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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7월호 (제 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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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7월호 (제 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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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 향락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1990년 7월호 (제 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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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백
1990년 7월호 (제 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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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공경심
1990년 7월호 (제 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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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 운동과 문규현 신부에 대한 증언
1990년 7월호 (제 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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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 낭비 향락 풍조와 신앙인
1990년 7월호 (제 138호)
I. 머리말 우리가 헐벗고 굶주리던 얼마 전까지도 사치나 낭비 향락 등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

과소비, 향락의 현황과 문제점
1990년 7월호 (제 138호)
I. 머리말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과소비?향락 풍조의 만연에 대한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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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오늘의 사치 향락 1990년 7월호 (제 138호)

사치 낭비 향락 풍조와 신앙인

최용록 (서울대교구불광동천주교회 신부.사회학)

I. 머리말


우리가 헐벗고 굶주리던 얼마 전까지도 사치나 낭비 향락 등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혹은 있다 하더라도 몇몇 사람의 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지든가 혹은 우리와는 동떨어진 외국에서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문제 삼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땀 흘려 때로는 피까지 흘려 가며 일한 덕택으로 우리의 생활이 어느 정도 향상되었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남의 일로만 생각되던 사치 낭비 향락 풍조가 우리에게도 문젯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자기 능력이 특출해서 또는 조상을 잘 둔 덕에 재주껏 벌어서 제멋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한다면 할 말도 없겠으나 사치 낭비 향락 풍조는 곧 우리 모 두에게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II. 사치 향락의 사회학


1. 사치 향락의 심리적 고찰


사치, 낭비, 향락 이 세 요소는 하나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 요소들이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생기게 되는 것이다. 사치 향락 낭비 등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열등감이나 과거 어려웠던 사람들이 현재의 사치와 낭비로 보상받으려는 심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으로 공허하면서도 물질로라도 그 자리를 메꾸고 싶은 마음,속된 말로 골빈당들이나 하는 짓임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사치 낭비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향락으로 빠지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원래 뼈대 있는 집안에서보다는 한탕주의로 돈을 너무나 쉽게 번 사람들이 돈의 가치나 유용하게 쓸 줄을 모르면서 물 쓰듯 씀으로써 과거 불우했던 사실을 잊어버리고 싶어 하며 또한 남들에게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낭비하게 되는 것이 라 한다. 아무도 자기가 정직하게 땀 흘려 번 돈이라면 그렇게 헤프게 쓰지는 못 할 터인데 막 쓰는 것은 확실히 뭣인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사치 생활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였다가 나중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나도 너만큼 잘났고 돈도 있다고 하면서 기를 써서 경쟁을 하고 더욱이 돈과 허세가 상승 작용을 일으켜 더 큰 무리를 저지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경쟁에서 낙오되는 사람 또는 처음부터 경쟁에 참여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감과 위화감을 느끼게 되어 사회 불안의 요소가 되고, 비정상적 방법 즉 범법행위로라도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비뚤어진 사고마저 만연되어 사회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옛날에는 청소년 범죄의 동기가 대부분 배가 고파서였는데 오늘에 와서는 배고픔보다는 향락을 위하여 즉 유흥장에 가기 위해 범죄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사치 향락 풍조가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또한 우리가 어떠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2. 사치 향락의 역사적 이해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허례허식보다는 검소함과 근면함을 숭상했다· 따라서 사치나 낭비 향락 풍조를 죄악시하는 순박한 민족이었다.


조선조시대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비능률적이며 비생산적 풍조가 일시적으로나마 만연되었었으나 현대화 과정에서 이런 비효율적 형식주의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서구적 사고방식의 도입과 더불어 실리 추구적 합리적 사고 방식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사치 낭비 향락 풍조가 문제되는 것은 불균형 발전의 부작용으로 힘들지 않게 돈을 번 일부 계층이 발생하면 서부터이다.


원래 뼈대 있는 부자 집안에서는 집안 법도가 엄격하여서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사치 낭비 향락 풍조에 빠지기란 쉽지 않았다. 엄격한 교육 즉 사람을 만들어야 그 재산을 지키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에 뼈대 있는 집안일수록 가정 교육이 엄했다.


