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제 2권 제 2편 제 2부 개별 교회와 그 연합
1990년 11월호 (제 142호)
제1절 개별 교회 (6) 1983년의 교회법전 가. 준교구 대목구(라틴어 vicariatus apostolicus : 영...

주일의 말씀
1990년 11월호 (제 142호)
모든 성인 대축일 : 11월 1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묵시 7.2-14) : 사도 요한은 세상의 ...

주간 부활 축일인 주일
1990년 11월호 (제 142호)
4. 주일의 의미 주일은 그 명칭과 기원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여러 가자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 문제
1990년 11월호 (제 142호)
I. 문제의 제기 우리는 19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한국 땅에 모시고 서울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

신앙의 성숙에 이르는 길은 무엇입니까?
1990년 11월호 (제 142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기...

나의 고백
1990년 11월호 (제 142호)
김대중(金大中) 총재는 전남 목포 출신으로 목포 공립 상업 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 경희대 대학원에서 ...

우리 시대의 표정
1990년 11월호 (제 142호)
1. 상징의 의미 인간의 삶은 상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흐름이다. 마치 위대한 강물과도 같이 그 상징은...

신앙의 발전을 위한 신심 활동
1990년 11월호 (제 142호)
대 담 : 정옥동 (레지오 마리애 서울 세나뚜스 단장), 전성민(성령쇄신 봉사회 서울 10지구장), 허종열 (...

신자들의 신앙 성숙을 위한 소고
1990년 11월호 (제 142호)
I. 머리말 “여러분은 벌써 오래전에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어야 할 터인데,하느님의 말씀의 초보...

말이 문제되는 신앙 생활
1990년 11월호 (제 142호)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평신도로서 신랄한 비판과 제안을 해달라는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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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자료 1990년 11월호 (제 142호)

주일의 말씀

장인산 (청주교구 교현동 천주교회 신부)

모든 성인 대축일 : 11월 1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묵시 7.2-14) : 사도 요한은 세상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가운데 벌과 무서운 재앙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반면에 구원된 사람들은 하느님의 옥좌 앞에 영광스럽게 모여 있는 광경을 묘사한다. 세상은 암담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옥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 양께서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묵시 73), 성인들은 주님의 구원의 초대에 합당하게 응하신 분들이다. 오늘 독서는 우리에게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어넣어준다.


제2독서(1요한 3,1-3):하느님의 사랑의 은덕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느님의 자녀란 말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하느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사람으로서 받은. 사랑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이웃을 도움으로써 하느님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은혜인지를 깨닫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 신자들도 믿는 내용을 즉시 알아듣지 못하고, 천천히 깨닫게 될 때도 있다. 우리가 신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깨달을 때에야 진리로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복 음(마태 5,1-12) : 산상 수훈의 진복 팔단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올라가야 하는 영혼의 사다리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가는 사람의 생활의 단계를 보여 주는 거울과도 같다. 이 진복 팔단의 정신으로 한걸음 한걸음 주님을 따르며 살려고 각자 노력할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성덕을 주신다.


2. 강론 핵심


모든 성인 대축일의 역사는 4세기로 추정된다. 시리아 교회의 에프렘 부제와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저서에 모든 성인 치명자들의 축일로 5월 13일 또는 성신 강림 대축일 후 첫째 주일이 언급되었고, 이 축일은 오늘날에도 동방 교회 전례력에 ‘모든 성인의 주일’이라는 명칭으로 지내져 온다. 서방 교회에서는 7 세기경부터 모든 성인 치명자들의 축일로 5월 13일에 거행되었다. 그리고 로마의 판테온 성당을 복되신 동정녀 성모 마리아와 모든 치명 성인들의 공경을 목적으로 5월 13일에 축성하였다.


