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아름다운 음악,아름다울 뻔한 사제들
2004년 8월호 (제 307호)
"언제부터 기타치셨어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면 으레 듣는 질문이다. 하긴 빼빼 마른 체 형에 ...

미사 전례에서 시작하는 주일학교 활성화
2004년 8월호 (제 307호)
오랜만에 본당 중고등부 주일학교 미사에 참례할 기회가 있었다. 시험 : 기간이라 그런지 학생들로 채워져...

신흥영성 운동의 현상〈5〉
2004년 8월호 (제 307호)
4. 신(흥)영성 운동의 피해 사례와 식별 1) 사 례 신(흥)영성 운동에 대해 이론적인 고찰을 여러 번 ...

훈령「이주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
2004년 8월호 (제 307호)
 (Erga migrantes caritas Chnsti)에 나타난 이주민들에 대한 보편교회의 가르침교황청 이주시목평의...

용서를 통한 치유 - 내담자 편
2004년 8월호 (제 307호)
1. 상처와 용서에 대한 개관 이 세상에 치유받아야 할상처를 지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우 리 모...

청소년 사목에 대한 교회의 시선
2004년 8월호 (제 307호)
들어가는 말 지난 6월 필자는 청소년 사목자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사목자 기초 양 성 과정’ 연수를 개최...

주일의 말씀
2004년 8월호 (제 307호)
연중 제23주일제1독서:지혜9.13-18 제2독서:필레81.10.12-17 복음:루가14,25-33 많은 것을 포기함은 큰 사...

식량 대란과 식량 주권
2004년 8월호 (제 307호)
농부의 삶만큼 정직한 삶이 없는 듯하다. 씨를 뿌린 만큼 열매를 맺고,땀 d 을 흘린 만큼 결과를 얻는다는...

미사와 사제 생활
2004년 8월호 (제 307호)
머리말 성체성사는 교회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성 사를 통해 지극히 숭고한 방식...

다종교 사회의 현실과 종교 간 대화
2004년 8월호 (제 307호)
일시 : 2004년 7월 7일 수요일 오전 11시 장소 :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소회의실참석자 : 임흥기(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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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자료 2004년 8월호 (제 307호)

주일의 말씀

유영봉 (마산교구 총대리 · 신부)

연중 제23주일

제1독서:지혜9.13-18
제2독서:필레81.10.12-17
복음:루가14,25-33

많은 것을 포기함은 큰 사랑의 증거이다

묵상 길잡이 : 수도자나 성직지들이 독신생활을 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사도 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는 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 다. 큰 사랑은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한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나는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가?

1. 신부님은 왜 결혼을 하지 않습니까?

예비신자 교리반에 나오는 예비신자 부부와, 그들을 교리반에 안내한 신자 부부 와 함께식사를 하러간 적이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중에예비신자 자매가 물었 다. "신부님은왜 결혼을하지 않습니까?” 내가 대답을 하려는데,신자자매가 먼저 설명하듯 말했다. “그거야 처자식이 있으면 자기가 맡은 신지들을 열심히 돌보면서 사목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히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 말을 들은 예비 신자가 이해가 간다는듯이 '목사님들은기족이있으니까 신자들의부담도 크고,일 반인들도 신부님들을 목시들과는 다르게 본다.’ 며 맞장구를 친다, 정작 신부인 나 는 그 이야기에 끼어들 겨를도 없었다. 아마 많은 이들의 생각이 이와 별 차이가 없 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대답에 100% 동의할 수는 없다.

수녀나 수사들이 독신을 지키는 것과 사제들이 독신생활을 하는 이유는 결코 다 르지 않다. 그러면 수도지들도 자신이 하는 일(사도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고 독 신생활을 히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면 독신생활의 참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예수그리스도께 대한사랑 이다. 스스로 독신으로 사셨고,우리를 위해 당신을 온전히 내놓으신 주님을 갈림 없 는 마음으로 따르기 위한 것이다. 물론 사제가 독신으로 살기 때문에 사목활동을 효 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부수적인 결과이지 목 적이라고 할수는 없다. 사제들의 독신은 예수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 그근 거를 두고 있어야 한다.

