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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의 말씀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연중 제27주일 : 10월 7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이사5,1-7):이사야예언서의 유명한 ...

제 2권 제 2편 제 2부 개별 교회와 그 연합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제1절 개별 교회 3. 성직자치구와 자치수도원구 제370조 : 성직자치구와 자치수도원구는 특수한 ...

주간 부활 축일인 주일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이 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기뻐하며 즐거워하자,(시편 117,24). 그리스도교는 성서와 교회 전승을 바...

성서와 새로운 복음화
1990년 10월호 (제 141호)
*본고의 내용은 제4차 세계성서사도직협회 총회에서 브라질의 기초공동체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

나의 고백
1990년 10월호 (제 141호)
강영훈 국무총리는 평북 창성군 청산면 출신으로 만주 건국대학교와 미국 육군 참모대학을 수료하고 미국...

멕여서 보내자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여중 시절 필독서를 정해준 선생님이 계셨다. 강제성을 띤 건 아니었지만 문학 소녀였던지라 그 기회에 ...

선교사가 본 한국 교회의 실상
1990년 10월호 (제 141호)
대 담 : 반예문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홍콩난민선교) 김정수(사목주간·신부) 일 시 : 1990년 8월 1...

가톨릭의 종교 개혁
1990년 10월호 (제 141호)
I.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의 집중 폭우 프로테스탄트는 종교 개혁이란 개신교의 배타적인 독점물처럼 ...

1980년대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반성 - 성직자, 수도자, 신도의 특성
1990년 10월호 (제 141호)
I. 머리말 역사학은 어느 시대를 연구하는가? 그 연구의 범위 안에 역사 연구자 자신이 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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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대담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선교사가 본 한국 교회의 실상

반예문 / 김정수

대 담 : 반예문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홍콩난민선교) 김정수(사목주간·신부)

일 시 : 1990년 8월 17일(금) 오후 3?4시 30분

장 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목연구소

이번 사목대담에서는 한국에서 34년 동안 사목 활동을 하시다가 지난해 11월 이후 현재까지 홍콩에서 난민 사목을 하고 계신 반예문(Raymond F. Sullivan) 신부님을 모시고 지난 한국에서의 생활과 그동안 느끼신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비판적 의견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관한 말씀을 들어보았다. 신부님은 1927년 2월 4일 미국 뉴욕 출생으로 대학을 졸업한후 메리놀 외방 전교회에 입회하여 1954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고 곧 한국으로 파견되어 청주교구 내덕동 본당에서 사제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으며 1971년 초 가톨릭 매스콤 위원회 활동을 시작한 이래 매스 미디어 교육과 가톨릭 가요 대상을 제정하는 등 한국 가요의 발전을 위해 15년 동안 헌신 봉사하셨다.

김정수 : 반예문 신부님,오랜만입니다. 지난해 11월 한국 사목을 끝내시고 홍콩으로 떠나실 때 뵙고 오늘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이번 사목의 특집을 ‘한국 천주교회의 반성’이라는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마침 신부님께서 오셨으므로 34년간이나 우리나라의 사목을 마치신 선교사로서 한국 교회를 위하여 들려주실 말씀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신부님께서는 매스콤 분야에 많은 활동을 하시면서 우리나라의 가요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고 또 많은 분들이 신부님의 노고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1927년 2월 4일 뉴욕에서 출생하셨는데 어떻게 하셔서 메리놀 선교사가 되시고 우리나라에 오시게 되셨는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교사로서의 적합한 일터

반예문 : 제가 신부가 되고자 결심한 것은 대학 시절의 일이지만 이미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가톨릭 계통의 학교로 진학해서 공부했기 때문에 수녀님들의 좋은 표양을 보고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성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주님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마음을 간직했지 만 그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장래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어요. 결국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잘 아는 수사님, 신부님과 상의하고 고민하다가 기도 중에 메리놀신 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지요. 그래서 1954년도에 사제 서품을 받았고 총장 주교님의 명에 따라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동창 신부는 모두 40명이었는데 그 중 일부는 아프리카에 가게 되었고, 일부는 남미 지역 그리고 아시아의 일본, 대만, 한국, 필리핀에 파견되었어요. 한국에는 저를 포함해서 4명이 함께 왔는데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준비로서 미국에서 2학기 동안 한국말을 공부했어요.