모든 성인의 대축일은 마치 추수감사절과 같은 축일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성인 성녀들은 주님의 상혈의 씨앗이 피 어나 열매를 맺은 것과 같다. 아직 추수는 끝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로부터 성덕으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성인의 대축일은 우리들의 시야를 모든 피조물의 목표인 구세주의 재림에로 향하게 만든다. 하느님은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 아직은 지나갈 세상에서 살며 신음하고 있는 우리이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신앙에로 불러 주시어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위로를 받게 해주신다. 우리도 완전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기쁨을 누리게 되리라는 희망이 있다. 성신께서 주시는 은혜는 바로 이 희망의 보장이 되는 것이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하느님께서는 성인들을 우리의 모범과 수호자로 뽑으셨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진심으로 기뻐하십시오. 이 훌륭한 성인(성 라우렌시오)의 행복한 종말을 생각하면서 다 함께 용약하십시다. 하느님께서는 성인들을 우리에게 모범으로 또한 수호자로 정해 주셨습니다. 전세계에 하느님의 영광이 성인들을 통하여 전파되었습니다. 어느 곳에나, 동 편에나 서 편에나 주님의 성인 둘의 찬란한 빛이 영광스럽게 빛나고 있습니다. 성 스떼파노가 예루살렘의 보배이듯이 성 라우렌시오는 로마의 자랑입니다. 우리는 이 치명 성인께서 항상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여 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성인께서는 우리를 늘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깨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2디모 3,12) 그러므로 성 라우렌시오의 사랑의 정신이 우리를 도와 튼튼하게 만드시고 흔들리지 않는 그분의 굳건한 믿음이 우리를 항구하게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도 모든 유혹을 이겨내어 성부와 성신과 함께 세세에 영원히 살아 계시고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둘것입니 다. 아멘. (레오,성 라우렌시오의 기일에 행한85번째 강론, 4)


4. 예화 : 소화 테레사 성녀의 모범


소화 성녀 데레사의 생활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한번은 빨래를 하는데 옆에 있던 수녀가 데레사가 미우니까 비눗물을 튕기려고 방망이를 똑바로 치지 않고 옆으로 데레사쪽을 향하여 두들겼다. 데레사는 구정물을 맞으면서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참아냈다. 또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뒤에 있는 자매가 묵주로 장궤틀을 건드리면서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어 분심을 유발시켰다. 그래도 조용히 그 자매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나중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데레사가 혼자서 옷을 입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동료 수녀 한 분이 옷을 입혀주고 벗겨주는 도움을 주었다. 하루는 옷을 입혀 주다가 핀으로 어깨살을 뚫어 옷을 고정시켜 주었는데 데레사는 고마운 마음에 친구가 미안해 할까봐 말을 하지 않고 하루 동안 그 고통을 달게 참았다. 저녁에 옷을 벗기던 수녀는 그 사실을 알고 데레사의 인내심에 경탄하였다. 이와 같이 데레사 수녀 는 일상생활 중에 당하는 작은 고통과 희생을 꽃으로 엮어 주님께 바쳤기 때문에 소화 데레사라고 불리운다. 성인들은 이와 같이 우리의 생활 전체를 하느님 께 봉헌하는 모범을 보여 주신 분들이다.


5. 마무리 묵상


성인들과 죄인들, 모든 인간이 주님의 제대 주위에 몰려든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원하시기에 우리 죄인들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느님의 자비는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죄인들은 세례와 고백성사를 통하여 성총 지위에 오름으로써 의인들 반열에 들게 되고 의인들은 다른 다섯 가지 성사의 은혜를 통하여 강건하여진다. 기도와 성사로 필요한 힘을 얻고 주님의 몸으로 양육 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해주신다.