2.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사랑의 증거이다

한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성 추문이 화젯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은 클린턴의 추문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대통령직 수행 능력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직무수행 능력과 도덕성과는 별개로 취급 히는· 것이다. 수도자나 사제들의 독신을 단순히 효과적인 사목활동을 위한 수단으 로 취급하는 것은 효과주의나 경제 마인드로 접근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목활 동만 잘한다면 독신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가능할 것이 아닌가?

우리 주변에는 수도자나 사제가 아니더라도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학문이나 예술을 사랑하여 거기에 전념하고 투신하다 보니 결혼할 생각 도 하지 않고 사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거기에 정열을 바치다 보면 다른 것들을 포기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어떤 것을 버리는 것은 더 큰 것에 대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발현을 체험한 바오로 사도는 "세 상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긴다."(필립 3,8)고도 말하였다.

3. 버리고비운만큼채워주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제자가 되려면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해야한다.”라고말씀하신다. 또 "집 짓기를시작하기 전 에 그 집을완성할 힘이 있는지를 미리 따져보고, 전쟁에서 이길 가망이 없으면 먼 저 화평을 청하라.” 고 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의 것을 모두 버려야 하는 어려운 십자가의 길이기에,그것을 알고 미리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따라나서 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바라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주님께 대한사랑과 확신도 없이 섣불리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어설픈 태 도를 경계하고 계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요한 4,34 참조) 하신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다. 여기에 예수 님의 제자가 되는 십자가가 있다.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오는 십자가 말이다.

임종을앞둔 사람에게는 육체적 고통도 있지만,자신이 이룩한 모든것과 사랑하 는 사람들을 떠나야 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한다. 세상 것에 많은 애착을 가진 만큼 더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사랑을 굳게 믿 으며, 세속적이고 시간 속에사라져갈 세상 것들을 많이 버리면버릴수록 당신의 것 으로채워주신다.

나는 일상의 생활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그분께 대한사랑 때문에 버리고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있는가? M.E. 주말교육에서는 "사랑은 결심이다:’라 는 말을 한다. 자신의 의지를 실어 누군가를 위해 희생히는 것이 참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 해도 받겠지만,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배나 받을 것 이며,내세에서는영원한 생명을얻을 것이다”(마르10,29-30). 아멘.


연중제24주일
제1독서:출에 32,7-11.13-14
제2독서:1디모1,12-17
복음:투가15,1-32

잃은 자와 죄 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묵상 길잡이 : 예수님께서는 히·느님은사랑’이시라는 사실을 가르치시는데 일생을 바치셨다. 오늘 복음에서 들려주시는 세 가지 비유는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다운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죄인과 잃어버린 이들을 사링하시는 분임을 깨달을 때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있다.

1.윤락여성에게봉사하는수녀님

하루는 평소에 잘 알고지내는수녀님이 방문을했다. 그수녀님은서울역 근방윤 락가에서 윤락여성들을 돌보고 있다. 이야기를 듣는 중에 윤락여성들의 실태와 갖가 지 사연,그들을돌보는 데 따르는 어려움들을 알수 있었다. 그런데 함께 이야기를 듣던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분이 "수녀님들이 '그런 것들’ 한테까지 신경을 쓰면서 봉사를 해야 합니까?” 하며 못마땅해하였다. 물론 천사 같은 수녀님들이 윤락가에 서 일하는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렇게까지 말했는지도모를 일이다. 그러나나는그 이야기를듣는 순간 "까마귀 노는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식으로 교회는 죄인들과 는 확실한 선을 긋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많은신자들이 '미혼모들’ 의 집이나 '알코올중독재 ’ '윤락여성들’ 을위한교회 의 시설과 활동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속으로 '망할 것들’, '돈이 아깝다’ 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 지,교회는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를 똑바로 깨달아야 한다.

