 전반에 해당하는 일반론에 연이어 주로 한국 청소년층에만 관련된 特殊性을 추가 고찰함으로써 前述한 세 가지 오류를 벗어난 보다 정확하고 공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業社會의 靑少年 생활주기상으로 볼 때 청소년기는 아동기와 성년기의 轉換點에 위치하는 까닭에 다른 어느 시기에 비해 보다 큰 停?性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의 방황''은 바로 이같은 점을 두고 말함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비교적 뚜렷한 통과의례를 거쳐 일찍부터 노동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전 산업사회와는 달리 오늘날 산업사회의 청소년들은 아이도 어른도 아닌 사회적으로 애매한 존재로 살아가는 기간이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즉 오늘날의 대부분 산업사회는 19세기의 人本思想에 힘입어 의무교육 기간을 연장하고 있는 동시에 청소년들의 노동착취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노동 규제법을 널리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식적 허용 연령은 나날이 상향 조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 따른 기술발달이나 전문화는 근로자들에게 과거에 비해 보다 높은 학력수준이나 자격을 요구하고 있는 바, 청소년들은 그를 대비해 가정에 안주하며 소정의 학습이나 수련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직업적 역할에 관한 한 과거에 비해 훨씬 무력한 존재로 화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청소년들은 신체적 발달이나 성숙의 면에 있어서는 재론이 불필요하리만큼 前 世代의 동년배층을 압도한다. 따라서 산업사회의 청소년들은 신체적으로나 생 리적으로는 다분히 성년임을 느끼면서도 경제활동과 관련된 역할의 측면에서는 아이 취급을 면치 못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과거에 비해 일찍 청소년기에 진입하나 그로부터 벗어나 명실상부한 성년으로 발돋움하는 시기는 오히려 늦다. 따라서 산업화는 이전에 극히 짧은 기간이었던 청소년기를 크게 확장하는 데 뜻밖의 기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요즈음은 부모와 함께 거주하며 학교에 나가는 청소년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즉 산업화로 인해 청소년기가 확대됨으로써 청소년층은 이전과는 다른 독자적이고도 확고한 사회적 범주로 등장하고는 있으나, 반면 경제활동이라는 핵심적 역할을 겸하고 있음으로 해서 그들은 오늘날 단순한 한계인적 정체위기의식 외에 기성인들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새로운 불만이나 좌절을 체험하게 된다. 3. 韓國 靑少年의 現況 만 12ㅡ14세 사이의 남녀로서 규정되고 있는 한국의 청소년 인구는 1985년 현재 총인구 4천2백만명 중 약 27.9%인 1천1백46만명에 달한다. 이것은 1955년 5백80만명의 약2배에 해당하는 것인데, 사실상 최근 30여 년간 청소년 인구는 주로 인구증가를 뒷받침으로 하여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총인구에 대한 청소년 인구는 1980년의 29.1%를 정점으로 하여 최근부터 차츰 둔화되고 있고, 이것은 2000년경에 21% 내외로 떨어지리라고 전망되고 있다. 한편 이들의 지역별 분포상황을 살펴보면 다름아닌 도시화의 영향으로 인해 1970년 초를 사이로 市部 對 郡部의 청소년 거주자 비율이 역전,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市部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 진학이나 취업 등으로 청소년들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더욱 두드러지는데 특히 1960년대 이래 서울 및 부산과 같은 거대 도시의 청소년 인구 증가율은 여타 도시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압도적으로 크다. 동시에 경제활동에의 참여가 지연되고 있으니 만큼 청소년들의 결혼률은 감소하고 있는 반면 그들의 학력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청소년백서」pp.17ㅡ24).그런데 위와 같은 인구학적 변화보다 더욱 중요한 사항은 청소년들의 사회적 존재양식이다. 즉 표 1에서 보듯 1985년 현재 전체 청소년 약 8백26만명 중 28.2%가 직업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들의 산업별 분포는 사회 간접자본 및 서어비스업, 광공업 및 농림 ?어업의 순으로 되어 있다. 청소년 취업인구는 연령에 따라 자연적으로 높아지는데, 20ㅡ24세의 연령층에서는 취업 청소년의 수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52.9%에 달한다. 