연중 제31주일 : 11월 4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말라 1,14-2,10) : 말라기 예언자 시대에 예루살렘의 성전이 다시 재건되었다(그리스도 강생전 515년). 그러나 거기서 거행되던 예식은 하느님을 참으로 흠승하는 공경이 되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사제로 뽑으신 레위 지파의 사제들이 의무를 충성스럽게 이행하지 못하여 하느님께도 영광을 드리지 못하고 백성들에게도 은혜를 전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예언자는 사제들에게 충성스럽게 하느님을 섬기고 백성들을 옳게 가르칠 것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일깨워 준다. 만일 사제들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백성들도 사제들에게 존경심을 갖지 않으며 성실한 생활도 불가능하게 된다고 역설하였다.


제2독서(1 데살 2,7-13) : 설교하는 사람은 어떻게 자기가 전하는 말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달을까?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의 말과 하느님의 말씀을 구분할 수 있을까? 거기에는 두 가지 척도가 있다. 하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것을 확신하였고,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들었다. 둘째는 말씀에 행동이 따라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을 가르칠 뿐 아니라, 전 생활을 온전히 부르심을 받은 사람답게 바쳤다. 사도 바오로가 보여 주신 모범은 모든 사제들에게 목자로서의 길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로만 바오로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눈으로도 그분의 행동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복 음(마태 23,1-12) :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경건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구약의 법을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였고 율법을 생활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신다. 바리사이파 대다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율법을 지키면서도 마음에는 자신들만이 최고라는 교만이 도사리고 있었고, 사랑이 없는 마음으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하신 책망은 오늘을 사는 우리 현대인에게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2, 강론 핵심


정치인, 사업가, 예술가, 종교가 등 모든 사람이 각자 맡은 역할을 가능한 한 이행한다. 모든 사람이 다 옳게, 또 믿음직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적은 수의 사람만이 실제로 그렇게 산다. 각자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 지 반성해야 한다. 남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경건한 말을 하면서, 진리를 전하면서도 본인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사람에게 엄한 심판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교화의 목자들은 사랑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모든 신자들을 끔찍이 사랑하셔서 아버지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사랑하듯이 하였습니다. 그런 뜻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2고린11,29), 이런 자세를 다른 누구보다 먼저 교회의 스승이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베드로에게 말씀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요한21.17)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의 양들을 또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택하실 때에도 먼저 그가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신 다음 유다인들의 지도자로 간택하셨던 것입니다. 다윗 왕도 자신의 백성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왕좌에 올랐던 것입니다. 다윗은 어린 나이에도 자기 백성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야만족을 쳐이기는 모험을 감행하였습니다.·····사무엘도 자기 백성을 굉장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의 말씀을 하였던 것입니다. “나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리라. 기도하지 않는 죄를 야훼께 짓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1사무I2,23). 마찬가지로,아니 이분들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사도 바오로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보살폈습니다.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셨으면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그때 여러분은 만일 할 수만 있었다면 눈이라도 뽑아서 나에게 주지 않았겠습니까?”(갈라4, 15).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 누구보다도 유다인들의 스승들을 질책하신 것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목자들에게 그들을 쳐서 이르는 내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망하리라. 양을 돌보아야 할 몸으로 제 몸만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아!”(에제 34,2). 그들은 주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살았습니다. “너희가 젖이나 짜 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을 돌볼 생각은 않는구나. 약한 것은 잘 먹여 힘을 돋구어 주어야 하고 아픈 것은 고쳐 주어야 하며 상처 입은 것은 싸매 주어야 하고 길 잃고 헤매는 것은 찾아 데려 와야 할 터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그들을 다만 못살 게 굴었을 뿐이다”(에제 34,3-4), 그리스도께서는 정말로 좋은 목자가 해야 할 기준을 정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 10, 11). (요한 크리소스토모,로마서 주해, 30번째 강론 4)


