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현대사회와 청소년 1987년 7월호 (제 112호)

가정과 청소년

金在恩 (梨花女子대학교 ?授)

1. 家庭의 機能 變化

옛날, 그러니까 삼사십년 전만 해도 家庭은 그 모습에 있어서나 機能에 있어서 몇 백년 동안 변화하지 않은 채 지속되어 온 상태 그대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회를 전통사회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몇 백년 동안 사회 전체가 크게 변화하지 않은 채 지속되어 온 탓으로 안정된 構造와 機能을 가지고 있었는데 해방 후 미국이 대표하는 서양의 물결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이어 6·25사변으로 인해 서구 여러나라의 장병들이 참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양 문물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따라서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던 家庭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60년의 經濟開發 政策으로 인해 가정의 구조와 기능은 급격하게 변 해서, 오늘날 도시의 일부 가정은 서구적인 모습으로 바뀌기까지 했다.

전통사회에서도 가정이란 종교, 경제, 교육,오락, 정치 등 社會生活에 불가결한 모든 기능을 영위하는 곳이었는데, 경제의 발전으로 생산력이 확대되고 소비규모가 커졌으며,사회적 분업이 발달되고,사회가 전반적으로 組織化됨에 따라서 가정이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던 기능을 외부에 떼앗기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가정의 변모를 청소년의 생활과 주로 관계될 면만을 간추려 정리해 보기로 한다.

傳統的으로는 가정은 性的 결합, 즉 가정이 부부관계를 기본으로 해서 성립되는 모임으로, 성적 기능은 婚姻關係의 성립에 의해 합리화되고 있다. 이런 성적 기능은 자손의 再生? 가능과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유교적 전통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祖上崇拜의 사상이 배경이 되어 많은 자손을 원했던 것이다. 그 자손들이 성인이 되어서 생존해 있고 어른뿐 아니라 작고한 조상들을 잘 모시게 했었다. 그래서 자손이 생겨서 대를 이어주기를 원했다. 그런 소망은 지금도 우리 가속에 강하게 남 아 있다.

이밖에 가정은 經濟的 機能 즉 가족원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 물자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여러 기능 은가정의 본질적 가능이긴 하지만 靑少年들의 성장,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기능은 아니다. 청소년의 성장,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면에서는 敎育的 機能, 情? 安定의 기능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가정은 이런 여러 기능을 수행함에 있어서 옛날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그 변화된 모습이 청소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먼저 다루어보기로 한다.

2. 家庭의 敎育的 機能의 變化와 靑少年

가정은 무기력하고 잠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독자적으로 생존해 가기에는 무능력한 어린 자녀에게 하나의 獨立되고 成熟된 인격자로 살아 갈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 주고≫ 보살펴 주고, 가르치는 ㅅ生의 道場인 것 이다, 교육이란 것은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협력에 의해 서만 성립되는 기능인데,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교육적 기능 온 아주 자연스럽고 지속적으로 영위될 수 있는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아 기는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胎敎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가정에서의 교육이란 부모와 자녀 간의 접촉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접촉이 있는 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가정 밖의 교육기관 이 아무리 확대되어도 가정의 교육적 기능은 남을 것이다.

가정은 사회적 母胎이다. 인간은 일개의 사회인이 되기까지 가정, 친구, 이웃, 직업 등의 많은 집단을 통과한다. 가정은 타산에 의해서 離合集散하는 기관이 아니고,親和를 목표로 해서 꿍치고 교류하는 운명적인 소집단 인 것이다.

인간의 아기는 다른 모든 동물에 비해서 적응성이 무력한 상태로 가정 속에 태어나는데, 아기와 환경을 매개하는 존재로서 부모 또는 부모 대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기르는 社會的 母胎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의 아기는 가정 속에서 그 가정 獨自의 언어, 사고방식, 감정에 의존하면서 자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가정이 社會的 母胎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는가? 청소년들이 성숙된 성인이 되게 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인 愛情과 關心과 올바른 價値指向을 제공해 주고 있는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 모태는 그 속에 사는 미성년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어야 한다. 胎兒에게 있어서의 子宮처럼 안전한 환경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가정이 자녀의 교육 특히 청소년 자녀가 생존하기에 또 성장하기에 적절한 환경인지를 자문해 보자. 거기에는 유해한 요소들이 많다. 부모간에 분쟁상태에 있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우리나라의 이혼률의 급격한 상승을 보더라도 알수 있다. 가정은 청소년의 性格形成의 場이다. 성격은 양친에 의해서 유전적으로 영향을 받지만 태어난 후 가정환경 속에서 그 유전의 영향이 증폭되기도 하고 반대로 억제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성격의 기초 또는 지배적 경향은 5~6세 미만에 결정이 된다는 설이 매우 유력하기 때문에 인생의 초기 영향을 중요시하기는 하지만, 청소년기는 그 성격이 밖으로 표현되는 시기이므로 그것이 사회와 조화를 이룰 수도 있고 또 충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릴 때 기초가 형성된 성격이 밖으로 표현되어서 社會性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의 성격 형성의 기능을 결코소 홀히 할 수가 없다.