2.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이신가?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믿고 있는 신(神)의 모습에 따라 그 사 탐의 신앙생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신관{神觀) 에 따라 신앙생활도 달라진다는 말 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참모습을 가장잘 알려주신 분은 계시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이신 가?오늘복음에는 '잃었던양한마리’,'잃었던은전’ , '잃었던0ㅣ들’ 의 비유가나 온다. 복음서 안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히는 로마에 빌붙어 동족에게 세금을 걷 어 로마에 바치고 자기들도 떼어먹는 세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민족의 배반자였 다. 그리고 창녀와함께 대표적인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리인 마 태오를 제자로 삼으셨고,세관장이었던자캐오의집에서식사를 하시기도 했다. 그 리고예수님 때문에 회개한 죄인 막달라마리아의 집에자주 드나드셨다. 어디 그뿐 인가? 돌로 쳐죽인다고 모인 군중들 앞에서,간음하다 들킨 여자를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시며 용서해 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형제들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어라/’하고말씀하셨다.

죄인들에 대한예수님의 이런 태도가널리 알려지면서,예수님의 주변에는오늘 복음의 말씀대로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이 광경 을 보고 율법학자t과,가장 열심하고 경건한 자로 자처하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 을 보며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오늘 복음의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들을 통 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죄인들을 벌주고 심판하시려고 정의의 칼날을 세우고 휘두르시는 분이 아니라,잃 어버린자들을 찾아 헤매시고,집 나간이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죄인들이 회개 하며 돌아오기를기다리시는 아버지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할것 없는의인 아 흔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라고 당 당히 선언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하느님을늘“아빠,아버지”라고부르셨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과 ‘잃은자’ 를찾으시며 사랑하신다.”는사실,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선포하 신기쁜소식,곧‘복음’이다.
3. 하느님의 비할데 없는사랑

예수님은 "아t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다.” 라고 하셨다. 오늘 복음을통해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보여주신다. 일찍이 신학자 11스 큉, 은 "인류역사상 '죄인들을사랑하시는 하느님’ 을 가르치신 분은 예수님 외에는 없 었다.,’ 라고 하였다.그뿐만 아니라,예수님의 죽음도 결국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등 당시 지도자들의 신관(神觀)과 예수님의 신관이 다르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보 았다.

예수님은 일생 동안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을 전하셨고,"우리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내놓으시고 돌아가셨다” (로마 5,8 참조). 한마 디로 예수님은 전 생애를 통하여 '잃어버린 자들과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남 을 가르치시려고 당신의 생명마저 바치신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려면 형제들을 거듭거듭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하느님,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 회가용서하오니 저희 죄를용서하소서.” 아멘.

성 김대건안드레아와 성정 하상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제1독서:지혜 3,1-9
제2독서:로마8,311ㅡ-39
복음:투가 9.23-26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 없이는 순교도 없다

묵상 길잡이 : 선조들은 스스로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신앙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평신도 들의 힘으로 교회를세우고 키우며 지켰다. 자신의 인생을 걸 만한확신이 없는 우리의 신 앙생활은 혹시 취미생활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1.스스로 깨달은 진리

18세기 주자학{朱子學)에 젖어있던 조선 사회는 갖가지 병폐와한계에 봉착해 있 었다. 이러한 때에 새로운 학문과 사조를 갈망하던 학자들은 중국에서 들어온『천주실의』(天主實義),『칠극』(七極) 등의 서적들을통해 신앙에 눈뜨게 되었고, 단순 히 학문의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그 가르침을 따라살기 시작했다. 초이레,열나흘, 스무하루 등 날찌를 정해놓고, 그날은 일을 마치고,상제(上帝)이신 하느님을 섬기 며 기도하고,이웃에봉사하며 나름대로 주일을 지키며살았다. 또한 교회의 계명을 지키며 수계생활?守誠生活)에 전념하였다. "하느님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라는교 회의 가르침은 반상(班常)의 신분 차이가 뚜렷하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기슴 벅찬 깨 달음이었던 것이다.

한국교회를 돌이켜보면,1784년이승훈이세례를 받고,1836년 프랑스선교사 들이 입국할 때까지 약 50여 년 동안 중국인 사제 두 분이 잠시 사목했을 뿐,평신 도들이 스스로 교회를 일으키고 박해 중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켜나갔다. 참으 로 놀라운 일이아닐수없다.

