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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자유와 문화와 교육의 기초
2006년 9월호 (제 332호)
"일하기 위해 여가를 보내는가? 아니면 여가를 위해 일하는가?” 모든 사람 이 하나의 노동자로서 산다고 ...

『인생이란 무엇인가』
2006년 9월호 (제 332호)
"진정한 예술은 자신을사랑해 주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처 럼 , 특별히 화장하거 나 치 장할 필요가 없다....

『최열 아저씨의 지구촌 환경 이야기』
2006년 9월호 (제 332호)
나는시험이 무섭다. 시험 보고 매 맞고 통지표받고 매 맞고 내 다리 장한다리.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어...

『불교,이웃종교로 읽다』
2006년 9월호 (제 332호)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에서 비교 종교학 교수로 봉직하시는 오강남 교수는 한...

『사막을 통한 생명의 길』
2006년 9월호 (제 332호)
숫자상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목자들 은 여러 계층의 신자들을 비롯하여 다른 사 탐들과 상관하는 직...

교부들의 복음해설 (연중 제22주일~제25주일)
2006년 9월호 (제 332호)
9월 3일 ® 연중 제22주일조상들의 전통“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

감리교신학자가 본 “가톨릭 교회 · 루터교세계연맹 · 세계감리교협의회의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의 역사적 의미
2006년 9월호 (제 332호)
1999년 10월 31일에 가톨릭 교회와루터 교회가공동발표한 "의화교리에 관 한공동선언문”(이하「공동선언문...

"가톨릭교회 루터교세계연맹 세계감리교협의회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 해설
2006년 9월호 (제 332호)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의장 발터 카스퍼 (Walter Kasper) 추기경 이 2006년 7월 16일부터 24일...

세계감리교협의회와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
2006년 9월호 (제 332호)
감리교성명서 1. 루터교세계연맹과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공식 승인을 거쳐 1999년 10월 31 일 "루터교세계...

칼 베커가 말하는 'Subsistit in'의 의미에 대한 논박
2006년 9월호 (제 332호)
최근『로세르바토레 로마노』(L' Osservatore Romano) 지에서 칼 베커는 '교회 헌장’ 8 항 수정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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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한권 2006년 9월호 (제 332호)

여가-자유와 문화와 교육의 기초

김선태


"일하기 위해 여가를 보내는가? 아니면 여가를 위해 일하는가?” 모든 사람 이 하나의 노동자로서 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사제만큼은 올바른 여가를 바탕으로, 관조적 삶을통해 현실만이 아니라 영원과도 만나야 한다.

현대인은 하루를 매우 바쁘게 산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빼곡한 일정을 소화 해야 하고, 때로는 밤에까지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있다. 그야말로 일 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다 싶으면 어느새 금요일 오후를 맞이하고 있고, 이런 식으로 한 달이 속히 지나간다.

이처럼 매우 분주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금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책이 한권 있다.『여가』(저자: 요셉 피이퍼, 번역: 이홍우. 이미종,원제: Muβe und Kult, 성경재에서 2005년 발행되었으나 이미 절판됨)가 그것이다. 매일같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한가하게 '여가 라니 ! 대체 무슨 일이냐?” 하고 반문할 것이다. 솔직히 나도 이 책을 처음 대할 때에는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책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책이 온전한 모습으 로 아직 출판되지 않고 하나의 번역 시안으로 묶여진 상태이어서 대수롭지 않 게 생각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책을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책을 손에서 좀처럼 내려 놓을 수 없었다. 그 내용이 보화와 같아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고또 읽었다. 독서의 기쁨을 그렇게 크게 느꼈던 적도 별로 없었다. 현대 인처럼 날마다분주하게살아가는 내영혼에게 이 책은많은가르침을주었다. 일 속에 파묻혀 사는 사목자에게 반드시 권하고 싶다.

'여가’가 "희랍어로 스콜레(schole),라틴어로 스콜라(schola)이며, 영어의 스쿠울(school)과 동일한 단어”임을 밝히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의 단어가 본래 여기에서 파생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인간을 참된 자유인이 되게 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본래 여가의 의미이며,참으로 충만하고 완전한 인간성을 기르는 것이 여가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서두에서 독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일하기 위해 여가를 보내는가? 아니면 여가를 위해 일하는가?” 하고 묻는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따질 것도 없이 전자의 입장이었다.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고, 또 그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과 여 가, 이 둘 중에 나는 일을 더 중요시했던 것이다. 혹시 여가를 보낸다면, 그것 은 어디까지나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여가를위해 일하는것이 오히려 정상이라고주장하며, 시종 일관 여가의 중요성과 가치를 언급한다. 따라서 나는 '저자가 이처럼 중요하 게 생각하는 여가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저자는 여가에 대한나의 그릇된 통념을깼다. 나는 휴일, 주말, 휴가처럼 억지 로 떠맡게 되는 남는 시간 또는 한가한 시간을 여가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저자는여가가"희랍어로스콜레(schole), 라틴어로 스콜라(schola)이며, 영어의 스쿠울(school)과동일한단어”임을밝히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의 단어 가 본래 여기에서 파생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인간을 참된 자유인이 되게 하는공부를하는것이 바로본래 여가의 의미이며, 참으로충만하고완전한 인간성을기르는것이 여가의 목적이라는것이다. 말하자면 전인 교육을 지향 하는 참된 공부가 곧 여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여가를 제대로 보내는 것인가? 곧 참된 공부의 방법 은 무엇인가? 저자는 단호하게 내적 평정의 태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정신적 태도를 제시한다. 곧 여가에는 주의력을 짜내며 헤아리고 재고 무게를 다는 관찰이 아니라 '그냥 바라보는’ 관조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요구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드러내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수용하는수동적인 상태, 마치 풍경이 저절로 눈에 들어오듯이 진리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 단순하고 순수한 시각을 갖추는 것이 여가의 올바른 자세라고 말한다. 일이 저절로 일어나게 하 는 이러한 무활동과 침묵의 태도 가운데 하느님의 선물과 은총이 주어지고, 신 적 직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더 깊은 단계의 기도인 관 상이 여가를 보내는 적절한 방법이다.

