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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의 말씀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연중 제27주일 : 10월 7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이사5,1-7):이사야예언서의 유명한 ...

제 2권 제 2편 제 2부 개별 교회와 그 연합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제1절 개별 교회 3. 성직자치구와 자치수도원구 제370조 : 성직자치구와 자치수도원구는 특수한 ...

주간 부활 축일인 주일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이 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기뻐하며 즐거워하자,(시편 117,24). 그리스도교는 성서와 교회 전승을 바...

성서와 새로운 복음화
1990년 10월호 (제 141호)
*본고의 내용은 제4차 세계성서사도직협회 총회에서 브라질의 기초공동체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

나의 고백
1990년 10월호 (제 141호)
강영훈 국무총리는 평북 창성군 청산면 출신으로 만주 건국대학교와 미국 육군 참모대학을 수료하고 미국...

멕여서 보내자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여중 시절 필독서를 정해준 선생님이 계셨다. 강제성을 띤 건 아니었지만 문학 소녀였던지라 그 기회에 ...

선교사가 본 한국 교회의 실상
1990년 10월호 (제 141호)
대 담 : 반예문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홍콩난민선교) 김정수(사목주간·신부) 일 시 : 1990년 8월 1...

가톨릭의 종교 개혁
1990년 10월호 (제 141호)
I.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의 집중 폭우 프로테스탄트는 종교 개혁이란 개신교의 배타적인 독점물처럼 ...

1980년대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반성 - 성직자, 수도자, 신도의 특성
1990년 10월호 (제 141호)
I. 머리말 역사학은 어느 시대를 연구하는가? 그 연구의 범위 안에 역사 연구자 자신이 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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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사회 1990년 10월호 (제 141호)

멕여서 보내자

박완서 (작가)

여중 시절 필독서를 정해준 선생님이 계셨다. 강제성을 띤 건 아니었지만 문학 소녀였던지라 그 기회에 이름난 세계 명작을 독파해 보려고 애썼으나 잘 안 되었다. 대부분이 십대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신곡,실락원, 파우스트 등 서구의 고전들이었는데 그중에는 성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성경은 세계 명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단서까지 붙였지만 안 읽히긴 마찬가지였다. 성경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철저하게 과학을 신봉하는 마음에 들지가 않아서였다. 그 후 어른이 되고 나이 먹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신약은 몇 번 읽었고 또 좋아하는 구절을 찾아 읽고 감동하거나 위로를 받은 적은 여러 번 있지만 구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으로 읽지를 못했다. 구약 중에서는 전도서와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뜨악하게만 여겨지던 구약에서 전도서를 발견함으로써 별안간 아주 친근하게 다가왔다. 전도서를 입구(入口)로 해서 들어간 구약의 세계에서 시편, 잠언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서가에서 읽고 싶은 책만 골라서 읽는 것과도 같은 문학적 취향으로서의 성서 읽기였으니까.

그러나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구약을 다 읽어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도 숙제처럼 남아 있고 실제로 그런 노력을 여러 번 되풀이했기 때문에 아마 가장 여러 번 읽은 것은 전도서보다는 창세기이고, 창세기 중에서도 1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창세기 1장 중 가장 자주 나오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보시나 참 좋았다”이다. 문학소녀 적부터 시작해서 수없이 보아 온 그 말씀이 전도서나 시편의 어느 구절보다도 마음에 스미게 신기하고 아름답게 느껴진 건 인생을 살 만큼 살아 도무지 신기한 거라곤 없어진 근래의 일이니 이상한 일이다. "정말 그렇구나"라는 하느님과의 전적인 공감은 그 후 과학적인 의심을 뛰어넘어 선뜻 그 좋으신 걸 지으시고,맡겨 주신 분이 계시다는 걸 믿고 순종해 보려는 자유 의사로 까지 발전했다.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살아 있기 때문에 죽어야 되고, 죽음을 통해 영원히 순환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그리하여 인간 이 만든 아무리 곱고 정교한 조화도 시들어가는 들꽃 한 송이보다 못하다. 하느님의 모습뿐 아니라 마음도 닮게 지음을 받은 우리는 그리하여 무성한 숲의 푸르름 속에 단 한 그루의 플라스틱 인조 나무가 섞여 있어도 그것이 가짜이고 따라서 보기 안 좋다는 걸 한눈에 식별한다.

