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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1990년 12월호 (제 143호)
대 림 제 1 주일 : 12월 2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 (이사 63,16-64,7) : 이사야 예...

대림시기
1990년 12월호 (제 143호)
대림 시기 1. 명 칭 우리말의 엄하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대림(待臨)은 그리스어의 ‘에피파네이...

가톨릭 종합대학 안에서의 신학생 교육 - 정의채 신부의 시노드 발표 내용과 해설
1990년 12월호 (제 143호)
I. 머리말 제8차 시노드가 금년 9월 30일부터 10월 28일까지 로마에서 열렸다. 그 주제는 ‘현대 상황...

나의 고백
1990년 12월호 (제 143호)
  허 까리따스(Caritas Hopfenzitz) 수녀님은 1913년 독일에서 출생하셨으며 1937년 포교 성 베네...

생활 속의 성인
1990년 12월호 (제 143호)
신부님. 산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여느 날과는 달리 남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오후 3시쯤에 터벅터벅 혼...

사회의 성화를 위한 교회 언론의 역할
1990년 12월호 (제 143호)
대담 : 고국상 (가톨릭신문 미주지사편집국장) 이태호 (평화방송 해설위원) 최상완 (경향신문 조사연구실...

이 시대의거룩함 - 순결한 창녀인 교회
1990년 12월호 (제 143호)
  라합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녀이다(여호 2장). 여호수아가 요르단강 건너편을 정복하기 위하여 ...

교회와 사회의 상호성
1990년 12월호 (제 143호)
I. 시작하는 말 모든 공동체의 근본적 기초는 정의에 관한 공통된 인식 즉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

사회 성화를 위한 교회의 사명
1990년 12월호 (제 143호)
‘사회 성화(聖化)를 위한 교회의 사명’이 주어진 주제이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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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대담 1990년 12월호 (제 143호)

사회의 성화를 위한 교회 언론의 역할

고국상 / 이태호 외

대담 : 고국상 (가톨릭신문 미주지사편집국장)

이태호 (평화방송 해설위원)

최상완 (경향신문 조사연구실 부국장 겸 가톨릭언론인회장)

김정수 (사목 주간·신부)

일시 : 1990년 10월 18일(목) 오전 10시~12시

장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의실 .


김정수 : 저희「사목」의 1990년도 특집은 지난해 세계성체대회에 이어 전체적인 방향을 우리 현주소의 파악에 두고 국내의 주제로 민주화,노조,사치 향락, 환경, 도시 빈민 문제와 국제적으로 동유럽,중국, 북한,남미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러한 현주소를 보면서 우리 교회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의 반성으로 10 월호를 꾸몄고, 11월호는 그 반성을 토대로 한 신앙의 발전을, 그리고 이번 12월 호는 올해의 전체 계획을 마무리하는 뜻에서 이 민족 사회를 어떻게 성화시킬 것인가의 관점으로 특집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모시게 된 것은 교회 언론의 현실을 비판해 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화와 우리 사회의 성화를 위해 교회 언론을 통하여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교회 언론이라 하면 먼저 가톨릭신문과 최근에 시작된 평화신문, 평화방송,그리고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경향신문도 여기에 넣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물론 박정희 정권 이후 경향신문이 본의 아니게 다른 업체에 넘어 갔습니다만 이렇게 경향신문에 종사하시는 분을 모시게 된 것은 어떤 의미에서 교회 언론의 뿌리가 경향신문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의 언론에 중요한 역할을 하시기에,교회 내 선교뿐 아니라 사회 안에서 우리 민족을 교화하고 성화시키는 데 수고가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언론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교회 언론의 기원과 역사,현주소, 문제점과 해결의 길, 이와 더불어 교회 언론에 대한 외부의 시각과 여러분이 교회에 바라는 점 등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언론의 기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언론의 일반적 기능