조선조 말부터 해방 전까지 한국의 산업이란 별로 큰 것은 없었으며 지주들이 민족 자본의 대종을 이루었다. 따라서 천석군 만석군이라는 칭호가 있었을 정도인데 만일 자제들 중에서 주색잡기에 빠지는 자가 있으면 그 집안은 기울기 시작했다고 할 정도로 사치 낭비 향락 풍조를 경계했으며 유교적 수신 제가(修身 齊家)를 생활신조로 삼고 실천했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하게 되었으며 미군 당국과 통하는 사람들이 혼란의 틈을 타서 부정한 방법으로 치부하기 시작하였고 산업 구조의 재구성으로 지주 계층은 몰락하고 새로이 산업 자본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나 수량적으로는 아직도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조용한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 바로 6 · 25사변이었다.


6 · 25는 모든 산업 구조를 일단 잿더미로 만들어 놓았다. 겨우 일어서기 시작한 산업 생산 시설이 폭격과 화재로 완전히 파괴됐으며 북한 동포들의 남하와 피난으로 경제 구조는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피난 보따리 하나 갖고 남하한 이상, 같은 처지가 되었으며 부산의 시장은 피난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여기에서 주객이 전도된 사례가 흔히 있었다. 한다. 전의 상전이라 하지만 피난지에서 세상 물정에 어둡고 체면을 차리다 보니 쩔쩔매는 데 비하여 옛날의 하인은 세상 실무에도 밝고 체면 불구하고 보따리 장사라도 하여 생활 기반을 잡아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등 선후가 뒤바뀐 사례가 흔히 있었다고 한다.


6 . 25는 많은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파멸에 몰아넣었는가 하면, 반면 소위 전쟁 경기에 편승하여 일확 천금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때 소위 '사바사바‘라는 유행어가 생겼다. 사바사바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적당히 잘 교섭하여 이권을 얻는다는 뜻인데 특히 영어 몇 마디하면 어수룩한 미군에 접근하여 이권을 얻어 한탕하였다. 따라서 일선에서는 피 흘리는 전쟁을 하는데 후방에서는 향락 산업이 번창하여 휴가 나온 일선 사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 허다했으며 일부에서는 반성의 기미도 있었으나 쉽게 치부한 자들이 더 많이 돈 벌기 위하여 또는 돈을 쓰기 위하여 사치 향락 풍조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이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는 소위 정상배 모리배라는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 정치권과 야합하여 이권을 독점하였는데 곧이어 전쟁이 끝나면서 재건 계획 즉 미국 정부의 경제 원조와 결탁함으로써 치부할 수가 있었다. 이승만 정권의 횡포는 4. 19로 끝맺고 신생 민주당은 내부 분열로 1년 만에 5 · 16 쿠데타로 새 정치의 장을 열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여 많은 경제적 사회적 시행 착오를 겪었으나 월남 전쟁 경기를 잡음으로써 즉 월남 파병을 계기로 경제 재건의 기틀을 잡았으며 곧이어 중동을 비롯한 해외 건설 경기를 틈타 외화 획득을 함으로써 한국 경제 재건의 토대가 구축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후진국권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10 · 26으로 박 정권이 무너지자 곧 광주의 비극을 거쳐서 전 정권이 집권하여 정의 사회 구현을 표방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무력 쿠데타로 집권한지라 양두구육격으로 친인척까지 모두 다 동원되어 이권 사냥에 혈안이 되었으며 수치스러운 역사가 기록되게 되었다. 권력의 비호 하에 이권에 손대어 돈을 너무 쉽게 벌었으니 또한 너무 쉽게 쓰지 않을 수 없었다.즉 사치 낭비 향락 풍조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으며 대형 경제 부정 사건이 연이어·터지게 되었다. 대표적 예로 장영자 · 이철희 사건, 명성의 김철호 사건 등등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액수의 대형 금융 부정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사법부의 엄한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나 그 진상이 완전히 파헤쳐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이때부터 서울의 강남 지구가 개발되면서 서울의 풍토가 새로 바뀌게 되었다. 사치와 향락 산업이 본격적으로 기업화되면서 전에는 특정한 제한된 범위 안와 사람들만 향유할 수 있는 줄 알았던 향락 유흥 시설이 차츰 보편화되어 누구나가 쉽게 접근하게 되었다.