특히 청소년기에 나타나기 쉬운 攻擊的經驗, 自己統制力喪失, 非行경향,不良化 등은 어린 시절에 그 기초가 닦여졌겠지만 청소년기에 들어와서 표현되는 특징들이다. 오늘날의 가정은 아이들의 성격형성에 있어서 거의 무력한 상태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가정은 자녀들의 학교공부나 반장, 회장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여타 부분의 성장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부모들이 자녀의 성격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학습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가정은 자녀들에게 그 가정에 대대로 내려오는 價値尺度,傳統,精神들을 물려주는 文化傳達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정생활을 통해서 조상들이 소중히 여겨온 가훈이나 법도나 생활신조,풍습은 급격한 사회 변천으로 단절상태에 있게 되었다. 그 까닭은 서양의 개방적이며 개인주의적이고 급진적인 가치체계와 문물이 대중홍보매체를 통해서나 외국인에 의해서 물밀듯 쳐들어와서 이런 가정의 전통이 계승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서양식 결혼제도, 서양식 가옥구조, 서양식 실내장식, 서양식 민주주의 등등이 그런 요인들인 것이다. 가정은 사회의 문화양식을 일단 부모라는 성인이 걸러서 그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지금은 부모가 정하는 매체나 청소년 자녀가 정하는 매체가 다를 바가 없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부모가 정하는 매체보다 더 급진적인 사상체계를 전파하는 매체에 더 많이, 더 빨리 접촉하기 때문에 부모가 앞서가는 세계가 아니라 부모가 도리어 뒤쳐져가는 세계가 되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의 영향이란 無意圖的인 것이기 때문에 부모는 일일이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치듯이 목표를 세우고 과정을 짜고 지도를 하고 평가하는 식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교육을 잘 하고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서 無批判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에서의 교육이란 뒤르깽이 말했듯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思惟, 行動,感得의 여러 양식을 아이들에게 强制하는계속적 노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가정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강제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을까? 부모들이 청소년 자녀들에게 과연 무엇을 강요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자며,청결을 유지하며, 조용하며, 공부 열심히 하며,부모의 말을 잘 들으며, 자기 방을 스스로 정리정돈하며, 부모가 바라는 좋은 대 학에 가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런 요구들 사이에 우선 순위가 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공부 잘 하는 것, 다음으로 건강한 것,그 다음에 부모 속 안썩이는 것 등으로 되어 있는 것같다.

가정교육이란 위에서 말한 그런 강제적인 指導ㅡ追從의 관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가정생활 전체 그대로가 敎育的 環境이며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려는 사회적인 관계 위에 서서 자각적으로 의식하기 전부터 이미 넓은 의미의 교육은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의 참된 의미는 이 의식되지 않는 人間形成作用이라할 수 있을 것이다.

3. 靑少年期 特有의 父母 子女 關係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개사회에서는 청년기에 특히 불만이나 고민, 질풍노도와 같은 격렬한 감정의 흔들림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육체적 성숙과 사회적 성숙간의 격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따라서 전통사회,발전이 늦은 사회에서는 부모 자녀 간의 갈등을 보기가 힘들다. 문화의 전달과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급격히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변모하고, 또 경제적으로 후진 사회에서 급격히 중진·선진 사회로의 변화과정에 있는 사회는 세대간의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의 부모 자녀 간에도 여러모로 세대격차가 발견되는 것이다.

靑少年들이 겪는 현실적 갈등은 부모와 다른 직업 선택의 기회 확대, 아동기의 가치와 의존성의 不通, 부모의 요구수준과 자녀의 희망 간의 괴리, 현실의 각박한 심리적 장벽에 대한 저항감과 긴장감 그리고 욕구불만, 기존 권위에 대한 강력한 자기 주장,어른들의 가치기준에 대한 불만, 어른들의 상식에 대한 저항 … 이런 것들이 복합되어 현대가정의 부모와 청소년 자녀 간에는 乖離와 葛藤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떤 경우는 부모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한 불만이 부모에게 투사되는 경우도 있다.