이태호 : 언론의 기능론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이 그동안 많은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학문적 입장이라기보다 현장에서 취재 활동을 한 경험에 입각하여 언론의 기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언론은 첫째 공정한 시각으로 사회 현상과 사물을 관찰해서 그것을 보도 하는 것이 주된 기능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공정성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환경, 처지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서 사실 을 보도하거나 기자 개인의 취향, 성격에 따라서 특정 사항을 확대 내지는 왜곡해서 보도한다면 전반적인 사회 여론이 한쪽으로 치우쳐 흐르게 될 수도 있고, 그것아 방송이나 활자로 반영될 때 어떠한 시대의 징표를 오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에 입각한 공정 보도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여론 형성인데 사실 보도로만 언론의 기능과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문에 있어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캠페인이라든가, 잘못 나가고 있는 정책에 대한 비판 기능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여론을 형성하는 기능 속에 포함되겠습니다. 대충 저는 일반론적으로 이러한 두 가지 기능이 언론에 부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국상 : 일반적으로 언론하면 말이나·글로써 사상을 발표하고 논의하는 행위 전체를 가리키는데 좁게 보아서 신문과 방송을 언론의 범주에 넣고 있으며,이 두 가지를 비교한다면 활자 매체보다 전파 매체가 훨씬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신속성 면에서도 상당히 앞서가고 있다고 봅니다. 1980년대 한창 전파 매체가 붐을 일으키던 때에 신문 매체가사장되지 않느냐 하는 염려가 있었지만 신문 매체가 자체와 독특한 기능이 있고 전파 매체가 나름대로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요즘 들어서는 신문이 더 돋보이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언론이라는 것이 기능면에 있어 대중에게 일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세월이 갈수록 그 영향력이 더 확대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론의 역기능에 대해서도 많은 염려가 있는 것이 현실이고 따라서 언론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론 종사자들의 의식과 자질 향상을 위한 교육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최상완 : 우리나라의 언론이 6공화국 들어서 상당히 자유로워졌다고 보면서도 어떤 면에서 이상한 기류에 휩싸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한 기류란 언론계 전체는 아니지만 비정상적인 인맥과 조류에 휩싸여 언론의 기능보다는 양비론에 휩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신문들이 뚜렷이 내세우는 것이 없이 양시양비(兩是兩非)에 젖어 있다고 보고, 신문의 기능은 본시 야당적이지는 않지만 야적(野的)인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되는데 아직도 우리 언론이 눈치의 폐습 내지 무사안일에 젖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굉장히 몸조심하다가 한 신문이 들고 나오면 뒤따라가는, 속칭 뒷북을 치는 현상이 많고 그뿐 아니라 아직도 우리 한국의 언론은 상업주의에 젖어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가톨릭 언론의 기원과 역사