김정수 : 우리나라에 오셔서는 처음으로 청주교구 내덕동 본당에서 사목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언제부터 어떻게 하여 매스콤 위원회에서 활동하시게 되셨습니까? 사실 1960년 말에는 우리 교회가 홍보 활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본당 사목에만 급급했던 때였습니다.

반예문 : 제가 충청북도에서 사목 활동을 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매스미디어, 특히 당시의 라디오는 공소가 있는 본당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어요, 보다 정확히 말하면 본당 생활뿐 아니라 전기불조차 없었던 마을 전체에 있어서 동네 스피커를 통해 들려 나오는 음악이나 정보는 주민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특히 홍보,계몽,선도에 있어서 효과적인 작용을 하였어요. 이와 같은 점에 착안하여 매스콤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지부장 신부님께 말씀드려 본당 사목을 그만두고 1971년 초 서울에 와서 매스콤 위원회 활동을 하 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신문사는 물론 방송국까지 운영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엄청난 발전이고 이를 보는 제 마음은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매스콤 위원회에서의 활동

김정수 : 현재 문화의 전수를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 홍보 수단의 활용으로 압니다. 이것은 교회 선교 활동의 새로운 길이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1971년부터 이 분야의 전문인으로서 일하시게 되면서 특히 어떤 분야에 역점을 두셨습니까?

반예문 : 처음에는 주교님들이 원하시는 대로 MBC 를 통해 전국적으로 5분 명상 프로그램을 방송했어요, 이때 두봉 주교님이 활약을 많이 하셨는데,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교회의 이름으로 청취자들에게 수준 높은 5분 명상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면 밤늦게 공부하면서 몸과 마음이 힘들 때 5분 동안 생각할 만한 이야기나 자료를 들려주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제가 당시 어떤 뚜렷한 계획이나 생각은 없었지만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외국의 매스콤 활동 관계자들을 만나서 이야기한 결과 제가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하여 1975년부터 77년 사이 미국에 가서 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한국 천주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생각했었어요.현대인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활용해야 하는데 복음 선교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사제 등 교회 지도자들이 그것에 대해 소양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신학교 교육에 있어서도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훌륭한 방법 즉 매스 미디어에 대한 기본적 교육 및 활용 방안을 거의 가르치지 못했어요. 신학과 철학을 연구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복음의 진리를 일반인들에게 전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매스콤에 관한 교육이 신학교 교과 과정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제야 조금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제가 듣기에는 부제반에서는 매스 미디어 워크숍도 많이 하고,교육 과정에서도 차차 교황청이 원하는 대로 코뮤니케이션 과목이 배정되는 것 같아요. 이런 교육이 성직자 수도자에게도 필요 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리고 일반 신자들의 경우에도 1주일에 한 번씩 미사에 참례하여 10?15분 동안 강론을 듣지만 사회의 각종 신문,잡지, 텔레비전에 나오는 메시지가 세속적인 것이 많고, 반복음적 가치관을 주장하는 일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은 제가 그 일에 서 손을 놓았지만 매스 미디어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신념에는 변함이 없어요.

김정수 : 사회 홍보 활동을 위하여 미국에서 석사 과정까지 마치셨다고 하셨는데 공부하고 돌아오신 뒤 한국 교회의 홍보 활동을 위하여 이룩하신 중요한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반예문 : 역시 주교님,신부님,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매스콤 교육을 실시한 것인데 특히 1972년에 한국 주교단을 위해 서강대학교에서 매스콤 워크숍을 개최 한 것이 가장 힘들고 중요한 일이었어요. 다행히 주교님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셨고 이를 계기로 하여 교구 신부님들을 중심으로 해마다 워크숍을 가졌는데 그 결과 매스콤을 중요시하는 신부님들도 많이 늘어났고 글을 쓰시거나 지방 방송국에 참여하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젊은 한국 신부님들이 매스 콤 위원회에 와서 일하셔야 되기 때문에 그 준비로서 제가 장학금을 조달하여 서강대학교에서 코뮤니케이션 관련 석사 학위를 받은 신부님들이 5?6명 있어요, 제가 매스콤 위원회 활동을 그만둔 뒤에도 몇 년 동안 연구해 보았지만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홍콩에 가기 전에 같이 일하던 이영숙(클로틸다)씨를호주에 보내 미디어 교육을 연구하도록 지원해 주었어요.