호화판 낭비는 후진국 근로자들의 몇 달치 임금을 하룻밤에 낭비하는가 하면 외국 직수입이라 하여서 점심 한 끼에 몇 만원을 받아서 사회의 지탄을 받은 일 도 있었다. 또한 해외 여행 자유화에 따라 웬만큼 살만한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해외 여행에 나가는가 하면해외에 나가서도 낭비하며 향락에 빠짐으로써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러 ‘추한 한국인’ 소리를 듣기도 했다.


3, 사치 향락의 사회학적 분석


일찍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근검 절약을 자본주의 발생의 원천이라고 주장했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주장은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청교도 윤리가 있었기에 즉 종교적 신념이 있었기에 오늘의 서유럽과 북미가 세계의 주도권을 잡고 있으며 특히 북미와 남미의 개발 비교는 좋은 해답을 준다 고 생각되고 있다. 즉 학문적으로 막스 베버 학설은 대체로 옳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미를 상호 비교할 때 초창기에는 남미쪽이 훨씬 유리했다 한다. 귀금속 등 지하 자원이 남미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에 반하여 북미쪽은 광활한 농토뿐이며 특히 지하자원 등은 동부에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북미는 부강해졌음에 비하여 남미는 빈곤에 허덕이게 된 이유는 북미가 청교도 윤리에 입각하여 근면 검소하게 일하여 자본을 축적했음에 반하여 남미에서는 귀한 자원을 흥청망청 낭비하여 그 부를 전부 소진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경제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막스 베버의 주장처럼 확실히 근면 검소함에 부유해지는 원인이 있음은 더 이상의 증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약간의 경제 성장에 도 취되어 사치 낭비 향락에 빠져 버린다면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더 말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중진국 대열에서 탈락하여 또다시 후진국의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 예로는 아르헨티나를 들 수 있다.


가극으로도 유명한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라’는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그 좋은 조건 즉 넓은 땅, 풍부한 지하 자원,알맞은 기후 조건 등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데도 가난에 허덕이며 해마다 몇 천 퍼센트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이유를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은 너무 놀기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남미 기질 때문이며 여기에 부채질한 것이 인기 정책에만 급급했던 페론 대통령과 그의 부인 에바 페론이었다고 보고 있다.


우리도 이런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도록 우리 삶의 고삐를 바짝 다그쳐야 함 것이 아닌가, 즉 근면 검소 등 우리 고유의 미덕을 고양 실천하며 동시에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인 과도한 상업주의 또는 천민적 자본주의를 경계 퇴치해야 할 것이다.


1) 대중 사회와 사치 향락


오늘 유감스럽게도 한국에 사치 낭비 향락 풍조가 싹트게 된 이유를 살펴보건대 가장 중요한 것은 매스컴과 결탁한 상업주의의 영향이다. 사치 낭비를 선동 조장함으로써 무조건 많이 생산하고 많이 팔아서 많은 이윤만 남긴다면 제일이라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소치이다. 즉 대중 사회 (Mass Society) 란 산업화 단계에서 독점적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인데 구조적으로 또는 기능적으로 변질된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 상황이다. 대중 사회는 근로 계층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기술 개발로 인하여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전달의 수단이 발달하게 되어 전통적 사회 계층이 평준화되며 정치적으로 보통 선거 제도로 인하여 사회 형태가 바뀌었으며 사회는 기계화된 대중사회로 된다.