김정수 : 제가 언론의 기본적 기능에 대한 질문을 드린 이유는 가톨릭의 언론 이전에 현재 언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만 여러분이 속해 있는 교회 언론도 바른 위치가 서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언론의 기능이 사회에 대한 봉사 내지는 기여라고 여기는데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상태에 대한 이해 여하에 따라 언론의 자세가 정립되리라고 봅니다. 달리 말하면 언론이 어떠해야 한다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요구에 대하여 응답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볼 때 언론의 근본 특성은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언론은 배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요즘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내탓이오‘ 정신이며 비움 혹은 보통 사람의 가면을 벗기는 일이고 그렇게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배우는 자세가 되어 있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느낀다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요구에 대하여 제대로 수렴할 수 있으며 그러다 보면 자신의 위치에 연연하지 않고, 절대 군림하려는 마음 은 생기지 않을 터인데 어떤 의미에서는 봉사가 아니라 횡포를 부리는 것이요 즘의 언론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대비시켜 본다면,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신 말씀인데 그 뜻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인간의 요구와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배우시면서 그와 동일시하신 것으로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위치를 내어 놓으시고 인간의 의식주와 고통까지도 배우는 자세, 고백의 자세를 취하셨습니다. 교회의 어른들이 ‘내탓이오’라고 할 때에도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위치를 내놓을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참으로 비우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허한 추상적 개념으로 머물고 말 것입니다. 타 언론은 말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은 자세로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해야 하며 그런 면에서 언론인은 일반 사회 기업인이나 군인이나 다른 직업 종사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봅니다. 이런 방법으로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 봉사할 때 어떤 경우에는 비판이 나올 것이고 또 고쳐야 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며 이렇게 되면 여론 조작은 사라지고 편파적 태도를 벗어나 사실 그대로 공정 하게 보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언론의 기본 방향을 보면서 우리 가톨릭 언론의 기원과 그 동안의 역사를 살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국상 : 가톨릭 언론이라는 말이 상당히 생소하고, 과연 가톨릭 언론이라는 것이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어쨌든 그 기원을 더듬어 본다면 1906년에 창간된 경향신문과 그 부록인 보감(寶鑑)을 우선 둘 수 있겠습니다. 당시 애국 계몽 운동과 복음화를 목표로 했던 경향신문은 일제의 탄압으로 1910년에 폐간되었고, 보감은 경향잡지로 제호를 바꾸어 1911년에 복간되었는데 이때부터는 계몽적인 성격보다는 교리지식의 전달을 주로 한 내용이 부각되었습니다. 따라서 순수 교회 언론의 기원은 경향잡지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가톨릭신문은 1927년 4월 1일 대구교구 남방천주교회의 청년회 회보로 시작된 것인데 1960년도부터 신문 판형으로 체제를 갖추면서 최근 평화신문 발행 이전까지 30여 년 간 한국 가톨릭의 유일한 가톨릭 소식 주간지로서 한국 가톨릭 언론을 주도하여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상완 : 제가 1963년도에 경향신문에 입사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천주교 경성교구 유지 재단이었는데 그때 교구에서 신문 경영이 어려워 평신도인 이준구 씨에게 경영 위탁을 시켰고 그 뒤 1년 이내에 교회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향신문을 위탁 관리인이 경영하다가 나중에 교회가 손을 떼는 시기에 입사한 것인데 물론 경향신문의 역사에 대해서는 선배나 서적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천주교에서 경영하던 초기에는 신문이 잘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미군정 하에서도 부수가 1위였다고 합니다. 그 뒤 1957년도에 실린 자유당 정권에 대한 비판 기사들이 문제가 되어 강제 폐간되었고 4. 19 의거 이후 대법원 확정 판결로 복간이 되었으나 공백 기간 동안 독자를 다 빼앗기 고 또한 시설도 낙후되어 재생하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장면 박사가 제2공화국 총리가 되면서 경향신문의 위상이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과연 경향신문이 여당지인지 야당지인지에 대한 논쟁이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판매 부수의 신장이 안 되고 오히려 떨어지자 경영진에서는 장면 정부를 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적자가 계속 누적되니까 평신도 이준구 씨에게 넘겼는데 이것이 불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어도 교회가 계속 관리 운영했으면 재생할 수도 있었을텐데 5.16 이후 1,2년을 견디지 못해서 결국 교회의 손을 완전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태호 : 아시는 바와 같이 평화신문,평화방송의 역사는 일천합니다. 평화신문은 현재 평화방송의 일개 국(局)으로 편성되어 있는 만큼 저는 평화방송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989년 3월 2일 방송 재단법인을 설립했고 금년 4월 15일에 개국해서 6개월이 지났고,지난 10월 15일에 가을철 정기 프로그램 개편을 실시하였습니다. 짧은 역사로 인해 평화방송의 종합적 성격이나 역할을 짚어 보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일단 주된 관심 방향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나름대로 말씀드리면 평화방송은 종합 편성을 지향하여 직접 선교와 간접 선교로 선교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직접 선교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회에 직접적으로 전파하는 협의의 선교를 말하고,간접 선교는 ㅡ 종합 편성이기 때문에 간접 선 교라는 말이 나옵니다마는一 어떤 사물이나 사회 현상의 밑바탕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깔고 바라보고 해석해 주는 역할을 가리킵니다. 이런 기본 목표에 따라 서 이념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중요한 내용은 하느님과 인간,인간과 인간을 잇는 소통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체현하여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과 이념에 따라서 방송을 진행해 왔는데 이번 가을철 프로그램 개편에서는 종교 부문을 강화하여 종교 방송 고유의 특성을 살리는 동시에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상당히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종합 편성은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일 뿐이고 목표와 이념은 선교에 있습니다. 그런데 목표와 이념은 원리적인 것이지 만 추상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순간 변화하는 현대 사회를 순발력 있게 소화해 내기가 힘든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 목표와 이념을 설정해 놓은 이상 꾸준히 추진함으로써 복음을 전하고 사회를 평화롭게 만드는 데 평화방송이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언론의 현주소