.김정수 : 매스콤 교육 활동뿐 아니라 1982년부터 가톨릭 가요 대상을 마련하여 건전한 가요를 국민들이 부르도록 노력해 오셨습니다. 이 가요 보급 활동에 대한 역사도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반예문 : 가톨릭 가요 대상은 가톨릭 매스콤 위원회의 이름으로 제정된 것인데 생각보다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상의 명칭도 관심을 끄는 데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우리는 좋은 가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상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교회는 가요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일반 대중, 특히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 모두가 제발 좋은 노래를 만들어 주십사 하는 의미로 상을 만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선정한 노래가 MBC 나 KBS 가 뽑은 노래보다 더 좋은 작품이라는 뜻이 아니라 다만 좋은 노래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염원의 상징으로서 교회의 이름으로 시상을 하는 것 이지요. 교회가 상을 주는 것을 저는 매우 좋게 생각합니다. 필리핀,호주, 미국에서도 그런 상이 많이 있는데 교회가 공정한 절차를 밟아 객관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김정수 : 한국 가요 외에 우리 노래를 영어판으로 마련해서 보급하신 것은 얼마나 됩니까?

반예문:제가 1980년대에 6개의 음반과 테이프를 제작하였는데,그중 특히 1986년도에 한국 가요를 영어로 번역하여 낸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 30여 년을 지내온 제가 한국 가요에서 맛본 기쁨을 한국 사람이 아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가수, 작곡가, 작사가, 레코드사, 디자이너 등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것이지요. 그 테이프에는 인생은 미완성 ( Life's Incompleteness ), 사랑의 미로( The Maze of Love ), 잊혀진 계절 (Changing Seasons) 등 12곡이 실려 있어요.

김정수 : 한국 가요계에 바라시는 것과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가 있으면 소개해 주시지요.

반예문 : 제가 지금 바로 미국에 다녀오는 길인데 현재 유행하고 있는 비디오 음악에 대해서 '뉴욕 타임즈’지의 기사를 보고 동감을 했어요, 그 내용은 노래가 비디오에 잡혀서 좋은 음악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무슨 말인가 하면 미국의 인기 그룹 '뉴 키즈 온더 블록’이 만든 노래 영화를 보면 장면이 중심이고 음악은 단지 뒷받침해 주고 있는데 그렇게 될수록 노래는 죽어 간다는 것 이지요, 가사 대신에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춤으로 온통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이 무슨 노래입니까? 한국의 가수들도 이와 같은 경향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미국 가수는 케니 로저스이고, 한국 가수로는 이미 자,김상희, 현미,최희준,김세환,송창식,양희은, 혜은이,윤시내 등 너무나 많지요.

김정수 : 저도 흘러간 노래를 참 좋아합니다.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공부를 할 때도 흘러간 노래 속에 담겨 있는 한국인의 정,고뇌,아품, 슬픔을 회상하면서 어떤 때는 많은 시간을 듣기도 했어요, 다시 신부님의 매스콤 위원회 활동으로 돌아가서 사회 홍보 활동에는 전문인 양성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적절한 물질적인 지원과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전문인 양성을 위한 교육 계획이나 제도적인 교육 시설을 마련하신 것이 있었습니까?

반예문 : 제가 그런 것을 참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중에도 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 등의 회원들을 위해서 미니 피정을 많이 시켰어요. 그분들은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신앙 생활을 위한 피정이나 워크숍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기꺼이 도와주었습니다. 정확한 현황은 모르지만 MBC ‘ KBS 등 서울과 지방의 방송국에도 신자들 모임이 잘되고 있는 것 같아요.