4. 예화 : 본당 신부의 주보 성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모범


비안네 신부는 본당 신부로 성인품에 오르신 분으로 모든 일선 사목자들의 주보 성인이시다. 그분은 망가뜨릴래야 망가뜨릴 것이 없던 시골 작은 본당으로 발령을 받아가시면서 인자하신 성모님께 본당 신부를 해주시면 자신은 기꺼이 보좌신부 노릇을 하겠노라고 간절히 도움을 청하면서 본당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고장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었다. 도박,음주,저주가 바로 그것이었다. 신자들은 거의 다 냉담 상태였고,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날마다 도박과 음주 그리고 만나면 인사말부터가 저주였다. 비안네 신부님은 실망하지 않고 메일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방문하고 겸손하고 온순하게 신자들과 주민들을 대하였다. 잘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야단칠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화를 내지 않고 늘 조용히 타이르고 온유한 자세로 만났다. 하느님은 비안네 신부의 작은 마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기적의 샘물이 솟아나게 하셨다. 세 가지 특징은 사라져 버렸고 모든 사람들이 회개와 신앙의 은혜를 받게 된 것이다.


5. 마무리 묵상


사람이 큰일을 많이 행하는 것으로 하느님 앞에 가치 있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이 다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뿐이다. 즉 믿음을 순수하게 간직하는 것과 마음의 가난을 터득하는 일과 자유로이 봉사할 수 있게 되는 것 등은 모두 하느님의 도우심 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연중 제32주일 11월 11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지혜 6,12-16) : 인간의 정신은 진리를 추구하도록 창조되었다. 진리를 찾지 않고 안일하게 지내는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놓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부지런한 인간은 무엇이 이 세상을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섭리하는지 알고자 한다. 이렇게 진리를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의 눈에는 하느님께서 놀라 운 솜씨로 지어내신 우주 만물의 아름다움과 그 신비스런 질서가 드러나게 된다. 구약 성서에는 지혜가 가끔 인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요한 복음은 지혜를 말씀으로 설명하였다. 말씀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셨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만큼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다.


제2독서(1데살 4,13-18) : 사람이 죽으면 그다음엔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은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오늘 독서의 말씀은 죽음에 대하여 겁이 많은 우리에게 확실한 대답을 준다. 세상 종말에 있을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사도 바오로는 데살로니카 전서에서 다섯 번 말씀한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이루어질 사건의 핵심은 4장 14절의 말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주님께로 향해 나아 갈 것이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을 누리며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 그 리스도 신자들의 희망으로 이 희망 덕분에 신자들은 슬퍼하면서도 가쁨과 위안 을 받는 것이다.


복 음(마태 25,1-13) :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다시 오시는 날까지의 시기는 ‘교회의 시기’라고말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신자들은 희망을 가지고자 신의 믿음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지혜로운 처녀들“은 잠이 들어 있어도,그들의 마음은 하느님께서 지금 하라고 요구하시는 일을 성실히 행하고 있으며 장차 올 일을 대비하는 데에도 만전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아무런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허송 세월을 하고 있으니 주님이 오시는 날 급하게 “주여,주여” 하고 부르짖어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현재 시간을 헛되게 소비하였던 결과로 장차의 생활도 놓치게 되는 것이다.


2. 강론 핵심


하느님을 기다린다는 말은 우리 인생과 인류 역사의 참 목적을 알아 깨닫는다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꾸준히 기다린다는 뜻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정하신 날 그 시간에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이다. 주일마다 우리는 미사 때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기도한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께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마지막 날 보살펴 달라고 외치는 기도이다. 주님은 우리가 듣는 말씀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받아 먹는 성체 안에 살아 계신다. 또한 우리의 형제 자매 안에 현존하시지만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아서 주님을 못 알아 볼때가 많다. 이 잘못을 항상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여 우리의 안목을 넓혀 주시기를 청하자.