김정수 : 지금까지 교회 언론에 종사해 오신 분들의 수고가 대단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마는 제가 보는 면에서는 가톨릭 언론이라는 것이 있느냐 할 때 선뜻 있다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가톨릭 언론에 종사해 오신 분들 이 지금까지 모든 사건이나 사물을 신학적인 시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루는 대상이 사회냐 교회냐 하는 문제보다 얼마나 신학적으로 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전에 평화신문이 사회 신문의 흉내를 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까 교회에서 통제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톨릭 신문의 경우도 대상만 다를 뿐 마찬가지라고 보고 우리는 참으로 진솔하게 가톨릭 언론이 한국 사회 안에 없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근본적 시각 에서 가톨릭 언론을 보고자 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사회 자료인 보안사 민간인 사찰 문제에 있어서 평화방송이나 가톨릭신문이 1,300명의 명단까지는 제시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에 대한 국민의 피해는 어떠하며 얼마나 반인간,반교회적인 지를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집어내어 해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의 자료를 가지고서도 하느님의 시각으로 일반 신자나 사회인들이 근본 바탕을 보도록 하는 것이 가톨릭 언론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대중성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경영의 합리화 문제를 외면하는 것도 아니면서 일반 신문이나 방송과는 다르게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삶에 대한 근 본적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진정한 가톨릭 언론이 되려면 끝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합니다. 사실 시간적 여유를 낼 수 있는 경영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회 언론 종사자들이 깊이 있는 공부,특히 교회 언론에 필수적인 신학적 시각을 키우는 공부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실 것입니다.


어려운 실정이지만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낳기 위한 쌍방의 노력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평화방송의 경우 단시일 내에 다른 방송사와 같은 수준에 오르려 하지 말고 적은 인원과 여건에서나마 1?2년은 최소한의 방송 시간을 내보내면서 배우는 시간에 더 많은 힘을 쏟았어야 하리라 여깁니다. 보도는 다른 곳에 서 하니까 평화방송은 오전 오후의 몇 시간씩만 방송을 하되 청취자가 오늘의 문제를 깨칠 수 있도록 중요한 시사,문화 문제들에 대한 해설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예컨대 ‘한동희의 경제쇼‘(오후7:20-7:50)를 좋아하는 청취자들 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경제 문제의 해설이라고 여깁니다. 이런 요청 사항 을 고려하면서 가톨릭 언론의 현주소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지요.


최상완 : 저도 가톨릭 언론의 부재에 대한 의견에 동감을 합니다만 우선 우리나라 언론의 현황을 보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일간지, 주간지,교양 월간지,여성잡지들로 언론 춘추 전국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언론의 위상을 파악하고 정립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우선 내용적으로 가톨릭 평신도들이 많이 읽도록 제작해야 한다는 점과 특히 경영 방법 면에서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 현재 경영면에서 성직자,수도자들이 많은 활약을 하고 계신데 이 분들이 경영에 얼마나 수완을 발휘할 수 있는지도 짚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병원, 학교, 육아 기관, 양로원 등을 경영하시기도 하지만 언론 경영은 상당히 특수하기 때문에 전문 경영인 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경영 혁신이란 우선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겠고 신기법의도입도 생각할 수 있겠는데 현재 교회 언론은 투자가 너무 미흡하고, 경영자와 사원들 간에도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태호 : 한국의 가톨릭 언론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취지에 전폭적으로 동감하면서 현재 교회 언론의 현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본질적으로 보면 깊은 신앙에 토대를 두고 언론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엄격한 의미로 해석하면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고 양적인 면에서도 대구 지역의 매일신문 와에 일간지는 없고, 주간지와 방송과 여러 잡지가 있는데 잡지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주간지인 가톨릭신문과 평화신문은 사실상 거의 교회 소식에만 한정되어 있어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매스콤의 여러 형태를 포함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 내부 소식을 소화하는 데 그치고 일반 독자나 시민들에게 복음을 적극 적으로 전파하고 교화(敎化)시키는 기능에는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고국상 : 제가 볼 때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단지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건이 미비해서 제대로 되지 않을 뿐이지 노력을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가톨릭 언론 자체가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데 문제점이 있고 인력과 설비 투자가 부족하다 보니까 깊이 있는 언론이 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보겠고 교회 언론의 현주소와 관련하여 저희 가톨릭신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소식 보도, 의견 교환,보조 일치 그리고 복음화라는 4대 명제를 가지고 있고,외형상으로는 일반 신문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문제는 내용상으로 무엇을 다루며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라고 생각 합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가톨릭 언론이 일간지 흉내나 내는 정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신문은 역시 대중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깊이 있는 이야기만 해서는 곤란하고 오히려 가톨릭신문의 경우 현재 보도면이 다섯 면인데 한 두 면 정도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 언론을 일반 언론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는데,여론을 중시하고 여론에 힘입어 정책 변화나 개선을 요구하는 일반 언론과는 달리 교회 언론은 신자 다수가 원한다고 해도 그것을 배경으로 교도권의 결정을 번복시키려는 운동을 할 수도 없다는 것 입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런 점들이 한국 가톨릭 언론의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대 사회, 시국 문제에 대해 가톨릭 언론도 가톨릭적인 시각에서 판단하고 방향을 제시해 왔는데, 이런 문제를 자기 방식이나 소견대로 다루어 주지 않는다고 해서 가톨릭 언론을 비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교회 언론의 기능을 왜곡시키는 처사입니다. 교회 언론은 교회와 관련된 시국 문제뿐만 아니라 창조 질서의 파괴 행위 전 반에 대한 수호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또한 효율적인 신자 사목과 복음화를 위 한 고유한 기능에 더욱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 이러한 사목적인 교회 언론의 기능이 무시되고 있는 시각은 개선되고 교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점과 해결의 길 :