2. 순교는 믿음의 증거이다

'순교자(martyr)’ 는 원래 ‘증거자’ 란 뜻이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느님을 증 명해 보인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백여 년 동안 만여 명의 순교자들이 신앙을 위해 생 명을 바쳤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 해 뵈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일에 엄숙하고 비장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 겠는가?그러나 순교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에게감동을 주는 장면들이 너무 나많다.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부친 최경환(프란치스코)은 아 들을 유학시킨 사학죄인으로1839년 7월에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하며 100대가 넘는 곤장을 두 차례 이상 맞고, 고문을 당한 끝에 장독(杖毒)으로 9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최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마리아)는 5명의 자녀들과함께 옥에 갇혔다. 둘 째 12세 최희정(야고보), 셋째 최선정(안드레아), 넷째 최우정(바실리오),다섯째 최 신정(델네시포로)은나이가 어려서석방되었고,막내인 세 살짜리젖먹이(스테파노)만옥에 남았다. 그런데굶주림과고문으로몸이 쇠약해지자유도(乳道)가막혀 젖 이나지 않아 젖먹이는어머니무릎에서굶어죽기에 이르렀다. 차마눈뜨고 볼수없 는 광경이다. 아들이 무릎 위에서 굶어죽자 이 마리아는 한때 관장에게 배교한다는 말을한적도있었다. 그러나수감중인여러교우들의위로와 격려로다시금순교 의뜻을 굳혔다.

옥에서 풀려나온 둘째 최 야고보는 동생들과 함께 푼푼이 동냥한 돈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감옥에 찾아가,동생들을 잘 돌볼 것을 약속하며 어머니를 격려하였다. 그 리고 순교의 때가 가까이 오자 어머니 목을 벨 ‘회자수(劍子手)’ 를 찾아가 구걸한 돈을건네면서, 어머니의모습을상세히 일러주며 '칼을 잘 갈아어머니가 많은 고 통을 받지 않고 죽을 수 있도록 한칼에 목을 베어주도록’ 부탁하였다.

이렇게 순교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혹독한 고통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믿는 하 느님을위해생명을바쳤던것이다.

3. 취미생활인가? 신앙생활인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놓을 각오로 신앙생활을 하였던 선조들에 비하면,우리 의 신앙생활은 차라리 취미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우 리 시대에는똑똑한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바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만 큼 자기 진리나 신념을 강하게 지닌 사람은 보기 힘들다.

지금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권에 눈먼 철새 정치인과,정권이 바뀔 때 마다 권력자를 찬양하기에 바쁜 매스컴과, 실직한 남편과 자녀들을 미련 없이 버 리고 자기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지들이 보여주는 세태는 신앙을 위해 칼 앞에 목 을내민 순교^의 대열을 '바보들의 행진’ 으로 비웃기에 충분하다. 만일 우리나 라에 "신자의 자녀는 대학에 보낼 수 없다.”든가, "사제의 친척은 국가 공무원이 될 수 없다.”라는 법이라도 있다면,그래도 성당에 다니겠다고 나설 신자가 몇 명 이나될까?

우리와 순교선열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살아계심을 굳게 믿는 마음이 없고,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세계,곧 죽음 뒤의 영원 한 생명을 믿는 마음도 없다. 이 세상이 전부인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바칠 수 있겠 는가? 금융 위기를 겪고 나라 경제가 점점 황폐화되면서,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있 는현실이다.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자들의 자녀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며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 듯이,실직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이웃의 아품을 내 일처럼 지극한 정성으로 함께 나누어보자. 그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해보자. 그리하여죽음도 두렵지 않은 참믿음을가꾸도록 하자.

 연중제26주일
제1독서:아모 6,11.4-7
제2독서:1디모6,11-16
복음:투가16,19-31

물신(物神)보다 더 위험한 우상은 없다

묵상 길잡이 : 투가 복음은 가난함=구원, 부유함=멸망’ 이라는 주장이 강하다. 물론 의로 운 부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산과 돈에 대한 집착,물욕이 모든 악의 근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신(物神)보다 더 위험한 우상은 없다·

1. 가난함 = 구원,부유함=멸망’인가?