대중 조작 기술 (Mass Manipulation) 의 발달로 대중은 개성을 상실하여 사회 체제에 흡수되며 생활양식,사고방식 등도 표준화 획일화 되고 창조성이 없는 상품화된 대중문화가 지배적이 되어 버린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특히 인공 위성 등) 국부적 지역적 환경을 무한히 확대하여 사람을 전통적 폐쇄 사회에서부터 해방시켜 준다. 대중 홍보 수단의 발달은 각 개인에게 깊이 침투하여 몰개성적 수동적 존재로 만들고 텔레비전이나 그 밖의 광고 매체의 극성으로 유행이 선풍적으로 번져 나가서 그 사회를 석권해 버린다. 즉 대중 사회는 인간의 사고력 개성 등을 마비시켜 사람들을 골비게 만드는 것이다. 대중 사회는 사치 낭비 향락의 온상이며 몇몇 소수의 분별 없는 생산자 판매자 광고업자들의 조작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사회이다. 가령 옷은 옛날에는 면이나 마제품이 대부분이어서 잘 마모되었었다. 그러나 현재의 합성 섬유는 잘 마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산자나 판매 상인들은 한번 만들어내고 팔기만 하면 다시 생산한다거나 판매를 하지 못하고 당분간 쉬어야 한다. 여기에서 생산과 판매를 계속 유지시켜 나가기 위하여 항상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어 멀쩡한 새옷이라도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못 입고 버리게 하여 새것을 다시 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 유행의 마력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다 남보다 잘 났다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또한 남보다 뒤떨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심한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유행은 바로 인간들의 이 약점 또는 경쟁심을 교묘하게 충동시키며 이용하여 유포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컬러텔레비전 또는 각종 홍보 매체의 보급으로 우리의 욕구를 자극시키고 있다(잡지,신문, 라디오,텔레비전 등). 이 비싼 홍보비도 결국은 소비자들이 부담케 되는데 소비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유행을 따라가고 있으며 또한 따라가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사치와 낭비를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요는 돈 때문에 사치와 낭비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골이 빈,돈의 원격 조정을 받는 조건 반사적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개성을 회복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멋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중 사회 이전에도 즉 귀족 사회에서도 사치 낭비 향락 풍조는 존재하였다. 그때의 이런 병폐는 지금의 병폐보다는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극히 제한된 국부적 현상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중 사회화하면서 서민들도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특히 자본이 이윤 추구를 위하여 사치 낭비 향락을 부채질함으로써 사회 병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대량 생산하여 외국에 파는 것은 권장 할만한 일이지만 이것들을 내수용으로 국내에 팔아 버림으로써 사치 낭비 풍조를 조장함은 잘못된 일인 것이다· 특히 요새는 한술 더 떠 외국의 사치성 고가 상품을 수입해서 국내 일부 제한된 졸부층에 판매함으로써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시적 낭비 풍조가 왜 최근에 와서 문제점으로 부각되느냐는 것도 한번 살펴볼 만하다·


2) 한국 사회와 미국식 낭비 문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개발 정책이 군사 정권 하에서 강행되면서 사회 계층 특히 경제 구조에 큰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즉 신흥 중산층의 출현이 우리사회에 강력하게 나타난 것이다. 옛날 잘 살던 계층 즉 지주계층은 농지 개혁과 6.25를 거치면서 많이 몰락하였으며 새로운 중산층이 형성되는데, 바로 부유한 상인들과 제조업자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정치와 결탁하여 치부하였으며· 또 일부는 전쟁의 와중에서 파괴된 산업을 재건하는 데 기여하며 치부하였다. 처음에는 가내 공업으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서 직접 파는 정도에서 시작하여 발전하였다 한다. 전쟁의 와중에서 물자 부족에 허덕이던 때라 사업은 번창하여 자본이 축적되어 차후 경제 규모가 국제적으로 발전하자 제조 산업과 무역업을 통하여 치부하여 자본가 계층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빈곤을 경험했으며 먹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 나 어려운지를 체험한 계층들이다. 그들은 사치 낭비 등을 죄악시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실과 절약과 근면만이 살 길임을 알기에 열심히 살려고 하 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새 세대들은 그들과는 다르다. 근검 절약이란 쩨쩨한 짓 이며 가치적으로 볼 때에도 기성세대의 인색을 비웃으며 낭비를 서슴지 않는 새 세대의 등장으로 문제는 심각하게 되기 시작하였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도 있었다. 즉 경제 회전이 빨라야 호경기를 유지할 수 있기에 미국에서는 절약을 악덕으로 생각케 하며 벌어들인 대로 쓰게 하고 그래도 모자라서 신용 카드(Credit Card)제도, 월부 판매 제도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소비를 촉진하고 심지어는 낭비까지도 은근히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미제 상품이라면 최고급이라고 인정했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옛날의 명성을 상실하고 미제 상품이 별로 빛을 보지 못하며 일제나 독일제 상품에 밀리고 있는데 이는 미제 상품은 오래 쓰기보다는 유행하는 동안만 쓸 수 있고 버리게 하는 소비성 상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과거의 미제라는 위세 때문인지 미제가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점차 미제 상품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미국에서는 꽤 낭비를 조장 또는 권장하고 있는가. 미국은 우선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며 경제 회전이 빨라야 호경기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쓰고 자꾸 버려야만 하기에 일회용 제품이 인기가 있다. 6.25 때 미군들이 물자를 낭비하는 것을 보고서 우리는 부러워하면서도 왜 저렇게까지 낭비할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으며 부유한 나라니까 그렇겠지라고만 생각했었다. 지금에 와서는 우리가 그런 문제를 걱정하기 시작했으니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소비 문화는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선 우리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다. 또한 국토 면적은 적으며 인구 밀도는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치밀한 나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원을 아껴야 하며 회수 가능한 물자는 재차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실정은 그렇지 않고 우리도 미국의 소비 생활을 본받아 물자가 부족하면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면 된다는 식으로 낭비하고 있음은 큰 잘못이다· 외국에서 싸게 수입해다 쓸 수도 있다. 비근한 예로서 일회용 나무 젓가락, 대나무 젓가락 등은 후진국에서 싼값으로 수입하여 쓴다고 한다. 이유야 물론 위생상 좋다는 것이다s 주사기나 종이컵, 은박 접시 등도 모두 일회용이다. 위생적이라 하니까 일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미국식 낭비 문화에 물들고 있으며 동시에 가공할 환경 파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회용 젓가락, 종이컵, 종이 접시 또는 플라스틱 제품, 스치로폴 제품 등 지금 당장은 편리할지 모르나 이로 말미암아 각종 자원들이 즉 삼림 자원, 석 유 자원 등이 소진되고 있으며 또한 각종 쓰레기는 우리의 환경을 오염시킴으로써 이중으로 즉 자원 소진과 환경 오염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낭비를 하지 말아야 한다.