김정수 : 그렇다면 일부 언급된 부분도 있지만 교회 언론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되는데 여러분이 속해 있는 신문,방송의 안팎에서 제기되는 문제점과 그에 대한자기 변명 내지는 해결방안을 말씀해 주시지요.


최상완 : 교회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평신도들의 관심이 적다는 것인데 이것은 상당히 우려되는 사태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가톨릭신문,평화신문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죠. 제가 볼 때는 평신도들이 교회 신문을 많이 보는 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가끔 홍보주일에 캠페인을 합니다만 그것보다는 역시 신부님들이 일선 본당을 순회 방문해야 합니다. 아직도 평신도들은 신부님이 와서 강론을 하면 호응도가 높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교회 신문을 외면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읽을거리가 없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의 부류도 여럿인데 어떤 사목위원들은 교회 신문을 뭐 이 따위로 만드냐고 하기도 하고, 별 내용도 없이 딱딱하기만 하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야 교회 신문답고 구미에 맞는 것인지 제 자신이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최대 공약수를 도출해 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고국상: 신문이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들어온 사항이라 서 새로운 일은 아닌데 왜 어렵고 재미가 없는지 그 이유를 밝히기는 비교적 쉽다고 봅니다. 어렵다는 말은 교회 자체가 서구에서 들어 왔기 때문에 한국 신자들에게 생소한 용어가 많고 설사 그 용어들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대부분 이해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신문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어렵다는 것이지요. 내용에 있어서도 교회 소식의 단순 보도에 대해서는 그런 말이 안 나오지만 신학 적인 해설이라든가 성서 주해, 또는 예를 들면 주교 시노드 같은 기사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용어가 나올 때마다 일일이 해설을 해줄 수도 없으니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신문이 어려울 수밖에 없겠지요, 재미가 없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일반 신문들처럼 흥미를 유발하는 예로 소설이나 재미있는 뒷이야기를 실을 수도 없고 다루는 소재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내용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되도록이면 쉬우면서 재미있는 신문을 만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원고 청탁을 할 때에도 가능한 한 길게 쓰지 않도록 하고 내용도 평범하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써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쓰는 사람에게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독자들로부터 그런 요구를 많이 듣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태호 : 교회 언론 종사자들이 과연 그리스도 정신에 투철한가도 하나의 문제점이라고 봅니다. 보도하는 매순간마다 육화된 정신이 표출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이론과 생각에만 머물러 있는지 반성해야 하겠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앙의 무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봅니다. 경영 문제에 있어서도 일반 매스콤과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불리한 입장이고 따라서 우수한 인력을 영입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외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전문가를 양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 는데 예를 들면 해당 학과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거나 해외 유학의 길을 터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교회의 현 언론들이 경쟁 체제도 아니면서 의사소통이나 정보 교환이 잘 안 되고 있는데 엄격한 의미에서 모든 매스콤은 경쟁 관계이며 그것이 영원히 극복될 수 없는 과제라고 볼 수도·있지만 서로에게 도움아 되는 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교회 언론과 외부의 시각