한편 1985년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가 1만여 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통해 한국 청소년의 의식구조를 알아본다면(「청소년백서」 pp. 48-69), 우리나라의 청소년은 한마디로 傳統과 近代性이라는 변천의 시대적 갈등과 더불어 특히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으로 인해 많은 불만과 좌절을 체험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상과 현실의 乖離는 물론 한국 청소년층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어느 사회든 다소간 존재하 는것으로서 하비 콕스와 같은 학자는 청소년기에 품었던 이상이 여러 제약 조건으로 인해 현실화되는 과정을 체감 효과라고 지칭한 바 있다. 한국 청소년들의 理想主義를 실증하는 예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의응답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즉 “보람이 있다면 돈을 적게 버는 직업이라도 좋다”는 진술에 대해 전체 청소년의 반수 가량이 강하게 찬성하고 있으며 또한 나머지 30%도 찬성의 견해를 표시하고 있다.

〈표 2> 보람이 있다면 돈을 적게 버는 직업이라도 좋다 ?답내용 청소년집단 (1) 강한반대 (2) 약한반대 (3) 찬성도 반대도 아님 (4) 약한찬성 (5) 강한찬성 計 (응답자수) 국 민 학 생 2 6 6 27 59 100 (895) 중 학 생 5 8 7 29 52 101 (2,344) 고등학생 4 10 10 33 42 99 (1,866) 대 학 생 4 9 9 32 46 100 (1,141) 근 로 4 6 8 31 51 100 (2,131) 농 촌 7 10 8 32 43 100 (500) 무 직 · 미 진 학 5 9 10 23 53 100 (352) 비 행 6 10 9 31 44 100 (522) 시 설 5 6 8 25 57 101 (515) 計 4 8 8 30 49 99(10≫266) 한편 “내가 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진술에 대해서도 전체의 약 90% 가량이 그렇다고 수긍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연령이나 학력, 또는 취업이나 비행기록 여부를 떠난 모든 청소년 응답자들에게 일률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표 3> 내가 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 응답 국민 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근로 농촌 무 직 미진학 비행 시설 그렇다 94.0 91.7 88.9 87.3 88.7 88.4 87.5 90.8 91.3 89.8 아 니 다 6.0 8.3 11.1 13.7 11.3 11.6 12.5 9.2 8.7 10.2 100 (895) 100 (2344) 100 (1863) 100 (1141) 100 (2129) 100 (500) 100 (523) 100 (516) 100 (10263) 한편 청소년들의 現實主義는 다음과 같은 응답들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우선 청소년들은 “어른들은 경험이 많아서 본받을 점이 많다”라는 진술에 대해 74.8%가 “그렇다”고 대답함으로써 그들의 이상주의가 결코 사회에서 온전히 體現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다. 〈표 4> 어른들은 經驗이 많아서 본받을 점이 많다 집단 응답 국민 학생 중학생 고등 학생 대학생 근로 농촌 무 직 미진학 비행 시설 計 그렇다 아니다 76.8 23.2 72.3 27.7 74.1 25.9 68.7 31.3 80.2 19.8 80.2 19.8 71.2 28.8 78. 5 21.5 69.0 31.0 74.8 25.2 100 (894) 100 (2343) 100 (1865) 100 (1132) 100 (2122) 100 (500) 100 (351) 100 (522) 100 (516) 100 (10245)

그런데 어른들의 체험이 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성격을 갖는 것이냐는 다음 문답에서 잘 밝혀지고 있다. 즉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정직하면 오히려 살기 힘들다”는 찬반 진술에 대해 약 70%의 청소년들이 동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학력수준이 높을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

〈표 5> 오늘날의 社會에서는 정직하면 오히려 살기 힘들다 집단 응답 국민 학생 중학생 고등 학생 대학생 근로 농촌 무 직 미진학 비행 시설 計 그렇다 아 니 다 48.6 51.4 65. 3 34.7 81.4 18.6 66.6 33.4 71.3 28.7 66.0 34.0 63.6 36.4 72.8 27.2 54.2 45.8 68.0 32.0 100 (893) 100 (2342) 100 (1867) 100 (1138) 100 (2125) 100 (500) 100 (352) 100 (522) 100 (515) 100 (10254) 뿐만 아니라 "요즈음 우리 사회는 인심이 각박해졌다"는 진술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85% 가량의 응답자들이 그렇다고 동의한다.