3) 한국 경제와 사치 향락


우리나라는 천연 자원이 부족하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나라이다. 따라서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자산은 우리의 근면성과 머리와 손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경쟁자들이 너무나 많다. 최근 동유럽 국가들을 포함하여 경쟁국들이 이념보다는 경제 개발 우선 정책으로 우리의 뒤를 바짝 뒤쫓아 오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한발 앞섰다고 자만하여 사치 낭비 향락에 빠져 버린다면 추월당할 것은 너무나도 명약관화한 사실이 아닌가. 마치 토끼가 앞섰다고 자만하여 낮잠을 자다 거북이에게 추월당하여 경쟁에 지는 그런 꼴이 되지 않기를 바람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 구조의 재구성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부의 불균형적 배분도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부의 불균형적 배분이 사치 낭비 향락의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 쉽게 번 돈이니까 사치 낭비하게 되고 이를 보고서 경쟁적으로 너도 나도 하고 싶고 그러다 정상적 방법으로는 안되니까 훔쳐야 되고 속여야 되고 심지어는 무서운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는 어지러워지고 악의 악순환 또는 악의 상승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된다. 만일 사회 전체가 건실해져서 각자 부지런히 일하며 성실하게 산다면 사치 낭비 향락 풍조는 스스로 사라질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나친 절약과 검소한 생활로 인해 생산 유통 과정의 경기가 후퇴할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될 수도 있다. 즉 경기 침체 현상 또는 경제 회전율이 둔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경제 활동을 위축시킬 정도로 소비를 안 한다는 것은 아니고 생산 활동은 계속하되 내수보다는 수출을 증대시켜 해결해야지 사치와 낭비로 해결하려 함은 잘못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낭비함은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오염 파괴시키는 등 이중의 잘못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처럼 검소하면서도 남에게는 후하게 대할 줄 알아야한다.


III. 사치 향락과 신앙인


대량 생산,대량 소비로 인한 대중사회의 출현은 언뜻 보면 과거의 헐벗고 주림에서 해방시켜 준 듯이 보이기도 한다. 또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것도 같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과거의 궁핍했던 시대와 비교하여 더 행복해졌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그라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마태4,4)는 성경 말씀이 우리 마음에 와 닿을 정도로 물질 만능주의가 결코 행복의 전부는 아님을 깨닫고 명심하여야 한다. 사치와 낭비는 결국에는 향락 풍조로까지 이어지게 마련이다. 사치와 낭비를 해봐도 우리 마음에는 뭣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있으며 이를 다시 메워 보고자 향락으로까지 떨어지게 되며,결국 남는 것은 허무함뿐이다. 하느님을 버리고 물신주의로 타락한 인간의 절망적 상태인 것이다. 이런 사치 낭비 향락 풍조 앞에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신앙인이기에 앞서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인간성과 개성을 회복해야 하며 복음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1. 성서의 가치관