김정수 : 그와 더불어 교회 내의 언로(言路) 내지 생각의 교류가 활성화되어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200주년 행사로 사목회의 의안과 사회조사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이에 대한 평가와 수렴이 얼마나 이루어4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시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은 은 교회의 힘이 결집된 것이었고 한국 교회의 실력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후속 작업이나 정책상의 수렴이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언론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시는 분의 입장에서 말씀해 주시고 아울러 우리 교회가 200주년 행사,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치루면서 사회의 일반 언론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론과 관련하여 가톨릭에 대한 일반 언론의 시각을 전반적으로 짚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국상: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은 신자들의 의견을 집약한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 이런 의견이 수렴되는 과정도 넓은 의미의 언론이라고 생각됩니다. 저희 가톨릭 신문은 사목회의 의안이 준비되는 과정에서부터 자료가 나올 때마다 거론 된 문제와 결과까지 다루었는데 최종적으로 주교회의에 상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 중에는 교회 전체적으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내용도 있겠고,또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항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신자들이 불편해 한다든가 사목적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그런 문제가 주교회의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결의되고 집행되는지에 대해 신자들의 관심이 높다고 봅니다. 그런데 주교회의라는 것을 볼 때 항 상 주교회의 전에 예고 기사가 나갈 때는 뭔가 중요한 것이 나올 거라고 잔뜩 기대를 하는데 막상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결론을 보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물론 주교회의 자체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 기관이 아니라 협의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대했던 현안 문제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전반적으로 신자 대중이 요구하는 것들이 가톨릭 체제 하에서는 신속하게 수f 되지 않고,어떻게 보면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것이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가톨릭의 특성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가을 주교회의 총회에서는 사목회의 의안뿐 아니라 새 교회법전,구 가톨릭 지도서 등을 종합하여 새로운 한국 가톨릭 지침서가 확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기도 하고 진이 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이번 주교회의에서는 사목회의 의안에서 제시된 의견들이 상당히 수용되리라고 전망합니다.


최상완 : 일반적으로 외부 언론에서는 가톨릭에 대하여 (‘오만하다’ 또는 ‘고 자세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특히 작년 세계성체대회 때 드러난 현상으로서 우리 가톨릭이 매스콤에게 따끔하게 얻어  맞은 것이 그때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당시에 메인 프레스 센타에서 하루 근무한 적이 있는데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회에 참가한 공산권 성직자가 몇 명이냐는 질문을 받아도 어느 누구도 대답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른다고 하면 취재 나왔단 국내외 기자들이 ‘당신들 뭣 하러 나와 있느냐’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결국은 사회 언론  대한 교회의 홍보 자세를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태호 : 부연하는 말이 되겠습니다만 일반 언론에서는 교회 관련 정보나 자료를 얻을 때 가톨릭 신문이나 평화신문, 주보를 참조하거나 다른 방송 보도를 이용하는데 그렇게 입수한 내용을 확인하거나 더 자세히 알려고 할 때 책임 있는 성직자나 교회 계통 신문에·문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교회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지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친절하고 호의적인 대응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봅니다.