흔히들 말하는 것이지만 “자녀는 먼저 부모를 사랑하고, 다음으로 부모를 비판하고 마지막으로 부모를 용서한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 절대적인 존재였던 부모의 모습이 자녀의 비판력이 더해감에 따라 차츰 그 색채가 퇴색하게 된다. 그러나 청소년기가 되어 부모의 현실적 인간상에 낙담하고 실망하면서도 완전한 모습을 추구해 갈 뿐 아니라, 동시에 차츰 현실의 모습을 긍정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과대한 요구와 기대가 부모에 대한 환멸로 변하고, 때로는 부모 자녀 관계의 위기를 돌고 오는 경우가 생긴다. 이른바 부모와 자녀의 異質比가 커지고, 가정 밖 에서의 영향을 받는 정도가 커지면, 부모 자녀 간의 생각하는 방식과 느끼는 방식의 차이는 건너뛸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리기가 쉽다. 처음에는 절대적이고 강력했던 부모의 영향력은 친구 동료의 행동규범,가치체계의 흡수로 인해서 비판받고 부정되고 때로는 붕괴되고마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부모의 태도, 의견, 인생관 등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것은 낡고 유치하고 케케묵어 냄새가 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의 것을 否定하게되는데 정면으로는 부정할 수 없으니까 음성적으로 부정을 하려니 부모의 비위를 계속 건드리고 안타깝게 만들어 부모를 불 안하게 만든다. 이것은 청소년 자녀가 人格的으로 부모로부터 獨立하려고 하는 투쟁이기도 하지만,때로는 독립의 의지를 과시하는 시위행동일 수도 있다. “이젠 저에게 덜 간섭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를 말하는 것이다. 가끔 슬퍼하고 쓸쓸해 하는 청소년기 자녀 특유의 행동들이, 설령 그것이 정상적인 발달과정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부모에게 있어서는 역시 언짢고 못마땅한 행동인 것이다. 오늘날 가정이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주느냐를 정리해 보면 적극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育의 공간이고 情?的 安定感을 제공해 주는 공간이며, 삶의 설계를 꾸미고 꿈을 꾸게 하는 공간이고, 부모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기들을 지원해 주는 공간이고, 人間羅係의 기본적인 틀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는 하지만,소극적으로는 일방통행적 강요와 공부·점수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부모의 광기어린 요구를 강제하는 곳이다. 편안함 보다 갈등을, 타당한 가치기준보다는 부당하고 타당성이 적은 가치기준을 강요하는 곳이다. 자녀들을 이해하는 체하나 실제로는 몰이해한 낡은 의식을 가진 어른과 같이 사는 공간이다. 부모에게 특별히 감사할 필요도 없 고 효도 따위는 낡은 가치라고 믿는 그런 共住空間이 가정이라는 의식이 강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4. ?少年 子女에 대한 父母의 責任

앞에서는 가정의 기능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는데, 여기서는 현대의 家族關係 속의 청소년 문제를 다루어보려고 한다.

현대의 가족은 그 형태는 작아지고 기능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확대가족이라고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녀가 함께 사는 兩性(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三世代가 共住하는 이른바 大家族 制度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조부모와 동거하는 가족은 줄고, 자녀수도 적어서 3~4인이 한가족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기능도 과거 에 지켜왔던 성적 기능,경제적 기능, 교육적 기능,성격 형성의 기능, 정서 안정의 기능, 子孫生?ㅡ家系繼承의 기능 등도 축소되어 겨우 경제적 기능 정도가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도 과거의 생산ㅡ 소비의 자급자족의 기능에서 거의 소비기능만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家庭과 家族의 重要性이 퇴색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러한 구조·기능의 축소 속에서 가정이 청소년 자녀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주고 있으며, 어떤 문제를 안겨주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또한 변모된 가족관계가 청소년 자녀들에게 어면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가족관계가 정서적으로 融合되고 ㅡ體感을 가졌던 과거의 가정에 비해서 서로가 개인으로서 獨自的이고 個體化되어 모래알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고 하겠다. 융합적인 요소가 적고,일체감을 경험하는 기회가 적으며, 용광로 속에 녹아 있는 쇠붙이가 아니라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따로 따로 생각 하고, 느끼고, 의식하고, 행동한다. 목표, 인생관,관심의 세계, 가치관도 다르다. 따라서 공통 분모가 없이 같이 느끼고 같이 말하고 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그러다보니 對話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의 청소년은 가정 안에서 누구와도 대화의 통로가 없는 세대이다.