김정수 : 신부님께서 15년 간이나 매스콤 분야에 관여하시면서 한국 교회 안에 홍보 활동의 기초를 쌓으셨는데 그사이에 신부님께서 계획하셨다가이루지 못한 아쉬운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신부님의 뒤를 이어 일하실 분으로 어떤 분들이 있습니까?

반예문 : 제가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미디어 교육을 시켜 보았지만 사실 워크숍에참여한 분들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할 때 그것을 채워 줄 만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 맞는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호주에 유학 중인 이영숙 씨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이 분야에 상당한 발전이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신부님들 가운데 특별히 제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고 다만 워크숍을 받은 신부님들이 매스콤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기가 배운 것을 글로 발표하기도 하 고 교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메리놀 전교회의 활동과 특수 사목의 어려움

김정수:신부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신 때가 6,25 직후여서 우리에게는 물질적인 궁핍과 전쟁의 상처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국민을 위하여 메리놀 선교회가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전쟁의 아픔과 경제적 곤란을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반예문 : 저희들은 그 당시 옛날 메리놀 안 주교님의 지시로 미국 천주교 전재 부흥 위원회(NCWC)의 구호 물자를 배달하는 일을 많이 하였는데 골치 아픈 일이 가끔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너무 달라졌어요. 아직까지 어려운 신자들이 적지 않지만 어느 정도 잘사는 사람들도 많고 이제는 한국 교회가 이웃 나라의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라고 생각해요. 메리놀 외방 전교회가 1911년 설립될 당시 교구 신부였던 설립자는 외방선교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작업에 착수하였는데 이에 대해 일부는 좋은 생각이라고 참여하고,다른 일부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도 신부가 부족한데 왜 외방에 보내야 하느냐고 반대했어요. 그러나 외방 선교를 하면 그 민족도 그 이상의 축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해요.

김정수 : 우리나라의 사목 활동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라면 무엇이었습니까?

반예문 : 저희가 하는 일은 가끔 잘 이해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대 매스콤 위원회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신부 두 사람이 매일같이 사무실에 가서 무엇을 하는가라는 생각을 갖기 쉽다는 것이지요. 본당 사목의 경우는 매년 영세자가 몇 명이고 영성체한 사람이 몇 명인지 분명히 드러나지만 저희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윗사람들이 보기에 못마땅한 점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특히 방송국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할 때는 보고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은데 이와 같은 점은 저희뿐만 아니라 특수 사목에 종사하는 신부님들의 공통적인 어려움이라고 볼 수 있지요.

외국인이 보는 한국 교회의 부러운 면

김정수 : 한국인의 장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되시는지요? 그리고 한국 교회에 대하여 마음에 드시는 것이나 보존해야 한다고 여기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반예문 : 한국인의 장점은 다른 나라사람에 비해 정이 많다는 것이지요. 단점에 대해서는 특별히 이야기할 것이 없어요. 제가 한국 교회에 대하여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종교적인 관심이 대단하다는 것과 경제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이탈하는 사람이 적고 계속 전교가 잘된다는 점입니다. 일본이나 대만, 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창 신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애초에 그들이 기대 했던 대로 잘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맥아더 장군이 메리놀 수도회 총장 주교님에게 이제는 일본 사람들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신부들을 일본에 한참동안 많이 보냈는데 별로 성과가 없었어요. 대만의 경우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입교했지만 물질적인 발전에 따라 그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어요 한국은 놀라운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점이 맘에 드는데 이를 잘 보존해야 되겠지요.

김정수 : 그 원인이 무어라고 보십니까?

반예문 : 글쎄요.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제가 우리 나라 주교님을 대신하여 한국 대표로 마닐라의 한 회의에 참석했을 때 파키스탄 주교님이 저에게 "한국 천주교회는 왜 그런가?”라고 물으셨어요. 제가 무슨 말씀이냐고 묻자 "한국 교회는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 신학교는 꽉 찼고 영세자는 많고 매리지 엔카운터, 꾸르실료 등 여러 활동들도 잘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글쎄요, 주교님, 아마성령께서 많이 역사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했더니 주교님이 "나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은 안다. 그러면 성령께서 파키스탄에서는 무얼 하시는가?”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보기에는 한국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관심, 적어도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가끔 놀라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에요,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거든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곳 정부의 억압이 심해서 정의를 위해 외치는 천주교회의 역할을 지식인들이나 학생들이 '높이' 평가하기 때문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신비로운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순교자들이 흘린 피가 이러한 영광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한국 천주교회의 반성과 2000년대 .