고국상 : 세계성체대회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오갔었고 특히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기자들이 감정 섞인 글을 써서 그것에 대해서도 옥신각신했는데 근본적으로 교회가 대 언론 홍보에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반 매스콤에서 교회에 관심을 갖는 것은 큰 행사가 있을 때입니다. 평상시에는 교회가 정보를 제공해도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 태반인 반면 교황님이 오신다든지 세계성체대회를 한다고 하면 일반 언론에서 초점을 맞출 만한 좋은 소재이기 때문 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행사가 있을 때 한꺼번에 알려고 하니까 문의할 창구조차 모르는 것이지요. 물론 교회 측에서 이에 대비한 적절한 창구를 마련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다 보니까 혼란 과 시행착오 속에서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1984년 교황님이 오셨을 때에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러한 큰 경험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준비가 상대적으로 미흡했기 때문에 더 비판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봅니다. 따라서 큰 행사 때 언론의 요구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고 평상시에서부터 대 언론 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일반 언론이 교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면도 많이 할애하는데 종교계에 출입하는 기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개신교나 불교는 일하기가 상당히 편한데 가톨릭은 냉랭하기 짝이 없다고 불만이 많습니다. 특히 성직자나 교화 기관이 문제가 되는데 그렇게 비협조적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은 선교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정수 : 요즘 경향신문이 변신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대체적인 추진 방향이나 목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최상완 : 경향신문은 가톨릭에서 경영을 포기한 이래 대한민국의 역사와 보조를 같이하여 왔다고 볼 수 있고 대한민국의 격동기에 수난을 겪어 은 신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준구라는 개인이 경영하다가 법원에 공매되어 당시 자전거 생산 업체인 기아 산업에 낙찰되었다가 그 후 정치권력에 의해 자동차 업체인 신진자동차에 넘어갔으나 경영 부실로 손을 떼면서 경향신문이 문을 닫는 위기에 있었는데 권력의 조정에 의해 MBC 와 통합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식 회사경향신문사가 문을 내리고 주식회사문화방송경향신문이라는 통합형태가 있었고 다시 10.26 이후 특수하게 사단법인 경향신문사 체제로 운영되다가 2,3 년의 과도기를 거쳐 한국화약 그룹이 새 주주가 되어 오늘의 주식회사 경향신문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27년 이상 근무하는 동안 사주가 9번이나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팔자가 거센 신문이지요. 창간 44년 동안 많은 운영 주체가 거쳐 갔고 한때는 불명예스럽게도 정부 여당의 나팔수 역할도 했었고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의 새 경영진은 할 말은 하고 쓸 글은 쓰자 는 캐치프레이즈로 제2의 창간을 부르짖으며 재건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2의 창간을 통해서 할 말은 하고 쏠 글은 쓰는 신문으로 변모되어 언론의 정도(正道)를 걷고자 합니다.