저자의 이러한지적은매일을분주하게 지내는나에게 실로기도의 중요성 을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일상의 일에지쳐 있을때에 한가한시간을내어 유희나 놀이의 방법으로여가를보낼것이 아니라, 관조의 자세로내적 평정을 되찾는시간이 실로 필요함을 깨닫게 하였다. 분주한 일들로피로해진 나의 영 혼은 정작 내적 고요와 침묵 그리고 평온을 늘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는 여기에서 나의 기도 방법이나 내용마저도 반성하게 하였다.

저자는 현대인이 세상만사를 일(노동)을 중심으로 생각하여 세계가 이제 총체적 노동의 세계가되어 버렸다고 한다.
일이 인간의 활동,심지어 인간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서 그 전체를 덮고지배하는 까닭에,인간은 일에 족쇄가 채워진 채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노예적 근성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저자는 '여가’ 를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나는 너무의지적 노력이나 이성의 적극적 활동에 의존하여 기도했던 까닭에 영혼의 힘을얼마나 산만하게 흐트러지게 했던가! 참된기도는 극도로 집중하며 긴장이 가미된 영혼의 어떤 능동적 활동이기보다는, 단지 마음을 활 짝 연 채로 긴장을 풀고 일이 되어가는 대로 과감하게 맡겨 두는, 영혼의 수동 적이고 수용적인 활동이 아닌가!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내 영혼 안에서 좀 더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하시고, 내 영혼은 그 활동을 남김없이 받아들이는 일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거론하고 싶다. 저자가 이러한 참된 여가의 구현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바는 무엇인가? 저자는 현대인이 세상만사를 일 (노동)을중심으로 생각하여 세계가 이제 총체적 노동의 세계가되어 버렸다고 한다. 일이 인간의 활동, 심지어 인간의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서 그 전체 를 덮고 그 전체를지배하고 있는 까닭에, 인간은 이미 일의 노예, 곧 일에 족 쇄가 채워진 채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에게 유용한, 자 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거대한 공리주의적 과정에 삶을 송두리째 소진시킬 정도로 발이 묶여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노예적 근성에서 인간을 해방시키 고자 저자는 여가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일의 노예가되어 있었다. 그것 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와 세상에 봉시·한다는 명분으로 일에 발이 묶여 있었다. 물론 이러한 능동적인 사목적 활동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고, 많은 경우에서는 응당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활동에 치우치다 보면 다 른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문제이다.

여기에는 기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여지가 없다. 공짜로 거저 주어지는 것은 어떤 것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온갖 좋은 명분을 내세워 인간의 적극적인 노력과 활동이 크게 강조된다. 오로지 많은 노 력과 많은 활동만이 칭송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일 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이렇게 사제인 나는 곧 직무를 수 행하는 하나의 기능인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갈수록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는 나에게 저자는 아퀴나스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질책한다.

"아퀴나스는 '완전한 인간사회가 되기위해서는 한평생을 관조에바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아퀴나스의 이 말을 잘들어 보십시오. 아퀴나스는 그것이 그렇게 한평생을 바치는 개인에게만 이익이 된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노동자로서 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사제만큼은 관조 적 삶을 통해 현실만이 아니라 영원과도 만나야 한다는 것은 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노동만을 중요시하며 자유 시간조차 일 을 강요하는 와중에서도 교회가 특정한 날에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이유 를 깊이 되새겨 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여가 一 이것을 나는 이제 '기도’ 로 바꾸어 부르고 싶다. ? 는 일을 하는 동안 내내 그 일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고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기초이다.

끝으로 아직 번역 시안으로 묶여진 이 좋은 책이 빠른시일 내에 출간되어 일에 파묻혀 사는많은 사람에게 빛이 되길 빈다.

김선태 , 전주교구 신부· 198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교에서 기초 신학을 전공하였다. ? 997년부터 현재까지 전주 가톨릭 신학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낫기를 원하느냐』,『불과 바람』,『예수, 생명의 문』,『물고기 뱃속의 지혜j,『사랑을그리는 숨은꽃, 데레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