하느님이 지으신 것들이 좋은 까닭은 서로 평등하고 서로 유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박이란 종(種) 중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땅에서 양분을 취하고 하늘에서 햇빛을 취해 가장 먹기 좋고 보기 좋은 열매를 맺는 수박은 있을 수 있지만 수박이 크다고 해서 과일 중에서 제일 잘난 건 결코 아니다. 앵두는 수박과 다를 뿐 결코 수박보다 열등하지 않고, 해바라기가 채송화보다 잘나지 않았다. 수박이란 종 중에서 가장 잘난 수박은 앵두라는 종 중에서 가장 잘난 앵두와 동등하고, 해바라기 중에서도 지스러기는 채송화 중에서도 지스러기와 동등하다. 또 하느님이 만드신 것 중 쓸데없는 거나 해로운 것은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서 로 조화롭다. 설사 인간에게 해로운 독초가 있다고 해도 인간에게 꼭 필요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걸 우리가 아직 찾아내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고, 무해무익해 보이는 것들도 저희들끼리는 긴밀하게 유익을 주고받고 있어 간접적으로 인간을 돕고 있다. 이 만물의 조화처럼 놀랍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걸 보고 느끼고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으로 태어난 걸 감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 좋은 까닭은 그 약속지킴이다. 하느님 은 여지껏 한번도,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단 한번도 만물의. 쓸모에 대한 약속을 어기신적이 없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수고하여 거둔 쌀알, 밀 알s 좁쌀알의 수량을 나타낼 수 있는 숫자는 아마 무한밖에 없으리라, 그 무한한 남알 중 어쩌면 단 하나의 좁쌀알에도 독이나 해로운 걸치는 실수를 안 하고 약속한 맛과 약속한 성분을 지켜 주는 능력과 사랑을 어떻게 “아이고, 하느님” 하고 승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농약으로 오염된 채소, 바구미도 안 생기는 쌀, 합성 세제와 합성수지로 오염된 강 인간의 과소비와 편리와 향락을 위해 조화를 잃고 피폐해진 강산을 볼 때 하늘이 무섭다. 천둥 번개 칠 때 무섭던 하늘보다 훨씬 더 무섭다. 천둥 번개 칠 땐 혹시 내가 죽을까봐 무섬을 타지 만,인간의 지혜와 욕심이 마침내 하느님이 인간에게 한 약속을 업신여기고 이간질을 일삼기까지 이르렀다고 느꼈을 때의 하늘 무서움증은 인류가 멸망을 목전에 둔 것 같은 거대한 두려움이다.

하느님은 당신이 지으신 것을 사람들이 이용하고 개발하고,또 당신이 모든 사물 안에 감추신 비밀을 사람들이 새록새록 들추어 내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삶을 풍족하게 하는 데 이용하는 것을 어여삐 여기셨다. 마치 너희들을 보고 즐기지 않는다면 내가 뭣하러 삼라만상을 만들었겠느냐, 또 너희들이 찾아 내어 이용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맛으로 그 많은 비밀을 사물 안에 감추었겠느냐 하시는 것처럼 너그럽고 인자하셨다. 그러나 당신이 만드신 아름다운 강을 막아 댐을 만들어 전기를 일으키고, 가뭄에도 물 마르지 않는 농토를 만든 것 까지는 어여삐 여기셨지만 그 강에다 독을 치는 것은 용서하지 않으실 것 같다. 당신이 만든 잘생긴 산에 굴을 뚫고 기어오르고 놀고 먹고 싸는 것까지는 용서하셨지만 산의 정기를 끊고, 썩지 않는 쓰레기로 오염시키는 것은 차마 용서하지 않으실 것 같다. 당신의 약속, 당신의 법칙을 함부로 교란시키는 짓이기 때문이다.