사실 가정이란 대화하기가 매우 어려운 공간이다. 가족회의를 하는 것이 좋다느니, 대화를 하라느니라는 말들을 하는데 가정 안에서의 대화가 어렵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대화란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공통된 언어의 기반이 있어야 잘 이루어진다. 중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신의 고민이나 해결해야 될 문제가 생기면 누구와 의논하느냐의 어느 방송 기자의 물음에 “대개는 친구들과 입맞추어 보지요(여기서 입을 맞춘 다는 말은 말의 내용을 서로 조절한다는 뜻이다). 부모님에게 말해봐야 야단만 치지요. ‘아직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느냐’라든지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하는 식으로 말씀하니까 이야기가 돼 야지요. 그래서 아예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잘 풀려요.” 이것이 오늘날의 청소년들 대부분의 의식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얘,이번에는 몇 점 받았니? …그 걸 점수라고 받아왔어? 네가 남보다 뭐가 못해서 그 모양이냐. 공부하기 싫거든 리어카 사줄테니 포장마차나 해” 하고 야단친다. 공부제일주의, 점수제일주의적 태도를 가진 부모의 ?育觀으로 인해서 아이들의 정신이 시들게 된다. 또 “그거 좀 가져와”, “그거 말고 저거, 이 바보야, 그것도 몰라?” 하는,뭐든 그것 저것 하는 식의 부모의 말투는 자녀들과 진정으로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 상태이다.

가족간에는 言語가 필요없는 경우가 많다, 손짓, 눈짓, 몸짓,분위기로만 보아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무슨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를 짐작한다. 말하자면 가족원간에는 信賴가 통하는 경우가 많다. 설명이나 증명이 필요없이 의사나 감정이 상대방에게 이해되어진다. 표정의 미묘한 변화나 공기의 아주 작은 진동으로도 상대방의 내부에 무엇이 일고 있는지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다. 그래서 굳이 대화가 필요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討論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토론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체적으로 나누어져 서 있을 때 성립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경우에는 가족간의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지만, 가정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는 가정 특유의 문제를 대화로 해결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 이유는 가정 밖의 다른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가정에까지 들고 오지 않고 밖에서해결 할 수없는 것을 가정에 기여오는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설명이나 증명이 불필요한 반면, 만일 그것이 필요한 사태가 생겨나면 그때에는 이미 그 설명과 증명이 맥을 출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청소년 자녀와의 대화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日常的으로 해나가야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가정에는 이른바 惑情의 응어리가 잘 풀리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일 이 종종 생긴다. 가정에서의 不和는 의부에 그 해결을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내면적인 갈등이 되어 깊이 마음속에 침전할 위험이 있다. 부부간, 부모 자녀 간, 형제간에는 할 말을 솔직히 다 말할 수 없는 정서적 벽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의 윤리적 전통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기에 부모와 자녀 간의 감정의 응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가 조정할 필요가 있다. 1987년 봄에 끔찍한 두개의 사건이 있었는데, 하나는 상속문제로 막내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었고,또 하나는 대학을 나온 아들이 취직못한 것으로 꾸지람을 듣고 부모를 폭행하여 중상을 입힌 사건이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바로 응어리라는 것이다. 가족간일수록 서로 감정의 응어리가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의 가정이야말로 대화가 필요하다. 옛날에는 좁은 가정 안에서 인간의 생활이 거의 완결되었다. 그런 곳에서는 ‘無言의 行’으로 족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정은 너무도 多元的이고 복잡하다. 그래서 청소년 자녀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배우려면 가정만으로는 물론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정은 사회의 축소이기 때문에 그 原型을 보여줄 수가 있다. 부모가 자녀들 특히 청소년기의 자녀들에게 해야 할 책임 중 면할 수 없는 책임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그들에게 인생살이에서 지켜가야 될 規則(rule of life)을 지키도록 가르칠 것이며, 우선 그 규칙을 부모 자신이 지킬 일이다. 둘째는, 청소년 자녀가 장차 스스로 혼자서 서서 살아갈 수 있는 生活 能力을 길러주어야 한다. 부모는 어차피 먼저 가는 존재이니 다음 세대의 삶의 책임자가 되도록 가르쳐야한다. 셋째로,청소년 자녀가 개별적으로나 또는 같은 세대의 젊은이로서 가지고 있는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문제 해결의 援助者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는 건전한 수준에서 해결되도록 도와주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네째로, 부모 자신이 올바른 삶의 자세를 보여주어야 하며, 특히 가정을 和睦하게 이끌어가는 능력과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일류대학에 가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위에 든 이런 점들이 잘 성취되고 해결된다면, 성공적으로 부모의 책임을 수행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