복음서마다 어떤 문제를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복음사 가의 신학적 입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복음의 내용을 보면,부자는 단순 히 부자였기 때문에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라자로는 그냥 가난했기 때문에 아브라함 품으로 갔다. 그렇다면 모든 부자는 부자라는 이유 때문에 다 멸망하지 않 을 수 없는 것인가? 산상설교의 '참된 행복’ 에서도 마태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은행복하다. 히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라고 한다. 그러나루가의 병행 구절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아,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루 가 6,20)라고 말한다.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냥 '가난한사람 은 그 자체로 하늘나라를 차지할자격이생긴다는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아마도 ‘미음이 가난한 사람들’ 이 라고 수식어를 붙인 것보다 그냥 ‘가난한 사람들’ 이라고 한 것이 예수님의 의도에 훨씬 더 가까운 표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에 설명을 덧붙였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온갖 불의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는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고 호의호식하는 당시의 부지들도 보시고,괴중한 세금과 엄격한 율법과 식민통치에 시 달리면서 묵묵히 운명처럼 가난을 받아들이고 희망 없이 사는 민초들도 보셨다. 그 러고 나서 하느님께만 희망을 걸고 있는 그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구원될 사람들 이라고선언하신것이리라.

2. 의로운부자를찾기 힘든나라

얼마 전 신문을 보니,현재 세계 최고의 거부(巨富)는 미국의 '빌 게이츠’ 라고 한 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누가 제일가는 거부였는지를 따지면 '빌 게이츠 는 6위이고, 석유 왕 ‘록멜러’ 가 1위, 강철 왕 '키-네기’ 는 5위라고 한다.

이들 거부들은 하나같이 적은 돈을 아꼈고,자신을 위해서보다 공익을 위해서 돈 을 썼다고 한다. 미국 인구 5만 명 이상이 사는 도시에 록펠러나 카네기 이름으로 된 병원이나,공연장, 학교, 연구실,복지시설 등이 없는곳이 없을 정도라고한다. 록 델러는 "돈을 벌기보다,쓰는 것이 열 배는 더 힘들다.”라고 말하였다. 카네기는 어 릴 적 스코틀랜드 고향에서 토끼를 기를 때 풀을 뜯어주던 소꿉친구에게 먹고살 만 큼 한밑천 주고는, 1달러를 관에 넣고 죽었다고 한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공익을 위 해 철저히 사회에환원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부자가 존경을 받는다.

자기 재산이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그 안에는 남의 몫이 함께 있음을 철 저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세 살짜리 손자에게 몇십 억을 유산으로 남기며 재산 을철저히 분산, 은폐하고도버짓이 공직에 재기용되는 우리의 세태와는 너무나 다르다.
3 . 물신(物神)[맘몬(mammon)]보다 더 무서운 우상은 없다

물욕은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가장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다. 유다는 은전 30닢 에 스승을 팔았다. 보험금을 노리고 이#의 손가락을 자르고,유산을 탐낸 아들이 아 버지를 죽이는 세태가 우리의 현실이다. 그뿐인가? 청부살인, 미성년자 인신매매, 성적?績) 조작,부정 대출,온갖 비리의 묵인 등 세상을 죽음의 골짜기로 만드는 많은 죄악들이 바로 물욕 때문이 아닌가? 우리 시대의 가장 무서운 우상은 바로 물 신(物神) 곧 맘몬(mammon)인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투가12,34),"부자가하 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투가18,25)라고 말씀하시며 성서 곳곳에서 재물과 하느님을함께 섬길 수 없음을 경 고하셨다. 오늘 복음인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성욕(性愁)과물욕(物懲)은가장끊기 힘든욕구라고 한다. 그러나나이가들면서 성욕은 차춤 쉽게조절할수있지만,물욕은 점점 더 강해진다. 그래서 "노욕(老愁) 은 하늘도 못 말린다.”라는 말까지 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실직자가 속출하고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급증하고있다. 노동계를 보면, 한 쪽에서는 비정규직의 신분 보장을 외치고,다른 한쪽에서는一 한국에서 봉급을 가 장 많이 받는다는 어느 자동차 회사 직원들은一 지금도 자신들의 밥그릇이 작다고 파업 투쟁중이다. 비정규직과 실업지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자기들의 밥그릇을 나누는상생의 지혜는 없는가?

가진 자들이 고통을 분담하려는 자세를 저버린 채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는다면, 사회는 겉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이 세상에는 부자에게 구걸히는 걸인이 있고,저세상에는 걸인에게 구걸할 부자가 있을것임을 가르쳐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