"보시니 참 좋았다"에 대한 공감이 마치 하느님과 한마음이 된 것 같은 기쁨, 평화와 자존이었기에, 좋은 것의 가치를 제대로 지니지 못한 잘못을 돌이켜 될 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 한없이 두렵고 왜소하게 느껴진다. 하늘 무서움이다

신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구약을 읽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부피 때문에도 그랬지만 선입관 때문에 다 알아 버린 느낌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무도 신약의 세계에 선입관 없이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리라· 우선 예수님은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신 하느님의 아들이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에 대한 선입관, 상당히 부담스러운데 구구절절 다 어디서 듣던 소리이다. 성직자이건 아니건 간에 아무튼 사회 지도적 인사임은 의심할 여지없는 어른들이 가장 고급의 설교를 할 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듯이 인용한 말이기 때문에 잘 이해가 안되는 구절도 감히 옳다는 걸 의심하거나 내 나름의 해석을 할 엄두를 못냈다. 한 자도 수정해서는 안되는, 절대적으로 옳은 말씀만 하셨고 죽음의 권세도 이기신 분을 감히 역사상의 실존 인물로 생각하는 것조차 무엄한 일이겠다. 그러니 거기 대해서는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덮어놓고 믿어 보자고 작심하고 읽으니까 편하긴 한데 성경 말씀이 뜻을 몰라도 되는 주문같이 되는 폐단이 있었다. 그분이 이 지구상에 태어나 길지 않은 한 시대를 살다간 실재 인물이었다는 걸 무릎을 치듯이 확연히 깨달은 건 그분의 말씀보다는 행적을 통해서였다. 예수님은 아무하고나,가장 멸시당하는 천민들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려 먹고 마셨다는 기록이 성경엔 여러 군데 나온다. 식사를 하셨으니 뒤도 보셨으리라. 기적을 행하여 아무도 모르게 안개로 배불리고 뒤도 안 보았으면 훨씬 고고해 보였으련만.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칭했으면 잘난 체를 최고로 한 셈인데 가장 인간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어찌 그리 잘난 체를 안하셨던지. 오른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리고, 오른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 버리라고까지 겁나고 엄하게 가르치신 분도 우리처럼 오장 육부를 가 진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부유했지만 직업 때문 에 멸시받고 소외됐던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를 자기 집에다 모시고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얼마나 황홀했을까 짐작이 간다. 오죽 기뻤으면 재산의 반을 가난 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을까. 그야말로 회사(喜捨)가 아닌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며 착해지도록 만든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어떤 기적보다도 신기하고 보기에 참으로 좋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한 시대와 한 사회를 살다 간 실존 인물이 되어 다가올 때,그 분의 말씀 또한 그때의 시대상과 사회상 속에서 파악 하게 되고,비로소 주문을 벗어나 살아 있는 진실이 된다. 그때에 진리였던 것이 아직도 진리이고 인간성이라는 것이 달라지지 않는 한, 진리일 것이라는 놀라움이 “아이고,하느님” 하고 그분의 신격(神格)을 긍정하게 됐다면 이치에 잘 안 맞을지는 모르지만 정직하고자 애쓰며 더듬어 본 내 마음의 한 가닥이다.

이건 개인적인 객담이 될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이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걸 중요하게 여기셨다는 기록이 마음에 들었을 뿐 아니라 향수마저 느낀 또 다른 까닭은 내가 겪은 친정,시집 양가의 가풍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친정 어른들은 손님이건 행상이건 끼니 때우리 집 문지방을 넘은 사람은 으레 한 밥상에 불러들여 수저 하나 더 놓고 식사를 같이 했다. 시골 살 땐 누구네나 다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서울 오고 나서도 어머니가 그렇게 하는 건 어린 마음에 괜히 부끄럽고 못마땅했었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6,25 전쟁 중이었다. 우리 고향 땅은 6.25 전까지는 삼팔 이남이었다가 휴전 후 휴전선 이북이 된 개풍군이어서 그때 많이들 피난을 내려왔고5 우리 집은 우리하고 조금만 연줄이 닿아도 으레 거쳐가는 집이었다. 어머니의 세상 물정을 무시한 후한 인심 때문에 그렇게 손님이 들끓었는데 식구들 입장에서는 못할 노릇이었다. 우리도 가장을 잃어 끼니를 대기도 힘들 때였다. 군식구 때문에 밥이 죽이 될 적도 많았고 쌀보다 시커먼 우거지가 더 많은 죽에다 자꾸만 물을 쳐서 양을 늘리기도 했다. 올케와 나는 부엌에서 애꿎은 쌀독을 긁으며 이렇게 애를 쓰는데 어머니가 손님을 붙들어 앉히는 말은 늘 한결같았다. 넉넉하다는 거였다. 끼니때는 밥이 넉넉하다고 했고,날이 저물면 잠자리가 넉넉하다고 했다. 올케는 어머니의 넉넉하 다는 소리만 들으면 한숨을 쉬었고 나는 눈을 흘겼다. 올케도 나도 어머니가 그 때 넉넉해 한 게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 모두의 생활이 넉넉해진 후였다.