구약 성경을 보면 다윗 왕이나 솔로몬 왕도 사치스럽게 산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하느님의 노여움을샀을 때에는 그들은 서슴없이 자기의 옷을 찢고 거친 베옷으로 갈아 입고 머리에 재를 뿌리며 대죄하곤 하였다(2사무 12,16 이하 참조)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청하면 벌하신 후에 용서해 주셨다. 하느님은 근본적으로 사치 낭비 또는 향락을 싫어하신다. 단지 사람의 마음이 약하기에 항상 유혹을 받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몸소 근면 검소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가난한 시골 목수 요셉의 아들로서 아버지 요셉을 도왔을 것이며 근면 검소한 생활로 과히 빈곤하지는 않았겠지만 결코 부유하지는 않은 생활을 하셨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의 대업을 십자가라는 고통과 수치의 상징을 통해서 이루어 주셨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 원하셨다면 십자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강대국의 황태자로 태어나시어 호화로운 생활을 하시면서 말씀 한마디로 인류를 구원해 주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고난의 길, 좁고 험한 길, 즉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 구원의 신비와 우리의 생활 태도를 비교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신앙인의 생활태도


우리가 사치 낭비 향락 풍조를 배격한다고 하여 모두 다 가난하고 불행하게만 살라는 뜻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 자기 능력껏 열심히 일해서 남보다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함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벌었으니 내 마음대로 쓴들 어떠냐 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되 신앙인이라면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결코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 생명,내 존재 이 모든 것이 절대적 견지에서 볼 때 결코 내 것이 아니지 않은가. 비록 내가 벌어서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재물도 언젠가는 없어질 것들이고 단지 우리는 얼마 동안 하느님께서 맡겨 주셨기에 당분간 맡아 관리하다가 죽을 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 앞에 나가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 가 받은 달란트를 언젠가 주인이 부르실 때 그 앞에 나가서 셈해야 할 때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마태 25,14).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의 존재, 나의 생명을 허락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는 나의 존재를 허락받으면서 각자 자기 능력(달란트)도 같이 받았다. 우리는 그 능력 즉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도 잘 받아서 잘 키워나가야 한다. 주인이 맡긴 십 달란트를 잘 이용하여 번 돈 십 달란트를 더 바치자 주인은 만족하게 생각하고 그에게 더 큰 일을 맡긴다는 말씀은 우 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좋은 참고가 된다.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라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우리 신앙인들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는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하는 능력, 사업가로서 성공하는 능력, 공부 잘해서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입신 출세하는 능력, 그 능력들은 다양하지만 그것을 절대적으로 자기 것으로 아는 데서 착오가 생기게 된다. 절대적으로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의 달란트를 남용하고는 주인이 돌아와서 셈바치라고 명하셨을 때 내놓을 것이 없어서 쩔쩔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능력껏 열심히 일하여 많은 이익을 얻되 향락에 쓸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성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서울대교구외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까지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우리가 재물이나 그 밖의 봉사 활동, 희생 등으로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 곧 하느님께 셈을 바치는 것이 아닌가. 최후의 심판 때 셈을 바치는 장면(마태 25,31 이하)을 다시 한번 잘 읽으면 서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했을 때 마음은 가장 풍요로워진다고 한다. 모든 욕심을 깨끗이 버렸을 때 마음은 가장 깨끗해지고 하느님과 가장 가까워진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마태 5.3)이라 하셨다. 교회의 수많은 성인 성녀들이 이 덕을 실천하였고 그 중 대표적 성인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도 한때는 인간적 야심에 사로잡혀서 세속적 영화를 탐했으나 하느님을 만나고 나서는 그 생활 태도를 깨끗이 바꾸었다. 그의 아버지는 장래가 촉망되는 자기 아들이 자기가 물려줄 막대한 유산을 마다하고 혈혈단신 무일푼오로 떠나려는 프란치스꼬를 인간적으로 설득해 보기도 했고 회유도 해보고 유혹도 해보고 방해도 해봤으나 효과가 없자 결국 단념하고 만다. 프란치스꼬 성인의 결심이 너무나 견고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프란치스꼬 성인은 무일푼으로 방랑하시면서 도처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으며 행복하셨다고 한다. 길가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을 보면서,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서,저물어 가는 석양과 저녁 노을을 보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셨다 한다. 물론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기에 적이란 없었으나 저 아름다운 평화의 노래를 읊으시며 기도하셨다 한다. 하느님을 뵙는 순진한 마음이었기에 공중의 새들도 물 속의 물고기들도 프란치스꼬 성인께서 설교하시면 귀기울여 들었다고 한다. 이 도통한 하느님의 사도 프란치스꼬,모든 것을 다 버렸기에 모든 것을 다 갖게 된 그에게 사치 낭비 향락 등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거지로 자처하였다. 그는 이런 모든 것을 알고 또한 체험하였다. 그는 하느님께 돌아오기 전에 이 모든 것을 어리석게도 쫓아 다녔던 과거를 갖고 있었기에 하느님을 만나고 나서는 이 세상·의 어리석음을 깨끗이 끊어 버리고 참된 행복, 하느님을 찾았던 것이다. 하느님을 찾은 이상 사치 낭비 향락 등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이런 물질적 차원을 초월한 참된 행복, 마음의 풍요로움을 누리 는 것이 신앙인들의 생활이어야 할 것이다.