<표 6> 요즈음 우리 사회는 人心이 각박해졌다
응답 집단 국민 학생 중학생 고등 학생 대학생 근로 농촌 무 직 미진학 비행 시설그 렇 다 67.6 81.4 90.2 89.2 87.1 85.6 83.0 91.4 84.9 84.8 아 니 다 32.4 18.6 9.8 10.8 12.9 14.4 17.0 8.6 15.1 15.2 100 (894) 100 (2345) 100 (1865) 100 (1143) 100 (2130) 100 (501) 100 (352) 100 (523) 100 (516) 100 (10269) 따라서 앞서 이들이 토로한 본받아야 할 어른들의 체험이란 지나치게 個人化된 이상주의를 공동생활에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 조정 · 수정하는 일종의 자제 내지는 현실 원리의 태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어렵고도 척박한 세상을 요령껏 헤쳐 나가는 이런저런 재주의 습득을 의미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예를 들어 교통질서 위반은 물론 시험 부정행위도 조금씩 저지르는 등 목적보다는 수단, 또는 원칙보다는 요령을 우선시 하는 습성을 내면화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간의 대립은 산업사회의 청소년 일반이 너나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단순한 당위와 존재 또는 원칙주의와 속물주의 간의 갈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正義와 非理, 또는 善性과 不義가 팽배히 각축하는 보다 심각한 양상을 내포한다. 이같은 부정적 현실관이 초래하는 心性的 결과는 사회에 대한 자아의 적응이 아닌 분열, 그리고 단순한 불만을 넘은 분노나 좌절로서 이것은 궁극적으로 청소년들의 自己 否定的 관념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녕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規範混在(Anomic)의 증후를 토로하는 응답자가 60% 이상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하나의 간접적 증거가 된다.

〈표 7>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읊은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응답 집단 국민 학생 중학생 고등 학생 대학생 근로 농촌 무 직 미진학 비행 시설 言十 그 렇 다 아 니 다 61.5 38.5 62.4 37.6 60.9 39.1 54.8 45.2 63.3 36.7 62.3 37.7 61.1 38.9 62.0 38.0 643 35.7 61.4 38.6 計 100 (895) 100 (2343) 100 (1866) 100 (1141) 100 (2129) 100 (501) 100 (352) 100 (523) 100 (516) 100 (10266) 청소년을 학생 청소년과 근로 청소년으로 나누어 이 점을 추가적으로 논급해 보자.