친정이 아직 가난을 벗어나기도 전에 나는 시집을 갔는데 시집은 친정보다는 훨씬 넉넉했다. 그러나 시어머니 또한 우리 집에 온 손님에게는 꼭 식사 대접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셨다. 죽에다 물을 타서일망정 우리 먹는 대로 나누기만 하면 후한 인심이 되던 전시와는 달리 정성과 격식을 갖춘 식사 대접을 어떤 손님에게나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며느리 입장에선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살기들이 나아지면서 너나없이 편리를 추구하게 되어 손님 대접도 차 한 잔이면 족하게 되었고,지금처럼 외식 문화가 발달하기 전 한때는 식사 대접을 해야 할 손님에게 짜장면이나 그 밖의 요리를 시켜다 먹이는 게 유행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세상이야 어찌 변하던 막무가내로 며느리가 손수 지은 밥과 반찬을 남에게 먹이고 싶어하셨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딴 집에 손님으로 다녀오셔서도 그 집에서 밥을 대접받았느냐, 차나 짜장면을 대접받았느냐에 따라 그 집을 평가하셨다. 더군다나 끼니 때 차밖에 안 내온 며느리는 천하의 몹 쓸 거란식의 혹독한 욕을 하셨다. 그러나 나보기에는 그런 며느리가 얼마나 세련되고 부러워 보였던지. 나는 거의 가풍같이 되어 있는 시집의 이런 법도를 감 히 고쳐볼 엄두는 못냈지만 불쑥불쑥 울화같은 게 치밀곤 했다. 당시 국민학교 에 다니던 딸애가 가훈(家訓)을 적어 오라는 숙제를 받아 왔다면서 우리집 가훈이 뭐냐고 묻길래 일부러 큰소리로 그걸 몰라서 묻냐고 "맥여서 보내자"라고 대답했었다. 아마 시어머니 들으라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나도 내 마음대로 시체 풍속 따라 세련되게 산다. 올해도 벌써 몇 차례를 호텔 뷔페로 친구 생일을 얻어먹었는지 모른다. 이제 다들 며느리를 보았지만 같이 살지도 않거니와 며느리 음식 솜씨를 보여 준 친구는 아직 한 명도 없다.

좀 엉뚱한 비약이 될지도 모르지만 돌이켜보면 사교 생활은 자꾸 빈번해지건만 각자의 고독감은 날로 심각해지는 것은 우리의 인간 관계에 있어서 집에서 먹여 보내는, 가정 가족끼리의 인심의 소통이 없어져 가는 것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예수님이 배고픈 걸 못 참는 체질이어서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행위로 누구와나 소탈하게 밥상을 같이 하셨으리라고 이해할 때 그분을 믿는다는 게 참으로 기쁘다. 그리고 그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영성체가 조그만 밀떡이 아니라 넉넉한 밥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어 본다. 요즈음 도시의 성당처럼 비대 해지지 않은 시골이나 변두리의 부자와 가난뱅이가 더불어 미사 드리는 작은 성당에서 미사 후 부자와 가난뱅이가 기쁜이와 슬픈이가 다같이 한 밥상에 둘러앉아 배불리 음식을 나눈다면 주님도 미소 지으며 꼭 임하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