3. 교부들의 가르침 : 지혜로운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의 비유


처녀들이 가지고 있던 등불은 낮이 될 때까지 비추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도착하실 때까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순결과 정의의 태양이 떠올랐기에 더 이상 등불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유다인들이 등불에 필요한 재료를, 즉 기름을, 다시 말하면 선행을 쌓아 두었을 때는 빛이 꺼지지 않고 계속 밝혀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기름은 떨어졌고, 악행에 빠졌을 때 등불도 완전히 꺼져 버렸습니다. 처녀들은 다시 교대로 등불을 켜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천상에서 내려오는 불변의 등불을 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시대에 선행과 착한 양심의 좋은 기름을 공급 하는 임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되겠습니다. (메토디우스,잔치와 동정성에 관하여,6번째 강론,4)


4. 예화 :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


위대한 성인들은 신앙생활이 감정만 가지고는 부족하고 지혜가 있어야 옳게 영위된다는 중요한 사실올 강조하여 가르쳤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차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름과 만일에 대비하여 여분의 바퀴도 갖추어야 하는 것처럼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에 일어나는 감동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수많은 개혁 수도원을 창설했던 스페인의 아빌라 데레사 성녀께서도 지성을 가지지 않고서는 수도 생활도 불가능하다고 역설하였다. 한번은 한 젊은 지원자를 편지로 소개받았는데 핑장히 열심하다는 것이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다음과 같이 답을 써서 보냈다. “그 지원자가 지성도 갖추었는지요? 열심은 우리가 그에게 심어줄 수도 있지만 지성은 심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철이 나는 것은 나이가 들고 안 들고에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철이 들어 신랑을 맞이할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미리 준비하였지만,어리석은 처녀들은 철이 들지 않아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5. 마무리 묵상


약속 시간에 늦게 되면 부끄럽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만든다. 학교에 늦게 가면 선생님을 화나게 만들고 친구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된다. 차 시간에 늦게 가면 떠나가는 기차의 뒷꽁무니나 바라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좀 시간을 잘 짜서 했더라면!’ 하고 자신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식사 시간에 늦게 가면 남은 것을 먹을 수밖에 없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놓치게 되고 강론을 못 듣게 되는 손해가 생긴다. 우리가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고 또 아무 사람도 내면으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결과가 아닐까? 우리는 미사에 참례할 때 무엇을 기대하고 또 누구를 기다리는가? 주님과의 만남을 진심으로 고대하고 영성체 때 주님을 반가이 맞아들이는가? 그렇다면 미사에 미리 와서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하고 나서 미사에 참례해야 할 것이다. 주님과의 만남을 잘 준비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형제 자매를 인자하게 만나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 험하면 할수록 이웃에게 사랑을 가지고 대할 수 있게 되는 때문이다.


연중 제33주일 : 11월 18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잠언 31,10-31) : 오늘은 잠언서의 끝 부분에 들어 있는 부인에 대한 칭찬의 말씀을 듣는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부인을 지혜의 화신으로 여기는 말씀 이 나온다. 지혜는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지혜로운 부인은 정말로 사랑스러운 부인으로서 참된 보배이다. 그런 여인은 온 집안의 행복이다. 지혜로운 부인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을 베풀 줄도 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닮아가는 표시이다.


제2독서(1 테살 5,1-6) : 그리스도 신자는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산다. 이 지상에는 빛과 어두움이 공존한다. 주님의 날이 임하시면 누가 빛에 속하여 살았고 누가 어둠에 속하여 살았는지 분명히 드러날 것 이다.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더 이상 밤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낮, 즉 그리스도께 속하는 사람들이다. “교우 여러분,、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대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습시다……우리는 대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믿음과 사랑으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구원의 희망으로 투구를 씁시다.” 이 말씀은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 희망, 사랑의 무기를 가지고 깨어 살아야 한다.