김정수 :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 안에서 특별히 관심을 많이 받고 있고 또 현 시점에서 볼 때 적지 않은 구도자들이 있으며 성소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 교회만의 성과가 아니고 개신교,불교, 신흥 종교등도 번창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목의 특집 주제가' 한국 천주교회의 반성'인데 좀 더 진솔하게 우리의 문제와 잘못을 반성하면서 2000년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께서는 34년이나 이 곳에 계시다가 새 임지인 홍콩에서 일하시기에 한국 교회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우리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반예문 :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주어야 한다는 것이 복음 정신입니다. 김 추기경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축복받은 교회, 선택된 교회로서 더욱 깊이 반성 해야 하고, 많이 받은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제 한국 교회에 외방 수녀회도 생기고, 각 교구에서 신부들을 다른 나라에 파견하기도 하 고,특히 홍콩에서 가톨릭신문을 보고 안 일인데 평신도 선교사를 필리핀에 파견한 것은 당연하면서도 정말 기쁜 일입니다. 물론 일각의 의견대로 아직까지 이곳도 할 일이 많지만 시대적 상황이 한국 교회에 대하여 나눔의 정신을 기대하고 있다고 봅니다. 도시의 부유한 본당에서 아이들을 캠프에 보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지나치게 자신만을 위해 돈을 쓰지 말고 남을 위해서도 써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가톨릭 신자 비율이 6%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도 복음 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되겠지만 평신도들의 활동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으므로 힘을 쪼개어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할 것입니다. 홍콩에서도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유아 세례자는 많지 않고 나이 들어서 친구나 친척 등 아는 사람을 통해 입교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놀라는 것이예요. 한국 평신도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김정수 : 한국 교회가 이 민족을 위해,또 세계 선교를 위해 2천년대를 보면서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까?

반예문 :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지요· 지금 김 신부님께서 던진 질문을 깊이 생각하고 기도 중에 반성하고 연구해서 실천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인지 그렇게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제가 매스콤 위원회에서 오래 있었지만 좀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활발하면서도 지속적인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어요.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산발적으로나마 간신히 특수 분야의 연구 및 사목 활동이 지속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교회가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려는,그래서 한국 민족과 더 나아가 전세계에 대한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여기거나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따라서 교회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교회 전체의 입장에서 체계적이고 형평에 맞게 한국 교회의 할 일을 깊이 연구하는 기관이 필요 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이러한 일에 투신하려는 사람들을 키워 주고 뒷받침해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정수 : 사실 연구하는 분들이나 혹은 연구소들이 많이 있어야 함을 누구도 부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큰 효과 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뒷받침아 빈약하기 때문에 보통으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2천년대를 바라보면서 우리 교회도 연구 활동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반예문 : 예컨대 홍콩의 경우도 1997년 중국과의 통합에 대비하여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5개년 계획의 필요성을 누구나 느끼고 있지만 넓게 보지 못 하고 각자의 일에 바쁘니까 일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을 미루다 보면 막상 비상시가 되었을 때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후회하기 쉽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배출되어서 기초 분야뿐 아니라 광범위한 응용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홍콩에서의 활동 계획