(1) 학생 청소년 최근 우리나라의 학생 청소년들은 입시라는 치열한 학력경쟁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국 사회가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시해 왔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타국에 비해 교육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게 된 역사적 계기는 주로 이조 시 대에 유교적 지식이 사회 통치의 원리 내지는 일상적 윤리체계로서 군림하게 되면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경제적 목적에서 출발한 교육은 일제시대 및 해방 이후에도비록 그 내용은 다소 변경되었을지언정 여전히 하나의 출세의 방편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 교육관은 특히 1960년대 이후 공업화 과정을 맞아 효율을 중시하는 경제화 논리와 결합되면서 出世나 富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인정받게 되어 敎育二能力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고 있다. 따라서 작금 우리나라의 학력경쟁은 가히 전인격적인 능력경쟁의 양상으로 치 닫고 있어 경쟁에서의 성취자 생존자 또는 遲?者 할 것 없이 모든 청소년들은 나름대로의 좌절과 상처에 시 달리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일면 자해나 탈선 등 광란형 일탈행위를 일삼기도 하며 또 기존 지배집단이나 체제를 비판하는 보다 조직적인 대중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듯 우리나라의 교육 기회는 아직 사회계층이나 지역별로 균일하게 분포되고 있지 못한즉 이는 다른 형태의 사회적 불평등과 더불어 청소년들의 현실 비판의 주요 목표가 되고 있기도 하다. (2) 근로 청소년 근로 청소년은 그 대부분이 경제적 형편으로 지속적 교육 대신 돈벌이에 나선 청소년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빈곤 및 학업포기로 인한 일차적 좌절 이외에도 교육 적령기에 학교 울타리 밖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로써 본의 아닌 일탈 그룹이라는 사회적 낙인에 시달리기도 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학생 청소년들에 비해 근로 청소년들의 일탈행위가 많다고 보고되고 있기도 하나, 그에 반대되는 증거 또한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매일매일의 직업생활에 적지 않은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직업불만의 가장 큰 원천은 주로 봉급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와 직결된 학력별 임금격차에 직면해 최고조에 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면의 문제이기도 하나 승진기회의 학력별 차등으로 인해 평생 동안 누적적으로 감수해야 할지 모르는 고통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구미의 노동연구가 몇몇은 잡급직이나 육체노동과 같은 단순직 노동자들도 상황 여하에 따라 높은 생활 만족도를 누린다는 이른바 "풍요한 노동자”상을 제시한다. 물론 그들은 일 자체나 직장생활보다도 번 돈을 여가시간에 쓰고 즐기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나, 어떻든 이러한 생활이 가능키 위해서는 액면 그대로의 풍요한 노동자가 될 수 있도록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상이 주어져야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소위 이러한 道具的 직업지향(버는 일보다 쓰는 일에 관심과 만족을 느끼는) 근로자 집단의 사회적 근거가 박약하고, 또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러한 가능성이 성사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마저도 매우 불확실하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오늘날의 한국 청소년들은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구조적 문화적 특수성으로 인해 산업사회의 청소년이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고뇌 이상의 부가적 시련에 처하고 있음을 지각할 수 있다. 유형별로 말한다면, 학생 청소년은 숨막히는 학과경쟁이나 입시경쟁을 통해 생의 판도를 결정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낙오로 인한 열패감 때문에, 반면 근로 청소년은 가정적 형편으로 인해 일찌감치 사회적 경쟁에서 제외되고 또 지속적으로 그 영향에 시달려야 하리라는 어두운 전망으로 인해 각기 심각한 불만과 좌절을 체험하고 있다. 총체적 관점 하에서 이해해 보자면 현하 우리나라의 청소년 문제는 그 궁극적 진원이 결국 과잉 교육열을 조장하는 학력우대 사상, 학력별 임금 격차 및 승진제도, 획일적 권위주의, 또는 자원 및 기회 구조의 불평등 등 기성사회의 제 측면에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간접적이고도 멀게 느껴지던 현 사회구조의 개선이야말로 우리의 청소년을 올바르게 가꾸는 가장 확실한 첩경이라는 역설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라든가 “콩 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귀감이 없는 현실에서 바람직한 후손을 기대하기란 그야말로 난망한 일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를 模型化(modeling)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일컨대 어린이들의 사회화 과정에 있어 말과 행동이 어긋난 상황에 접했을 때 그들은 말을 따르기보다는 행동을 보고 배우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청소년 문제를 재론하고자 한 뜻은 바로 이러한 점을 확인하고 뜻을 나누어보자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