복 음(마태 25,14-30) :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주신 각자의 고유한 재능과 기술이 있는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일하며 책임을 지닌다. 마지막 날 하느님 앞 에 나아가 셈을 바칠 때 각자 얼마나 받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가지고 얼마나 노력하였는지가 중요하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때에 노력하여 결실을 맺는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오실 것이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2. 강론 핵심


우리는 주님의 날,즉 마지막 심판 날이 언제 올지 모른다.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좀 무섭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미리 알면 늦기 전에 고백성사도 받아 구원의 준비를 갖출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빛 안에서 거니는 사람은 마지막 시간이 언제 오는지 몰라도 무서워 할 이유가 없다. 평상시에 만나던 주님을 옳게 만나기 때문이다. 종말이 오는 그때까지는 일하는 시간이다. 충성스럽게 일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충성이란 가진 것을 보존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받은 은혜를 가지고 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일로 우리는 성장하고 익어간다. 준비를 잘 하여 모든 것을 잃지 않도록 성심껏 노력해야 한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심판을 항상 생각하십시오.


밤낮 다른 걱정은 하지 않고 모든 피조물이 심판관이신 주님을 에워싸고 행한 모든 행실에 대하여 심판받을 그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지나온 생활에 대하여 답변할 수 있을까 고 생각하는 영혼은 참으로 행복한 영혼입니다. 그날과 그시간을 늘 목전에 두고 생각하며 공의로우신 주님의 심판을 받을 때 대답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게 되고 범하더라도 경미한 죄만 짓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늘 올바르게 두려워하는 영혼은 원치 않는 행동이나 육욕의 꼬임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하느님을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그분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리고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기도는 힘이 있어서 하느님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만듭니다.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 마십시오! 기도는·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우리가 육신을 떠나갈 때에도 좋은 미래의 양식이 되어줄 것입니다.

(바실리오, 한 과부에게 보낸 서간, 라틴어 교부 전집 174권)


4. 예화 : 소와 돼지의 차이점


한번은 돼지가 소를 찾아와 어째서 사람들이 소는 칭찬을 많이 하는데 돼지는 칭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불평을 털어 놓았다. “너도 나도 똑같이 사람들을 위하여 고기를 제공하고 좋은 일을 하지 않는가? 나는 삼겹살 고기만 제공할 뿐 아니라,내장은 순대로, 머리는 누른 고기로, 털은 구둣솔 재료로 내 놓는다.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바닥까지 다 주는데 어째서 내 칭찬은 하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한참 동안 가만히 있던 소는 입을 열어 이렇게 대답하였 다. “너와 내가 다른 점은 혹시 너는 죽은 다음에 베풀고,나는 살아 있을 때 베푸는 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소는 살아 있을 때 우유를,즉 자신의 몸의 한 부분을 이미 내어주며 살고 있다. 마지막 심환 날에 주님은 살아서 선행을 베푼 사람에게 천상 은총으로 갚아 주시기 위하여 문을 열어 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고 죽은 다음에야 남에게 내놓는 것은 기름이 떨어져 늦게 돌아와 문을 두드리는 처녀들과 같이 될 것이다.


5. 마무리 묵상


그리스도 우리 구세주께서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 당신의 말씀,당신의 진리,영원히 살게 하는 당신의 몸, 그리고 당신 영(성령)의 선물들을 주셨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과제는 이 은혜를 잘 활용하여 좋은 열매들을 맺는 데 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 : 11월 25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에제 34,11-17) :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즉 왕들과 지도자들은 잘못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그들은 자신들만을 생각하였고 백성들을 착취하였다. 법과 질서를 확보하기는커녕 모든 것을 자신들의 안일만을 위하여 악용하였다. 그 결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벌을 받았다 (그리스도 강생전 587년) 모든 유다인들은 귀양지로 끌려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 백성을 돌보시려고 하신다. 당신 친히 착한 목자로서 양떼를 살리려고 하신다. 사방으로 흩어져 길 잃은 양떼들을,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당신 백성들을 다시 모아들이시어 집으로 데려가시려고 하신다. 그리고 착취와 불법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시고 산한 사람들에게 권리를 되찾아 주실 것이다.