VI. 맺음말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질병에 억눌려 고통 받으면서도 병원에도 못가는 사람들,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 전세금과 월세가 너무 부담스러워 헤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아직도 많은데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낭비나 하고 그래도 모자라서 향락에 빠져 생명을 좀먹는 어리석은 잘못은 곧 죄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치는 자연히 낭비에 이르고 이렇듯 물질적으로 낭비하게 되면 가치관에 혼란이 오고 따라서 향락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 순서는 흔히 음주, 마약, 퇴폐 행위의 순으로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여 결국은 자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사회 문제화한 히로뽕, 대마초 또는 기타 마약 문제 등 아직은 일반화되지는 않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 사이에만 은밀히 행해지고 있다지만 이런 병폐의 만연은 끈질긴 것으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여 지하로 번져 나간다. 이런 망국적 풍조는 기필코 근절되어야 한다. 오늘 미국을 위시하여 서방 세계에서 마약 문제가 위험 수위에까지 이르렀다고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풍요를 누리다가 이제는 더 희망이 없어지자 그렇게 되었으며 그들 스스로 현대 사회의 피해자로 자처하고 있다고 한다. 즉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물질 만능주의, 황금 만능주의, 인간성 상실 등 제반 현상의 희생자로 자처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 비하여 우리는 아직도 그럴 단계도 아니며 또한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의 미풍양속이 있으며 동양적 가치관이 있으며 또한 우리는 신앙인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사치 낭비 향락 등은 복음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되 자신만을 위하여 낭비할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어려운 조건 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뽑아서 초대해 주신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것이 즉 복음 정신에 입각하여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처럼 물질적으로는 검소하나 마음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세상에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욕심에 차서 아귀다툼을 할 때에는 그렇게도 불안하더니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더니 마음이 그렇게도 평화로울 수가 없다고 하였다. 제 아무리 욕심을 부려 봤자 온 천하를 다 소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다 버리고 나면 소유를 초월하게 되니 마음의 평화를 느끼며 온 천하를 다 소유하게 된다고 하였다. 1980년 미국에서 돌아가신 저명한 사회학자인 에릭 프롬(Erich Fromm)은「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존재가 소유에 우선한다고 강조했다. 욕심껏 소유만 하려는 사람은 우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의 존재가  나의 뜻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또한 나의 존재가 영원하지 않으며 길어도 백년을 못 넘긴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하물며 소유는 더 더욱 덧없는 일이 아닌가. 나의 존재도 나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으며 당분간 살다가 죽어야 하는 숙명적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소유란 그 존재를 뒷받침해 주는 기능밖에는 못하고 소유가 많고 적음이 우리의 존재를 좌우할 수는 결코 없으며 사치 낭비 향락 등은 아무런 가치도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치나 낭비가 자기의 존재를 좀 더 과시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질적 사치나 낭비로 자기 존재를 과시할 것이 아니라 고상한 인격과 교양, 봉사와 사랑과 희생으로 만민의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살아 있는 성녀라고 세인의 칭송을 받는 데레사 수녀는 허름한 옷차림과 맨발에 샌들을 신고도 온 세상의 칭찬을 받는데 그분과 사치 낭비 향락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