김정수 : 34년 간 이곳에 계시다가 선교 장소를 홍콩으로 바꾸셨는데 그 사연과 그곳에서의 활동에 대해서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반예문 : 제가 출국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주님께서 이제는 다른 곳에서 선교하도록 부르신다는 소명 의식을 지니게 되었어요. 그 계기가 된 것은 아시아 지역 메리놀 전교회 지부장들의 연례 모임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등의 아시아 난민에 대한 새로운 사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지요. 하지만 난민 선교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제가 가지게 된 것은 10년 전에 매스콤 위원회 대표로서 태국에 갔을 때 얻었던 하루 동안의 수용소 체험 때문이에요. 결국 그러한 경험이 오랜 시간 제 마음 속에 잠재해 있다가 지원자를 찾는 수도회의 의중과 맞물려 홍콩으로 가게· 된 것이지요. 그곳 난민들을 도와주는 데 있어서 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쉽게 말해서 첫째 방법은 직접 가서 매일같이 봉사하는 것인데 현재 교회 단체나 의사 등 봉사 단체가 홍콩,태국에 여럿 있어요. 둘째 방법은 그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인데 저의 입장에서는 매일 수용소에 가서 봉사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고 그것보다는 제 경험을 가지고 간접적으로 돕는 방법이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때로는 난민들이 너무 많아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맥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들을 위해 수고하시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저도 그 사람이 한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데 서 힘을 얻어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은 비록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난민들과 연관된 미담, 짧지만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모아서 편집도 하고 노래를 만들려고 해요, 다시 말해서 제가 과거에 음반을 제작한 경험이 있으니까 난민들의 생활을 소재로 한 노래 음반이나 테이프를 만들어 메리놀 수도회 전교 지역이나 미국 등 여러 곳에 판매 보급하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홍콩의 한 작은 베트남 난민 수용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4개월 이상 그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제가 느낀 것은 수용소는 마치 감옥이나 무덤과 같으며 그곳에 사는 난민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무시당한 채 불안 속에·살고 있다는 것이에요.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을 잊지 않게 되고 또 좋은 노래 소재를 얻을 수 있어 봉사한다기보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고 있는 셈이지요,

김정수 :그렇다면 앞으로는 주로 난민들을 위한 사목을 하실 계획이군요?

반예문 : 물론 그 일이 주된 활동이 되겠고 홍콩에 한인 교회가 있으니까 본당 사목도 도와 드리고 있어요

대담을 마치면서

김정수 : 신부님께서 한 사제로서, 메리놀 선교사로서 새 임지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 상태에서 삶을 종합하신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반예문: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어떤 수사님이 백 배의 상에 대한 복음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복음을 위해 일하고 상을 백 배나 받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하셨어요. 그때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혼자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나중에 제가 은경축을 지내려 고향에 가서 그 수사님을 만났는데 옛날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느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저에게는 주님의 은총이었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생각할 때 그 수사님 의 말대로 백 배의 상을 받았다는 느낌이예요.

김정수: 한국에 오신 것도 만족하십니까?

반예문 :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제 서품 직후 총장 주교님으로부터 파견 명령을 받을 때 동창들은 일본으로 많이 가게 되었어요. 우리는 한국에 4사람이 왔지만 일본에는 10~12명이 갔으니까요. 선배 신부님들 중에 가까운 분들은 제가 일본에 가기를 원했지만 결국 명령에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일본에 안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중매 결혼처럼 하라는 대로 해서 보람 있는 일을 많이 하고 좋은 결과를 얻은 셈이지요,

김정수 : 마지막으로 한국 신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몇 마디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반예문 : 백배의 상을 받은 것이 한국사람을 통해 받은 것이니까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요, 예전에「경향잡지」에서 한국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했을 때 드린 말씀인데 사람이 자기 나라가 아닌 외국에 가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한국에 왔고, 충청북도에 가서 보좌신부 생활을 했는데 신자들이 저를 두고 이야기할 때 ’우리 신부님'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본당 교우들이 저를 자신들의 공동체 속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어요. 교우들은 외국 선교사들이 가끔 말을 잘 못하고 풍속을 모르는 것이 많아도 그것을 인정해 주고 따뜻하게 감싸주었어요. 34년 동안 저를 그렇게 대해 주신 한국의 신자들에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김정수 : 한국에서 오랜 세월 사목 활동을 하시면서 우리나라 신자들에 대하여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계신다니 참 기쁩니다. 부르심 속에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제들의 생활이니까 남은 인생을 건강하고 보람 있게 일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새 사목터인 홍콩에서의 선교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