제2독서(1 고린 15,20-28) : 세상에는 아직도 죄와 죽음이 세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죽음은 더 이상 마지막 종말이 아니며 생명이 죽음을 눌러 이겼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전능과 지혜와 자비가 세상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 미래가 있음을 안다. 천주 성자이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완성은 하느님께서 전능을 떨치시며 군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에는 죄도 죽음도 사라지고 피조물은 그 목적올 찾고 인간 온 완성을 얻게 될 것이다.


복 음(마태 25,31-46) : 주님께서는 왕으로서, 목자로서 그리고 심판관으로서 모든 사람들을 모아들이실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하여 나누시고 상과 벌을 내리실 것이다. 심판관이신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심판의 척도로 다름 아닌 사랑의 행동을 제시하실 것이다. 사랑을 베푼 사람과 베풀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실 것이다. 말이나 마음으로는 족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진 사랑의 실천이 심판 기준이 될 것이다. 주님은 가난한 사람 편에 서시어 심판하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묘사되는 마지막 심판 장면은 우리들, 주님의 제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깨워 주는 교훈이다. 가난하고 헐벗은 형제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선행을 많이 행할 때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 강론 핵심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다”란 말은 현대인들에게는 그 표현이 진실을 충분하게 전해주지 못하는 말로 들릴지 모른다. 그 진실된 뜻은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 깨서 모든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모든 피조물 안에 살아 계시고 심장과 중심이 되시는 분이시다. 주님께서 왕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세속적 의미에서 뜻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세속적인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여 백성을 노예로 부려 먹고 착취하고 다스리는 통치자를 뜻한다. 사람들이 예수를 붙잡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 피하신 것은 주님께서 다른 종류의 임금이심을 알게 하여 준다. 사랑의 왕이시요 평화의 임금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하여 하느님의 통치가 알려지게 되었다. 하느님의 통치는 구원과 자유를 인간과 세상에 가져다주는 통치이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마지막 원수인 죽음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죽음을 쳐이기셨습니다. 치명자는 스스로 목숨을 바치기를 원하기 때문에 죽음이 그에게 아무런 슬픔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짓이겨진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은 사자는 겁장이도 질질 끌고 가는 법입니다. 가장 큰 뱀을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짓이겨 버리셨습니다. 무서운 사자를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수난으로 죽이셨습니다. 죽음을 꽁꽁 묶어서 땅바닥에. 눕혀 놓고 지옥의 문 앞에서 밟아 버리셨습니다……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상 죽음으로 용을 처치하셔서 어린이와 노인들이 겁 없이 죽은 뱀을 조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자는 주님의 늑방의 창으로 찔려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놀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이렇게 구원의 원천이 되시니 모든 사람의 입이 주님을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바트내의 야곱, 성 구리아스와 샤모나스 치명자들의 찬미,300?310)


4. 예화:죽은 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언제나 효험이 있다


신부님 한 분이 계셨는데 길을 가시다가 무덤이 보이기만 하면 누가 거기 묻혀 있는지도 모르지만 항상 주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죽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드리곤 하였다. 차를 타고 가시다가도 무덤을 보시면 그와 같이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 신부님이 피곤하여 눈으로는 무덤을 보면서도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날 밤 주무시는 신부님의 꿈 속에 사람들 몇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신부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는 향상 지나가시면서 기도해 주시더니 왜 저희들은 보시고도 그냥 지나가셨나요? 저희들도 가련히 보아 주세요.” 꿈에서 깨어난 신부님은 자신이 죽은 사람을 위하여 기도드린 것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음부터는 더욱 열심히 죽은 사람들의 무덤을 지나갈 때마다 열심히 기도를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5. 마무리 묵상


우리가 미사에 와서 주님을 만날 때마다 만왕의 왕이시요 자비의 하느님이신 구세주 임금을 만나게 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기에 우리도 미사에 올 때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형제 자매들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으로 도움을 베풀면 성체성사는 우리에게 축복과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의 선한 행동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 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을 알리고 만나게 해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 불리움을 받은 우리가 세상에서 다해야 할 중요한 임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