교회에 바란다


김정수 : 이제 지금까지 나은 이야기 전체를 종합하면서 여러분들이 2천년대를 앞두고 우리 교회에 바라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일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바른 교회 언론 매체로 발돋움하기 위해 교회에 바라는 내용이 많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고국상 : 우선 제작면에서 볼 때,신문 기사는 기자들이 상당 부분을 작성하지만 전문가들에게 원고 청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 가톨릭 언론에서 보면 가톨릭 전문가가물론 평신도 중에도 많이 있지만 결국 성직자, 수도자들인데 이런 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문을 구하 는 것은 비교적 잘되고 있는데 원고를 청탁하면 쉽게 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분들이 협조해 주기 바라고 어떤 면에서는 그럴 의무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바쁜 형편 때문에 못쓸 수도 있겠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소극적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신문이 활성화되고 내용이 질적으로 높아지리라고 봅니다. 또 참여를 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모진 비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자기 지식이나 소견 상 맞지 않는 점은 비판 내지 비난까지 하면서 참여를 부탁하면 거부하는, 한마디로 이기적이 아닌가 합니다. 평신도 전문가들 은 비교적 참여를 잘하는 편인데 성직자,수도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서 최 위원님이 지적했듯이 궁극적으로 신문의 질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종사하는 사람의 질이 높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의 뒷받침이 절실히 필요한데 교회 기관대부분이 인적 자원을 양성하는 데 있어서 재정도 빈약하고 투자에도 인색하지 않은가 합니다. 인재 양성에 과감한 투자를 해서 언론의 질을 높이는 한편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구독 청취를 해줌으로써 재정에 도움이 되고 신문 방송의 권위가 생긴다고 봅니다. 이런 두 가지 요소가 교회 언론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며 한 가지 덧붙인다면 일선 본당 신부님들의 교회 언론 육성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으로 보급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산문이나 출판물을 본당 신부님 자신의 노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자들에게 구독하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몰상식한 행위는 근절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분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사제로서의 자질 을 의심받게 하는 언동으로서 교회 언론의 성장에 가장 큰 암적 요소입니다. 언 론 매체의 선택은 신자에게 당연히 부여되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태호 : 교회 언론이 민족 문제를 포함해서 거시적으로 어떻게 기여할 것이며 지금 현재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교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 종합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 문제는 현재 대화가 진행 중인 것을 보 면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며 머지않아 교회도 거기에 대비해야 할 - 은 민족의 관심사니까- 문제로 파악됩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교회 언론이 우선 복음 정신에 토대를 두고 민족을 단결시켜야 된다는 기본 원칙을 항시 잊지 않아야 되겠고,두 번째는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민족의 화해를 향한 구체적 방법론까지 제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화해만 한다고 저절로 단결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둘을 묶는 민족 동질성 및 정통성의 회복에도 초점을 맞 추어야 되겠고,통일로 초대될 민족의 번영을 기대하며 용기를 북돋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상의 네 가지 가닥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약하면 복음 정신, 화해,단결,용기의 차원에서 언론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교회에 바라는 것은 기초적으로 언론은 특수한 직능을 가진 영역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를 하신 것 자체도 일종의 언론 행위라고 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전체 영역을 담당할 수는 없으리라고 보고,대부분의 임무는 평신도가 맡아서 하게 되는데 언론 분야에서 직능을 수행할 만한 평신도의 숫자 가 많지 않으므로 언론에 관련된 평신도를 육성하고 그 역할을 점차 증대시키는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톨릭 언론인회도 있고 부분적으로 활성화되는 측면도 있지만 교회가 선교 전략의 일환으로 신중 하게 검토해 주기를 바랍니다. 또 주교회의 산하에 매스콤위원회가 있는데 현재 교구별 혹은 재단법인 형태로 산발 운영되고 있는 교회 내 언론 매체들을 그대 로 유지하면서 종합적으로 10년,20년 혹은 통일 문제까지 감안해서 포괄적인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 언론이라고 해서 일간지 하나 없고 ㅡ 영향력으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간지가 가장 막강하다고 보는데 一 현 평화방송만 해도 출력이 5kw밖에 안되어 경기도도 다 들리지 않는 상황이므로,지금까지의 산발적인 계획과 활동들을 교계적으로 통괄하 지는 않지만 매스콤위원회 외에 가톨릭 매스콤 센타를 운영할 수도 있겠고 적어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을 요약 하면 두 가지인데 첫째는 교회 언론 전반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재고해 달라는 것과 둘째는 공식 기구로서의 매스콤위원회가 통일을 포함한 먼 훗날을 바라보고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최상완 : 지금 주교회의에서도 이동호 아빠스가 북한선교위원회를 맡고 있는데 우리가 통일에 대비한 민족 성화를 위한 마스터 플랜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 북한 선교는 과거와 같이 외국 신부님들이 아니라 한국 신부님들이 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한국 교회도 자주성 내지 민족 주체성을 가지고 한국 신부님들이 주체가 되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그리고 교회 기관의 평신도 근무자들의 자질 향상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는데,평신도들은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생활인데 순명과 봉사만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이제는 교회 기관에 종사하는 분들이나 본당 사무원들의 처우 개선에 힘쓸 때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타 직종에 비해서 교회 기관 근무자들의 처우가 너무 낮다고 보는데 교회 재정상 어려운 점도 있고, 신부님들의 희생적인 봉사에 비해 평신도들에게만 잘해 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 같습니다만 처우 개선을 통해 종사자들의 자질 향상도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저도 경향신문에 오래 근무했습니다만 과거에 계시던 분들은 ‘신부 밑에서 일하기 참 피곤해‘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런 점도 교회가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인력 투자를 해야 교회 언론은 발전할 수 있고 언론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정수 : 이제 오늘의 대담을 마치면서 지금까지 좋은 말씀을 들려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서 지적하신 대로 경영의 합리화와 유능한 언론 종사자들의 다양한 배출로 가톨릭 언론 전체가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기를 진심으로바랍니다. 교회의 풍부한 지원과 언론 종사자들의 연구, 신학지식의 함양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울려 퍼질 때 생동하는 힘,진리,정의,사랑이 우리 사회 안에 확산되리라 여기며 아울러 우리 사회의 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확신 합니다. 여러분들의 활동에 하느님 아버지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충만하기를 빌면서 오늘 ‘사회의 성화를 위한 교회 언론의 역할’에 대한 대담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